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11년 3월 4일
그 애가 또 말을 걸었다. 하지만 쉬는 시간에 말을 걸지는 않았다. 점심시간과 하교시간. 그 외의 시간에 그 애는 다른 애들을 보고 있었다. 친구를 가진 다른 애들이 말을 걸기 시작하면 그 애는 더 이상 내게 말을 걸지 않을 것이다. 더 이상 그 애의 이름을 알아내려 애쓰지 않아도 될 것이다.
하얀 원피스를 입고 있는 소녀가 어두운 골목길을 지나간다. 골목길은 검은 빛을 반사하는 거울로 뒤덮여있다. 빛은 소녀의 몸을 파고들 정도로 강하지만 소녀의 눈은 어둡다. 골목길은 어둡다. 골목길에는 끝이 없다. 하나의 골목길은 다른 골목길들로 퍼져나간다. 그러나 소녀는 그녀가 헤매고 있음을 알지 못한다. 거울들은 소녀에게 눈 먼 세계를 기억하라고 말한다. 검은 전구를 기억하라고, 팽창과 분열을 반복하며 번져나가는 꽃들을 기억하라고. 하지만 소녀는 기억할 것을 갖지 못했다.
소녀는 하나의 둥글고 하얀 살덩어리이다. 소녀는 짐승이다. 짐승은 과거도 미래도 갖고 있지 않다. 그렇다면 짐승은 살아 있지 않은 것인가? 하지만 짐승은 살아 있다. 살아 있다. 살아 있다.
그 애가 말을 거는 게 싫다. 끔찍할 정도로 싫다. 난 누군가 창문을 열어주기를 기다린다. 열린 창문 안으로 하얗고 날카로운 화살 같은 새가 파고들기를 기다린다. 새가 내 목을 물어뜯기를 기다린다. 살고 싶다. 죽고 싶을 정도로 살고 싶다. 아무도 읽지 않는 시를 쓸 정도로 살고 싶다. 누군가 내 시를 빼앗아 읽어주었으면. 누군가 나를 찢어버리고 불태웠으면. 누군가 내 재 때문에 죽어버렸으면. 누군가 내 재 때문에 기침했으면. 누군가 내 재 때문에 살았으면. 하얗고 축축한 재가 운동장을 가득 채웠으면. 그 속에서 헤엄을 치면서 울고 싶다.
수업시간 내내 교과서에 검은 동그라미를 그렸다. 동그라미는 원이 아니었다. 삐뚤빼뚤한 동그라미를 부르는 기하학 용어를 나는 모른다. 어쩌면 빼뚤빼뚤한 동그라미를 지칭하는 고유명사는 어디에도 없을지 모른다. 동그라미 안쪽에 눈동자를 채워넣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죽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것처럼. 살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것처럼.
검은 나무들은 붉은 꽃을 머리에 쓰고 있다. 붉게 젖어든 열매는 창자로 만든 화관 같다. 누군가 내 머리 위에 내 심장을 올려 주었으면. 살고 싶다. 죽어서 살고 싶다. 죽어서라도 살고 싶다. 하지만 누가 나를 읽어주지? 죽으면 누가 나를 읽어준단 말인가?
검은 나무들 속에 갇힌 소녀에 대한 시를 썼다. 소녀는 29번 채널의 돼지들처럼 늑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늑대는 소녀를 강간하고 소녀를 잡아먹어야 했다. 하지만 늑대는 오지 않았다. 늑대는 어디로 간 걸까? 어쩌면 늑대는 소녀보다 먼저 목을 매고 죽었을지도 모른다. 늑대는 양처럼 연약하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버렸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녀는 검은 나무의 그루터기에 앉아 늑대를 기다리고 있다.
기다림은 지긋지긋하게 고통스럽다. 심장을 얼기설기 봉합해놓던 실밥들이 터지고 붉고 진득한 염증이 흘러내린다. 눈을 감고 악몽에서 깨어나고 싶다. 혹은 가장 끔찍한 악몽에 머물고 싶다. 혹은 천국으로 떠나고 싶다. 죽어서 천사가 되기에 나는 너무 나이들었을지도 모른다.
자살한 여자들은 천사가 되지 못한다고 엄마가 말했다.
나는 자살하기엔 너무 나이들었어. 나는 죽어서 천사가 되기엔 너무 나이들었어. 나는 죽기엔 너무 나이들었어.
모서리가 녹아내린 동그라미들이 나를 노려봤다. 수업시간 내내 현기증에 시달려야 했다. 검게 번져흐른 잉크. 그 애가 내게 말을 걸 때까지 나는 혼자였다. 네가 말을 걸지 않았으면 좋겠어. 네가 내게 인사해 주었으면 좋겠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걸까? 그 애는 결국 내게 말을 걸었지만 그 애는 내가 아닌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그 애의 사랑스러운 늑대들은 어째서 그 애를 무시하는 것일까? 그 애가 가난해서? 그 애가 더러워서? 그 애에게 역겨운 냄새가 나서? 그 애가 살아 있어서?
우리는 급식실 테이블 끝에 마주 앉아서 점심을 먹었다. 식판에서는 거북한 비린내가 났다. 음식에서는 피와 고무와 그림자의 맛이 낫다. 무엇보다도 피 맛이 났다. 그 애는 오렌지의 얇고 투명한 껍질을 손가락으로 뜯어내고 있었다. 그 애의 손은 피투성이였고 나는 그 애가 곧 그 더러운 손으로 내 손을 잡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뭘 하느냐고 물으니 그 애는 수줍게 웃으면서 오렌지의 얇은 껍질을 까지 않으면 먹지 못한다고 말했다.
나는 오렌지를 먹지 않았다. 음식물 찌꺼기들이 쏟겨들어가는 거대한 구멍 속에 노을빛으로 반짝이는 신선한 과육이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급식실에서는 피냄새가 났다. 급식실에서 점심을 먹는 것은 수렁 속에서 창자를 뜯어 먹는 것과 같았다.
나는 더 이상 먹고 싶지 않았다.
네가 더 이상 내게 말 걸지 않았으면 좋겠어. 네가 계속 말을 걸어주었으면 좋겠어.
나는 과육으로 끈적거리는 그 애의 손을 잡고 걸었다. 그 애의 손톱은 까마귀의 깃털처럼 검고 길었다. 말리지 않은 걸레의 쉰내가 진동했다.
악취는 어디에나 있어.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초등학교 때 산에 놀러간 적이 있다. 부모님은 사냥하는 것을 좋아했다. 부모님은 사냥용 소총을 하나씩 나누어 갖고는 다정하게 짐승들을 살해하고는 했다. 나는 부모님의 등 뒤에서 무언가 찢어지는 끔찍한 소리를 견뎠다. 사냥이 끝나고 난 뒤에는 검은 사슴 머리가 박제되어 있는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우리는 사슴 고기를 튤립의 머리를 검은 새의 눈동자를 먹었다. 나는 입 안에 음식물 쓰레기 냄새가 진동하는 살의 반죽들을 이겨넣었으나 도저히 삼킬 수 없었다. 음식을 입 안에 담고 있는 시간 동안 나는 견딜 수 없는 메슥거림을 느꼈다.
내가 축축한 음식 반죽을 식판 위에 토해 놓고 난 뒤 아빠는 음식을 끝까지 씹어 삼키지 않은 것이 큰 잘못이라고 말했다.
나는 벽에 걸린 검은 사슴 머리를 향해 사과해야 했다.
내가 잘못했어요. 날 용서해 줘요. 난 울면서 애원했다.
내가 뱉어낸 살점은 변기에 버려졌다. 그날 나를 벌하기 위해 검은 사슴이 찾아오리라고 생각했다. 방안을 깨끗이 정리하고 사슴의 귀신을 기다렸다. 하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다. 악몽조차 텅 비어 있었다.
검고 아득한 밤의 꿈 속에서 기억나지 않는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렸다. 아침이 되고서야 사슴이 이미 죽었음을, 그래서 나를 벌하러 오지 않을 것임을 깨달았다. 나는 많이 울었고 그 뒤로도 몇 번을 사냥터에 더 따라가야 했다.
중학교에 올라간 이후로 부모님은 나를 사냥터에 데리고 가지 않았다. 어쩌면 부모님은 사냥을 완전히 그만두었을지도 모른다. 꿈 속에서 나는 고아지만 꿈에서 깨어나면 내게는 영원한 사냥을 떠난, 혹은 사냥을 영원히 그만둔 부모님과 오빠가 있다.
엄마와 아빠는 올해 초에 갑자기 사라졌다. 아직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오빠는 엄마와 아빠보다 먼저 사라졌다. 엄마와 아빠는 오빠를 찾으러 떠났을지도 모른다. 혹은 오빠를 사냥하러 떠났을지도 모른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사물들의 그림자조차 사라질 듯 흐릿하다. 죽은 사슴이 나를 용서하면 오빠가 돌아올까? 오빠를 용서하면 엄마 아빠도 돌아올까?
저녁의 그림자는 검고 투명하다. 검은 사슴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다. 검은 사슴의 머릿가죽을 쓴 하얀 여자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다. 나는 그들에게 용서를 빌지만 그들은 나를 용서해줄 수 없다. 그들은 나보다 먼저 죽었으니까.
엄마와 아빠와 오빠는 실종되었지만 가끔은 그들을 볼 수 있다. 그들은 하얀 그림자거나 목소리거나 사진의 피사체이다. 엄마 아빠는 사슴을 사냥했기 때문에 벌을 받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사슴을 먹지 않고 토했기 때문에 벌을 받는 것이다. 오빠는 사슴을 사랑했기 때문에 벌을 받는 것이다.
검은 조명 아래에서 윤곽은 태양 아래에서보다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 썩은 이불과 곰팡이 핀 플라스틱 커튼. 곰팡이 핀 가면의 안쪽 면은 호흡처럼 축축하다. 엄마나 아빠, 오빠와 대화를 나누지 않을 때면 시를 쓴다. 나는 그들의 목소리를 받아쓰거나 그들의 침묵을 받아쓰거나 한다.
우리는 언제나 스스로의 희생자야.
시는 교수대거나 올가미라고 목소리는 말한다.
우리는 평생 시에 감금되어 사는 거야. 우리는 평생 언어에 감금되어 사는 거야.
하지만 나는 먹고 싶지 않았다. 먹고 싶지 않았는데, 내 몫의 사슴 고기는 은빛 식판 위에 올려져 있었다. 사각형으로 구획된 식판 안쪽에 담겨 있던 불그죽죽한 사슴 고기. 고기에서는 피맛이 났고 나는 그것을 도저히 삼킬 수 없었다. 엄마는 그게 내 몫이라고 했다. 아빠는 그게 내 고기라고 했다. 삼켜야 해. 삼키지 않으면 너는 죄를 짓는 거야.
하지만 아무도 나를 벌하러 오지 않았어요. 나는 오랫동안 기다렸는데, 밤새도록 기다렸는데 아무도 나를 벌하러 오지 않았어요. 검고 아득한 악몽 속엔 나밖에 없었어요. 사슴은 이미 죽었기 때문에 나를 벌줄 수 없어요. 나는 늑대를 잃어버린 돼지들처럼 혼자예요.
엄마와 아빠는 자기 몫의 고기를 전부 삼켰다.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나는 먹고 싶지 않았는데 내 앞에는 은빛 식판이 있었고 그 위에는 죽은 사체 조각이 있었다. 나는 사슴을 죽인 적도 없는데 어째서 내 앞에는 사슴의 시체가 있는 것일까?
나는 급식비를 내지도 않았는데 그 애는 내 손을 잡고 나와 함께 급식실로 간다. 급식을 배급하는 여자들은-모두 여자들이다. 한 명도 빠짐없이!-내게 불그죽죽한 고기들을 담아 준다. 풀의 고기, 튤립의 고기, 장미의 고기, 오렌지의 고기, 뼈의 고기, 돼지의 고기, 물의 고기, 전부 고기다!
음식을 남기면 벌을 받는다. 나는 애원하듯 그들에게 조금만 담아 달라고 속삭인다.
그러나 여자들은 내게 빨리 다음 고기를 받으라고 고함을 지른다.
나는 먹고 싶지 않아요. 난 다 먹을 수 없어요. 난 남기고 말 거예요. 나는 벌도 받지 못할 죄를 짓고 말 거예요. 벌도, 구원도 없는.
여자들은 고기를 전부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건 네 몫이야. 이미 식판에 담아준 걸 되받아 올 수는 없어. 더럽잖니.
난 울렁거리는 악취로 가득찬 식판을, 손목이 아플 정도로 묵직한 식판을 받아들고 사체 조각과 끈적이는 진액으로 더럽혀진 식탁으로 향한다. 우리, 너와 나는 길고 좁다란 식탁의 의자에 마주 앉는다.
먹고 싶지 않아.
음식에서는 검고 질긴 악취가 진동한다. 나는 결국 대부분의 사체를 검고 깊은 창자 같은 구멍 속에 밀어넣고 만다. 그곳에는 내 몫이 아닌 사체들이 뒤엉켜 있을 것이다. 깊고 농후한 악취.
먹고 싶지 않아.
먹지 않으면 지옥에서 네가 남긴 시체를 전부 먹어야 할 거야. 너는 어떻게든 네 몫의 사체를 전부 먹어야 할 거야. 그 애는 웃으면서 내게 농담하듯 말했다.
나도 그 애를 따라 웃었지만 메슥거리는 속은 가라앉지 않았다.
창자가 뒤집어지는 것 같아. 목을 타고 올라오는 살의 냄새. 피의 냄새. 검은 기름의 냄새. 나는 먹고 싶지 않아. 하지만 내 몫의 죄는 언제나 마련되어 있다. 내가 살아 있고 내가 학교에 나오기 때문에, 내가 급식실에 왔기 때문에, 내가 식판을 들고 사체의 배급을 기다리는 아이들의 긴 줄에 합류했기 때문에 내 몫의 죄가 내 손 위에서 썩어가고 있는 것이다.
역겨운 냄새가 고여 있는 급식실을 빠져나온 뒤 숨을 들이쉬었다. 급식실에서 교정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불쾌한 웅덩이들이 여럿 고여 있었다. 그 애의 실내화는 여전히 더러웠다. 갈빛과 검은 얼룩이 흉한 반점처럼 남아 있는 그 애의 잿빛 실내화.
급식을 먹고난 뒤 그 애는 마치 나를 완전히 잊은 것처럼 굴었다. 그 애는 다른 애들의 둥근 등을 바라보면서 혼자 고개를 끄덕이고 미소짓고 툴툴거리기를 반복했다.
교과서의 여백에 검고 울퉁불퉁한 동그라미들을 더 그려넣었다. 교과서의 페이지는 역겨운 피부병에 걸린 것처럼 보였다. 음악 수업 시간에 혼자 음악실을 찾아가야 했다. 다른 아이들은 둘씩, 셋씩 짝을 지어서 걸어갔다. 그 애가 내게 오기를 은근히 기다렸으나 그 애는 온데간데 없었다. 텅 빈 교실에서 혹시 그 애가 돌아올지 몰라 기다리다가 수업종이 치고 나서야 복도로 나갔다. 음악실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 한참을 헤맸다. 결국 수업이 시작하고 삼십 분이 지난 뒤에야 악기 소리를 듣고 T자형 복도 구석에 있는 음악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맨 앞 줄 빈 자리에 황급히 들어가 앉았다. 음악 교사는 나를 흘깃 바라보았으나 왜 늦었느냐고 추궁하지는 않았다. 칠판에는 여러 열과 행으로 이루어진 표가 그려져 있었다. 표의 사각형 안쪽에는 번호들이 적혀 있었다. 자리를 배정하는 표인 것처럼 보였다. 자리는 출석번호 순으로 배정되어 있었다. 난 출석번호 3번이었으므로 앞줄 가운데 자리에 앉아야 했던 것이다. 그 애는 뒷줄 구석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 애와 눈이 마주쳤으나 우리는 미소조차 짓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
그 애도 나를 기다렸을까?
아니다. 그 애는 나를 기다리지 않았다.
아이들은 기타를 하나씩 들고 서툴게 연주하고 있었다. 나도 책상 위에 올려져 있던 기타를 들어올렸다. 오 분쯤 지난 뒤 음악교사는 연습을 그만하고 합주를 해보라고 말했고 아이들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능숙하게 하나의 멜로디를 연주해냈다. 그 애들은 음악 교과서의 특정 페이지를 편 채 악보를 보고 분주하게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음악 교과서를 가져오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기타를 연주하는 연기조차 할 수 없어서 기타를 끌어안은 채로 멍하니 연주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연주는 끔찍하게 길었다. 연습이 다 끝날 때까지 음악교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난 제일 앞자리에 앉아 있었으므로 그는 내가 연주하고 있지 않음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나를 질책하지도 않았다. 언제 그가 나를 혼낼지 몰라 압박감을 느꼈다. 사실 음악 교과서를 가져왔더라도 별 다를 건 없었을 것이다. 난 기타를 연주할 줄 모르며 악보도 읽을 줄 모른다. 이토록 많은 아이들이 모두 기타를 악보대로 연주할 줄 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합주 이전까지 아이들은 서툴게 손을 꼼지락대기만 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음악 교사가 합주를 지시하자 아이들은 마치 나를 속이려 하듯 완벽하게 연주해보였다. 그 애도 검고 더러운 손톱으로 능숙하게 기타 연주를 했을지 궁금했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나처럼 기타를 끌어안은 채 멍하니 아이들을 바라보기만 했을지도 몰랐다.
두 번째 합주를 지켜보면서 나는 내 예상이 맞았음을 알았다. 오직 완벽하게 연주할 줄 아는 아이들만 연주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른 아이들, 나처럼 교과서를 가져오지 않았고 교과서를 함께 볼 친구도 없으며 교과서를 가져왔거나 교과서를 함께 볼 친구가 있더라도 악보를 완벽하게 읽어낼 줄 모르거나 기타 연주를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아이들은 기타를 곰인형처럼 끌어 안은 채로 침묵하고 있었다. 앞줄의 아이들은 나를 빼고 모두 완벽하게 연주해냈으나 뒷줄의 아이들은 대부분 연주를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