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해의 물방울 1

하나의 이야기가 언제 끝나는지 소녀는 도저히 물을 수 없었다.

아이들의 웅성거림은 치명적일 정도로 커져간다. 선생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귀를 틀어막는다. 안 되겠어, 이렇게 시끄러운 곳에서는 예술을 할 수 없어. 간신히 잡은 천사도 박쥐도 나방도 도망가 버릴 거야, 날개란 날개는 전부 도망가 버릴 거야.

선생은 갑자기 고개를 쳐들고는 교단으로 성큼성큼 걸어올라가 죽은 화부의 사진을 노란 원형의 자석 스티커로 칠판에 부착한다. 아이들은 쥐 죽은 듯 입을 다문다. 살아 있는 짐승의 상처에, 붉은 피가 울컥울컥 흘러내리는 환부에 달겨드는 파리떼처럼 은밀하고 적나라하게 칠판에 몰려드는 쥐의 작고 단단한 머리들. 언제든지 소녀를 물어뜯을 수 있는 병균 투성이 발톱. 소녀의 살을 오염시키고 보랏빛으로 썩혀서 다시는 사진을 찍을 수 없게 만들, 그녀를 돌이킬 수 없이 벌거벗기고 추락시키고 어떠한 순간도 포착해낼 수 없도록, 일순도 훔쳐낼 수 없도록 그녀를 죽일 수 있는 그러한 치명적인 불결함. 소녀는 아무런 두려움 없이 헐벗은 쥐들을 쓰다듬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불결함은 언제라도 소녀를 살해할 수 있으므로. 아주 작은 생채기가 그녀를 파멸시킬 수 있으므로. 그러므로 소녀는 얼굴 없는 아이들에게 다가가 그들이 화부의 죽음을 애도하지도 않으면서 사체의 사진을 보고 수런거리는 침묵에 스스로 투신한 까닭을 묻는 대신 언제나 그랬듯 논리도 근거도, 새로움도 없는 이야기를 상상해낸다. 그녀는 사진을 찍는 방식으로, 그러니까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이미지를 해체하며 왜곡해낸다. 번역할 수 없는 이미지를 텍스트로 번역해내면서, 고유한 형상을 손상시키면서.

소녀는 허리를 꺾고 바다를 향해 이마를 숙인 채 하얀 갑판에 젖은 걸레처럼 매달려 있는 털복숭이 사내의 기원에 대해 상상한다. 한때 그는 모두가 우러러보는 위대한 항해사였다고. 어린 나이에 우연히 선장이 되어 선장으로서의 첫 출항을 두고두고 기념할 수 있었던 그 상징적인 날에 하루를 건너가는 대부분의 생존자들이 그러하듯 불의의 사고를 잠재태로 넘기지 못하고 현화된 절망에 맞물려들어가 비참한 꼴로 죽어버리고 만 것이라고.

새벽 무렵 그는 해신께 물을 바치고 기도를 드리는 늙은 어머니, 성공한 아들이건 성공하지 못한 아들이건 사연이 있는 아들에게는 누구나 있는 희생적이고 맹목적인 어머니를 영원한 절망 속에 두고 시꺼먼 바다로 향했다. 그는 바다와 배의 은밀한 비밀들을 공유하는 오랜 종족들만이 공유하는 신비로운 방식으로 파도를 헤치고 나아가 십여 명의 잠재적 불법이민자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는 금지된 대륙으로 향했다. 어둠 속에서 얼핏 검붉은 내장처럼 보이는 불결한 해초들이 넘실거리는 부두로 다가가자 부두 한쪽에서 추위를 피해 서로의 품 속으로 끊임없이 파고들며 알 수 없는 언어, 유난히 탁성이 많이 섞인, 마치 벌레들의 속삭임과 같은 언어로 대화를 나누는 약속된 밀입국자들이 보였다. 젊은 선장이 무어라 말을 붙이기도 전에 그들은 배의 갑판으로 뛰어들어왔다. 화재나 지진의 전조를 얇고 질긴 수염으로 기민하게 알아차리고 찍찍거리며 도망치는 설치류처럼. 그들 중 두엇은 성급하게 뛰어가다가 부두에서 미끄러져 악몽처럼 새까만 새벽의 바다 속에 빠져 허우적댔다.

선장은 그들이 패닉 상태에 빠져 소란을 일으켜 모든 예정들을 수포로 돌리기 전에 고기잡이용 그물을 내려 거미줄에 매달린 나비처럼 경련하는 이방인들을 배 위로 잡아끌었다. 구조용 튜브를 꺼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들이 너무도 작고 더러워 보였기에. 그들이 구조용 튜브에 손을 얹고 배 위로 기어올라올 지성을 갖춘 사람이라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기 때문에. 선장은 무의식중에 그들을 펄떡거리며 하염없는 생을 구걸하는 멸치들을 잡아올리던 고기그물에 포획하여 잡아올렸다. 갈고리와 그물에 은빛 비늘이 찢겨나가 새빨간 속살을 이리저리 뒤집으며 비명도 나오지 않는 아가미를 음란하게 팔딱거리는 생선들과 전혀 다를 바 없어 보였던 그 가여운 이방인들, 날카로운 그물에 검은 살이 군데군데 찢기고 절망적일 정도로 흠뻑 젖어버린 그들을 위로할만한 말을 선장은 도저히 생각해낼 수 없었다. 고기를 고기그물로 잡아 올리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젊은 선장은 그 불결하고 불가해한 이방인들을 당장이라도 자신의 깨끗하고 순결한 첫 항해로부터 쫓아내고 싶었으나 그럴 수는 없었다. 그 쥐떼들이 없다면 선장은 더 이상 선장일 수 없었으므로. 그의 배는 검고 불결한 것들이 만들어내는 안전한 영역 위에 떠올라 항해하고 있는 것이므로. 짓뭉개고 헤쳐나가야 할 구정물이 없다면 배는 당장이라도 내부와 외부의 대치되는 힘들을 잃고 가라앉아 버릴 것이므로.

검은 피부의 이방인이 덜덜 떨리는 시꺼먼 입으로 찍찍거리는 소리를 선장은 견딜 수가 없었다. 바닥에 배를 깔고 드러누워 구토를 해대는 쥐새끼의 배를 선장은 발로 뒤집어 밟았다. 그 배는 화들짝 놀랄 정도로 부드럽고 말캉했다. 정말 쥐의 내장을 밟는 것처럼. 바다를 밟는 것처럼. 쥐새끼의 커다란 눈. 찍찍거림은 멈추었고 이방인들은 침묵하였으며 새벽바람은 침묵하였고 물푸레나무처럼 일렁거리는 안개가 침묵하였고 고기잡이용 그물이 침묵하였고 부두의 시궁쥐들이 침묵하였고 바위 틈새를 잽싸게 오가던 갯벌레들이 침묵하였고 먼 바다에 가라앉아 부패하던 시신들이 침묵하였고 육지에서 선장을 기다리던 섬광이 침묵하였고 고양이의 작은 배 위에서 발레를 추는 맨발의 소녀들이 침묵하였고 산 채로 다리가 뜯겨나가던 오징어들이 침묵하였고 달빛처럼 빛나던 멸치떼의 등이 침묵하였고 멸치떼의 등처럼 빛나던 달이 침묵하였다. 그때 뱃속에 억눌려 있던 현기증이 치밀어오르듯 검푸른 안개가 달의 눈동자를 가렸다.

침묵은 페스트처럼 새까맣게 번져갔다. 선장은 더 이상 제 아래에서 꿈틀거리는 쥐의 선량하고 음울한 눈동자를 볼 수 없었다. 쥐가 계속해서 침묵하고 있는지, 울부짖고 있는지, 살려달라고 애원하고 있는지, 쥐들이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눈을 마주치며 음모를 꾸미고 있는지, 카이사르의 머리를 자르고 열 번인지 열세 번인지 빌어먹을 읽지 못할 숫자만큼 찌를 계획을 세우고 있는지 그는 알 수 없었다. 할 수만 있다면 그는 당장이라도 쥐새끼들을 생의 가로막 바깥으로 쫓아냈을 것이다. 어둠에 익숙해진 동공이 느슨하게 풀리기 시작했다. 마치 쥐새끼의 눈처럼 커다래진 눈동자로 그는 멍하게 허공을 노려보고 있는 쥐새끼의 순종적인 눈을 볼 수 있었다. 마치 도살장의 쥐새끼들처럼, 횟집의 가자미처럼 아무것도 원망하지 않고 투쟁하지 않는 온순한 눈동자. 그는 안심할 수 있었다. 참을 수 없는 쉰내가 좁은 배 안에서 차오를 때 언제든지 그들의 배를 밟고 말캉한 파도로 발을 적실 수 있을 것이라고.

그때 일등 항해사가, 아니, 이등 항해사가 바퀴벌레처럼 배 곳곳에 드러누워 구토를 하고 있는 냄새나는 짐승들을 일으켜세웠다. 그는 불결한 농부에게 십자가를 드리웠던 천사처럼 그들을 돌봐야 했다. 돼지처럼 많이 먹는 그들, 씻지도 않고 검붉은 기름이 번들거리는 대가리를 불쑥불쑥 들이밀며 그의 첫 배에, 순결하고 아름다운 첫 배, 오디세우스를 고향으로 실어나른 배보다도 충성스럽고 고결한 배에 저를 구역질해내는 이방인들을 당장이라도 배 밖으로 걷어차고 그들이 무례하게 흘려보낸 그들을 말끔히 씻어내야 했다. 그러나 이등 항해사는 검은 물 속으로 행군하며 익사하는 불결한 쥐들 없이 배가 뜰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태한 이방인들, 그들이 자신을 구토해낸 바람에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하고 속이 빈 인형 껍질처럼 출렁거리는 이들을 억지로 일으켜 그물을 잡게 만들었다. 그러나 허둥대며 엇갈리는 손들을 비웃으며 텅 빈 어둠 속으로 미끄러져가는 달빛의 멸치떼. 손톱만 한 멸치 한 마리가 색정적으로 바둥거리며 울부짖을 뿐이었다,

선장은 멸치의 꼬리를 떼어내며 반짝이는 달빛들을 떼어내며 출항하는 데 드는 비용과 그들을 먹여살리는 데에 드는 비용, 그들이 배 위에 올라타자마자 돼지처럼 쩝쩝거리며 처먹은 스프와 감자, 건빵의 비용과 그들이 돼지처럼 구토해낸 스프와 감자, 건빵의 비용과 가련한 멸치 한 마리, 똥과 내장을 줄줄이 쏟아내고 있는 손톱만 한 멸치의 값을 비교했다. 힘들다고, 배고프다고, 유람선에 올라탄 갓난아기처럼 꽥꽥거리는 이방인들. 그들은 오로지 도축하기 위하여 살찌우는 돼지새끼들. 배를 띄우기 위해 살려놓은 검은 파도자락과도 같았으나 먹고 게워내고 먹고 게워내고 산호보다도 희게 질린 대가리를 난간에 기대며 코를 골고 잠든 이들. 멸치 한 마리 없는 허공만을 뚫어지게 노려보는 이들. 선장은 그들이 처먹은 스프와 감자, 건빵의 비용과 그들이 역류해낸 스프와 감자, 건빵의 비용, 이제는 무고하게 반짝거리는 두 개의 작은 눈동자만 남은 멸치의 비용을 계산해보았다. 엇갈리는 손들, 느닷없이 서로를 붙잡고 미끄러지며 허우적거리는 그을린 손들. 이번에는 다섯 마리의 손톱만한 멸치.

선장은 처량하게 헐떡이는 달을 전부 찢어놓았다. 달은 저항도 없이 제 몸을 그대로 열고 쪼개짐에 스스로를 노출시켰다. 찢어진 달이 저를 열고서 닫는 법을 알지 못해 흐느끼며 스프와 감자, 건빵, 수지도 맞지 않는 식량을 토해내는 저들보다는 훨씬 유용한 삶을 희생시키는 부조리를 선장은 더는 견딜 수 없었다. 그는 티끌처럼 졸아든 달을 흩뿌리고 파도만으로 흠씬 취한 주정뱅이의 배 위에서 춤을 추었다. 그들을 둥글게 에워싼 쥐들은 찍찍거림을 멈추었고 파도는 침묵하였고 뜯어내고 뜯어내도 또다시 둥글게 차오르는 불사의 달이 침묵하였고 진공으로 벌어지던 균열이 침묵하였고 진공의 내압을 견디지 못하고 갑판 위로 올라온 화부가 침묵하였고 사유 없이 달을 쫓아 날기만 하던 천사들의 긴 부리가 침묵하였다.

만약 할 수 있었다면 그는 첫 항해가 긴 악몽과도 같았다고, 깨었다 다시 잠들고 다시 깨어나고 잠드는 불연속적인 꿈과 같았다고 증언했을 것이다. 하지만 리얼리즘의 유령처럼 하나둘씩 일어나는 이방인들. 물 먹은 달 아래 그들의 검은 눈은 보이지 않았다. 도살장의 소처럼 순종적인 눈인지, 막 태어난 송아지처럼 가련한 눈인지, 복수를 다짐하는 늑대의 매서운 눈인지. 만약 보였다고 해도 선장은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한없이 검기만 한 눈, 그 눈이 어떠한 감정이, 열정이나 환멸이나 공포 따위가 담길 수 있는지, 언제나 검기만 한 눈, 그 눈을 환멸로 우울로 권태로 물들이는 것은 무엇인지. 아니, 그들은 죽을 때까지 권태를 느낄 수 없을 것이었다. 권태는 부유층의 자산이니까. 깡촌의 자그마한 땅덩어리, 토이푸들 한 마리가 뛰놀만한 조그만 땅덩어리마저도 없는 저들, 쥐새끼 한 마리 태울 만한 나룻배도 없는 저들은 팔과 다리가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므로. 불구들에게 권태는 가당치도 않으므로.

선장은 일찍이 폐기되지 못한 가엾은 배아들을 굽어보았다. 아니, 올려다보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기도로 마름질되지 못한 관 속의 유령처럼 스멀스멀 기어오르기 시작했으므로. 이등 항해사는 활짝 웃으면서 더러운 누런 이를 전부 드러내보이며 선장의 어깨를 건드렸다. 선장은 불결한 손이 제 내장을 움켜쥐는 기분에 역겨움을 견디지 못하고 몸을 부르르 털고 어깨를 털었다. 한없이 검은 눈은 그들을 올려다보았다. 아니, 굽어보았다. 한 평 너비의 땅도 갖지 못한 저들은 제 몸을 부풀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그들은, 쥐새끼들을 전부 태우고도 일등 항해사와 이등 항해사 화부와 조리장을 태우고도 넉넉한 배를 차지하고 있는 선장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작았으므로, 선장은 비루한 쥐새끼들을 무서워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불결함을 견디기 위해 이등 항해사의 가슴을 떠밀었다. 한없이 검은 눈들. 새까만 눈들이 그를 굽어보고 있었다. 물에 젖은 검은 눈이 환멸로 물든 것인지 공포로 물든 것인지 선장은 알 길이 없었다. 왜냐하면 사람은 짐승의 감정을 추측할 수 없는 법이니까. 그들의 응시는 신적인 응시와도 같았고 선장은 그들의 이름을 하나씩 부르며 달랠 수도 없었다. 그들의 불가해한 언어를 선장은 알지 못했으니까. 그들의 이름을 알 수도 없었고 그들을 하나같이 뭉툭하게 튀어나온 주둥이와 우물처럼 새까만 눈을 구분할 방법도 알지 못했으니까.

이등 항해사가 그들에게 찍찍거리는 쥐새끼의 음성으로 무어라 중얼거릴 때도 선장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그 순간 선장의 눈 앞에서 모반을 계획하고 있었대도, 선장을 조롱하고 있다고 해도 그는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처음부터 쥐새끼들이 우글거리는 배밖에는 갖지 못했다. 그는 매일같이 글을 썼으나 한 번도 출판하지 못했다. 지금도 하잘 것 없는 물 한 컵, 바다에는 넘쳐 흐르는 물 한 컵을 떠놓고 기도를 하는 어미가 무릎을 꿇고 앉아 있을 집에는 그가 손으로 써내려간 소설이 시가 산문이 아니 시도 산문도 소설도 일기도 아닌 이상한 글들이 널려 있다. 그는 자그마치 십오 년 동안 매일 글을 썼으나 단 한 권의 글도 출판할 수 없었다. 아무도 그를 읽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는 아직도 어미의 젖을 빨며 잠들었고 어미의 젖은 짙은 보랏빛으로 부르텄다. 더 이상 멀건 물 한 방울 나오지 않는 늙은 젖. 어미는 공갈 젖꼭지 하나 사 줄 기지가 없었다. 그녀는 그녀의 머리통 아래 기생충처럼 들러붙어 나오지도 않는 젖을 쭉쭉 빨고 있는 청년을, 이제 새치가 한 개, 두 개, 아니 서른 개, 마흔한 개 자라나기 시작한 청년을 경멸스레 내려다보았다. 선장은 올려다보지 않아도, 눈을 마주치지 않아도 경멸과 회한에 절은 눈빛을 느낄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쥐새끼가 아니었으므로. 처음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가 그녀의 헐거운 속옷을 내리고 음부에 손을 대었을 때 그를 노려보던, 경멸을 굳혀 만든 눈. 경멸과 환멸의 형상. 선장은 그 눈을 잊을 수 없었다. 그녀는 창녀도 제 자식과 관계하지는 않는다고 속삭였다. 그 대신 그녀는 그녀의 볼처럼 축 늘어진 가슴을 열어 주었다. 선장은 한때 그의 기원이었던 기생동물처럼 그녀의 갈빛 젖가슴에 늘러붙었다. 그녀는 끔찍한 검은 눈으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아마 그녀의 곁에 날이 선 도끼가 있었다면 주저없이 그의 머리를 내려칠 수 있는 그런 각도. 그는 길고 연약한 목을 다 드러내놓고 나오지도 않는 젖을 빨고 씹었다. 그녀의 젖은 갈수록 참담한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할 수만 있다면 그녀는 그의 목을 조르고 그의 두 눈을 찌르고 그를 병신으로 만들 수 있었다. 그녀가 떠나가더라도 그가 영영 잠들 수 있도록 할 수도 있었다. 진작에 폐기했어야 할 불우한 배아를 멸균해버리지 않았던 것을 후회하지 않도록 할 수만 있었다면 선장은 무엇이든 그녀의 소원을 들어주고 싶었다. 가느란 목을 부수고 허파를 부수고 심장을 부수어 다시는 그녀의 젖을 빨지 않도록. 왜냐하면 그도 지겨웠으니까. 아무리 깨물어도 폐사 직전의 젖소가 흘리는 부패한 모유 한 방울 나오지 않는 공백의 살덩이. 그래도 그녀의 음부는 뜨겁고 축축했다. 잿빛 안개에 흠뻑 젖은 갈매기의 깃털처럼 쿱쿱한 비린내. 언젠가 음부에서 아이를 밀어내었듯 그녀는 축 늘어진 젖에서도 그의 머리를 밀어낼 것이다. 열 달간의 인내와 고심 끝에 굵다란 전선으로 심장과 폐와 위장, 한숨과 노랫소리마저도 갈취하던 기생생물을 떼어내었듯 탯줄을 잘라내었듯 그의 목을 잘라낼 것이다. 잘라내지 않은 탯줄은 순식간에 썩어가고 이제는 상한 돼지고기와 다를 바가 없는 살코기, 썩은 고기는 아무도 먹지 않는다.

그는 입속으로 밀려든 매캐한 액체를 황급히 뱉어내었고 쥐새끼들의 새까만 눈동자는 그를 한없이 굽어보고 있었다. 그를 낳지도 기르지도 않은 쥐새끼들. 미라의 유방마저 내어준 적이 없는 쥐새끼들. 그들은 기회만 있다면 그의 목을 회 뜨는 칼로 내려쳐 부러뜨릴 것이었다. 시각을 초월하는 빛과 청각을 초월하는 소음. 그는 아득한 어둠과 침묵을 들었다. 어미의 보랏빛 젖. 그에게는 내어줄 젖이 없었다. 그는 멸치의 체액으로 흥건한 바닥에서 버둥거리는 이등 항해사를, 그의 언어를 배신하고 쥐새끼들에게 그의 배신을, 살해를, 조롱을 모의한 쥐새끼를 밟아 터뜨렸다. 그는 터진 눈으로, 터진 입으로, 터진 팔로 애걸하며 그의 헐렁한 바지를 붙들었다. 바지자락은 쥐새끼의 새까만 피로 축축하게 젖어들었다.

불쾌한 석유냄새에 선장은 구역질이 치밀었다. 쥐새끼들은 와글거리며 훌쩍거리며 터진 채 헐떡이는 이등 항해사를 멀거니 내려다보았다. 추위에 덜덜 떠는 보랏빛 입술들은 주둥이 끝에 항문처럼 매달려 움칠거리고 있었다. 선장은 할 수만 있다면 저 애석한 멍울들을 전부 바다에 밀어넣고 싶었다. 쥐새끼들의 고향은 물밑이니까. 고향의 언어를 듣고 황홀에 겨워 검은 물 속으로 기어들어가는 쥐새끼들. 심해로 투신하는 여가수 요제피네를 배웅하는 쥐새끼들. 제자리로 돌아간 쥐새끼들의 머리에서 병처럼 피어나던 사유는 모두 분열을 멈추었다. 그들은 더 이상 생각하지 않고 복잡한 행복감에 겨워 찍찍거리며 죽어갔다. 보랏빛 젖을 주둥이에 매단 가엾은 쥐들에게도 그러한 최후를 만끽할 자격이 있었다.

선장은 처량한 머리들에서, 보랏빛 젖 속에서 초연하면서도 관념적인 사유가 불어나기 시작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쥐새끼들의 사유를 더 이상 이해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쥐새끼들은 타고난 철학자이므로 쥐새끼의 언어는 철학의 언어가 될 것이고, 쥐새끼들의 낙담은 철학적인 비관이 될 것이었으니까. 그는 쥐새끼들이 철학을 하는 꼴을, 늙어빠진 젖이 암과 같은 사유로 오염되는 것을 더 이상 두고볼 수가 없었다. 이마와 눈과 입술과 팔과 다리, 생식기가 모두 터진 일등 항해사는 안개처럼 스멀스멀 일어나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그의 주위로 파리떼처럼 모여드는 쥐새끼들은 흐느끼고 쥐의 언어로 무어라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선장은 그들의 분노가 터무니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누구의 박해자도 아니었으니까. 그는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갈취하지 못했다. 그의 어미는 경멸로 굳어진 눈을 내리뜨며 갈빛의 음부를 가렸고 일등 항해사는 끝까지 그가 수군거린 공모의 의미를 알려주지 않았으며 보랏빛의 주둥이들은 그를 밀어내며 찍찍거렸으니 그는 그들의 사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사방에 널려 있는 사물들의 시체. 찍찍거리며 흐느끼는 여가수. 만약 어미가 그에게 목을 매는 법을 가르쳐주었다면 그는 당장이라도 그리했을 것이다. 작은 손으로 올가미를 매고 느티나무의 가장 굵다란 가지에 매듭을 지은 뒤 하늘 높이 비상하는 개구리처럼 펄쩍 뛰어올라 춤을 추었을 것이다. 안개처럼 경계 없는 경계를 넘나드는 병을 피해 문을 걸어잠근 사람들. 바깥에는 아무도 없기에 애꿎은 허공만을, 피도 흘리지 않고 흐느끼지도 않는 무감한 밤만을 하염없이 물어뜯던 들개들은 그의 살과 뼈, 단단하게 감겨오는 매혹적인 살코기에 황홀히 이를 박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에게 올가미를 만드는 방법도, 부러지지 않을 튼튼한 나무를 찾는 방법도, 개구리처럼 폴짝 뛰어올라 올가미에 목을 매는 방법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녀는 그를 죽이지 않았고 그와 함께 죽지도 않았다. 그녀는 비밀스러운 자살을 택했다.

응급의는 고개를 저으며 서류를 발급해주겠다고 했다. 그는 사망인의 이름과 성별, 실제생년월일과 본적, 주소와 발병일시, 사망일시, 사망장소와 사망의 종류와 사망의 원인을 작성해야 했으나 그녀의 이름과 성별과 실제생년월일과 본적, 주소와 발병일시, 사망일시, 사망장소와 사망의 종류, 사망의 원인이 무엇인지 그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녀는 한 번도 자신의 이름, 성별, 실제생년월일, 본적, 주소, 발병일시, 사망일시, 사망장소를, 사망의 종류와 원인을 알려준 적이 없었으니까. 그 모든 것은 그녀 스스로가 작성해야 하는 것이었다. 선장은 어미의 썩은 젖가슴을, 검푸른 천사들이 엉겨붙어 애무를 해대는 살을 가리켰고 응급의는 고개를 저었다.

선장은 그녀의 유령이 짓무른 가슴 위에서 해신께 기도드리는 꼴을 그대로 내버려두고 부두로 나왔다. 썩어버린 젖과 썩어버린 음부, 춤을 추며 환희를 표현하는 파리들. 물 한 컵을 떠놓고 기도를 하는 귀신은 갈빛의 젖도, 보랏빛의 젖도, 검게 썩어버린 젖도 없이 텅 빈 몸으로 흐느끼고 있었다. 그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 채 그녀의 결여를 부여잡고 비명을 질렀다. 그녀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 채 그의 앙상한 가슴을 부여잡고 비명을 질렀다. 쥐새끼들은 찍찍거리며 이해하지 못할 비명을 질렀다. 그들은 증오도 없이 비명을 질렀다. 왜냐하면 증오는 대상을 필요로 하는 감정이므로. 그는 어젯밤, 그들이 그를 불러내던 순간부터 상실 혹은 유령에 불과하였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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