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해자의 물방울

나는 정말이지 참아야만 했다. 보이지 않는 바닥을 술렁거리며 기어다니던 개미들이 달을 찢어발기고 내 신발 위로 타고 올라와 내 맨발을 찢어발겨도 나는 참아야 했다. 내가 작고 부드러운 발가락이 잡아 뜯기는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면 이모들은 낄낄거리면서, 무슨 일이니. 설마 겨우 개미 때문은 아니겠지. 귀여운 루시, 하고 물었다. 나는 개미를 고발할 수도 비난할 수도 없었다. 개미에게는 … Continue reading 살해자의 물방울

맹목의 물방울

파르메니데스가 갈라놓은 ‘좋음’의 세계, 가볍고 부드러우며 선명한 빛이 내리쬐는 존재들의 세계에 우리는 평생 진입하지 못할 것이다. 존재의 책임만큼이나 무거운 비존재의 응달에서 우리는 빛을 헤매는 존재들을, 무수한 날개를 맞비비며 가벼운 빛을 따라 상승하는 하루살이들을 하염없이 올려다보기만 할 것이다. 그들의 날개에서 날리는 분진들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가볍겠지. 존재하지 않는 자들의 몸은 우리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여리고 … Continue reading 맹목의 물방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