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11년 3월 9일

눈을 계속 감고 있으면 언젠가 눈이 썩어버릴까? 깨어나지 않으면 현실에는 곰팡이가 필까?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매일 일기 검사를 했다. 교사는 단정하고 부드러운 글씨로 편지를 쓰듯 내 일기장 한 면을 가득 채워 글을 적어넣고는 했다. 온화한 글씨들을 읽는 걸 좋아했는데 지금은 그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다. 삶은 갈수록 위태롭고 위험한 것이 되어가고 있다. 무엇보다 위험한 것은 불안정성보다는 영구적인 안정성이다. 무기질의 공백이 손과 발끝에서부터 몸 안쪽으로 번져들어온다.

나는 삶을 발명해야 한다. 어린시절과 청소년시절은 모두 나의 실패한 극본이다. 극본을 연기할 유일한 인물이 사라지고 난 뒤에도 극본의 자리는 검은 여백으로 집요하게 남아 있을 것이다. 나는 종종 나의 허상에게 보내는 러브레터로 일기장을 채우곤 했다. 허상에게는 얼굴도 이름도 없었다.

일기장을 검사하는 교사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교사는 내가 시를 쓰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대상을 갖지 못한 고백이었으며 수취인을 잃어버린 편지였다.

초경을 하던 날에도 일기를 썼다. 그날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나는 오래 전부터 젖어듬과 피에 예비되어 있던 듯 그것을 받아들였다. 시간이 지난 뒤에야 그날을 생각보다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그날 나는 다리가 없는 남자아이와 만났다. 그 애는 이동식 수레 위에 올라탄 채로 육교에서 그의 불구를 전시하고 있었다. 난 그 애 앞에 쪼그리고 앉아 수레 위에 엎드린 그 애를 내려다보았다. 햇볕 아래에서 하얗게 타들어가고 있는 그 애는 작고 연약한 벌레처럼 보였다.

그 애는 돈을 줄 거냐고 내게 물었다.

아니. 나는 지하철을 탈 돈 밖에 없어.

그럼 그거라도 달라고 그 애는 유달리 낮고 걸걸한 목소리로 말했다.

남자아이의 턱 아래에는 동전과 구겨진 지폐를 담는 캔이 있었다. 나는 그 캔 속에 손을 넣어 뒤적거려 보았다.

많이 모았네. 내가 묻자 남자아이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그 정도는 많은 돈이 아니라고 대답했다. 정말 많은 돈을 모으는 애들은 따로 있어.

그 애들은 어디서 구걸을 하는데?

내 물음에 남자아이는 위태롭게 웃으며 그 애들은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구걸을 한다고 말했다.

돈을 많이 버는 애들은 기부 프로그램에 나가는 애들이야. 너도 그런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지?

나는 그렇다고 답했다.

사랑의 모금, 전화를 하면 건당 500원씩 기부할 수 있지. 불구에다 가난하고 끔찍하게 운이 좋은 애들만이 그곳에 출연할 수 있어.

너도 나가면 안 돼? 나는 순진하게 물어보았고 남자아이는 갑작스럽게 흐느끼며 속삭였다.

아무도 나를 만나주지 않았어. 방송국까지 수레를 끌고 기어갔을 때 나는 다른 곳으로 갈 수 있게 되기를 기대했지만 아무도, 아무도 나를 들여보내주지 않았어. 경비는 내가 불구이고 거지이기 때문에 방송국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고 했어.

내가 들어가야 한다고 소리를 지르자 누구와 약속이 되어 있느냐고 물었지.

아니요. 아무도 나와 약속해주지 않았어요.

그러면 너는 들어갈 수 없어. 경비는 단호하면서도 안쓰러워하는 목소리로 말했고 나는 울부짖는 것 이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어. 난 보여줄 수 있는 불행의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는데도 나를 촬영하여 전시하기를 원하는 기획자는 없었지. TV에 나와서 눈물을 흘리는 어린아이들이 대체 어떻게 그곳으로 들어갈 수 있었는지 아무도 내게 가르쳐주지 않았어.

난 내게 기부하거나 기부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틈이 날 때마다 물어봐. 대체 어디로 가야 TV에 나올 수 있나요?

그러면 대부분 이렇게 답하지. 글쎄, 잘 모르겠구나.

그게 아니면 이렇게. 헤이, 스타가 되고 싶나 보구나. 안됐지만 스타는 갈구하는 자가 아니라 선택받은 자란다!

그게 아니면 이렇게! 빌어먹을 비렁뱅이가 꿈은 크군. 스타가 되겠다면 내 돈은 돌려줘.

제발 누군가 나를 선택해줘요! 누군가 나를 별로 만들어 줘요. 어때? 불구의 오디션이라도 있다면 그곳에 나가면 좋을까? 제발요. 우리 엄마는 지하철 유실물 사물함에 나를 두고 도망쳤답니다. 그보다 먼저 내 아빠는 내 엄마의 안에 독과 같은 병을 심어 놓고는 도망쳤답니다. 나는 유실물 사물함에서 기어서 도망쳤어요. 벌레처럼 기어서 말이에요! 내가 가장 처음 배운 말은 병신이랍니다. 나는 처음부터 병신이었고 불행한 아이였어요.

아마 난 그 오디션에서도 우승하지 못할 거야. 나보다 끔찍하고 절망적인 불구를 살고 있는 사랑스러운 어린아이가 혜성처럼 등장해 우승컵을 가져가겠지. 그 애는 처음부터 우승을 예측했다는 듯 수줍고 자랑스럽게 웃어보이겠지.

나는 그렇게 웃지 못할 거야. 난 목이 메도록 울어젖힐 수밖에 없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 그곳이 꿈이 아님을 확인하기 위해 내 중지 손가락을 그 자리에서 부러뜨리겠지. 아! 하지만 그럴 일은 없어. 정말로 없어. 왜냐하면 실패는 내 생의 가장 깊은 곳에 내장되어 있는 동력 장치니까. 나는 실패하도록 프로그래밍 되어 있어. 다리의 불구나 불행한 유년 따위 어디에나 널려 있는 절망일 따름이지. 나처럼 불행한 어린아이들은 셀 수도 없이 많을 거야. 세상에. 너 피를 흘리고 있구나. 너도 아이를 낳았니? 너도 죽은 아이를 낳은 거니?

바지 밑이 축축하게 젖어든 것이 느껴졌다. 남자아이가 말한 것처럼 피가 흐를 정도는 아니었다. 약간의 불쾌하고 메슥거리는 얼룩. 나는 아이를 낳지 않을 것이다. 그 애에게도 그렇게 말했다. 나는 아이를 낳은 적이 없고 앞으로도 낳지 않을 거라고.

그 애는 서글프게 중얼거렸다.

아마 우리 엄마도 나를 낳고 싶지 않았을 거야. 하지만 일이 이렇게 되어버린걸. 한 번 태어나버린 짐승을 취소할 방법은 어디에도 없지. 엄마는 나를 냄새 나고 습한 유실물 보관소에 버리고 가는 대신 내게 사형을 선고하고 내 목을 조른 뒤 사형 집행까지 그 자리에서 마쳐야 했어. 하지만 엄마는 그렇게 하지 않았어. 하긴 그녀에게 사형 집행인이 되라고 그 누구도 강요할 수 없는 노릇이지.

우리는 모두 사형 집행인을 기다리는 잊혀진 죄수들이야. 죄를 지었든 짓지 않았든 간에. 가장 큰 죄는 태어남이지. 하지만 누구도 자신의 죄를 막을 수 없어. 누구도 자신의 죄를 반성할 수 없고 누구도 자신의 죄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어. 누구도 용서받을 수 없으며 누구도 죄를 피할 수 없어. 사형을 피할 수 있는 자는 있어도 사형 선고를 피할 수 있는 자는 없지.

벌은 사실 사형 집행이 아닌 사형 선고와 기다림이므로 죽지 않는다고 해서 그리 특별한 것도 아니야. 신들조차도 사형 선고를 받은 죄인이니까. 부활과 재생은 파멸로의 더 깊고 몰지각한 침몰이야.

다리와 부모를 가진 삶을 나는 한 번도 살아본 적이 없지만 그 모든 걸 갖고 있었다 해도 행복했을 것 같지는 않아. 차라리 TV에 출연할 수 있을 정도로 끔찍한 화상이나 내상이 더 나았을 거야. 난 밤마다 형용할 수 없는 욱신거림에 시달리며 흐느꼈겠지. 그럼 적어도 그 고통이 고행이라고, 극심한 고통의 끝에는 구원이 있으리라고 착각할 수 있었을 거야.

지금은 구원을 믿지 않느냐고 나는 물었다.

남자아이는 내 핏자국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말했다. 그 애의 검은 입술은 허공에서 소리 없이 움직였고 나는 그 말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 애는 뭐라고 말했었나?

나를 구해줘?

나를 죽여줘?

혹은 나는 삶 속에서 구원을 발견하지 못했어. 죽음은 삶의 일부이므로 나는 어디에서 구원을 찾아야 할지 모르겠어.

오늘 오전이 지나갈 때까지 눈을 감고 바닥에 누워 있었다. TV에서는 소란스러운 소리가 흘러나왔으나 단 하나의 어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미세한 편린들이 공기중을 떠다니고 있었다.

눈을 감고 생각했다. 눈을 계속 감고 있으면 눈알이 썩어버릴까? 곰팡이 핀 홍채로 무엇이 보일까? 붉고 하얀 유리조각들이 내 눈꺼풀 위에서 내가 눈을 뜰 때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지금 눈을 뜨면 내 홍채는 유리조각들에 잠식당해 문드러져 버릴 거야.

나는 생각했다. 눈꺼풀 아래에서 어른거리는 희고 야윈 그림자는 내 유령이라고. 눈을 감고, 숨을 내쉬며, 경건한 신도처럼 기도할 준비가 되어 있었으나 무엇을 기도해야할지 알 수 없었다. 누군가 내 안에 극렬한 사랑을, 혼란을, 메슥거리는 불안정성을 분비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그것이 사냥감의 폭력이라고 해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오로지 농담을, 시를 위해서! 하지만 시도 신도 제물을 바라지 않는다. 제물을 원하는 것은 제물을 상상하는 자들뿐이다.

12시가 넘어서야 옷을 갈아입고-오랜만에 교복을 입었다. 교복 단추를 하나하나 채우고 블라우스를 치마 안에 집어넣으면서 내게 교복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집을 나섰다. 바깥으로 나가자 집의 유리창이 거센 햇빛을 난폭하게 반사하고 있어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았다. 안쪽에 있을 때 나는 누군가 나를 들여다보고 있을 것이라고 상상했다. 바깥으로 나온 뒤, 나는 그것이 불가능함을 깨달았다. 처음부터 나를 훔쳐보는 눈은 어디에도 없었던 것이다. 교과서 내부를 가득 채워 놓은 문드러진 도형들 이외에는.

지하도를 통해 반대편 출구로 나가 학교로 들어섰다. 봄의 교정은 아름답다. 담쟁이 넝쿨들은 진하고 탐욕스러운 녹색을 반사하고 있었다. 벽돌들의 균열은 섬세했고 교문을 지탱하고 있는 대리석 기둥과 회랑은 눈부시게 희었다. 하얀 비둘기들이 운동장에서 서성이며 순결한 검은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어떤 비둘기들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손가락처럼 작은 머리로 그것들은 아득한 천공을 셈하듯 바라보고 있었다.

구석 자리에서 가련하게 숨쉬고 있는 작은 비둘기를 들어올려 가느다란 목을 꺾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장미의 꽃봉오리를 찢어발기듯이 연약한 목을 부러뜨리고 싶었다.

왜냐하면 난 네게 다정하고 싶기 때문이란다. 왜냐하면 난 네게 사랑받고 싶기 때문이란다. 왜냐하면 난 너를 소유하고 싶기 때문이란다. 한 송이의 붉은 장미를 미칠 듯이 원하는 속박당한 여자처럼 나는 너를 원하고 있어.

그러나 비둘기들은 곧 지붕 위로 날아가버렸고 난 영원히 그것들을 잡을 수 없으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부드러운 잔인함으로 나는 식물 같이 여린 짐승들을 상처입히고 싶었지만 언제나 그렇게 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다.

지붕 위의 비둘기를 올려다보며 나는 그 작고 여린 목을 잘려나간 내 목 위에 봉합하는 상상을 했다. 봉합된 부위에서는 염증이 피어오르고 나는 싯누런 염증을 질질 흘리면서 오로지 상처만으로 웃는 것이다. 벌어진 장미처럼. 나는 피투성이 얼굴을 뜯어내고-그것은 이미 부패할 대로 부패해 검푸르게 변해버린 가죽 가면이다-어린 새의 희고 천진한 얼굴을 피에 젖은 손으로 봉합한다. 봉합 부위는 언제나 벌어져 있고 언제나 역겨운 냄새를 풍기며 웃고 있다.

나는 붉다. 나는 검다. 나는 봉합선이 그대로 드러난 머릿고기다. 밀폐된 공간에서 나는 내게서 진동하는 부패의 악취를 맡는다. 파리들은 언제나 내 머리를 향해 달겨든다. 누군가는 내가 썩은 고기임을 눈치채고 말 것이다. 누군가는 내가 발간 속살을 가진 생고기라는 것을 눈치채고 말 것이다. 누군가는 내가 출혈처럼 고통스럽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말 것이다.

엘리베이터에서 누군가는 내 악취를 맡고 코를 찡그리지만 곧 모른척하고 열린 문 밖으로 나선다. 나는 그를 따라가지 않는다. 어떨 때는 내게서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는 것 같다. 악취조차도 피비린내도 나지 않는 것 같다. 그럴 때 나는 나를 잊는다. 나는 거울에 비추어진 빛의 망상, 표면의 일그러짐에 불과하다. 하지만 어떤 때 나는 고통으로 벗겨진 벽처럼 살아 있다. 혈관 속에서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치는 물고기처럼 살아 있다.

담임교사는 지각한 나를 벌주기 위해 교단 앞에 나를 세운 뒤 노래를 부르게 했다. 반 애들은 내게 수치를 요구하듯 키득거렸지만 나는 거리낄 것이 없었다.

난 폭발적이고 아름다운 노래를 부를 만한 역량이 없었으므로 차라리 음치처럼 노래했다. 중간중간 음을 터무니없이 올리고 내려서 쉰 목소리를 내자 아이들은 키득거림을 멈추었다.

반 애들은 지루해했고 교사는 내게 그만하라고 했다.

다음부터는 지각하면 안 된다.

내가 자리에 돌아갈 때가 되어서야 아이들은 예의를 갖추듯 몇 초간 수군거리며 웃었다. 오, 드라마 대사처럼 내게 진심으로 노래하고픈 욕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희극을 위해 마련된 무대에서 비극을 연기하는 것은 또다른 희극일 뿐이다.

하교하는 길에 그 애는 내가 음치인 줄 몰랐다고 키득거리며 중얼거렸다.

난 음치가 아니야. 노래를 잘 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 애는 부끄러워 하지 말라고, 자신 역시 음치라고 밝혔다.

그 애가 너무나 명랑하게 기뻐하는 바람에 나는 미묘한 죄책감을 느꼈다. 휘갈겨쓴 내 메모를 본 친구가 우리 모두 악필이라며 좋아하며 짙은 친근감을 표할 때 내게 덮쳐오는 죄악감과 유사했다.

하교하기 전까지 그 애는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음악 시간에 얌전히 출석번호대로 음악실의 빈자리에 앉아 음악 교사가 오기를 기다릴 때도 그 애는 다른 아이들이 자기 무리의 친구들에게 그러하듯 내 자리에 다가오지 않았다. 나 역시 그 애의 자리로 찾아가지 않았다.

우리는 모르는 사람처럼, 함께 손을 잡고 수다를 떨며 점심을 먹고 하교하지 않는 것처럼 서로를 무시했다.

음악 교사가 자리를 비운 시간이면 재능이 있거나 호기심이 넘치는 아이들이 교단 옆에 있는 피아노에 앉아 연주를 하곤 했다. 검은 그랜드 피아노, 야마하였다. 나는 한 번도 그랜드 피아노를 연주해 본 적이 없었다. 피아노 위에 손을 얹고 소리를 듣고 싶었으나 내가 연주하면 다른 아이들은 입을 다물고 죽은 듯 침묵할 것이다. 끔찍하게 잘 연주할 자신이 없다면 나 같은 아이는 결코 연주할 수 없었다. 절망적인 압력이 나를 짓눌러 질식시킬 것이다.

인기 있는 애니메이션의 주제곡을 치는 아이, 쇼팽을 능숙하게 연주해 찬사를 받는 아이, 어설프고 사랑스럽게 고양이춤을 치는 아이. 그 사이에 내 자작곡이 비집고 들어설 시간은 없었다.

음악 교사가 음악실로 들어온 뒤 우리는 기타를 연주했다. 합주 시간이 되면 나는 어김없이 기타에서 손을 떼었다-이번에는 음악 교과서를 가져왔지만-. 다른 애들이 기타 연주하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음악 교과서에 시를 썼다. 낙서 같기도 하고 칼날 같기도 한 시들은 끔찍이도 많았다. 나는 너무 많은 시를 썼고 그 시들이 나를 짓눌러 삼켜버릴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교를 할 때 그 애는 자기 엄마에 대해 말해 주었다. 그 애의 엄마의 일생 목표는 3류 시인이 되는 일이라고 했다. 3류 문학지에 꼬박꼬박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3류 시인. 3류 시인이 되는 것은 불가능한 기적이다. 아마 네게도 마찬가지일 거야. 하지만 그래도 너는 계속 시를 쓰겠지. 그 애는 씁쓸하게 말했다. 마치 실패가 예정되어 있는 것이 내가 아니라 그 애인 양.

나는 시를 쓸 때마다 죽는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나는 매번 죽음 이후를 쓰는 셈이야. 죽음 이후의 삶은 믿을 수 없이 길어. 앞으로 나는 몇 번을 더 죽어야 할까?

그 애는 시를 그만 쓰면 안 되느냐고 보채듯 물었다.

나는 울면서 그럴 수 없다고 대답했다.

그 애는 자기 엄마에게 이야기한 것이다. 그런데도 그 애가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믿음을 지울 수 없다. 나도 언젠가 그 애를 낳게 될까? 하지만 나는 아이를 낳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아이를 낳고 싶지 않다. 나는 오직 나를, 내가 아닌 나들을 낳는다. 내 자궁은 검게 짓물러 썩어가고 있다. 부패해가는 내장에서 무한한 괴물들이 잉태된다. 나는 지방질의 눅눅하고 부드러운 삶으로 감싸인 죽음을 낳는다. 내가 낳는 것은 결국 죽음이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삶이기도 한다. 하나의 죽음은 무한한 삶을 갖는다. 하나의 삶은 무한한 죽음을 갖는다. 믿을 수 없이 불온한 내 죽음들. 괴물들은 흘려쓴 획의 다리로 기어 구석자리로 사라진다. 어떤 언어는 나로부터 완전히 도망치고 만다. 하지만 어떤 언어들은 짓물러 악취를 풍기는 몸으로 내 안에 남아 있다. 나는 내 죽음들의 시체로 병들었다. 살아 있는 부분도 조만간 썩을 것이다. 썩은 채 살아 있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시? 얼마나 많은 죽음? 얼마나 많은 삶? 얼마나 많은 아픔? 얼마나 많은 실패? 얼마나 많은 기다림? 얼마나 많은 아름다움? 얼마나 많은 사산? 얼마나 많은 피? 얼마나 많은 눈물? 얼마나 많은 생명? 얼마나 많은 난자? 얼마나 많은.

누군가 내 다리를 잘라 주면 나도 그 남자아이의 옆에서 내 불행을 전시할 수 있을 텐데. 내 아픔은 너무도 은밀한 비밀이어서 아무에게도 보여줄 수 없다. 내가 괴물이라는 것을, 내 자궁이 검다는 것을 아무도 믿지 않는다. 하지만 불구를 꺼내어 보여준다고 해도 크게 다를 바는 없다는 것을 남자아이는 내게 가르쳐 주었다. 오직 몇 개의 반짝이는 동전들과 토사물이 묻은 지폐 몇 장뿐. 연민과 비웃음, 혹은 순간의 눈맞춤뿐.

나는 피가 묻은 몸으로 그 애를 끌어안아 위로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남자아이는 너무 더러웠고 나는 악취가 묻을까봐 그 애를 안지 않았다. 오늘, 자기 엄마를 사랑하듯 나를 사랑하는 그 애를 안지 않았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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