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12년 1월 8일 – C10년 10월 27일

i12년 1월 8일

공고문

실종자를 찾습니다.

나이 : 만 14세

특징 : 경련.

실종자는 학교에서 귀가하던 중 사라졌습니다. 그 이전에 사라졌다는 주장도 있습니다만 모든 주장을 상세하게 검토하는 것은 무의미했습니다. 실종자의 어머니는 시인 혹은 시를 쓰는 사람이었고 실종자는 그것을 습관처럼 떠벌리고 다녔습니다.

i12년 1월 9일

공고문

아파트에서 유령이 발견된다는 신고가 몇 차례 들어왔습니다. 항의를 한 주민분들께 일일이 말씀드렸으나 그럼에도 계속 신고가 들어와 공고문을 작성합니다. 유령이 존재한다는 것을 반박할 수단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정의상 유령은 존재를 발견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그 부재 역시도 드러나지 않는 사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유령이 발견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여러분께서 그 무엇을 발견하셨든, 그게 발견되었다면 그것은 유령이 아닙니다. 물론 여러분이 발견하신 것이 매우 유령 같은, 혹은 유령다운 사물이었을 수는 있습니다. 유령처럼 거의 보이지 않고 유령처럼 서글프고 유령처럼 어리고 유령처럼 젖은 무엇이었을 수는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단언컨대 그것은 유령이 아닙니다. 간혹 아이들이 유령을 발견하고 유령과 함께 놀이를 한다는 이야기가 들려오기는 하지만 그런 소문에는 신빙성이 없습니다. 가장 관대한 해석으로 유령이 유령과 접촉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하지만 신뢰할 만한 심리철학가는 유령과 유령의 접촉 가능성 역시 부인하고 있습니다. 물질을 갖지 못한 심적 존재는 시간과 공간 내에 제 위치를 가질 수 없고 제 자리를 갖지 못한 자들은 어떠한 만남도 가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말이 되지 않습니다. 예컨대 여러분의 자녀들이 유령과 접촉할 수 있었으므로 유령이었다는 해석을 한다면, 여러분의 자녀들의 증언을 들을 수 있었으므로 여러분 역시 유령일 것이고, 그에 대한 여러분의 증언을 들을 수 있었던 저 역시 유령일 것입니다. 이러한 식으로 진행되면 이 대지 위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들이 유령이라는 결론이 도출되겠죠. 그것은 고통과 욕망으로 발씬거리는 모든 신체들을 기만하는 해석입니다. 여러분, 저는 유령이 아닙니다. 제가 유령이 아니라면 여러분 모두 유령이 아니고 여러분의 자녀들이 한 증언 역시 거짓증언이며 여러분 자신이 직접 본 것 역시 유령이 아닙니다. 그것은 유령과 매우 닮았고 심지어 스스로를 유령이라고 믿고 있을 뿐 실은 유령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목격하고 증언했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유령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제게 유령을 목격했다는 증언을 전하며 동시에 여러분이 유령을 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한 셈입니다.

i20년 10월 24일

얼마 전 여자는 지인으로부터 한 비디오를 선물 받았다. 그리 친한 지인은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여자는 그 지인을 안다고도 말할 수 없었다. 모순적이지만 그렇다. 왜냐하면 여자는 지인을 인터넷 사이트에서 만났기 때문이었다. 여자가 매우 신비스러운 우연으로 찾아낸 사이트였다. 여자에게 비밀스러운 인터넷 사이트를 찾아 뒤지는 습관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물론 여자가 실수로 그 사이트에 들어가게 된 것도 아니었다. 사이트 이용자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그 사이트에 접속하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여자는 그때 노래하고 있었고 노래하고 또 노래하고 있었다. 노래가 남지 않을 때까지, 노래가 남지 않아도, 그녀는 노래했다.

shesingssingsandsingsuntilthereisnomoresinginguntilthereisnomorehershesings

사이트는 흰 바탕화면에 단순한 디자인이었다. 여자가 채팅창의 흰 창을 누르자 보이스 레코딩 화면이 여자의 눈앞에 떴다. 사이트에서는 오직 목소리로만 대화할 수 있었다.

안녕

안녕

할 말이 있으면 해

나 중학교에 다닐 때 유령을 봤어

유령?

유령. 그 애는 내가 학교에서 처음 사귄 친구였고 지금까지도 내가 만난 유일한 친구인데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어. 아무도 그 애를 찾지 않았고 그 애 엄마조차도 그 애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어. 나는 그 애 엄마를 찾아가서 그 애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그 애 엄마는 슬픈 시 혹은 새벽의 라디오를 듣듯이 내 말을 들었어.

나는 중학생 때 돼지에게 삽입해 본 적이 있어. 그 돼지는 귀신처럼 흐느꼈는데

암퇘지? 수퇘지?

모르겠어 암퇘지인지 수퇘지인지 난 잠들어 있었거든 난 몽유병자야 그건 우리 엄마 아빠가 기르던 돼지였어 우리 집은 돼지목장이었으니까 내 여동생이 나를 발견했지 자기 방 창문을 통해서 내가 우리집 정원 풀밭에서 돼지와 그짓을 하는 걸 본 거야. 여동생이 빌어먹을 뭐라고 생각했을지 얼마나 무서웠을지 상상도 할 수 없어. 여하튼 나는 꿈에 취해 있었어. 그건 특별히 악몽은 아니었지 악몽이라기보다는 나른하고 편안한 꿈이었어. 나는 막 도축한 돼지새끼처럼 단단하게 발기해 있었고 내 고깃덩이는 붉게 달아올라 있었지. 그건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야. 꿈 속에서 평소처럼 하얀 원피스 잠옷을 입은 내 여동생이 내 고깃덩이를 입으로 애무하고 내 앞에 개처럼 엎드렸어. 나는 여동생의 고깃덩이에 내 고깃덩이를 삽입했고 흔들었지. 그런데 아무리 흔들어대도 사정을 할 수가 없었어 내 고깃덩이는 끔찍할 정도로 팽창해 녹아내리기 시작했어. 주름이 팽팽하게 잡아당겨졌고 조금씩 튿어졌고 마침내 그 속에서 검누런 염증 같은 것이 새어나오기 시작한거야. 꿈 속에서 나는 보이지 않는 땀을 흥건하게 흘려댔는데 그 땀도 피가 섞인 것으로 느껴졌지. 혈한증에 걸린 난쟁이처럼 아무도 없는 새벽에 홀로 침대에서 하혈하는 시인처럼 나는 알 수 없는 액체로 이루어진 끔찍한 액체를 온몸에서 흘리면서 떨었어. 내가 발작처럼 경련하느라 움직이지 못하고 있으니 여동생은 성적인 기색 없이 순수한 노동을 하는 듯 가쁜 움직임으로 둔부를 움직였고 나는 신경질적으로 경련을 하고 온몸에서 기묘한 액체를 흘리면서도 야릇한 편안함을 느끼며 서 있었어. 내가 사정감보다는 배뇨감을 느끼며 무엇인가를 배출하려 했을 때 여동생이 갑작스럽게 일어나 내 목덜미를 깨물었어. 그건 단순한 애무가 아니었어. 여동생은 내 목덜미 살점이 떨어져 나갈 때까지 나를 물었으니까. 내 목과 어깨 사이에 숨겨져 있었던 신경 다발과 혈관들의 비밀스러운 배선이 드러났고 나는 고통보다는 알 수 없는 슬픔에 휩싸여 울었어. 여동생은 짐승처럼 나를 씹어먹고 있었어. 여동생의 음부와 입술에 내 검은 피가 묻어 있었어. 나는 모든 것이 견딜 수 없이 슬퍼서 울었지만 그리 불쾌한 기분은 아니었어. 곧 여동생이 싸구려 좀비 영화의 괴물들처럼 기이하게 벌어진 입으로 나를 응시했고 그 입구멍에서 높은 소프라노 톤의 비명이 파열하듯 새어나왔어. 나는 눈을 떴고, 아니, 정확히 말하면 눈을 뜬 채로 정신을 차렸고 내 앞에서 정상적인 인간의 입으로 비명을 지르는 여동생을 보았어. 여동생은 내게 뭘 하는 거냐고 물었지. 물론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눈치는 아니었어. 나 역시 너와 섹스를 하고 있었다고 대답할 만큼 대책없이 꿈에 취해 있는 상태는 아니었고. 여동생은 아주 조숙한 어린아이처럼 소리 없이 흐느꼈어. 나는 곧 내가 무엇인가에 좆을 처박고 있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깨달았고 내 앞에서 유령처럼 끽끽대는 무엇인가 있다는 사실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지. 자지를 삽입한다는 건 삽입 당하고 있는 육체도 있다는 말이니까. 그런 건 어린아이도 알 수 있는 일이야. 내 앞에서 돼지새끼 한 마리가 끽끽거리고 있었어. 그건 돼지였어. 암퇘지인지 수퇘지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니까 나는 돼지의 질 혹은 항문에 삽입하면서 여동생이 우는 모습을 바라보았어. 돼지의 체내는 부드럽고 뜨거웠지만 어딘지 유령처럼 차가운 구석이 있었어. 나는 다른 신체, 다른 사물, 다른 시간을 관조하듯 내 몸이 돼지에게 삽입하고 경련하는 모습을 다소 냉정하게 바라보았어. 나는 곧 도축 당할 짐승의 고깃덩이 안에 사정했고 특별한 구역감도 없이 몸을 빼낸 뒤 잠옷 바지를 추슬렀지. 여동생의 손을 잡고 집에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귀신처럼 흐느끼는 걸 멈춘, 그러나 돌연 귀신처럼 조용해진 돼지를 끌고 축사로 데려다 놓을 때도, 현관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집 안으로 돌아갈 때도 여동생은 내 옆에 있었어. 듣고 있어?

그래. 여자는 대답했다.

아, 그 개 같은 새벽에 대해 떠벌리고 싶어서 매일 죽을 지경이었지. 경련과 전율을 구분할 수 없듯이 난 황홀과 공포를 구분할 수 없었어. 디오니소스적인, 황홀한 절망 속에서 나는 어떤 빌어먹을 비밀을 깨달았어. 몽유병자들이 끝없는 표류 끝에 얻게 되는 어떤 보물 같은 걸 말이야. 네가 귀신 이야기를 하니 생각난 건데 귀신은 어떤 꿈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유령들은 특정한 꿈의 형식이고 우리는 그 유령을 입고 삼키고 체험하고 스쳐가면서 살아가는 거지. 그러니 우리는 같은 유령을 만나거나 혹은 같은 유령이 될 수도 있을 거야.

그들은 일요일의 카페에서 만났다. 여자는 기억 장애에 걸린 것처럼, 혹은 꿈 속에 있는 것처럼, 남자의 인상을 기억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분명히 남자였고 남자의 목소리와 남자의 손과 남자의 체취로 여자에게 무엇인가를 건넸다. 여자는 남자의 땀이 그녀의 손에 묻는 것을 느꼈다. 여자는 남자가 보는 앞에서 남자가 건넨 쇼핑백을 뜯어 보았다. 종이 쇼핑백 안쪽에는 고전적이고 전형적인 형태의 비디오 테이프가 들어 있었다. 그들은 그 자리에 앉아서 반 시간 가량 무엇인가 대화를 나누었고 곧 별다른 말 없이 헤어졌다. 여자는 남자와 나눈 말을 단 한 마디도 기억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이 마치 낮 무렵이면 약간의 분말만을 남긴 채 사라져버리는 새벽녘의 꿈처럼 느껴졌다. 여자는 비디오 테이프 재생기를 찾기 위해 과거의 언어와 먼지들이 제멋대로 뒤엉켜 있는 창고를 뒤져야 했다.

여동생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나를 대했어. 우리는 적당히 서먹서먹하고 다정했지. 여느 가족처럼. 익명의 그가 말했다. 여동생은 대학에 갔고 부모님은 병원으로 실려갔고 나는 내 돼지들과 함께, 내 돼지들과 홀로 남았어. 내가 도축한 새로 태어난 그 많은 돼지들, 그 돼지들 중 하나는 내 아내고 하나는 내 자식인지도 몰라. 돼지들의 살에 흠집을 내고 피를 다 빼놓기 위에 그것들의 가슴팍 위에 올라가서 발을 구를 때, 나는 그게 마치 그 짓을 닮았다는 생각을 했어.

나는 내가 살인을 할 수 없다는 걸 알아. 내가 여동생을 강간할 수도 없고 여동생을 살해할 수도 없다는 걸 알아. 그렇다고 해서 내가 순결한 것은 아니야. 오, 순결은 가장 불온한 죄나니.

나는 돼지들을 도축하지. 돼지들의 멱을 따고 돼지들의 믿음을 배신하고 돼지들의 피로 온몸을 적시고 돼지들의 비곗덩이를 반죽해. 돼지와 섹스하고 돼지에게 도끼날을 박아넣는다고. 난 간혹 그 많은 피와 살점들을 보며 생각해. 어떻게 이런 일이, 이토록 비밀스럽게 일어날 수 있지? 그건 내 희생자들이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야. 내 희생자들을 위해 목소리를 높일 사람이 없기 때문이야. 내 희생자들을 위해 나를 고발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야. 내 희생자들이 나를 사랑한 것, 내 희생자들이 내게 배신당한 것, 내 희생자들이 벌거벗었다는 것, 그건 이 일과 아무런 관련도 없어. 내 희생자들은 모두 죽거나 벙어리이고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않아. 내 희생자들은 무리 속에서 홀로야. 나처럼. 나처럼 홀로란 말이야. 그러니 아무도 내 살해를 범죄라고 말하지 않아. 나를 찾아와 살해 현장을 촬영하고 기록하고 내 범죄의 증명서를 발급해주는 이들은 아무도 없어.

내게서는 언제나 피냄새가 진동할 텐데도 마을 사람들은 내게 아무것도 묻지 않지. 그들은 내가 돼지 목장 주인-언젠가는 돼지 목장 아들이었던-이라는 걸 알고 있어. 내가 돼지들의 피를 뽑아내는 그곳에서 내 여동생을 죽이고 토막낸다고 해도 찾아올 사람은 없을 거야. 나는 그걸 알고 있어.

나는 그걸 너무나 잘 알고 있어.

어째서 우리는, 나와 내 돼지들은, 그리고 우리는 유령으로 태어난 걸까. 나는 세계의 비밀을 알고 있어. 유령과 접촉하고 유령의 울음소리를 듣고 유령과 섹스하는 우리는 전부 유령이고 내 피부로 감싸려 발버둥 쳤던 세계조차도 사실은 유령이지. 비밀 하나, 나는 벌거벗은 나를 도축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비밀 둘, 나는 벌거벗은 돼지들을 도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어. 내가 돼지 목장 주인이라고 해서 돼지들을 도축하고 그 시체를 토막내어 팔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야. 인도의 왕자가 그러했듯이 나는 내 좆대로 할 수 있지. 돼지를 토막내는 대신 내 좆으로 구멍을 쑤시고 돼지를 창녀로, 혹은 연인으로 만들 수도 있다고. 하지만 나는 내 좆으로 돼지를 쑤시고 그걸 토막냈어 난 그 모든 걸 다 했지. 왜냐하면 모든 것은 변화하고 변화 속에서 아무것도 변하지 않기 때문이야. 우리는 오직 여기 있었고 그러므로 우리는 거기에 없었기 때문이야.

빌어먹을 여기, 여기, 여기.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난대도 나와 돼지들은 여기 홀로 있겠지.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거야. 모든 것이 변화하는 가운데 우리가 가장 원하는 것은 변화하지 않은 부재의 상태로 남을 거야. 며칠 전에 난 천사를 봤는데 그년도 사실은 돼지였어. 이곳의 모든 연기자는 돼지들이니까. 여배우를 연기하는 돼지 남배우를 연기하는 돼지 처녀를 연기하는 돼지 창녀를 연기하는 돼지 비극배우를 연기하는 돼지 예수를 연기하는 돼지 전부 돼지들이지. 그러니 천사를 연기하는 돼지, 혹은 돼지를 연기하는 천사를 봤을 때도 나는 천사가 돼지라는 사실 때문에 놀라지는 않았어. 다만 그게 무엇이든 이 빌어먹을 세상에서 천사를 연기하는 배우가 있다는 사실에 좆같이 놀랐을 뿐이지.

천사는 촬영 중간에 소파에 늘어져 휴식을 취하는 포르노 배우처럼 나른하게 거실 식탁에 앉아 있었어. 사람처럼 둔부를 식탁 바닥에 붙이고 앉아 있어서 흰색 깃털들로 만들어진 가슴 장식 사이로 늘어진 유방들이 선명하게 보였어. 이리 와서 앉게. 천사는 중후하고 어딘지 체념한 듯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어. 나는 어디 앉아야 할지 몰라 허둥대다가 천사의 앞 식탁 의자에 앉았지. 그래서 나는 교회의 연단을 올려다보듯 천사를 올려다볼 수밖에 없었어. 그 자리에서는 천사의 벌어진 다리 사이로 검갈빛의 짐승 음부가 선명하게 보였지.

자네는 곧 죽을 것이네. 자네도 알고 있지? 천사는 권위적이고 냉담한 의사처럼 고개를 까딱거리며 말했어.

오 그럼요.

나는 놀랐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내 죽음을 기다려온 사람처럼 말했어. 사실 틀린 말도 아니지. 모든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어느 정도 자기 죽음을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어떤 사람은 더 절박하게, 어떤 사람은 더 무심하게.

천사는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어. 어딘지 퉁명스러운 말투였지. 내가 너를 찾아온 것은 죽어가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한 미광을 너에게서 느꼈기 때문이다.

오, 제게 예지적인 힘이라도 생긴 것인가요? 저는 천국에 가게 될까요? 나는 어딘지 편안해져서 천사를 올려다보며 농담을 지껄였어.

천사는 대답했어. 죽어가는 이의 광증, 몽유병자의 황홀한 표류, 개 같은 잔존의 힘이 자네에게 있다는 말이지.

그렇지만 선생님, 나는 약간의 미소를 띠며 말했어. 선생님은 완전히 착각하셨습니다. 저는 남에게 보여줄 수 있는 약간의 미광조차 없습니다. 설령 제게 그런 미광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 미광은 한낮을 넘길 수 없을 것입니다. 미광은 끔찍하게 아름다운 밤이 찾아오기 전에 멎을 것입니다. 저는 도래할 낮을 기다리고 있는 밤의 태양이 아닙니다. 제게는 그리 긴 시간도 긴 인내도 긴 마음도 없습니다.

천사는 기계처럼 무뚝뚝한 어조로 말했다. 너는 나에 대해 써라. 너와 천사의 관계, 너와 세계의 관계, 잔존하는 불확실한 시간 속 천사의 시간에 대해, 혼돈 속 영원과 초월에 대해, 시간 속 비시간에 대해 써라. 그것이 너의 임무이니.

나는 대답했어. 선생님, 저는 위대한 시인이 아닙니다. 제가 홀로 쓰는 일기들은 돼지들의 삶과 돼지들의 살점과 돼지들의 창자와 돼지들의 자궁과 마찬가지로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구렁텅이에 묻힐 것이고 그것은 결코 선생님의 영광을 전할 수 없을 겁니다. 오 제 시는 정말이지 창녀의 일기와 같습니다. 그녀가 받은 남자에게 살해당할 때마다 제 죽음을 기록한 창녀의 일기 말입니다! 혹은 영원히 밝혀지지 않을 범죄만을 저지르고 다니는 살해자의 일기와 같을 겁니다. 세계의 유일한 언어로, 그래서 세계와 이어질 수 없는 언어로 글을 쓰는, 소수 언어 사용자의 편지와 같을 겁니다. 혹은 맹인이 보는 이미지, 벙어리가 발음하는 언어, 문맹자가 쓰는 텍스트와 같습니다.

천사가 엄숙하게 물었어. 말 안 듣는 아이를 벌하기 위해 일부러 목소리를 낮춘 부모의 음성처럼 들렸지. 너는 나를 믿지 않느냐? 너는 내 영광을 느끼지 못하느냐?

나는 다소 희극적인 동작으로 손을 휘저으며 대답했어. 오, 아닙니다. 선생님. 저는 선생님의 아름다운 돼지 유방에 담긴 돼지의 영광을 절박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돼지처럼 아름답고 돼지처럼 순결하십니다.

네가 알고 있다면, 천사가 조금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어. 어째서 내 영광을 쓰지 못하느냐?

그것은, 선생님. 나는 물에 빠진 쥐새끼처럼 발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어. 그것이 제 역할이기 때문입니다. 퍼즐과 퍼즐 사이의 작은 공간에 그릴 수 있는 무늬라고는 한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가 아닌 자의 역할을 맡았고, 선생님, 제가 아닌 그 자들은 선생님의 영광을 쓸 수는 있을지언정 다른 입과 다른 귀 속으로 흘려보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천사는 짧고 퉁퉁한 족발을 흔들며 내게 말했어. 노래하라! 노래하라, 아가. 그녀는 노래한다. 노래하고 또 노래한다. 노래가 남지 않을 때까지, 노래가 남지 않아도, 그녀는 노래한다.

나는 그제야 그 빌어먹을 천사가 완전히 미쳐버렸다는 걸 알았지. 그리고 나는 그년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도. 난 천사가 육감적이고 축축한 유방들을 내 앞가슴에 맞대주기를 바랐어. 길고 역겨운 혀로 내 입안을 헤집어주기를 원했어. 천사의 검고 더러운 음부가 나를 질식시켜주기를 원했어. 천사는 미스테리한 미소를 지으면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지. 마치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두 알고 있다는 듯이. 그렇지만 그건 말도 안 되는 거야.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확신은 결국 망상에 불과하니까.

천사는 테이블에서 몸을 일으킨 뒤 바닥으로 뛰어내렸어. 그러고는 네 발로 걸으며 나를 인도했어.

뭘 좀 먹겠느냐? 천사가 뒤를 돌아보며 내게 물었지.

두툼한 목에 깊은 주름이 졌고 나는 그녀를 끌어안고 싶다고 생각하며 그렇다고 대답했어. 그렇습니다 선생님 저는 배가 고픕니다. 목도 마르군요.

천사는 앞가슴을 가리고 있던 새털 장식을 풀어헤치고는 유방과 유방 사이를 날카로운 발톱으로 길게 그어내렸어. 석류알처럼 붉은 피가 떨어졌고 천사는 길고 좁은 틈 속으로 앞발을 쑤셔넣더니 심장처럼 생긴 붉은 과일을 하나 꺼내었어. 붉고 푸르고 번들거리는 과일이 내 앞에서 탐스럽게 맥박하고 있었지. 나는 붉은 즙이 질질 흐르는 그 과일을 조심스럽게 받아 들었어. 나는 과육에 이빨을 박아넣었고 무엇인가 끔찍한 것을 느꼈어. 과일을 반으로 열어젖히자 수백 마리 애벌레들이 과육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것이 보이더군. 나는 곧바로 구역질을 해댔고 천사는 장난꾸러기 소년처럼 낄낄거리며 웃었어.

비디오 재생기를 찾은 뒤에야 여자는 그것을 연결할 만한 구식 텔레비전이 더 이상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여자는 어린 시절의 몇 가지 유물과 함께 그에게서 받은 테이프를 업체에 맡겼다. 비디오 테이프를 디지털 파일로 변환해주는 회사였다. 여자는 파일을 받고서도 한참이 지나서야 그걸 열어 보았다. 아직 알려지지 않은 이미지들이 여자를 두렵게 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변환된 파일은 잔혹한 스너프 필름, 포르노, 시선을 요구하는 범죄의 기록일 수도 있었지만-특히나 남자의 괴이한 이야기를 생각해보면 그것은 완전히 비개연적인 추측도 아니었다-여자는 그런 것을 걱정하고 있지 않았다. 어둠 속에 하얀 우물이 있었다. 길고 검은 머리를 늘어뜨린 하얀 여자가 그녀를 향해 짐승처럼 기어왔다. 여자는 먼 곳에서부터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는 끔찍하게 느린 속도로 다가왔다. 영상의 첫머리부터 영상이 끝나갈 때까지 여자는 여자를 향해 기어오고 있었다. 미래에서 과거로 헤엄쳐오는 망령처럼 여자는 불확실한 이미지로 기어왔다. 마치 수십 마리의 벌레처럼 여자는 기어오고 있었다.

마침내 거울을 사이에 둔 두 인영처럼, 환영과 실재처럼, 형상과 반사처럼,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본 두 여자는 꿈을 응시하듯 서로를 응시했다. 여자는 여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검고 짙은 음영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의 눈이 벌레처럼 꿈틀거렸고 여자는 몸을 떨었다.

그곳에서 영상은 끝났다. 그곳에서 여자는 끝났다.

남자는 노래하듯 속삭였다. 꿈에서 깨어난 뒤 나는 긴 서사시를 쓰기 시작했어. 물론 돼지-천사를 찬미하는 글이지. 꿈은 의미를 해석할 수 없는, 아이들의 지랄 같은 놀이야. 그곳에서 오가는 악의, 그곳에서 오가는 결백, 그곳에서 오가는 언어는 모든 심오함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아무런 의미도 지니고 있지 않지. 나는 내가 무엇을 쓰고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나는 내가 무엇을 쓰는지 알기 위해 쓰고 있어.

아 빌어먹을, 여동생은 도시로 떠났고 어머니와 아버지도 도시로 떠났고 나와 돼지들은 시궁창에 남아서 돼지-천사를 찬미하는 시를 쓰고 있네. 나의 돼지들은 그들의 붉고 탐스러운 살점으로 나는 해골의 뼈처럼 하얀 종이로. 여백으로, 여백의 여백으로 시발 나는 글을 쓰고 있어.

내가 원하는 것은 그녀의 무덤일지도 몰라. 나는 천사의 목을 조르고 다른 돼지새끼들을 절개하듯 그년의 목을 베어내고 그 젖가슴 위에서 발을 구르며 피를 빼내고 걸레처럼 늘어진 턱뼈에 내 좆이나 혀를 삽입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몰라. 무덤에 피어난 한 송이 꽃, 내가 원한 것은 그것뿐인지도 모르지. 그 꽃이 누구의 무덤에서 폈는가? 그 관에는, 그 새털베개에는 누가 들었는가? 그것은 무의미한 질문이야. 내 시에 무엇이 들었는지 내 시가 어떻게 쓰여졌는지 내 시가 무엇인지, 사실 그런 질문도 무의미해. 중요한 것은 여기 나와 돼지들이 있다는 사실이지. 여기가 무덤이건 살해자의 침실이건 돼지 새끼들과 나와 내 꿈이 여기에 있다는 사실이지. 그렇지 않아? 내 꿈 속에서 여동생은 마치 죽은 사람처럼 이야기하고 간혹 전화 통화를 할 때 내 여동생은 마치 한 번도 죽지 않은 것처럼 말하지만 오 제기랄 중요한 건 그년이 아직도 노래를 부르고 있는 거야.

아냐, 사랑하는 아냐, 너는 대체 언제 노래를 그만둘 거니? 그녀는 노래하고 노래하고 또 노래하지. 노래가 남지 않을 때까지, 노래가 남지 않아도, 그녀는 노래해. 그래서, 그 빌어먹을 노래를 대체 언제 찢어버릴 거니? 내가 물어보면 여동생은 노래를 부른 적이 없다고 속삭여. 그건 울고 있는 여자의 목소리야.

나는 울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도저히 상상할 수 없어. 울고 있는 사람의 표정을 본 적이 없는 것도 아닌데, 울고 있는 사람의 얼굴을 보면서도 그 사람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도저히 상상할 수 없지. 내가 보는 것은 돌이킬 수 없이 훼손된 돼지 대가리의 무기질적인 황홀함뿐이야. 고깃덩이의 웃음, 혹은 고깃덩이의 슬픔, 그것뿐이지. 목과 턱을 연결하는 살의 깊게 패인 상처가 짓는 미소, 그것뿐이라고. 저주스러운 고독 속에서 나는 아직도 돼지들을 썰고 있어. 아직도 돼지들을 쓰고 있어. 버러지 같은 내 존재, 내 글쓰기, 내 세계, 그것들이 쓰고 있다고. 포르노 배우를 응시하는 카메라의 기계적인 시선을 응시하는 포르노 배우처럼, 예수의 성흔을 게걸스럽게 들여다보는 신도들의 검은 눈을 들여다보는 예수의 내장처럼, 중국에서 마지막으로 능지처참당하는 남자의, 짐승처럼 도축당하는 육체를 집요하게 바라보는 구경꾼들을 바라보는, 이미 죽은 남자의 몽롱한 시선처럼. 나는 내 존재, 내 글쓰기, 내 세계가 나와 돼지들의 피로 시를 쓰는 걸 바라보고 있어.

C10년 10월 27일

쥐들과 어울려 놀던 고양이가 기침을 하더니 핏덩어리를 뱉어낸다. 쥐들은 한순간에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린다. 그들이 가장 사랑하던 어린 쥐의 머릿조각. 그들은 그것을 발견한다.

어떻게 우리에게 그럴 수 있어? 쥐들의 싸늘한 시선이 말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어?

고양이는 흐느끼면서 애원하듯 속삭인다. 배가 고팠어. 그 애가 내 앞에 있었고 우리는 망가진 시계장치를 가지고 놀고 있었어. 배가 고프지 않아? 그 애가 물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어. 우리는 텅 빈 아파트 방에 있었지. 그 방에 우리가 있었지만 그곳은 텅 비었어. 그곳에 천 마리의 쥐들이 들어찬다고 해도 그곳은 텅 빈 아파트였을 거야.

고양이는 허공에 매달린 독약을 삼킨 거미처럼 경련하며 기침한다. 너희는 정말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는가 보구나.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지도 않고 내 이름을 불러주지도 않으니 말이야. 그날 그 애는 내 턱을 다정하게 어루만지면서 내 이름을 불렀어.

고양이는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하는 듯 침묵한다. 이름, 내 이름이 뭐였지? 너희는 기억나니?

쥐들의 검은 눈.

아니.

너희는 기억나지 않는가 보구나. 기억나더라도 내게는 말할 생각이 없는 거지. 그 애는 정말 사랑스러웠어. 나는 그 애를 내 자궁에 밀어넣고 다시 낳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 그만큼 그 애는 사랑스러웠어. 그렇지만 그 애를 먹고 싶을 정도로 그 애를 사랑했던 건 아니야. 그 애를 먹었던 건 그저 배가 고팠기 때문이었어.

너는 조금 더, 늙은 쥐가 무뚝뚝하게 말한다. 그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다정한 늙은 앞발로 고양이의 턱 밑을 쓰다듬어주던 남자다. 너는 조금 더 기다릴 수도 있었어. 그럼 우리가 너를 위해 육포 조각이든 치즈든 비스킷이든 우유든 무엇이든, 늙은 쥐는 흐느끼며 말한다. 무엇이든 가져다 주었을 걸세. 왜냐하면 우리는 너를 사랑했으니까.

검고 뜨거운 허공의 눈들.

고양이는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 당신은 이해하지 못하는가 보군요. 나는 그때 배가 고팠어요. 지금 배가 고픈 게 아니란 말이에요. 중요한 건 그때 그 순간 배가 고팠다는 거예요. 나는 무엇인가를 필요로 했고 그 애가 내 앞에 있었어요. 그래서 나를 먹었죠. 이 일은 그 외의 시간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어요. 그 애가 내 이마를 부드럽게 쓸어주고 내 이름을 불러주고 내 앞발을 간질이며 농담을 했던 일, 밤새도록 함께 속닥거리며 이야기를 나누었던 일, 꼬리와 꼬리로 허공에 그림을 그렸던 일, 그런 일들은 아무런 관련도 없단 말이에요.

죽은 쥐 아이의 어머니가 낮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한다. 넌 우리를 속이려고 했어. 네 뱃속에 무엇이 들었는지에 대해서는 입을 꾹 닫고 우리와 함께 웃고 떠들었지. 난, 우리는 네 뱃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르고 너를 사랑했어.

고양이 : 제발 나를 살려주세요.

쥐 : (작은 앞발을 들어올린다.)

고양이 : 당신이 당신의 날카로운 발톱으로 내 이마를 쓰다듬을지 내 심장을 꿰뚫을지 나는 그 순간이 닥치기 전까지는 알 수 없어요.

쥐 : 너는 내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니?

고양이 : 그래요.

쥐 :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내 확신을 증명할 방법은 어디에도 없지. 나는 내 위치의 방위를 알지 못하므로 그것을 지도에서 찾아 보여줄 수도 없단 말이야. (고심하듯 눈을 천천히 감았다 뜨며) 내가 쥐로서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은 내 육체밖에 없어. 하지만 내 육체가 존재한다는 사실, 그것을 증명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

고양이 : 쥐라고? (짜증스럽게) 오, 당신은 착각하고 있어요.

쥐 : 뭐? 내가 무슨 실수를 했나요? (작은 소리로) 용서해 줘요. (연극투로) 난 너를 잡아먹을 생각이 없으니.

고양이 : 그래요. 나는 언젠가 반드시 죽겠지만, 내 말은 그게 꼭 지금 이 순간일 필요는 없다는 거예요. 어쩌면 내가 당신을 도와드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쥐 : (눈을 동그랗게 뜨며) 어떻게?

고양이 : (무대를 떠돌며 웅변조로 말한다. 그녀의 경로는 항상적인 삼각형의 형태를 그려 눈치가 빠른 관객이라면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어요. 아무도 읽지 않은 책은 존재하는가? 아무도 먹지 않은 고기는 존재하는가? 부엌에서 날마다 고기를 삶고 기름이 묻은 손으로 시를 쓰는 여자의 글은 존재하는가? 그 많은 여자들이 시를 썼다면 그 시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 영원히 찾아볼 수 없을 시들, 무너져내린 집과 함께 땅 밑으로 꺼져들어간 시들은 존재하는가? 카프카가 그의 소원대로 지하실에 쥐새끼처럼 처박혀 글만 썼다면, 그의 제도용 컴퍼스 같은 날카로운 펜끝에서 나온 글들이 그의 소원대로 모두 타버려 재가 되었다면, 그의 요제피네와 요제프 카는 존재하는가? 생각해볼 수 있죠. 위대한 작가이자 철학자인 보부아르는 독자와 작가, 독자의 실존과 작가의 실존의 긴밀한 상호작용이 아닌 문학은 문학이 아니라고 했죠. 그래서 카프카는 그의 악몽-글쓰기를 전부 태워버리려 했고 정말로 그 모든 것을 태워버린 여자 시인도 있겠죠. 하지만 그녀가 반드시 있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그녀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도 없으니까. 어두운 시계가 우리 앞에서 딸깍거리는군요. (망가진 시계장치를 만지작거리며)

쥐 : 이해할 수 없어.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불안스럽게 손톱을 물어뜯는다.)

고양이 : 가장 어두운 것은 가장 밝은 빛이다. 세계를 파괴하는 것은 구원이다. 최후의 심판이 가장 밝으리라는 것은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는 일이죠. 그날이 어둡다면, 끔찍하게 어둡다면 잔존하는 모든 것들이, 이탈하고 충돌하는 가련한 원자들이 구원도 슬픔도 없이 살아서 드러날 테고, 그들은 가장 위대한 빛이 아닌 서로의, 잔존하는 미미한 빛을 보게 될 테니. 심판의 날, 구원의 날에는 영원한 방랑자들조차 일시적인 것이 되고 모든 빛들은 가장 밝은 하나의 빛 속으로 녹아들어가게 될지니. 신은 하얀 빛의 양복을 입은 시험관이 되어 우리의 앞에 앉아 있을 겁니다. 우리는 정해져 있는 하나의 빛이라는 결말까지 다가가는 과정에 불과하죠. 그때까지 우리는 아직 우리를 집어삼키지 않은, 도래하지 않은 빛의 미래에 대고 묻는 거예요. 그때까지 우리는 무엇이든 지껄일 수 있고 무엇이든 물을 수 있어요.

시험관은 이렇게 말하죠. 이곳에서 무슨 말을 하든 상관 없습니다. 어차피 결과는 제게 달렸으니까요. 그 사이 어떤 대화를 나누든 그것은 당신과 내 자유라는 겁니다.

우리들은 두려움과 불안에 사로잡혀 벌벌 떨며 이렇게 묻죠. 결과가 무엇인데요?

시험관은 부드럽게 웃으며 말합니다. 알고 싶으시다면 말씀드리죠.

그러면 우리는 황급히 그를 제지하며 말하는 겁니다. 아뇨, 됐습니다. 듣고 싶지 않아요. 혹은 신은 우리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우리는 그에게 불경하거나 신실하거나 아름답거나 빌어먹을 기도를 올리는 겁니다. 혹은 그가 완전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혹은 그가 존재하는 것처럼-어느 쪽이라도 진실은 아니죠, 혹은 어느 쪽이든 한시적인 진실일 뿐이죠-침묵하는 겁니다. 신이여, 당신이 나를 구원할 거라면 그것이 어째서 지금 이 순간이 아닌 건가요? 지금 이 순간이 아니라면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것을 당신도 알고 있을 텐데요. 지금이 아니면 나는 죽을 것이고 지금이 아니면 그것은 내게 아무런 관련도 없다는 것을 당신은 잘 알 텐데요. 왜냐하면 당신은 모든 것을 알고 있으니까, 모든 것을 알고 있찌 않다면 당신은 없는 것이겠죠. 오, 천사들은 종종 그를 만난 적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날개를 떨며 몸서리치지만 결국 그의 성역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빛을 향해 달겨드는 날파리처럼. 그것은 항상적인 본능에 따른 몸짓입니다. 천사들은 그를 끊임없이 의심하지만 결국에는 반드시 빛을 따라 돌아가는 천상의 벌레와 같아요.

날개가 있느냐 없느냐, 그것만이 천사와 우리의 차이입니다. 우리에게는 날개가 없기 때문에 아무리 몸부림치고 빛을 노려봐도 빛을 향해 날아갈 수는 없죠. 그래서 우리는 아직 살아 있는 거예요. 우리에게 날개가 있었다면 우리는 더 이상 지상의 버러지가 아닌 천상의 버러지가 되었을 테죠. 천사들의 새장 문은 활짝 열려 있습니다. 그러나 새장으로부터 바깥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은 단 하나밖에 없죠. 그러므로 그것은 닫혀 있는 것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오직 어둠에서 빛으로, 빛에서 빛으로, 빛으로 향하는 길밖에는 없다는 거예요. 지상의 벌레들에게 식물적인 부동성의 현재밖에는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처럼 말이에요.

중요한 것은 우리를 존재하게 하는 일시적인 진실이 빛이 아닌 어둠이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가장 철저한 어둠입니다. 왜냐하면 바르작거리는 벌레들이 내는 빛은 불타오르는 별들이 내는 빛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미약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에 빠져 에로틱한 빛을 내뿜는 반딧불들의 빛보다도 우리의 빛은 더 미미합니다. 미미하지만 끈질기죠, 우리는 사랑도 섹스도 없이 살아 있으니 말입니다. 단지 살아 있는 것들의 빛, 존재를 의심하는 것들의 빛, 그럼에도 존재를 갈구하는 것들의 빛은 미칠 듯이 옅고 감미로운 한 줄기 연기와도 같습니다.

쥐 : 이제 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하지만 무서운 건 어쩔 수 없어. (눈물을 흘린다.) 여기서 가장 어두운 곳은 어디지?

고양이 : (침묵)

쥐의 어머니가 유령처럼 중얼거린다. 방 안은 사산한 아이들로 가득해. 온통 피투성이야. 이름도 미래도 없이 오직 훼손된 존재만으로 역겨운 피를 흘리는 아이들. 머리가 반토막난 아이 팔이 없는 아이 눈알이 삐져나온 아이 그 모든 아이들이 내 몸 속에서 사산된 아이들이야 나는 그 애들을 낳고 낳고 또 낳았지. 미칠 것 같아. 나는 너무 많이 낳았어. 존재하지도 않는 애들을. 사망 신고도 할 수 없는 애들을. 이렇게 많이 낳다니. 내가 정말 미친 건가? 하지만 낳는 걸 그만둘 수 없어. 아, 여보 거긴 밟으면 안 돼요. 세상에 발이 피투성이잖아. 그건 내가 낳은 아이의 창자야. 뭐라고? 아무것도 없다고? 그래, 그건 맞는 말이야. 여긴 아무것도 없지. 당신도 나도 사실은 없어. 이곳은 있는데 우리는 없어. 하지만 이 역겨운 냄새는? 내 아이들의 피 냄새, 시신 더미에서 피어오르는 미칠 듯한 열은? 그것은 여기 있지 않나? 뭐, 아무것도 없다고? 여보, 이곳의 소음은 특별한 고요에 불과하다는 말이야? 그런 말인가? 내가 지르는 비명은 파장이 다른 침묵이라고? 그 애를 불러와. 제발. 우린 그 애에게 잘해 줬지. 그 애는 가엾고 다정한 아이였어. 우리는 그 애에게 모든 달콤한 말들을 주었는데 그 애는 어떻게 우리에게. 그날, 당신도 그걸 봤지. 그 애가 우리 앞에서 그걸 뱉어냈잖아. 오, 아니야. 그날부터가 아니야. 아주 오래전부터 이 방에는 시신들이 쌓여 있었어. 내 몸 속에, 내가 사는 유일한 공간에, 이 시궁창에 내가 유산한 아이들이 쌓이고 쌓였다고. 이 아이들은 내가 당신 몰래 임신하고 당신이 보는 앞에서 임신하고 당신이 없는 곳에서 당신이 있는 곳에서 내가 있거나 없는 곳에서 아무도 없는 곳에서 임신한 쥐새끼들이야. 내 몸이 훼손되고 마음이 깨지는 것을 느끼면서도 나는 낳는 것을 그만둘 수 없었지. 여자는 미친 듯이 경련하며 중얼거린다. 그만둘 수 없었어. 신을 잉태했다고 믿었던 그 많은 여자들처럼 나는 미쳐버린 거야.

고양이 : 몽유병자들의 발 아래 부서지는 성탄절 과자 혹은 달걀들. 나는 부활절의 달걀이 깨지는 소리를 들었다. 내 몸 속에서 부패되어 가는 것을 보았고 우유에 섞인 독을 마시는 쥐를 보았다. 욕조의 밑바닥에 장미 잎사귀들이 쌓이듯이 푸르고 작은, 치명적인 알갱이들이 쌓였고 쥐는 구름처럼 무미건조한 얼굴로 그것을 삼켰다. 나는 쥐이므로 쥐처럼 죽을 것이다. 나는 쥐가 아니므로 쥐처럼 죽지는 않을 것이다. 혹은 나는 쥐가 아니므로, 쥐처럼 죽을 것이다. 아니, 아니다. 나는 쥐이므로 쥐처럼 죽지는 않을 것이다. 그 애가 사라진 뒤에도 나는 학교에 다녔다.(그 애가 정말 실종된 것은 맞을까? 아, 유령도 실종될 수 있다면.) 아이들은 가끔 나에게 끔찍하게 상냥했고 끔찍하게 무관심했다. 나는 개의 배역을 맡기 위해 아이들을 찾아갈 여력이 없었다. 나는 그것을 맡기 위해 노력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므로 나는 개조차 아니었다. 나는 공기 중을 떠도는 연약한 소음과도 같은 어떤 존재, 배역을 맡지 못한 맨얼굴, 혹은 얼굴 없는 머릿고기였다.

쥐를 연기하고 쥐를 죽이고 쥐를 잡아먹는 일을 나는 그만두지 못했다. 내 뱃속은 어린 쥐새끼들의 부패해가는 시신으로 들끓고 있다. 학교에서 나는 내가 만나지 못한 무수한 얼굴들을 멍하니 관찰했다. 깊고 집요한 시선은 금지되어 있었기에, 나는 시계를 보거나 사물함을 보거나 멍하니 앞을 바라보는 척하며 그들을 훔쳐보았다. 아이들이 교실을 옮겨 다니고 살가운 농담을 던지고 운동장에 나가 스트레칭을 하는 것을 나는 유령처럼 뒤따랐다. 그들은 더 이상 내게 배역을 제안하지 않았다.

배우1 : 안녕? 너 왜 맨날 혼자 다녀?

배우1이 고양이의 식탁 앞자리에 앉는다. 고양이는 함께 다니던 아이가 실종되었다고 말한다.

배우1 : 아, 그 애?

고양이는 허공을 떠도는 허파들의 어두운 움직임을 느낀다. 새벽의 검은 우유, 그것은 일시적이고 모호한 진실을 가지고 있다.

고양이 : 아무래도 내가 그 애를 잡아먹은 것 같아.

배우1 : 그래.. 너는 고양이니까.

배우1의 친구들이 배우1 주변에 모여든다. 뭐하냐? 누구랑 말해? 걔 누구야? 그들은 그들만이 아는 명사들로 이루어진 문장으로 대화한다.

배우1 : (친구들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그래, 그래. (웃으며 고양이에게) 친구들이 불러서.

고양이는 이것이 어떤 시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탄생과 구원, 혹은 파멸까지의 숙명이 정해져 있다면 시험의 결과는 이미 통보되어 있으므로 그 내용은 아무래도 좋은 것이다. 각자의 시험을 어떻게 치를지는 그 결과와 아무런 관련도 없다. 고양이는 정적 속에 말을 퍼붓는다.

고양이 : 나는 너를 오래 기다렸지만 오지 않았어. 학생 없는 시험지, 텅 빈 새장은 새를 찾으러 나설 수가 없으니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다만 기다리는 것뿐이지. 기다림은 기다림일 뿐, 그것을 더 잘 해내거나 못 해낼 수는 없어. 새나 늑대가 그들을 찾아올 때까지 그들은 다만 존재할 뿐이지, 존재의 내용은 사실 기다림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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