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야생동물은 비명을 질렀다. 짐승은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울고 있었다. 그러나 짐승의 울음은 사막의 밤이 듣기에는 너무 고요했고, 사막 경계의 캠프를 지키는 늙은 원주민들이 듣기에는 너무 높았다. 사막의 야생동물은 길들여진 적도 사냥된 적도 없었다. 짐승은 늘 같은 자리를 유령처럼 떠돌았다. 사내가 사막의 밤에 불시착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사내의 황금빛 머리칼과 커다랗고 둥근 눈, 사막의 은빛 달과는 달리 새까만 눈을 바라보며 짐승은 수음을 했다. 사내는 종종 울음을 참지 못하고 흐느꼈다. 그는 고독했다. 사내의 고독만이 짐승의 위안이었다. 사내의 절망만이 짐승의 위로였다. 짐승은 은빛 달에 반사된 모래와 같이 새하얀 털을 사구 깊숙이 숨긴 채 사내를 훔쳐 보았다. 짐승은 사내가 영원히 외롭기를 바랐다. 사내가 영원히 혼자이기를 바랐다. 또, 짐승은 사내가 눈을 마주쳐주길 바랐다. 그들을 배제한 채 찬란히 빛나는 흑백의 사막 속에서 그가 저를 들여올려주기를 바랐다. 사내와의 ‘우리’를 짓고 사내의 부드러운 피부를 만져보고 싶었다. 모두가 흑백인 이곳에서 사내만이 이상한 노란색이었다. 사내도 저를 보며 너는 참 이상하다고 말해주기를 바랐다. 우리는 이상해. 하고. 너희의 결속이 사막 전체를 황금빛으로 적실 전염병처럼 자라나길 바랐다. 이 자리에 사막의 야생동물은 없고, 오직 사내에게 길들여진 이상한 식물만이 희미한 색으로 바래가는 이파리를 조심스레 떨며 붙박여있기를 바랐다. 사내 역시 그의 곁에서 식물이 되어주기를 바랐다. 단단한 두 개, 혹은 네 개의 다리를 잃고 너희를 그토록 괴롭혔던 순결한 모래 아래 섬세한 뿌리를 내린 채 서로의 곁에서 서로의 식물로 살기를 바랐다. 죽음 없이 지속되는 모두의 삶 한가운데에서 너희는 식물의 죽음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랐다. 아주 오래 전부터 은밀히 바라왔던 죽음과 복종, 연대와 결속을. 그러나 사내는 한 번도 그의 눈짓에 호응해주지 않았다. 야생동물은 매일같이 서성이는 사내의 기다란 두 다리를 하염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한 번도 짖지 않고, 한 번도 울지 않고. 한 번도 들리지 않고. 한 번도 들키지 않고.
어떻게 생각해?
네가 좋아하는 현의 소설을 그녀도 좋아할지, 구태여 물어볼 필요는 없었다. 그녀는 항상 네가 아는 만큼 알았고, 네가 사랑하는 만큼 사랑했으니까. 그러니까, 그녀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고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았으니까. 그녀는 너를 사랑한다고 했지만, 사실 그녀는 너만큼이나 너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그래도 그녀와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하루의 경계 너머에서 다시 만난 그녀, 떠나가지 않은 그녀, 네 곁에 머무른 그녀, 기억으로 변한 네 예감을 기념하고 싶었다.
사내에 대해? 야생동물에 대해?
사막에 대해.
사내는 외계인이 아니었을까요. 그가 불시착한 행성에서 그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촘촘하게 짜인 성태계를 마주한 거예요. 그는 자연에 현혹되어 고향을 잊었고 고독에 홀려들어 대화하는 법조차 잊고 말았어.
아냐. 사내가 떨어진 사막은 완벽했잖아. 그곳의 모두가 서로를 끌어안고 있었어. 어떤 경계도 모순도 없이.
아니에요. 사막에는 사내가 보지 못한 야생동물도 있었어. 한 번도 길들여진 적 없고 길들여 본 적도 없이, 사내만큼이나 고독하고 비참한 삶도 그곳엔 있었어. 하지만 사내에게 그런 삶은 저뿐이었지, 사내에게 그 가여운 삶들은 없었어. 그가 끝내 발견하지 못했으니까. 그래요. 여기에서 보이지 않는 삶들은 여기에 없는 거예요.
하지만 우리는 이렇게 함께 있잖아.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았지만 서로를 바라보면서.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지만 서로를 들으면서. 사막의 야생동물도 이런 유대를 바랐던 걸까? 우리가 함께일 수 있다면 어째서 우리 것이 아닌 다른 죽음이 필요한 걸까?
글쎄. 하지만 그들도 살아있는 동안 수많은 생들을 죽여왔다는 것을 기억해. 장소를 견뎌온 자들은 반드시 제 것이 아닌 다른 죽음들을 차지하고 방조하며 기다려왔다는 것을 기억해. 우리의 살인이 첫 번째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
저기,
응.
우리는 식물일까?
응. 그렇지만 당신이 읽어준 내용과는 다를 거예요. 우리 뿌리는 그리 견고하지 않을 테니까. 은빛 모래가 조금만 스쳐도 우리는 소스라치면서 제 몸마저 뿌리칠 거예요. 그리고 서로의 발치로 쓰러지겠죠.
그래도 함께 쓰러지겠지?
응. 어쩌면 서로에게 기대고 있다는 환상 속에서.
그건 아름다운 환상일까?
아름답지만 비극이 될 만큼 가치 있지는 않겠죠. 우리에겐 우리 외의 관객이 없으니까. 우리가 뿌리를 놓치고 서로의 품으로 허물어지는 환상을 꿈꾼다고 해서 같은 꿈을 꾸며 견고한 매듭을 놓아버릴 사람들은 어디에도 없을 테니까. 우리는 끝까지 서로, 혼자일 테니까. 우리의 유대는 누구의 등으로도 번지지 않을 테니까.
넌 내게 저주만 하는 것 같아.
저주가 아니라 꿈이에요. 우리가 함께 꾸는 꿈. 우리만 함께 꾸는 꿈.
우리는 이상해.
우리는 이상해. 우리는 이상해. 우리는 이상해. 이 이상 너에게 위로가 되는 말이 있을까. 너는 본 적도 없는 사막에 절망하고 사막을 본 적 없음에 절망했지만 네 옆에는 같은 공허를 앓는 유령이 있었다. 너는 그녀에게 사막의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그녀는 너에게 사막을 보여 주었다.
너는 네게 과분한 것을 독점하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어쩌면 주검이 되어버린 사내는 너를 버리고 떠나가는 여자, 네 곁에 젖은 먼지처럼 붙어있는 여자에게 애원했을지도 모른다. 나를 죽인 건 좋아. 내가 너를 죽일 수 있게 해줘.
그게 아니라면,
나를 죽여도 좋아. 대신 함께 있어줘. 내 옆에 함께 묻혀줘.
어느 쪽이라도 너희는 그의 애원을 들어주지 못했다.
아니, 그는 애원하지 않았어요. 그는 죽었으니까. 애원하는 건 살아있는 사람이니까. 내가 당신에게 애원하던가요? 가지 말라고, 나를 두고 가지 말라고? 나와 함께 죽어 달라고?
기억할 수 없었다. 여자의 말을 무수히 많이 들어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으나 확답할 수는 없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곧 네 목소리였기에. 그녀가 한 말은 모두 네 말이었고, 그녀가 하지 않은 말 역시 모두 네 말이었기에. 너는 익숙한 말을 내뱉는 수밖에 없었다. 상상 속의 사내처럼 호소하듯, 실재의 사내가 하지 않은 말을 대신하듯,
가지 마. 나를 버리고.
그래요. 걱정하지 말아요. 꿈은 아주 길고 황량하니까. 여기엔 우리 둘밖에 없을 거예요. 멎지 않고 질질 흐르는 삶 내내 우리는 여기에 있을 거예요. 이름도 이웃도 적도 시대도 장소도 없는 도시에.
그녀는 어째서 사내를 사육하지 않은 것일까? 사내를 살려두고 그의 언어를 들었다면, 그의 삶을 이곳에, 장소 없는 곳에 파묻었더라면, 우리의 목소리는 더 다채로워지지 않았을까? 그는 우리가 모르는 어휘들로 우리의 그림자를 풍요롭게 적셔주지 않았을까? 우리의 매듭은 더 견고해지지 않았을까? 그러나 모든 가정은 불필요했다. 그녀는 사내를 죽였다. 너희는 그를 제대로 묻지도 않았다. 너희는 그를 땅 밑의 아늑한 침묵으로, 무덤 속의 고요한 상징으로 인도하는 대신, 그를 포기했다. 그는 수만 개의 덩어리로 뜯겨 타자의 삶이 되었다. 타자의 죽음이 되었다. 결국 그는 저를 죽을 수조차 없었다. 그녀는 그를 끝까지 죽이지 않았다. 그는 죽지 않은 채 흩어졌다. 사라졌다. 잊혀졌다. 너희는 그의 이름도 알지 못했다. 너는 그의 얼굴도 본 적이 없었다. 아마 아무도 그를 찾지 않을 것이다. 그가 한때 이 도시의 골목들을 혈액처럼 유랑하고 다녔다는 사실을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아무도 그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아무도 그의 부재를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너희는 곧 그를 완전히 잊고 말 것이다. 그는 유령조차 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네 아름다운 유령은 여전히 여기에, 네 옆에 있었다. 너는 그녀에게 입을 맞추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녀의 희미한 숨결에 코를 박고 그녀의 끔찍스러운 침묵까지도 모조리 들이키고 싶은 갈망을. 그녀는 숨 쉬지 않았고 지금은 입술조차 없었지만, 너는 그녀의 창백한 부재에 기꺼이 입을 맞추었다. 그녀는 신음조차 없이 너를 받아들였다.
그는 그리 불결하지 않았으니까요. 그와는 하나가 될 수 없었어요. 그의 손은 너무 희었어요. 죽고 나서도 눈부시도록 매끈했던 그의 등을 당신도 보지 않았나요. 가장 불결한 것이 나를 더럽히고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불결해진 내가 당신을 더욱 불결한 존재로 만들 때, 우리는 비로소 삶의 결속을 이루는 거예요. 그는 나를 해치기에는 너무나 깨끗했어요. 죽고 나서도 쉽게 썩지 않았죠. 그는 부패하기도 전에 탐스러운 향기에 홀려든 생들에 뜯어 먹히고 말았어요. 그는 우리에게 속한 사람이 아니었던 거예요. 난 그보다 더 비참하고 더 굴욕적인 삶을 원했어요. 고독을 두려워할 수조차 없이 고독한 삶. 불우함을 비관할 수조차 없이 불우한. 병명조차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불구인. 그는 그가 믿는 것보다 훨씬 괜찮은 사람이었어요. 그래요. 당신이 듣고 싶지 않은 말, 당신에겐 할 수 없는 말을 그에게는 얼마든지 해 줄 수 있어요. 그는 얼마든지 나아질 수 있었다고. 그는 그리 이상한 사람이 아니었다고.
그래도, 그래도 우리는 이상하지?
응. 우리는 이상해요. 그러니까 난 당신과 함께 있는 거예요. 이 이상하고 한심스러운 결속의 내부에.
우리에겐 추억도 미래도 없다. 그저 무한하게 증폭되는 현재의 점들 뿐.
소녀는 치마를 들추어 제 붉고 흉측한 속을 보여주었다. 꿈틀거리며 맥동하는 여린 살을. 소녀는 네가 그녀의 비밀의 공범자가 되기를 요구하였다. 너는 꼼짝없이 그녀의 비밀에 속하게 되었다.
밤이 되어서야 네가 버리고 온 사내에 대해 생각한다. 밀랍처럼 하얗고 단단한 살. 더는 살처럼 보이지도 않던 살. 짠기도 없이 푸르스름하게 부패해가던 살. 그 속에 담긴, 삶을 잃고 새어나오는 생명에 입술을 대고 들이키던 벌레들. 너는 끝까지 맡을 수 없었던 사내의 향기. 그의 늘어진 성기를 생각하며 울었다. 그의 검은 비닐봉지를 생각하며 수음을 했다.
삶은 죽음을 잃고 잘린 두 발을 질질 끌며 옷장 문 앞까지 끌려간다. 삶은 더이상 살아 있지도 않다. 온전히 죽을 수도 없다. 여자가 숨을 몰아쉬는 소리가 들렸다. 야광별이 덕지덕지 붙은 이상한 방 안에서 침묵은 고른 결을 잃고 사지를 뒤틀며 거품을 흘리고 있었다. 죽은 이의 살갗은 어떻게 그리도 하얄 수 있을까. 죽은 이의 입술은 어떻게 그리도 더러울 수 있을까. 수천 갈래로 제각기 운동하는 작고 징그러운 섬모들처럼. 네가 그것에 닿기 싫어하듯 그것은 너에게 닿기 싫어하고 있는지. 이제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죽어버린 생을, 죽은 채 울컥울컥 새어나오던 비명을 한입 가득 물고, 작은 뱃속에 밀어넣고 돌아간 생들의 주소는 네게 알려지지 않았기에. 여자의 들숨, 날숨, 날숨만큼이나 벅찬 들숨, 날숨, 날숨, 날숨,
아니, 그럴 리가 없다. 그녀는 아무것도 뱉을 수 없다. 그렇다면 네 볼을 간지럽히는 냉기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녀는 어디로 갔는가? 너는 시체처럼 몸을 굳히고 여자의 부재라는 최악의 결말에 대해 상상했다. 산 채로 나돌아다니는 방만한 죽음들과 죽은 채로 살아 있는 시체들. 그 어드메에서 적절한 무대조차 없이 고유한 영역에 속한 삶과 죽음을 방관하는 너희들. 방관하면서도 어딘가에 속할 수밖에는 없는 너희들. 여자가 너를 사랑하는 만큼 너는 여자를 미워했고, 여자가 너를 미워하는 만큼 너는 여자를 사랑했다. 말라붙은 피부 아래에는 부드러운 생의 물기가 흐르고 있을까? 피부를 망가뜨리고 배를 가르면 출혈하는 생을 만질 수 있을까? 그제야 넌 비로소 살아 있게 될까? 그제야 비로소 죽을 수 있을까? 여자를 감싸고 있는 어둠의 피부를 갈기갈기 찢어 결박된 소의 사지를 길게 도려내듯 그녀의 목소리를 한겹 한겹 분리해낸다면, 너는 마침내 죽음의 가장 내밀한 속살에서 살아 있는 그녀를 발견하게 될까? 피와 내장을 줄줄 흘리는 그녀의 생명은 너를 위해 죽을 수 있을까? 그때, 비로소 너는 그녀를 죽이게 되는 것일까? 그때, 비로소 그녀는 너를 죽일 수 있을까?
옷장의 틈 사이로 새끼 손가락을 집어넣자 소름끼치는 섬모들이 손가락을 어루만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그것은 단지 어둠일 뿐이었다. 너는 손가락을 빼내지 않았다. 죽은 생선의 텅 빈, 그러나 통통하게 들어찬 하얀 눈동자를 조심스레 핥아볼 때처럼, 어둠이 네 살을 맛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너는 예민하고 섬세한 감관들을, 지나치게 여리고 그만큼 역겨운 감관들이 저마다 그려내는 네 살의 형상을 상상하며 울었다. 눈물은 입 속의 살보다 짰다. 입 속의 살에서는 아무런 맛도 나지 않았다. 조리되지 않은 시체처럼, 간이 되지 않은 고기처럼, 평생 뱃속에 숨기고 다녔던 여리고 미끄러운 내장을 방만하게 줄줄 흘리면서도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하고 유성처럼 산산조각난 사내처럼, 네가 알지 못하는 사내의 과거처럼, 사내가 알지 못하는 사내의 미래처럼, 문득 입 속의 여린 살이 낯설게 느껴졌다. 아무런 맛도 나지 않는 것은 그게 너의 경계 안에 속해 있기 때문일까. 그것이 네 내부이기 때문일까. 사내의 시신도, 검푸른 입술도, 시꺼먼 비닐봉지도, 흥건히 젖은 어둠도, 메마른 어둠도, 천박한 빛도, 네가 너희를 가꾸고 지탱하는 데 사용해 왔던 필사적인 가명들은 모두 네 내부에 속해 있는 것일까. 네가 안간힘을 다해 거부해왔던 이름들 모두, 미끈하고 미지근한 체액처럼 네 내부인 것일까. 처음부터. 돌이킬 수 없이. 너를 몰아냈다고 생각했던 모든 거짓들은 네 내부에 있었다. 그것이 현상의 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