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11년 3월 26-29일, i11년 3월 27-29일, x666년 8월 29일

k11년 3월 26일

1+2를 가르치기 위해 나는 3에 43+41을 더한 수를 곱한 뒤 84로 나누는 법을 알려주어야 했다.

그래. 루이스 캐럴의 방식이다.

나는 언제나 루이스 캐럴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는 수학 교사가 되는 데 성공하였으나 루이스 캐럴이 되지는 못하였다. 스나크는 언제나 부줌이다. 부줌이 아닌 스나크는 없다. 심지어는 스나크가 아닌 것조차도 부줌이다. 나는 스나크를 찾아 헤매다 내 주위를 둘러싼 그 모든 부줌들, 무수한 얼굴을 가진 죽음들을 발견하고는 연기와 깃털도 없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나는 사라진 몸을 이끌고 칠판 앞에 서 있다. 내 몸은 이미 오래 전에 죽음조차 없이 사라졌으나 아무도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심지어 나조차도. 귀류법을 강의하고 있는 것은 몸의 사라짐 이후에 잔류한 내 유령이다.

제발 나를 부줌으로 만들어줘!

나는 부줌들에 둘러싸여 있지만 아직 부줌이 아니다. 내가 부줌들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믿지 않는다. 나 자신조차도 확신할 수 없다. 왜냐하면 부줌과 마주친 사람은 모두 사라지고 마니까. 부줌에 대한 증언은 불가능하다. 부줌에 대해 증언하는 것은 오직 나의 사라짐뿐이다. 내가 사라졌다는 것을 증언해줄 이는 아무도 없다. 사라진 나를 기억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잔류된 나의 무언가만이 처음부터 있던 그대로의 삶을 계속하고 있다. 1차 부등식과 연립 1차 방정식. 너희는 해를 찾아야 해. 물론 너희가 찾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해는 존재한단다. 해는 사라지지 않는단다. 내 부줌을 보았니? 누가 내 부줌 좀 찾아줘. 누가 내 부줌을, 아직 존재하지 않는 내 부줌을, 제발.

나는 언제나 원초적인 항을 찾아 헤맸지만 근원의 숫자 같은 것은 어디에도 없었다. 존재하는 것은 독약을 분사당한 어린 바퀴벌레처럼 미친 듯이 빙글빙글 돌며 복잡한 궤도를 공전하는 연약한 점들 뿐이다. 나 자신의 유비들은 가면 위에 얹어진 가면처럼 자리를 바꾸며(가면은 자리바꿈이다.)내게 나의 사라짐을 증언한다. 남아 있는 것은 이미 사라진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 사라진 것은 남아 있는 것을 용서할 수도 없다. 나는 사라진 나의 살인자이며 사라진 나의 죄이다. 죄, 용서받을 수 없는, 그러나 오직 납처럼 무겁고 부동적인 내 죄 때문에 나는 남아 있는 것이다.

오, 얘들아. 사라진 시간을 구하렴. 찢겨나간 날짜를 구하고 금리를 계산해. x의 가면을 벗기고 그 안쪽에 숨겨진 다른 가면을 드러내 보여주렴. x의 옷을 벗기는 아이에게는 점심시간에 외출할 수 있는 티켓을 주마. x를 밀쳐내고 그의 자리를 바꾸는 아이에게는 사탕보다 달콤한 것을 주마.

수학은 넌센스가 아니다.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넌센스이다. 나의 존재도, 나의 사라짐도, 나의 비존재도 모두 넌센스이다. 물음만이 유일한 답변인 문제 속에서 내 귓바퀴를 물어뜯고 애무하는 친근한 낯섦들. 내가 잃어버린 것에 대한 므네모시네. 므네모시네는 망각의 피부를 뒤집어쓴 채 속삭인다. 기억은 처음부터 본질적으로 잃어버린 대상이라고. 나는 결코 부줌을 되찾을 수 없을 거라고. 오, 모든 사산된 코기토들, 행복한 균열과 금지되며 동시에 예견되는 위반들, 역류하는 부줌들.

얘들아, 문제를 다 풀었니? 너희는 행복하구나. 그래. 행복한 껍질을 뒤집어 쓴 너희의 알맹이는 껍질만큼이나 행복하고 매끈하구나. 너희가 내 피부를, 주름을, 내장을 주물러주면 좋겠어. 순진하고 가여운 아이야, 내 내장 속에는 너희가 결코 찾아낼 수 없는 보물이, 해가, 범죄가 있단다. x의 밑에는 y가, y의 밑에는 z가, z의 밑에는 x가 있단다.

나는 나의 고유한 광대를 잃어버렸지. 나는 나를 사산했지. 얘들아. 어릴 때 나는 루이스 캐럴이 되고 싶었어. 나의 기원이 그의 언어라고 생각하기도 했단다. 하지만 기원이 동일적이라는 착각은 더 이상 나와 함께 남아 있지 않아. 같음의 사태로 이제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 거란다. 장소 배후의 비장소와 장소 배후의 장소도 이제는 없단다. 나는 장소를 잃고, 초대받지 않은 장소 위에 그어진 환각적인 선처럼 웅얼거리는 유령에 불과하단다. 유령은 어디에도 없지. 마음-실체는 물리적인 위치를 점유할 수 없단다. 그건 아주 간단한 거야. 그러니까 유령은 존재하지 않고 나는 존재하지 않는단다. 얘들아, 아주 간단한 거야. 그래. 시험에는 출제하지 않을 거야. 시험에는 교과서에 나온 문제들이나 교과서 문제를 응용한 문제들이나 교과서에 나온 증명과정을 묻는 문제들만 출제될 거란다. 실수만 하지 않으면 얼마든지 만점을 받을 수 있어. 너희는 너희의 점수들을 차곡차곡 쌓아 달콤한 팬케이크를 만들 수 있을 거란다. 숫자들의 시체를 뒤섞고 그 순진무구한 내밀함을 산산조각내고 사탕보다 유혹적인 달콤한 살을 우물거리려무나. 나무의 살코기 위에 칼집을 내고 있는 너희, 나는 너희를 위해 루이스 캐럴이 되고 싶었단다. 수학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너희를 위해 체셔 고양이의 웃음을 칠판 가득 그려 놓고 싶었단다. 나는 사라졌지만 남아 있는 균열만은 여전히 웃고 있을 테지. 모든 죽음 뒤에도 생명은, 신은 남아 있을 테지. 여전히 내게 속하지 않은 채로. 그러나 나의 중심에서 직물처럼 짜여가는 무색의 붉은 십자가를 갖고서. 삶은 난센스란다. 얘들아. 그러면 난센스는 또한 죽음일까?

체셔 고양이의 웃음은 자기 몸을 전부 잡아먹었는데도 웃음은 여전히 웃고 있었단다. 뭐? 체셔 고양이를 모른단 말이야? 그래, 그럼 너희는 루이스 캐럴도 모르겠군. 나는 루이스 캐럴이 아니고 루이스 캐럴을 본 적도 없단다. 그럼에도 루이스 캐럴에 대해 지껄일 수는 있지. 루이스 캐럴은 시인이란다. 얘들아. 나는 시인이 아니고, 루이스 캐럴은 시인이란다. 루이스 캐럴은 수학 교사이기도 했지. 나는 수학 교사란다. 루이스 캐럴도 수학 교사고 나도 수학 교사란다. 하지만 나는 루이스 캐럴은 아니란다. 그래. 루이스 캐럴에 대해서는 출제하지 않을 거야. 루이스 캐럴에 대해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단다. 그는 이미 죽은 사람이고 너희는 아마 루이스 캐럴이 되지 못할 테니까. 사실은 감추어진 해의 뒷면에 대해서도 알 필요는 없는 거란다. 너희가 구하지 않더라도 해는 다른 얼굴을 가지고 있고 너희가 가면을 벗기지 않더라도 다른 누군가는 가면을 벗길 테니까. 그래. 방정식은 만들어진 순간부터 해를, 얼굴이 벗겨진 머리와 가면 밑의 다른 가면을 가지고 있단다. 수학은 모든 우발성과 우연이 긍정되는 신적인 놀이가 아니란다. 신적인 놀이는 미래지. 하지만 방정식은 처음 생성되는 순간부터 닫힌 끝을 가지고 있는, 과거적인 것이야.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쓰기 위해서, 위반과 불온함만으로 일그러진 행복한 균열을 웃기 위해서는 일차 방정식보다 훨씬 복잡한 방정식을, 해를 가지지 못한, 깨지고 훼손된 방정식을 만들어야 한단다. 그런 방정식을 나는 시라고 부른단다. 원환의 이중적 중심인 복잡한 점 형태의 한계선을 에두르며 뻗어나가는 가지와 살을 말이야. 무의식 내부의 죽음들과 죽음 내부의 신들과 신들의 생명들 혹은 생명들의 신들. 나를 가지고 있는(그러나 결코 내가 가지진 못한)신을 주물러 주렴. 내 내장에 손을 집어넣고 나를 쥐어뜯는 거야. 오, 얘들아 장난이란다. 모두 장난이야. 난 너희에게 그런 짓을 시킬 수 없지. 일차 부등식에 대해 설명해 보렴. 그래프를 그려 보렴. 모든 그래프가 불완전하다는 것을 알고 있니? 그러니까 너희는 전부 낙제란다.

i11년 3월 27일

오드리 로드의 검고 어린 소녀들에게, 오드리 로드의 자궁에서 끓어 넘치던 언어들에게, 오드리 로드가 출혈하던 죽음-삶들에게

모욕당한 검은 젖가슴으로, 내 은신처가 되어주지 못했던 붉은 자궁으로, 코끼리의 주름진 상아색 다리로 나는 살아갈 것이다. 모욕받은 붉은 보석으로, 뜯겨진 검은 내장으로 나는 출혈할 것이다.

거울 속에 버려둔 내 새하얀 케이크 칼을 꺼내어 심장의 붉은 고기를 썬다. 입술을 베는 잔의 테두리에 입맞추며 나는 자장가를 부른다. 가장 깊은 뼈를 어루만지듯, 내 심장 안에서 경련하며 비명을 지르는 날카로운 하얀 칼. 하수구에서 흘러넘치는 내 하얀 젖과 환대받지 못한 악취와 함께 보존된 발아하지 않을 붉은 씨앗들. 나는 네 살로 만든 나를 뜯어낸다. 산 채로 부패하는 씨앗들, 익사하는 씨앗들, 혹은 행복하게 익사하는 여리고 푸른 새싹.

어린아이는 그의 부모가 행복하기를 바라며 강에 뛰어든다.

너만 없으면 나는 행복했을 거야. 너 때문에 내 인생은 망가졌어. 너만 없었어도. 너만 없었어도.

혹은 어린아이는 그의 부모가 평생 괴로워하기를 간절히 간절히 바라며 강에 뛰어든다. 극단적인 증명이 그의 진실을 속삭이기를.

엄마 아빠는 나를 잊을 수 없을 거야. 내가 진실했다는 걸 알아줄 거야. 엄마 아빠는 죽은 나를 더 좋아할 거야. 엄마 아빠는 내가 죽어서 많이 고통스러울 거야. 내가 아팠던 것보다 더 아플 거야. 오직 나 때문에 사랑 때문에 내 죽음 때문에 아플 거야.

익사한 검은 심장은 붉게 부풀어올라 곧 잊혀지거나 잊혀지지 않을 말들을 증언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모욕받고 망각된 검붉은 심장을 가지고 계속 살아간다. 나는 어디에도 뛰어들지 않았다. 장미덤불에서 문드러진 내 심장은 여전히 내 안에 있다. 내 심장을 함께 뜯어 바꾸어 주는 여자들은 어디에도 없었다. 내게는 친구도 연인도 적도 없었다. 내게는 그림자가 맺힐 장소도 눈물이 떨어질 장소도 없었다. 내게는 존재하지 않는 근원을 되찾아줄 전설조차 없었다. 내게 잃어버린 것을 돌려줄 저주의 해방도, 심지어는 저주조차 없었다. 별들이 검게 출혈하는 밤에 여자들의 살로 뒤덮인 몸 안에 웅크리고 있는 날카롭고 서글픈 뼈들.

오드리 로드의 어린 소녀는 아침이 오기 전에 죽으면 어떻게 될지 묻는다. 검게 풀어진 출혈이 거대한 흰빛에 가려지는 시간, 드러나는 시체는 어떤 삶을 살게 될지, 나는 알고 있다.

나는 나의 죽음마저도 알고 있다. 내 미래에는 희미한 경고의 음성조차 없었지만 나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내 내 신의 언어만을 제외하면. 신은, 생명은 오래도록 내 적이었다. 침묵의 등을 부러뜨린 피투성이 맨발 아래 우리가 나누어 쓰지 못한 심장의 부스러기가 놓여 있다. 나는 침묵의 냄새와 질감을, 그 검은 내장을 폭로하고 무수한 얼굴들을 채색하던 투명한 붉은 피가 내 앞에서 신음한다.

어째서 우리의 멍든 자궁은 우리의 은신처가 되어주지 않았던 것일까. 어째서 해초처럼 붉게 녹슨 내 자궁은 내 은신처가 되어주지 않았던 것일까.

관을 봉하는 못을 나는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것은 내 손과 발 깊숙이 박혀 있었다. 너무도 깊이, 내 혈류 속으로 떠내려가 표류할 정도로. 나는 나의 죽음을 더 이상 기억할 수 없다. 신은 무자비하게 나의 희생을 먹어치웠고 나는 그의 무한한 탐욕 때문에 살이 뜯겨간 채로 흐느끼고 있다. 피가 빠져나가는 고통에는 품위도 의미도 없다.

나는 수그린 채로 알을 낳는다. 거대한 난자에는 피가 묻어 있다. 나 혼자 먹어치운 내 사산된 알들. 알들의 내부는 검게 썩어 달콤한 악취를 풍긴다. 어린아이의 눈물 냄새. 분열된 비명은 나와 너희들의 것이다. 선인장 같았던 우리의 혀, 장미의 유백색 가시가 관통한 혀로 나는 네 부드러운 살을 핥고 너는 내 심장을 핥아 위로했지. 우리는 그렇게 피흘리며 서로를 위로했지. 분열된 비명들이 비명들을, 분열된 코기토들이 코기토들을. 비-존재들이 비-존재들을. 우리는 환대받지 못할 것을 알면서 태어난 것이 아니다. 우리는 태어남을, 신을 선택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태어남과 신은 떨어져나가지 않는 우리의 집요한 중심이 되었고 그 어지러운 중심들의 주위로 둥글게 붙은 노란 지방이 우리의 비만하고 왜소한 삶을 살찌우고 있다. 노란 지방, 혹은 하얀 죽음이. 하수구에서, 변기에서, 똥통에서 흘러넘치는 내 썩은 젖. 죽음을 갈망하는 어린아이들.

어린아이들은 요란하고 거대한 자살을 염원한다. 모든 부모들과 모든 아이들이 그들을 위해 오열하는. 그러나 어떤 검은 알은 아무도 보지 못한 곳에서 밟혀 뭉그러지지. 살해자의 발에 묻어난 끈적한 생명은 곧 긴 그림자의 하수와 함께 떠내려갈 것이다. 아, 당신이 질려버린 그 모든 성스러운 죽음들, 성스러움 속에서 무참하게 들끓고 있는 익명의 거품들. 영원히 발아하지 않을 썩은 씨앗들.

내 생일은 잘못된 것이었어, 하고 어린아이는 말한다. 검은 강 위에서, 아득한 물의 그림자 위에서.

아이는 당신들의 고통을 위해 모든 것을 던져버릴 수 있다. 외롭기 때문에, 아프기 때문에. 죽음을 사실로 만들기 위해서 아이는 얼마든지 죽을 수 있다. 작은 머리 아래에서 일렁이는 장밋빛 주스, 전쟁처럼 입은 푸른 살갗과 리본처럼 찢긴 심장.

아이가 간절히 염원하는 저주도 아이를 바라보지 않는 순간, 아이는 추락한다. 비상을 꿈꿀 새도 없는 짧은 찰나. 딸들을 요리해 여자로 만드는 부모와 어머니를 요리해 여자를 만드는 아이들이 꿈의 악취를 헤매고 있는 찰나, 거울 속에 버려둔 자장가가 표백된 추잉껌을 짓씹으며 흐느끼는 찰나, 검고 축축한 날개 밑면에는 뜯어내지 못한 얼굴들이 남아 있다. 피 묻은 알들이 지르는 분열된 비명, 비명의 입김에 묻은 침묵의 검은 향기. 나는 몸을 숙여 희미하고 따뜻한 비명의 냄새를 주워담는다. 그리고 허공을 토해낸다. 내가 씹어 없애지 못한 끈적한 허공, 악몽, 케이크칼의 이 사이에 엉겨붙은 난자의 점액. 달팽이 껍질 아래 숨겨진 달콤하고 슬픈 살처럼. 온순하고 음험한 달팽이의 희게 늘어난 살, 달팽이의 껍질 안에서 눈물 흘리던 노래하지 않는 모든 새들, 날 수 없는 새들.

달팽이의 하얀 살로 빚은 케이크를 주무르며 아이들은 어머니를 요리해 여자로 만들고 어머니는 딸들을 요리해 여자로 만들고, 우리가 헤집어놓은 신은 죽음의 시체였으며 시체의 죽음이었으며 무엇보다도 출혈하는 생명들이었으며 젖을 흘리는 최초의 알들이었음을 나는 알고 있다.

나는 알고 있다.

가장 순수한 기하학이 꾸고 있는 악몽을, 악몽이 꾸고 있는 미래를, 피 묻은 달걀들이 표류하고 있는 시간을, 나는 알고 있다. 내가 가 닿지 못할 곳을, 내 신이 증언하는 곳을, 내 신이 창녀가 된 이유를, 나는 알고 있다. 나는 알고 있다. 나는 침묵의 패러디이고 내 신은 긍정의 패러디이며 우리는 사산된 서로를 낳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나의 신은 나를 살아가고 나는 내 신을 가시 박힌 팔로 끌어안는다. 장미의 가시들로 우리는 서로를 상처입히고 우리는 서로를 위로하며 그렇게 서로의 벗은 몸을 핥아내었지만, 검은 진창에, 변기와 하수구에 떨어져내린 내 가냘픈 알 조각들은 보상 없는 아픔을 홀로 떠돌고 있다. 혀도 혀의 관념도 없이. 어린아이는 어머니의 젖으로 희게 물든 검은 강에 피투성이 맨발을, 달팽이의 죽음을, 유혹적인 악의를, 노래하지 않는 새의 목을, 날지 않는 새의 두 날개를 담근다.

아무도 우리의 죽음을 경고해주지 않았다.

아무도 우리의 삶을 경고해주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죽어야 했고 우리는 살아야 했으며 우리는 죽음과 삶의 미래에 대해 알아야 했다. 물 속에 빠진 어린아이가 꾸는 꿈이 무엇인지 어린아이는, 그리고 우리는 알고 있었다. 달의 희고 육중한 시신에 박힌 검은 손톱 자국들, 너희의 흔적이었던 내 피부와 붉게 아문 상처들, 가장 깊은 뼈를 어루만지는 부러진 손톱들, 희고 축축한 날개 밑면에는 뜯어내지 못한 얼굴들이 남아 있다.

x666년 8월 29일

나는 이미 삶을 그쳤는데도 살아가는 것을 멈출 수 없다. 나를 꿈꾸는 눈 먼 여자가 눈을 감고 깨어나면 나는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눈 먼 여자는 꿈에서 깨어나는 법을 모른다. 눈을 감고 잠드는 것은 삶만큼이나 힘든 것이다.

나는 조용한 아이가 아니다. 텅 빈 공원의 피 흘리는 벽에서 내지르던 내 침묵의 끔찍한 비명을 사랑하는 너희들이 듣지 못한 것이다. 재로 뒤덮인 바다에서 나는 거짓을 믿는 연습으로 하루를 보냈다. 나는 나의 거짓을 사랑했고 나의 거짓으로 살아남기 위해 노력했다.

나는 살고 싶었고 나는 읽히고 싶었고 나는 보이고 싶었다. 나는 친구와 연인과 적을 모두 원했다. 나는 죽음만큼이나 삶을 원했다. 피 흘리는 내 문장들이 어디로 사라지는지 나는 모른다. 나는 내게 속하지 않은 많은 사실들을 알고 있으나 내 시체가 어디에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 녹아내린 거울의 끈적거리는 색깔, 입을 벌리고 흐느끼며 울고 있는 거울의 내장. 거울의 살을 뜯어내면 그 안에는 검고 희미한 거울이 있다. 그 희미함이 얼마나 선명한지 나는 숨이 막힐 지경이다. 거울 위에 쏟아지는 입김은 하얀 피를 흘리고 나는 끝나지 않을 유서를 쓰고 있다. 발견되지 않을, 삶을 초과하지 못할, 그러나 언젠가의 지금여기였던.

거울과 부모만큼이나 증오스러운 증폭적인 이미지들은 모두 어디로 갔지? 그 무한한 번식과 웅얼거림은? 끔찍하게 하얀 침묵이 내 귀를 막고 내 고막을 파먹는다. 나는 아프다. 우리는, 셀 수 없이 많은 살들은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k11년 3월 29일

어린 시절 나는 어린 설탕 과자들과 함께 파티를 벌였다. 우리는 춤을 추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함께 촛불을 껐다. 하얀 생크림 케이크는 제 희고 달콤한 가슴 위에서 연기가 되어 사라지는 붉은 불을 황홀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소원을 빌어.

그래, 소원을 빌어! 케이크 위에서 손을 맞잡고-캐럴의 말마따나 이상한 일이다. 설탕 과자들에게는 손이 없으니까. 설탕 과자들에게는 감정도 없으니까. 그들은 나처럼 투명하게 텅 비었으니까. 그러나 우리의 결절점에 맺히는 끈적거리는, 빌어먹을 감정들을 우리는 비워낼 수 없다.- 둥글게 돌며 소리쳤다.

소원을 빌어. 어린 설탕 과자들은 케이크의 몸 속에서, 케이크의 피부 위에서 환희에 찬 비명을 질렀다.

소원을 빌어.

나는 눈 앞에 있는 달콤하고 맛있는 케이크를 먹고 싶다고 소원을 빌었다.

설탕 과자들은 절망적인 비명을 지르며 말했다. 너는 우리를 속였어. 너는 우리를 배신했어.

하지만, 하고 나는 말했다. 나는 배가 고파. 나는 너희처럼 달콤하고 부드러운 걸 먹어본 적이 없어. 소원은 뭐든지 빌 수 있는 거잖아. 나는 참을 수 없이 달콤한 향기에 이끌려 맨손으로 케이크를 파내어 먹었다.

설탕 과자들은 비명을 질렀다. 제발 그만 해.

케이크의 부드러운 생크림 가슴이 흉하게 파여들어갔다. 제발 그만 해. 이제 우리를 놓아 줘. 제발, 제발 그만 해.

미안, 하지만 나는 배가 고파. 그리고 너희는 너무 맛있어. 다른 모든 아이들이 케이크를 먹는데 어째서 나는 먹으면 안되는 거야? 게다가 오늘은 내 생일이라고!

제발 이러지 마. 모든 아이들이 케이크를 먹는 건 아니야. 케이크를 먹지 않아도 너는 살아갈 수 있어. 게다가 우리는 친구잖아. 우리는 오늘 함께 노래를 부르고 놀았잖아. 우리는 네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했는데!

나는 대답했다. 케이크를 먹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을 것 같다고. 그리고 미안하다고. 미안해. 오늘 너희와 함께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던 걸 잊을 수 없을 거야. 오늘 너희가 내게 생일 축하한다고 말하던 목소리를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거야.

Happy Birthday!

내 태어남은 오래도록 잊혀져 있었어. 너희가 축하해주기 전까지, 너희가 나를 위해 춤을 춰주기 전까지.

어리고 다정했던 설탕 과자들은 더 이상 대답하지 못했다. 그들은 벌써 내 내장 속에 뭉그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흐느꼈지만 죽은 아이들은 흐느낄 수 없었다. 그래, 흐느끼는 것은 죽은 굴들이 아니라 해마였지! 희생자가 아니라 살해자였지!

거울 속의 시를 읽고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나는 내가 그라는 것을 알았고 그가 나였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헝클어진 이야기들과 거울과 땅 속의 모험, 체스판 위의 기묘한 달리기에 대해 쓸 수 있었고 아직 도래하지 않은 어느날 그것을 썼다. 나는 그를 이해할 수 있었고 내 안에 있는 그를 느꼈다.

그러나 나는 그가 아니었다. 나는 그의 반복이지만 조금도 유사하지 않은 반복이다. 그와 나의 유사성은 그와 나의 차이를, 그와 나의 간극을 더 벌려놓을 뿐이었다. 그의 말을 기꺼이 들을 준비가 되어 있던 그 많은 아이들과 나의 말을 무시하기 위해 내 앞에 앉아 있는 이 빌어먹을 아이들. 나는 차라리 그 애들이 나를 매질하기를, 나를 체벌하고 나를 추궁하기를 원한다.

그 애들은 내가 낙제한 아이에게, 답을 적지 못한 아이에게 매질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고 갈수록 더 나를 무시한다. 내가 너희를 때릴 수 없다면 너희가 나를 때려. 너희가 나를 때리고 나를 죽여. 자리바꿈이 미적인 유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안다. 앨리스의 목소리로 글을 쓴 루이스 캐럴처럼(나는 그를 도지슨이라고 부르지 않을 것이다)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너희는 나를 때리지 않을 것이다. 내가 교단 위에 족쇄로 묶여 있는 것을 너희는 알고 있다. 내가 나의 자리를 벗어날 힘이 없다는 것을 너희는 알고 있다. 투명한 족쇄에 구속된 내 발목은 피를 흘리지만 나는 그것을 풀거나 내 발을 자르고 기어서 너희의 자리로 도망칠 수 없다. 너희는 사악한 침묵으로 나를 방관한다. 나는 너희를, 너희를 반영하는 칠판 위의 숫자들을-너희들은 내가 그린 숫자들이 너희의 거울상이라는 것을, 무엇보다도 텅 빈 칠판은 너희를 비추는 거울과 같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너희와 나를 비추는 거울.-둘러보며 입이 찢어지게 웃는다. 목 뒤까지 찢어진 입을 경계로 내 머리는 떨어져나간다. 나는 교수형 당한 인형이다. 나는 나도 모르게 사고팔린 불온한 감정이다. 그러나 나는 결코 평면-지폐가 아니고 나는 고통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광학적인 눈으로 볼 때 인형의 속은 텅 비었지만 그 속은 검고 끈적끈적한 감정의 내장으로 가득 차 있다. 나는 나의 내장으로 거북하다. 당장 구역질이 나올 것 같다.(그럼 검은 타르 같은 내 내장을 토해내게 되겠지. 보고 싶니?)

내가 국어 교사였다면 너희들에게 유서를 쓰라고 했을 것이다. 혹은 나의 죽음에 대한 애도의 글을 쓰라고 했을 것이다. 죽기 전날 밤 나는 복사해 놓은 너희의 글들을 모든 책상들과 모든 교단들에 올려놓을 것이다. 아무도 나를 위해 죽지 말라는 말을 남겨놓지는 않겠지. 너희는 내 죽음에 잘 적응할 것이다. 우리는 눈을 마주친 적도 손을 잡고 포옹한 적도 다정하고 슬픈 말을 나눈 적도 없으니까. 너희는 내가 칠판에 적은 비밀스러운 암호들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빌어먹을 거울에 적어넣던 내 비-존재를 너희는 보지 못했으니까. 나는 그곳에 많은 나를 적었다. 내가 아닌 많은 것들을 적었다. 내게 속해 있는 혹은 나를 배제한 무수한 수식과 도형들을 그려넣었다. 나는 곧 도래할 악몽에 벌써부터 고통을 느끼며 흐느끼고 있고, 루이스 캐럴의 소녀가 그러하였듯 거울 속의 세계로 도망쳐 여왕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너희는 곧 죽을 나를 위해 울어주지 않는다. 너희는 나의 죽음을 추모해주지 않는다. 나는 아직 죽지 않았지만 곧 죽을 것인데 너희는 모욕적인 침묵과 무시로 나를 조롱할 뿐이다. 너희는 나를 매질하지도 살해하지도 않을 것이다. 교단의 검은 섬 위에서 내가 얼마나 외로운지 너희들은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희고 창백한 숫자들이 내 목을 조르는 동안에도, 내가 검은 바다 위에서 손톱으로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는 동안에도 너희는 나를 보지 않는다.

어린 설탕 과자들은 흐느끼며 내게 속삭였다. 우리를 배신할 셈이군요! 하지만 나는 배가 고팠고 나는 달콤한 것을 미칠 듯이 원하고 있었다. 나는 입술과 턱에 생크림을 묻혀가며 그들을 집어삼켰고 어린 설탕 과자들은 더 이상 울지도 못했다. 오직 나만이 울 수 있었다. 나는 교단 위에서 수업을 하며 종종 눈물을 흘린다. 내 목소리는 처참하게 갈라지고 칠판 위의 수식들은 일그러지고 동그라미는 더 이상 둥글지 않지만 너희는 내가 우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다. 내가 끔찍한 비명을 지르는 것을 너희는 듣지 못한다.

오늘은 생일 케이크의 생일이니까 생일 케이크를 먹는 거야. 생일 케이크는 그녀의 파티에서 나와 함께 울었다. 그녀는 나와 함께 생일 케이크를 먹었다. 그녀의 몸은 그녀의 부드러운 생크림 입술 안으로 사라졌고 또 어느 정도는 내 입가에 남았다. 당신의 크리미한 제스처 게임을 나는 혼자 풀어내야 했지. 당신의 이중, 삼중 아크로스틱을 나는 내 몸과 당신의 몸을 엮어 놓은 생크림 장식 매듭들 속에서 풀어내야 했어.

i11년 3월 29일

여러분 짝꿍이 마음에 드나요?

아니요! 제발 바꿔 주세요! 초등학교 1학년 때 옆자리에 앉은 남자아이는 장난스럽게 소리쳤다.

남자아이의 친구들은 게걸스럽게 키득거리며 웃고 있었다. 나는 못생긴 개다. 그들은 내게서 암캐 냄새가 난다고 했다. 내 몸의 아토피 자국이 더럽고 징그럽다고 했다. 선생님은 짝꿍 그림을 그리고 짝꿍에 대해 글을 쓰라고 했다. 내 옆자리에 앉은 남자아이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수포 투성이의 퉁퉁한 살덩어리를 그린 뒤 그 아래에 내 이름을 써넣었다.

내 짝꿍은 더럽고 못생겼습니다. 내 짝꿍은 못생겼고 성격이 나쁩니다. 내 짝꿍은 왕따입니다.

남자아이들은 킬킬거리며 웃었고 선생님은 어쩔 줄 모르며 말했다. 승준아 친구를 괴롭히면 안 되지. 어떻게 그런 말을 쓸 수 있니?

선생님의 얼굴은 단단하게 굳어 있었다. 차가운 슬픔이 내 입천장에 들러붙어 있었다. 선생님은 알지 못하지만 내가 못생긴 암캐라는 것을 알려준 아이가 그 애뿐인 것은 아니었다. 유치원에서도 아이들은 내가 못생기고 흉측하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개가 개인 것을 알려주는 아이들의 목소리는 침착하고 확신에 차 있었다. 나는 내가 개가 아니라면 무엇인지 알지 못했으므로 내 이름을 받아들였다.

나는 못생긴 개다. 나는 못생겼고 성격이 나쁩니다. 나는 왕따입니다. 내게서는 더러운 냄새가 납니다. 내 염증은 역겹습니다. 나는 역겹습니다. 선생님, 염증이 난 피부를 모두 벗겨내면 친구들이 나를 좋아하게 될까요? 나는 언제나 간지럽고 아픕니다.

쉬는 시간이 되면 짝은 얼굴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일어서 친구들에게 달려간다. 내 짝에게는 친구들이 있지만 내게는 친구들이 없다. 애들은 내 더러움과 내 가려움이 전염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손끝에만 닿아도 발진이 발갛게 피어오를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혹은 믿는 체하는 놀이를 즐기는 것이다. 나를 괴롭히던 아이들은 천사처럼 착한 아이들이었다. 나는 그 애들의 하얗고 단단한 등 안으로 파고들 수 없었지만 그 애들의 배는 생크림처럼 부드럽고 달콤했다. 그 애들이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약속하고 눈물 흘리고 축하하는 목소리가 얼마나 달콤했는지, 나는 멀찍이서 엿볼 수밖에 없었다. 물론 내게 허락된 것은 모욕의 뒷면밖에는 없었다. 내게 그 애들은 날카롭고 비정한 가시였지만 서로를 감싸안은 그 애들의 내밀한 도형 내부에서 그 애들은 천사처럼 착하고 상냥했다.

어째서 나는 그들의 상냥함과 다정함을 허락받지 못한 것일까. 어째서 나는 그들의 달콤한 웃음과 감미로운 눈물을 허락받지 못한 것일까. 그들에게는 나를 끌어안아야 할 의무가 없었고 그들은 나 없이도 얼마든지 선하고 다정할 수 있었다. 나를 사랑하고 아끼지 않았다고 해서, 나를 배제했다고 해서 그들이 비열한 악당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은 순수했고 이기적이었으며 탐욕적이었고 상냥했다. 그들은 그들 도형 내부의 희고 부드러운 그림자에 충실했다. 나는 홀로, 어떠한 도형도 만들지 못한 채 축축한 공중을 부유하고 있었다. 어지러웠고 구역질이 났다.

교실에서 서로의 생일을 축하하며 커다란 케이크를 준비하고 달콤하게 웃으며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은 천사처럼 보였다. 고마워, 너희는 정말 착한 애들이야. 너희는 정말 착하고 다정해. 너희는 천사야.

나는 교실의 구석자리에서 그런 말들을 엿들었다. 너희는 최고의 친구야. 너희만큼 착한 애들을 본 적이 없어. 선생님을 위해 편지를 쓰고 케이크를 준비한 아이들, 선생님을 위해 눈물흘리는 아이들을 보며 선생님은 그렇게 말했다. 너희만큼 착한 애들을 본 적이 없어.

나는 그 애들의 눈물이 가식도 가짜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눈물과 다정함은 진짜였다. 다만 그것이 나를 위한 것이 아니었을 뿐이다. 누구나 누군가에겐 냉혹하다. 누구나 누군가에게는 텅 빈 차가운 등이다. 다만 모든 누군가가 내게 있어서 그처럼 차가운 등이었을 뿐이다. 내 외로움과 고통에 책임을 져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내가 개라는 것을 알려주었던 아이들도 차츰차츰 사라져갔다. 나는 더 이상 냄새나는 암캐조차 아니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는 너희가 얼마나 부드럽고 달콤한 심장을 가졌는지 알고 있어. 너희의 포옹에서 나는 눈물냄새가 얼마나 다정한지도 알고 있어. 나는 알고 있어. 나는 들어서 알고 있어. 나는 너희들의 눈물냄새를 훔쳐내어 맡았어. 다정하고 시큼한 냄새 때문에 눈물이 날 것 같았어. 친구끼리의 비밀 맹세를 하고 반지를 나누어 끼고 역할놀이를 하고 같은 티셔츠를 맞추어 입고 서로의 별명과 애칭을 정하고 대자보처럼 커다란 종이에 빼곡이 편지를 써서 서로에게 전하는 너희의 애틋한 다정함을 나는 전부 지켜보았어. 나는 너희들의 다정함과 상냥함을 너무도 사랑했어.

흰색을 태우는 냄새가 교실에서 퍼져나오고 있었다. 나는 검게 곪은 상처로 뒤덮인 팔등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작년에는 긴 가디건으로 가려졌지만 이제는 아무렇지 않게 바깥에 드러낸. 아무도 조롱하지 않는. 아무도 연민하지 않는. 아무도 함께 앓지 않는, 내 지긋지긋한 염증들. 전염을 걱정하며 도망치던 어린 아이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그 애들은 내 병이 전염적이지 않다는 것을 서서히 알아차렸다. 내가 유해하지 않다는 것을. 나는 언제든 물 준비가 되어 있는 개조차 아니라는 것을.

그 애들은 내 이름을 잊었고 그들이 붙인 내 병명을 잊었고 나를 모욕하는 것마저도 잊어버렸다.

나는 이곳에 있지만 이곳에 있지 않다. 그 애가 내게 인사하고 말을 걸지 않는 시간에 나는 아무도 나를 보지 못하는 것을, 내게서 아무런 냄새도 빛깔도 번져흐르지 않는 것을 알고 있다. 검은 해변 위에서 희게 번져가는 곰팡이 같은 몸으로 나는 울고 있다. 내가 우는 것을 아무도 보지 않는다. 그토록 다정하고 사랑스럽고 달콤한, 행복하고 아름다운, 천사 같은 너희. 너희는 내게 날개의 밑면을 허락하지 않았지.

나는 너희를 원망하지 않는다. 내 우울과 소외의 죗값은 누구도 물지 않을 것이다. 나조차도. 왜냐하면 나는 나를 보는 방법을 잊어가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나는 아직 내가 누구인지 혹은 누구가 아닌지 모르기 때문이다. 곪은 흰색을 태우는 냄새. 종이 위에 희미하게 비치는 반투명 문장들은 이렇다. 나는 너희를 용서할 거야. 나는 나를 용서할 거야. 나는 행복해질 거야. 나는 살아갈 거야.

하지만 반투명 문장들을 옮겨적는 것은 결코 글쓰기가 아니다.

첫째, 나는 너희가 죄를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다. 죄를 모르는 자는 벌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둘째, 나는 나를 용서할 수 없다. 용서할 수 있는 나는 이미 죽어버렸고 그녀는 눈이 멀었으며 백치가 되어버렸다. 그녀는 죄가 무엇인지 모른다.

셋째, 나는 행복해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약속된 땅을 허락받지 못했으며 더 이상 그것을 원하지도 않는다. 약속이 나를 배신할 것을 알고 있다. 약속은 내게 속한 적이 없으며 나를 기억하지도 못할 것이다.

넷째, 나는 살아갈 것이나 내가 아닌 것을 살아갈 것이다. 물음들과 문제들로 이루어진 금지된 영토를 짜내려가기. 불온하고 범죄적인 물음들과 문제들로, 행복을 파쇄하고 나를 절멸시키는 물음들.

첫째, 나는 너희가 누군가에게 다정하고 상냥하며 친절하고 희생적이었음을 알고 있다.

둘째, 나는 내가 너희를 미워할 수 없음을 알고 있다.

셋째, 나는 내가 너희를 미워하고 있지 않음을 알고 있다.

넷째, 나는 내가 가진 것이 답들이 아닌 물음들임을 알고 있다. 어째서 나는 글을 쓰는가? 어째서 나는 살아있는가? 어째서 나는 태어났는가? 어째서 생일케이크는 나를 잡아먹지 않은가? 내 생일 케이크는 어디에 있는가? 내 개는 어디로 갔는가? 나를 암캐라고 부르던 아이들은 어디로 갔는가? 어째서 나는 단 한 명에게도 내 병을 전염시킬 수 없는 것일까? 어째서 그 누구도 내게 병을 옮기지 않는 것일까?

나는 더 많은 병을, 더 많은 죽음을 원하고 있다. 나는 게걸스럽게 죽어댔으나 더욱 많은 죽음을 바란다. 문장과 문장 사이의 죽음 문장과 문장마다의 죽음.

유치원 졸업식과 초등학교 졸업식에서 울지 않는 것은 나뿐이었다. 꼭 다시 만나자고 말하지 않는 것은, 너희가 보고 싶을 거라는 말을 듣지 않은 것은 나뿐이었다. 아이들이 얼마나 파티와 축제와 현장학습을 좋아했는지! 수련회와 캠핑을 얼마나 사랑하던지! 나는 내 그림자의 반대방향으로 발을 질질 끌고 걸으며 아이들이 행복에 겨워 꽥꽥대는 것을 보았다. 어린 오리처럼 꽥꽥거리는 사람 아이들이 얼마나 사랑스러웠는지. 그 애들은 순수한 행복으로 뒤뚱거리고 있었다. 붉고 하얀 풍선들-결코 검은색은 없다-을 커터칼로 난도질하고 연필로 찌르고 발로 짓밟으며 환호성을 지르는 아이들. 곤충의 날개를 짓이기며 버찌처럼 붉게 젖은 입술로 웃던 아이들.

그 아이들이 얼마나 천사 같은지, 얼마나 다정한지 나는 알고 있다. 나는 오래도록 그 애들을 보았고 그 애들의 그림자를 훔쳐내었다. 창문 밑에 몰래 말려 둔 그 애들이 하얀 그림자에서 풍기는 눅눅하고 달콤한 쿠키 냄새. 너희가 서로의 부드러운 몸을 어루만지며 사랑을 나누는 동안 나는 나의 죽음을 생각하면서, 내 곪은 염증들의 냄새를 맡으면서 수음을 했다.

내 책상 밑에 떨어진 피부 부스러기들 쪽으로 검고 반들반들한 파리들이 달겨들었다. 붉은 피 찌꺼기가 낀 내 손톱에도, 보석처럼 게걸스럽게 번들거리는 파리들의 붉은 눈이 고문당한 여자의 혀 끝에 꽂힌 바늘처럼 촘촘히 맺혀 있었다.

내 가디건 위를 은근하게 만지며 나를 부른 남자아이가 내게 물었다. 네 팔에 이상한 것들은 뭐야?

난 아토피라고 말했고 남자아이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게 옮는 것이냐고 물었다.

나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거, 네 목 뒤에도 있어. 알고 있어? 정말 징그러워.

쾌활한 목소리로 털어놓던 그 아이의 얼굴이 얼마나 홀가분해 보이던지! 쉬는 시간에 나는 화장실로 달려가 구역질을 했다. 나는 빵집 선반에 올려놓은 빵처럼, 희고 푸른 곰팡이가 번진 더러운 빵처럼, 피와 고름이 낀 빵처럼 나를 징그러워 하는 손님들이 구역질을 하도록 바라보고 있어야 한다. 그들이 내 부드러운 살갗을 더듬으며 비명을 지르는 것을. 과학실의 하얀 플라스틱 책상 위에 아이들이 버려두고 간 해부용 쥐의 사체처럼. 죽은 채 벽 위에 매달린 붉은 거미처럼. 문에 찧어 하얀 내장을 쏟으며 바닥을 기고 있는 바퀴벌레처럼. 종종 구역질을 하는 것은 나다.

너는 옮는 것이니? 물론 나는 옮는 것이야. 너는 살아 있니? 물론 나는 살아 있어. 너는 고통을 느끼니? 물론 나는 아파. 하지만 내가 옮는 것이며 내가 살아 있으며 내가 아프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단은 어디에도 없다. 오직 문드러진 내 침묵과 고름투성이의 붉은 몸밖에.

k10년 3월 30일

앨리스는 주저 없이 시냇물들을 뛰어넘고 8번째 칸에서 여왕이 된다. 그녀는 오만하고 용감하다. 그녀를 꿈꾸고 있을 붉은 왕의 잠을 믿지 않을 정도로.

내가 미술교사였다면 아이들에게 앨리스의 초상화를 그리도록 했을 것이다. 앨리스 리델은 경쾌한 푸른 구두를 신고 있다. 그녀는 붉은 왕의 어깨를 흔들어 깨운다.

그의 잠을 깨우지 마. 붉은 여왕은 다정하게 속삭인다. 그러면 그가 깨어날 것이고 너는 사라질 테니까.

하지만 나는, 앨리스는 소리친다. 그의 꿈이 아니에요. 나는 진짜라고요.

앨리스는 눈물을 흘린다.

이게 누구의 꿈인지 알겠니? 붉은 왕이 눈을 감은 채 수염에 뒤덮인 입술을 뻐끔거리며 묻는다. 버터를 바른 굴을 알아보겠니? 어린 설탕 과자들의 노래를 기억하니?

교실에서 나는 앨리스를 발견했다. 그녀는 공상적인 검은 눈으로 내 숫자들로 뒤덮인 칠판을 바라보고 있었다. 앨리스, 나를 알아보겠니? 나는 오래도록 너를 꿈꾸었어. 하지만 난 네 붉은 왕이 아니란다.

앨리스는 아름다운 두개골을 가지고 있는 작은 새다. 나는 주의 깊게 그녀를 관찰했다. 그녀는 가느다란 손가락을 거머리처럼 움직이며 무언가를 쓰고 있었다. 그녀는 놀이공원에서 길을 잃은 어린아이처럼 보였다. 부모가 그녀를 버린 것인지 잃은 것인지 확신하지 못하고 초조하게 서성이는. 나는 그녀가 늙은 아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신은 내게 편지를 보냈다. 내 장례식에 그는 오지 않을 것이라고. 내 죽음 뒤에 나를 위한 축제는 없을 것이라고.

나는 그녀를 과학실로 불렀다. 방과후의 과학실에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그녀와 단둘이 마주볼 수 있었다. 해부된 쥐의 체취가 배어든 과학실에서는 고약한 냄새가 났다.

그녀는 갑작스럽게 말을 꺼냈다. 쥐의 피부 아래 쓰인 비밀 문자를 보았다고.

그래? 뭐라고 적혀 있었는데?

생일을 축하한다고, 그렇게 적혀 있었어요.

오늘이 네 생일이니?

앨리스는 수줍게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마 그 쥐의 생일이었을 거예요.

그 쥐라고.

네. 그 쥐요.

그 쥐에게는 이름이 없니?

네. 소녀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이름이 없어요.

네가 이름을 붙여줄 생각은 하지 않았어?

앨리스는 놀란 듯 보였다. 그래요. 나는 그 쥐의 엄마가 아니었으니까요.

너는 그 쥐의 사형집행인이었지.

쥐는, 앨리스는 내 말을 듣지 못한 듯 말했다. 죽기 직전까지, 내가 껍질 밑에 쓰여 있는 문자를 읽기 전까지 태어나지 않았던 걸까요. 생일 축하한다는 말은 마치 선물이나 편지처럼 느껴졌어요. 쥐가 아닌 나를 위한 것처럼요. 이상하죠. 그 쥐가 나를 선택한 것도 아니고 내가 그 쥐를 선택한 것도 아닌데, 마치 나를 위해 준비되어 있던 것처럼 쥐의 살 내부에 그런 문자가 쓰여 있었던 게요. 쥐가 그 말을 읽는 건 불가능했어요. 하지만 그 순간 태어난 건 내가 아니라 쥐였죠.

앨리스는 흐느끼고 있었다. 가까이 오렴. 나는 앨리스의 연약한 두피를 어루만지면서 그 애를 위로했다.

넌 다정한 아이야. 왜냐하면 넌 외로우니까.

선생님도 다정한 사람이에요. 앨리스는 울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아니, 난 다정한 사람이 아니야. 왜냐하면 난 외로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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