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교사와 상담을 했다. 그녀는 내게 그 일 때문에 따돌림 당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아니에요. 선생님. 아무도 저를 괴롭히지 않아요. 아이들은 새에게 그러하듯 제게 관심이 없어요. 담임교사는 그 애를 괴롭히는 애들이 있었느냐고 물었다. 아니에요. 선생님 아무도 그 애를 괴롭히지 않았어요. 아무도요. 그 애는 새처럼 날아가 사라졌을 뿐이에요. 선생님, 그 애는 죽었나요? 교사는 고개를 저었다. 그 애가 살아 … Continue reading i11년 12월 15일
[월:] 2022년 05월
i11년 3월 5일
집은 하얀 사막처럼 넓다. 기어서 사막을 횡단하려 하는 눈사람. 밤이 지나면 눈사람은 녹아내릴 것이다. 눈사람은 푸른 잇몸을 드러낸 채 웃고 있다. 우리는 사막 너머에 발을 내디딜 수 없을 것이다. 발은 모두 녹아 문드러졌고 사막은 밤보다 넓으니까. 그 애의 이름이 그 애를 닮았을지 궁금하다. 그 애의 목소리는 그 애를 닮았다. 어린 새처럼 높고 위태로운 목소리다. 그 … Continue reading i11년 3월 5일
엔젤 스테이크 7
삶이 일회적인 것이라고 믿을 때는 모든 게 쉬웠죠, 하고 교사는 말했다. 아이들은 옥상에서 뛰어내린 뒤 천사가 되리라는 희망에 잠겨 사라질 수 있었어요. 하지만 바스라져 산산조각난 몸은 여전히 살아 있고 이제 우리는 천사가 정신이 아니라 육체, 그것도 가장 새빨간 고기라는 것을 알죠. 교사는 슬프게 웃었고 그녀의 자줏빛 잇몸이 드러났다. 신원미상의 시체들은 실습용으로 기증되고 냉동고 속에서 눈꺼풀의 근육이 돌이킬 수 없이 손상되어가는 것을 … Continue reading 엔젤 스테이크 7
실험쥐
아니, 아직도 옷을 갈아입지 않고 무얼 하는 건가요언젠가 제게 입술을 들이밀던 남자의 흰 털을 걸치고 여자는 분장실을 나선다 마천루에서 여자는 무어를 본다아니 무엇도 보지 못한다 그래도 기억한다 종일 굶고 트레드밀을 뛰어다니던 나날사내들 놀란 눈 무언가 열심히 적어내던 손길 유리철창 속 동종 여인들의 환호성 어둠을 피하여 흰 빛을 따라 달리는 것이배우의 본성이라고여자는 더 빨리 뛰었다 자기 … Continue reading 실험쥐
엔젤 스테이크 6
판사는 이번 안건과는 무관한 내용을 들먹이지 말라고 권위적으로 말했고 검사와 변호사는 더 이상 그녀가 피해자였던 다른 사건들에 대해 말하지 않았으나 검사는 여전히 혼란스러운 눈치였다. 그는 준비해온 대사를 잊은 듯 종종 말을 더듬고 버벅거렸다. 이미 그가 준비한 서류의 내용을 알고 있는 판사나 변호사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여자와 청중들은 검사의 백치같은 말더듬증을 경악하며 듣고 있었다. 그녀는 최,악의. 최악의 살인자, 살인자입니다. 밤은, 그러니까 비가 … Continue reading 엔젤 스테이크 6
사마귀
막 쉬어가는 추억막 변색되어 하얀해에 들떠 흰 피부몸부림치는 하얀 살을 보았다검은 얼룩 고양이는 긴 혀 다 데어가며발광하는 하양을 물려고소스라치다 할퀴어대다 응시하다다시 거울 너머 힐끔 보고입안 가득 살아 있는 백합을 꽂아 넣다여직 살아 있는 유령껍질째 으스러뜨리며나를 보고 으스대더라먹지 않을 사마귀풀잎 못 된 갈퀴들구태여 살해하는 스펙타클빛에 들떠 막 바래가는 흰 살이가장 희다 파드득 몸부림치는 몸휘어가는 살섬세하게 소스라치는 … Continue reading 사마귀
엔젤 스테이크 5
여자는 차들 사이를 쏘다니는 남자가 얼마나 위험해 보였는지 말하고 싶었다. 당신이 당장이라도 로드킬을 당할 것 같아서 난 속이 메스꺼웠다고. 그러나 여자는 말하지 않았다. 로드킬 당한 모든 짐승들을 위해 울 수는 없음을 여자는 알고 있었다. 누군가는 로드킬 하고 누군가는 로드킬 당한다. 그러나 누가 누구의 꿈 속에서 헤매는지 꿈의 주인이 누구인지 확언할 수 있는 짐승은 없다. 기억과 의지를 잃은 채 긴 악몽을 꾸는 … Continue reading 엔젤 스테이크 5
섬 신화
젖가슴 주렁주렁 매달고 고래는 헤엄친다꼬릿짓이 만들어낸 비행운은 언제나 가난한 섬의 경계다끓는 얼음으로 지은 섬에는 얼어붙은 구균만 끓이며 사는 빈민들이 보글보글불면에 분홍 꿈으로 절여진 고래 얼굴들버릇 없는 빈민들은 버릇든 잠조차 자지 않고 병들었다병밖에 가진 것이 없는 섬 주민들은그라도 수출하러 나섰지만 국경을 넘기도 전에 모조리 아사해 버렸다응급실에 실려온 순교자들을 병원장은 제 아들에게 유산으로 물려주었고아들은 그 병균들로 섬의 … Continue reading 섬 신화
엔젤 스테이크 4
너는 시궁창에서 피어오르는 잘려나간 꼬리야. 여자는 꿈을 꾸듯 몽롱하게 중얼거렸다. 아이들은 쥐 꼬리를 잘라 오라는 숙제를 받아오지. 부유한 아이들은 가정부의 꼬리를 잘라 학교에 제출해. 가정부를 가질 정도로 부유하지 못한 아이들은 엄마의 꼬리를 제출하고 엄마도 아빠도 없는 고아들은 제 꼬리를 잘라서 숙제로 내지. 선생님은 편지들을 보관할 때 쓸 법한 커다란 종이 박스에 꼬리를 담아. 출석번호 순으로 한 명씩 줄을 서서 쥐 꼬리를 … Continue reading 엔젤 스테이크 4
문화인류학 – Synchromatic Dandism
공시의 문법에서는 잠수함에 쳐박힌 인어가 산산나고 있다시와 때만 남은 물거품 속에서 보글보글 솟아오르는 변명들당신네 원죄일 뿐이에요상한 생선살 우물거리던 왕자님 게걸스레자 보아, 내 배꼽엔 탯줄이 있지요순교한 여자예요, 나도희생과 제물의 죗값은 저기 무지한 생존자들에게나 묻지 그래요몰라서 매일을 살아가는 선원들에게모르는 매일을 잊어가는 포로들에게내 인어들의 이름은 나를 위해 간직하고 싶어요 죽은 동생 자궁에서 물거품 긁어먹던 언니들은빈 몸 가득 헤엄치며 … Continue reading 문화인류학 – Synchromatic Dandis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