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와 모순의 물방울

난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눈을 감고 내 노래를 따라 부르는 사람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어요. 그들이 나를 모욕하고 있다고 느낄 정도였죠.

현실과 모순되는 제 존재의 모순성을 즐기며, 신체의 내부를 아프게 찔려오는 꼭짓점이 깊어져가는 것을 느끼며 당신에게 말을 걸었죠. 당신의 목소리는 내 안에서 자라났어요. 난 당신이 점차 확실한 존재로 변해감에 따라 항상적인 자아를 유지하고 있던 고정된 풍경이 산산조각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죠. 사진의 형상을 박제해 놓은 호박이 시간의 흐름을 견디지 못하고 서서히 속에서부터 갈라지듯이, 조각난 퍼즐들로 그 성질을 바꾸어가듯이, 한 개의 다리도 가지고 있지 않았던 유충이 번데기 속에서 짙은 산소와 그늘, 그 속에서 웅크리고 있던 형체 없는 생물에게 잡아먹혀 여섯 개의 가느다란 다리와 날개를 지닌 곤충의 깊은 곳에서 유년의 기억을 속닥거리는 목소리로 바뀌어버리듯이. 뱃속에서 흐느끼는 기생충, 분뇨에 함몰되어 내장의 융털에 밀착하여 흡수되어버린 생도 변신했다고, 혹은 변태했다고 말해야 하는 걸까요. 나비로 변했다는 애벌레들은 사실, 번데기 속에서 양분을 집어삼키기 위해 숨을 죽이고 있던 무정형의 괴물에게 잡혀먹히고 만 것은 아닐까요. 기억이 퍼즐처럼 갈라지고, 당신을 당신으로 유지시켰던 하나의 풍경이 여러 파편들로 산산조각났을 때, 당신의 머리에서 떠돌던 고통을 나도 기억하고 있어요. 당신은 여러 개의 목소리가 되었죠. 그중에 당신의 목소리는 하나도 없었죠. 부서진 풍경의 파편들이 당신의 머리를 날카롭게 찔러대었죠.

우린 다만 존재만이 분리되어 있는지도 몰라요, 하고 여자가 말했다.

박제되어 버린 나비의 눈을 들여다본 적이 있나요? 당신은 나비의 화려한 날개에 시선을 빼앗겨 그의 검고 불길한 눈은 쳐다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거예요. 검고 새파란 무늬, 조명도 없이 자력으로 반짝거리는 얼룩들을 바라보며, 당신은 곤충들의 비밀스러운 언어를 우리는 평생 이해하지 못할 것이며 그러므로 그 암호에서 어떠한 의미도 찾아낼 수 없을 것이고, 우리는 그들을 박제하여 보관하지 않는다면 아름다운 무늬를 결코 외울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을 테니까요. 사진을 찍기 전에 우리는 이해하지 못하는 곤충들의 얼굴이나 풀의 표정, 이파리의 미세한 선들 같은 것을 어떻게 기억하려 했던 걸까요. 도저히 그림으로는 재현해낼 수 없었던 미묘한 번들거림, 절망적인 눈짓과 작은 입안에서 보글거리는 거품 같은 것들, 정교한 거미줄 내부에서 꿈틀거리며 달빛으로 피부를 치장하듯 죽음의 전조로 몸을 감싸던 나비의 흐느적거리는 날개에서 빛나던 기묘한 그림자를 우리는 그저 잊고 말았던 걸까요. 이해하지 못했던, 그래서 기억하지 못했던 영혼들은 그저 사라지고 말았던 걸까요. 한밤의 달을 바라보며 슬퍼하던 감잎들, 프레스기에 잘려나간 손가락 같은 것들의 마음을 박제하는 방법을 은밀히 연구하던 사람들은 없었을까요. 인디언 부족의 믿음처럼 사진은 마음을 박제하려 했던 연금술사들의 작품이 아니었을까요. 행복하게 웃고 있는 신부의 얼굴에 드리운 절망스러운 그림자를 자살을 결심한 청년이 뒤늦게 알아보았던 것처럼. 절망의 얼룩은 아무에게도 포착되지 않고 그래서 현상의 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은 채 머물러 있다가 언젠가 누군가의 우연적인 눈짓에 의해 비로소 존재하게 되는 게 아닐까요. 난 그래서 당신의 사진을 찍어두고 싶었는데, 당신의 눈빛에 어린 마음을 지금은 완벽하게 읽어낼 수 없지만, 언젠가는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있었는데, 당신은 끝까지 사진을 찍지 않았죠. 결국 난 내가 읽어낼 수 있었던 당신의 얼굴만을 기억하고 있어요. 이제는 당신의 얼굴이 잘 기억나지 않아요. 그렇다면 박제가 되지 못한 당신의 마음은 없는 것일까요? 처음부터.

여자의 부드럽고 투명한 손이 네 얼굴을 어루만졌다. 익사한 말의 사체를 쓰다듬는 검은 물처럼. 더이상 비추어지지 않는 나르시스의 육체를 끌어안으며 흐느끼는 강물처럼.

너는 박제가 될 수 없어. 사진은 아직 죽지 않은 것들만, 아직 사라지지 않은 것들만, 아직 썩지 않은 것들만 찍을 수 있으니까. 소리를 찍을 수 있는 사진은 아직 없으니까.

우리는 죽어가는 것들에는 관심이 없으니까. 우리는 죽어버린 것들만을 지켜보니까. 다만 산 자들과 똑같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만이 당신을 안심시키니까. 수천 년 전에 피리부는 사내를 따라 강 속으로 빠져들어갔던 아이들이 헤엄쳐 들어간 곳에 대해 우리는 궁금증을 가져본 적이 없죠. 수천 년 전에 피리부는 사내를 따라 강 속으로 들어간 아이들보다 먼저 강으로 빠져 들어가 죽어가던 쥐떼를 추모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죠. 쥐들조차 사람에게 홀려 죽은 그 쥐 아이들의 비극을 슬퍼하지 않았죠. 브레멘으로 가서 노래를 부르려 했던 동물들은 또 어떻고요? 사람에게 가죽과 살점을 빼앗기고 죽어가던 호랑이는? 구름까지 시커멓게 얼려놓는 추운 날에도 차마 얼지 못할 정도로 깊은 호수 속에 던져넣은 눈사람이 어째서 허우적거리지 않았는지 살려달라고 비명조차 지르지 않고 그대로 가라앉았는지 의문을 가져본 적이 있나요. 눈사람은 물 속에서 어째서 녹아버려야만 했는지, 그토록 춥고 아픈 물 속에서도 왜 얼지 못하고 녹아 사라져버려야만 했는지. 검은 물 속에서 잘린 목을 움츠리며 마지막으로 튀어오를 때만을 잠자코 기다리며 물 속에 떠오르는 하얀 원수의 얼굴을 지켜보고 있던 뱀은? 이미 죽어버린 그들의 이야기에 그들의 얼굴은 등장하지 않아요. 박제가 되기 전에 사진도 초상도 갖지 못한 것들에게는 두 번 다시 읽힐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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