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11년 7월 15일
인간은 기원과 끝을 가진 존재이다. 존재에는 시작과 끝이 있다. 존재는 시작과 끝 사이의 시간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그 시간 속에는 시작도 끝도 없다. 여자는 어느 날 자신의 날개를 보았다.
비둘기 : 나는 느낀다. 그러므로 감각하는 존재인 나는 살아있다.
교실. 오빠5는 새장 속에 들어 있는 여동생, 혹은 이름 없는 비둘기를 자기 책상 위에 올려놓고 수업을 듣고 있다. 반 아이들이 비둘기를 흘긋거리거나 혹은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는다.
교사 : 감사 일기 발표를 하겠습니다. 13번 앞으로 나와.
오빠5 : (자리에서 일어나며 비둘기에게 속삭인다)너 얌전히 있어야 해 곧 돌아올 테니까.
비둘기 : 구구
오빠5 : 선생님. 누구에게 감사하면 되나요?
교사 : 숙제 안 해왔니?
오빠5 : 해왔어요. 정말이에요. 보세요. (노트를 펼쳐 교사의 눈앞에 들이밀며)
교사 : 정말 해왔군. 그런데 뭐가 문제야?
오빠5 : 감사하다는 대상어를 필요로 하는 동사잖아요. 그런데 대상어 자리에 뭘 놓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교사 : 마음대로 해.
오빠5 : 그래도 점수를 깎지 않을 거예요?
교사 : 그건 지금 대답할 수 없다.
오빠5 : 선생님 제발요. 제가 사범대나 교대에 들어가서 교사 역할을 맡으려면 여기서 점수를 깎이면 안 돼요. 다른 데서도 깎일 점수가 얼마나 많은데요..(말 끝을 흐리며)
관객 혹은 학생들 : (웃음을 터뜨린다.)
교사 : 지금 발표하지 않으면 태도 점수 0점이다.
오빠5 : 몇 점이 만점인데요?
교사 : 10점.
오빠5 : 저는 당신에게 감사합니다. 들을 수 있는 귀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름다움을 원할 수 있는 마음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살아갈 시간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말할 수 있는 목소리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무한한 토요일들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학생들 혹은 관객들이 킥킥거리며 웃는다.)
교사 : 됐어. 잘 했다. 이제 들어가.
오빠5 : 아직 안 끝났는데요.
교사 : 그래? 그럼 더 해.
오빠5 : 들을 수 있는 귀를, 그러나 들리지 않는 귀를 주셔서(말 끝을 흐린다) 아름다움을 원하는 마음을, 그러나 아름답지 않은 세계를 주셔서(말 끝을 흐린다) 살아갈 시간을 그러나 삶은 주지 않으셨지만(말 끝을 흐린다) 무한한 토요일들을 그러나 아무도 없는 토요일들을 주셔서 내가 없는 토요일들을 주셔서(말 끝을 흐린다)
교사 : 그래, 너는 같은 이유 때문에 너에게 모든 것을 준 그를 저주한다는 말이군.
오빠5 : 그래요.
비둘기 : 구구.
교사 : 들어가.
오빠5 : 어디로요? 선생님, (흐느낀다) 선생님, 선생님(주저앉는다) 제 자리가 없어졌어요.
교사 : 그게 무슨 말이야? 네 자리는 처음부터 없었어. (출석부를 펼쳐보인다)자, 여기서 네 이름을 찾아봐. 네 이름이 어디 있지?
오빠5: 제 이름이요? 이제와서 이름이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저는 중간고사를 전부 치렀고 연극제에도 참가했고 (관객들이 놀란 듯 웅성거린다 혹은 기계적으로 폭소한다 마치 한밤을 가로지르는 어떤 빗줄기처럼) 여기에 있는데 여기 (소리치며) 여기 말이에요. 선생님. 새벽의 검은 우유를 마시고 저는 여기 왔는데요. 오늘은 토요일이 아닌가요? 아니, 아니에요. 토요일에는 학교에 나올 필요가 없으니 토요일에는 교실도 발표도 선생님도 책상도 없으니 오늘은 토요일이 아닌 모든 날이겠군요 토요일에 제가 없다면 토요일이 아닌 모든 날이 제 자리가 아닌가요.
교사 : 너는 애써 인간의 말을 배웠지만 인간들의 무리 속에 네 자리는 없구나. (서글프게 오빠5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네가 조금 더 현명했다면 인간의 언어를 배우지 않았을 텐데. 하지만 네게 말을 가르쳐준 이는 인간이었고 너는 결국 하나의 모어밖에는 가질 수 없었던 거지. 외국어를 제일 처음 배운 이방인은 외국어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지.
오빠5 : 이름이..(잠시 침묵) 없어요 선생님 없어요. 이건 백지잖아요.
교사 : 백지가 아니야. 잘 보렴.
오빠5 : (출석부를 뚫어지게 바라본다) 종이가 갈라지고 있어요 글자들이 경련하고 있어요. 메슥거려요. 선생님. 어째서 언어는 저를 배우지 않나요? 어째서 언어는 저를 듣지 않고 저를 말하지 않고 저를 읽지 않나요?
교사 : 너는 처음부터 배울 수 없는 말을 배운 거야. 언어는 오직 그것을 응시하고 그것과 시선을 교환할 때만, 그것의 존재를 느끼고 네가 그것 안으로 들어가 너 자신을 바라볼 때만 너로서 들릴 수 있는 것이란다.
오빠5 : 글자들은 (헛구역질을 하며) 나를 보고 있지 않아요. 나는 그것들을 보려고 애쓰는데 그것들은 한 번도 나를 읽은 적이 없군요.
교사 : (손목시계를 보며) 너는 시간을 너무 많이 쓰고 있어. 이 교실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단다. 네가 사는 만큼 다른 아이들의 삶은 소진되는 거야.
오빠5 : 제가 살지 않는 만큼 선생님의 시간은 늘어나나요?
교사 : 꼭 그런 것은 아니지. (교탁 위에서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반복적이고 강박적인 소리를 내며) 네가 화석이 된 장미처럼 되기를 은밀하게 바란다는 것을 알고 있다. (관객들 혹은 학생들이 웃는다. 훼손된 마네킹처럼 나무 의자에 늘어진 채로. 혐오스럽게 텅 빈, 그러나 움직이는 가면들처럼 달각거리며 웃는다. 비둘기가 구구, 하고 소리를 낸다. 반 아이들과 교사가 순식간에 비둘기를 싸늘하게 바라보며 침묵한다.) 폐허에도 비둘기는 있구나 인간의 얼굴과 인간의 침묵으로 살아 있구나. (비둘기를 가리키며) 저건 네 꿈이니? 네가 떼어 놓은 가면이니? 화성에서 비밀스럽게 출렁이는 밤의 해변이니? (관객들이 자지러지게 웃는다.)
오빠5 : 저 새는 제 여동생이에요.
교사 : 그래.
오빠5 : 선생님. 아직 발표가 끝나지 않았는데요.
교사 : 그럼 더 말하세요.
오빠5 : 선생님. 어제 제 친구들이 화장실에서 제 입에 오줌을 쌌습니다.
교사 : 형식에 맞추어서 말하세요.
오빠5 : 어제 제 친구들이 화장실에서 제 입에 오줌을 싸서 당신에게 감사합니다.
교사 : 정말 형편없는 발표구나. 너는 사범대나 교대에 갈 수 없을 거다. 네가 인간의 언어를 더 숙지하고 있었다면 이렇게 말했겠지. 오줌과 죽음과 삶을 받아 마실 수 있는 입을 가질 수 있어서 당신에게 감사합니다. (학생들이 박수를 친다. 와아아 하는 어린아이들의 함성소리.)
오빠5 : 마시지는 않았는데요.
교사 : 여기는 진실의 전당이 아니야. 신은 과장과 비약을 좋아하신단다.
오빠5 : 그 말이 정말인가요?
교사 : 무슨 말 말이니?
오빠5 : 제가 죽는 만큼 제가 살아 있다는 말이요.
교사 :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데?
오빠5 : 저는 아직 충분히 죽지 않은 것 같아요. 제 두 번째 형이 이런 소설을 썼는데 들어보시겠어요?
교사 : 아니.
오빠5 : (기뻐하며) 당신이 대답해줄 줄 몰랐어요. 마치 처음부터 나를 듣고 있었던 것처럼. 그건 도살장에 갇힌 어린 돼지의 이야기였어요. 돼지는 그곳이 끔찍한 자리라는 사실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요. 그녀의 어머니와 아버지, 형제들이 그곳에서 죽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녀는 도살자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어요. 왜냐하면 마지막까지 그녀가 간직한 돼지의 얼굴은 그밖에 없었으니까. 같은 일이 처형장과 감옥, 성당과 천국, 가족의 게토에서도 일어났죠. 살인자가 가질 수 있었던 유일한 얼굴은 희생자의 얼굴이고 희생자가 마주할 수 있었던 유일한 얼굴은 살인자의 얼굴이라는 짧은 희곡도 있었어요. 선생님. 여자가 눈을 떴을 때 여자는 한 쌍의 날개를 보았어요. 여자는 언제부터 그녀가 새였는지 기억할 수 없었어요. 어쩌면 그녀가 그녀의 날개를 발견하기 훨씬 이전부터 그녀는 새였을지도 모르죠. 그녀의 새장은 다른 새장들과 분리되어 있었어요. 새장은 검은 천으로 가려져 있어서 바깥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다른 새들의 노래나 음울한 침묵, 단말마의 비명은 선명하게 들려왔죠. 그래서 여자는 바깥의 누군가가 다른 새들을 한 마리씩 죽이고 있음을 알 수 있었어요. 새의 뼈-아마 목뼈였겠죠-가 부러지는 소리, 그 이전의 날카로운 비명을 들으며 여자는 그녀의 검은 천막 위에 그려진 상상의 이미지를 통해 한 마리의 새가 혐오스럽게 망가지는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었어요. 한 마리의 새가 죽을 때마다 새장과 새장의 세계로 격리된 새들은 애도하듯 길게 울부짖었어요. 물론 오직 여자의 새장만이 검은 천으로 세계와 분리되었을 수도 있죠. 그러나 여자는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건 너무 비참한 일이었으므로, 여자는 세계와 세계를 모두 감싸고 있는 일정한 검음과 보편적인 폐쇄성을 생각했죠. 언젠가부터는 비명소리가 잘 들리지 않게 되었어요. 새들은 끔찍하게 침묵했고 여자는 더 이상 다른 새들이 그녀와 함께 살아 있음을 믿을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죠. 그러나 다른 소리가 잘 들리지 않을수록, 다른 존재들을 확인할 수 없게 될수록 여자는 그녀 자신의 존재를 미칠 듯이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었어요. 그녀 자신의 존재는 바깥의 불확실성에 비례해 더욱 불안스럽게 커져갔죠. 남자가 여자의 검은 천을 걷었을 때, 바깥에는 단 하나의 새장도 없었어요. 여자는 긴 악몽의 철창에 눈을 대고 바깥을 보았어요. 남자는 웃었거나 울었고 여자는 남자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어요. 왜냐하면 남자를 사랑할 때 여자는 미칠 듯 비등하는 그녀 자신의 존재를 잊을 수 있었기 때문이에요. (학생들의 무미건조한 얼굴 위에서 백색의 구더기 같은 근육이 경련한다. 햇빛처럼, 혹은 춤처럼.)
비둘기 : (유리병 속에 갇힌 장미가 계속해서 자라나고 있다. 목이 부러질 때까지도 장미는 자라나는 것을 멈출 수 없어. 더는 기어서도 빠져나갈 수 없게 되어버릴 때까지도 장미는 계속해서 자라난다. 그 속에서 보이지 않는 것들이 출현하기를 나는 얼마나 바랐던가. 유리병 안쪽에 이슬처럼 바깥이, 세계가 맺혀들기를 나는 얼마나 간절히 바랐던가. 고래의 뱃속에서 요나는 그가 아는 유일한 바깥을 향해 빈다. 그가 기억하는 유일한 세계의 이름을 외치며 호소한다. 그러나 요나는 점차 자라난다. 고래의 창자를 찢고 고래를 파괴할 때까지 자라난다. 요나는 짐승의 밤 같은 뱃속에서 혐오스럽게 움직이는 몇 개의 갈라진 중심들을 본다. 그곳에는 보이지 않는 유령들이 있다. 몇 개의 흰 뼛조각과 삶의 상흔이 있다. 요나는 자라나는 장미를 향해 말을 건다. 암흑 속의 장미, 넘쳐흐르는 열을 참지 못하고 바깥을 향해 돋아나며 찢어지고 있는 장미다. 보이지 않는 삶의 주체들, 어둠의 주체들, 죽음의 주체들이 그곳에서 자라나고 있는 것을 요나는 본다. 그들은 암흑 속에서 불온한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그들의 시간은 석양 밑의 그림자처럼 길어지고 그들의 언어를 압도할 정도로 자라난다. 오, 죽음은 생존이며 하나의 지평이니. 요나는 그가 아는 유일한 세계의 이름을 되뇌며 기도한다. 그러나 그의 이름은 그를 지칭하는 말이 아니다. 그의 이름은 무한히 꿈틀거리는, 불온하거나 아름답거나 끔찍하거나 사랑스럽거나 어둠거나 빛나거나 보이지 않는 모든 세계를 세계 속에서 투명하게 자라나는 모든 몸들을 부르는 주문과도 같다. 신이 무덤의 배를 찢고 마리아의 자궁을 찢고 세계의 창자를 찢고 태어나는 동안 요나 역시 고래의 창자를 찢고 태어난다. 그와 함께 태어난 것들은 세계만큼이나 많았다. 그들은 도둑, 창녀, 살인자, 희생자, 히키코모리, 쥐, 파리, 바퀴벌레, 오물, 유령, 실종자, 불구자, 죽음, 혹은 죽음을 닮은 것들, 혹은 죽음보다도 삶을 닮은 것들이었다.)
오빠5 : 아, 선생님. 천국 같은 날이에요. 빌어먹을 개들의, 새들의, 백조들의 천국 같은 날. 이런 날이 영원히 계속되겠죠? 난 썩어버린 오렌지처럼 행복해요.
교사 : 네가 행복한 건 네가 잔인하기 때문이야.
오빠5 : 그럴 수도 있죠. 적어도 내 여동생은 행복하다는 말은 하고 있지 않으니. (사이. 침묵) 천국 같은 날이에요. 선생님. 여기는 하얀 몸이 있고, 어쩌면 하얀 몸밖에 없죠. 사이 정말 천국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지옥 같은. 지옥 같은 빛, 지옥 같은 천국, 지옥 같은 태양.
교사 : 사이? 지금 사이라고 말했니? (관객들이 웃는다.)
오빠5 : 네. 그리고 선생님, 그 전엔 제가 뭐라고 말했는지 알아요?
교사 : 지옥 같은 빛, 지옥 같은 천국, 지옥 같은 태양.
오빠5 : 그거 말고요.
교사 : 그거 말고? (허공 혹은 프롬프터를 뚫어지게 노려보며) 대체 뭘?
오빠5 : 내 비명소리 못 들었어요?
교사 : (침묵) 네 여동생을 데리고 나와라.
오빠5 : 그럴 수는 없어요.
교사 : 네 여동생을 사랑하지 않니?
오빠5 : (멍하게) 아니요.
교사 : 사랑하지 않는다고?
오빠5 : (멍하게, 초점 없는 눈으로) 네, 아니요.
교사 : 그래. 마음대로 해. 너희가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어. 내가 없을 때 너희가, (말을 더듬는다) 너희가 연기할 교사가 너희 중에 있다는 것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시간 소리 정적 세계 이미지 인간 나를 원하지도 나를 요구하지도 않는 그 모든 곳에 내가 있다는 건 정말 끔찍한 일이지. 정말 치사하고 빌어먹을 일이야 제발 들어달라고 존재하게 해 달라고 애원하는 일 말이야
오빠5 : 선생님, (부드럽게) 다른 애들은 다 갔나요?
교사 : (멍하게) 어디로?
오빠5 : 천국으로. 지옥처럼 밝은 빛으로 침묵하는 천국으로.
교사 : 이제 자리에 가서 앉아라. (교탁 주위를 초조하게 서성거리다가) 시험지를 읽어봤니?
오빠5 : 네.
교사 : 문제는 풀었어?
오빠5 : 네.
교사 : 어땠어? (불안스럽게) 어땠냐고.
오빠5 : 어렵지도 쉽지도 않았어요. 제가 글을 읽지 못한다는 걸 알고 계시잖아요.
교사 : 뭐? 그건 터무니없는 거짓말이야. 네가 네 글을 소리내서 읽은 게 방금 전 일인데.
오빠5 : 가장 어지럽고 비참한 순간에, 저는 무엇인가를 읽어요. 하지만 이렇게 앉아 있으면, 제가 역겹고 우울하다는 사실을 깨닫지 않는 순간에는 글을 도저히 읽을 수가 없어요.
교사 : 단 한 글자도?
오빠5 : 단 한 글자도. 그것은 세계와의 연결을 잃은 추상적인 문양들에 불과하죠.
교사 : 그래. 그래. 내가 그 시험지에 무슨 말을 썼는지 결국 넌 읽지 못했다는 말이지. (거친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그런데도 너는 그걸 읽었다고 말했어. 그렇지?
오빠5 : 그렇죠.
교사 : 넌 거짓말을 했어.
오빠5 : 그렇지 않아요. 저는 시험지를 읽었지만 조금도 읽지 못했을 뿐이죠. 선생님이 여기 존재하지만 조금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요.
교사 : 내가 (턱 근육이 마비된 것처럼 어눌하게 말을 늘이며) 여기에-존재하지-않지만-너무나-존재하는-것처럼
오빠5 : (오른손을 번쩍 들어올리며) 선생님
교사 : 그래.
오빠5 : 여동생 밥 줄 시간인데요.
교사 : 그래. 주렴.
오빠5 : 줄 것이 없어요.
교사 : 그럼 주지 마.
오빠5 : 밥을 주지 않으면 여동생은 죽어버릴 거예요. 몇 시간만 모유를 빨지 못해도 곧장 죽어버리는 사람 아이처럼 말이에요.
교사 : 다른 애들은 어디로 갔지? 아직 수업이 끝나지 않았는데.
오빠5 : 수업은 한참 전에 끝났어요. 선생님. 선생님과 제가 끝나지 않았던 시간 사이에 수업은 이미 끝나버렸어요. 우리 외에는 모두가 그걸 알고 있었죠.
교사 : 그럼 모두 집으로 갔니?
오빠5 : 그래요. 다들 천국으로 떠났죠. 창백한, 마지막 먼지를 머리 위에 눈처럼 얹은 채 그곳으로 떠났어요. (사이) 새장 속에 갇혀 있지만 않았다면 내 여동생도 진작 그곳으로 갔겠죠. 여동생은 항상 천사처럼 희고 천국처럼 끔찍했으니까. (긴 침묵.) 선생님, 정말 못 들었어요?
교사 : 네 비명소리 말이냐?
오빠5 : 그리고 선생님 비명소리 말이에요.
교사 : 너는 들었어?
오빠5 : 들었죠.
비둘기 : (칼날처럼 고통스러운 정적. 나는 유리병 속에서 사막을 향해 자라나고 있다. 마치 영원처럼 오래 지속되는 마지막 시선. 그것은 텅 빈 응시이다. 그것은 칼날로 가득찬 정적이다. 백조의 마지막 노래가 얼마나 빌어먹게 오래 지속되는지 백조를 살지 않는 이들은 모른다. 중력이 나를 오래된 보물처럼 잊어버리고 나를 포기한다면 난 가장 먼 곳에 있는 사막으로 날아갈 거야. 가장 연약하고 창백한 양산도 없이, 그곳에서 나는 서서히 타들어갈 것이다. 누군가 나를 들어준다면. 누군가 나를 발견한다면. 그렇다면 나는 평생 이 저주 속에 살아도 된다. 그런데 이것이 저주였던가? 어쩌면 나는 처음부터 비둘기로 태어났고 어느 순간 그것을 깨닫게 된 것뿐인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어머니는 시체로 태어났고 어느 순간 그녀는 땅 속에서 그녀의 죽음을 자각하게 된 것뿐인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이제 더 이상 흐느끼거나 물을 달라고 애원하거나 사랑한다고 속삭이지 않는 것이다. 유령들은 죽음을 깨닫지 못한 죽음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머릿속에서 심장이 박동하고 있는 것 같군. 모든 사물이 모든 생이 모든 고통이 모든 관념이 시체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면 악취를 더 이상 역겨워하지 않게 될까. 배가 고파. 오빠, 너무 배가 고파. 오늘 아침 나는 새벽의 검은 우유를 마셨고, 점심에도 검은 우유를, 저녁에도 그것을 마시게 되겠지. 나는 마치 기도를 하듯이 그것을 마신다. 언젠가 내가 알을 낳게 된다면 그것은 새벽처럼 검을 것이다.)
오빠5 : 여동생이 뭐라고 말하는 것 같아요.
교사 : 난 못 들었는데. 넌 어떻게 알았냐?
오빠5 : 눈을 보면 알 수 있죠.
교사 : 눈을 감고 있잖아.
오빠5 : 그럼 눈을 뜨게 만들면 되잖아요. (새장 속에 손가락을 집어넣어 새의 눈꺼풀을 벌리며) 봐요. (울먹이며) 여동생의 눈이 내 눈을 보고 있어요 여동생의 구멍이 내 구멍을 보고 있어요. 머릿속에서 심장이 한 번 박동할 때마다 세계가 찢어진다는군요. 한 번의 박동과 한 번의 찢김. 그것이 시체나 죽음이 아니라서 다행이네요.
교사 : 그럴 때는 신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렴. 기도를 하란 말이야. 아침에 3분, 점심에 2분, 저녁에는 1분, 식전에는 1분 30초를 더 하고 식후에는 세 마디를 더 기도하렴 식후와 새벽에는 그날 했거나 하게 될 어떤 기도보다도 가장 긴 기도를 올려야 한다.
오빠5 : (어린아이의 목소리로 웃으며) 처방전 같군요. 아침에는 1/2 스푼, 점심에는 1/3스푼, 저녁에는.. (사이. 고심하며) 어린아이와 성인의 기도는 다른가요?
교사 : 그래. 어린아이는 성인보다 덜 기도해도 천국에 갈 수 있단다.
오빠5 : 선생님. 이건 비밀인데요. (낮은 목소리로) 나는 지나치게 많이 기도했어요. 너무 오래 기도해서 신은 나를 더 이상 듣지 않게 되어버렸죠.
교사 : 그럴 리 없다. 신은 모두를 듣고 모두를 용서하나니. 심지어 그를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그의 피와 살을 물어뜯은 짐승들마저도 용서하셨다.
오빠5 : 신은 더 이상 내게 대답하지 않아요.
교사 : 넌 마치 신이 네 뒷마당에 있는 것처럼 말하는구나.
비둘기 : 구구.
오빠5 : (화들짝 놀라며) 어떻게 아셨어요? 우리 집 뒷마당에 신이 묻혀 있어요. 형들과 내가, 그리고 엄마가 함께 그녀를 묻었죠.
교사 : 왜 나를 초대하지 않았지?
오빠5 : (엄숙하게) 선생님은 거기 없었으니까요.
교사 : 그래.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그곳들에 나는 없었지. (미소가 사라진다.) 그 모든 곳들에 나는 없었어.
오빠5 : 고래의 창자에 한 송이 장미가 피어 있으리라 믿는 것처럼, 아직 죽지 않은 한 마리 나비가 내 두개골 속에 남아 있으리라 믿는 것처럼, 우리는 아직 인간의 얼굴을 믿고 있어요. 선생님께 입을 맞춰도 될까요?
교사 : 네 비둘기가 내 눈알을 파먹고 나면, 그 빈 자리에 입을 맞춰라.
관객들 : (폭소하며 박수를 친다.)
오빠5 : 내 두개골은 흴까요? 내 여동생의 깃털이 그런 것처럼 흴까요?
교사 : 흴 거다. 피와 고기로 퉁퉁하게 살오른 파리의 알처럼, 까마귀의 자궁처럼, 지상과 하늘에서 꿈틀거리는 구더기처럼 흴 거다.
오빠5 : 다른 애들은 우리를 두고 갔어요. 난 한 번도 애들이랑 어울려 놀아본 적이 없죠. 꼭 심리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에요. 물리적인 원을 그리며 서 있는 애들은 점차 나를 바깥으로 몰아내면서 서로를 빙 둘러쌌죠. 나는 원의 테두리 바깥에서 멍하니 서 있었어요. 난 다른 애들이 버린 가면 조각들을, 찢긴 편지들을 붙여서 내 가면을 만들려고 했는데, (침묵) 결국 아무것도 만들지 못했죠. 나는 훼손된 마네킹조차 만들 수 없었어요. (긴 사이) 폐허에도 비둘기가 있다는 말이 정말인가요?
교사 : 다른 애들은 어디로 갔지? 천국으로? 빛으로? 혹은 땅 밑으로?
오빠5 : 모두 같은 말이군요. 천국은 여기가 아닌 모든 다른 곳이니까. (사이) 징그럽게 녹아내리는 가면을 쓰고 숨을 쉰 건 내가 그 애들을 원하기 때문이었을까요?
교사 : 사랑하는 모든 이를 죽인 신을 기다리며 성당에서 기도하는 신부처럼, 살인자의 얼굴을 절박하게 응시하는 희생자처럼, 희생자의 얼굴 가죽을 자기 두개골 위에 뒤집어쓰는 살인자처럼, 수면의 거울을 멍하니 내려다보는 개처럼, 사형 집행인이 찾아오기만을 기다리는 사형수처럼.
오빠5 : 만나지 않기 때문에 나는 가장 끔찍하게 만나고 있어요. 언어의 부정은 가장 강력한 언어예요. (눈꺼풀이 천천히 열리고 닫힌다. 그리고 다시 열린다.) 제가 방금 뭐라고 했죠?
교사 : 비명을 지르더구나.
오빠5 : 눈이 아파요. (눈물을 흘린다) 너무 아파요.
교사 : 빛들이, 모든 불균질한 빛들이 네 눈꺼풀 속에서 들끓고 있는 거야.
오빠5 : 아파요. (비명을 지르고 애원하다가 곧 체념한 듯) 조금 있으면 나아질까요?
교사 : (무미건조하게) 아니.
오빠5 : (춤을 추듯 온몸을 뒤틀며 경련한다. 독약을 먹은 비둘기처럼, 의미없음으로 충만한 아이들의 놀이처럼. 갑작스럽게 평온한 목소리로) 내 관에 다른 사람이 들어가 있으면 어쩌죠? 내 관 속에 실종자가, 유령이, 죽은 새가 들어가 있으면 어쩌죠? 아무도, 심지어 나조차도 그걸 발견하지 못하면 어쩌죠? 내가 죽은 걸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면 어떡하죠? 내가 죽었다는 걸 어떻게 증명할 수 있죠?
교사 : 네 머리통 속에서 심장을 꺼내 보여 줘.
오빠5 : 내 심장이 유령이라면? 내 심장이 이미 오래 전에 실종되어서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다면? 내가 그들 눈 앞에 들이밀어도 아무도 보지 못한다면?
교사 : 잠깐, 네 여동생. 그 애도 집에 돌아갔냐?
오빠5 : 내 여동생. 여동생. 우리는 함께 뒷마당에서 보물을 찾았어요. 아니, 우리는 함께 뒷마당에서 보물들을 묻었어요. 하나의 보물이 다른 보물을 깨물고 하나의 보물이 다른 보물을 가지는 동안 우리는 그것들을 모두 깊고 어두운 흙 속에 묻고 있었어요.
(수업 종 치는 소리)
교사 : 이제 시험 시간인데. 난 시험지를 서른세 장 준비했어. 시험지는 반드시 한 사람에게 한 장씩 주어야 하지. 그러려면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는지 계산할 수 있겠니?
오빠5 : 글쎄요. 그것은 언제나 지속되는 끝만큼의 시간이겠죠.
교사 : (서서히 눈꺼풀을 벌리면서, 명랑한 어투로) 여기서 기다리면 곧 애들이 돌아올 거다.
오빠5 :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죠. (주변을 뒤적거리다가) 아, 여동생은 여기 있어요. 선생님. 보물을 삼킨 채로 이곳에 남아 있죠.
교사 : 그 애가 마지막 루비를 삼켰나 보군.
오빠5 : 아니에요. 마지막 루비, 그런 건 어디에도 없어요. 여기 없다면 다른 곳에 있겠지만 다른 곳은 영원히 불가능하므로, 그건 우리에게 있어 없는 것이나 다름없죠.
교사 : 이제 얌전히 자리에 앉아. (침묵한다. 엄숙하게) 조용히 하렴. 이 모든 공간을 차지했던 아이들이 이전의 얼굴을 들고 돌아오거나 신입생들이 입학할 때까지.
오빠5 : (무시하며) 선생님. 저는 하루에 대여섯 번 꿈을 꿔요. 꿈 속에서는 다른 몸과 다른 얼굴과 다른 목소리를 가진 시인들이 자기 시를 낭독하죠. 나는 그걸 들을 때마다 죽어가는 느낌이에요. 예컨대, 오, 방금 어떤 여자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충혈된 두뇌에 매달린 하얗게 부수는 턱뼈. 언어가 아는 모든 것을, 언어가 모르는 모든 것을, 하얗게 부수는. 감은 눈꺼풀 속의 흰 밤을 훼손하는 뼛조각들. 시체들의 소나타가 우리의 턱뼈 속에서 박동하고 있다. 나는 말 잘 듣는 어린아이처럼 의사의 말을 들었지. 아침에는 3mg의 절망 점심에는 9mg의 절망 저녁에는 11mg의 절망. 그런데 내가 정말 그의 말을 들었던가? 그녀는 그 말을 하면서 목각인형처럼 턱뼈를 딱딱거리며 부딪혀요. 그녀가 시를 읊는 동안 나는 그녀의 잘린 날개를 부드럽게 어루만지고 있어요. 마치 그녀의 살아 있는 육체를 애무하듯.
교사 : 사춘기 무렵에는 그런 꿈을 꾸는 법이지.
오빠5 : 해변으로 부서져오는 파도처럼 시가 꿈의 경계에 가까워질 무렵에는 시인들의 목소리가 절망적으로 연약해져요. 그녀는 사라져가는, 혹은 이미 사라진 목소리로 악착같이 헐떡여요. 최후에는 오직 숨소리뿐이죠. 나는 미친 듯이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나의 숨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깨어나요.
교사 : 잠이 아니라 꿈이겠지. 그 둘은 전혀 다르단다.
오빠5 : 천국 같은 날이에요. 선생님. 이곳이 천국이라면 천국으로 가던 다른 아이들은 먼 길을 돌아 이곳으로 돌아오겠죠.
교사 : (부드럽게 미소 짓는다. 미소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가면을 벗었다 쓰듯.)
오빠5 : 그녀는 이렇게도 말했어요. 화성의 바다에는 유령 물고기들과 유령 새들과 유령 어부들이 있다. 그들은 살아 있으나 존재하지 않으므로, 오, 그들은 존재 없이 살아 있으므로, 지구의 우주선들은 그들을 발견하지 못하고 지상으로 회귀한다. (새처럼 높은 목소리로) 선생님, 내게 말을 가르쳐준 건 꿈이었던가요? 아니면 꿈 속의 시인들이었던가요?
비둘기 : (내가 너였다면, 아니, 내가 나였다면 죄 없는 혹등고래의 배를 찢고 끔찍한 바깥으로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바깥은 검은 물이고 그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천천히, 혹은 빠르게 익사하는 일밖에는 없으니. 그러나 나는 자라나는 일을 막을 수 없고 자라는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죽음과 어둠과 바닷물에 대한 질문들뿐. 존재도 탈존도 질문들이므로. 아파트 창문 밖으로 웨딩 드레스를 입은 마네킹들을 던져버리는 남자들. 그들은 젖은 새의 눈으로 밤의 하늘을 바라본다. 마치 그와 하늘 사이에 유리창이 가로놓여 있지 않은 것처럼. 마네킹은 훼손되었고 부서졌고 죽어 있으나 여전히 하얗고 아름다운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다. 몇 마리의 개미들이 그녀들의 목덜미 위에서 알을 낳는다. 마치 그녀들이 아직 살아 있는 것처럼. 내가 생명의 얇은 표피를 찢어내고 죽음의 정적으로 나가면 나는 그녀들처럼 될까? 이름 없는 강의 심연에 가라앉은 무수한 벌거벗은 시체들. 꽃과 나무의 시체들이 즐비한 산 위에 시리도록 푸른 하늘이 있다. 그것은 곧 붉어질 것이고 곧 다시 푸른 빛이 될 것이다. 무표정과 미소의 평면 교차점을 보라. 그 두 개의 평면은 알려지지 않은 섬에서 만나고 있다. 섬 위에는 푸른 하늘이 붉어지고 푸르러지기를 반복한다. 마치 섬의 흰 빛과는 무관한 것처럼 그것은 변하고 다시 변하고 결국 변하지 않는다. 나는 끔찍하게 수다스럽고 또 끔찍하게 조용하다. 침묵의 자궁을 찢고 나온 곳에는 침묵이 있다. 내가 내 이빨로 침묵을 짓이기고 물어뜯는 사이 무한히 비좁은 어떤 나체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오빠5 : 선생님. 다른 애들은 그림자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어요. 난 여자애의 속옷 냄새를 맡듯이 그 그림자를 뒤집어쓰고 숨을 들이쉬며 수음을 할 생각이 없었는데.
교사 : 시험지가 남았어. 너무 많이. 이걸 다 어떻게 하면 좋지? 너희는 정말 점수를 받지 않아도 좋은 거냐?
오빠5 : 아니요. 선생님. 저는 점수들을 모으고 있어요. 많으면 많을수록 좋죠.
교사 : (힘 없이) 난 지쳤어. 다른 애들이 돌아오고 나면 그때 이야기를 계속하자.
오빠5 : 그래요. (새장을 손가락으로 튕기며 장난을 친다.) 아냐, 사랑스러운 아냐, 너는 지금 그 안에 갇혀 있어. 하지만 철창을 통해 바깥을 볼 수는 있겠지. 철창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다만 네가 그 자리에 네 선택으로 가만히 앉아 있을 뿐이라고 상상할 수도 있을 거야. 그곳은 네 몸집에 비해 그리 좁지도 넓지도 않은 곳이니까. 네가 앉은뱅이였다면 차지했을 공간, 네가 잘려나간 채 살아 있는 머리통이었다면 차지했을 공간, 네가 한 송이 장미나 가시나무였다면 차지했을 바로 그 공간이지. 불쌍한 아냐. 넌 더 이상 우리의 여주인이 아니야. (잠시 생각하더니) 처음부터 저주 같은 건 없었어. 너도 알고 있었지? 과거의 직선과 미래의 직선의 충돌을 기원으로 삼는 비밀스러운 기하학적 결합이 있었을 뿐이지. (말 끝을 늘이며) 다음-대각선의-길이를-구하시오. 혹은 다음-대각선의-기원을-구하시오. 혹은 다음-대각선의-미래를-구하시오.
교사 : (놀라며) 정확하진 않지만 비슷하구나. 너 시험지를 읽어봤니?
오빠5 : (짜증스럽게) 그렇다고 대답했잖아요. 내가 읽지 않은 것을 나는 모두 읽어봤어요.
교사 : (진지한 목소리로) 대단한데. 난 내가 읽지 않은 것은 단 한 글자도 읽지 않았단다.
오빠5 : (연민하는 어투로) 세상에. 선생님. (침묵. 주저하며)단 한 글자도?
교사 : (침울하게) 그래.
오빠5 : 제가 가르쳐 드릴까요?
교사 : (비굴하게) 그래 주겠니?
오빠5 : 그래. 책상 앞에 똑바로 앉아 있으면 가르쳐 주지.
교사 : (고개를 숙이며) 감사합니다. (교단에서 내려와 학생 자리에 앉는다.)
오빠5 : (교단으로 올라가 선다. 초점 없는 눈으로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다가) 사실 나는 가르칠 게 없어. 내 관에는 천사들의 날개에서 뜯어낸 깃털을 채워 만든 흰 베개가 들어 있는데 그곳에서 나는 천사의 그림자와 섹스했지. 그 후로 나는 내가 천사의 아이를 낳게 되기를 오래도록 기다렸어. 그런데 어느 날 (어눌하고 느린 말투로)천사도 베개도 관도 없었어. 나는 제발 내 관만이라도 돌려달라고 천사에게 기도했는데 그 자리에는 천사도 기도도 없었어. 그래서 지금 나는 마치 한 번도 죽지 않은 것처럼, 죽음을 기도하고 기다리고 있지 않는 것처럼 관도 없이 새벽을 보내고 있지.
교사 : (수줍게) 제 관은 수족관의 어항처럼 아름다워요. 그 속에는 몇 마리 물-고기(water-meat)들이 헤엄치고 있죠. 언젠가 선생님을 제 관에 초대해도 괜찮을까요?
오빠5 : (밝은 목소리로) 그래! (침묵. 잠시 생각하더니 체념한 어투로) 안돼. 그럴 수 없어. 내 여동생은 물 속에서 익사하고 말 거야.
교사 : 그럼 여동생을 두고 와요.
오빠5 : 안돼. 난 여동생을 돌보는 역할로 고용되었으니까.
교사 : 누구에게?
오빠5 : 여동생에게. 혹은 신에게. 혹은 내가 맡은 역할에게.
교사 : 그래도 괜찮아요. 여동생을 데리고 함께 와요.
오빠5 : 그럼 여동생은 물에 빠져 죽어버릴 거야.
교사 : 상관없어요. 어차피 그곳은 결국 관인걸요.
오빠5 : (놀란 듯) 그렇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