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젤 스테이크 4

너는 시궁창에서 피어오르는 잘려나간 꼬리야. 여자는 꿈을 꾸듯 몽롱하게 중얼거렸다. 아이들은 쥐 꼬리를 잘라 오라는 숙제를 받아오지. 부유한 아이들은 가정부의 꼬리를 잘라 학교에 제출해. 가정부를 가질 정도로 부유하지 못한 아이들은 엄마의 꼬리를 제출하고 엄마도 아빠도 없는 고아들은 제 꼬리를 잘라서 숙제로 내지. 선생님은 편지들을 보관할 때 쓸 법한 커다란 종이 박스에 꼬리를 담아. 출석번호 순으로 한 명씩 줄을 서서 쥐 꼬리를 제출하는 아이들의 고사리 같은 작은 앞발에 들린 길고 축축한 쥐 꼬리. 선생님은 쥐의 꼬리로 더럽혀진 손으로 아이들의 털복숭이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을 해 줘. 그리고 다른 손으로는 출석부에 체크를 하지. 꼬리를 제출하지 못한 아이는 그 자리에 있더라도 출석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야. 선생님은 출석 체크를 하지 않고 아이는 수치심에 젖은 얼굴을 가느다란 팔 안에 묻고 훌쩍거려. 출석부의 동그라미로 환원된 쥐 꼬리들은 시궁창에 버려져. 폐기된 쥐 꼬리들을 물어뜯어 소화시키는 건 쥐들과 파리들이지.

네가 시궁창에서 잘려나간 몸을 움찔거리면서 자위나 하며 여름을 보냈다면 아무도 널 로드킬할 수 없었을 거야. 설령 상상 속에서도. 넌 가장 비열한 짐승이야. 넌 튼튼한 분홍빛의, 상처 하나 없는 꼬리를 가지고 있으므로 분명히 네 가정부나 네 엄마나 네 누이들의 꼬리를 잘라 담임교사에게 제출했겠지. 출석부를 채운 빼곡한 동그라미들을 모아서 넌 경찰이 되었을 거야. 경찰차의 운전석에 앉아 있는 동안엔 아무도 너를 로드킬할 수 없겠지. 네가 열다섯 혹은 열넷밖에 되지 않은 여자아이를 강간했으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할 수 없을 거야.

쥐는 끔찍하게 서글픈 목소리로 속삭였다. 난 너를 강간한 적이 없어. 얘야, 모든 것은 망상이야. 너는 아주 긴 꿈을 꾸고 있고 그 속에서 너를 더듬는 손과 너를 파헤치는 입술들과 너를 관통하는 눈물들은 모두 너를 구성하는 성분이야.

그렇지만 넌, 여자는 비명을 지르며 흐느꼈다. 날 강간할 수 있었잖아. 그런 미래를 떠올렸잖아. 넌 나를 강간했잖아.

쥐 경찰은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수탉이 또다시 발광하듯 운전석에서 튀어나와 정차된 차량 사이를 헤치며 돌아다니고 있을 때, 믿을 수 없게도 갑작스럽게 차량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반나절 간의 정체가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차들은 10km, 20km, 60km, 80km로 질주했다.

달 아래에서 춤을 추듯 허우적거리던 수탉은 바퀴들의 음험한 곡률에 짓밟혀 물주머니처럼 검붉게 터져버렸다. 차량들은 호숫가에 쓰러진 오리의 훼손된 시신을 긴 나뭇가지로 거칠게 눌러 터뜨리는 잔혹한 장난을 하는 아이들처럼 무자비하게 수탉의 시신을, 이미 돌이킬 수 없게 망가져버린 삶과 발작의 주머니를 짓뭉개며 달려나갔다.

여자는 세 명의 절도범, 매춘, 가출 고아 소녀들과 함께 잠들었다. 새벽 늦게 들어온 여자는 그녀가 제멋대로 초록, 파랑, 보라라고 부르는 소녀들에게 로드킬 당한 수탉에 대해 늘어놓았다. 소녀들은 이단 침대에서 비척비척 일어나 앉은 채 흥분해 갈수록 높아지는 여자의 말을 들었다.

수탉은 피투성이였어. 부리도 벼슬도 없이 날개도 다리도 없이 그건 더 이상 유기체가 아닌 것 같았어. 그건 가장 끔찍하고 음험하며 관능적인 괴물처럼 보였어. 난 그 자리에서 문을 열고 도로로 뛰어들고 싶었어. 바람처럼 아득하게 달려나가는 차들에 찢겨서 더 이상 닭이 아닌 시신처럼 찢겨져 뒹구는 액체가 되고 싶었어.

흰 잠옷 원피스를 입은 소녀들은 흰 시트 위에서 마치 유령처럼 보였다. 여자의 맞은편 1층 침대에 걸터 앉아 있던 초록은 불현듯 히스테리컬하게 비명을 지르며 소리쳤다.

제발 유난 좀 떨지 마. 네 언어를 듣고 있으면 숨이 막혀. 로드킬 당하고 싶어. 얼굴에 가위가 쳐박혀 식식 숨을 내쉬며 꺼져버리고 싶어. 혈관을 찢어서 그 속에 눈 먼 물고기를 주입하고 싶어. 나도 마찬가지야. 난 물결처럼 달려나가는 차를 보면 그 속에 몸을 던지고 내겐 존재하지도 않는 아버지의 마지막 선고를 따르고 싶어서 미쳐버릴 것 같아. 다정하고 음울한 게오르크만이 흘러가는 도로 교통에 머리를 처박고 익사하고 싶어 하는 건 아니야.

넌, 여자는 초록을 향해 중얼거렸다. 넌 미쳤어.

미치지 않은 짐승은 없어! 소녀는 소리쳤다. 통계적인 정상은 모두 망상이야. 교정될 수 있는 정신은 없어. 난 어제 의사들을 전부 죽였어. 족제비 같은 길쭉한 얼굴들이 거품처럼 녹아내리는 걸 내 눈으로 똑똑히 지켜봤지. 난 그 새끼들이 사람의 가죽을 걸친 비열한 쥐새끼들이라는 걸 진작에 알고 있었어. 그래서 정수기에 쥐약을 탔어. 그 놈들은 아무런 의심 없이 정수기에 주둥이를 들이대고 물을 벌컥벌컥 들이마셨고 순식간에 거품으로 꺼져들어갔어. 하지만 오늘 아침 그 새끼들은 멀쩡히 살아 있었어. 거품은 온데간데 없었고 몸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어. 방금 그들은 하수구를 타고 흘러내리는 유백색의 끈적이는 거품이었는데 너는 아무런 조심성도 최소한의 예의도 없이 미친년처럼 거칠게 문을 열었고 심지어는 불까지 켰지. 그래서 난 그들의 죽음이 그 사랑스럽고 달콤한 거품이 전부 악몽이라는 걸 깨달았어. 넌 내게서 죽음을 빼앗아갔어. 초록은 마치 불행을 향해 말을 건네듯 여자를 똑바로 응시하며 속삭였다. 넌 내게서 죽음을 빼앗아갔어.

여자는 현기증에 이마를 감싸쥐며 중얼거렸다. 난 나를 로드킬하고 싶었어.

넌, 초록은 증오로 붉게 달아오른 눈으로 말했다. 빌어먹을 창녀야.

난 강간당한 적 없어. 그런 건 전부 망상이야. 여자는 넋을 잃은 듯 멍하게 대답했다.

여자는 땀에 젖어 더러워진 외출복을 입은 채로 그대로 침대에 누워 그녀의 시야를 가로막는 2층 침대의 프레임을 올려다보았다. 그곳에는 여자가 그려놓은 투명한 푸른빛의 창문이 있었다. 창문의 유리 틈에는 날개가 끼인 채 발버둥 치는 작은 나방이 여자를 애처롭게 굽어보고 있었다. 나방은 연민을 바라고 맨발로 지옥불을 거니는 신처럼 가증스러워 보였다. 신을 연민하기에, 여자는 너무 어렸고 너무 뜨거웠다.

여자는 신의 손바닥을 십자가에 못질하는 로마 병사의 꿈을 꾸었다. 신은 자애롭게 웃고 있었고 병사는 못을 더 깊이, 신의 손바닥에 밀어넣었다. 그곳에서 흘러내리는 음탕한 붉은 피가 신이라는 것을 병사는 경악한 채 깨달았다. 신은 초점 없는 검은 눈으로 먼 곳을 응시하며 짐승처럼 다정하게 웃고 있었다. 신의 육신 위에 내려앉은 파리들은 학대당한 상처 속에 알을 낳았고 구더기들은 신의 혈관을 물어뜯으며 자라났다. 신의 성분으로 비대해진 신들은 지상을 검게 뒤덮으며 안개처럼 퍼져나갔다. 로마 병사는 셀 수 없이 많은 신들의 불온한 날갯짓을 느끼며 눈물을 흘렸다.

생명은 최악의 기적이었다. 임종의 순간, 신부에게 회개한 망자들의 눈 앞에는 어김없이 잔혹한 붉은 눈을 가진 신들이 나타났다. 신들은 가장 끔찍한 방식으로 그의 숭배자들을 겁탈하였다. 배신, 믿음의 축축한 성분을 까뒤집어 드러내는 신성한 배신. 신들은 배신당하더라도 믿어야 한다고 말했다. 배신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배신은 믿음의 진실을 드러내는 황홀한 장치니까! 그러므로 신들은 순종적인 신봉자들과 간악한 배신자들을 동등하게 사랑하는 것이다. 신들은 모든 삶이 풍요로운 봉헌이라고 말했다. 숭배하지 않는 삶은 없다고 말했다.

붉은 눈이 살 속을 파고들었다. 신들의 애틋하고 음험한 양태인 천사들이 그녀들의 눈꺼풀 위에 내려앉았다. 시간과 공간의 선험적 축을 개방한 철학자는 천사는 정신이며 동물은 욕망이고 인간은 그 사이에 위치한다고 말했지만 진실은, 천사가 가장 음탕한 동물이라는 것이었다. 천사는 가장 축축한 내장을 가진 살이었다. 천사는 고기였다. 오, 그녀들은 천사의 고기를 구워 먹었다. 천사는 붉은 심장을 검게 익혀 잘라 먹는 그녀들의 모습을 자애롭고 음험한 웃음으로 지켜보았다. 검게 뚫린 심연과도 같은 구멍으로, 끊어진 혈관들이 전깃줄처럼 흘러넘치고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기계의 구조를, 여자는 신처럼 자애롭게 사랑할 수 있었다. 기계는 이미 망가졌으니까. 훼손된 내장은 기능과 행동 없이도 웃고 있었으니까. 마치 고장과 파열만이 기계의 유일한 목적인 것처럼.

회개한 노인들은 진실과 함께 내려온 신의 음탕한 붉은 겹눈을 보고 경악하며 죽어갔다. 그러나 마침내는, 그들 역시 신이 되었다. 신은 적과 이웃을 가리지 않고 집어삼키는 게걸스러운 내장이므로. 로마 병사는 신의 앞에 무릎을 꿇고 목구멍을 벌렸다. 신은 기꺼이 그의 목 안쪽을 갈기갈기 찢었고 기꺼이 그의 앞에서 로드킬 당했다. 신은 제물의 목구멍 안쪽에서 번져가는 검은 악성 종양이었다. 신은 여자의 자궁에서 전염병처럼 번져가는 배아였다. 자궁은 역겨운 구토감을 이기지 못하고 피를 배출해냈고 암탉의 가느다란 목은 더러운 칼날에 잘려나갔다. 기계장치의 눈은 아날로그 신시사이저의 교묘한 증폭술로 일그러진 균열들의 음험한 왜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파열하는 손가락뼈로 피아노를 치는, 절망처럼 희망하는 소녀들. 신의 붉은 기계 눈은 소녀들의 손가락뼈를 집요하게 바라보았다. 핥고 애무하고 물어뜯듯 촉지적인 시선으로.

여자는 네 명의 지친 소녀들 중 가장 먼저 일어났다. 여자는 침대 밑에 숨겨둔 붉은 크레파스를 들고 유리창 위에 낙서했다.

로드킬 당한 짐승이 무엇을 보는지 우리는 모른다.

악몽을 구성하던 눈 먼 거울 같은 문장들의 파편이 여자의 가슴 위를 어지럽게 떠돌았다. 꿈의 날개깃 끝의 날카로운 바늘들이 여자의 피부 위에 다닥다닥 박혀 있었다. 여자는 강박적으로 살갗을 짓누르며 피부 위에 박힌 은빛 바늘들을 살 속 깊은 곳으로 밀어넣었다. 구멍조차 보이지 않도록. 하지만 흰 살갗에 함몰되어 있는 수만 개의 구멍들을 여자는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여자는 소녀들의 미친 잠을 깨우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일어나 맨발로 문 앞까지 다가갔다. 문 위에는 그녀들을 감시하기 위해 끼워 놓은 유리가 있었다. 유리 너머의 복도 벽은 터무니없이 촌스러운 분홍 꽃무늬 벽지가 발라져 있었다. 여자는 꽃잎들의 숫자를 35, 29, 40, 85 멍하니 세고 또 세고 반복해서 세었다. 숫자들은 그녀가 잊어버릴 때마다 다시 갱신되었다가 누적되어 그녀의 시야를 초과해 커지고 또다시 망각되어 작아지기를 반복했다. 1035까지 세었을 때 이층 침대에서 보라가 사다리를 타고 위태롭게 바닥으로 내려오는 것이 문에 끼워진 유리의 희미한 반사상으로 비추어 보였다. 보라는 작고 검은 손으로 유리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다른 소녀들이 일어나 분주하게 움직이며 알 수 없는 일들에 몰두하는 동안 그녀들은 1층 침대맡에 앉아 대화를 나누었다.

언니, 난 어제 천사가 된 언니의 꿈을 꿨어. 언니는 내게 날개를 잘라 주었고 난 언니의 날개를 깃털째로 뜯어먹었어. 언니는 굴욕을 이기지 못하고 엉엉 울었어. 우리는 함께 우물 속을 들여다보았고 그곳에 퍼진 물로 얼마나 많은 천사들을 만들 수 있을지 생각했어. 언니는 언니가 천사가 되었다는 걸 끝까지 비밀로 하라고 했고 내 인중에 손가락을 갖다 댔어. 인중 사이가 부드럽게 튿어지면서 나는 언청이가 되었어. 삶이 의존적이며 유해하고 심지어는 감염적이라는 말을 언니는 내게 비밀스럽게 전했어. 난 그게 무슨 말인지 모르면서도 슬퍼서 울었어. 언니의 목에는 푸르스름한 멍이 있었어. 언니에게는 더 이상 날개가 없었는데도 언니는 천사처럼 검었어. 난 그렇게 검은, 벌거벗은 몸을 처음 보았어. 보라는 흐느끼며 속삭였다. 날 두고 가지 마. 언니, 나는 언니가 나를 죽여주기를 바라.

여자는 소녀의 눈물을 조심스럽게 닦아 주며 속삭였다. 아니야, 너는 오래 살 거야. 날개가 전부 썩어버릴 때까지, 해변에 널려 있는 시체들을 봐도 더 이상 눈물이 나지 않을 때까지. 피학대자의 지위를 면밀하게 즐길 수 있을 때까지. 그때가 되면 너는 너를 가엾어하는 짐승들 앞에서 웃으며 네 심장에 칼을 박아넣을 수 있을 거야. 그게 아니라면 너를 연민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어른들에게 직접 칼을 건네줄 수 있을 거야. 고용당한 겁탈자들이 네 몸을 찢어발기는 걸 웃으면서 만끽할 수 있을 거야. 넌 네게 주어진 역할을 최악의 농담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을 거야. 그때까지는 아무도 너 대신 너를 죽여줄 수 없어. 힙합이나 락을 따라서 자살을 하라는 말이 아니야. 그런 화려한 죽음은 은유적인 별들에게만 가능한 거야. 너는 힙합도 락도 아닌 방식으로 죽어야 해. 네 자살을 직접 개발해야 해. 상기할 만한 자살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넌 할 수 있어. 넌 직접 남자들의 손에 칼을 쥐어주고 네 심장을 겨냥하도록 만들고 웃어보일 수 있어. 가장 중요한 건 웃음이야. 그들이 최후의 순간에 모든 것이 너의 오만하고 재치 넘치는 각본이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도록. 창녀의 손아귀에서 목 졸려 죽어가는 진지한 자들의 가면이 여름철 아스팔트처럼 끈적하게 녹아 흘러내릴 수 있도록. 단 한 번의 치명적인 살해와 치명적인 웃음.

보라는 드문드문 나 있는 옅은 속눈썹을 깜빡거리며 나비처럼 웃었다. 언니는 항상 이상한 말을 해.

어린 소녀의 두피는 부드러운 분홍빛으로 일그러져 가느다란 머리칼 사이로 드문드문 들여다보였다. 여자는 보라의 두피를 애무하듯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며 속삭였다. 하지만 넌 이미 이해하고 있어. 내가 말하는 것을 전부, 그리고 내가 말하지 않은 것까지 너는 듣고 있어.

보라는 웃음을 지우지 않은 채로 향기롭게 속삭였다. 그럴지도 몰라. 꿈 속에서 나는 많은 것을 곧바로 이해해. 이해하지 못한 것은 얼룩처럼 그대로 내 안에 각인되고 소름이 끼칠 정도로 정확하게 인쇄된 문장들을 나는 다시 꿈을 꿔, 몇 번을 거듭해서 꿈 꾸면 난 반드시 모든 것을 이해하게 되지. 그러니까 나는 언젠가 언니를 전부 이해하게 될 거야. 꿈 속에서 날개를 잘라낸 천사였던 언니는 삶이 가장 악질적인 농담이라고 말했어.

그래, 여자는 말했다. 하지만 우리가 가진 건 삶밖에 없어. 신은 오로지 벌거벗은 생명이며 우리가 가진 신성은 피부 속에 감추어진 생명뿐이야. 더욱 신이 되기 위해서는 더욱 벌거벗어야 해. 피부를 깎아내어 얇게 더 얇게 만들어야 해. 날카로운 면도날처럼 얇아진 피부 속 내장이 선명하게 들여다보이도록. 길을 잃고 초조하게 꿈틀거리는 혈류의 미로들이 붉게, 더 붉게 드러나도록. 제대로 출생을 견뎌낸 아이가 세상에 몇이나 될까. 타성에 삶을 의탁하지 않고 제대로 죽는 아이가. 살기 위해서, 그리고 죽기 위해서는 호흡보다 더 많은 것이 필요해. 여자를 강간하고 아이를 난도질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이, 찢어지고 토막난 채로 생생하게 살아 있는 몸 속에 들어 있는 걸 말할 수 있어야 해. 소리도 없이.

소녀는 속삭였다. 소리도 없이. 선생님은 내가 곧 치료될 수 있을 거라고 했어. 그러면 미치지 않은 아이들이 존재하지 않는 도형들의 방정식을 배우는 교실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하지만 언니, 소녀는 울먹이며 말했다. 내가 언니를 죽였다는 걸 아무도 믿지 않아. 내가 천사의 날개를 잘랐다는 걸, 내가 신을 가장 비열한 방식으로 배신했다는 걸. 선생님은 내가 착하고 온순하며 선량한 아이라고 했어. 선생님은 내가 언니의 목을 가장 날카로운 면도칼로 그었다는 걸, 끔찍하게 얇은 언니의 피부 속에 손을 집어넣고 언니의 자궁을 터뜨리려고 했다는 걸, 그 속에서 발버둥치는 나를 찢어발겼다는 걸 믿지 않아. 내가 살아 있지 않다는 걸 믿지 않아!

여자는 소녀의 가녀린 뒷목을 쓰다듬었다.

내가 나를 먹어치웠다는 걸, 나보다 연약하고 발가벗은 작은 아기였던 배아에 불과했던 나를 으스러뜨렸다는 걸, 피를 가득 머금은 암컷 모기를 터뜨리듯이 손바닥으로 짓눌러 으깨버렸다는 걸 믿지 않아. 선생님은 마치 내가 살아 있는 것처럼 나를 대해. 마치 내가 한 번도 죽지 않은 것처럼. 훔친 피와 함께 으스러진 모기처럼 산산조각나지 않은 것처럼. 언니도 마찬가지야. 언니는 내가 죽지 않은 것처럼 이야기해. 하지만 난 알고 있어. 꿈 속에서 나는 사실 언니였고 날개를 잘라낸 것도 검은 우물을 멍하니 들여다보면서 킬킬댔던 것도, 늑대의 아가리처럼 깊은 우물에 뛰어들었던 것도 전부 나였는데 언니는 마치 내가 살아 있는 것처럼 말해. 마치 죽음이 일회적인 것처럼, 죽음 이후의 삶이 절망적으로 집요한 삶이 없는 것처럼 말해.

소녀는 발작하듯 숨을 헐떡이기 시작했다. 여자는 소녀의 벌어진 입에 입을 맞추며 소녀의 등을 토닥였다.

너는 꿈을 너무 빨리 꾸는구나. 카프카조차도 그렇게 빠른 꿈을 꾸면 미쳐버리고 말 거야. 미로 속의 사내는 초대받은 사람들과 마주치기도 전에 덤불에 목을 매는 불가능한 자살을 시도할 거고 돋아난 다리는 순식간에 잘려나가 창문 아래 물처럼 흘러가는 차량들 밑으로 떨어질 거야. 요제피네는 등장하기도 전에 실종되고 말겠지.

언니, 소녀는 여자의 가슴을 밀어내며 헐떡였다. 언니는 내 꿈의 증인이 되어줄 거지? 내 꿈을 지켜볼 거지?

여자는 서글프게 중얼거렸다. 나는 꿈만큼이나 망상이야.

그들은 다시, 정체된 차 안에 담겨 있었다.

난 너처럼 자유롭진 못해. 경찰이 되기 전에 난 배우가 되려 했어. 남자가 찍찍거렸다. 하지만 어디에서 어떻게 배우가 되어야 할지 알 수 없었지. 나는 사백오십칠 번의 오디션을 봤고 전부 떨어졌어.

오디션을 그만둔 건 잘 한 일이에요. 여자는 말했다. 당신 같은 쥐는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해요. 빗자루에 얻어터지거나 구충제를 뒤집어쓰고 쫓겨나지 않으면 다행이죠.

넌, 쥐는 나직하게 웃으며 속삭였다. 내가 본 중 최악의 쥐 혐오자야.

하지만, 여자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그건 당연한 일이에요. 당신은 나를 강간했으니까.

쥐는 웃었다. 난 내게 재능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어. 여왕의 궁전 앞에 알몸으로 드러누워 얼어죽을 수 있을 정도의 재능. 박제된 오른손을 전시장 한 가운데 매달아 놓을 수 있을 정도의 재능. 악마가 될 수 있을 정도의.

그런 건, 여자는 말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죠. 하지만 상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목격자가 필요해요. 당신 같은 쥐는 목격자를 가질 수 없는 부류죠.

그래. 쥐는 말했다. 넌 단정적으로 확언하지만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야. 사실이 되기 위해서는 증인이 필요해. 흔적을 남기지 않는, 눈을 찢어발기고 조리개를 열어젖히지 않는 죽음은 사실조차 아니야. 무대에서 죽기 위해서 내게 필요한 건 관객들이었어. 내게는 불가능한 집요한 시선들. 연극용 나이프에 관통당한 나이프를 끈질기게 관찰하며 그 비밀을 캐내려고 몰두하는 홀린 눈들. 그런 게 없었기 때문에 난 무대에서 자살할 수 없었던 거야. 유명한 배우와 나 사이의 차이점은 그런 거겠지. 내가 아닌 자들이 모두 유명하고 성공한 배우가 될 수 있었던 까닭은 그것뿐이겠지.

남자는 불분명한 지점을 멍하니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난 지금껏 이백사십오만칠천구백삼십이 번의 연극을 공연했지만 그건 전부 거짓이야. 한 번도 사실인 적이 없었어. 그 처절한 연기들이 꿈이나 망상에 불과하지 않음을 증명해 줄 시선은 단 하나도 없었어. 오직 거울만이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지. 검은 눈은 그러나, 아무것도 바라보지 않고 있었어. 내가 처량하거나 서글프게 느껴졌기 때문에, 나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날 응시하지 못한 건 아니야. 그저 그건 불가능했어. 씹할 불가능했다고. 거울의 수면 위를 둥둥 떠다니는 표면의 형상에 정확하게 초점을 맞추면서 그 초점이 내 눈을 관통하게 만드는 일은 불가능했어.

왜냐하면, 남자는 흐느끼듯 찍찍거렸다. 거울에는 깊이가 없으니까. 거울의 내부 같은 건 없으니까. 시선은 어디도 관통하지 못한 채로 광학적인 표면만 남기고 순식간에 사라져버리고 말지.

그래도, 여자는 말했다. 그래도 당신은 운이 좋은 편이에요.

어째서? 사내는 모욕받은 듯 얼굴을 찡그리며 물었다. 남자의 일그러진 눈이, 자잘한 잿빛 솜털로 뒤덮여 있는 설치류의 눈꺼풀이 백미러 표면을 뒤덮었다.

당신은 아직 아무도 죽이지 않았으니까. 동물을 죽이고 나면, 여자는 야릇하게 웃으며 말했다. 더 이상 죽음을 믿을 수 없게 되죠. 모든 것이 부드럽게 유영하는 사물뿐임을 깨닫게 되면 죽음은 구원이 아니에요. 교수대에 목이 매달리는 순간 사형수는 죽음의 악마적인 신에게 기도조차 할 수 없죠. 경동맥이 막히고 육 초 후 일종의 가사상태에 진입한 뒤 혈류가, 그러니까 산소가 차단된 사형수의 뇌는 서서히 훼손되어가요. 돌이킬 수 없이 망가져 버린 뇌가 마지막 단말마를 분출하고 난 뒤에도 끝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죠. 사형수는 번뜩 눈을 뜨고 망가진 몸이 빠진 팔처럼 추레하게 덜렁거리는 걸 느껴요. 사형수는 최후의 희망마저 빼앗긴 채 절망하지만 그래도 계속 존재해요. 그 누구도 사형수에게 죽음을, 최후에 대한 광신적인 믿음을 다시 돌려줄 수 없어요. 왜냐하면 죽음은, 빌어먹게도 끝이 아니니까. 우리가 찢어발겨진 서글픔을 맡기고 의존적인 잠을 청할 수 있는 장소는 씹할 어디에도 없으니까.

여자는 단조로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별은 사후 수백만 년이 지나도 반짝이지만 생물들은 그렇지 않죠. 생물은 기본적으로 아주 우연하게 접합된 스파크를 가진 사물에 불과해요. 사물들이 영속하는 만큼 생물은 영속하고 빌어먹을 산소는 지구 어디서나 어느 몸으로든 틈입하고 또 빠져나가죠. 그러니까 삶이 살아가는 것을, 신조차도 막을 수 없어요. 신조차도 완벽하게 자살할 수 없어요. 그가 할 수 있는 건 너무나도 자명하고 당연한 진실인 부활을 그럴듯하게 연출하는 것뿐이죠. 우린 신의 죽음이 아니라 신의 부활을 애도하고 슬퍼했어야 마땅해요! 아니, 그 무엇도 슬퍼할 필요는 없었죠. 죽고 계속해서 살아 있는 것 죽음 이후에도 끝이 없는 것은 절망적으로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난 당신이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그보다도 내가 죽었으면 좋겠어. 하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에요. 이해할 수 있나요?

남자는 눈 먼 거울을 바라보듯 멍하니 앉아 있었다.

불쌍한 것, 적어도 생각하지 않는다면, 느끼지 않는다면 삶은 훨씬 수월할 텐데. 교실에 앉아서 죽어가는 사제의 얼굴을 낙서하는 청소년들처럼 너는 행복할 수 있을 텐데.

그들은 100m도 가지 못했다. 로드킬 당한 짐승들의 시체가 도로 곳곳에 널브러져 있었다. 탐욕스러운 파리들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검고 반짝이는 파리들이 웅웅거리며 대기를 가로질렀다.

불가사리들이, 여자는 창문에 부딪힌 뒤 빗방울처럼 떨어져내리는 파리를 보며 중얼거렸다. 대부분 죽어 있다는 걸 알아요? 해변에 보이는 불가사리들 말이에요. 그것들은 대부분 죽어 있어요. 그러니까 바다 깊은 곳으로 다시 던져넣어도 소용없어요.

뭐가 소용없다는 거지?

여자는 침묵하다가 가물거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해변을 사랑하는 건, 해변을 사랑하려 애쓰는 건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요. 왜냐하면 해변은 시체들 투성이니까. 뜨겁고 집요한 햇살에 말라가는 불가사리의 시체들, 살이 억지로 뜯겨나간 조개의 시체들, 버려진 플라스틱 삽의 시체들, 아이들의 맨발에 으깨진 갯벌레의 시체들, 금발이 뜯겨나간 바비 인형의 시체들, 은빛 물고기의 이마와 뱃가죽을 뚫고 나온 플라스틱 보석의 시체들, 배가 터져 붉게 폭발하는 혹등고래의 시체들.

바다에 가고 싶니? 남자는 나직하게 물었다.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는 백미러를 통해 여자의 작고 둥근 얼굴을 바라보며 그래, 하고 중얼거렸다. 언젠가 바다에 가자.

여자는 울음을 터뜨렸다. 바다 같은 건 없어요. 그 정도는 나도 알고 있어요.

그래, 남자는 백치처럼 넋을 잃고 앞유리를 멍하니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우리는 오래도록 바다를 보지 않았지.

젤라틴처럼 축축하고 미끄러운 날숨들, 밤의 속살을 찢어발기며 파고드는 집요한 붉은 눈들, 12m의 전진, 남자는 발작적으로 클랙슨을 울렸고 그를 따라 도로를 빼곡이 메운 다른 차들도 클랙슨을 울려댔다. 교통 정체는 계속되었다. 차량 안에 감금된 짐승들은 초조하게 남은 간식거리, 열기에 늘러붙은 싸구려 초콜릿과 캔디, 미지근하게 식어버린 물 따위를 뒤지기 시작했다.

쥐 경찰은 여자의 수갑을 차 손잡이에 결박시켜 놓은 뒤 발빠르게 식량과 물을 구입하러 나갔다. 유달리 덩치가 큰 제복 차림의 수컷 쥐는 로드킬당하기 직전의 날짐승처럼 불길하고 음험해 보였다. 그는 겁 없이 차들 사이를 돌아다니다가 붉은 페라리의 앞문을 두들겼다. 여자는 차 안에서 그의 움직임을 면밀하게 관찰하고 있었다.

붉은 페라리의 창문이 내려갔고 유달리 검은 털을 가진 쥐의 머리가 드러났다. 쥐 경찰은 제복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경찰 신분증을 보여주었고 검은 쥐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말린 육포와 비스킷, 생수병 따위를 건네 주었다. 경찰은 지폐 몇 장으로 값을 치렀고 몇 분간 그대로 서서 창문 사이로 이야기를 나눈 뒤 다시 경찰차로 돌아왔다. 그는 차량에 올라탄 뒤 생수병에 주둥이를 대고 물을 조금 마셨고 곧 여자의 수갑을 차 손잡이에서 벗겨내 주었다. 여자는 억지로 들려 있던 어깨와 팔이 뻐근해 스트레칭을 하듯 어깨를 움찔거렸다. 쥐는 여자에게 아직 대부분의 물이 그대로 남아 있는 생수병을 건넸고 여자는 입을 대지 않고 몇 모금을 갈급하게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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