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11년 3월 2일
오늘부터는 정규수업을 하는 날이었다. 세계사와 수학, 영어, 국어, 미술 수업을 받았다.
교사가 아즈텍 문명에 대해 설명하는 동안 나는 교과서에 실려 있는 사진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즈텍의 유리 피라미드 꼭대기에서 피를 흘리며 녹아가는 태양의 그림은 천사처럼 아름다웠다. 태양신은 매일 태어나 지평선을 질주해야 하므로 우유를 마시는 갓난아이처럼 많은 피를 필요로 한다고 담임교사는 말했다.
수학과 영어 수업은 옆 반 담임교사가 담당했다. 그들은 쉽게 지워지는 분필로 칠판에 이름을 적고 자기소개를 했다. 그들이 소개한 이름을 나는 순식간에 잊어버렸다.
국어 시간에 교사는 우리말을 가진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에 대한 장광설을 늘어놓았다. 작년 담임선생님이 시를 쓰고 싶다면 프랑스어나 영어, 독일어로 글을 써야 한다고 말했던 것이 기억났다.
교사는 노트에 시를 한 편씩 쓰라고 말했다. 나는 창문에 머리를 박고 떨어진 비둘기와 불면증에 사로잡혀 돌아다니는 몽유병자 개들에 대한 글을 썼다.
내가 곧 혼자가 될 것이라고 목소리는 말했다.
교단 앞에 나가 목소리와 함께 시를 읽었다. 비둘기에 대한 연을 읽을 때만 해도 박수를 치며 호응하던 아이들은 몽유병자 개들에 대한 문장을 읽자 끔찍하게 지루한 표정으로 침묵하기 시작했다. 시를 다 읽고 난 뒤 자리로 돌아가며 몇몇 아이들이 혹독한 비판을 하는 소리를 들었다.
목소리는 나를 위로하지 않았다. 나는 절망적인 침묵을 기억하고 있었으나 침묵한 아이들은 아무도 침묵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다른 아이들이 희망과 행복과 일상과 불행과 병에 대한 시를 읊는 것을 들었다. 아즈텍에 관한 시를 써야 했다고 불현듯 생각했다. 아즈텍, 그리고 제물들에 대한 시를 썼다면 더 나았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모든 것이 잊혔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