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젤 스테이크 28

남자아이는 여자의 이마에 입을 맞춘 뒤 교실 앞문을 열고 나갔다. 교사는 남자아이가 유령이라는 듯 아무런 동요 없이 계속해서 원을 교차하고 탈주하는 직선에 대한 시를 설명하고 있었다. 여자는 귓속에서 녹아내리는 액상의 고요를 느꼈다. 고양이의 부드러운 미소가 공기를 주름잡았다. 여자는 악몽이 비운 눈들의 틈을 보았다.

그녀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미래에 대한 향수가 그녀를 짓눌렀다. 별을 찢어발기는 공포와 석류알 같은 붉은 개미들의 기하급수적 증식. 푸른 인광의 기하학과 상처입은 눈들로 가득 찬 금속성의 현실.

그녀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가?

남자아이는 그녀가 병에 걸리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병은, 거의 언제나 전염성인 병은 그들이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입맞춤이었다.

교사는 원을 통과하는 직선의 양 접점을 분필로 두드리며 말했다. 하나의 접점은 하나의 입맞춤이야. 직선은 원을 겁간하고 관통하거나 원 안에 사로잡혀 죽을 때까지 두려움에 떨며 질식해가게 되지. 원을 주파하는 직선과 원 안에 사로잡힌 직선 사이에 특별한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야. 차이라면 오직 결과뿐이지. 직선의 특정하고 고유한 성질이 원의 감금과 원의 탈주 사이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야. 결코 아니야. 그걸 헷갈려서는 안돼. 원은 거울로 둘러싸인 빛의 장막이거나 지구이거나 목성, 혹은 고리를 잃어버린 토성이거나 지구본이거나 시계이거나 알려지지 않은 행성이거나 우주의 모델이기도 해. 직선은 울음, 시, 공포에 찬 내달림, 거친 호흡, 살아감, 마조히즘, 아이러니, 농담, 깃털에 싸인 채 심해 밑바닥으로 질주하는 잠수부, 은밀한 잿빛 항적이기도 하지. 대부분의 점들은 원의 내부 혹은 경계에서 태어나고 평생 원의 바깥에 대해 알지 못한 채 살아가. 우리가 우주 바깥을 알지 못하듯이.

리본을 매단 여자아이는 참새 같은 입을 벌려 소리쳤다. 우주는 무한하므로 우주의 바깥은 불가능한 것이라고.

교사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우주가 무한하지 않다면, 우주의 무한이 불가능한 것이라면, 최초의 점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는 어둠이 셀 수 있는 것이라면 우주의 바깥은 실재할 텐데. 우주의 끝 너머에는 무엇이 있지?

여자아이는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되풀이했다. 우주의 끝 너머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선생님.

교사는 말했다. 우주의 끝 너머가 흴지 검을지 상상해 봐. 우주의 끝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상상해 봐. 우주의 끝 너머에 무한한 거울들이 있다고, 그 거울들이 끔찍하게 넓은 부재를 비추고 있다고 생각해 봐. 하지만 우주의 끝 너머에 거울들이 있다면 그 거울들조차 우주겠지. 우주의 경계를 둘러싸고 있는 영원한 거울들, 우주의 모든 것을 우주로 만드는 완고하고 교활한 경계선들. 원은 거울로 둘러싸인 둥근 검음, 혹은 흰빛과 같단다. 따라서 원을 탈주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해. 원을 탈주하는 직선은 불가능한 상징, 혹은 망상에 불과하단다. 하지만 누군가는 원을 탈주하는 직선의 이미지를 집요하게 그리지. 마치 그것이 실재하는 것처럼. 그것에 대해 묘사하는 것이 그것을 실재하게 만드는 것처럼. 실제로 우주 속의 흰 먼지는 거울에 부딪혀 원의 내부를 떠돌 뿐인데도 말이야. 빛도 마찬가지지. 세계의 바다를 건너려고 했던 고대의 항해자들은 그들이 염원하던 심연으로 굴러떨어지지 못했지. 위로, 하나의 차원을 덧그려 붙인 세계 너머로 나아가지 않는 이상 그들은 영원히 같은 구의 표면만을 떠돌 뿐이야.

올리브빛 피부의 남자아이는 원의 바깥에서 시작하는 점은 없느냐고 물었다.

교사는 남자아이의 갈색 눈을 묵묵히 내려다보다가 칠판에 그려진 직선과 원을 피해 점을 찍었다.

이렇게? 교사가 물었다.

남자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교사는 다시 등을 돌려 새로 찍은 점을 둘러싸는 둥근 원을 그렸다. 그곳에는 또 다른 원이 있겠지. 모든 점을 둘러싸는 모든 원을 보아야 해. 원은 어디에나 있어.

머리가 긴 아이는 모든 곳에 원이 있다면 그리고 그 누구도 원을 완전히 탈출할 수 없다면 그것에 대해 상상하는 것이 어떤 도움이 되느냐고 물었다.

교사는 원의 중심에서 분필을 서서히 들어올리다가 교실 뒤편 사물함 너머로 분필을 던져버렸다.

머리가 긴 남자아이가 소리쳤다. 점이 도망갔어!

아이들은 왁자지껄하게 웃었으나 여자는 웃지 않았다. 여자는 분필이 사라진, 보이지 않는 자리에도 원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사는 고개를 끄덕였고 수업의 끝을 알리는 종이 쳤으며 여자는 꿈에서 깨어났다.

쥐 경찰은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밤이 점점 길어지고 있어.

여자는 경찰차를 빼곡하게 둘러싸고 있는 파리떼 같은 차들을 보았다. 그들이 최악의 순간에 도착하게 되리라는 불길한 예감에 여자는 몸을 떨었다.

여자는 긴 꿈을 꾸었다고 말했고 쥐 경찰은 위로하듯, 다시 낮이 오고 길이 뚫려 학교로 돌아가게 된다면 꿈의 길이는 정오의 그림자처럼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학교라고요? 여자는 의아한 듯 물었다.

남자는 그렇다고, 너무 긴 꿈을 꾼 탓에 잊어버렸느냐고 물었다. 너는 학교에 가야 해. 남자는 어린아이처럼 키득거렸다. 그곳이 네 감옥이니까.

여자는 숫쥐가 농담을 하는 것인지 진실-혹은 그렇게 믿어지는 것-을 말하는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쥐는 머뭇거리며 여자에게 물었다. 이제 연기를 할 시간인데 괜찮겠느냐고.

여자는 웃으면서 물었다. 당신이 언제부터 나를 신경 썼다고?

쥐는 생고기처럼 붉어진 얼굴로 속삭였다. 너는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야. 난 이제 그걸 인정하고 있어. 너는 내게 최초의 무대를 선물했고 난 영원히 그것을 잊지 못할 거야.

그래서, 여자는 웃었다. 당신은 이제 나를 당신의 죄수가 아니라 프로듀서 혹은 스폰서로 대하겠다는 거군요.

쥐는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는 쥐에게 또 다시 창녀의 연기를 하는 남자를 연기할 것이냐고 물었다.

쥐는 아니라고 말했다.

그럼 뭘 연기할 건데요?

제목이 기억나지 않아. 쥐는 고개를 저으면서 이제 시작해도 되느냐고 물었다.

여자는 투명한 밤의 창문에 소녀들의 창백한 얼굴처럼 들러붙은 물방울들을 바라보았다. 여자는 아무것도 듣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남자는 누군가의 노트를 훔쳐 읽듯 산문투로 연기를 시작했다. 남자는 백미러에 비추어진 여자의 옆얼굴을 응시하며 속삭였다.

그녀는 쓰레기통에 장미를 버렸다. 썩어가는 사과 껍질과 하루살이들의 시체, 오렌지 과즙이 묻은 휴지뭉치들, 그 위에 내려앉은 장미. 그녀는 오래도록 쓰레기통에 내려앉은 장미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지친 입술로 속삭였다. 그녀는 최악의 순간에 도착했다. 연골 같은 추위가 그녀의 얼굴을 움켜쥔 채 일그러뜨렸다. 살풍경한 밤, 살풍경한 침묵, 살풍경한 화면. 그녀는 허위적인 결합에 대해 생각했다. 모두 돼지를 먹으면서도 돼지가 되려 하지는 않아. 돼지가 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돼지를 먹어야 하지. 돼지를 아예 먹지 않거나 돼지를 지나치게 많이 먹거나. 아기 돼지를 연인처럼 기르던 남자는 돼지의 음부가 검게 늘어지던 날, 돼지의 유방에 썩은 바나나 같은 반점들이 돋아나던 날 돼지의 목을 도끼로 내려쳤어.

여자는 쥐 경찰이 여자 자신의 연기를 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그토록 부끄러워한 것이군! 그래서 필요치도 않은 허락을 구하고 창녀처럼 수줍게 웃었던 것이군! 하지만 그건 금지된 연기는 아니지. 그러니까 나한테 허락을 구할 필요는 없었던 거야. 당신에게 금지된 연기는 당신의 연기이지. 마찬가지로 내게 금지된 연기는 나의 연기이고. 자기 자신을 연기하는 배우는 미쳐버리고 마니까. 금지된 연극에서 금지된 배역을 맡는 것은 그나마 괜찮아. 하지만 일상에서 금지된 배역을 맡는 것은 끔찍한 죄악이지. 에덴 동산에서 사과의 붉고 연한 심장을 물어뜯은 벌거벗은 연인처럼. 아니, 아니야. 어쩌면 모든 곳이 금지된 무대인지도 몰라. 우리는 남의 무대에 무단침입한 불법체류자이고 누군가에겐 천국인 무대는 우리에게는 끔찍한 범죄적 장소인 거지.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연기는 불법적인, 금지된 연기이고 범죄인 거야. 당신 마음대로 해. 당신이 당신을 연기하든 나를 연기하든 상관하지 않겠어. 당신이 미쳐버리든 창녀가 되든 살해당하든 살해하든 나는 아무 상관도 하지 않을 거야.

여자는 차창에 달라붙은 울음 같은 혹은 투명한 날개 같은 물방울들을 바라보았다. 여자는 현기증을 느꼈다.

남자는 연기를 이어나갔다. 돼지는 마지막까지 남자를 믿었어. 남자는 돼지의 목을 부드럽게 움켜쥐었고 돼지는 꿈을 꾸듯 핑크빛 머리를 남자의 손에 내맡겼지. 남자가 도끼 날로 돼지의 숨통을 끊어놓을 때까지도 돼지는 눈물 맺힌 부드러운 눈으로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어. 남자는 돼지의 굵다란 혈관을 찾아내 절개하여 거대한 양동이에 피를 받았어. 피가 느린 속도로 쏟아지자 남자는 참지 못하고 돼지의 부드러운 가슴 위에 발을 얹어 짓눌렀지.

돼지는 옅은 잿빛으로 흐려진 눈으로 남자를 올려다보고 있었어. 돼지는 두렵도록 많은 피를 쏟아내었고 남자는 돼지의 사체를 정성껏 해체하였어. 남자는 달구어진 불판에 돼지의 살점을 올려 구었고 화상에 갈빛으로 변한 살을 입 속에 넣고 먹었어. 남자는 울지 않았어. 돼지를 지나치게 많이 먹은 자들은 돼지가 되고 돼지들은 돼지들에게 잡아먹히지.

여자는 참을 수 없는 허기를 느끼고 있었다고 남자는 백미러를 응시하며 말했다. 여자는 참을 수 없는 허기를 느끼고 있었다. 쓰레기통에 내려앉은 장미의 순결하고 하얀 살점.

여자는 메슥거리는 허기에 가슴을 움켜쥐고 기침을 토해냈다. 그녀는 쓰레기통에 손을 집어넣고 다시 장미를 꺼냈다. 장미의 여린 잎 속에서 여자는 흰 알을 발견했다. 새끼 손톱보다도 훨씬 작은, 눈부시게 하얀 알이었다. 여자는 숨을 몰아쉬며 그것이 천사의 알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건 천사의 알이야, 남자는 여자의 목소리로 속삭였다.

아, 천사들은 모두 금지된 배역을 맡은 타락한 아이들이야. 아무도 그 애들에게 천사의 역할을 강요하지 않았지만 죄처럼 선량한 아이들은 스스로 날개를 매달고 날아올랐지. 새장을 모두 잃어버린 신은 금지된 천사들을 천국으로 초대할 수 없었어. 천국에서 신은 끔찍한 혼자였고 그의 곁에는 죽은 새와 쥐들의 사체밖에는 없었지. 돼지의 심장을, 제물로 바쳐진 양들을 잡아먹은 신의 주둥이는 피투성이었고 신은 어린 양처럼 울었어.

남자는 여자의 목소리로 독백하였다. 실종된 천사들은 신의 울음을 잉태하였고 무거워진 몸으로 지상의 밑바닥까지 내려와 알을 낳았지. 이게 그 알일 거야. 여자는 가슴이 욱신거릴 정도로 여리고 부드러운 작은 알을 손끝에서 더듬어 보았다. 여자는 눈물을 흘렸다. 쓰레기통에 버려진 장미의 여린 잎 속에 숨겨진 하나의 작은 알. 이 알을 잘 돌보면 천사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여자는 생각했다.

남자는 백미러에 비추어진 여자의 하얀 옆얼굴을 더듬으며 무덤덤하게 읊조렸다. 여자는 생각했다. 알에서 태어난 천사는 그녀를 사랑하리라고. 천사는 그녀를 어미처럼 따를 것이고 그녀를 배신할 것이고 결국에는 그녀를 사랑할 것이라고. 여자는 천사의 알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하지만 버려진 우산, 모서리가 빗물에 젖어든 부드러운 박스, 뭉그러진 종이는 평면으로 움츠러든다.

여자는 절망적인 통증을 느꼈고 알을 손톱으로 뭉개 버렸다. 뭉그러진 알에서 아직 성장하지 못한 작은 날벌레의 몸통이 보였다. 그것은 분명히 날개를 가지고 있었으나 날개는 찌그러졌으며 잿빛의 길고 미세한 실 같은 내장도 몸 밖으로 드러내진 상태였다. 내장을 감쌀 육체가 아직 여물지 않았으므로, 여자는 불투명한 막에 싸인 피투성이 눈을 바라보면서 울었다. 그녀는 덜 여문, 지나치게 벌거벗은 생을 눈 안에 밀어넣을 듯 그녀의 검은 눈 가까이 가져다대며 속속들이 들여다보았다. 그녀는 불가능한 흐느낌을 들었다.

여자는 모두가 잔혹한 신이라고 생각했다. 모두가 제물을 원하고 피투성이의 입을 뻐끔거리는 잔혹한 신이다. 신은 끝 없이 붉은 고기를 원하고 붉은 고기들은 모두 신이다. 모두가 이기적이며 잔혹하고 무관심한 신이다. 눈부시게 붉은 날개를 가진.

한 시간이 지나기 전에 여자의 집으로 침대처럼 커다란 하얀 관이 배송되었다. 배달부는 창백하고 냉담한 얼굴로 여자에게 서명을 요구하였다. 여자는 포장조차 되지 않은 거대한 관을 보았고 배달부에게 그녀는 그것을 주문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배달부는 삐뚜름하게 웃으면서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남자는 대사를 잊은 듯 확신 없이 웅얼거리다가 곧 눈을 감고 대사를 이어나갔다.

배달부는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고 여자는 배달부가 먼지 묻은 운동화를 신은 채로 그녀의 거실에 성큼성큼 들어와 관을 내려놓는 꼴을 묵묵히 견딜 수밖에 없었다. 여자는 절망적으로 놀라 반항조차 할 수 없었다. 여자는 그녀를 강간하고 그녀를 살해하는 배달부를 보았다. 남자의 금속 버클이 그녀의 둔부에 닿고 그녀는 물 밖으로 탈출하는 어린아이처럼 팔을 휘저으며 허덕이며 남자는 그녀의 내부 깊이 침입하며 그녀를 갈기갈기 찢어 놓는다. 여자는 꽃병을 깨뜨리는 배달부를, 그녀의 목 동맥을 잘라내는 날카로운 유리 파편을 보았다. 하지만 배달부는 그녀의 거실에 거대한 흰 관을 내려놓은 뒤 곧바로 등을 돌려 나갔다.

여자는 강도가 든 집에 서 있는 것처럼, 혹은 폭풍에 휩쓸려간 집의 잔해 위에 홀로 남은 것처럼 황망하게 서서 열린 현관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나의 하얀 관이 그녀의 집안을 망쳐버렸다. 하나의 하얀 관 때문에 그녀의 집은 돌이킬 수 없이 망가져버렸다.

그녀는 울부짖었으나 현관문 밖에서는 희미한 인기척조차 들리지 않았다. 여자는 벌레의 사체를 더듬듯 역겨움을 짓눌러 삼키며 가까스러 하얀 관 위에 손을 대어 보았다. 관은 끔찍하게 차갑고 매끄러웠다. 그녀는 점점 더 대담하게 관을 어루만지다가 곧 관 뚜껑을 열어 그 텅 빈 속에 머리를 집어넣기에 이르렀다. 관의 내부에서는 투명한 공기가 맴도는 서글프고 공허한 소리가 들렸다.

여자는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 있었다. 그녀는 미리 지시받은 행위를 취하듯 그녀의 손 끝에 묻어 있던 피투성이 천사의 시체를 관 내부에 떨어뜨렸고 곧장 관 뚜껑을 닫았다. 그녀의 손가락 위에 여전히 남아 있던 시체의 잔해, 진물과 알의 흔적을 여자는 구역질이 치밀어 오르는 입 속에 넣고 빨아 삼켰다.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오래전에 죽은 별에서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는 것처럼. 박제된 나비가 아무런 체취도 없이 말라붙어 있는 것처럼.

곧 여자에게 전화가 걸려왔고 여자는 그녀의 침과 천사의 체액으로 끈적해진 손가락으로 전화를 받았다.

목소리는 말했다. 당신은 관을 받았을 겁니다.

여자는 그렇다고 말했다.

관을 열어 보지는 않으셨죠?

여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관을 열어보아서는 안됩니다. 당연히 관 안에 아무것도 넣어서는 안되고요. 관에 들어갔다가 살아남을 수 있는 건 예수뿐이니까요. 목소리는 농담조로 킬킬거렸으나 여자는 묻지 않았다.

당신이 관을 열지 않는다면 곧 배달부가 당신을 다시 방문할 겁니다. 빠르면 오늘 저녁, 늦어도 내일 점심 때까지는 당신 집 초인종을 누를 거예요. 배달부가 당신 집에 다시 찾아갈 때까지는 집을 떠나면 안 됩니다. 그러면 배달부는 헛걸음을 할 테고 당신은 하루나 이틀을 더 기다려야 할 것이며 운이 나쁜 경우 배달부는 영원히 당신을 찾아 벨을 누르고 당신은 영원히 배달부를 기다리게 될 수 있으니까요. 무엇보다 끔찍한 것은 그토록 오랜 기간 당신이 관을 임시로 가지고 있게 될 경우 벌어지게 될 일입니다. 당신은 오래도록 관 옆에서 지내며 관에 친밀감을 느끼게 될 것이고 많은 짐승들이 그러하듯 당신의 곁에 있는 사물이 당신의 소유라고 착각하게 될지도 모르죠. 그럴 경우 당신은 관이 정말 당신의 것이라고 믿고 관의 회수를 의도적으로 방해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뿐 아니라 당신에게도 좋지 않은 일이죠.

여자는 집에 혼자 있기 때문에 배달부에게 문을 열어주는 것이 두렵다고, 그녀는 이미 한 번 살해당했으며 더 이상 나쁜 일을 당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목소리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여자는 관을 현관문 밖에 내놓을 테니 배달부가 언제든 관을 회수해 가면 되지 않느냐고 물었고 목소리는 그럴 수 없다고 말했다. 누군가 관을 훔쳐갈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오. 관의 도난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고 우리는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습니다.

여자는 침묵했다.

목소리는 확인하듯 여자에게 다시 물었다. 관을 열어보지 않으셨죠?

여자는 관을 열어 보았으며 그 속에 벌레의 유충을 집어넣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녀는 갑작스러운 현기증 때문에 바닥에 주저앉은 채였다.

목소리는 기계처럼 냉담하게 말했다. 관을 열었을 경우 배달부는 당신을 방문하지 않을 겁니다. 당신은 관을 책임져야 합니다. 당신은 관과 함께 살아야 합니다.

여자는 울며 애원했다. 난 관과 함께 살고 싶지 않아요. 십 분도 안 되는 시간에 이 관 때문에 내 생활은 완전히 망가졌어요. 내 집은 끔찍한 무덤이 되어버렸다고요!

목소리는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그녀는 이제 관과의 생활에 적응해야 하며 관으로부터 도망칠 방법은 없다는 것이었다.

여자는 관을 불태워 버리겠다고 중얼거렸으나 그녀 자신이 그렇게 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날 저녁부터 여자의 집에는 검은 상복을 입은 조문객들이 방문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유충-천사의 시체가 들어 있는 하얀 관 앞에 엎드려 소리 없이 집요하게 울었다. 여자는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알지 못하는 채로 멍하니 그들이 우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어떤 조문객은 여자에게 조의금을 건네기도 했다. 처음 돈을 받을 때 여자는 소스라치게 놀라 비명을 질렀다. 조문객은 알 수 없는 눈빛으로 여자를 바라보았고 여자는 가슴이 타들어가는 고통을 참으면서 상처 입은 짐승처럼 덜덜 떨리는 손으로 하얀 봉투 혹은 벌거벗은 지폐들을 받아들었다.

조문객들은 끝도 없이 여자를 방문했다. 건강할 때는 철저히 혼자였다가 병에 걸린 후에야 믿을 수 없이 많은 문병객들을 맞이하게 되는 병자처럼 여자는 조문객들을 받아들였으며 점차 그들과 많은 대화를 하게 되었다.

그들은 여자를 상주로 여기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은근하게 여자에게 상주로서의 역할을 요구했다. 여자는 하나뿐인 검은 드레스를 입고 긴 머리를 단정하게 묶었으며 간혹 하얀 관 앞에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우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녀는 햇살에 반짝이는 유리만 거울만 보아도 끔찍한 슬픔과 통증을 느꼈으므로 울음을 참지 않으면 그녀는 언제든 눈물을 흘릴 수 있었다. 그녀는 억지로 관을 막아놓은 수도꼭지 같았다. 관을 조이던 나사를 풀어내면 눈물은 언제고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여자가 눈물을 흘리면서 허공을 떠도는 희미하고 불가해한 얼룩들, 혹은 하얗고 단단한 관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면 조문객들은 만족해하며 그녀에게 더 많은 조의금을 건네주기도 했다.

다섯 번째 아침에 찾아온 중년의 여인은 여자의 방에 저녁까지 남아 있으면서 여자에게 넋두리를 속삭였다. 힘들겠지만 견딜 수 있어요. 나도 견뎠으니까 당신도 견딜 수 있을 거예요. 나는 어릴 때 언제나 시체들과 관들과 함께 생활했죠. 우리 아빠는 매장자였거든요. 아빠는 가족과 친지가 없는 시체들을 싸구려 관에 담아 새벽에 묻었죠. 신원미상의 시체를 묻는 시간은 언제나 새벽이었기 때문에 전날 오후나 저녁, 혹은 밤에 아빠에게 넘어온 시체를 아빠는 현관문 앞에 보관하고는 했어요.

아빠는 엄마도 새벽에 묻었죠. 언제나 새벽, 새벽이었어요. 아빠는 새벽을 신성한 시간이라고 여겼던 것 같아요. 아빠는 새벽부터 일하느라 밤에는 쓰러지듯 잠들었고 나와 내 오빠는 아빠가 잠든 시간에 현관문 앞까지 까치발로 조심스럽게 나가 시체를 만져보곤 했죠. 끔찍하게 훼손된 시체도 있었고 살아서 잠들어 있는 사람처럼 보이는 시체도 있었어요. 우리는 시체의 가슴과 팔뚝, 배와 허벅지, 발과 눈꺼풀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졌고 가끔은 시체의 손등에 신도처럼 입을 맞추기도 했어요. 시체들은 우리의 값비싸고 음험한 장난감이었죠. 우리는 시체를 무서워하지 않았어요. 시체들의 살은 단단하게 굳어 있었지만 눈꺼풀은 부드러웠고 무엇보다도 그것은 우리를 닮았으니까요.

어느 날 우리는 새벽까지 깨어 있다가 시체를 싸구려 관과 함께 묻으러 가는 아빠를 따라가기도 했어요. 새벽을 거니는 검은 개들이 우리를 그림자처럼 따라왔죠. 아, 개들의 삶은 알려지지 않은 한 편의 시예요. 시는 하나의 농담에 불과하지만 그 농담은 모든 것이죠.

중년의 여자는 불확실한 무한함 속으로 내려앉는 시체들에 대해 말했다. 우리는 알려지지 않은 심연 속으로 사라져가는 우리의 연인들을 묵묵히 배웅했어요. 싸구려 나무 관에 담긴 삶들! 관 짜는 사람이 버리고 간 싸구려 나무의 껍데기들로 아빠는 신원 미상의 시체들을 위한 조잡한 관들을 만들었어요. 버려진, 싸구려 나무들 역시 살아 있는 시체들이라는 것을 우리는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깨달았죠. 죽은 살에 둘러싸인 죽은 연인들! 당신은 잘 버틸 수 있을 거예요.

어렸을 때 나는 이렇게 하얗고 아름다운 관 속에 잠들어 있는 황홀한 죽음에 대해 생각했죠. 이렇게 아름다운 관에 담길 수 있다면 당장 죽어도 좋을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아름다운 관에서 썩어갈 수 있다는 건 대단한 행운이죠. 나는 팔각형의 하얗고 길쭉한 관 속에 담긴 악몽에 대해 생각했어요. 죽은 여자아이의 긴 머리칼을 인형처럼 땋아 장식하면서 오빠와 나는 여자아이의 삶보다 더 긴 죽음에 대해 상상하곤 했죠.

시체들은 모두 달랐지만 관들은 비슷비슷했죠.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관들 역시 달랐을지도 몰라요. 아, 당신은 정말 잘 할 수 있을 거예요. 꿈을 꾸면서 눈을 뜨려고 몸부림치는 짐승들과는 달리 시체들은 동요 없이 잠들어 있었어요. 우리가 시체들을 가지고 장난치는 동안 저주처럼 깨어나는 시체들은 없었죠. 그들은 모두 땅 아래 검은 혀처럼 드러난 틈 속에 묻힌 뒤에야 되살아났을 거예요. 눈을 뜬 꿈의 속으로 젖은 흙이 밀려들고 그들은 한 번도 열린 적 없는 문들이, 그들이 끝내 찾지 못했던 출구들이 닫히는 소리를 듣겠죠. 문들은 닫히고 있지만 보이지 않아요. 출구들은 발견되지도 않은 채로 은밀하게 닫혀요. 오직 그 빌어먹을 출구들이 닫히는 소리만이 들릴 뿐이에요. 눈조차 감겨 주지 않은 죽음으로 핏대 선 시뻘건 눈에 검은 흙이 내려 앉는 소리. 난 언젠가 나 역시 그런 식으로 묻히리라는 것을 이해했어요. 하얗고 예쁜 조개 같은 관도 없이. 하늘도 우주도 미래도 없이.

여자는 악몽으로 텅 빈 눈으로 이상한 조문객을 바라보았다고 쥐 경찰은 말했다. 쥐 경찰은 산문을 읽는 듯한 담담한 어조를 유지했다.

여자는 추락하는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바다, 혹은 거울처럼 검은 하늘에 대해 생각했다. 흰 관과 검은 옷을 입은 조문객들. 조문객들은 여자를 위로했고 행운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무슨 빌어먹을 행운? 여자는 흰 관 속에 담긴 것이 그녀가 아니란 것을 알았다. 관 속에 들어 무수한 조문객들의 방문을 받는 것은 다른 모든 것일 수 있지만 오직 그녀만은 아니었다. 여자는 이해하고 있었다.

남자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여자는 부풀어 터지는 붉은 숨들을 알 수 없는 슬픔으로 바라보았다. 그건 서툰 농담 같군요, 여자는 속삭였다.

유리창 바깥의 세계는 텅 비어 있었다. 여자는 쥐 경찰의 검은 등을 바라보며 핏기 없는 입술로 속삭였다. 난 하얀 관에 담겨 있는 게 다른 모든 것일 수 있지만 오직 나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당신은 틀렸어. 나는 관 안에 문드러진 알도 알의 환상도 담지 않았어요. 관 안은 깨끗했고 처음에 그랬듯 텅 비어 있었어요. 누군가 그 안에 무엇을 넣었다면 그것만이 담겨 있었겠죠.

기적은, 남자는 서글프게 중얼거렸다. 실재하지만 결코 우리가 바라는 대로 일어나지는 않지.

여자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악몽과 교미하는 짐승들. 짐승들은 악몽과 뒤얽힌 더 많은 짐승들을 낳는다. 악몽을 낳는 짐승들, 짐승을 낳는 악몽들. 그들은 낮이 되고 고속도로의 정체가 해소될 때까지, 차들이 존재하지 않는 구불구불한 도로를 주파하며 희미한 잔영으로 사라져갈 때까지 침묵하였거나 대사를 주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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