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다야트와 소녀의 물방울

서로 다른 악몽을 지켜보며 밤의 찢긴 베일이 내려앉기를 기다린 그날 이후, 소녀는 종종 페터 할아버지의 오두막에 찾아갔다. 여느 살가운 손녀가 그리하듯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노인을 위해 집안 정리를 해주고 정원에 자라난 잡초를 뽑아주며, 침이 말라 굳은 더러운 입가를 훔쳐주는 일은 없었다. 소녀는 그저 고기의 냄새를 잊지 못하고 죽어가는 사내의 옆에서 그녀의 속에 있는 개의 피 냄새를 조금씩 흘려넣어 줄 뿐이었다. 한 번도 맛보게 해준 적은 없었지만, 그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그가 원하는 고기는 개의 살이 아닌 소의 살이었으므로. 소녀의 살은 그가 원망하고 바라는 고기가 될 수는 없는 것이었다.

페터 할아버지는 소녀가 소년에게 그리하듯 망령과 같은 소리들을 자유롭게 지껄였다. 그의 속에서 자라나는 벌레들의 머리를 소녀에게 조심스럽게 보여주었다. 개중 몇 개의 생각은 소녀만 보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아름답고 구체적이었다. 소녀는 노인의 목덜미에서 돋아난 나방의 검푸른 날개를 쓰다듬으며 노인의 견고한 환상을 만끽하였다. 난 윤회를 믿어, 하고 노인이 불쑥 말을 꺼냈을 때만 해도 소녀는 그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았으나 그가 스스로를 헤다야트의 환생이라고 이야기했을 때, 헤다야트의 사망일은 1951년 4월 9일이고 자신의 생일은 1951년 4월 10일이므로 그의 죽음과 자신의 탄생 사이에는 무언가 필연적인 연관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이야기했을 때, 노인은 태어나기 이전에 가슴 부근에 치명적인 고통을 느꼈던 것을 기억하고 있는데 그 때문에 자궁에서 막 나와서도 계속해서 기침을 하며 죽을 듯 숨을 몰아쉬었다고, 자신의 기묘한 호흡질환에 대해서는 그 자리에서 아이가 죽을 줄 알고 소스라치게 놀랐던 어머니 역시 증명해준 바 있다고, 무엇보다 기묘한 점은 자신이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의 언어를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노인은 소녀의 손등 위에 때가 낀 기다란 손톱으로 유려한 곡선과 무수히 많은 획들로 이루어진 기묘한 문양을 그려넣었다. 그러고는 그것이 노인이 탄생 이전부터 기억하고 있는 내면의 언어라고 했다.

노인은 갑작스레 소리쳤다. 윤회야, 윤회가 아니라면 설명이 되지 않는단다, 얘야. 그렇지 않다면 수천 년의 세월을 두고 똑같은 사상이 갑작스레 솟아나는 이유는 무엇이며 수천만 킬로미터의 거리를 두고 똑같은 이야기가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이겠니. 후천적으로 학습한 것들이 돌연 유전되는 이유는 무엇이겠니? 단순히 DNA 체계에 새겨진 생식의 분자만으로 지금껏 인류에게서 이어져온 온갖 희귀한 기벽들을 설명하는 건 말이 안 돼. 그렇지 않니? 헤다야트, 헤다야트 말이다. 난 그자의 모든 문장들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어. 처음으로 그자의 책을 구해다 보았을 때, 난 내 몸속 깊숙한 곳에서 피어오르고 있던 독 같은 문장들을 단번에 알아차렸지. 그때 고작 열 살이었는데 말이야. 믿어지니? 아가야. 난 헤다야트를 살고 헤다야트를 죽었던 거야.

노인은 흥분에 못이겨 입술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말간 침을 무릎에 뚝뚝 떨어뜨리며 소리쳤다.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지. 난 내 이론을 증명하기 위해 탑 꼭대기에 있던 골방에 틀어박혀서 글을 썼어. 일 년 내내 엄마가 탑 꼭대기층까지 올라오는 발소리, 긴 나선형의 계단 한쪽 끝에 놓인 소고기의 비린 피냄새, 요강에서 차오르는 분뇨의 냄새와 아득한 정상까지 오물과 피를 쫓아 따라온 파리들의 이글대는 울음소리 속에 파묻혀 지냈지. 그리고 하얀 구더기들과 시체에 대한 마지막 문장을 썼을 때, 난 이미 확신하고 있었어. 이건 내가 오래 전에 인도에서 출간했던 작품, 몽롱한 의식과 고독의 폐병 사이를 떠돌며 몇 번이고 펴냈던 문장들이라고. 내가 문을 박차고 내려왔을 때, 문 바깥에는 짐승의 핏물이 굳은 하얀 접시들이 있었고 그 위에는 시꺼먼 파리들이 우글거리고 있었어. 반짝거리는 날개들이 이글거리는 하얀 접시들은 보석처럼 찬란해 보이기도 했어. 그제야 난 며칠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고 글만 썼다는 걸 깨달았지. 갑자기 무시무시한 허기가 뱃속에서부터 드밀고 올라오는 걸 느꼈어. 내 글과 헤다야트의 글을 비교해보기 전에 무언가를 먹어야 한다는 걸, 그렇지 않으면 글과 글, 죽음과 탄생의 신비로운 연결지점을 잇대어 보는 작업은 내 다음의 몸, 내 다음의 의식과 내 다음의 삶으로 넘겨준 뒤 모든 일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

나선형 계단을 계속해서 내려갔어. 언젠가 이 황홀한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위해 달음박질치며 올라갔을 때는 어떠한 공간으로도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순식간에 사라졌던 계단들의 무더기가 그때는 역겨울 정도로 길었지. 나일강의 구불거리는 등을 따라 횡단하는 불가능한 여로처럼 길었어. 마침내 미로의 끝에 도달했을 때 세상은 황금빛이 아니었고 축축한 모래바람도 느껴지지 않았지. 낮도 밤도 없었고 지독한 지옥의 원무를 추는 태양도 수천 마리 고래들의 죽음을 일러주는 바람의 전령도 없었어. 창밖은 놀랍도록 시뻘건 색이었지. 하지만 하늘은 언제나 푸르거나 잿빛이지 않았었나? 하고 난 자문했지. 그리고 식당으로 달려가자 테이블 위에 헤다야트의 저작 ‘눈먼 부엉이’가 있더군.

난 그 책을 펼쳐보기도 전에 그 속에 어떤 문장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배열되어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지만 결과를, 이미 자명한 사실을 거듭 확인하는 실험자처럼, 황홀과 완벽이 보장된 교향곡의 악보를 선택받은 연주자들에게 전해 준 뒤 처음으로 잠재태에서 실태로 드러난 곡의 마법 같은 화음들을 듣는 작곡가처럼 펼쳐보았어. 모든 어휘, 문장, 문장부호와 문단, 심지어는 문단 사이의 여백까지 내가 짐작한 그대로였지. 하지만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난 한 번도 헤다야트의 책을 주문한 기억이 없고 부모님은 실용서나 신문 이외에는 아무것도 읽지 않는데 갑작스레 식탁 위에 헤다야트의 문제적인 저작이, 깊은 우울을 앓지 않는 자라면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 문장들이 놓여져 있는 건 무엇 때문일까? 그리고 하늘, 하늘은 왜 이리도 붉은 거지? 아직 노을이 질 시간도 아닌데. 아침의 하늘이 이렇게 붉었던가? 그제야 난 깨달았어. 이곳에는 헤다야트가 없다는 걸. 내가 기억하는 헤다야트의 생애, 나의 생애의 이력과 맞춰보았다고 생각한 헤다야트의 기록들, 헤다야트의 저작들은 모두 내 몸 깊은 곳에 있는 지난 생애에서의 기억 속에서 발굴된 것이었던 거야. 그것은 환상이 아닌 실제였지만 이곳에서는 그 실존의 증거를 찾을 길이 없었지. 증거라고 한다면 오직 내 몸과 의식, 그리고 날마다 돌아오는 푸른 대기와 푸른 강물의 꿈뿐.

난 냉장고에 있던 시뻘건 생고기를 맨손으로 뜯어서 먹었어. 아침 늦게 일어나 세수를 하러 방 밖으로 나온 엄마가 기겁을 하며 내 손을 부여잡고 흐느낄 때까지. 방 안에서 잠을 자다가 엄마의 비명소리에 놀라 나온 아빠가 내 뺨을 때리고 뒷머리를 움켜쥐며 고기로부터 붉게 물든 내 이빨을 떼어놓을 때까지.

모두 꿈이었던 거야. 헤다야트도, 헤다야트의 글을 다시 쓰겠다는 내 실험도. 매일 무덤가를 산책하며 유령들의 삶을 떠올리는 시인의 몽상처럼. 그래도 내가 헤다야트라는 짐작이 깨어진 건 아니야. 아침과 한낮, 심지어 밤까지도 벌건 이 혹성에서 난 첫 번째 헤다야트인 거야. 헤다야트의 사망일은 1951년 4월 9일이고 내 생일은 1951년 4월 10일이라는 것, 헤다야트가 파리에서 가스자살을 했다는 것, 난 참을 수 없는 기침을 터뜨리며 잔혹한 산소를 한껏 들이키면서 태어났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어. 비록 내 안에 새겨진 명제들을 근거해줄 현상은 이 혹성 어디에서도 발생한 적이 없지만, 난 헤다야트의 삶과 죽음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고, 피할 수 없는 사실로서의 문장들이 내 안에 인박여 있었으므로 이곳이 아닌 다른 어딘가에서는 헤다야트의 탄생과 자살, 글과 우울이 반드시 실존했을 것이라고 난 믿고 있었어.

난 다시 한번 헤다야트를 살기로 했지. 헤다야트의 글을 다시 썼던 일 년간의 꿈이 마치 계시처럼 다가왔지. 난 정말로 헤다야트의 글을 다시 쓰기 시작했어. 계시에 나왔던 탑의 꼭대기층에 틀어박혀서 내가 기억하는 헤다야트의 언어로-노인은 소녀의 손등에 다시한번 기묘한 곡률의 문양을 그리며 말을 이었다- 헤다야트의 고독과 헤다야트의 우수를 재현하기로 한 거지. 아름답고 우울한 고향의 풍광을 잊지 못해 매일같이 하나의 풍경만을 반복해서 그리는 풍경화가처럼 말이야. 난 이 낯설고 익숙한 고향 혹성에 헤다야트의 자취를 헤다야트의 존재를 헤다야트의 삶과 죽음을 남기려 안간힘을 썼어. 애초의 계획은 내가 기억하고 있는 헤다야트의 연보를 그대로 살아내는 것이었어. 난 내가 1903년 2월 17일에 우리 부모님처럼 부유한 귀족에게서 태어났다는 것, 엘미예 초등학교와 다르알포눈 학교를 다녔고 프랑스어를 배웠다는 것, 프랑스계 학교 생루이 학원에서 본격적으로 프랑스어를 배우면서 글쓰기를 시작했다는 것, 불교와 조로아스터교에 심취하여 채식을 했다는 것, 청년 시절에는 종교보다도 고독과 절망에 심취하여 매혹적인 죽음의 강물 속에 몸을 던졌지만 죽음보다는 삶을 향유하며 강물 위에서 이지러지는 반짝이는 눈빛을 마주치며 서로의 흐린 빛깔을 애무하던 연인들에 의해 구조되어 얘야, 다시 삶으로, 삶으로 내팽겨쳐졌다는 것, 그 이후 오래도록 죽지 못하고 살아가야만 했다는 것, 죽음의 겉을 떠돌며 죽음에 대해, 죽음에 도달하지 못할 길고 쓸모없는 편지들만을 쓰며 살아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 하지만 이 중 하나의 연보도 제대로 지켜낼 수가 없었어. 우선 너도 알다시피 검은 숲에는 학교가 없잖니. 부모는 폐병을 앓는 나를 먼 곳까지 홀로 보낼 마음이 없었어.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지. 헤다야트의 삶이 시작된 이 검고 서글픈 고향에서 떠나면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거야. 두 번째로, 이곳에는 프랑스도 프랑스어도 없었으므로 프랑스계 학교에서 프랑스어를 배우는 일도 불가능했어. 하지만, 아니다, 얘야. 프랑스어는 아직 존재한단다. 바로 네 옆에 숨을 쉬며 실존하고 있어-페터 할아버지는 다시 소녀의 손등 위에 길고 부드럽게 이어지는 곡선들을 흘려적으며 말을 이었다-, 난 여기서 태어난 뒤 한 번도 프랑스어를 들어본 적도 없고 프랑스어를 읽어본 적도 없으며 프랑스어를 배운 적도 없음에도 프랑스어를 기억하고 있단다. 그래서 프랑스어로 글을 쓰는 건 문제가 되지 않았지. 다만 나 외에는 아무도 프랑스어를 알지 못한다는 것, 그래서 내가 쓰는 글들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 그건 치명적인 문제였어.

소녀는 노인이 그의 지정석, 덜 마른 빨랫더미들이 놓여 있는 툇마루로부터 일어나 구부정한 등을 조금씩 움직이며 벌레처럼 앞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처음으로 보았다. 잔뜩 수그린 고개는 걸음과 걸음 사이에 움찔거리며 조금씩 위로 지켜들어졌는데 꼭 비온 뒤 독과 같은 물이 가득 들어찬 흙으로부터 도망쳐나와 높은 곳으로 기어올라가는 지렁이들의 작고 매끄러운 머리가 움직이는 모습처럼 보였다. 소녀는 노인이 빠져나간 자리를 손으로 쓸어 보았다. 지독히 오래도록 같은 자리에만 앉아 있었던 것을 증명하듯 노인의 엉덩이만큼 자그마한 자리는 다른 나무바닥에 비해 훨씬 밝은 빛깔이었다. 바닥에는 약간의 온기가 남아 있었으나 노인이 그 위에서 몸을 붙이고 살아가던 시간이 무색하게도 열기는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밝은 빛깔로 남은 흔적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노인이 며칠만 다른 곳에 앉아서 글을 쓰거나 벌레처럼 기어다니며 떠돌아다니면 금방이라도 다른 나무들처럼 햇빛에 바래어 변색되고 말 것이다. 소녀는 노인이 자신의 흔적이 사라져버린 뒤에도 여전히 같은 자리를 고수할지, 혹시 노인이 그 자리에만 계속 앉아 있었던 것은 어떻게든 자신의 흐릿한 흔적을 오래도록 지속시키고 싶었기 때문은 아닌지 궁금해졌다. 어떻게든 죽어버리고 싶어하는 죽음의 신도들이 끝내 불타지 않은 글을 남기고 죽었듯. 노인은 죽음을 갈망하며 죽음에 대한 글만 썼다고 이야기하면서도 이곳에는 존재하지 않는 그 글들을 다시 태어나게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노인은 소녀가 알아볼 수 없는 기이한 문양들이 가득 이지러진 노트들을 그득 들고 소녀에게 다가왔다. 모두 손으로 쓴 글자들은 소녀의 허리만큼이나 높이 쌓여 있었다. 노인은 수줍은 듯 조심스럽게 노트들을 내밀며 그 안에 있는 구절들을 설명했지만 소녀는 노인이 이상한 낙서들로 소녀를 속이려는 것이 아닌지, 이 괴상한 문양들이 정말 항상적으로 대응되는 기호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인지, 이 모든 것이 망령 든 노인의 집요한 환각의 결과물뿐인 것은 아닌지 하는 의심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열에 달떠 소위 헤다야트의 피부를 더듬거리며 제 치부를 읽어내려가던 노인은 소녀의 얼굴을 보더니 갑작스레 무척이나 서글픈 목소리로 괜찮아, 하고 이야기했다. 여자아이처럼 가느다랗고 여린 목소리에 소년 같은 말투는 소녀보다 훨씬 어린 동생을 상대하는 기분을 불러일으켰다. 읽어주지 않아도, 읽을 수 없어도 괜찮단다. 넌 이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럴 수 없는 거겠지. 나도 너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니 너도 나를 이해할 수 없는 거야.

소녀는 죄책감과 당혹감에 사로잡혀 고개를 저으며 계속 이야기를 해 달라고 중얼거렸다.

노인은 아직 체념이 가시지 않은 무척이나 연약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결국엔 아무도 믿지 않았단다. 내가 쓰는 글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다들 내가 기묘하고 악마적인 낙서에 심취해 있다고 생각했지. 이걸 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었어. 지독히 괴상하고 불길한 문양이라고 여길 뿐이었지. 난 내 작품이 출간되길 바랐고 또 세상에 헤다야트를 알리기 위해, 헤다야트의 존재를 증명하고 헤다야트의 기억을 현화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결국 한 권의 책조차 출간되지 않았단다. 네가 보고 있는 노트들이 전부야. 저택을 차압한 관료들마저 이 노트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지. 이건 어떤 금전적, 현존적, 미학적 가치도 없는 쓰레기일 뿐이야. 결국 글을 쓰기 전과 쓰고 난 뒤 세상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지. 헤다야트를 믿는 사람도 헤다야트를 기억하는 사람도 헤다야트를 아는 사람도 헤다야트를 읽는 사람도 헤다야트를 쓰는 사람도 나뿐이야.

내가 기억할게요. 내가 당신과 함께 헤다야트를 읽어 줄게요. 하고 소녀는 충동적으로 노인의 차가운 손을 잡으며 이야기했다. 노인의 장광설을 진심으로 믿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무척이나 유약하고 서글픈 늙은 아이 같은 페터 할아버지를 달래주고 싶은 충동이 치밀어올라 저도 모르게 그렇게 이야기한 것이었다.

노인은 조숙한 어린아이처럼 해맑게, 그러나 여전히 체념이 묻어나는 얼굴로 웃음지으며 헤다야트의 눈먼 부엉이를 읽어주었다. 그것이 노인의 첫 번째 창작-번역 작업이라는 말을 수줍게 덧붙이며. 소녀는 노인의 목소리에 순식간에 빠져들었다. 서로를 뱀처럼 휘감는 죽음의 그림자들, 더러운 이를 드러내며 톱날 같은 죽음의 노래를 부르는 묘지기의 존재, 창녀의 생살을 전시하는 정육점에서 진동하는 붉고 짙은 생의 비린내. 노인은 책을 읽는 중간중간 자신만의 코멘트를 덧붙이겠다고 이야기했는데 소녀로서는 어디까지가 노인의 목소리고 어디까지가 헤다야트의 목소리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아니, 애초에 구분할 필요조차 없었는지도 몰랐다. 노인의 말대로 그가 헤다야트이고 헤다야트가 그였다면, 신의 존재를 계승하기 위해 내려온 예수의 존재처럼 노인의 존재 역시 오로지 헤다야트의 실존만을 증명하고 현현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무엇보다 소녀를 사로잡은 것은 지독한 절망의 빛깔이 배어 있는 푸른 하늘에 대한 묘사였다. 시신처럼 창백한, 강물처럼 차가운 파란 빛깔의 하늘, 소의 생살과도 개의 헐벗은 몸과도 다른 빛깔의 하늘. 구더기처럼 하얗게 꾸물거리는 구름이 가득 들어찬 하늘, 시신을 뒤덮은 하얀 곰팡이처럼 이지러진 흰 꽃들이 피어난 하늘. 소녀는 노인의 곁에서 푸른 하늘을 함께 마주볼 수 있었다. 소녀는 자신이 바라보고 있는 절망에 질려버린 하늘의 푸른 살덩어리가 노인의 헤다야트를 죽인 그 하늘의 빛깔과 정확히 같으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헤다야트를 읽고 헤다야트를 상상하는 그들의 눈에는 더 이상 붉은 하늘이 비추어지지 않았다. 그들이 보는 것은 이 혹성에는 존재하지 않는 푸른 하늘, 오로지 그들의 눈 속에서만 일렁거리는 푸른 불꽃과 같은 하늘뿐이었다. 소녀가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순전히 페터 할아버지-헤다야트의 영향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소녀는 허구를 증명해나가는 작업의 매혹적인 슬픔에 대해 알려준 페터 할아버지를 사랑했고 그만큼이나 미워할 수 밖에 없었다. 언젠가 소녀는 이렇게 썼다.

군데군데 썩어가는 고깃덩이처럼 으무러져 무참하게 망가져가는 문장들. 언어의 결과 피부의 선을 잃고 엉망진창으로 합쳐진 고기 패티, 노인의 이야기 속에서만 들어볼 수 있었던 분쇄된 고기들의 반죽처럼. 접속어와 쉼표, 인용 부호와 역접이 지녀야 할 논리들의 치밀한 날을 잃고 으스러진 짙은 악취의 덩어리들.

유대는 오로지 환상 속에서만 가능하다. 우리는 망령과 환각 속에서만 소통한다.관습적인 인식의 저항으로부터 벗어나 헐벗은 유령들을 마음껏 애무하고 끌어안을 수 있다. 우리는 허구에서만 거주하며 이곳에서는 누구에게도 증명될 수 없는 푸른 하늘의 절망적인 빛깔 내부에서만 서로의 절망을 소개할 수 있다. 그러나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 붉은 하늘 아래에서는 유령들이 보이지 않는 법이므로. 푸른 하늘을 꿈꾸는 이들의 눈동자 속에만 머무르는 시퍼런 익사체들의 얼굴을 어디에 내놓고 자랑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미치광이가 되는 수밖에 없다. 광증의 단편이라도 선보이기 위해서는. 연대하지 못하는 자들에게 푸른 잉크로 범벅이 된 더러운 손을 내밀어 보이기 위해서는. 우리는 오로지 불결하고 비참하기 위해 살아간다. 푸르지 않은 하늘에는 우리를 위한 자리도 우리를 위한 목소리도 없다. 아득한 곳,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들려오는 언어만이 우리의 모어이다. 우리는 광기의 언어로, 붉은 살을 살아가는 자들은 읽을 수 없는 광자들의 푸른 잉크로 글을 쓴다.

페터 할아버지는 헤다야트의 글을 불태워달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상에 남은 헤다야트의 피부는 모두 불타 없어지고 말았다. 그의 흔적을, 그만의 언어를 파괴한 장본인이 그 자신인지, 아니면 그의 저작 역시 우리에게 닥친 치명적인 재난에 휩쓸려 사라진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의 글이 완전히 사라지지 못했다는 점, 헤다야트의 문장들이 여전히 내게 남아 있다는 점, 나 역시 얼마간은 헤다야트의 삶을 살게 되었다는 점을 죽어가는 동안, 불타 사라지는 동안 그 역시 짐작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는 푸른 대기 아래서 살았던 많은 작가들이 자신이 지우지 못한 미련들을, 미련한 유서들을 친구에게 맡기며 제발 불태워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의 작품은 유언과는 달리 끝까지 살아남았고, 그들의 목숨보다도 길고 널리 번식하며 퍼져나갔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친구에게 제 자식의-제 악몽의 실존을 맡기면서도, 그 치열하고 고통스러웠던 악몽을, 삶을 무위로 돌리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스스로의 손으로 독과 같은 문장들을 불태우지 못했던 것은 지상에 아이를 남기고 죽어가는 어미들과 같은 과오일 것이다. 차마 아이의 숨을 끊어놓지 못하고 짙은 손자국이 남은 목을 움찔거리며 기침하는 갓난아기의 미련한 생을 놓아둔 채 깊은 물 속으로 사라져버리는 어미처럼 끝내 모질지 못해 잔혹한 생의 미련을 끝없는 고독 속에 내버리고 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제가 죽이지 못한 아이가 제 죽음 이후에 곧장 죽어버릴 것이라는 자조와도 같은 안심으로 스스로를 기만하며. 그러한 점에서 페터 할아버지의 과오는 나의 존재일 것이다. 그가 묘사하던 푸른 하늘의 악몽들을 같이 살아가고 같이 기억한 내가 살아남았다는 것. 그의 안에서 헤다야트를 듣던 내가 홀로 남아 헤다야트가 뒤얽힌 고독의 언어를 써내려가고 있다는 것. 그는 그 오류를 짐작해야 했다. 하지만 위대한 작가들의 실존은 모두 그러한 무책임한 오류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 맺어지지 못한 종결과 잊히지 못한 절망으로부터, 살아남은 암덩어리로부터 무참할 정도로 증폭되며 퍼져나갔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결국 페터 할아버지는 나를 통해 헤다야트의 복기를 완성하려던 것이 아니었을까. 내가 홀로 남아 그 어둡고 비참한 푸른 하늘을 계속해서 써내려갈 수 있도록. 내 안에서 끊임없이 증폭된 부조리한 색채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유령들의 보금자리가 될 수 있도록.

바깥은 쓰레기 천지야, 플라스틱 장난감들, 구더기가 들끓는 죽은 고기들, 해방되어 자유의 신분으로 죽어간 고기들, 정당한 재판 끝에 살인죄를 선고받고 사람을 묶어 죽이는 밧줄과 같은 검은 밧줄에 걸려 교수형 당한 개들, 발목까지 쓰레기들이 들끓고 있는데 사람들은 이상한지도 모르고 있어. 물고기가 죽어가고 죽은 물고기가 허공을 떠돌고 발목을 깨물고 기어다니는데도 이상한 줄 모른다니까. 곧 쓰레기들이, 종말의 전령과 같은 파리들이 물밀듯이 숲 곳곳을 파고들 거야. 문을 닫아야 해. 닫아야 해. 이 좁고 아늑한 나무 관 속에 어떤 짐승도 벌레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구더기 한 마리 들어올 수 없도록. 오로지 몸 속에서 배양되던 순수한 독만으로 썩어갈 수 있도록.

소녀는 페터 할아버지가 미친 듯이 중얼거리며 창문에 널빤지를 대어 못으로 박는 소리를 들었다. 서툰 못질에 손가락에서 피를 흘리면서. 실존의 고통에 잠식당한 피부는 더 이상 어떤 강렬한 외적인 감각을 일러주는 기본적인 창구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해 뭉그러진 엄지손가락이 지르는 비명은 알아차리지도 못하는 채로 낡은 걸레 같은 손을 무심하게 흔들면서. 그러한 무용한 퍼포먼스 끝에-검은 피가 줄줄 흘러내리는 망가진 엄지손가락 말고는 어떤 작업의 결과물도 남기지 않는 휘발성의 행위 끝에 잠가 놓은 밀실을 오래 견디지 못하리라는 것, 결국 소녀에게 다시 책을 읽어주러 나오리라는 것을-소녀는 이제 노인이 읽어주는 책이 헤다야트의 저서인지 아니면 노인의 새로운 창작물인지조차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란의 작가와 검은숲의 낭독가의 목소리는 파랗고 몽롱한 눈동자 속에서 이지러져 구분할 수 없이 뒤얽힌 채 녹아붙어 버렸고 노인의 이야기는 끊임없이 계속되었으므로-, 시뻘건 대기에 제 몸을 먹잇감으로 내어주고 소녀와 눈을 맞추며 푸른 하늘을 공유하리라는 것을, 또다시 죽어가기 위해 나올 수밖에 없으리라는 것을 짐작하면서. 밤이 되기 전에 노인은 망치의 끝부분으로 어설프게 박힌 못들을 다 떼어내고 넝마가 된 창문을 밀어젖히며 소녀에게 헤다야트를 읽어줄 것이다. 막 태어난 구더기들처럼 환하게 꿈틀거리는 별들이 종말의 계시처럼 창문 안으로 스며들 것이다. 그들은 도래할 것들을, 그들을 감염시킬 병을 결코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얘야 아직 가지 않았지? 아직 거기에 있지? 듣고 있지?

소녀는 노인이 소녀를 부르며 못을 뜯어내는 소리를 들었다. 숲의 한복판에서 목수들이 나무의 허리와 사지를 톱날로 베어내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검은 가죽 아래 희게 드러난 상처에서는 투명하고 끈적한 수액이 질질 흘러내릴 것이다. 소녀는 달고 축축한 수액의 냄새를 맡았다. 죽어가며 발산되는 삶의 강렬한 향내를 맡았다. 더는 빛을 조절할 수 없는, 돌이킬 수 없이 풀려버린 동공에 그득 들어차 말갛고 부드러운 살을 포식하는 구더기들처럼, 죽음을 먹고 자라나는 죽음의 벌레들처럼. 벌레들의 살처럼 바글거리며 피어오르는 눈부신 흰색의 별들을 바라보았다. 천구의 현을 길게 이어 그으며 연주되는 별들의 음악은 지나치게 낮고 느린 연주였다. 지긋한 소리 틈새로 거품과 같은 언어들이, 단상들이, 소음들이 저절로 끼어들어 찬란한 화성을 더럽힐 만큼. 천구의 완벽한 원들은 그저 오만한 환상으로부터 비롯된 치명적인 오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일러주듯 수적인 질서로는 환원되지 않는, 개별적인 음색들이, 질적으로 전혀 다른 독특한 소음들이 저마다의 불결함을 부르짖는 소리의 알갱이들이 소녀를 전율하게 만들었다. 어떠한 다른 이름으로도 부를 수 없는, 그래서 영원히 지칭하지 못하고 언급하지도 못한 채 다만 은유적인 암시만으로 그 곁을 맴돌아야할 운명을 선고하는 음들의 파동은 지독한 추위 같기도, 끔찍한 열기 같기도 했다. 소녀는 밤의 순결한 연주 사이사이로 끼어든 먼지들의 지저귐을 들었다. 그녀의 내부로부터 솟아나오는 말간 거품들. 그녀의 외부에서 재재대며 한밤 내도록 미약하게 떨고 있는 미친 울음소리들. 죽음의 안온한 베일을 뒤덮고 갉아먹는 생들의 속삭임, 죽음만큼이나 끔찍하고 삶만큼이나 역겨운, 미세한 움직임들. 이런 일상이 몇 번이고 반복되었다. 소녀는 노인의 종말론에 매혹되어 세계의 종말을, 천사와 같은 파리떼들의 습격을, 온 숲을 시꺼멓게 그을릴 불의 도래를 조용히 기다리게 되었다. 그때가 되면 모두 검푸른 불 속에 빠져 푸른 하늘을 볼 수 있게 될까? 육식자들의 비참한 언어를, 죽음의 언어를 모두 알아들을 수 있게 될까? 그러면 그들의 푸른 하늘 속에서 뛰노는 축축한 유령의 입맞춤을 유령의 노래를 함께 들으며 헤다야트를 낭독하는 사람들이 생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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