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원

여름이 오기 전에 봄꽃은 씨앗 색 비늘을 구슬에 옮겨 놓았다
바래지 않도록 얼려 둔 구슬들에 뿌리 댈 유리정원 몽상하였다
사랑으로 설계한 유리정원에서 카틀레야는 믿지 않는 새벽을 기다렸다
무명의 새벽에 유리구슬 알알이 비색으로 녹아들고
부산히 색 옮기는 향일의 병에 뿌리댈 눈짓 하나 잡지 못한 꽃 차라리 시들어갔다
여분의 이름을 두둑이 챙긴 상인이 나신에 낱말 두어개 적선하였지만
과분한 빛살에 미리 감은 눈은 여름색이 벗겨져 밤만 본 지 오래였다
백내장 대신 심은 야맹증엔 현화한 땅 구슬의 이름마저 잔상이었다
눈병의 상속을 거절하자 카틀레야 트기 전 잉태의 시간은 습관도 없이 비만해졌다

상인은 봄의 시취로 담근 찻잎이 흔하다고 생각했다
잉여의 이름으로 짜낸 오리키데 자웅동주의 꽃말로 목 매단 카틀레야는 유리정원에 묻혔다
습관으로 길이 든 유리구슬들이 죽은 봄을 온순하게 감싸 안았지만
유언을 상속받은 어미는 색 없는 빛마저 소화하지 못했다
여름이 되어 유리 정원에는 잃은 계절들의 빛살이 쏟겨들었고
한때 쫓았던 향일의 기벽마저 망각한 지난 계절은 소란한 음향을 모조리 되뱉었다
눈에 박힌 버릇을 일찍이 도려낸 얼리어답터들은 연골 없이 말캉한 눈으로
철 지난 꽃구경 만끽하였다
남의 빛으로 찬란한 정원은 수익성이 좋았다
상인은 색 바랜 시취를 몇 계절 더 수집하여 박제해 놓았고
뿌리 없이 현화한 달들은 기생한 광원보다 잘 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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