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의 물방울

학교에 다닐 때, 미술시간에 학생들 앞에 나가 어떠한 인물의 생김새를 설명했던 기억이 난다. 네가 그 인물의 코와 얼굴 윤곽, 눈썹이나 입술의 모양에 대해 묘사하면 학생들은 네 설명에 따라 그림을 그리고 그것을 비교하는 것이다. 평소 글을 쓴다고 했던 너는 아이들의 추천을 받아 교단 앞으로 나가 선생님이 준 사진 속 인물의 생김새를 묘사했다.

그의 코는 크고 둥글어. 눈썹은 짙고 눈은 크며 짙은 쌍커풀이 있지. 턱과 코에 수염을 길렀고 턱은 네모난 모양이야. 그리고, 그리고.

더 이상은 설명할만한 어휘가 없었다. 인물, 객관적인 생김을 묘사해야 하는 그 자리에서 어떠한 비유도 상징도 무의미했다. 그에게서 나는 냄새나 느낌 같은 것을, 반들거리는 눈이나 생기 있는 입매 같은 것을 설명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미술 선생님은 코웃음을 치며 그래, 이제 밑천이 드러나는구나. 하고 이야기했다. 그제야 너는 네 어휘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사물을 묘사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전까지 너는, 네가 글을 쓰는 까닭이 남들보다 세심하게 사물을 관찰하며 그 진상을 정밀하게 묘사해낼 줄 알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너는 도시 속의 시인이 그러하였듯, 검투사 화가가 그리하였듯 사물을 잘 볼 줄 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보다 아리게 앓는다고도. 하지만 너는 사물에 관심이 없었다. 그것의 윤곽, 생김, 색채, 냄새나 촉감을 너는 그다지 느끼지도 않았다. 그래서 당신들의 입술은 늘 검은 것이고 혓바닥은 차가우며 안와는 깊게 패인 것인지도 모른다.

현은 가장 앞자리에 앉아 있었다. 교단 앞에서도 그 애가 그려낸 백지가 훤히 들여다 보였다. 너는 그 애에게 무시당한 것만 같은 기분에 몸을 움츠렸다. 그 애는 고개를 젓더니 교단 앞을 나와 섰다. 그리고 네 옆에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대중에게 연설하는 사상가처럼 경어로 말을 꺼내기 시작했으나,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네 곁에 다가와 익숙한 반말로 귓가에 속삭이기 시작했다.

현은 점점 더 네게로 파고들더니 순식간의 그의 몸을 잃고 너의 귓속으로 온전히 파고들고 말았다.

너는 평소와 같은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다.

학생들은 텅 빈 얼굴로 저마다의 백지에 골몰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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