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11년 3월 1일
작년 담임선생님은 내게 남들에 대해 생각하라고 했다. 난 반 아이들의 이름을 잘 외우지 못한다. 수업 시간에 종종 잠을 잔다. 잠을 자고 있을 때는 오렌지빛으로 팽창하는 은하의 꿈을 꾼다.
맨 끝줄에 앉았다. 창가 자리였다. 하지만 곧 자리를 옮겨야 했다. 청소 시간에 책상과 의자들은 모서리가 잘려나간 별처럼 어지럽게 늘어져 있다. 자기소개를 할 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상담을 할 때는 말을 많이 했다.
나는 울고 있었고 선생님은 내가 마치 시인처럼 말한다고 했다. 내가 시인일 수는 없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유리, 너는 시인처럼 말하는구나.
나는 울고 있었다. 선생님은 시인이 되려면 남들에 대해 많이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무도 나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었다. 선생님, 아무도 나에 대해 생각하지 않아요. 새벽에 상담실에서 작년 담임선생님과 만났다. 우리는 약속한 것처럼 자연스럽게 마주앉아 대화를 나누었지만 사실 우리는 어떠한 약속도 하지 않았다.
선생님은 오랫동안 나를 기다렸다고 말했다.
나는 죽지 않았어요. 난 참지 못하고 그렇게 말했다. 구토하듯이.
선생님은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선생님이 알고 있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나는 죽지 않았어요. 선생님. 나는 정말 죽지 않았어요.
선생님은 내가 착하고 얌전한 아이라고 했다. 시인처럼 생각하는 걸 그만둔다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도 말했다.
선생님은 내게 붉은 반점이 돋아난 하얀 리본을 선물했다.
리본을 목에 묶을까요, 선생님? 물론 그렇게 묻지는 않았다. 나는 치마 주머니에 리본을 집어넣었고 선생님은 남들에 대해 많이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들에 대해 생각해야 해, 유리. 그리고 지금 네가 아닌 것들에 대해서도. 미래에 대해서.
종이 울렸고 선생님은 내게 어서 새 교실로 가라고 말했다.
한 층을 내려가면 2학년 교실이 있다. 선생님을 두고 아래층 교실로 내려갔다. 그곳에서 맨 끝줄에 앉았다. 창가 옆자리였다. 천사처럼 이마가 흰 비둘기가 창문에 부딪히는 걸 보았다.
특수학급의 아이가 앞문을 열고 쏟아지듯 밀려들어와 소리를 질렀다. 신문이에요. 신문. 신문 가져가.
갈빛 피부에 달처럼 몸이 둥근 아이가 소리쳤다. 반 애들은 즐겁게 웃으며 아이를 맞아들였다. 나는 지상에서 달을 관찰하듯 아이의 검은 눈을 들여다보았다. 달이 나를 마주보는 일이 없듯 그 애가 나를 건너다보는 일은 없었다. 나는 하얀 상처가 남은 손목을 책상 위에 아무렇지 않게 얹어 놓았다. 무방비하게 드러난 상처에 관심을 기울이는 시선은 없었다.
왜냐하면 너는 흉터처럼 하얗기 때문이야, 유리. 목소리는 내게 그렇게 말했다.
새로운 담임선생님은 유독 얼굴이 희고 키가 큰 여자였다. 교사는 사탕으로 만들어놓은 인형처럼 달콤하고 밝게 웃으며 인사했다. 반 아이들은 새처럼 속삭이고 있었다. 그 애들이 하는 말을 거의 알아들을 수 없었다. 물고기가 새의 말을 할 수 없듯, 나는 그 애들의 언어로 속살거릴 수 없었다. 교사가 자기소개를 시켰을 때 나는 앵무새처럼 앞의 아이의 언어를 모방하여 읊어내렸다. 아무도 내가 앞의 아이를 그대로 모방했음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사실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런 식으로 서로를 모방했다. 거의 모든 자기소개가 똑같은 내용이었음에도 아이들은 마치 독창적인 농담을 듣듯 웃어젖혔다. 나는 검은 입을 아 하고 벌린 채 웃는 척했다.
불현듯 눈이 마주친 어떤 아이는 나를 불쾌하게 흘겨보았다. 나와 눈이 마주친 아이는 더 이상 웃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