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의 커튼콜의 물방울

넌 현의 이야기를 잠자코 듣고 있었다. 현의 죽은 머리는 네 머릿속에서 고개를 숙이고 청중들에게 인사를 했다. 아이들은 희미한 윤곽선을 깜빡거리며 졸음을 참다가 꿈의 무대에서 하나 둘 사라졌다. 그 애들은 교실문도 창문도 열지 않고, 오로지 스스로의 경계를 지우며 그 안쪽의 살과 얼굴, 입술을 희끄무레한 온기로 바꾸며 사라졌다. 끓는 물이 천장과 냄비 그 중간 부위에서 흐릿한 연기로 실체를 은닉하듯, 아니, 더 이상 보이지 않는 것으로 제 실체를 되돌리듯. 현과 함께 죽은 유령들은 결코 현의 이야기를 증언해주지 못할 것이다. 유령이 된 현의 글을 누구도 읽을 수 없을 것이다. 아직 살아 있는 너는? 네가 썼던 현의 소설, 네가 출판했던 현의 글들은 눈 깜짝할 새에 본질의 자리로, 꿈의 자리로 옮겨갔다. 네 손에 들어찼던 날카로운 물성은 어느덧 희끄무레한 허공의 성질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너는 처음부터 실패의 예감을 갖고 태어났으므로, 유령의 언어를 증언하는 일에 실패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두통에 시달리며 깨어났을 때에도 넌 현의 글이 돌림병처럼 퍼졌으면 좋겠다고, 그래서 모두가 지독한 여름병을 앓았으면 좋겠다고, 누구도 다시는 봄이 돌아오기를 기도하지 않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옷장 속에서 여자가 속삭였다. 당신이 힘들다면 내가 쓰면 되죠.

어떻게? 넌 나와 같은 운명을 갖고 태어났는데.

아니에요. 난 아직 태어나지 않았으니까, 실패하지도 않을 거예요.

넌 어떠한 행위도 할 수 없을 거야. 네가 하는 말들은 소리가 되지 못할 테고, 네가 감싸쥔 목에는 어떤 자국도 남지 않을 거야. 넌 어떠한 사건도 현상도 될 수 없다는 걸 너도 잘 알고 있잖아.

아니에요. 난 당신의 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고 당신의 귀를 간지럽힐 수 있는 걸. 난 당신을 비참하게 만들 수도 있고 당신을 흐느끼게 만들 수도 있는 걸. 당신은 그저 내가 우는 소리를 받아적으면 돼요. 당신이 현을 아는 만큼 나도 그 애를 알고 있으니까. 당신이 기억하는 그 애의 글을 나 역시 기억하고 있으니까.

그럼 뭔가 달라질까?

그래요. 이제야 난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을 깨달았어요.

네가 시도했던 방법은 모두 실패했어. 우린 결국 한 명의 사내도 묻지 못했으니까.

아무도 읽어주지 않는 제 소설 속 트릭을 완벽한 작품으로 만들기 위해서 살인을 저지른 추리 소설 작가를 흉내낼 생각은 더 이상 없어요. 내가 틀렸다는 걸 인정해요. 그 애의 글에는 트릭이 없었으니까. 그의 소설에 있는 건 살인 없이 홀로 이루어진 죽음뿐이었으니까. 살인사건에 열광하는 사람들도 실종에는 큰 관심이 없죠. 더욱이 처음부터 알려지지 않은 사람의 실종이라면, 사라질 것도 없이 홀로 숨어 있던 사람의 죽음이라면 아무도 읽지 않을 게 분명하니까. 우리가 묘사한 죽음을 쫓는 사람은 어디로 갔나요. 우리가 묘사한 어설픈 탐정의 물방울은 몇 페이지도 견디지 못하고 절로 날아가버리고 말았죠. 이번엔 다른 방법을 쓸 거예요.

너는 애써 기대하지 않으며, 그러나 어쩔 수 없이 기대하며 물었다.

그게 뭔데?

누구도 내 글을 읽어주지 않을 거라면, 내가 쓴 글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글이면 되는 거예요. 난 미지의 줄을 조율하는 작곡가처럼 구는 데에서 더 나갈 거예요. 투명한 현이 품고 있는 음과 음의 울림을 수억 가지의 가능성을 안고 횡단하며 손가락을 실로 가르고 의미를 갖지 않고 닿을 생각들을 지문 삼아 생을 사랑하게 되는 대신 언젠가 다른 누군가가 나와 정확히 같은 불확실의 가능성을 밟기를, 나와 정확히 같은 곡을 작곡하기를 기다릴 거예요. 아마 그의 곡은 성공할 거예요. 실패의 운명을 타고 난 건 나이지 내 작품이 아니니까. 내 것과 일말의 차이도 없이 같은 작품은 타인의 뱃속에서 성공의 예감을 머금고 자라날 거예요. 사람들은 그의 우수를 사랑할 것이고, 그의 고독에 울음을 터뜨릴 거예요. 난 진실을 모방할 거예요. 불확실성의 대기에서 짜내려간 텍스트를 누군가가 같은 손길로 되짚는다면, 그의 창작물은, 내 것과 우연히도 쌍둥이처럼 닮은 그 직조물은 마치 기적처럼 성공하겠죠. 모두가 그의 음악을 들을 것이고 모두가 그의 세계에 빠져들 거예요. 나 또한 그의 열렬한 독자가 되겠죠. 난 출판되기를 애걸하며 기도하며 바랄 일도 없을 것이고, 해갈되지 못한 욕망, 기대하되 바랄 수는 없는 노출에 대한 갈망에 흐느끼면서 비참해 질 일도 없을 거예요. 내 인식 속에서 썩지도 못해 죽은 채 살아가는 내 글이-왜냐면 살아 있는 것만이 썩어가므로, 삶 속에서 회자되지 못한 내 글은 썩을 수도 없으므로, 오직 나만이 살고 있는 내 글은 나에게만 유독할 뿐이므로, 내가 발견한 문장들이 역병처럼 번져가길 바라는 내 갈망 역시 실패할 것임이 분명하므로-타인의 손가락에서 복제되는 모습을 잠자코 바라볼 거예요. 물론 나와 같은 작품을 만들어내는 그 작가 역시 내 글을 읽지는 않았겠죠. 그는 다만 우연과 우연, 모든 불확실성과 확실성이 공존하는 우주에서 아직 존재하지 않기에, 다만 유령인 내 인식 속에서만 살고 있기에, 나 이외엔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았기에, 그것을 쓰고 읽은 유일한 인물인 나마저 아무에게 들킨 적 없이 살았기에 거의 존재하지 않는, 어쩌면 아예 존재하지 않는 내 글과 꼭닮은 글을 출산해낼 뿐이에요.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을 낳는 일은 모방이 아닐 테죠. 난 그에게 호소하지도 못할 거예요. 잠자코 내 불안, 우수, 지독한 갈증으로 낳은 아이와 꼭 닮은 아이가 충분한 빛과 어둠을 쐬며 사람들의 눈과 코, 입술과 목 안쪽을 간지럽히며 자라나고 그들의 자장가를 들으며 조금씩 썩어가는 모습을 지켜볼 거예요. 난 그의 열렬한 독자가 될 거예요. 그래도 난 그의 작품과 정확히 같은 얼굴과 몸을 가지고 있는 내 글을 잊을 수는 없겠죠. 영원히 썩지 않고 같은 글자를 살아가는. 난 내 글을 출판조차 할 수 없을 거예요. 그들은 내가 내 미래를 모방했다며 고개를 젓겠죠. 그러면 난 그들이 내가 쓴 글과 같은 글을 읽어보았다는 사실에, 그들이 내게서 무언가 내게 없는 것, 무언가 내게 머물 수 있었던 것을 알아보았다는 사실에 은밀한 기쁨을 느낄 거예요. 우리는 진실을 모방할 거예요. 언젠가 그의 글과 똑같은 생김으로 세상에 등장할 소설을 미리 짜 내려가는 거예요.

난 현의 글을 바꿀 수 없어.

바꿀 필요 없어요. 우린 그의 증언을 왜곡할 필요도 없고, 부러 다른 길로 돌아갈 필요도 없어요. 우린 그저 쓰던 대로, 그의 여름을 그대로 적어내려가면 돼요. 그리고 기다리는 거예요. 한 번 등장한 것이 반드시 한 번 더 등장하는, 유일한 것은 없는 광대한 우주에서 우리의 불확실성이 다시 한 번 짜내려지기를.

재난과 고독, 불안과 절망이 다시

그건 모를 일이죠. 현의 재난이 우리에게 속하지 않았듯, 그와 정확히 같은 글을 쓰는 이도 그러할지 모르죠. 어쩌면 그는 전혀 다른 재난과 고통을 겪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는 우리만큼 고독하진 않을 거예요. 어쨌건 그는 누군가를 설득하는 데 성공하고 말 테니까, 그가 증언한 울음을 누군가는 들어줄 테니까. 들리지 않는 이의 울음을 증언할 수 있을 테니까. 우리와는 다르게. 유령의 울음을 우는 우리의 울음은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으므로, 우리가 증언하는 유령들의 울음은 결코 누군가에게도 닿지 않겠지만 그러므로 우리는 타인을 설득하고 울리는 작가의 소질을 타고나지 못한 것이지만 우리와는 달리 사람의 울음을 들리는 울음을 우는 사람들은 도처에 널려 있으니까. 숱한 사람들은 들리는 울음을 우니까. 우리는 그 무수한 사람들 중 누군가가 현의 소설을 울어 주기를 기다리면 되는 거예요. 그는 아마 현을 모르고 현을 쓸 테지만, 현의 울음을 들은 적도 없이 그를 쓸 테지만, 주사위를 굴려 작곡을 하는 음악가처럼 그 멜로디에 얽힌 비극은 전혀 모르는 채로 현을 복기할 테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그 우연을 황홀하게 읽을 수 있을 거예요.

그럼 난 뭘 하면 되지?

평소처럼 글을 쓰면 돼요. 쓴 글이 다시 꿈으로 돌아가더라도, 실재가 본질의 추상적인 자리로, 자리 없는 자리로 되돌아가더라도 끝까지 쓰면 될 거예요. 적어도 우리는 현의 글을 기억하고 있으니까, 적어도 우리는 현의 글을 쓰고 읽고 만져본 적이 있으니까, 누군가 우연하게 직조해낸 꼭 닮은 텍스트를 보고 그게 현의 울음이라는 것을, 적어도 그 텍스트와 똑같은 생김을 가진 소설이 있다는 것을 알아볼 수는 있을 거예요.

생은 방향도 변화도 흐름도 없이 나무 위에 걸려 있는 둔탁하고 육중한 달처럼 느껴졌다. 달의 살이 썩어가기를 혹은 달의 살에 닿기를 너는 밤 내내 기도하지만 달은 언제나 음탕하고 거북스러운 무게를 가지고 밤의 피부 위에 고인 채 미동도 않고 머물러 있다. 타인의 달은 그보다 가볍고 선량한 빛을 가졌다는 걸, 천사의 날개처럼 가볍게 움직이며 날아오르기도 한다는 걸, 너는 소설의 묘사와 영화 속의 하얗고 신비로운, 네가 겪었던 달과는 전혀 다른 생김의 창백한 거울상을 보며 비로소 깨달았다. 네 달이 그토록 흉측하고 비만했던 것은 네가 그처럼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같은 자리에서 달이 저물어 가는 모양을 바라보기만 했기 때문임도 그제서야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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