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11년 5월 3일 – 7월 15일

i11년 5월 3일

수인들은 연극 연습에 나를 부르지 않았다. 수업이 끝나고 나는 그 애와 함께 교실에 남아 노파가 입을 푸른 비단 드레스를 그렸다. 각자 한 장의 그리고 다른 한 장 한 장 한 장의 종이에 정성껏 색연필을 문질러 칠하고 칠하고 또 칠해서 그것을 이어 붙일 작정이었다.

이런 식으로 풍선들을 불어서 그걸 붙잡고 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물었다.

그 애는 자기 엄마가 그런 내용의 시를 쓴 적이 있다고 말했다. 여자는 매일 풍선을 불었어. 하루에 다섯 개씩, 머리가 너무 아프거나 어지러울 때는 그렇게 많이 불 수 없었지만 어쨌든 매일 조금씩은 반드시 불었어. 다만 반 개, 1/3개 라도 말이야. 풍선들은 여자가 살아가는 날만큼, 점점 쌓여갔어. 여자의 집은 여자가 불어넣은 풍선들로 가득찼어. 날이 갈수록 여자의 현기증도 더 심해갔지. 그래도 여자가 불어서 묶어 놓은 여자의 날숨은 언제나 여자의 근처에 있었어. 붉고 파랗고 노랗고 분홍인, 원색의 반짝이는 용기들에 가득 담긴 숨. 그렇게 수천 개의 풍선들이 집안을 가득 채웠을 때 여자는 그 풍선의 줄기들을 전부 손목에 엮어 묶고 창문으로 뛰어내렸어. 놀랍게도 여자는 날아올랐어. 여자는 하늘을 향해 비상했고 사랑스럽게 부풀어오른 여자의 숨들이 여자의 비행을 지탱했지. 여자는 그렇게 두 시간 가량을 날았어. 높이 올라갈수록 여자는 짙은 어지럼증을 느꼈지만 여자는 구역질을 해대면서도 손목을 높이 쳐든 채로 하늘 위에 매달려 있었어. 추락하는 순간에도 여자는 속엣말을 털어놓기 위해 발표하려 꿈틀거리는 어린아이처럼 한 손을 높이 치켜들고 있었어. 여자가 떨어졌고 여자가 흘렀어.

k11년 4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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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문제를 만들고 있다. 손목 아래에서 짓뭉개진 몇 마리의 벌레들이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쉬이 삭제했고 나 역시도 그러한 방식으로 삭제될 테지. 아니다. 드러나지 않은 것들에게는 사라질 공간마저 없다. 역사의 끝자락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어떤 날개, 어떤 한숨, 어떤 일기.

1. How can passivity become passion?

2. Where is our missing link?

양-아이는 포개어진 장미 잎사귀들 틈에서 눈물 흘린다. 별들은 춤추는 법을 잊었다. 아이들은 내게 공업제품처럼 견고하게 준비된 대본을 요구하는데 내 입술은 피를 흘리며 미끄러진다. 참수한 양의 머리를 십자가 위에 얹어놓고 아이들은 인형놀이를 한다.

나는 내가 루이스 캐럴이 될 수 없음을 알고 있다. 나는 내가 3류 시인이 될 수 없음을 알고 있다. 칠판 위에 그려넣은 어떤 부호 어떤 등식 어떤 부등식이 시가 될 수 없음을 알고 있다. 언어의 음침한 일관성을 해체시키는 암묵적 미스테리, 내가 원한 것은 그것이었다. 무대와 언어의 격자 속에서 가능한 모든 자멸적 훼손과 염산 붓기.

여자아이는 내게 하얀 색연필로 미로를 그려주었다. 선생님 이 속에는 하얀 그림자들이 갇혀 있어요. 여기에 사는 유령들은 서로를 보지 못해요. 왜냐하면 그들의 눈도 이 종이도 하야니까.

양들을 위한 고해신부는 없는데도 양들은 기도한다. 신들에게 죽음에게 기도 자신에게 양들은 기도한다. 어떻게 행위해야 할지 모르는 것이다. 촘촘한 격자로 만들어진 하얗고 부드러운 감각의 망은 유리창에 머리를 짓찧는 유령새를 결코 내보내지 않는다. 유리벽 속에서 유령새는 자신의 죽음을 셈한다. 갈고닦은 천박함으로 나는 유리벽에 내 오물과 피를 발라 놓았지. 빛이 드는 구멍을 내다보기 위해서. 그렇지만 나는 아직 단 한 조각도 칠하지 못했어. 단 한 조각도 칠하지 못했지만 벌써 모든 조각들을 칠한 듯한 절망감. 더는 한 조각도 칠할 부분이 남아 있지 않은 것 같아. 노력은 결코 무엇인가를 위한 대가가 되어서는 안 된다. 노력은 오직 노력을 위하여, 그렇지 않으면 병상에 드러누워 필사적으로 별의 개수를 셈하는 백치 천문학자들의 별들은 순식간에 바스라져 뒈져버릴 것이니. 유리새가 열망했던 바깥, 그 불가능성도 매혹을 잃고 사그라들 것이니. 양을 겁탈하는 신. 신을 겁탈하는 양. 양은 신의 아래턱을 물어뜯으며 메에하고 울었네.

하지만 신에게는 육신이 없으니 신에게는 고기가 없으니 그가 물어뜯은 것은 사실 신이 아니라 천사의 고기였고 천사는 피를 흘리면서도 집요하게 메에 하고 웃었고

오 염소의 눈에 박힌 십자의 인장 나는 0이고 0일때마다 나는 죽었고 그래서 나는 0이 아니었고 0일 수 없어서 나는 또 죽었으니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아미타는 극락에서 법을 설하고 관세음은 중생이 해탈할 때까지 법을 설한다 하였으니 그들이 법을 설하는 동안 나는 무엇을 하라고. 신은 십자가 위에 짐승처럼 엎드려 양의 목을 씹고 있고 아미타와 관세음은 내게 그를 잊으라 하니 그를 지워버리라 하니

하지만 부처님 신이 나를 씹어먹고 있는데요. 내 목을 물어뜯고 내 몸을 벌리고 메에에 하는 울음을 잡아당기고 있는데.

오 아미타와 관세음은 몸을 잃은 체셔의 웃음을 짓고 있으니 오 관세음은 말씀하셨다. 만일 한량없는 백천만억 중생이 모든 괴로움을 받을 적에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듣고 일심으로 관세음보살을 염하면 곧 그 음성을 관찰하고 다 해탈케 하느니라.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암소의 두개골 속에 가장 따뜻하고 부드러운 우유를 부어넣어주소서 그것이 내 보시이고 내 선의이니. 그녀는 이를 드러내지 않고 은밀하게 웃으며 중얼거린다. 관세음보살을 염하라 염하라 주문을 외우라. 나는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염하고 그녀는 내 음성을 집요하게 듣는다. 발기하는 어린 수캐의 자지를 주의깊게 관찰하는 소년처럼. 네 음성은 너무 붉으니 그것이 0이 되게 하라, 0의 형태마저 사라진 0이 되도록, 더 이상 0이 아닌 0이 되도록 하라. 관세음보살은 이러한 큰 위엄과 신력이 있어 이익케 하나니, 그러므로 중생들은 항상 마음으로 생각할 것이니라. 어떤 여인이 아들 낳기를 원하여 관세음보살께 예배하고 공양하면 문득 복덕 많고 지혜 있는 아들을 낳게 되고 딸을 낳기를 원하면 문득 단정하고 어여쁜 딸을 낳으리니.

하지만 관세음보살이시여 신은 내게 내 아들을 바치라 명했으니 관세음보살이 운명지어주고 당신이 직접 수태하여 낳았다는 그 아들 그 복덕 많고 지혜 있는 아들을 내가 직접 솥에 넣고 삶았으니, 아들이 삶아가는 냄새는 개나 돼지를 끓이는 냄새와 다를 바가 없었으니, 나중에 물에 퉁퉁 불어버린 그 머리를 봤을 때 갓난아이의 것처럼 퉁퉁 불은 그 얼굴, 양수에 불었던 그 최초의 머리처럼, 하얗게 퍼진 그 부드러운 살덩어리, 나는 그 맛을 벌써부터 상상할 수 있었으니, 그건 영락없는 돼지고기였고 나는 그 넙데데하고 부드러운 것을 끌어안고 제단으로 올라가 신에게 납작 엎드렸으니 신이시여 내 아들을 삶아 당신에게 바칩니다.

그랬는데도 신은 대답하지 않으셨으니. 관세음보살이시여 어쩌면 신은 아들이 아니라 딸을 원한 것인지도 모르죠. 내게 단정하고 어여쁜 딸을 낳게 도와주세요. 내가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을 부르며 당신과 교접하면 당신은 내게 단정하고 어여쁜 딸을 낳게 해준다는 것이지요. 나는 당신에게 예배하고 공양할테니 가장 아름답고 맛좋은 고기-딸을 점지해 주시길. 도우소서 도우소서 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당신은 가장 어리석은 중생부터 돕고 신은 가장 악독한 적부터 구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거룩하신 아미타 부처님께선 깨끗하고 영묘한 연꽃 봉우리 사자좌 높은 곳에 앉아 계시니 샤알라 나무처럼 빛나시도다. 아미타 부처님 나는 아무것도 원망하지 않나니.

사실 나는 내 이웃을 사랑하지 않았고 내 적을 경멸하지도 않았나니 왜나하면 나는 내 아들을 삶는 동안 내게 아들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으니 관세음보살님 당신은 내 아들을 낳은 적이 없었고 신이시여 당신은 내게 존재하지도 않는 아들을 바치라 하였으니 그러니 그가 다시는 내 꿈으로 현현하지 않았을 수밖에. 관세음보살 아미타불을 부르는 동안 내 혀는 들끓는 침에 삶아져 수육이 되어버리고 나는 그 고깃덩이를 목 깊은 곳으로 삼켰으니 삼키고 삼키고 삼켰으니 나는 벙어리가 될 때까지 신들의 이름을 고유명사들을 불렀고 더는 내 이름을 기억할 수 없었으니 나는 내 이름보다도 당신들의 이름을 더 많이 불렀음을 깨달았고 아무도 내 이름을 그토록 간절히 불러주지 않았음을 깨달았고 내가 우리가 당신들을 부르는 동안 당신들은 0이 아닌 무엇인가가 될 텐데 한 송이의 강렬한 장미가 업이 이름이 존재가 될 텐데 내가 당신들의 존재를 불변하는 집요한 현실로 만드는 동안 당신들은 더 이상 신도 부처도 아니게 되고 당신들은 잊지 않게 되고 잊히지 않게 되고 당신들은 0을 모사하는 0의 닮은꼴이, 그러나 조금도 0과 같지 않은 무엇인가가 되어가는데 당신들이 당신들의 이름이 될 동안 나는 0이니 완전한 0 아무도 부르지 않는 0. 0조차 아닌 0.

사실 해탈해야 하는 것은 해탈의 무에서 태어나 무 속에서 죽은 것은 나이니 사실 당신들은 이름 없는 무의 중생들에게 기도해야 한다. 이것은 기묘한 역전이고. 당신들은 익명의 중생들의 사라진 이름을 하나하나 발굴하여 불러주어야 하니, 왜냐하면 그들이 진정 해탈‘당한’ 중생들이고 당신들은 해탈 바깥에서 견고한 존재를 이름을 너무나도 지긋지긋하고 집요한 이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니, 당신들은 나무 – 빈 자리를 찾아 그들에게 기도를 올려야 할 지니. 그래야 모두가 구원받을 수 있을지니. 나무 아미타불관세음보살 오 신이시여 예수 그리스도 당신들은 너무 많이 불렸고 사실 기도해야 하는 것은 당신들 당신들이 불리지 않은 그 모든 이름들을 불러야 하는 것을. 불리지 않은 이들은 불리지 않은 이름을 부르며 기도해야 하는 것을. 그래야 구원이 해탈이 올지니.

신이시여, 그 많은 이름들을 독점하는 그 많은 신들이시여 내 아들딸의 이름을 불러주오. 신들이여 이름 없는 이 많은 민중들에게 이 많은 텅 빈 존재들에게 이 많은 익명들에게 이 많은 중생들에게 이름을 돌려주오. 우리의 몫인 기도와 우리의 몫인 이름을. 우리는 우리에게 돌려주어야 할 것이니.

i11년 7월 15일

(저녁 식사 자리. 상석에 앉은 소녀를 중심으로 다섯 명의 오빠들이 둘러앉아 있다. 각자의 자리에는 스프와 빵, 생선요리와 포도주가 놓여 있다.)

오빠2 : (허공을 응시하며) 남자는 고래의 갈비뼈만 한 유리 조각 위에 입술을 가져다 댄다. 그가 입을 맞추는 곳은 거미줄 같은 균열이다. 그는 깨진 유리 위에서 입술을 움직이고 균열들 위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며 연주한다. 그의 입술이 움직일 때마다 그가 균열 위에 숨을 불어넣을 때마다 날카로운 유리조각들이 그의 연약한 입술과 입안, 볼과 턱을 베어낸다.

소녀 : 아름다운 즉흥시구나. 아가.

i11년 5월 4일

요즈음 우리의 연극을 꿈꾼다는 이야기를 그 애에게 했다. 대사와 재스쳐, 이미지들의 조각들이 만들어내는 스파크가 온몸을 베어내는 것처럼 날카롭다고.

고통은 우리를 세계에 속하게끔 만드는 탯줄이지. 혹은 그렇게 느끼도록 만드는.

나는 열에 달뜬 목소리가 지껄이는 것을 들었다.

목 아래와 어깨 밑, 허벅지 안쪽에 길게 기른 손톱을 박아넣고 있으면 세계가 내 안에 틈입하는 것을 느낄 수 있어. 세계가 내 안에 틈입하는 만큼이나 어떠한 의식이 세계 바깥으로 밀고 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어. 피부 밑에 단단하게 봉해진 검은 숲의 창자를 끄집어내어 눈 앞에 가져다대고 그 축축하고 비릿한 냄새를 맡으면 검은 숲이 실재한다는 것을, 보물이 내 안에 묻혀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

나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큰 소리로 지껄이고 있었다. 작년에 과학실에서 유리 플라스크를 깨뜨린 적이 있어. 위험하거나 무해한 용액을 담아두던 적요한 그릇이 얼마나 쉽게 깨지는지 알아? 그게 깨지면서 어떤 소리를 내는지. 난 바닥에 떨어진 유리 조각들을 정리하다가 일부로 베였어. 손바닥 한가운데가 깊게 베였고 어린아이의 입 속처럼 부드럽고 선홍빛인 살이 드러났어. 그건 정말 가슴이 아플 만큼 부드럽고 여린, 분홍빛의 살이었어. 피투성이지만 피만큼 붉지 않은. 맑고 달콤한 침이 혀를 적시고 턱 밑으로 흘러내렸고 나는 그 자리에 무엇인가 살아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 반드시 나일 필요는 없는 무엇인가, 그러나 무엇인가, 갓난아이의 움찔거리는 순결한 입술처럼 선명한 무엇인가 그 자리에 있었어. 바닥에 남은 작은 유리 파편들은 내 무릎을 벌리고 파고들었지. 그 뒤로 나는 학교 화장실에서 자주 내 살을 벌리며 자위했어!

나는 놀랄 만큼 큰 소리로 지껄였다. 주변은 조용했다. 다른 아이들은 내 이야기에 아무런 관심이 없거나 쥐새끼처럼 조용히 내 말을 듣고 있었다.

내 존재를, 시간을, 나와 나를 지켜보고 있는 응시 사이의 간격을 벌리면서 웃었어. 웃는 것은 벌리는 것이지. 벌리는 것이 노출하는 무방비한 연약함에 나는 날카로운 유리 조각들을 문질렀어. 맑은 침이 솟아나고 드러나서는 안 될 근육과 신경섬유가 드러나고 부드러운 것과 날카로운 것이 서로 마찰되며 목이 타들어가는 열기, 고통, 슬픔, 기쁨을 방출하고. 나는 숨을 헐떡이며 말을 이었다. 그러고서 나는 죽는 거야. 그러고서 나는 사는 거야. 장미 속에서 태어난 아이가 장미의 여린 잎사귀를 물어뜯으면서 가시를 상상하듯이.

그 애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연약함을 배신하기. 부드러움을, 의존을 배신하기. 나는 배신했고 배신하는 만큼 더 높이 날았어. 한 마리의 나비는 세계를 배신하고 싶을 거야. 뱀의 머리를 물어뜯고 물고기의 내장을 들쑤셔놓고 싶을 거야. 그 가련하고 연약한 날개로 허공을 찢어버리고 싶을 거야. 하지만 나비는 그럴 수 없지. 그녀가 가진 날개는 무엇을 배신할 수 있는 도구가 아니니까. 그래서 나비는 곤충의 작은 입을 벌려 무엇이든 물어뜯어. 달의 볼과 구름의 음부와 밤의 눈꺼풀에 묻어 있는 잠을 물어뜯어. 아무도 그녀가 모든 것을 배신하려 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지. 행위도 언어도 갖지 못한 배신은 완수되지 못한 무형의 관념으로 흩어져 사라지지. 발화되지 못한 관념은 오직 나비의 뇌수 한 줌에만 남아 있는 거야.

나비가 죽고 뇌수가 흘러넘치고 증발되고 나면 더 이상 배신에 대한 그 끈질기고 미칠 것 같던 관념들도 없는 거야. 그래도 나비는 배신과 고통으로 아름다움으로 점철된 세계를 느껴. 그녀에게 세계는 한 줌의 뇌수가 지니고 있는 날카로운 배신의 관념일 뿐이지. 그녀에게 그것은 그녀가 닿지 못할 모든 것이고 그 모든 것은 한 줌의 뇌수, 그녀가 계속해서 미끄러져 흘러내리고 그녀가 그것이지 못하여 그녀가 그 속에서 익사해가고 있는 것-그녀가 그것이었다면 그녀가 질식해 죽지는 않았겠지 허공이 허공에 질식해 죽지 않듯, 물이 물속에서 익사하지 않듯-.

한 마리의 나비가 하나가 아니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모든 것을 원하는 한 마리 나비가, 아무것도 갖지 못한 한 마리 나비가 모든 것을 배신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녀는 그녀를 벌렸어. 그녀는 그녀의 작은 곤충-뇌를 찢고 찢고 찢어서 먼지로 만들었어. 뇌수의 물방울 입자 하나하나를 그녀는 벌리고 벌리고 또 벌렸어. 그녀는 찢어진 개개의 입자들을 서로 비비고 엮고 대립하게 하고 관통하고 접붙게 만들었어. 그래서 그녀는 무한한 상상적 관계들을 만들었어. 그녀는 오직 배신하기 위해 그것들을 만들었어. 행성에 가 닿을 일 없이 우주의 암흑 공간을 유영하는 새들은 꿈에 젖은 눈꺼풀로 관념도 물질도 아닌 어떤 것을 보는 거야. 그녀들은 벌리고 웃고 문질러서 배신하는 거야.

i12년 2월 1일

그 애는 내게 후회하느냐고 물었다. 순결을, 죄 없음을 후회하느냐고. 그래. 왜냐하면 순결은 죄니까. 나는 나를 문지르지 않았고 나는 그 무엇에도 나를 문지르지 않았고 오, 그렇지만 정녕 그것이 죄인가? 내가 태어나기 전에 나는 양의 자궁에 내 이마를 문질렀고 그곳을 찢고 깨어났을 때 내게는 더 이상 이마를 마찰시킬 것이 없었다.

그 애는 웃으며 내게 후회하느냐고 물었다. 내가 할 수 없었던 일, 내게 도래하지 않은 시간, 내가 되지 못한 것들을 붙잡지 못한 걸 후회하지 않느냐고.

나는 그 애 없이 잠들고 싶다. 그러나 유령에게 사형 선고를 내릴 수는 없는 법이다. 유령은 살아 있으니까, 유령은 잔존하고 있으니까, 유령은 사라지지 않으니까. 나는 무화과나무처럼 불결하고 양의 자궁처럼 순결하다.

그 애는 자기가 천국에 갔다고 말했다. 천국은 송아지의 피부 밑면처럼 희었고 순결의 죄를 지은 자들이 겨울의 노간주나무처럼 하얀 불 속에서 타오르고 있었다고.

천국에는 거인들이 고목처럼 서 있었어. 천사가 내게 말했지. 너는 너의 신을 너의 아버지를 너의 어머니를 찾아내야 하느니.

그 애는 대리석처럼 창백하고 단단한 거인들의 다리 사이를 헤매었다. 천국의 밤은 백야의 어스름한 흰색이었다. 그 애는 천사들의 나팔 소리와 아름다운 합창 소리 밑에서 흐느끼는 미약한 신음을 들었다.

천사님, 들리나요? 이게 무슨 소리인가요?

천사는 대답했다. 이건 지상에서 가장 창백하고 연약한 벌레들의 울음소리니, 죽어가는 자의 고기를 파먹고 자라나는 생들의 노래이니 어찌 사랑스럽지 아니할 수 있겠는가. 그들의 연약한 주름에는 핏빛 잠이 묻어 있다.

그 애는 거인의 단단한 백색 다리를 쓰다듬었다. 내가 그를 알아보지 못하면 신은 나를 살해할까요?

천사는 순결하고 인자하게 웃었다. 서두르렴 아가. 곧 지옥불처럼 이글거리는 거대한 태양이 드러날 것이다. 태양은 네 유령에 잔존하는 살의 환영까지 갈기갈기 찢어버릴 것이다.

지상에서 올려다보았던 태양은 작고 차가운 진주처럼 보였지. 그 애의 얼굴이 말했다. 인어의 자궁에서 갓 꺼낸, 분홍빛 점액으로 번들거리는 진주처럼.

트럭의 차가운 헤드라이트가 하나의 악몽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우리는 가장 비통하지도 가장 고통스럽지도 않은, 가장 아름답지도 가장 황홀하지도 않은 어떤 꿈 속에서 깨어난다. 꿈은 연한 녹색이다. 어스름을 품은 잎사귀처럼. 우리가 깨어난 꿈은 흔하디 흔한 하나의 색이다.

나는 가위에 눌린 채 마비된 육신으로 그 애를 올려다본다. 유령의 얼굴이 불길한 얼룩처럼 내 눈꺼풀 안쪽에 들러붙어 있다. 유령은 웃는다. 유령은 천국을 밝히던 구더기들의 미광에 대해 말한다.

구더기들은 그 애에게 속삭였다. 신은 죽었고 가장 빛나는 죄인이 권좌 위에 올랐으니, 신의 육신은 다만 벌레들이 들끓는 진창일 뿐이고 신의 두 눈구멍은 국수다발처럼 늘어나는, 너무나 많은 생들의 조직이니. 아이야 너는 이곳에서 가장 빛나지도 가장 더럽지도 않은 벌레란다. 너는 여러 마리의 벌레란다. 아이야. 네가 죽을 때 너는 보았겠지 너를 응시하는 몇 개의 시선들. 몇 개의 허무한 몸짓들과 몇 개의 비-존재들. 언제나 몇 개의 너들이 너를 지켜보고 있었단다.

그 애는 가장 투명하고 가장 존재하지 않는 어떤 허공을 골랐다. 강렬하고 난폭한 빛이 지상에 도래할 때 사라져야 할 너무나 많은 그림자들, 그림자의 섬을 떠도는 그 많은 희고 검은 그림자들을 위하여.

곤충학자는 가장 빛나는 벌레를 하얗고 정결한 해부대 위에 올려놓는다. 그는 정교한 핀셋으로 벌레의 살을 벌린다. 찢어진 자궁에서 하얀 구더기가 흐른다. 구더기는 꿈틀거리며 살아 있다. 절개된 자궁 바깥으로 나가는, 혹은 안쪽으로 되들어가는 모호한 몸짓. 살아 있는 유령의 얼굴은 점점 가까이 내려온다.

각기 다른 방향으로 불어나고 절합하는 시간들. 시간은 잘린 머리로 기어간다.

i11년 7월 15일

(격자 창이 있는 방. 오빠5는 비둘기를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오빠5 : 예전에 우리는 그다지 대화를 나누지 않았지. 그래도 네가 이렇게 병들어서 다행이야. 내가 널 돌볼 수 있게 되었으니. 엄마. 내가 보물상자 속에 잠들어 있을 때 세상은 더웠어. 내 몸은 녹아내렸고 상자 안은 배설물과 비계의 냄새로 달구어졌지. 내가 그 보물상자 이외에 어떤 경험을 묘사할 수 있겠어.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다만 내가 가질 수 없는 경험들을 상상하는 일뿐이었지. 경험들, 그 모든 경험들, 누군가가 소유했다던 그 경험들, 누군가의 몸이었고 시간이었떤 그 경험들은 내 것이 아니었고 나는 경험을 가지는 경험을 상상하는 수밖에 없었어.

나를 보물상자에 가둔 건 엄마였어. 물론 그건 사실이 아니지. 보물상자에 나를 가둔 건 그 누구도 아니야. 신조차 아니지. 신도 운명도 시간도 아닌 무엇인가, 존재하지 않는 무엇인가, 그 비-존재마저도 나를 보물상자 안에 가두지는 않았어. 물론 나 자신이 나를 보물상자 안에 가둔 것도 아니야. 그건 그저 일어난 일이지. 어떠한 이유도 없이.

그래도 나는 나를 가둔 검은 마법사를 상상했어. 누군가 내게 그것을 했다고 상상하는 편이 더 이해하기 쉬우니까. 검은 마법사가 보물상자를 열 때 나는 어둠 속에 오래도록 감금되어 있던 작은 거미처럼 일어나 빛을 보는 거야. 어둠보다 광폭하고 목마른 빛. 빛은 내 얼굴을 격자무늬로 갈기갈기 찢어놓고 말라붙은 얼굴에서 피는 흐르지 않아.

검은 마법사는 내게 말했어. 아가. 집에 전화를 걸게 해줄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검은 마법사가 건네주는 휴대폰을 들고 천국에 전화를 걸었어.

천국에서 새들이 뭐라고 지껄였지. 짹짹. 꽥꽥. 빌어먹을 빌어먹을 짹짹 꽥꽥.

뭐라고요. 알아들을 수가 없어요. 제길. 내 목을 자르고 귓구멍에 나이프를 처박아도 알아들을 수가 없어요. 내가 새가 되기 전까지는.

새들은 녹음테이프를 틀어놓은 것처럼 일정하고 빌어먹을 목소리로 짹짹 지껄여댔어.

엄마, 나는 흙의 자궁에서 태어났어요. 구름은 새의 목구멍 속에서 종양처럼 자라는 구더기들로 드글거렸고 그 위에 내려앉은 작은 소녀는 눈을 감고 더 높은 곳에 있는 무덤을 상상하고 있었지.

무덤을 상상하는 동안에는 무덤을 잊을 수 있어, 하고 구더기들은 입속 점막을 감싸고 있는 근육을 움직여 속삭였고 나는 빌어먹을 빌어먹을 목소리로 지껄였어. 짹짹 꽥꽥 꿀꿀.

네가 돼지우리에서 태어나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기렴. 그 진창에서 태어난 돼지들은 몇 개의 계절이 바뀌기도 전에 새로운 돼지새끼를 낳는단다. 네가 끝없이 태어나는 그 돼지새끼들이 아닌 것을 다행으로 여기렴. 그곳에서 돼지들은 오직 돼지들을 경험한단다. 네가 종양과 화상의 들끓음에 갇힌 한 줌의 뇌수가 아님에 감사하렴.

내가 어디 있는지 알려줘요, 제발. 나는 검은 마법사에게 기도했어. 내게 알려줘요. 검은 마법사는 내 할머니의 할머니와 내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와 내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의 이름들을 읊기 시작했어.

아, 엄마. 물론 나는 단 하나의 이름도 기억할 수 없었지. 하나의 성이 다른 성과 이어지고 또 다른 성이 다른 성과 이어지는 것을 들으며 나는 중얼거렸어. 내게 칼이 있다면! 검은 마법사는 내게 물었지. 칼이 있다면? 내가 가진 것이 있다면 나는 그걸 죽였을 거예요. 내게 칼과 살이 있다면 기꺼이 그걸 썰었을 거야.

검은 마법사는 내게 하얗고 반들반들한 케이크를 건네며 말했어. 해피 버스데이! 생일 축하한다. 오늘은 네 생일이란다. 나는 길게 자란 하얀 손톱으로-손톱 밑에서는 젖은 꽃잎 같은 구더기들이 드글거렸고-케이크를 썰어냈고 엄마 나는 그렇게 태어났어. 하나의 삶이 하나의 의식이 하나의 세계가 가능한 모든 경험과 불가능한 모든 경험, 작동하거나 몰수된 시간들이 시작되는 데는 종말도 구원도 필요하지 않아. 다만 하나의 케이크를 가르는 것. 그 상상의 의식이 전부지. 엄마 나는 엄마의 이름도 할머니의 이름도 할머니의 할머니의 이름도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의 이름도 기억하지 못해. 엄마는?

비둘기 : (머리를 앞뒤로 까딱거리며)구구.

오빠5 : 우리는 살아남았어. 엄마. 무엇인가가 살아남았어. 그것은 결코 도살할 수 없는 것이야. 아닌가? 어쩌면 너무나 쉽게 도살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우리는 사형의 선고와 그 집행 사이의 묘한 간격에 불과할지도 몰라. 유령들에게 사형선고를! 사형 집행인들에게 사형 선고를! 사형 집행인들은 유리구두를 왕관처럼 쓰고 개처럼 짖으며 밤을 건너나니. 나는 나의 사형 집행인인가? 아냐. 너는 기다리고 있겠지. 내가 네 새-머리를 짓이기고(아닌가?) 네 가느다란 새-목을 꺾고(아닌가?) 너를 네 엄마 위에 묻어 주기를(아닌가?).

하지만 아냐 내 귀여운 여동생 내 어머니 그래도 무엇인가는 끝나지 않을 거야. 하나의 신체를 살해하고 하나의 시간을 매장해도 무엇인가는 살아남을 거야. 그 유령이 내게 말을 걸었지. 얘야 오늘은 네 생일이란다. 네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의 이름과 네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의 이름과 네 할머니의 할머니를 강간한 남자의 이름을 기억하렴. 오 하지만-제기랄-신이여 나는 구원도 종말도 운명도 없이 태어났나니. 전능한 빛이 떠오르는 지평은 지옥으로 꺼져버렸고 비계를 빚어 만든 케이크는 순결한 거품들로 들끓어오르고 있나니-그 비계는 내 것인가? 내가 나를 먹고 내가 나를 강간하고 내가 나를 낳고 내가 나를 살해하는 동안 비계의 거품들을 부풀리는 숨결은 누구의 것인가?-나는 구원도 종말도 운명도 믿지 않나니 왜나하면 구원은 늑대들이 사라진 지평에서 자신의 뒈져버린 미래만을 영원히 기다리고 있으므로. 하나의 생이 뒈져버리고 남은 무엇인가가 이름 없는 것들을 기다리고 있다. 오직 이름 없는 시간만이 도래하고 있다. 그것은 구원도 종말도 역사도 계시도 아닌 무엇인가.

비둘기 : 구구. 구구. 구구.

오빠5 : (비명을 지르며)뒈져버려 뒈져버리라고! 내가 보물상자 속에서 잠들 때 혹은 그런 꿈을 꿀 때 더러운 잠이 덕지덕지 묻은 내 얼굴을 아무도 닦아주지 않았지. 어미 돼지의 두툼한 혀조차 나를 더듬지 않았지. 아냐. 내 포장을 찢고 그 속에 있는 걸 만져 봐. 그건 살아 있어. 그건 살아 있음 외에 아무것도 아니야. 내 살아 있음이 죽음에게 구애하며 부르는 노래를 들어봐. 하지만 죽음은 귀머거리이니!

(낄낄거린다)

내 초침이 내 몸 속을 파고드는 동안 나는 어리석은 구원 따위를 바라지 않았지. 혈관 속을 타고 흐르는 염증이 점점 불어 살가죽을 찢으며 비어져나올 때 나는 태어난 거야 내 손톱이 처녀가 아닌 케이크를 관통할 때 처음이 아닌 무엇인가가 태어난 거야. 오 태어난 것은 처녀도 구원도 아닌 생명이니. 대답해봐, 아냐. 나는 네게 모든 시간, 오직 시간, 시간을 바쳤어. 도래할 시간, 도래하지 않을 시간, 오는 것을 바라보고 있는 시간, 실신하거나 휘발되어버린 시간, 시간을 바쳤어. 네게 바친 시간은 모든 시간은 오직 시간 시간은 삶만큼이나 귀중하지. 아냐, 대답해 줘. 내가 누구지?

내가 나를 사랑하기 위해 나를 찾고 있다는 혐의는 두지 마. 나는 오직 잃기 위해 나를 찾고 있으니까. 내 혀는 깨졌고 나는 백치처럼 말을 더듬고 내 혀의 파편들이 내 목구멍을 베어내고 있어. 내 목구멍은 내 시간은 나는 여기 있지 나는 이 공간을 점유하는 어떤 시간, 나는 내 몸이 점유하고 사유하는 공간이지. 나를 추방해 줘. 아냐. 내가 네게 죄를 지으면 너는 나를 추방해 줄까?

(새장을 흔들며) 나의 죽음 혹은 나의 삶 혹은 신 혹은 천사들이 우리를 데리러 이곳으로 와 줄까. 아니야. 아냐, 그럴 일은 없어. 아무것도 아무것도 우리를 데리고 가지 않아. 단 하나의 날개도 부름도 기적도 심지어는 죽음도 없어. 우리는 구원도 파멸도 없이 여기, 오직 여기, 오직 이 시간, 오직 이 몸, 오직 내가 아닌 모든 것. 내 혀의 조각들이 목구멍을 넝마로 만들고 있는데도 지껄이는 걸 멈출 수 없어 삼키는 걸 멈출 수 없어. 왜냐하면 나는 살아 있으니까.

아냐. 놀랍지 않아? 경이롭지 않아? 네가 태어나던 날 우리 엄마의 자궁은 우유 속에 잠든 양의 가죽처럼 부드럽고 느슨하게 풀어졌겠지. 그 안으로 기어나가는 동안 너는 울었어, 아냐. 심장처럼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하나의 생명이 켜질 때 다른 하나의 생명이 꺼지지 않는다는 것, 하나의 죽음과 하나의 생명이 같은 순간을 맞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경이로운 일이니. 아직 꺼지지 않은 생일 촛불들이 어디선가 울고 있는데 분명 붉은 촛농을 흘리며 살아 있을 텐데 그것들을 발견할 수는 없어. 나는 물 위로 떠오른 찢긴 날개, 수액이 묻은 주둥이, 언어를 잃은 입술에 말을 걸지 않고 그것들은 내게 말을 걸지 않아.

어렸을 때 말이야 아냐, 너는 내 친구가 되어줬지. 너는 다정한 아이였으니까. 나는 다정할 수 없었어. 나는 다정함의 언어와 몸짓, 웃음과 걸음을 갖지 못했으니까. 나는 입을 다물었지. 아이들은 내가 벙어리라고 했어. 나는 말을 꺼낼 수 없었어. 왜냐하면 말하는 것은 침묵에 대한 배신이었으니까, 말 할 수 없음에 대한 배신이었으니까. 나는 벙어리의 역할로 그 자리에 있었고 내가 말을 하면 당장 그 자리에서 쫓겨날 거라고 믿었으니까.

화장실 거울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어떤 얼굴이 보여. 희미한 얼굴과 얼굴이 마주하고 있는 어떤 장소가 보여. 아냐, 어떤 언어는 어떤 이름은 대상을 갖지 못하지. 말 못 하는 아이의 배역을 맡으면서 나는 언어의 빈 자리를 더 집요하게 관찰하게 되었어.

거울에 묻어 있는 희미한 숨결들, 태를 갖지 못한 자음 자음 자음 그리고 모음 자음과 모음들. 어떤 명사는 세계 속의 어떤 사물이나 관념도 현상도 지칭하지 않지. 어떤 동사는 어떤 행위도 갖지 못해. 그런 언어들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부유하는 유령이야. 나는 유령의 언어를 들었어. 자음 자음 모음 그리고 모음 모음.

아냐. 내가 발기한 성기를 십자가처럼 쥐고 신에게 음탕한 욕설을 지껄일 때도 신은 나를 벌하러 내려오지 않았고 나를 용서하지도 않았으니 나는 신이 얼마나 내게 무관심한지 알았어. 세계에게 나는 유령의 언어라는 것을 알았어. 아냐 내 작은 새. 가만히 있어 봐, 네 지저분한 방을 치워줄 테니까. 아냐, 봐. 어떤 의식이 세계를 문지르고 어떤 의식이 젖어들고 어떤 의식이 하혈한다. 낙담한 죄인은 지구의 자전축을 관통하여 그려놓은 탈주선을 직접 자르고 사형 집행인은 길을 잃었네. 내 죽음은 영영 나를 발견하지 못할지도 몰라. 내 혀가 영영 발음하지 못할 단어들이 있겠지. 버려진 케이크의 살점이 어딘가에서 썩고 날숨에 지워지지 않은 촛불들이 어딘가에서 사그라들고 있겠지. 내장과 내장 사이를 간신히 향유하던 거미줄이 찢겨나가고 손이 없는 여자는 한 번도 연주해 본 적이 없는 바이올린을 마치 평생 그랬던 것처럼 평생 음을 찾아 더듬거리던 습관대로 연주하고 소리 없는 음악은 그 어디로도 퍼져나가지 않아. 유령의 바이올린 유령의 새들이 우는 소리는 어디에도 닿지 않아.

아무도 그들을 듣지 않아. 하지만 시끄럽지, 아냐. 그렇지 않아? 시끄러워서 나는 찢어졌어 내 고막과 내장 부드럽고 연약한 막들이 전부 찢어졌어. 왜냐하면 너무 시끄럽기 때문에, 유령들은 너무나 시끄럽게 지껄이기 때문에, 그들의 침묵은 끔찍하게 시끄럽고 시끄럽고 또 시끄럽기 때문에. 유령들은 옥상에서 투신한다. 바닥을 벌레처럼 기면서 살아 있는 유령들이 비명을 지른다.

(새벽의 검은 우유. 비둘기는 그것을 마신다. 비둘기는 마신다. 그녀는 생각한다. 어떻게 그녀가 그녀의 천사들을 견뎠는지. 귀머거리가 어떻게 세계의 소란을, 소리의 언어를 견뎠는지. 비둘기는 마신다. 그리고 생각한다.

새벽의 검은 우유. 검은 우유 속에는 하얀 알이 있었지. 이름 없는 어떤 벌레가 그 속에 알을 낳았다. 그리고 벌레는 죽었다. 벌레의 무덤인 새벽의 검은 우유, 비둘기는 그것을 마신다. 세계를 씻는 분주한 날갯짓, 아침의 깊이를 갈기갈기 찢는 날갯짓, 어둠을 퍼내는 손들을 닮은 날갯짓. 허공에 판 무덤에 몸을 누이는 유대-시인의 언어가 흩어진다.

새벽의.

검은.

우유.

공중의 무덤과 땅의 무덤과 물의 무덤과 불의 무덤, 무엇보다도 우유, 새벽의 검은 우유, 여자는 그것을 마신다. 비둘기는 언어로 만들어진 살아 있는 장미를 물어뜯는다.

새벽의 검은 우유. 우리가 토해낸 창자는 빛에 썩어 문드러지겠지. 그리고 사라지겠지. 파리들이 웅성거리며 우리를 물어뜯고, 오 그 날갯짓은 마치 웃음소리처럼 들린다. 비둘기는 마신다. 새벽의 고기. 새벽의 검은. 새벽의 우유. 새벽의 장미. 장미는 자기 가시로 붉은 껍질을 벗기고 있다. 새벽의 검은 우유. 그 하얀 검은 것 속에서 너무나 많은 것들이 시도되었고 거부되었고 문질러졌고 미끄러졌고 화병 속에 담겼고 화병 바깥으로 떨어졌고 흘러넘쳤고 새었고 버려졌고 죽고 태어났고 실종되었으니,

새벽의.

검은.

우유.

비둘기의 눈은 백내장에 걸린 그것처럼 희뿌옇다. 그녀는 고독 속에서 태어났고 고독 속에 내버려졌고 그녀는 고독의 이유를 물었으니, 신이시여 어째서 나를 이곳에? 어째서 나를 이토록 비좁고 연약한 짐승의 모가지 속에? 오, 그러나 신은 집요하게 침묵했으니 왜냐하면 그조차도 그녀의 고독을 이해하지 못했으니까. 왜냐하면 그녀의 고독에는 아무런 이유가 없었으니까. 삶과 죽음에 이유가 없는 것처럼. 그 무엇도 위하지 않는 삶. 그 무엇도 위하지 않는 죽음.

비둘기는 숨을 내쉰다. 그녀가 내쉬는 숨에는 그녀가 마신 새벽의 검은 우유가 묻어 있다. 공기는 독이 묻어 타들어간다. 상처투성이 공기에서 흘러내리는 염증이 여름 장미처럼 붉다. 어떻게 우리가 우리의 천사들을 견뎠는지, 그녀는 생각한다. 그녀는 생각한다. 나는 어쩌면 영원히 나를 벗어나지 못할 것인데, 그것은 나는 내가 아닌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 제도비판이 제도가 아닐 수 없듯, 내가 내가 아닌 모든 것을 흡수하는 한 나는 내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심지어 한 번도 나인 적이 없는 나조차도 나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비둘기는 구구, 하고 작게 울며 고개를 까딱인다. 허공에 입 맞추듯이, 벗겨진 공기의 살을, 그 진피를 깊게 파고들 듯이, 그녀는 까딱인다. 구구. 다른 여자들처럼 그녀도 사랑을 원한다. 그녀는 입맞춤을 원한다. 그러나 그녀는 가면 위에 가면을 문대며 입맞춤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오 그러나 할 수만 있다면 기꺼이 하리. 그녀는 기꺼이 가면으로 가면을 더듬으리. 그녀가 얼마나 그것을 바라고 있는지!) 그녀는 내장과 내장을 맞비비며 입맞추고 싶다. 그녀는 가장 내밀한 것과 내밀한 것의 마찰을 원한다. 입술과 입술의 마찰이 아닌 혀와 혀의 마찰 목구멍과 목구멍의 마찰 기도와 기도의 마찰.

아침마다 그녀는 세계를 씻어내지만 세계는 변하지 않는다. 이미 죽은 살이 그녀의 목구멍을 문지르며 밀려들어가고 그녀는 마신다. 새벽의 검은 우유. 새벽의 검은 살이 그녀의 목구멍에 사정하고 그녀는 생각한다. 새벽의 검은 우유. 그녀가 그것을 얼마나 오래 마셨는지. 그녀가 그것을 얼마나 더 마시게 될 것인지. 그녀가 그것을 얼마나 잃게 될 것인지. 어떻게 그녀가 그녀의 천사들을 견디고 있는지.

다섯 번째 형제는 간혹 그녀에게 날고기를 준다. 살아서 꿈틀거리는, 이름 모를 벌레. 그녀는 그것을 문다. 두 개의 부리 사이에서 헐벗은 분홍빛 살이 꿈틀거린다. 그녀는 그것을 목구멍 깊은 곳으로 밀어넣는다. 살아 있는 살이 그녀의 깊은 곳을 애무하고 그녀는 생리적인 구역감에 눈물을 흘린다. 그녀는 비둘기이므로, 그녀는 비둘기의 배역을 맡았으므로 비둘기의 목구멍으로 비둘기의 식사를 해야 한다.

그렇지만 오빠 정말? 정말 내가 비둘기인가? 비둘기는 무엇인가? 그녀를 그녀로 만들던 것이 그녀를 비둘기로 만들고 그녀를 비둘기가 아닌 것으로 만들던 것이 그녀를 비둘기로 만들고 오빠, 내가 정말?

그녀는 마신다. 새벽의 검은 우유. 귀머거리들은 각기 다른 음조로 아리아를 부르고 이곳에는 두 번째 하늘이 없으니, 그녀는 새벽의 검은 우유를 마신다. 그녀의 입 속을, 목구멍을, 내장을 더듬으며 떠밀려가는 어떤 살, 어떤 천사, 어떤 죽음, 어떤 삶, 어떤 언어들. 그녀를 살게 하는, 그녀의 것이 아닌 어떤 파편들.

그녀는 뱃속에서 몇 개의 밤의 깊이를 꺼낸다. 그녀의 글쓰기에는 독자가 없고 그녀의 삼킴에는 대화가 없으며 그녀의 검은 우유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말 없는 그곳에 어떤 언어가 있다. 그녀는 눈 멀고 귀 먹은 여자의 언어로 그것들을 반향한다. 새장에서 글을 쓰는, 영원히 알려지지 않을 어떤 언어들. 그것들은 있다, 그것들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것들은 있었다. 언어, 정말로 소수적인 언어를 알고 있는 이는 출판되지 않은 어떤 벌레, 어떤 유령, 어떤 밀려가는 살. 새벽의 검은 우유. 그녀가 마신 새벽의. 검은. 우유는 어디에 있는가? 소화되고 분해되고 낱낱이 흩어져 그녀의 혈관을 떠내려가며, 그래서 그것은 어디에 있는가?

악어는 작은 새들을 잡아먹는 일을 어느 날 갑자기 그만두었다. 악어는 그가 삼킨 새들이 그의 목구멍을 벌리고 날아오르기를 오래도록 기다렸다. 하지만 새들은 나오지 않았다. 새들은 태어나지 않았다. 그의 몸 속에서는 짹짹거리는 소리가 들렸는데, 날개들은 보이지 않았다. 날개들은 벌리지 않았다.

세계가 의미화를 멈출 때, 그 아득하고 집요한 진공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천사들을 견디는가? 여자의 눈을 둘러싸던 각막이 한 꺼풀 한 꺼풀 벗겨져 떨어진다. 오렌지의 과육을 감싸는 투명한 피막처럼. 과육이 흘러내리고 과육이 적신다.

그녀는 검은,

새벽의,

우유를,

마신다.

살아 있는 꽃으로 만든 양초가 그녀의 눈 앞에서 타들어간다. 살아 있는 몸으로 만든 빛이 그녀의 앞에서. 한 마리의 비둘기가 죽을 때 누가 노래를 부르는가? 누가 땅을 파는가? 누가 허공을 헤집는가? 듣는 귀도 읽는 눈도 없이, 박수도 승인도 없이, 멀미 나는 적요 속에서 그녀는 하얀, 우유를, 검은 새벽의 하얀 우유를 마신다. 가치의 위계로부터 밀려난 언어, 눈과 눈들, 선택과 선택의 곱들로 환산된 척도로부터 소외된 언어, 유령 새의 언어, 자기가 유령임을 입증하지 못한 새들의 언어, 자기가 소수적임을 증명하지 못한-왜냐하면 그녀의 언어가 지나치게 소수적인 것이라서?-유령의 언어. 그러나 잔존하는. 그러나 어딘가에 잔존하는. 입증되지 못한, 기록되지 못할 존재, 그러나 잔존하는. 새벽의. 우유가 그녀의 목구멍을 애무하며 더 깊고 붉은 살 속으로 흘러들어간다.)

(하얀 냉장고 속 다섯 명의 남자가 담겨 있다. 검은 마법사의 모래 연기와 목소리가 웅얼거린다.)

검은 마법사 : 아들들이여. 내게 무엇을 구하는가?

오빠1 : 우리는 돌려받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오빠3 :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몫을 받지 못했으니.

오빠2 : 돌려주십시오. 자애로운 어머니시여. 마리아여.

오빠5 : 어머니 여긴 어딘가요? 이곳은 너무 춥군요.

검은 마법사 : 걱정 말거라. 이곳은 너희의 관이니. 그래, 너희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오빠1: 보물입니다.

오빠2 : 시간입니다.

오빠4 : 어떤 사물입니다.

검은 마법사 : 너희가 원하는 것이 기억인가?

오빠5 : 우리가 원하는 것은 신입니다. 신이 가진 미래의 기억입니다. 마리아여. 어머니 빨리 예수를 낳아 줘.

검은 마법사 : 아가야 나는 이미 오래전에 그를 사산했단다. 그 검고 검은 아이. 벌어진 자궁구에서 하얀 그림자가 흘러내렸고 그 애는 영원히 알려지지 않을 미래를 꿈꾸고 있었지. (잠시 생각하다가) 너희가 원하는 것이 복수냐?

오빠1 : 그렇습니다. 우리는 복수하고 우리의 것을 돌려받기를 원하나니.

검은 마법사 : 좋다. 너희를 도와주지. (안개가 서성인다) 너희는 나를 믿느냐?

오빠2 : 배반만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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