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어느덧 현과 함께 오래도록 햇빛에 노출되어 희게 바래가는 옥상의 초록색 방수 페인트 위에 앉아 있었다. 너희 사이를 오가던 유구한 전통에 따라 너는 입을 다물고 그 애의 옆에 앉아 있었다. 마치 너희가 모두 살아있을 때처럼.
현은 네가 알지 못하는 어린 시절부터 글을 써왔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에는 식물을 기르고 분갈이를 하는, 일정한 생의 주기에 따라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돌아가는 소일거리보다 글을 쓰고 스스로 무언가의 자취가 되는 그의 일이 훨씬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으나, 날마다 부풀어가는 침묵의 과적된 부피가 어느 순간부터는 섬뜩할 정도로 끔찍하게 느껴졌다고 이야기했다.
너와 현이 나누는 침묵은 더이상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비만해져 갔다. 그러나 유령들의 비명에 지친 사냥꾼이 너희의 이야기를 찾아 찢어발기지 않는 이상, 새하얗게 얼어붙은 활자들의 심장을 뜯어내어 창백한 호수 밑바닥에 던져버리지 않는 이상, 너희는 너희의 이야기를 계속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병에 걸린 자들이 자신의 광증에 대하여 기록할 수밖에 없듯. 일상을 살지 못하는 너희는 계속해서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을 삶에 대해, 읽히지도 들리지도 않을 병에 대해, 목 안쪽과 겨드랑이 사이, 사타구니 안쪽에서 부풀어오르는 독과 같은 갈증에 대해 글을 쓸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아무런 효용도, 심지어는 미적인 가치조차도 없는 산물일지라도. 너희가 끊임없이 되뇌는 문장들은 무언가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려는 노력도, 현재를 살아가려는 노력도, 혹은 희망을 노래하려는 시도도 아니었다. 너희는 그저 현실에는 속하지 않는 시간을, 그곳에서 벌어질 수 있었던 모든 현상들을 꿈꿀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