평론

  • 『악착같은 장미들』에 대하여 - ​ 소녀는 인어를 갖고 싶어한다. 남자가 해산물로 볼 뿐인 인어를, 소녀는 폭력적일 정도로 원한다. 소녀의 욕망, 소유하려는 욕망은 폭력적이다. 그 욕망의 폭력성이 소녀를 아프게 한다. 학대받는 소녀들이 가지고 있는 욕망, 아무도 보려고 하지 않았던 욕망. 감미로운 고통으로 분명히 그녀들에게 속해 있는.​ 그런 불가능한 욕망을 소설의 발화자들은 꺽꺽거리면서 말한다. 말이 되지 않는, 말이 될 수 없는 … Continue reading 『악착같은 장미들』에 대하여
  • 사라 케인 - Crave M : 흑인 소녀가 주차된 차의 조수석에 앉아 있어. 그녀의 나이든 할아버지가 바지를 벗어. 그리고 그게 바지에서 튀어나와. 크고 보라색인. C : 난 아무것드 느끼지 않아, 아무것도, 아무것도 느끼지 않아. A : 그리고 그녀가 울 때, 뒷자석에 있는 아빠가 말해. 미안해요. 얘가 원래 이렇지 않은데. ​ Phaedra’s Love (테세우스가 자기 딸인 것을 못 알아본 … Continue reading 사라 케인
  • 조르주 페렉, 인생사용법 -  한 백만장자는 그의 생애 전체를 하나의 필연적인 공백의 생산에 바치려 한다. 그것은 하나의 강박적인 프로젝트다. 한 화가는 그의 생애 전체를 아우르는 공간과 사람들의 모든 편린들을 하나의 화폭에 담으려 한다. 백만장자의 프로젝트는 다음과 같다. 그는 수채화 그리는 법을 배워 세계일주를 하며 세계 곳곳의 항구 풍경들을 그리고 그것을 퍼즐로 만든다. 이후 그는 퍼즐 제작자가 그에게 전해준 … Continue reading 조르주 페렉, 인생사용법
  • 오모리(Omori), My Time - 눈을 감고 잠들어. 그럼 꿈에서 깰 수 있을 거야. 잘자.
  • 아홀로틀 로드킬, 헬레네 헤게만 - 발신 : 오펠리아 수신 : 미프티 제목 : Re : Re : Re : 그그저께 ​ 친구야, 난 다른 존재를 숭배할 줄 몰라 – 설령 너라고 해도 말이지 -,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지? 어떻게 한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더 우월하다고 생각할 수 있느냐고? 어떤 기준에 의해서 그게 가능한 거야? 아마도 너의 그 랭킹 … Continue reading 아홀로틀 로드킬, 헬레네 헤게만
  • 아베 토모미, 치이는 조금 모자라 - 치이는 착한 아이다. 모자라기 때문에 착한 아이다. 치이의 클래스메이트들은 그렇게 생각한다. 학급에서 걷은 돈이 사라졌을 때 치이를 의심하는 것은 죄악시된다. 치이를 보호/동정/훈육 하는 친구들은 치이를 의심하는 일진애를 비난하면서 치이를 옹호(보호)한다. ​ 돈을 훔친 건 치이였다. ​ 치이는 그녀의 단짝 A에게 훔친 돈 일부를 자랑스럽게 건넨다. 그것은 치이의 범죄고 치이의 소유다. A는 치이의 돈을 받아들인다. 그녀들은 … Continue reading 아베 토모미, 치이는 조금 모자라
  • 소노 시온, 지옥이 뭐가 나빠 -  “영원한 영화를 만들 수 있으면 죽어도 좋아. 살해당해도 좋아.” 그러나 영원은 없다. 영원한 순간도 영원한 망상도 없다. <<안티 포르노>>에서 여주인공은 그녀의 첫 섹스신을 찍던 카메라를 떠올린다. 그런 것은 없다. 내려뜨려진 스크린에는 풍경밖에 없다.(심지어 그녀 자신의 자위씬도 없다.) (소노 시온의 욕망이 그만의 것으로 흡수되는 부분은 지루하다.. 길고 지루한 싸움과 살인과 출혈과 유사섹스..) 현실은 초현실이다. 현실은 … Continue reading 소노 시온, 지옥이 뭐가 나빠
  • 김언희, 배신하기 - 소리를 질러주어야 할 순간을 깜빡 놓치고 번번이 놓치고, 에잇, 똥이나 처먹어라! 가 나의 첫 대사이자 마지막 대사야 (김언희, <아주 특별한 꽃다발>) 배신하기.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적합한 말과 적합한 순간을. 그래서 아주 무례해져버리기. 머리카락에 불이 붙는데, 개가 짖는다 (…) 개가 짖는다 (…) 개가 짖는다 (…) 개가 짖는다 (…) 개가 짖는다 (…) 개가 짖는다 (…) 개가 짖는다 … Continue reading 김언희, 배신하기
  • 그로테스크, 기리노 나쓰오 -  A에게는 아름다운 여동생 유리코가 있다. 유리코는 너무나 아름다워서 A는 유리코를 미워하는 것을 그만둘 수가 없다. A는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유리코에게서 도망치려 한다. 거리를 취함으로써 생존하려 하는 것이다. A는 필사적으로 공부하여 명문 Q 고등학교에 입학한다. 아름답고 또 더 아름답기 위해서 멍청하게 구는 유리코는 Q 고등학교에 입학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유리코는 스위스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와 … Continue reading 그로테스크, 기리노 나쓰오
  •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 로베르트 볼라뇨 -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 파시스트 작가들의 허구적 전기다. 서글픈 집요함에 대한 스케치. 이미 죽은 사람들, 파시즘(과) 문학에 대한 집요함의 프레임 바깥에는 존재하지 않을 작가들에 대한 묘사는 서글프고 쓸쓸하다. 그들은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집요했다. 현재형 시제의 문장들이 건조한 느낌을 준다. 볼라뇨의 소설들은 건조하면서 아름답다. 《야만스러운 탐정들》과 《2666》에서 불쑥 튀어나오던, 견딜 수 없이 서글픈 대화와 묘사들.
  • 끝없음에 관하여(Om det oandliga, 로이 앤더슨) - 오직 꿈 속에서만 서로를 품에 안고 날아오르는 삶의 단편들. 삶은 내 것이 아닌 에피소드들이다. 참을 수 없이 외로운, 참을 수 없음에도 계속되는.
  • 하모니움, 숨 - 남자가 인공호흡을 한다. 세 구의 익사체가 그의 앞에 있다. 그가 익사체들의 입에 숨을 불어넣는다. 멎은 심장을 몇 번이고 짓누르며 되살리려 한다. 내밀한, 절박한, 그러나 돌이킬 수 없는 숨. 숨소리가 계속해서 울려퍼진다. 그것은 점차 격렬해지지만 번져 흐르지는 않는다.
  •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경이로운 숭배 - 숭배, 너무나 살아 있음에 대한. 살아 있음. 그것은 괴물이다. 살아 있음. 그것은 숭배의 대상이다. 살아 있음. 그것은 현기증나는 무너짐이다. 나는 리스펙토르에게서 살아 있음과의 구역질나는 접촉을 보았다. 끔찍하게 무표정한 어떤 바퀴벌레의 살아 있음. 거미줄에 매달린 장미의 살아 있음. 자동차에 짓밟힌 소녀의 살아 있음. 그녀는 살아 있음을 원한다. 살아 있음을 마주하기를 살아 있음을 지켜보기를, 살아 있음 앞에 … Continue reading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경이로운 숭배
  • 소노시온의 러브 익스포져 - 사랑에 노출된 자들. 그러나 사랑이어야 하는 자들. 그것은 아름다운 벌거벗음인 동시에 족쇄이다. 그는 어째서 마리아를 원하는가? 그녀는 어째서 마리아여야 하는가? 그녀는 어째서 이도교여서는 안되는가? 그는 마리아의 사랑을 원했고 그것이 아니라면 차라리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다.
  • 화상에 대응하는 몸의 기억 - 김신록에 뫼르소 비평 발등에 뜨뜻한 햇볕이 쏟기었다. 그는 백치처럼 턱을 늘어뜨린다. 혀가 굳어 간지럼 타지 않는 여자를 두고 빛무리는 돌아간다. 아니, 돌아온다. 뫼르소는 차라리 달리며 비웃는다. 온몸을 흠씬 적신 땀은 덥기보다는 차다. 햇빛의 체온을 튕겨내며 뫼르소는 오한에 바르르 떤다. 다시, 햇빛이 밝아 나는 눈을 뜰 수가 없다. 마침내 나는 정박으로 신음한다. 햇볕의 수효에 꼭 들어맞는 … Continue reading 화상에 대응하는 몸의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