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개의 총구 앞에서 사자들이 춤을 추었다는 걸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날 집으로 돌아간 이들은 모두 잠시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했다고 웃었을 뿐이었어. 그들이 다시 그 골목으로 돌아갔을 때, 사자들의 시체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있었고 더위에 지쳐 잠이 든 다섯 명의 아이들만이 헐벗은 채로 드러누어 있었으니까. 열사병에 걸려 쓰러진 아이들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기삿거리가 될 수 없었지. 아이들은 너무나 지쳐 있었어. 사자의 머릿속에서 소곤거리던 말들을, 처음으로 그들을 환대하던 목소리들을 잊을 수가 없었거든. 그들이 마침내 성공했다는 환상을, 여러 사람의 입술 사이에서 하나의 고유한 어휘로 굳어지며 그들을 기억하는 이들의 머릿속에 하나의 고정된 표상으로 존재하리라는 황홀한 예감을 아이들은 도저히 잊을 수가 없었어. 그들은 어디에서나 사자 이야기를 했지. 하지만 그들이 묘사하는 사자는 너무나 엉뚱한 것이어서 아무도 그들의 이야기를 믿어주지 않았어.
우리나라에 다섯 마리나 되는 새끼 사자를 본 사람은 어디에도 없단다. 그렇게 정교한 인형은 없단다. 두 눈이 말갛게 반짝거리는 사자의 박제 같은 건 우리 도시에는 없어.
그날, 마취총에 맞아 잠에 들었던 그 날에도 아이들은 학교에 갔어. 교사는 아이들이 늦은 이유를 캐물었고 아이들은 우리 속에서 뛰쳐나온 사자들의 이야기를 했지만 아무도 그들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지. 그제서야 아이들은 깨달았어. 성공했다고 믿었던 연극이 실패로 끝났음을. 아침나절 내내 그들의 귓속을 파고들었던 끔찍한 울음소리는 분명 실재했지만 아무도 그 울음을 다시 듣지 못할 것임을. 아이들은 서로를 마주보았어. 어느덧 목 끝까지 죄여진 넥타이와 배를 둥글게 감싼 교복치마, 엉덩이 뒤쪽을 적신 붉은 피를 보고 교사는 여자아이의 손을 잡아 끌어 양호실로 데려갔고 여자아이는 그게 자신이 아니라 사자의 피임을 해명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호소했지만 교사는 그녀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어. 양호교사는 담임교사의 눈짓을 보고 여자아이의 치마에 남은 붉은 얼룩을 흘긋 바라보고는 큰 눈을 살짝 아래로 내리며 고개를 끄덕였지.
양호교사는 여자아이의 어깨를 쓰다듬으며 괜찮다고, 아무도 너를 보지 않았을 거라고 이야기했어.
아이는 울면서 아니라고, 모두가 우리를 보았다고 소리쳤어.
양호교사는 깜짝 놀라 아이의 머리를 양손으로 끌어안으며 비밀을 큰 소리로 함부로 떠벌려서는 안 된다고 충고했지.
아이는 이건 자신의 피가 아니라 사자의 나체에서 흘러내린 피며, 암사자의 생리를 아무도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고, 동물원에서 피로에 물든 낯으로 나뭇가지 위로 뛰어오르는 원숭이의 젖가슴을 아무도 뚫어지게 바라보지 않는다고 설명했지만 양호교사는 담임교사와 같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어. 양호교사는 괜찮다고, 당황할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했어. 너만 괜찮다면 더 쉬다 가도 좋아, 그 대신 약속하렴. 다음부터는 더 조심하겠다고. 이건 너 혼자만의 비밀이 아니니까. 하고 그녀가 진지한 어투로 충고하던 것을 여자아이는 오래도록 잊지 못했어.
이후로 그녀는 밤의 골목에서 피를 흘리며 쏘다니는 개를 볼 때마다 형용할 수 없는 수치심에 사로잡혀 눈을 감고 도망쳐야 했지. 현관문을 열고 나면 언제나 그녀보다 먼저 집안으로 고개를 내밀고 들어간 그림자가 그녀에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어.
너는 눈을 돌리고 말았어. 아무도 개의 피를 보지 않아. 아무도 사자들의 나체를 구경하지 않아.
그녀는 암캐의 나체와 비밀, 달빛을 받아 희게 빛나던 피와 가느다란 네 개의 다리 사이에서 새어나오던 뜨끈한 체취를 모두 배신한 것만 같은 죄책감에 사로잡혔어. 그녀는 다시 대문 밖으로 뛰쳐나갔지. 개가 흘린 피는 여전히 희고 진진하게 빛나고 있었어. 그녀는 사슴의 작은 발자국을 쫓아가는 사냥꾼처럼 밤길에 눈송이처럼 빛나는 깊고 여린 냄새와 빛깔을 쫓아 조심스레 걸어갔어. 개는 그녀의 집 뒤에 있는 공원의 산비탈에, 그림자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시꺼멓게 그을러버린 나무들 틈에 몸을 숨기고 있었지. 개는 여자를 오래도록 노려보았지만 한 번도 짖지 않았어. 개의 벌려진 네 다리 사이로 검은 피가 흘러나오는 것을 여자는 정확히 보지 않고도 느낄 수 있었어. 여자는 언젠가 자신이 포기한 피를 개가 대신 흘리고 있다는 생각을 했지. 그녀는 달을 올려다보았어. 그날 달은 놀랄 정도로 선명한 눈동자를 동그랗게 뜨고 있었고 그녀는 그 속에 비추어진 꿈의 영상을 무력하게 올려다보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