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11년 4월 19일
나 즐겼어와 너 즐겼어 사이의 심연.
가정 교사는 아이들에게 말한다. 반에서 제일 예쁘고 잘생긴 친구들을 뽑아 보지 않을래?
아이들은 종이 한 조각씩을 배분받는다.
난 널 뽑았어.
한 번도 대화를 나눠본 적 없는 애들이 내게 말을 건넨다.
널 뽑았어 널 뽑았어 널 뽑았어.
칠판에 나와 그 애의 이름이 적히고 우리는 교단으로 불려나간다. 가정 교사의 어색한 얼굴과 모욕을 장식하기 위한 종이 왕관.
아이들은 3박자 왈츠 템포로 웃고 그 애는 비계처럼 부드러운 눈물을 흘린다.
수상소감을 들어요! 아이들이 소리친다.
수상소감이요!
가정 교사는 어색하게 우리를 바라보며 어떻게 하고 싶어? 하고 묻는다.
그 애는 여전히 끔찍하게 부드러운 눈물을 흘리고 있다. 나는 날카로운 소리로 외친다. 내가 나 즐겼어와 너 즐겼어 사이의 심연으로 떨어질 때, 유리 핀셋에 잡힌 장미처럼 발버둥칠 때, 스케이트 날에 잘린 애벌레처럼 꿈틀거릴 때, 가스등의 나방처럼 타들어갈 때, 스노우볼 속의 나비처럼 적막할 때, 내가 시선의 부재에 소스라치며 먹히고 찢기고 염산에 녹아내릴 때, 트럭이 내 위를 지날 때, 나는 살아 있다.
내가 죽을 때 나는 살아 있다.
불 탄 장소에서 나는 붉은 댄스슈즈를 신고 3박자로 춤을 추고 있어. 내 이름이 적힌 하얀 종이 조각들이 내 눈 가까이 다가온다. 그것들이 날카로운 종이날로 여자의 눈을 벤다. 젖은 빛을 뿜는 사물들. 나를 문장의 파편으로 짓이기며 너희는 웃는다.
나는 외로워. 나는 넘쳐 흐르는 이 비정상적인 언어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내가 학교에 오는 건 그것 때문이야. 내가 모욕을 감내하면서도 말하는 것은 그 때문이야. 내가 들리지 않을 말을 지껄이는 건 그 때문이야.
아이들은 지루함을 과시하듯 한숨을 내쉬고 재잘거리기 시작한다. 소음 속에 묻힌 침묵. 내가 입을 벌린 채로 침묵하고 있는 것을, 침묵하지 않고 있는 것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다.
도굴꾼의 손톱이 어째서 검은지 알아? 내 손톱 밑에 가득 쌓인 재에서 어떤 냄새가 나는지 알아?
나는 울지 않는다. 그 애가 내 옆에서 우는 동안 나는 울지 않는다.
나는 사과 속의 독충을 삼키는 여자가 무엇을 원했는지 알고 있다. 나는 울지 않는다. 나는 울지 않는다. 시는, 생명은, 하나의 선언이다. 들리지 않는 선언. 존재하지 않는 선언. 증명되지 않을 선언. 내가 여기에 불을 지르면 내 언어와 사물들은 어떤 의미를 갖게 될까? 어떤 의미를, 어떤 존재를, 어떤 과거를 갖게 될까. 언어는 기록될 것이고 인쇄될 것이고 알려지겠지. 내 것이 아닌 몸에서 내 언어가 어떻게 들끓을지 어떤 색으로 흐느낄지 보고 싶어. 보고 싶어. 보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어. 하지만 견디지 못하면? 여기에 불을 지르면 너희는 불을 지른 손을 기억하게 될까.
창녀는 그녀를 구입한 남자들의 목에 면도날을 들이대며 그녀의 말을 들을 것을 협박한다. 내 눈을 베는 종이날, 젖은 빛을 뿜는 사물들, 나는 문장들로 짓이겨지며, 아, 마실 수 없는 물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들 미지근한 우유 속에서 익사한 바스커빌의 개. 바스커빌의 개들이 마지막 순간까지 물어뜯던 범죄가 누구의 것이었는지 나는 알고 있다.
듣고 있어? 듣고 있다면 제발 대답을 해 봐.
남자는 창녀의 벌어진 입 속에 침을 뱉고 창녀는 흐느끼면서 시를 읊는다.
밤의 와해와 빛의 장막 사이에 아주 작은 틈이 있어. 그곳은 눈 멂의 유일한 맹점이네. 그곳에서 전화가 걸려왔어. 납치범의 전화였지. 그의 목소리는 인큐베이터에서 자라나는 양의 아이들처럼 부드러웠어. 그는 말했어. 내일 오후 1시까지 100만달러를 마련해 집앞 우체통에 넣어 두라고. 그러면 네 아이를 돌려주지, 하고 그는 말했어.
여자는 놀라서 물었어. 내 아이라고? 내 아이라뇨? 내 아이? 세상에 당신은 내 아이가 누군지 알고 있나요? 내 아이의 얼굴이 보이나요? 내 아이의 목소리를 들려줘요. 내가 내 아이를 처음 봤을 때, 내가 달빛을 따라 표류하던 세이렌의 유골을 봤을 때 나는 미칠 듯한 환희로 녹아내렸죠. 나는 세이렌의 유골을 짐승의 뼈로 만든 항아리에 담아 운반했어요.
이걸 봐 이건 세이렌의 유골이야.
나는 비명을 지르면서 도시를 쏘다녔어요. 하지만 아무도 믿지 않았어. 아무도 믿지 않았지. 침묵이 침묵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암흑이 암흑을 의미하지 않고 본다는 것이 본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이지 않음이 보이지 않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무도 믿지 못했어. 내가 들고 있는 노래의 징후를 아무도 듣지 못했어. 사물과 언어로 가득찬 눈들에 그 많은 눈들에 그 많은 눈들이 맺혀 있는 그 많은 눈들에 내 자리는 없었어.
나는 그 아이를 사랑했어요. 사랑해요. 나는 그 아이 때문에 죽어가면서도 그 애를 사랑해. 알고 있어요? 최후의 만찬에 예수의 어깨에 기대어 쉬던 요한이 어떤 글을 썼는지. 신이 재림할 것이라고 신이 재림하면 지상을 떠돌던 죄인들도 모두 구원받을 것이라고. 신의 어깨에 기대어 쉬며 신이 돌아오기를 염원하던 요한이 대체 무엇을 기다리고 있었을지 상상할 수 있어요?
난 보고 있어. 나는 그 애의 생일에 크리스마스 캔디를 그 애의 방안 가득 흩뿌려 두었죠. 그 애의 생일은 크리스마스가 아니었지만 그 애는 크리스마스 캔디를 좋아했으니까. 알록달록한 풍선, 물처럼 가득 부푼 공기의 그릇들이 그 애의 방안에서 떠다녔고 나는 그 애를 위해 커다란 초콜릿 케이크를 가져왔어. 침대에는 주름이 있었어. 침대에는 주름이 있었다고. 나는 풍선을 하나씩 하나씩 면도날로 터뜨리며 생각했어. 침대에는 주름이 있었다고.
그러니까 당신이 내 아이를 데려갔다고요? 침대에 주름이 있었다는 걸 당신은 믿을 수 있겠네요. 왜 대답이 없어요 왜 전화를 끊었어요? 내가 백만 달러를 가져가면 내 아이의 침대에 주름이 있었다는 걸 당신은 믿어줄 수 있어요?
창녀는 비명을 지르고 남자의 두툼한 목에서 피가 흘러내린다.
나는 스케이트 날에 잘린 순결한 애벌레야. 내가 순결하다는 걸 당신은 잘 알겠지. 모르겠다고? 내가 얼마나 순결한지, 내가 얼마나 존재하지 않는지, 내가 얼마나 소리치고 있는지 당신은 모르겠다고? 나는 성녀야. 알겠어? 나는 내 시고 모든 시는 언어를 체현한 정액 없이 언어를 수태한 성서고 모든 성서는 신이니까 내 시는 신이야. 나는 내 신이니까 나는 신이야. 성녀는 신을 배고 있는 신이니까 나는 성녀야. 알겠어? 너 듣고 있어?
듣고 있어?
아 네 혀는 비계처럼 부드럽구나. 네 자지도 비계처럼 부드러웠지. 내 시는 반드시 3박자 왈츠 템포로 읽어야 해. 우유 속의 모기가 한 방울의 피를 출혈하고 언젠가 다른 짐승의 목덜미에서 훔쳐낸 그 피는 우유 속에서 붉고 희미하게 흩어지네.
내가 과거에서 미래의 조각을 모으는 동안 메시아는 눈을 돌리고 있었지. 빛과 소리를 불어넣은 풍선들, 최초의 빛과 최후의 생일 축하 노래를 불어넣은 풍선들이 면도날에 찢겨 터지고 나는 양동이를 채우는 젖처럼 양동이를 채우는 암소의 고깃덩이처럼 울고 있어.
그런데도 듣고 있지 않다고.
너는 듣고 있지 않다고.
사물과 언어를 비추는 벌레들의 무수한 눈들에 내 반영은 없다고. 면도날에 비추어지는 게 보여? 이건 네 살이야? 네 언어야? 네 시야? 내가 여기서 너를 죽이면 너는 나를 기억할까. 내 언어를 기억할까. 너는 내 언어를 죽을까 너는 나를 죽을까? 들어봐 내가 네 목에 면도날을 들이대기 전까지 너는 아무것도 듣지 않았지 내가 신음 대신 어떤 언어로 울부짖는지 어떤 침묵으로 비명하는지 너는 듣지 않았지 제발 조용히 좀 해 제발 조용히 좀 해 뭐 아무말도 안했다고 그럼 내가 뭐라고 했는지 말해봐 네가 듣고 있었다면 앵무새처럼 나를 따라해봐 못하겠다고 살려달라고 좀 더 자세히 말해 봐 못하겠다고 살려달라고 좀 더 자세히 자세히 앵무새처럼 따라하라니까! 자 정적으로 미쳐버린 어린 새가 주변의 모든 소리를 모사하듯 말해봐 바람이 부는 소리 나뭇잎이 흔들리고 창틀이 삐걱거리고 먼지들이 부유하는 소리 무의미한 그 모든 소리를 게걸스럽게 모사하는 어린 앵무새처럼 말해봐 짖어봐 울어봐 제발 제발 내가 뭐라고 했지.
알을 빨아먹는 족제비의 주둥이처럼 내 입술은 축축하게 젖어 있다. 말이 나를 발음하며 멀어지는 것을 느낀다. 붕대에 묻은 상처가 공기 중을 둥둥 떠다닌다. 아이들은 아무도 듣고 있지 않다. 소름끼치는 정적도 없다. 가슴을 누르면 사랑한다고 노래하는 인형 그 소리가 시끄럽다고 너희는 인형의 머리를 부숴버렸지 문구용 가위로 인형의 길고 검은 머리칼을 잘랐지. 교단 위에 내동댕이쳐진 인형의 잘린 머리칼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고 나는 유리전구 속에 갇혀 밤과 화형의 시간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나방처럼 살아 있어.
침묵과 정적만이 나와 시선을 주고받는다.
i11년 4월 20일
i11년도 2학년 1학기 중간고사 일정을 다음과 같이 안내드리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과목 범위
도덕 죽음 – 태어남 – 잔존
국어 의미 없는 음운 – 소리가 너희를 발음할 때
사회 잉여사회 – 짐바르도의 간수들과 죄수들 – 실존(탈존)
과학 동력장치 – 비누 – 인간
수학 유리수 – 0 – 극한
역사 유관순 – 천사 – 미래
영어 의문문과 평서문, 쪼개진 문장들
날짜/교시 1교시 2교시
4월 20일 역사 국어
4월 21일 도덕 영어
4월 22일 사회 과학
4월 23일 수학
1교시 역사
ii중학교 2학년 중간고사
시험을 보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역사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지 않았던 것을 보는 일입니다. 나는 이 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며 여러분에게 무엇인가를 보여주려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끝내 보이지 않는 일이 있었습니다. 나는 파리가 무서워서 여름에는 목을 매달지 않는 여자가 아닙니다. 우리 엄마는 추억처럼 사셨죠 여러분도 언젠가는 추억 속에서 살 테죠 하지만 나는 추억 속에서 살 수 없었습니다 과거에는 영광도 안전도 없었죠 과거는 그리 아름다운 영토가 아니었습니다. 우리에게 있어 과거는 더욱 그럴 것입니다. 여러분은 착취의 역사에 대해 분노하거나 냉소적이거나 무감각했습니다. 여러분은 제 말을 미치도록 귀 기울여 듣거나 전혀 듣지 않았습니다. 제가 칠판에 적어내리는 단어 하나하나를 뚫어져라 바라보거나 보지 않았습니다. 나는 칠판에 목을 매단 한 명의 여자를 그리고 싶었습니다.(내가 그녀의 얼굴을 그리기 전에 여러분은 그녀의 이름을 외치지 않았죠. 선생님 이건 시험에 안 나오죠? 하고 물어볼 정도로 눈치 없는 아이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그건 물론 시험범위였습니다 물론 시험범위였습니다 검은 세계에 그려진 모든 획이 시험범위입니다) 인간과 태양과 지상과 숲과 짐승들의 역사에 대해 여러분은 저마다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유골의 치아 위에서 춤을 추는 작은 파리가 그리고 있는, 도래하지 않은 과거의 이미지가 있을 것입니다. 죽은 여자의 살과 피로 빚어진 이미지가 파리의 붉은 겹눈 속에서 상연되고 있을 것입니다.
시험 문제를 잘 읽어보세요.
문제는 객관식 여자문항, 주관식 단답형 파리문항, 서술형 흙문항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충청남도 공주에 있는 무덤은 중국 남조의 영향을 받아 벽돌로 만들어졌습니다. 이곳에서 출토된 묘지석에 이름을 새긴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름을 새긴 사람들의 이름들의 획을 모두 더한 값은 무엇인지 고르시오.(30점)
①54982
②543098
③10583509235
④5325123532535
⑤0
2. 제주도에 표류한 인어의 이름을 쓰시오. 그녀가 어떤 책을 쓰려 했는지 쓰시오.(4점)
3. 유관순과 함께 걷던 여자들이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 걸었는지 쓰시오.(50점)
4. 그녀들이 무엇이었는지 무엇이 되려 했는지 아십니까?(40점)
5. 토지 조사 사업을 벌일 무렵의 소들이 자신을 어떤 방식으로 불렀는지 쓰시오.(50점)
6. 생일에 거울을 보고 다음과 같은 말을 읊은 남자가 어떤 역할을 맡았는지 고르시오.(3점)
나는 여기에 없어. 여기는 있는데 나는 없어 내가 얼마나 오래 연기했는지 내가 얼마나 연기를 갈망했는지 신조차 알지 못하네. 신이 알지 못하는 것을 나는 알고 있지. 나는 너무나 무대를 바랐네 무대 위에 도려낸 내 심장을 올려놓을 만큼. 내 심장이 무대 위에서 썩어가는 걸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지 내 심장이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것을, 그곳에서 비명을 지르고 울부짖고 대사를 읊는 것을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지. 내가 그곳에서 얼마나 죽어갔는지 내가 여기에서 얼마나 살았는지 아무도 발견하지 못해 관객들의 눈 가장 범상한 것을 기대하는 눈조차도 없이 내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아무도 증언하지 못하겠지. 나는 이곳에서 모든 말을 할 수 있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어. 나는 이곳에서 모든 것을 연기할 수 있고 아무것도 연기할 수 없어.
① 이상
② 이상이 아닌 시인
③ 이름이 부재하는 자리에만 존재하는 익명의 시인들
④ 시로만 남은 무명의 시인들
⑤ 단 하나의 언어조차 남지 않은 부서진 언어들
7. 유관순이 기르던 어린 암캐가 하려 했던 말을 고르시오.(4점)
① 내가 누구인지 알려줘.
② 왜 나를 듣지 않는 거야
③ 나 목이 말라 너무 목이 말라서 견딜 수가 없어
④ 사랑해
⑤ 내가 살고 있는 시간을 뭐라고 부르지 뭐라고 부를지 알고 싶어 나는 너무 오래 살았어 나는 너무 오래 살아 있었어 내가 얼마나 많이 죽었는지 아무도 세어주지 않았어 나는 밤마다 낮에 일어난 일들을 꿈꾸었지 그렇게 나는 하루에 두 번을 살았어 하루에 두 번 다음날 밤에는 이전 밤에 꾸었던 두 번째의 낮까지 네 개의 낮을 그렇게 열 여섯 개의 낮을 서른두 개의 밤을 나는 무한히 되풀이하여 살았어 내가 얼마나 어린지 얼마나 긴 어린 시절을 살았는지 아무도 알 수 없을 거야 나조차도 세는 것을 그만두었으니 나는 네가 걷는 것을 보았어 긴 길을 걷는 것을 나는 내가 긴 길을 걷는 것을 보았어 단 하나의 금지된 국기도 없이 네가 네 아버지와 딸들의 국기를 들고 걷는 동안 나는 내 창백한 가죽을 들고 걸었는데 아무도 나를 붙잡지 않았어 그건 금지된 이미지가 아니었던 거야 내 가죽에 뒤덮인 무늬들을 아무도 읽지 않았던 거야 누가 나를 해독해 준다면 누가 나를 읽어 준다면 누가 나와 함께 걸어 준다면 아 내 어린 주인아 짐승들이 소리들이 언어들이 이미지들이 너무 많이 그 많은 금지된 이미지들을 아무도 신경쓰지 않아 내가 말하기 위해서 내가 금지되기 위해서 내가 두려운 병이 되기 위해서 무엇을 하면 좋을까 내 가죽을 주름잡은 그 아프고 절박한 무늬들은 모두 무엇을 위해? 아무도 듣지 않는 언어가 대체 무엇 때문에 내 안에서 요동치며 나를 찢어발기는 것일까. 나는 투사가 될 수 없겠지. 나는 자랑스러운 깃발을 들어올릴 수 없겠지. 내가 들어올리는 내 아픈 깃발을 아무도 발견하지 못하겠지. 죽는 개들은 너무 많고 암캐들이 울부짖는 소리는 어디에나 있어. 들리지 않을 정도로 너무 많이 너무 크게 우리들은 울부짖고 있는데 나는 그 속에서 홀로 울부짖고 있어. 무한히 불어나는 밤에 나는 계속해서 내 가죽의 언어를 읊었어. 내가 무엇을 바라는지 나는 알고 있어. 내가 무엇이 될 수 없는지 내가 무엇이 되고 있는지 나는 알고 있어. 나는 그것의 빈 자리를 선명하게 보고 있어. 네가 나와 같은 시간에 감금되었다면 그래서 네가 읽을 수 있는 무늬가 오직 내 삶의 주름뿐이었다면 나는 기꺼이 네게 내 가죽을 선물했을 거야. 하지만 너는 떠났지. 내가 가 닿을 수 없는 거리로 이름으로 내 것이 아닌 국기를 들고서. 나는 네 나라의 국민이 아니네 나는 네 국기 아래에 서 있지 않네 그것은 내 언어로 짜인 국기가 아니었지. 나도 걷고 싶어 하지만 함께 걷는 사람 없이 그림자조차 없이 내가 무엇을 걸을 수 있겠어? 내 속에서 거북스럽게 불어가는 언어를 어찌 하면 좋을까 이 이미지들을 나는 매일 홀로 삼키고 홀로 토해내네. 내가 물어뜯은 것들의 이름을 알고 싶어. 내가 먹은 것들의 이름을 내가 먹일 것들의 이름을 알고 싶어. 형체 없는 언어들이 나를 파먹고 나를 살찌우네
2교시 국어
ii중학교 1학기 중간고사
객관식 I문항 주관식 단답형 k문항 서술형 숲문항
주관식 문제는 반드시 흑색이나 청색 펜으로 쓰시오.(다른 색 펜으로 쓸 경우 0점 처리됩니다.)
다음과 같은 글을 읽는 방식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4점)
내 유서를 아무도 읽지 않겠지. 어린 쥐는 말했다. 내 눈이 바깥을 향할 만큼 밝았다는 것을 아무도 믿지 않겠지. 결박된 우주. 언어는 생명을 깨물고 춤을 춘다. 내가 이곳에 살아서 본 이미지들. 색 없는 색들의 가상들. 나는 이미지들과 함께 숨바꼭질을 했어. 내가 숨는 동안 이미지들은 나를 찾지 않았고 이미지들이 숨어 있는 사이 그것들을 쫓아 다닌 것은 존재하지 않는 시간을 포착하는 응시였어. 결박된 우주에서 불타고 있는 비계처럼 부드러운 나비들. 언어로 가득 찬 눈이 푸르게 불거져 나오고 잠보다 긴 꿈 속에서 나는 내가 없는 것을 보았어. 육체 속에 매장도니 질서들. 독이 묻은 하얀 잉크가 배를 따라 흘러내리고 나는 이제 내 턱을 찌르고 내 폐를 관통하는 이빨로 그것을 깨무네.
① 배경지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읽는다.
② 주제나 중심 생각을 추론하며 읽는다.
③ 드러나지 않은 언어를 들여다보며 읽는다.
④ 글쓴이의 생각이 증명 가능한지 따져보며 읽는다.
⑤ 글쓴이가 실존하는 인물인지 지금 보이는 언어가 환각은 아닌지 따져보며 읽는다.
2. 다음 시에서 불가능한 것을 고르시오. (5점)

① 원
② 직선
③ 원-직선
④ 원을 관통하는 직선
⑤ 원 위에 있는 직선
3-7 다음 글을 읽고 문제에 답하시오.
(가)
안녕. 내가 이런 글을 몇 번이나 썼는지 몰라. 이런 글이 몇 번이나 사라졌는지 몰라. 꿈 속에서 나는 항상 글을 쓰고 있었지. 내가 쓰던 글이 편지라는 것을 깨닫기까지 오래 걸렸어. 내가 쓰던 편지가 모두 백지라는 것을 깨닫기까지도 오래 걸렸어. 피로 채운 전구 속에서 흐르는 전류가 하얗게 빛나 결국 내가 마지막 순간에 쓰는 편지는 가장 범상한 은유들로 가득 채워지겠지. 나를 운반하는 은유들이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지, 알고 있니? 두더지들이 전선을 물어뜯고 있어. 두더지들의 검은 잇몸 속을 파고드는 전깃줄이 무엇을 실어나르는지 알고 있니? 나는 이런 편지를 너무 많이 썼어. 성스러운 창녀들이 십자가를 애무하고 십자가를 등에 진 작은 벌레는 내장이 터진 채로 바둥거리고 있어. 내가 쓴 백지의 문장들 하나하나가 이글거리며 꿈틀대고 있어. 그게 내 입 속에서 내 내장을 물어뜯고 있어. 고통의 환희로 비명을 지르는 히스테리 언어들. 나는 사실 남길 것도 전할 것도 없어. 내가 살아있었다는 증거를 보여 줘. 내가 죽을 수 있다는 증거를 보여 줘. 내가 죽지 않는 동안,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내가 얼마나 많이 죽었는지 알려 줘. 우리가 쓴 유서들은 변기 속으로 떠내려가고 참지 못하고 토해낸 언어의 가장 진한 찌꺼기들이 모인 하수구에서는 슬픈 악취가 나네. 나는 보편의 특수였고 특수의 보편이었으며 놀랍도록 능동적인 수동성이었고 동시에 끔찍하게 수동적인 능동성이었지 나는 천사들을 로드킬하려 했어. 천사들이 길을 건너는 찰나 그 애들의 날개뼈를 길고 하얀 다리를 부러뜨리고 그 몸 위를 지나가고 싶었어. 존재할 수 없는 몸 위를 살도 뼈도 없는 몸 위를 그러나 짓무른 살의 냄새가 풍기는,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리는, 그 불가능한 몸. 로드킬당한 천사들이 나를 올려다볼 때, 나는 천사가 되기를 원했어. 나는 로드킬당한 천사가 되기를 원했어. 나는 누군가 나를 로드킬해주기를 그래서 나를 내려다보고 내 이름을 내 몸을 증언해주기를 바랐어. 나는 나를 로드킬하길 바랐어. 하지만 천사들은 도로를 건너지 않지. 천사들은 길을 건너지 않았고 나는 길 변두리에서 오래도록 혼자였어. 그곳에서 나는 눈을 뜬 채로 많은 꿈들을 꾸었지. 같은 장소에서, 같은 부재에서, 같은 시간의 점에서 계속해서 반복되는 어지러운 꿈들. 꿈은 희망도 악몽도 아니었어. 그러나 희망과 악몽이 없지는 않았지. 사랑을 나누는 상어들의 검붉은 물보라. 유리 골목에 어린 인부들이 세운 처형대. 나는 실패한 사랑과 실패한 죽음을 모두 보았네. 실패라는 것은 전해지지 못한 것. 존재도 탈존도 증명되지 못한 것. 논리적인 무수한 흠결들, 흠결들의 빈자리. 하얀 그림자의 경계마저 완전히 사라져버린 현상과 외부세계의 경계-없음. 정의상 존재할 수 없는 모든 생명들. 그 생명들을 차라리 전부 로드킬 해 도로를 건너고 있는 암사슴의 영령들이 더 이상 무한한 꿈의 미로 속을 헤매지 않아도 되도록, 하고 나는 바랐지. 하지만 유리로 만든 처형대로 아무리 걸어도 그곳에 도착할 수 없네. 그곳으로 건너가는 길에 아무도 나를 로드킬하지 않네. 로드킬당한 천사들이 천국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을까? 암사슴의 천사 암소의 암코양이의 천사들 그녀들은 더 먼 곳까지 건너려 했지. 그녀들은 더 오래 건너려 했지. 내가 가 닿지 못한 곳을 내가 꿈꾸던 곳을 그녀들도 꿈꾸었을까
3.다음은 (가)에 대한 반 친구들의 대화이다. 적절하지 않은 말을 한 사람은? (5점)
① 수희 : 화자는 곧 죽을 거야.
② 세연 : 화자는 이미 죽었어.
③ 경진 : 화자는 누구지?
④ 태민 : 화자는 혼란스러워 하고 있군.
⑤ 윤아 : 화자는 없어.
4.(가)의 내용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한 것을 고르시오.(5점)
① 화자는 로드킬당하기를 바라고 있다.
② 로드킬 당한 동물들은 화자이다.
③ 로드킬 당한 동물들은 천사의 육신을 가지고 있다.
④ 천사를 로드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⑤ 천사는 로드킬 당하기 이전에도 존재한다.
5-6
<보기>는 (가)를 읽고 나눈 대화이다.
<보기>
선생님 : 화자는 이 글을 [A]로 썼습니다. [A]에서 화자는 무엇을 전하려 하는 걸까요?
학생 : [B]
선생님 : 그래, 맞아요.
5. [A]에 들어갈 말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5점)
① 편지
② 유서
③ 독자 없는 글
④ 미래
⑤ 불가능
6. [B]에 들어갈 말을 다음 조건에 맞추어 30자 내로 쓰시오 [7점. 부분 점수 있음.]
<조건>
화자가 처해 있는 상황을 밝힐 것.
화자의 존재 (불)가능성에 대한 단어를 본문에서 찾아 인용할 것.
3. 완결된 문장으로 쓸 것.
7. (가)를 읽고 떠올린 질문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4점)
① 화자는 몇 개의 꿈을 꾸는 걸까?
② 로드킬에 대한 화자의 생각을 이해하기 어렵군. 화자는 동물들이 로드킬 당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너무나 가능하여 고통을 느끼고 있는가?
③ 천사들은 천국에 가지 못했기 때문에 로드킬을 당한 것일까? 천국에서도 로드킬을 당할 수 있을까?
④ 화자는 이미 로드킬당한 것일까?
⑤ 화자는 천사인 것일까 아니면 천사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8-9 다음 글을 읽고 문제를 푸시오.
(가) 그녀는 얌전히 사지를 내맡겼다. 그들은 부드러운 손길로 여자에게서 피를 빼내었다. 익숙한 고통과 익숙한 나른함, 익숙한 어지러움. 천 번의 절단을 맞이하는 죄수처럼 여자는 몸에 힘을 뺀 채 그들이 여자에게서 가져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자의 끔찍하게 마른 다리들이 거꾸로 뒤집힌 채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여자는 그녀를 도려내는 이미지들을 말 없이 바라보았다. 넌 착한 아이야. 여자에게서 피를 뽑아낸 뒤 그들은 그녀의 이마를 쓰다듬었다. 여자는 이를 드러내지도 몸을 빼내지도 않았다. 그녀는 망각처럼 질척한 혼몽 속에 드러누워 있었다. 난 착한 아이야. 내 피로 내가 살린 그 많은 개들에게는 이름이 있어. 내게 없는 이름을 그들은 가지고 있었지. 솜사탕 라떼 우유 카푸치노 바닐라 스트로베리 부드럽고 달콤한 사물의 이름들. 내 피로 부풀어오른 달콤한 어휘들의 배를 보고 싶어. 그녀는 생각했다. 그들은 그녀의 다리에 붕대를 감아준 뒤 그녀의 목에 단단한 목줄을 채웠다. 그녀의 목줄은 응급실 앞 울타리에 매였다. 그다지 길지 않은 목줄이었으나 불편함은 없었다. 그녀는 일어서 멀리까지 달리기에는 너무나 지쳤으므로.
(나) 귀신의 얼굴
여자는 납치범으로부터 전화를 받는다.
안녕하세요. 아이를 찾고 있으시죠?
그래요. 여자는 대답한다. 내 아이를 데리고 있나요?
그래요. 납치범은 대답한다.
아직 살아 있나요? 여자가 묻는다.
산타마리아의 디스파히시옹 호텔. 오후 7시.
뭐라고요? 여자가 묻는다.
뭐라고요? 납치범이 되묻는다.
잘 못 들었어요. 뭐라고 했죠? 여자가 묻는다.
산타마리아의. 들려요? 납치범이 묻는다.
들려요. 산타마리아의? 여자가 되묻는다.
산타마리아의. 납치범이 대답한다. 그런데 돈은?
돈이라고요? 얼마나 필요한데요? 여자가 묻는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죠. 납치범이 말한다. 여자는 가스등의 나방들이 타들어가는 냄새를 맡는다. 여자는 소스라친다. 도마 위에서 반토막 난 곤충처럼 여자는 경련한다. 아이를 납치했다고요? 여자는 묻는다.
그래요. 납치범이 대답한다.
아이가 어디 있다고요? 여자는 묻는다.
그래요. 납치범이 대답한다.
어제는 그 애 생일이었고 같이 고기를 먹었는데 그 애가 좋아하는 물고기였죠 물고기 좋죠 물고기 낭만적이잖아요 물에서 사는 고기에요 물고기 물고기 케이크를 만들어 줄 걸 그랬어요 케이크는 정말 반짝거렸어 은색 비늘을 겹겹이 붙여 놓은 것처럼 빛났지 그런데 아이가 어디 있다고?
그래요. 납치범이 대답한다.
여자는 진공관 속에서 잠든 어린 새들을 떠올린다. 새들이 움찔거릴 때마다 진공관 속에서는 하얀 균열 같은 스파크가 반짝인다. 여자는 중얼거린다. 나 트럭이 밟고 지나간 아이를 봤어 그 애 얼굴을 알아볼 수는 없었지 그 애에게는 얼굴이 없었으니 이건 내 아이가 아니야 하고 나는 외쳤어 이건 내 아이가 아니야 그런데 내 아이가 어디에 있다고?
산타마리아의 디스파히시옹 호텔. 오후 7시.
오후 7시가 되기 전엔 내 아이가 없다고? 오후 7시가 지난 뒤엔 내 아이가 없다고?
긴 꿈을 꿨나 보군요. 납치범은 다정스럽게 말한다. 꿈에서 깨어난 뒤에도 삶이 있다는 걸 당신은 알 거예요. 생새우들이 푸른 핏줄을 뜯어먹는 동안에도 찢어진 전선에서 더 이상 이전과 같은 이미지가 흘러들지 않을 때도 남아 있는 무엇인가 있다는 걸 당신은 알 거예요.
내 아이 내 아이가 얼마라고? 내 아이를 사려면 얼마가 있어야 한다고?
오후 7시 이전에 말인가요? 아니면 오후 7시 이후에? 7시 이전이나 이후에는 살 수 없어요. 산타마리아의 디스파히시옹 호텔이 아니라도 마찬가지고요.
8. (가)의 화자에 대한 감상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을 고르시오.(4점)
① 영희 : 화자는 무력감을 느끼고 있어.
② 유라 : 화자는 피를 착취당하고 있어.
③ 철민 : 화자는 희생이라는 관념에 착취당하고 있는 거야. 난 성스러운 죽음이라는 말이 지긋지긋해.
④ 희영 : 화자는 공혈견이야.
⑤ 민수 : 화자가 너무 가엾어.
9. 다음 중 (나)의 뒤에 이어질 내용으로 적절한 것을 고르시오.(5점)
① 나는 즐겼다와 너는 즐겼다 사이의 심연에서 나는 내 잃어버린 아이를 발견할 것이다.
② 산타마리아는 존재하지 않는 장소에요 그런 지역은 지도에 없다고요.
③ 오후 7시는 시계에 없는 시간이야. 그럼 내 아이는 시계 바깥에 있겠군.
④ 난센스는 죽음인가 삶인가?
⑤ 내 아이가 존재한다는 증거는 내 아이가 존재했다는 사실이므로 내 아이가 존재했다는 증거를 댈 수 없다면 내 아이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인가?
10-11. 다음 글을 읽고 문제를 푸시오.
(가) 그녀는 폭탄을 품고 있었다. 그녀의 자궁에서 자라는 것은 태아가 아닌 죽음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가? 그녀의 내밀한 곳에서 폭탄은 그녀의 몸이 되었다. 떼어낼 수 없는 몸. 너무나 그녀와 밀착하여 떼어내기 위해서는 산산조각날 수밖에 없는. 그것은 그녀가 전할 수 있는 유일한 언어였다. 그녀가 폭탄을 품고 가기 전에 그녀는 많은 언어를 토해내었다. 예컨대,
틀린 연산 view 1 like 0 comment 0
나는 틀린 연산을 원한다. =의 양쪽에 들어차지 않은 항들이 발견되길, 그 항들 때문에 =이 기울어진다고 해도, 나는 =의 틈을 벌리고 기울어지길 원해. 죽은 사슴 앞에서 브이자를 그리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 사슴의 죽음과 시체의 보존 그 사이의 =이 기울어지기를 바라.
그녀가 폭탄과 함께 걸을 때, 그녀는 그것을 전할 사람을 물색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예상된 독자 같은 것은 중요치 않았다. 이 글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물론 그녀가 아닌 누군가. 그 언어는 누구에게나 전해질 수 있을 것이다. 삶과 죽음의 변증법에 속해 있지 않은 생물은 어디에도 없으니까. 그녀는 공원 벤치에 앉아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보았다. 그녀의 자궁에 심긴 언어는 저 아이들과 함께 자라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이 미치게 고통-하는 동안 여자에게 어떠한 원한도 없다는 것을 아무도 믿지 않겠지. 여자는 누군가와 닿기를 원한다. 닿아서 전해지는 것이 사랑과 일상이 아니더라도, 여자는 누군가 그녀의 언어로 달아오르기를, 그녀의 언어로 변하기를, 그녀의 언어로 미치기를 바란다. 커다란 붉은 리본을 머리에 매단 여자아이는 벌거벗은 인형을 흙바닥에 질질 끌며 걸어가고 있었다. 여자는 여자아이에게 다가가 물었다. 사진 찍어줄까? 사진이요? 왜요? 여자아이는 검고 큰 눈으로 여자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찍어줄까? 여자는 다시 물었고 여자아이는 망설이듯 주위를 둘러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는 양손으로 프레임을 만들어 여자아이의 얼굴과 인형의 얼굴을 프레임의 빈 공간에 담았다. 프레임을 내렸을 때 여자아이는 여자에게 물었다. 집에 데려다줄까요? 여자는 괜찮다고 대답했다. 날 납치할 거예요? 날 죽일 거예요? 날 다른 무언가로 바꿀 거예요? 돈으로? 과거로? 여자아이가 물고기처럼 뻐끔거렸고 여자는 여자아이에게 인형이 무섭지 않느냐고 물었다. 여자아이는 웃으며 인형이 왜 무섭냐고 말했다. 인형이 아무것도 입지 않아서 무섭지 않아? 여자가 묻자 여자아이는 괜찮다고, 인형은 해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해골 view1 like0 comment0
세이렌의 해골은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다. 희고 풍성한 레이스가 해골의 앙상한 몸을 감싼다. 선원은 선미에 서서 해면동물들이 달처럼 번들거리는 바다를 바라본다. 해골이 그의 옆에 선다. 해골의 늘어진 자줏빛 입술이 벌어지고 붉고 두툼한 혀가 드러난다. 조개처럼 벌어진 두개골에는 달콤한 악취가 진동하는 무른 열매가 있다. 시간이 박동하는 동안 메시아의 두개골을 벌려 신랑신부는 죽은 자를 위한 붉은 사탕을 꺼냈다.
10. (가)에 대한 감상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12점)
① 무덤 같은 몸속에 묻혀 드러나지 않던 언어가 가장 충격적인 형태로 발산되겠군. 능동적이고 파괴적인 연약함이 가장 전복적이고 파괴적인 전복을 이룰 때, 몸과 몸을 이루던 배치, 침묵과 언어를 이루던 배치는 모두 바뀌겠군.
② 바닷속의 광부들은 붉은 혀를 가진 진주조개의 유골을 캐고 있어. 이미 지나갔지만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여자는 미치게 기다리고 있어. 몸과 현재의 틈을 벌리고 출현하는 배치가 무엇일지 궁금해.
③ 그녀 자궁 속에 있는 아이는 그녀를 낳을 거야.
④ 그리고 그녀가 아닌 것을.
⑤ 그녀는 결코 대답을 듣지 못할 거야. 그녀는 대화를 나눌 수 없기 때문에 그토록 폭력적인 연결-해체를 택한 걸까?
11. 다음 조건에 따라 (가)의 중심적 이미지에 대해 약술하시오.(5점)
시간적 이미지, 시각적 이미지라는 용어를 사용할 것.
30자 이내로 쓸 것.
3. 무덤의 변증법적 역량을 중심으로 서술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