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글을 쓰고 싶은 욕망을, 멍든 육체가 아니라면 다른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갈망을 앓게 된 것도 삼촌 때문이라고 할 수 있어요. 삼촌의 낡고 삐걱거리는 어둠 속에 머무르면서 난 그의 이야기에 완전히 빠져들었죠. 삼촌은 재능 있는 이야기꾼이었어요. 비록 나 말고는 다른 누구도 그의 그런 재능을 발견하진 못한 것 같지만, 난 이야기꾼으로서의 삼촌의 재능을 질투하기도 했죠. 그가 고해성사실에서, 혹은 허구의 궁전 속에서 들었던 실재의, 혹은 허구의 죄들은 솔직히 내게 너무나 매력적으로 느껴졌어요. 할 수만 있다면 난 내가 지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당시 소년이 앓았던 우수와 고통을 모두 훔쳐오고 싶었죠. 하지만 내겐 글을 쓰는 재능도 상상을 하는 재능도 없었어요. 난 삼촌의 고백에 이렇다할 첨언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어요. 물론 삼촌은 침묵으로 그에게 대답하는 나를 반가이 여기는 것 같았지만, 사실 그가 안락하게 느꼈던 침묵은 그의 생각처럼 텅 비어 있는 것만은 아니었어요. 난 내 현전으로, 내 침묵으로 그를 압박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그가 당황하는 모습을 보고 우스꽝스러워진 이야기꾼이 웃음이라도 터뜨리면 더 이상 고독에 어울리지 않는 그의 입속에서 표정 잃은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절망을 빼앗아오고 싶었죠. 난 한 번도 그를 웃기지 못했어요. 사실 어둠 속에서 그의 표정조차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그래도 그가 웃지 않았다는 건 알 수 있어요. 난 날마다 그가 훔쳐온 죄를 훔쳐 내 몸에 적어내리는 상상을 했죠. 그 상상에 어찌나 심각하게 몰두해있었는지 난 밤마다 내가 써내려간 활자들이 내 몸을 더듬거리며 이리저리 움직이는 상상에 온몸을 긁적대느라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할 지경이었어요. 아침이 되면 검게 말라붙은 피딱지가 손톱 속에서 굳어 떨어졌죠.
잘 되었네요. 시간이 된다면 언제든지 그때 적었던 것들을 내게 전해 주어도 좋아요.
아니요. 그럴 순 없어요.
걱정 말아요. 비웃지 않을테니. 난 진지한 사상이라면 그 어느 누구도 설득시키지 못한다 하더라도, 너무 많은 이들을 설득시킨다 하더라도 그 자체로 존중할 가치가 있다는 말을 믿지는 못해도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아니요. 그런 문제가 아니에요. 난 당신에게도, 내게도 수치를 느끼지 못해요. 그렇잖아요. 생전의 몸에 대해 수치를 느끼는 유령은 더 이상 유령이 아니죠. 우리에게는 돌아갈 땅도 고향도 없고 돌아갈 몸도 피부도 없으니까. 그저, 그때 적었던 것들은 삼촌의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실재하지 않았던 것뿐이에요. 난 글을 쓰는 망상으로부터 끝내 벗어나지 못했어요. 달리 말하면 망상에서 벗어나서는 하나의 문장조차 적을 수 없었다는 말이에요. 난 날마다 안간힘을 쓰면서 내 피부 가장 깊고 내밀한 곳에 글을 적어내려 했지만 늘 실패하고 말았죠. 난 날마다 내 문장들을 잊었고 문장들을 썼으며, 또 다시 문장들을 잊는 일을 반복했어요. 훔쳐온 문장들은 모두 그 원상과 같은 허구에 불과했고 어떤 살도 내 문장을 덮고 간직해 주지 않았죠. 지저분하고 볼품없는 종이라도 좋았어요. 먼지투성이의 벽돌 속에 숨겨진 벌레 먹은 양피지라고 하더라도. 쥐들이 파먹으며 오물을 지린 살갗이라고 해도. 날마다 이모와 할아버지에게 종이를 본 적이 없느냐고 물었지만 그들은 내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조차 못했어요. 기껏해야 할아버지의 연구서나 이모의 편지 정도나 얻어다 볼 수 있을 뿐이었죠. 삼촌에게는 내 글에 대해 언질조차 내비칠 수 없었어요. 난 언제나 그에게 명료하게 설명할 수 없는 열등감을 갖고 있었고, 그렇기에 삼촌이 내게 열등감을 원인사건으로 삼아 써내려갔던 상상들에 대해 묻는다면 난 거짓말을 해야 했을 테니까요. 거짓말을 하는 것보다 더 두렵게 느껴졌던 건 내 거짓말이 삼촌의 거짓말보다 훨씬 서툴고 조야할 거란 직감이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난 삼촌이 글을 쓰고 있다고 믿었으니까. 그가 음악을 할 거라고는, 당시의 나로서는 짐작조차 하지 못한 방식으로 그의 언어를 퍼뜨릴 계획을 세우고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죠. 늘 그랬어요. 난 언제나 늦고 그렇다고 해서 그가 다다른 곳까지 확실하게 쫓아가는 것도 아니죠. 늦된 걸음은 시작조차 하지 못한 채 기어야만 도달할 수 있는 땅 밑에서, 기어간다고 해도 반드시 도달하리란 보장은 없는 땅 밑에서 움틀거리고 있어야 할 뿐이에요. 내게 주어진 당위도 책임도 없죠. 난 삼촌이 훔쳐낸 죄들을 빼앗아올 기회조차 갖지 못했어요. 그리고 지금, 제대로 흡혈해내지도 못한 죄의 이야기들을 또 당신에게 빼앗기고 있죠.
같이 쓰는 이야기라고 했잖아요. 당신이 없다면 난 문장 하나도 제대로 쓰지 못할 거예요. 당신과는 반대로 내가 쓰는 문장들은 모두 실재하는 무언가를 닮아가겠죠. 하지만 내가 쓰고 싶은 건 현상을 분석하고 그것들에 내재된 논리를 가장 개연적인 방식으로 외화시키는 학술적인 글이 아니에요. 난 당신의 삼촌이 했던 일을 당신과 함께 하고 싶은 거예요.
사람을 죽이고 싶다고요? 초록 피를 가진 것들이 초록색 비구름에, 초록색 하늘에, 초록색 장마에, 초록색 살에, 초록색 웅덩이에 매몰되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다고요?
당신은 농담이 서툴러요.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에요.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고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고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이야기로 우리만을, 적어도 우리만이라도 속이고 싶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