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11년 5월 7일
그 애의 집에 갔다. 우리는 함께 TV를 보았다. 그 애의 엄마는 주방 식탁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시를 쓰고 있는 거라고 그 애가 말했다.
우리는 29번 채널을 보았다. 세 마리 돼지가 늑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른 장면은 없는 거냐고 나는 투덜거렸다.
다른 장면도 있어. 그 애가 말했다. 저녁 9시가 지나면 옷장에서 외과의가 돼지들의 수술을 해 준다는 것이었다.
돼지들에게 병이 있어?
그 애는 웃었다. 그래. 돼지들은 병을 보관해두고 있어. 언제든지 병을 꺼낼 수 있지.
네게도 병이 있느냐고 나는 물었다.
그 애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 애의 엄마는 주방 식탁에서 웅크리고 앉은 채 시를 쓰고 있었다. 그 애의 엄마는 우리 또래의 소녀처럼 어려보이기도 했고 때로 아주 늙은 여자처럼 보이기도 했다. 우리는 어린아이들처럼 돼지들에게 이름을 붙여주며 놀았다. 은하, 별, 토성, 목성, 하늘, 바다. 돼지들과는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었다. 우리는 곧 이름들을 잊어버렸다.
우리가 무엇을 하고 놀아야 할지 알려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우리가 무엇을 꿈꾸며 잠들어야 할지 알려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우리를 데리러 오는 사람도 없었다. 그 애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요즘도 시를 쓰냐고 그 애가 물었다.
돼지들의 등은 부드러운 해변처럼 흰색이었다.
나에 대해 시를 써 줄 수 있어?
난 대답하지 않았다.
한참이 지난 뒤에 나는 말했다. 너에 대해서 시를 쓰고 싶지 않아. 난 주변 사람들에 대해 시를 써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 애는 언젠가 꼭 그 애에 대한 시를 써달라고 부탁했다.
너희 엄마는?
그 애의 엄마는 우리 대화를 전부 듣고 있었을 것이다. 비좁은 주방과 거실의 TV는 몇 발자국이면 닿을 거리였으니. 우리 엄마가 쓰는 시를, 그 애는 말했다. 난 한 번도 읽어본 적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