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과 장미-앨리스가 처음 살해당하던 날은 그녀의 생일이 아니었다. 그녀의 마지막 날도 아니었다. 그녀는 정오 즈음 일어나 창밖을 일정한 보폭으로 지나가는 행인들을 바라보며 글을 쓰고 있었다. 습관적으로 인터넷 검색창에 그녀의 이름과 닉네임과 그녀가 기억하는 그녀에 대한 온갖 세부사항들을 검색하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하늘은 파랬고 그녀는 아직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 현기증으로 기어드는 개미 떼들의 매스꺼운 행렬처럼. … Continue reading 양과 장미→
양과 장미 2-Act. 5. 살인자가 가까운 교회에 들어간다. 기도한다. 성상이 불안하게 경련하다가 깨진다. 돌 밑에 잠들어 있던 천사가 흐느적거리며 살인자의 앞까지 기어 온다. 희고 깨끗한 깃털들이 남자의 얼굴을 간지럽힌다. 살인자의 눈에서 피가 흘러나온다. 천사의 날개 끝이 피로 젖어든다. 붉게 변한 깃털이 남자의 얼굴 위에 붉은 선들을 덧그린다. 자살처럼, 용서할 수 없이 아름다운. … Continue reading 양과 장미 2→
양과 장미 3-영화 개봉일까지 그녀는 기다려야 했다. 시사회 초대권을 받지도 못했고 시사회 티켓을 구하지도 못했다. 그녀는 신년 그리고 또 신년을 멍하니 기다렸다. 촬영팀이 오지 않을 때도 그녀는 매일 같은 자리로 출근했다. 그녀는 새벽과 아침과 점심과 저녁과 밤 내내 기다렸다. – 난 벌을 받아야 해 – 앨리스는 자기 입을 때리면서 흐느꼈다. – 엄마 난 벌을 받아야 해 – … Continue reading 양과 장미 3→
양과 장미 4-Act. 1. 살인자가 떠나간 현관. – 절실한 이해자를 찾는 일만큼이나 절실한 타자를 찾는 일은 불가능하다. – 앨리스 – 우리는 너무 죽어 있어 – 우리는 너무도 이상한 뒤틀림 읽어낼 수 없는 균열 아주 평범한 너무 이상해서 평범한 – 여자가 떨어지고 있다 프레임에서 조각난 살들이 떨어지고 있다 떨어지고 있다 – 한 쌍의 검은 눈. 앨리스가 식탁에 앉는다. … Continue reading 양과 장미 4→
양과 장미 5-ACT. 10. 정민 : 나 아파 너무 아픈데 그래도 여기 있을래. 여기 있게 해줘. 은수 : 왜? 정민 : 사랑하니까 은수 : 넌 고통을 사랑하게 된 것뿐이야. 정민 : 여기 있을래. 은수 : 여기가 어딘데? 정민 : 우리집 은수 : 나한테 말할 필요 없어. 정민 : 여기 있게 해줘. 은수 : 나한테 말할 필요 없다고. … Continue reading 양과 장미 5→
양과 장미 6-간혹 두 곡의 놀랄 만큼 유사한 전개를 들으면서 놀라곤 해. 딜루젼 레벨이라는 말은 Airen의 글을 훔친 헬레네 헤게만에게서 훔친 것이다. 그녀는 딜루젼 레벨이 아니라 리얼리티 레벨이라고 했지만. (그렇지만 앨리스에게는 현실 감각따위 없다.) 헬레네 헤게만. 그녀는 벌써 자기 작품으로 끝내주는 영화를 한 편 찍었다. 그녀는 천재 감독이고 천재 여배우고 천재 작가이다. SCENE 01. 정장과 드레스를 걸친 … Continue reading 양과 장미 6→
양과 장미 7-ACT. 12. 그는 결코 알 수 없을 것이었다. 그가 사랑한 것이 거짓된 죽음임을, 그가 그녀를 모방하는 데 영원히 실패했음을. 로미오가 줄리엣의 몸을 끌어안는다. 그녀의 심장은 멎었고 숨은 새어나오지 않는다. 그녀는 죽었다. 그녀 입술의 채도 낮은 보랏빛과 영원한 잠으로 감긴 눈. 그의 품에서 움직이지 않는. 그는 이전에 그녀를 그리 사랑하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내장이 울렁거리며 엉망으로 엉겨붙는다. … Continue reading 양과 장미 7→
양과 장미 8-앨리스, 삶은 그녀의 것이 아닌 에피소드들이다. 참을 수 없이 외로운, 그러나 견디어지는. 계속되는 견딜 수 없음. 그녀가 히스테리컬하게 헤집어 찢어놓고 있는 구멍에서 벌건 피와 진물이 질질 흐른다. 그것은 그녀의 것이 아닌 에피소드들이지만 그녀의 것처럼 아프다. 앨리스, 그녀는 히스테리 여자다. 그녀가 꺽꺽거리면서 신음하는 언어를 아무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녀는 가족의 길게 벌어진 상처지만 스스로 봉합된 척을 할 … Continue reading 양과 장미 8→
양과 장미 9-Act. 15. 옷장 속에서 앨리스는 글을 쓴다. 노트북 화면의 불빛이 그녀의 매끄러운 표면을 날카롭게 찌른다. 불가능한 갈망의 우울한 쾌락 속에서 그녀는 (아마) (영원히) 알려지지 않을 것들을 쓴다. (영원히)의 괄호를 허물기 위해서는 몇 단계의 물리적인 변화가 필수적이다. 1. 마조히즘적 죽음충동의 사디즘적 가공(이리가레) 2. 자살에 선행하는 타살 3. 음부의 봉합. 모든 구멍들, 뻐끔거리며 혐오스러운 비명을 속삭이는 구멍들의 … Continue reading 양과 장미 9→
양과 장미 10-Act. 16. 앨리스는 악몽을 유달리 좋아했다. 악몽에는 그녀만을 위해 준비된 카메라들과 그녀를 위해 안배된 배역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목을 서서히 조여오는 서늘한 질식감이 그녀를 집요하게 추적했고 귀신의 응시들이 그녀와 동반했다. 독이 든 사과와 함께 주어지는 죽음은 부드럽고 절박하고 달콤했다. 악몽 이후에도 악몽처럼 존재할 수 있다면 그녀는 황홀로 멎어버렸으리라. 악몽 속에는 그녀를 원하고 그녀를 죽이고 싶어하는 하얀 … Continue reading 양과 장미 10→
양과 장미 11-(여기, 여자이고 중학생인 A가 있다. 그녀는 인스타 스타를 꿈꾼다. 그녀는 고화질로 촬영한 셀카들을 포토샵으로 편집하여 눈부시게 아름답게 바꾸어놓았다. 그녀가 사진들을 인스타 계정에 올린다. 그녀는 그녀의 본래 얼굴을 알아차린 누군가가 그녀에게 욕설을 퍼붓기를 황홀함에 가까운 긴장 속에서 기다린다. 고발당하기를, 폭로당하기를, 어둠 속에서 벌겋게 만개해서 진물을 질질 흘리는 비밀들을 모조리 들켜버리기를 기다린다. 그러나 아무도 그녀의 인스타를 팔로우하지 … Continue reading 양과 장미 11→
양과 장미 12-Act. 21. 암쥐는 교실의 비밀스러운 틈 속에서 울고 있었다. 그녀의 눈물이 사진들 위로 떨어졌다. 붉거나 보랏빛이거나 검거나 갈색으로 벌어진 음부들의 이미지들 위로. 그것은 실종된 소녀들의 사진들이었다. 사진들의 뒷면에는 소녀들의 이름이 필기체로 적혀 있었다. 불온한 농담처럼. 암쥐는 소녀들의 음부 위에서 흐느끼며 수음했다. 그녀는 쥐들이 실종된 소녀들보다 그녀를 먼저 발견하기를 바랐다. 그녀는 비명을 지르듯이 큰 소리로 찍찍거리며 … Continue reading 양과 장미 12→
양과 장미 13-Act. 22. 백내장 걸린 눈동자처럼 흐릿한 거울 앞에서 앨리스는 그녀가 준비한 긴 대사를 읊었다. 거울은 창문이 아니어서 바깥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려주지 못했다. 달걀 노른자가 묻어 질척거리는 소맷자락으로 그녀는 눈물을 닦았다. 희망 없음 희망 없음 희망 없음 희망 없음 희망 없음 희망 없음 그녀는 그녀의 엄마고 그녀의 아이며 그녀의 남편이고 그녀의 아빠며 그들의 가능한 모든 관계들이다. … Continue reading 양과 장미 13→
양과 장미 14-Act. 23. 그녀는 종교를 만들 것이다. 자비와 원한, 용서나 복수와는 무관한 사랑으로 짜인 종교를. 아무도 다른 누군가를 원망하지 않으므로 신은 누군가를 대신해 희생할 필요가 없다. 신이 희생하지 않으므로 사람들은 무한한 죄책감이 둥둥 떠다니는 허공을 향해 기도할 필요가 없다. 신은 그 누구도 용서할 필요가 없다. 아무도 용서받을 필요가 없다. 용서 없는 사랑들. 수업이 끝난 뒤 앨리스는 … Continue reading 양과 장미 14→
양과 장미 15-Act. 25. 김현경은 수십 년 전 서울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삶은 집요함으로 요악될 수 있다. 그녀는 사랑에나 어울리는 집요함으로 불가능을 갈구했다. 그녀는 (자칭) TV 칼럼니스트이자 (자칭) 여배우였다. 7살 무렵부터 그녀는 TV 편성표에 맞추어 하루를 분할하였다. 원하는 프로그램을 보기 위해 새벽부터 일어나 TV 앞에 앉아 있을 정도였다. 그녀의 부모는 다정한 사람들이었으므로 그녀의 방에 작은 사과 박스 같은 … Continue reading 양과 장미 15→
양과 장미 16-Act. 17. B는 비둘기처럼 쉽게 믿었다. 그녀가 그 애의 친구가 될 것이라고. 결정적인 순간 그 애는 배신당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 애를 배신할 수 없었다. 앨리스는 이제 B의 존재를 확신할 수도 없었다. 그 애는 그녀가 만들어낸 인물일지도 몰랐다. 모르겠다. 그 애를 찾아볼 수 있는 곳은 오직 그녀의 텍스트와 기억뿐이었으니. 초등학교 졸업사진에도 B는 없었다. B는 졸업하기 전에 … Continue reading 양과 장미 16→
양과 장미 17-Act. 25. 하얀 에나멜 색 이빨들을 드러낸 채로 돼지들은 씩 웃고 있었다. 김현경은 실패하고 말 것을 예측했다. 그녀는 바보가 아니었으니까. 그녀가 내기를 해야 했다면 그녀는 실패하는 쪽에 걸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투자할 수밖에 없었다. 돼지들은 웃고 있었다. 유혹하듯이, 그녀를 초대하듯이. 김현경은 오디션 지원 서류들을 수백 군데 제출했다. 기업에 자소서를 뿌리는 취업준비생, 혹은 절망적으로 원고들을 출판사에 … Continue reading 양과 장미 17→
양과 장미 18-스승의 날에 그녀는 선생님을 위해 편지를 썼다. 편지를 읽고 그는 당황해 굳은 얼굴로 그녀를 불렀다. 그는 이 말을 하기까지 많이 고민했다고 했다. 그는 부드럽고 정확한 발음으로 그녀가 얼마나 무례하고 얼마나 못된 아이이고 그녀의 문장들이 얼마나 병신같고 얼마나 시시콜콜하고 얼마나 미쳤고 얼마나 구질구질한지 하나하나 조목조목 설명해준다. 그는 그녀가 울음을 터뜨릴까 봐 걱정하며 모두 그녀를 위한 말이라고 … Continue reading 양과 장미 18→
양과 장미 19-Act. 2. 초인종 소리. 앨리스가 문을 연다. 택배 배달원 남자가 그녀를 밀치고 현관 안으로 들어온다. 그의 낡은 운동화에서 질척질척한 흙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살해당하고 있어. 남자가 울부짖는다. 뭐라고요? 살해당하고 있어. 나, 살해당하고 있다고. 남자가 갑자기 실어증 환자처럼 입술을 달싹거리면서 거샌 숨을 내뱉는다. 앨리스는 이해하지 못한다. 그의 입술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도와줘. 혹은 왔어. 혹은 갈래. 혹은 … Continue reading 양과 장미 19→
양과 장미 20-Delusion level 10.0. 페이디피데스는 달렸다. 아테네는 승리했고 그는 끔찍하게 목이 말랐다. 그는 달렸다. 달리다가 마침내 아테네에 도착했을 때, 그는 목이 말라서 그곳에 왔는지 아니면 승전보를 전하기 위해 왔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죽었고 그가 한 말은 이후의 사람들이 정해 주었다. 안녕, 친구들. 오늘은 딸기 생크림 케이크 먹방을 할 거야. 딸기 생크림 케이크를 먹으려면 우선 딸기 … Continue reading 양과 장미 20→
양과 장미 21-Delusion level 2.0. 언어 교재 나는/우리는/그녀는/그는/그들은 천국에/지옥에/미래에/죽음에/삶에/돼지 농장에/29번 채널에/옥상에/추락에/살인 현장에/질액과 체액이 엉겨붙은 침대 시트 위에/자궁에/목을 매단 자살자의 발이 점점 아래로 미끄러지고 있는 연극 무대에 갔다/가고 있다/간다/갈 것이다/갔을지도 모른다/갈지도 모른다/가게될 지도 모른다/갔어야만 한다/가야만 한다/가야 한다 . She danced her dance. She did her dance. She will live her death. She died her life. She did her … Continue reading 양과 장미 21→
양과 장미 22-Act. 1. 이곳에는 배울 수 있는 무수한 사물들과 배우지 않아도 좋을 무수한 언어들이 있다. 읽을 언어들과 읽지 않아도 좋을 사물들과 깨달을 수 있는 진리들과 깨달을 필요 없는 진리들과 맞을 수 있는 아침들과 지새울 필요 없는 밤들과 알게 될 것들과 알지 않아도 상관없는 것들과 불변하는 결핍과 감미롭고 절망적인 망상과 받은 적이 없으므로 줄 필요도 없는 말들, … Continue reading 양과 장미 22→
양과 장미 23-Act. 25. 김현경은 TV를 보고 있다. 클로즈업된 인간의 얼굴들. 그녀는 그 속에서 돼지들을 찾는다. 그녀가 보기에 모든 배우들은 돼지들이고 늑대를 기다리고 있다. 혹은, 모든 배우들은 돼지들을 연기함으로써만 늑대를 기다릴 수 있다. 인간의 실존의 양식을 결정짓는 제스처와 표정과 언어들. 김현경은 그곳에 머리를 삽입하고 싶다. TV의 표면에 얼굴을 밀어넣고 다른 얼굴들과 충돌하기를 그녀는 원한다. 그녀는 미치지 않았다. … Continue reading 양과 장미 23→
양과 장미 24-Act. 1. 결국 그녀는 혼자다. 그녀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죽음들을 낳으려는 광기. 그녀의 연기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그녀는 알지 못한다. 고개를 숙인 채로 걸어가는 남자아이. 횡단보도에는 어떤 삶이 있었다. 트럭은 그것을 짓밟고 지나갔다. 아이의 뼈와 내장을 뭉개고 지나가면서 트럭기사는 무엇을 느꼈을까. 트럭은 그것을 완전히 박살내고 지나갔다. B는 죽었다. B는 죽었다. B의 죽음은 그녀의 존재보다도 확실한 것이다. … Continue reading 양과 장미 24→
양과 장미 25-Act. 10.5. 어촌의 순박한 소녀가 횟집에서 부모님의 일을 돕는다. 그녀는 살아서 꿈틀거리는 낙지를 천사처럼 웃으며 매운탕 냄비에 떨어뜨린다. 낙지가 몸부림치고 중년의 손님이 소녀의 드러난 갈색 종아리를 만지작거린다. 소녀가 매운탕 냄비의 뚜껑을 덮는다. 신선한, 끓어서 삶아지기 전까지 살아 있을 생물을 손님들이 직접 볼 수 있도록 마련된 투명한 냄비그릇에 수증기가 번지고 낙지가 꿈틀거린다. 전복이 꿈틀거린다. 몸부림친다. 천국이 … Continue reading 양과 장미 25→
양과 장미 26-Act. 25. 김현경은 그녀가 돼지들과 어떻게 서로 강간했는지 그들이 어떻게 서로를 위해 강간하고 강간당했는지, 그들이 얼마나 즐겼는지 쓴다. 차례로 늑대 행세를 하면서. 늑대에게 먹히는 척을 하면서. 그녀는 TV 비평을 위해 개설한 개인 블로그에 애무와 삽입의 상세한 과정을 적어 올린다. 김현경의 블로그를 매일 확인하는 김현경의 부모는 그녀가 해킹당했다고 생각한다. 김현경이 그것을 직접 겪었다고 말하자 김현경의 아버지는 … Continue reading 양과 장미 26→
양과 장미 27-제발, 이제 그만두고 싶어. 시작도 한 적 없는 일을. 내 것이 아니었던 시작을. 물컵의 액체 속을 부드럽게 유영하는 먼지들을 삼킨 뒤, 앨리스는 말한다. 이건 극단적으로 이기적인 글쓰기일지도 모릅니다. 극단적으로 이기적인 연기요. 자기가 사랑하고 살해했던 소녀들을 사진으로 박제하는 살인자처럼. 살인자의 카메라를 죽어가는 눈으로 응시하는 희생자의 불가능한 시선처럼. 그 둘의 차이는 뭐죠? 청중이 질문한다. 그는 석고로 만들어진 … Continue reading 양과 장미 27→
양과 장미 28-죽고 싶어요. 다시 생각해 봐. 넌 착각하고 있는 거야. 넌 살고 싶은 거라고. 죽고 싶어요.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이기적인 년. 죽고 싶어요. 제발 그만해. 내가 더 힘들어. 죽고 싶어요. 그만해. 내가 더 죽고 싶어. 내가 먼저 죽어버릴 것 같아. 죽고 싶어요. 넌 잔인해. 난 아무것도 안 했어요. 당신을 다치게 할만한 일은 아무것도. … Continue reading 양과 장미 28→
양과 장미 29-Act. 1.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사유의 둔감화, 인지 능력의 저하. 의사는 그녀에게 치료될 것이라고 했다. 삼촌은 모두 쏴버리겠다고 했다. 삼촌은 모두 죽여버리겠다고 했다. 삼촌이 사라졌고 앨리스는 그를 위해 울지 않는다. 왜냐하면 키티, 나는 울지 않게 되어버렸기 때문이야. 왜냐하면 키티, 나는 무엇을 위해 울어야 하는지 잊어버렸기 때문이야. 죽음이 간절하다가도 그 간절함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린다. 연기만이 그녀의 … Continue reading 양과 장미 29→
양과 장미 30-Delusion level 10.0. 아이가 골목을 걸어간다. 늙은 남자가 아이의 손을 잡고 공중화장실로 끌고 간다. 아이는 비명을 지르려다가 실수로 혀를 깨물어버린다. 남자가 아이의 몸 속에 성기를 집어넣는 동안 아이는 계속해서 비명을 지르지만, 아이가 비명을 지르는 순간 늙은 남자가 그보다 더 큰 소리로 비명을 지르기 때문에 아이의 비명은 들리지 않는다. 아이가 비명을 지르고, 남자가 비명을 지른다. 남자가 … Continue reading 양과 장미 30→
양과 장미 31-Act. 17. 앨리스는 못생긴 여자아이였다. 교복을 입고 가지런히 앉은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감탄하면서 출석을 부르며 한명씩 너무 예쁘다고 칭찬을 하던 영어 교사도 앨리스의 얼굴을 당황스럽게 바라보며 성실하게 생겼네, 하고 말을 얼버무렸다. 아이들이 키득거렸다. 급식실에서 반찬을 나눠주던 여자들이 앨리스를 보면서 뭐라고 말을 건넸고 앨리스는 듣지도 이해하지도 못한 그 말을 듣고 앨리스 주변에 있던 여학생들이 키득거리면서 앨리스의 … Continue reading 양과 장미 31→
양과 장미 32-Delusion level 8.8. 길게 찢어진 입술은 보지를 닮았어요. 선생님. 어린 산딸기에 칼집을 내서 상처가 벌어진 모습도요. 아이들이 만지작거리다가 찢어버리는 꽃잎도요. 눈꺼풀도요. 모든 상처는 보지를 닮았어요. 가장 선량한 생물이 입술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좀 좋아져요. 당신들의 인생이 단순하고 보잘 것 없다고 생각하면요. 하지만 아주 유명한 사람들, 우울로 성공한 사람들이 보기보다 더 우울하다고 생각하면 질투로 미쳐버릴 … Continue reading 양과 장미 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