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젤 스테이크 30

소녀 돼지는 TV에서 당신을 본 적이 있다고 수줍게 말했다. 당신은 나처럼 어린 아이를 죽였죠. 뉴스에서 당신이 사건을 재연하는 모습을 봤어요. 당신은 부들부들 떨고 있었어요. 당신 얼굴은 돼지처럼 불그죽죽해 보였어요. 당신 얼굴은 천사의 심장처럼, 인육처럼 보였어요. 당신은 울고 있었어요. 당신은 아마 첫 번째보다 두 번째 연기를 더 잘 해냈을 거예요.

소년 돼지는 키득거리며 그럴 거야, 하고 호응했다.

여자는 화면 밖에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여자들을 흘깃 바라보았다. 그녀들은 음울하고 무감각한 얼굴로 돼지들을 응시하고 있었다.

너희를 죽여줄 수 있어, 여자는 마치 그녀 자신이 간절한 것처럼 속삭였다.

내가 너희의 늑대가 되어줄 수 있어.

여자는 검은 달걀을 주머니에서 꺼내 들어보였다. 돼지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자는 깨진 달걀을, 산산조각난 조각들을, 주워담을 수 없는 점액질의 액체를, 생명의 살을 보았다. 여자는 울고 있었다.

어린 돼지들은 당황한 듯 속삭였다. 아무도 달걀을 깨지 않았어요.

네가 병에 걸리기를 기다리고 있어, 귓속에서 바스라지는 소음. 여자는 푸른 인광으로 반짝이는 검은 숲을 보았다. 그들은 산을 따라 걸어갔다. 누군가 그들을 인질로 잡아 끌고가고 있는 듯, 음울하게 그리고 묵묵하게. 산을 내려가자 밤처럼 검은 해변이 나왔기에 여자는 이곳이 꿈임을 알아차렸다.

아무도 우리를 감시하고 있지 않아요. 사내 돼지가 중얼거렸다. 아무도 우리에게 기다림을 강요하지 않았고 아무도 우리를 죽이러 오고 있지 않고 아무도 우리를 감시하고 있지 않지만 우리는 기다릴 수밖에 없어요. 우리는 기다림을 선택한 걸까요?

가슴이 뜯겨나가는 통증, 여자는 늑대가 결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늑대 연기자는 해고당했으며 더 이상 늑대의 클레이 가면을 얼굴 위에 뒤집어쓰지 않은 채로 그에게만 텅 빈 도로를 떠돌고 있고 프로듀서가 사라진 늑대를 재고용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검은 해변에는 붉은 트럼프카드로 만들어진 성이 있었다. 성의 꼭대기에 맨몸으로 드러누워 잠을 자던 검은 남자는 그들을 짜증스럽게 돌아보고는 곧 트럼프카드 성에서 뛰어내렸다. 그는 트럼프카드 성의 맨 밑면에 있던 두꺼운 카드를 하나 빼어들었다. 성이 소리없이 무너져내렸고 그는 걸었다. 그는 절름발이었다. 한쪽 발을 질질 끌며 그는 해변보다 흰, 검은 바다쪽으로 걸어갔다. 돼지들은 동요 없이 검은 남자가 긴 로프로 자신의 몸을 트럼프카드에 묶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도와드릴까요? 사내 돼지가 큰소리로 외쳤다.

검은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자신의 상체를 작은 나룻배만 한 트럼프에 결박시킨 뒤 검고 축축한 달을 바라보며 바다에 뛰어들었다. 트럼프와 사내의 나신은 희고 뭉근한 달 아래에서 오래도록 떠다녔다. 날카로운 파도가 그를 절단내기 전까지 검은 남자는 영원처럼 부드럽게 검은 바다를 부유할 것이다.

여자는 해고당한 배우의 행방에 아무도 관심갖지 않는다고 소리쳤다. 시의 흔적인 눈물에, 연기의 흔적인 육체에, 문드러진 입체의 잔여물들에 아무도 관심갖지 않는다고.

여자는 검은 해변 위에 무너져내렸다. 돼지들은 그녀의 곁에 다정하게 주저앉았지만 그 이상 그녀를 위로하지는 않았다.

나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지? 여자는 홀로 생각했다. 꿈은 점점 길어지고 있어. 석류알 같은 붉은 개미들이 끝없이 번식해가지만 나는 염병할 혼자야. 젖은 버찌처럼 붉은 그 많은 개미떼가 그 많은 꿈들이 전부 혼자야.

깊은 물 속에 빠진 아이들을 구하지 않은 구경꾼들에게 누군가-그 역시도 구경꾼이었지- 물었어. 왜 아이들을 구하지 않았냐고.

그는 이렇게 답했지. 가라앉는 아이들만큼 우리도 혼자였으며 우리 역시 가라앉아 죽어가고 있었다고.

하지만 아이들은 죽었고 그들은 살았어. 그들은 살아 있지만 아이들은 죽었어. 피폭된 장미 같은 빌어먹을 행운, 혹은 불운으로 우리는 살아 있지만 누군가는 죽었어. 어째서 이곳의 해변은 검지? 어째서 나는 검은 해변을 견딜 수 없는 거지? 아, 자살하기 위해서는 먼저 살아 있음을 깨달아야 해. 사막을 살해하기 위해서는 아직 살아남은 숲을 찾아나서야 해. 사막이 처음부터 죽어 있었으리라는 절망적인 가정을 파기해야 해.

돼지들은 늑대처럼 웃으며 표류하는 남자의 검은 배를 바라보고 있었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여자는 검고 축축한 물방울들이 돼지들의 클레이 가면을 녹여낼까봐, 녹아흐른 가면 아래로 드러난 얼굴들이 그 누구의 것도 아닌 매끄러운 달걀일까봐 두려웠다. 하지만 달걀은 모두의 것이다. 신은 모두의 것이다. 삶은 신을, 생명을 숭배하는 행위이다. 누군가는 손에 잡힌 달걀을 깨뜨려버리고 끈적이는 누런 젖어듦 위에서 흐느끼며 시를 쓰며 누군가는 달걀의 속에 흔들리는 음험한 난자를 잊은 채 평생을 살아간다.

하얀 손톱들을 덕지덕지 붙여 놓은 것처럼 보이는 달의 덩어리가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여자는 흐느끼며 물었다. 아직도 늑대를 원하느냐고.

사내 돼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고 대답했다. 아무도 늑대를 원하는 걸 그만둘 수는 없어. 아무도, 아무도, 아무도.

여자는 찢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뭐가요?

여자는 고개를 저었고 그들은 달 아래에서 둥둥 떠다니는 검은 반점과도 같은 남자의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새로운 사실은 하나도 없어, 여자는 속삭였다. 하나의 장미 꽃잎은 무한하게 불어나 죄수의 목을 조르고 죄수를 살해하며 다시 태어난 죄수는 또다시 하나의 장미 꽃잎을 상상하지. 새로운 사실은 하나도 없어. 우리는 단 하나의 사실로부터도 완전히 도망칠 수 없어. 하나의 사실은 곧 무한한 사실이며 증폭되어가는 빌어먹을 사실들은 우리를 눈 먼 채 바라보고 있어. 나는 관대한 희생자, 혹은 잔혹한 살인자지. 신경다발에 단단하게 엉겨붙은 피투성이 가면을 고통 없이 뜯어낼 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도 없어. 나는 그 애의 목을 졸랐고 그 애의 얼굴에 과도를 꽂아넣었고 그 애는 피투성이의 메스꺼운 미소였어. 그래. 그 애는 내장의 미소였고 교활하며 순수한 농담이었어. 그 애는 우리가 마침내 자폐적인 세계로부터 벗어나서 기쁘다고 말했어. 혹은 나는 그 애가 그렇게 말하는 것을 상상했어. 그 애는 행복하다고 말하지는 않았어. 그 애는 로드킬 당해 도로 한복판에서 무력하게 죽어가는 고양이만큼이나 고통스러웠고 나는 그 애가 더 이상 하얗고 가느다란 손가락을 들어 고양이의 목을 조르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았어.

나는 너를 로드킬하고 싶어. 나는 당신, 당신, 당신 전부를 로드킬하고 싶어. 나는 나를 로드킬하고 싶어. 여자는 돼지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울부짖었다.

돼지들은 두려움 없이 여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축축한, 검은 눈들. 여자는 돼지들에게 페터와 늑대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들은 늑대를 사랑하고 있었으므로, 늑대의 망상과 그림자에도 어찌할 수 없이 귀기울이고 있었으므로, 여자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었다.

페터는 늑대를 집으로 초대했어. 페터의 어린 아내가 늑대를 반가이 맞이했고 늑대는 소녀처럼 수줍게 웃으며 식탁에 앉았어. 페터와 어린 아내는 늑대를 정중히 대접했어. 늑대가 불에 잘 그슬린 돼지의 다리고기, 허벅지 고기와 머릿고기와 가슴고기와 배고기와 목뼈까지 다 먹어치웠을 때 페터는 늑대를 끌어안으며 흐느꼈어. 이제 당신은 우리의 돼지예요.

페터와 어린 아내는 가슴이 뜯겨나가는 사람처럼 울었어. 늑대는 얌전하고 순종적으로 꿀꿀거렸고 그들은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늑대를 오래도록, 어쩌면 영원히 기다렸어.

소녀 돼지는 작게 웃으며 속삭였다. 늑대들은 매력적이에요. 그들은 돼지가 무엇인지 이해하고 있죠.

여자는 모든 늑대가 그런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소녀 돼지는 퉁명스럽게 중얼거렸다.

초록은 여자의 어깨를 흔들어 깨웠다.

난 화면 속에 들어갔어. 여자는 죽어가는 병자처럼 여린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래, 너는 화면 속에 들어갔어. 아무런 예고도 없이! 초록은 비명을 질렀다. 넌 모든 걸 망쳐 놓았어.

하지만, 여자는 속삭였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어. 너는 화면 속에 들어간 나를 보지 못했잖아.

초록은 흐느끼면서 여자를 끌어안았다. 넌 잘못 배송된 소포야. 초록은 타들어가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소포 안쪽에서 너는 잘려나간 머리로 내게 미소짓고 있어. 나는 끔찍하게 놀라서 경찰에 전화를 걸고 경찰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태연하게 너를 잘못 보냈다고 나는 경찰이 너를 찾으러 돌아올 때까지 너를 잘 맡아야 한다고 말해.

나는 그럴 수 없다고 두려움에 끔찍함에 미쳐버릴 것 같다고 대체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고 말해.

너는 예의 그 벌어진, 절망적인 미소로 나를 망가뜨리고 있어.

경찰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태연한 목소리로, 그건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고 말해.

아마 경찰은 비뚜름한 조소를 짓고 있을 거라고 나는 혼자 생각해.

경찰이 말해. 문지기가 눈을 매만지는 순간, 혹은 망상처럼 떠오른 거대한 달을 멍하니 바라보는 순간, 혹은 달의 그림자가 물결처럼 번져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순간, 시골 사람은 재빨리 첫 번째 문지기를 지나 달려갑니다.

첫 번째 문지기는 그를 돌아보지 않죠. 마치 그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이 황망하게 넘겨다보기만 합니다. 시골 사람은 끔찍한 슬픔 때문에 문지기를 향해 소리칩니다.

난 당신이 빌어먹을 달을 바라보는 사이에 당신을 지나쳤어요. 시골 사람은 숨을 몰아쉬며 덧붙입니다. 난 당신을 지나쳤어요. 난 당신을 기만했어요. 난 당신을 속였어요.(그러니 제발 내게 벌을 주세요. 나를 비난하고 내게 벌을 줘요.)

첫 번째 문지기는 마약에 취한 어린 아이처럼 멀뚱하게 그를 바라보기만 합니다. 시골 사람은 두 번째 문지기에게로 달려갈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천천히 첫 번째 문지기에게 다시 다가가며 비명을 지릅니다.

난 당신을 속였어요. 난 당신을 지나쳤어요. 그건 빌어먹을 교활한 짓거리였어요.

첫 번째 문지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마치 일생의 절반을 시골 사람과 함께 보낸 적이 없는 것처럼요. 시골 사람은 그제야 모든 것을 알아차립니다. 그는 더 이상 첫 번째 문지기의 직분도 첫 번째 문지기의 관할 하에서 보호받는 사람도 아니라는 것을. 첫 번째 문지기는 더 이상 그를 지키고 그를 조롱하고 그를 돌보고 그를 막고 그를 상대할 필요가 없으며 시골 사람은 더 이상 첫 번째 문지기에게 그를 들여 보내줄 것을 요구할 수 없음을.

시골 사람은 무력하고 서글픈 걸음걸이로 천천히 첫 번째 문지기에게 되돌아갑니다.

시골 사람이 첫 번째 문의 문턱을 넘어 바깥으로 되돌아간 뒤에야 첫 번째 문지기는 그의 눈을 뚫어지게 들여다보며 속삭입니다. 나는 당신이 들어가도록 허락할 수 없다고요.

그제야 시골 사람은 안심하고 문지기의 단단한 종아리에 가대어 잠듭니다. 시골 사람은 점점 자주, 점차 대담하게 첫 번째 문과 두 번째 문의 사이를 오고가지만 반드시 첫 번째 문의 바깥쪽으로 되돌아갑니다.

난 그들이 모두 빌어먹을 병신이라고 말했지만 경찰은 웃지 않았어. 그 대신 경찰은 내게 첫 번째 문지기의 일 혹은 시골 사람의 일을 하라고 말했어.

나는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고 경찰은 내가 이해하든 이해하지 않든 나는 너의 머리를 맡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어. 네가 씹할 화면에 들어가 있는 동안 나는 네 머리를 돌보아야 했어. 나는 네가 완전히 썩어버리지 않도록 네게 포도당 사탕과 물을 주어야 했어. 교사들에게 꽃집에서 쓰는 물뿌리개를 가져다 달라고 부탁해서 네게 물을 주었지. 교사들은 내가 너를 돌보는 걸 좋아했어. 꽃을 돌보는 건 회복해가는 증거라고 말했지.

저년들은, 초록은 TV 앞에 앉아 있는 파랑과 2층 침대에서 잠자고 있는 보라를 번갈아 가리키며 소리쳤다. 네 머리를 보면서도 울지 않았어. 마치 내가 돌보고 있는 게 네 머리가 아니라 평범한 꽃인 것처럼, 저년들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덤덤했어.

초록은 흐느꼈다. 자, 초록은 여자의 가슴을 밀어내며 속삭였다. 네가 나를 때려. 내가 주인이니까, 네가 나를 때려야 해.

여자는 초록의 뺨을 내려치며 속삭였다. 문지기들은 오래도록 텅 빈 간극을 버텨야 해. 하나의 문이 영원히 닫힐 때까지 문지기들은 절망적인 긴장 속에서 서 있어야만 해. 문지기들은 문의 주인이 그들 앞에 당도해서 그들을 완전히 찢어놓기만을 바라고 있어. 하지만 시골 남자는 여전히 첫 번째 문지기 앞에 있지.

사실 첫 번째 문지기는 시골 남자에게 무릎을 꿇고 애원해야 해. 제발 그를 떠나지 말라고. 제발 첫 번째 문을 버려진, 아무런 쓸모도 없는 문으로 만들지 말라고. 버려진 뒤에도 문은 여전히 남아 있으니까. 문이 쓸모를 잃고 난 뒤에도 첫 번째 문지기는 첫 번째 문을, 영원히 다른 손님들을 받을 수 없을 문 앞을 떠날 수 없을 테니까. 그렇지만 첫 번째 문지기는 마치 그 자신이 그 문의 주인인 것처럼 오만하게 굴어. 그것은 그의 지위와는 맞지 않는 행동이지.

초록은 흐느끼며 속삭였다. 하지만 당연한 거야. 그는 시골 남자의 문에 고용되어 있는 하인이니까, 그가 주인 앞에서 오만하고 당당하게 구는 것은 당연한 거야. 그가 시골 남자를 때려야 해. 그가 시골 남자의 주인 행세를 해야 해. 왜냐하면 시골 남자가 그의 주인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으니까. 시골 남자는 그의 문을 가로막는 문지기를 관대하게 내버려 둬. 시골 남자는 문과 문지기들이 그 자신에게 봉사하고 있다는 것을, 오직 그를 법의 중심부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는 일에 일생을 바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 쓸쓸한 일이지, 끔찍하게 슬픈 일이야. 시골 남자는 언제든 자신의 문을 버리고 떠날 수 있지만 그의 문을 지키고 있는 문지기들은 그렇게 할 수 없어. 시골 남자는 문지기가 남의 생의 주인 행세를 하는 것을 관대하게 놓아둬. 그래, 관대한 희생자 혹은 잔혹한 살인자야. 관대한 손님 혹은 비굴한 주인이야.

너흰 대체, 파랑은 그들을 돌아보며 짜증스럽게 외쳤다. 언제 죽을 생각이지? 언제 조용해질 거야?

초록은 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이미 죽어가고 있어.

하지만 너희는, 파랑은 중얼거렸다. 너무 오래 떠들고 있어.

여자는 킬킬거리며 말했다. 우리는 일생을 유언하는 거야. 카나리아처럼, 평생을 유언하며 노래 부르는 거야. 생명은 하나뿐이지만 축축한 달걀의 꿈은 두 개의 거울 사이에 갇힌 장미처럼 무한히 증폭된. 무한히 증폭된 거대한 난자들, 무한히 증폭된 죽음과 무한히 증폭된 신들. 신들은 바퀴벌레처럼, 파리떼처럼 늘어나고 우리는 경멸스러운 거북함으로 신들을 굽어다 내려 보지. 우리를 향해 다가오는 것들은,

초록은 속삭였다. 우리를 해치기 위해 다가오는 것이 아니지만 점액질의 여린 난자는 가벼운 충돌만으로도 갈기갈기 찢겨 망가지고 말아. 망가짐 역시, 여자는 중얼거렸다. 증폭되지. 시간의 함수처럼, 길을 잃은 도형들처럼. 여자는 검은 해변에서 돼지들과 함께 다가오지 않는 밤을 바라보고 있었다고 말했다.

초록은 폭소를 터뜨렸다. 우리는 안개처럼 먼 곳에서 죽어가고 있는 늑대를 바라보고 있었어.

여자는 중얼거렸다. 늑대는 오지 않아, 늑대는 결코 오지 않아.

그녀는 열다섯 혹은 열넷, 빌어먹을 미성년이었다. 아주 늙은 여자를 연기하는 미성년, 혹은 미성년을 연기하는 늙어빠진 여자. 신은 뱀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이브를 유혹하였다. 중개자 없이 악은 어디로도 갈 수 없기 때문이다. 사과를 권하는 언어 없이 우리는 사과를 가질 수 없다. 신은 뱀의 가죽 안에서 킬킬거렸다. 혹은 많이 울었다. 이브는 뱀의 아름답고 정교한 표피를 정성스럽게 쓰다듬었다. 사과처럼 붉은 날개를 가진 벌레가 유리창을 타고 오르고 있었다.

여자는 방충망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며 속삭였다. 나는 희생자 혹은 살해자, 빌어먹을 미성년,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혀를 자른 어린 여자아이들. 우리는 말 없이 모든 대사를 뱉을 수 있었어.

신은 뱀의 껍질 안에서 흐느끼고 있는 늙은 여자다. 배꼽이 없는 이브는 신의 축축한 가죽을 부드럽게 쓰다듬었고 사과를 맛볼 것을 약속했다. 그녀가 사과를 입에 가져다대는 것을 보고 나서야 신은 그녀를 떠나 그의 자리로 돌아갔다. 신은, 금지된 배역 앞에서 울부짖었고 사과처럼 붉은 뱀의 눈으로 여자를 보았다. 이브에게 금지된 배역은 사과를 먹지 않는 일이었을 것이다. 여자는 사과를 먹었다. 사과는 산 채로 썩어가고 있었다. 사과는 결코 영원한 것은 아니었다. 낙원 역시 영원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이 영원했다면 결코 와해되지 않았으리라. 낙원에서 파괴된 것은 영원한 것이 아니다.

파랑은 채널을 돌렸다. 그녀는 마치 채널을 돌리기 위해 그 자리에 존재하는 것처럼 묵묵히 채널을 돌리고 있었다. 악몽이 비운 눈 속에서 석류알 같은 개미들이 기어나오고 있었다. 감옥에서 연극을 하는 이탈리아 범죄자들의 다큐멘터리가 상영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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