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11년 3월 10일

오늘은 정시에 등교했다. 등굣길에 죽을 수 있는 방법은 셀 수 없이 많으며 그럴 가능성 역시 상존한다. 하지만 나는 죽지 않았다. 죽지 않았다. 결국 오늘 죽을 가능성보다는 살 가능성이 더 많은 것이다.

아마 내일 아침에도 나는 죽지 않겠지. 사형수는 평생 그의 단두대를 찾아 헤맨다. 언젠가 그가 반드시 사형될 것을 알면서도 찾는 것을 그만둘 수 없다. 피부를 겹겹이 벗겨내는 고통 때문에 그는 조금이라도 더 이른 끝을 갈망하는 것이다.

죽음의 대리모는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죽음은 언제나 우리의 우물 속에 묻혀 있는 보물과도 같다. 몸 속에는 죽음이 묻혀 있다. 검은 혈관을 물어뜯으면 폭발하듯 새어나올 붉은 피를 우리는 모든 끝이 찾아들 때에야 발견하게 되리라! 어리고 격정적인 말들은 보다 빨리 진실에 도달한다. 그들은 스스로 혈관을 물어뜯고 거친 숨을 내쉰다. 꿈 속에서 나는 종종 영리한 말처럼 군다. 마치 온 세계를 질주한 것처럼, 나는 거친 숨을 내쉬며 내 가슴을 검은 흑요석 칼로 찌른다. 가슴을 갈라내고 심장을 꺼내면 끝을 손에 쥘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하지만 하나의 꿈 바깥은 죽음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삶이다.

놀랄 정도로 일정한 경보로 걷는 사람들 틈에서 나는 계속 뒤쳐졌다. 끔찍하게 천천히 걷더라도 정시에 도착할만한 시간이었다. 사람들은 오직 목적지를 향해 프로그래밍된 기계장치처럼 정확하고 능숙한 걸음걸이로 걷고 있었다. 오, 유능하고 뜨거운 기계들이여! 그들은 사랑과 고통을 가지고 있는 기계들이다. 어느 모로 보나 그들은 나보다 빨리 그들의 목적지에 도착할 것이다. 더 빨리 걷는다고 해서 더 많은 것을 놓치는 것은 아니지. 오히려 나는 그들보다 느리게 걸으면서도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있다. 내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사랑할 만한 거리도 미워하거나 혐오하거나 숭배할 만한 거리도 보이지 않는다. 보물을 발견할 수 없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결국 어떤 보물은 심장 안에 숨겨져있다는 것뿐이다.(하지만 그것조차 사실이 아니라면? 내 심장이 이미 타들어가 흰 재가 되어 혈관 곳곳에 침전되었다면? 내가 이미 잃어버린 보물을 찾아 헤매고 있는 거라면?)

나는 진실과 거짓의 쌉싸름한 혼합물이다. 내가 언제 어떤 진실로 나를 구성하고 어떤 거짓으로 나를 봉합하는지 나조차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예컨대 창문에 머리를 부딪히는 비둘기는 내 상상 혹은 악몽의 풍경이었다는 생각이 갈수록 짙어진다. 하지만 상상과 사실의 경계를 구분짓는 일이 의미가 있을까? 결국 모두 현실인데. 마찬가지의 방식으로 나는 내 연인을 발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삶을 발명하는 방식의 일환으로. 나의 연인은 인간인가, 다른 짐승인가? 악어인가, 여자인가? 남자인가, 어린아이인가, 어른인가, 늙은이인가? 혹은 시체인가? 시체의 골반뼈에 성기를 삽입하고 사정한 남자는 강간죄를 범한 것인가, 혹은 그저 수음한 것인가? 그의 성기에서는 검은 곰팡이가 피고 그는 곧 죽을 것이다. 욕망은 죽음과 맞닿아 있다. 내 연인은 몸을 갖지 못했으므로 썩지는 않을 것이다. 그의 머리뼈는 흰 창살 같다. 그 속에는 검고 둥근 두 개의 안구가 물방울처럼 맺혀 있다. 성인이 되면 나는 운전석에서 그의 두 구멍을 상상하며 수음할 것이다. 추억의 안전한 영토를 상상하며 나는 종종 검은 함정에 빠질 것이다. 드문드문 덫처럼 나 있는 깊은 틈 속에서 나는 경건한 신도처럼 미래를 향해 기도해야 할 것이다.

그 애는 아침부터 내게 말을 걸었다. 유리, 안녕?

그래, 안녕.

우리는 꽤나 다정하게 인사를 나눴다. 수업 시간 내내 우리는 쪽지를 주고받으며 대화를 나누었다. 교사가 우리의 쪽지를 발견하여 반 전체에 읽어주기를 얼마나 깊이 바랐던지! 우리의 비밀이 더 이상 비밀이 아니게 되기를 얼마나 간절히 바랐던지! 하지만 교사는 우리를 철저히 무시했다. 우리는 그리 눈에 띄는 학생들이 아니었고 문제적인 아이들도 아니었다. 그저 쪽지를 주고받는 것뿐이다. 쪽지는 내성적이며 음침한 검은 병을 옮기고 있었다. 병은 우리 바깥으로 새어나가지 않을 것이었다.

나: 우리 교사는 한 번도 체벌한 적이 없지만 옆 반 교사는 종종 체벌해. 체육 시간에 바깥으로 나가면서 유리창 너머로 매 맞는 아이들을 본 적이 있어. 긴 자로 손바닥을 맞고 있었지.

그 애 : 너도 체벌을 받고 싶어? 난 지금은 맞고 싶지 않아. 하지만 교사가 되면 학생들에게 체벌을 받아 보고 싶어. 자, 지금부터는 너희가 교사고 내가 문제적인 아이야. 너희들은 나를 벌해야 해. 벌하지 않으면 너희가 문제적인 아이가 되는 거야. 주네의 희곡을 읽어본 적 있어? 너도 좋아할 거야. 하녀들이 주인을 죽이는 행위를 주네는 역할 바꾸기 놀이로 해석해냈지. 난 언제든 역할을 바꾸는 배우들을 좋아해.

나: 우리는 훌륭한 배우가 되지 못할 거야. 무엇보다도 굼뜨고 무표정하니까. 쪽지로만 대화하는 배우는 세상에 없어. 하지만 나도 하녀에게 살해당하는 주인 역할을 하고 싶어. 창녀에게 살해당하는 남자 역할을 하고 싶어.

그 애 : 난 남자를 살해하는 창녀 역할을 하고 싶어.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이중의 연기를 해야 해. 하나의 가면 위에 다른 가면을 덧씌워 연기하는 셈이지. 그건 쉽지 않은 일이야. 능숙한 배우들조차도 종종 어느 것이 진짜 피부인지 혼동하곤 하지. 그가 쓴 가면 모두가 진짜 피부여야 하는데도 말이야. 두 개의 가면은 모공을 막고 코와 입에 들러붙어 우리를 서서히 질식시켜. 배우가 되기 위해서는 질식에도 적응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어? 물론 아무런 가면도 쓰고 있지 않다고 믿는 사람들도 종종 질식하고는 하지. 우리 엄마가 그래. 엄마는 연기를 하지 않고 있다고 믿지만 하나뿐인 피부조차 가면이야. 엄마는 3류 시인의 연기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질식해가고 있어. 3류 문학 잡지에라도 꼬박꼬박 작품을 발표하는 시인들은 엄마처럼 괴롭진 않을 거야. 결국에는 3류 문학 잡지에 투고하는 3류 시인의 세계에 적응하게 되겠지. 그 스스로 3류 시인임을 인정할 수 있게 될 거야. 하지만 엄마는 3류 시인조차 되지 못했기 때문에 끔찍하게 고통받고 있어. 시들은 식탁 위에서 쓰이고 식탁의 희미한 오렌지색 불빛에 바스라지지. 난 엄마가 얼마나 많은 시들을 썼는지 알고 있어. 엄마는 지방의 이상한 공모전들-지역 인사에 대한, 관광지에 대한, 심지어는 병아리 사육장에 대한!-에서 간혹 상과 상금을 타서 우리의 가난을 메꾸곤 하지만 그런 공모전에서의 수상이 엄마에게 3류 시인으로의 길을 터주지는 않아. 엄마는 2류 시인이 되기를 원하는 것도 아닌데, 대체 얼마나 많은 시간과 죽음을 낭비해야 엄마는 3류 시인이 될 수 있는 걸까?

나: 너희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네 엄마가 나인 것처럼 친숙하게 느껴져. 내가 너희 엄마라면 벌거벗고 골목에 들어가서 어둠 속으로 기어들어오는 사람들을 나이프로 위협해 자기 시를 읽도록 했을 거야. 혹은 그들의 배를 가른 뒤 내장을 끄집어 내고 그 자리에 시로 범벅이 된 종이들을 집어넣었을 거야. 너희 엄마는 다정한 사람인 것 같아.

그 애: 수학은 지루해. 하지만 국어 시간 보다는 낫지. 교과서에 실려 있는 시들을 보면 난 미쳐버릴 것 같아. 난 시인들이 그토록 행복할 수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 그들의 입을 찢어내고 그 속에 있는 검은 혀를 잘라서 보여 주어도 그들은 잘려나가 부패해가는 자기 혀가 아니라 파란 하늘 아래에서 피어나는 어린 잡초만 응시할 것 같아. 엄마는 그런 시를 쓸 수 없을 거야. 내가 어렸을 때부터 엄마는 내게 그렇게 말했어. 2류 시인과 3류 시인의 시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그들의 시를 느끼며 어찌할 수 없는 경탄을 느낀다면 가장 운이 좋은 경우지. 그런 자들은 그들의 시를 모방하여 근근히 사소한 경탄을 받을 만한 기회를 상상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엄마는 2류, 3류 시인들의 시를 읽으며 아무것도 느낄 수 없다고 말했어. 그것이 끔찍하게 유치하고 무감각하게 느껴졌다는 거야. 2류, 3류 시를 읽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엄마는 자기가 2류, 3류 시인들의 독자보다도 무감각한 사람일지 모른다고 말했어. 하지만 그렇지 않아. 엄마가 얼마나 예민한지 난 잘 알고 있어. 엄마는 밤의 그림자에도 할퀴어져 하얀 피를 흘리는 사람이야. 너도 우리 엄마처럼 예민한 사람이라는 걸 난 한번에 알아봤지. 너는 지나치게 민감한 사람이야. 그러니까 너는 2류, 3류 시를 읽고 흐느낄 수 없는 거야. 그러니까 너는 2류, 3류 시인이 될 수 없는 거야.(물론 1류 시인도 될 수 없겠지. 네가 1류 시인이었다면 벌써 세상에 알려졌을 테니까. 랭보처럼.)

우리는 칠판에 적힌 수학 공식들을 옮겨 적는 척하며 더욱 복잡하고 감정적인 기호들을 나누었다. 그 애의 글씨는 단정하고 부드러웠다. 그 애는 프랑스 시구를 적어주기도 했는데 영어 필기체조차 유려하고 아름다웠다.(La rencontre brutale d’une rose et d’une étoile) 그 애의 쪽지에서는 가난과 악취의 흔적이 묻어나지 않았다(어쩌면 아름다움 자체가 가난의 흔적일지도 모른다).

하교길에 우리는 e-mail 주소를 교환했다. 나는 메일로 내 시를 보내주기로 약속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 시 노트에서 한 장을 골라 적어내렸다. 그러나 이내 모두 지워버리고는 즉흥적인 시를 한 편 써서 보냈다.

댄스 댄스 댄스 댄스!

정지된 프레임에 갇힌 짐승들. 태양조차 움직이는 것을 잊어버린 낮의 도처에서 짐승들은 처형을 기다린다. 투명한 단두대 앞에서 우리는 춤을 춘다. 댄스, 댄스, 댄스, 댄스! 오래도록 절망은 우리의 신이었다. 희미한 오렌지빛이 지평선 너머에서 악취와 함께 으깨지고 어두운 흰색이 번져흐른다. 밤의 태양이 떠오를 때도 우리는 춤을 추고 있다. 단두대 앞에서 나는 십자가의 희고 긴 목을 물어뜯었고 십자가의 그림자는 우유색 피를 쏟았다. 한 방울의 피와 한 송이 눈의 마주침으로 인한 독이 밤을 뒤덮으며 얽어나갔다. 문둥병자의 얼굴 가죽 아래에서 구더기처럼 피어오른 흰 별들, 그 아래에서 우리는 댄스, 댄스, 댄스, 댄스! 단순한 것은 치졸한 것이다. 우리는 단순한 춤은 추지 않았다. 우리의 기다림은 단순하지 않았다. 수만 개의 전류들이 우리의 내장을 태워냈고 내장의 그을린 자국은 알려지지 않은 계시였다. 짐승들의 입속 장미는 붉게 젖어 있었다. 장미는 입 속에서 핏빛으로 울고 있었다. 눈의 거품 위에서 화면을 물어뜯는 벌레들, 정지했던 태양은 벌레들의 이빨에 찢긴 참혹한 얼굴로 저물었고 새로 떠오른 밤의 태양은 병들어 죽음을 향해 움직이는 짐승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우리는 병든 채로 춤을 추었다. 밤의 태양 위에서 신은 천사의 등에 오줌을 누었다. 그는 천사를 악취로 질식시켰다. 천사는 흰 눈을 치켜뜬 채로 경련하며 죽어가고 있었다. 마침내 천사의 마지막 숨이 멎었을 때 신은 천사의 부드러운 흰 입술 속에 그의 검은 피를 들이부었다. 신은 천사를 재생시켰다. 천사의 시체는 신의 기적을 거부할 수 없었다. 천사의 두 다리는 바르작거리며 떨렸고 여린 두 팔은 하늘을 향해 들려 있었다. 천사는 하혈하며 울었다. 신은 천사에게 생명의 병을 전염시켰다. 신의 사형집행인이 신에게 그리했듯이! 짐승들은 밤의 향연 아래 병든 몸으로 댄스, 댄스, 댄스, 댄스! 짐승들은 하늘에서 쏟아지는 검은 눈을 맞으며 재생과 부활의 병에, 생명의 병에 감염되고 있었다. 그들의 숭고한 죽음은 검은 생명으로 얼룩져 오염되었다. 샴페인색 장미들이 눈 아래에서 핏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난 저녁 내내 컴퓨터 메일함을 들락거리며 그 애의 메일을 기다렸다.

밤 12시가 넘어서야 그 애의 메일이 도착했다.

그래. 오래도록 절망은 우리의 신이었지. 벌레들이 화면을 물어뜯기 전에 벌레들의 알이 있어야 할 거야. 그 많은 벌레들은 대체 어디에 숨어 있는 걸까? 영원한 겨울이 덮쳐오면 벌레들은 모두 멸종하고 말까?

미안해. 네 허락을 받지 않고 네 시를 엄마에게 보여줬어. 엄마는 너를 만나보고 싶다고 했어. 유리, 아마 너는 우리 엄마처럼 불행하겠지. 나는 느낄 수 있어. 너는 1류 시인도 2류, 3류 시인도 아니야.

대체 누가 너를 강간한 거야? 작년에 네가 너희 담임교사와 함께 만나는 걸 봤어. 넌 신처럼 벌거벗고 있었지. 모든 게 내 악몽일 수도 있어. 나는 벌거벗은 사람들이 나오는 악몽들을 종종 꾸니까.

이건 벌써 서른 번째 다시 쓰는 메일이야. 아마 이 메일도 다 지우고 말겠지. 아마 나는 너에게 하나의 문장도 보내지 못할지 몰라. 나를 처음 강간한 건 나였어. 믿어지니? 나는 나를 강간하고 있는 나를 보았어. 이런 고백을 하는 건 네가 이 메일을 받지 못하리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야. 유리. 오래도록, 절망은 우리의 신이었지. 절망은 창백한 영원 같고 한 방울의 피와 한 송이 눈의 마주침으로는 아무런 재앙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아. 태어났기 때문에 우리는 죽음을 원하는데, 살아있지 않다면 우리는 죽고 싶다는 욕망도 가지지 않을 거야. 죽고 싶다는 건 우리가 살아있다는 증거야. 우리는 곧 죽게 되겠지.

작년에 너를 처음 봤던 날, 혹은 너에 대한 악몽을 꿨던 날 난 집에서 키우던 새 제제를 묻었어. 제제는 대리석처럼 차갑고 단단하게 굳어 있었어. 엄마는 파리가 꼬이기 전에 묻어야 한다고 했지만 나는 이불 속에서 제제를 끌어안고 하루 내내 울었어.

제제는 눈처럼 흰 깃털을 가지고 있는 작은 새였어. 제제는 눈 먼 여자처럼 모호한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곤 했어. 제제는 언제나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것 같았어. 제제가 은폐하고 있던 흉포하고 이기적인 비밀은 생명, 혹은 죽음이겠지. 제제가 처음부터 자기의 죽음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어. 부드럽고 무른 흙 밑에 엄마와 나는 제제의 작은 몸을 눕혀 놓았어. 검은 그림자 아래 누운 제제의 희고 가녀린 몸은 천사처럼 아름다웠어. 무덤의 봉분은 제제의 몸보다 훨씬 컸어. 그래도 비가 내리면 흙은 깎여나갈 거야. 봉분은 점점 사라지고 우리는 더 이상 제제의 시신이 묻힌 자리를 기억할 수 없게 되겠지. 제제가 좋아하던 모이와 제제를 위해 엄마가 쓴 시도 제제와 함께 묻어 주었어. 제제의 모이는 부패한 제제의 시신을 잡아 먹을 거야. 엄마의 언어는 제제의 시신에게 잡아 먹힐 거야.

나는 언젠가 엄마의 시신을 직접 묻어야 할 때가 올 것 같아 두려워. 엄마의 시신은 제제와 비교도 할 수 없이 무겁고 끔찍할 거야. 영원히 엄마의 시체를 끌어안고 잠들 수는 없겠지. 앨런 포의 단편에 나왔던 것처럼 엄마를 지하실 벽 안에 넣고 숨길 수는 없을 거야. 어디에서건 살은 썩고 악취는 진동할 테니까. 영구적인 보존은 단 한 차례도 성공한 적이 없었지. 발효시킨 음식조차도 언젠가는 썩어.

난 엄마의 추억을 적절히 발효시켜 변형할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엄마의 몸을 엄마의 얼굴을 엄마의 팔을 엄마의 웃음을 잊어야겠지.

내가 엄마를 묻을 수 있을까? 엄마는 너무 크고 하얀데, 내가 엄마를 묻을 수 있을까? 얼마나 큰 봉분을 쌓아야할지 상상도 가지 않아. 어쩌면 난 영원히 엄마의 무덤을 만들고 있어야 할지도 몰라. 부디 엄마가 나의 죽음 이후에 죽기를!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내가 어른이 된 뒤에 죽기를.

P.S. 난 엄마를 화장하고 바다에 뿌리기로 결정했어. 그러면 무덤도 봉분의 상실도 견딜 필요가 없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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