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간격을 나는 마치 아무런 극간과 공백도 없는 것처럼 뛰어넘는다. 기실 모든 날들이 그렇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24시간의 밤 뒤에는 24시간의 밤이 있다. 밤과 밤, 아침과 아침은 언제나 빌어먹을 연속선상에 있다. 단 하루의 텅 빔도 없이. 빛을 향해 부풀어오르던 장미, 빛이 독이라는 것도 알지 못한 채, 시간에 붉어진 매혹적인 입술로 독을 향해 부풀어오르던 장미.
그 애는 그런 장미처럼 다른 아이들에게 말을 걸었다. 아침에, 그 애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무리의 중앙에서 재재거리는 아이들에게 큰 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잠시간의 침묵.
그 애에게 어색한 인사를 돌려주어야 할지 큰 소리로 비웃어야 할지 가늠하는 듯하던 잠시간의 침묵.
아이들은 인사를 하지도 비웃지도 않았다. 그 애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 애는 아이들이 인사를 듣지 못했다고 여겼는지 목이 쉴 때까지 비명을 지르듯 계속 인사를 건넸다. 안녕! 잘 지냈니! 어제는 어땠어! 오늘 수업은 어떨 것 같아! 오늘도 같이 집에 갈 거지!
그러나 그 애의 모든 언어는 그 애들에겐 침묵이었다.
1교시가 시작할 때까지 그 애는 애걸하듯 울부짖는 인사를 계속하고 있었다. 그 애의 처절한 비명은 온화하고 탐욕적인 공백의 압박 속에 순식간에 파묻혀 버렸다. 그 애는 출혈을 갈망하듯 집요하게 비명을 질렀고 나는 참지 못하고 귀를 막았다. 하지만 그 애의 비명이 향하는 빛 속의 아이들은 아무것도 듣지 못한 듯 계속해서 자연스러운 수다를 이어나갔다. 자연스러운,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오히려 부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인사와 마주침의 의미는 희미한 반영과 주름과 물거품에 불과한 것 같았다.
아마 그 애는 어젯밤 집에 돌아간 뒤 홀로 인사를 연습했겠지. 지금의 끔찍한 비명을 그 애는 악몽 꾸었을 것이고 새벽 내내 거울을 향해 공허한 인사 연습을 반복했겠지. 그 애는 자기 엄마처럼, 그리고 나처럼 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나와의 대화를 언제나 가장 끝까지 미루어 두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애는 곧 다시 내게 말을 걸 수밖에 없게 되겠지. 그 애는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는 다정한 아이니까. 꽃잎을 압박하고 짓물러가는 빛이라도 필요로 하는 아이니까. 다른 모든 어휘를 잊게 해 줄 하나의 어휘가 우리에게 도래할 수 있다면. 끝없이 우리를 파고들고 부패시키는 날카로운 소음들을 모두 잊을 수 있는 하나의 어휘 속에서 백치가 될 수 있다면. 하지만 내 언어는 그렇게 깔끔한 단면을 가지고 있지 않다. 내 언어는 내 피와 살점으로 너덜거리는 비참한 절단면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수업시간에 우리는 각자의 얇은 막 속에서 출혈했지만 아무도 우리에게 신경을 기울이지 않았다. 교사조차 우리가 출혈하고 있음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네 열린 상처에서 쏟아지는 투명한 피를 볼 수 있었어.
난 그 애에게 몇 개의 쪽지를 보냈지만 그 애는 내 쪽지를 구겨서 책상 아래에 집어넣어 버렸다.(네가 우는 걸 봤어. 네가 피흘리는 걸 봤어. 네 곪은 상처 위에서 꿈틀거리는 흰 구더기들을 보았어. 네가 소리지르는 걸 봤어. 네가 인사하는 걸 봤어. 네가 살아 있는 걸 봤어.)
방 안에 놓아둔 고기를 아무도 기억하지 못했다. 고기는 썩어서 피를 흘리고 썩어가는 살의 냄새를 맡은 파리떼와 새들이 장미를 향해 달겨드는 나비처럼 시신을 향해 기어들어 베란다를 검게 수놓았는데도 아무도 고기를 기억하지 못했다. 엄마와 아빠와 오빠는 내 시신을, 내 고기를 완전히 잊어버린 것이 분명하다. 내 언어들이 나를 파먹고 내 안에 알을 낳고 있는데도 그들은 나를 돌보거나 봉합하거나 치료하거나 완전히 폐기하기 위해서라도 돌아오지 않는다. 유령은 파리떼에 뒤덮여 더 이상 자신의 것이 아닌 붉은 고기를 보며 처량하게 울고 있다. 유령은 존재하지 않는 자신을 본다.
나는 거짓과 죽음의 쌉싸름한 혼합물이다.
내 죽음을, 내 신체를 열어 읽어내는 외과의는 죽음과 나 사이의 지속적이고 음탕한 관계를 알아내고 말 것이다. 내게 필요한 것은 병보다 격렬한 감염으로서의 치료였음을 알 것이다. 나의 생명은 오로지 죽음을-그것도 하나가 아닌!-통해서만 드러날 수 있는 것임을 발견할 것이다. 나는 검시관의 메스 아래에서 깨어난 시체를 보듯 구더기처럼 움직이는 내 언어들을 본다. 내 언어는 가련하게도 경련하고 있다. 내 언어가 스스로에게 부과한 부재 속에서, 환대받지 못한 시어들은 불가능한 백조를, 벙어리 백조의 꺽꺽거리는 노래를 상상하고 있다.
오늘 그 애는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나는 벌써 그 애의 목소리를 잊어가고 있다. 어쩌면 나는 언제나 이미 망각된 그 애의 목소리를 들어왔는지도 모른다. 그 애를 볼 때, 나는 항상 이미 망각된 그 애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내 고기는 썩어가고 있는데 그 애는 나를 돌봐줄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나의 관련자들은 모두 망각된 나를 보고 있다. 모두 사라진 나를 추억하고 있다.
내 고기는 여기서 썩고 있는데!
제발 내 무덤에 나의 말을 놓아 주기를. 뜨인 채 썩어가는 내 눈꺼풀 아래 나의 시를 놓아 주기를. 내게 이별의 꽃을 부려 주기를. 내게 문드러진 내 그림자를 돌려 주기를. 내 심장에 미래의 씨앗을 심어 주기를.
내 가슴을 뚫고 자라나는 미래의 나무를 향해 파리들에 뒤덮인 내 엷은 눈의 막이 치켜뜨여 있다. 미래의 나무에 달린 불가능의 열매들을 나는 끔찍하게 갈망한다. 죽음을 향해 부풀어오르는 장미, 피 속의 형상, 밤의 차가운 살 속에 건설하고 있는 음험하고 가없는 절벽. 내가 건설하는 절벽 아래에 묻힐 수 있기를 나는 죽을 정도로 희망한다. 에덴의 얼음 숲 속에서 불화하며 피어나는 날카로운 납빛 장미 아래에 착취당한 피투성이 그림자가 쓰러져 있다. 그 그림자를 빛이 없는 곳에 묻어 줘. 장미의 살로 끈적하게 젖어든 가시 위에 올려 줘. 분해된 도형들, 불구의 붉고 푸르고 초록빛인 원들 아래에 놓아 줘.
나는 거짓과 진실의 쌉싸름한 혼합물이다. 나는 거짓과 죽음의 쌉싸름한 혼합물이다. 나는 생명과 죽음의 쌉싸름한, 지나친 부재와 지나친 현존의 감미로운 혼합물이다.
글을 쓰면서 나의 글의 병증을 진단하는 것은 내가 아닌 나의 글쓰기다. 글쓰기의 울렁거리는 움직임 자체가 내 글쓰기의 병듦을 진단하고 있다. 부패한 것이 부패한 것을, 이미 죽은 것이 죽은 것을 진단하고 있는 것이다. 내 썩은 고기를 절개하여 검시하는 해부의는 분명 검은 유령이겠지.
내 신체를 열어, 내 상처 안에서 곪아가고 있는 화려한 부재를 읽어 줘.
내 목소리의 지리학을 나는 끝내 이해하지 못했지. 내 목소리의 지형을, 내 목소리의 지도를 나는 끝내 파악하지 못했지. 취약한 견고함 속에서 바스러져가는 병든 물거품.
내게 나의 그림자를, 나의 죽음을 돌려 줘. 생명으로 붉어진 입술로 나는 속삭인다.
나의 말을 듣고 있는 목소리들은 서슴없이 내 목을 잘라낸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날카로운 칼날도 칼을 움켜쥘 피투성이 손도 없다.
우리에게 절벽을, 검은 별들을, 죽은 장미를, 유해한 축 속에서 웅크리고 있는 작은-하지만 끝 없는- 밤을 돌려줘. 내게 나의 시체를 돌려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