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 삶은 그녀의 것이 아닌 에피소드들이다. 참을 수 없이 외로운, 그러나 견디어지는. 계속되는 견딜 수 없음. 그녀가 히스테리컬하게 헤집어 찢어놓고 있는 구멍에서 벌건 피와 진물이 질질 흐른다. 그것은 그녀의 것이 아닌 에피소드들이지만 그녀의 것처럼 아프다.
앨리스, 그녀는 히스테리 여자다. 그녀가 꺽꺽거리면서 신음하는 언어를 아무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녀는 가족의 길게 벌어진 상처지만 스스로 봉합된 척을 할 줄 안다. 그녀가 입을 다물고 조용히 있을 때는 다른 이들도 그녀가 무엇을 앓고 있는지 종종 잊는다. (그녀가 칼을 들고 잠든 동생의 생명을 빼앗으려 하는 살인 미수자였다면 그들은 그녀의 증상-언어를 이해하려 했을까?)
앨리스, 그녀가 무엇을 전하려 하는지, 그녀가 무엇을 이해받으려 하는지 아무도 듣지 않는다. 그녀의 문법에 그들-들리는 자들-은 끔찍하게 무관심하다. 앨리스, 인간의 언어를 배운 뒤에도 물고기는 물고기의 언어로 울 수밖에 없는 걸까? 도살장에 갇힌 암소는 목이 잘리고 피부와 그 속의 엷은 막이 분리되고 사지에 마디마디 칼집이 나 도려내지는 동족들을 바라본다. 그들을 보면서 암소는 무엇인가를 켁켁거린다. 검은 말의 등을 타고 떠나가는 마녀처럼. 유괴당하며 웃는 여자아이처럼. 암소는 도망갈 생각이 없다. 그녀는 다만 무엇인가를 말하고 싶어 견딜 수가 없을 뿐이다.
히스테리 여자여, 여자의 언어로 글을 써라. 찢어지는 비명으로 종이를 적셔라. 쓰면 쓸수록 고통스럽지만 아직 자살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로 쓰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녀는 빌어먹을 마조히스트니까.
여기서 뭐라고 써야 읽힐 수 있을지 모르겠어. 앨리스는 생각한다. 여기서 뭐라고 소리쳐야 들릴지 모르겠어. 어떻게 죽어야 발견될 수 있을지 모르겠어. 나는 다만 한 문장만이라도 더 존재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이곳, 영원한 이곳에서 남자도 여자도 아닌 채로. 남자와 여자를 모두 원하면서. 따끈하고 빠듯한 자지와 그녀를 아픔으로 데워줄 보지를 모두 원하면서. 도축장의 암소가 컥컥거리면서 허공에 쓰는 내용을 아무도 읽지 못한다. 소들은 알아듣지 못하고 인간들은 듣지 않는다. 바닥을 비워낸 수조 속에서 물고기가 비명을 지르는 것을 아무도.
영화를 촬영하고(촬영했다고 믿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식물원에 들렀던 적이 있다. 입장 티켓을 끊고 유리문을 열어서 후덥지근한 내부로 들어서서 인간이 지나다니도록 비어 있는 길을 따라 홀린 듯이 걷고는 들어왔던 문으로 다시 나섰다. 그곳에서 그녀는 무방비한 짐승의 성기를 남몰래 더듬거려보는 어린아이처럼, 만지는 것이 금지되어 있는 꽃잎들을 은밀하게 만져 보았다. 손가락 사이에서 부드럽고 미끈하게 엉겨붙던, 화려하게 개화한 성기들.
앨리스, 영원한 히스테리 환자는 언젠가 집안에서 터져버릴 것이다. 피와 살의 조각들이 벽에 튈 것이고 그 얼룩은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폭발은 결국 은밀할 것이고 그것으로 끝일 테지. 누구 하나 위협하지도 못한 채, 누구 하나 강간하지도 강간당하지도 못한 채. 복막 깊이 침입해오는 날카로운 칼날도 느끼지 못한 채. 그녀는 차오르는 내압을 이기지 못하고 터져버릴 것이다. 테이프를 붙여 놓은 풍선 위에 바늘을 찌르면 풍선이 소리 없이 터진다는 사실을 아는가. 흐물거리면서 은밀하게 폭발하여 다시는 차오르질 못할 풍선. 미끄덩한 근막으로 뒤덮인. 그녀는 그렇게 비밀스러운 곳에서 비밀스럽게 처형당한 짐승의 고기를 먹는 여자다. 그녀는 육식을 하는 여자이고 그녀가 잡아먹은 짐승들처럼 죽을 것이다. 그녀는 그녀가 잡아먹은 것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녀가 잡아먹은 것이 그녀에게 속해 있는 만큼 그녀 역시 그녀가 잡아먹은 것에 속해 있으므로 그녀는 그것들처럼 은밀하게 죽을 것이다.
도살 기계도 처형인도 없이.
그녀의 살에는 한 푼의 값도 붙지 않겠지. 그녀의 죽음은 화장 기계 속에서 탈 것이고 한 줌의 재, 그것으로 모두 끝날 것이다. 뼛조각은 희고 정결하여 아름답기까지 하겠지. 불결하고 끈적거리고 음탕한, 갈급한 비명의 흔적은 어디에도 남지 않을 것이다.
구태여 불태워달라고 유언하지 않아도 그녀가 평생 지른 비명은 사라질 것이다. 벙어리 풍선처럼 부드럽게 터져서.
앨리스, 그녀의 시간은 적막한 비명으로 가득하였다. 뼈와 근육으로 뒤덮인 육체 속에서 나날이 비등하던 갈망들. 절망적으로 커져가던 그 많은 구멍들.
최초의 적막으로 집요하게 되돌아가는 애원들. 태어나던 순간에도 그녀는 울지 않았다. 그녀의 엉덩이를 치고 그녀의 표정을 빤히 바라보던 의사의 냉정한 눈을 그녀는 놀랄 만큼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의사는 그녀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있었는데 그녀는 그것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에게 울음을 요구하던 그 불가해한 표정 때문에 그녀는 울지 못했다.
히스테리의 언어로 그녀는 요구한다. 히스테리의 언어로 그녀는 노래한다. 히스테리의 언어로 그녀는 절규하고 히스테리의 언어로 산다. 도축의 순간을 황홀하게 기다리면서도 죽음 전에 죽음 이상의 무엇인가 오길 간절하게 바라는 암소처럼. 암소는 자유나 탈출보다도 아름다운 순간을 바란다. 용서받을 수 없는 아름다움을. 그녀가 그녀의 도살자로부터 훔쳐 배운 도살자의 언어로 울부짖는 시를 누군가 들어주기를. 그녀와 같은 암소들이든 이미 머리가 잘려나가고 가죽이 벗겨진 소고기들이든 그녀를 처형하며 흥얼거리는 피투성이 도살자들이든. 그녀의 도살자가 그녀의 시를 들어준다면 그녀는 울타리가 망가져도 도축장에 얌전히 남을 것이다. 절단기에 모가지를 집어넣고 도살자의 얼굴을 빤히 올려다보며 노래를 부를 것이다. 기꺼이, 기꺼이, 기꺼이 그녀는 살해당할 것이다! 도망치는 천 마리의 소들을 배웅하면서 그들을 위해 히스테리 노래를 불러줄 것이다. 그녀의 도살자가 그녀를 들어준다면. 그녀는 도살자의 피비린내 나는 종아리에 곧 잘려나갈 머리를 비비며 애교를 부리리라. 그녀는 죽는 순간에도 그를 사랑하리라. 그녀는 죽는 순간 비로소 그를 사랑하게 되리라. 그녀 유언의 유일한 청취자가 될 그를. 그녀 존재의 유일한 증거가 될 그를. 그녀에게 유일한 존재의 순간을 선물할 그를. 아, 나는 이 순간을 위해서 당신의 언어를 배웠어요! 그녀는 해맑게 말하리라. 그가 절삭기로 그녀의 두꺼운 목을 너덜너덜하게 베어내는 그 고통스러운 순간에도 그녀는 흥분하여 말하는 것을 멈추지 못하리라. 오로지 그녀의 피투성이 말 때문에 그녀는 오르가슴을 느낄 것이다. 목이 잘려나가고 두꺼운 경동맥에서 피가 쏟아지는 순간에도 말할 것이다. 황홀로 헤 벌어진 주둥이를 사후경직으로 몇 번 더 움찔거리면서. 망신창이가 되어 비어져나온 혈관들이 길게 빠져나온 혓바닥에 닿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도살자의 언어를 위해 끝까지 도살장에 남는 여자다. 그녀는 미친 여자다. 그러나 도살자의 언어를 사랑하는 것을. 도살자의 것도 짐승의 것도 아닌 히스테리의 언어를 사랑하는 것을. 그녀는 그 어중간한 절박함에 대한, 절박하여 미쳐버린, 미쳐서 대화가 되지 않는 그 언어에 대한 사랑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카메라 앞에서 대사를 말하면서 그녀는 그녀 자신이 그 대사를 평생 준비해왔다고 느꼈다. 언제나 그랬다. 매번 그랬다. 그녀는 그녀의 목구멍을 할퀴며 쏟아지는 언어에 대한 절망적인 감동으로 흐느끼곤 했다. 그녀는 그녀의 혀와 함께 구토해낸 내장 같은 언어를 미치게 사랑했다. 구역질해낸 것을 매번 다시 긁어 먹을 정도로, 경련하는 내장에 쑤셔넣을 정도로 사랑했다. 그녀는 자신의 토사물에 기꺼이 입술을 맞출 수 있었다. 그것을 보며 수음할 수도 있었다. 그것을 위해 죽을 수도 있었다. 심지어는 그것을 위해 살 수도 있었다.
그것을 위해 살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도, 정말 아무도 그것을 찍지 않았단 말인가? 아무도 그녀가 평생 준비해왔던 그 말들을 담지 않았단 말인가? 그래서 그것들, 그녀가 그토록 절실하게 구토하고 되삼켰던 말들은 이제 어디에도 없단 말인가?
뚜껑을 열어 놓은 변기에서 남자가 빠져나온다. 그가 막 태어나는 갓난아기처럼 시뻘건 얼굴을 변기 구멍 밖으로 빼낸다. 그가 허우적거리면서 발을 빼내는 동안 여자는 마른 수건을 들고 그에게 다가간다.
앨리스가 그의 옷 위로 수건을 눌러대며 물기를 닦는다. 남자의 눈은 희고 불투명한 막으로 덮여 있다. 그의 은색 양복은 아직 남아 있는 물기로 짙은 잿빛이다. 그는 앨리스가 살해당할 무렵 누워 있던 현관을 자연스럽게 지나쳐 식탁으로 향한다. 그녀가 식탁에 앉아 흰 빵을 뜯어 먹는 동안 은색 양복을 입은 천사는 선 채로 그녀를 내려다본다.
남자가 부엌에서 냉장고 문을 열고 무엇인가를 뒤적거리더니 다시 돌아와 그녀의 머리 위에 검붉은 포도주를 천천히 붓는다. 앨리스가 시선을 올리고 곧 히죽거리며 웃고 있는 물고기의 머리와 눈을 마주친다. 그가 처음부터 물고기의 머리를 가지고 있었던가, 앨리스는 자문한다.
그의 주둥이가 혐오스럽게 뻐끔거린다. 포도주가 계속해서 쏟아진다. 여자는 붉은 색으로 젖어든다.
여자가 눈을 감고 있는 사이 남자는 여자의 식탁 위에 올라가 똑바로 눕는다. 얌전하게 누워 있는 남자는 관 속에 누워 있는 줄리엣처럼 보인다. 여자는 남자를 멍하니 내려다본다. 그가 여자를 올려다보고는 발작적으로 웃음을 터뜨린다. 그는 기다리고 있다.
기다리고 있다.
여자는 한참을 가만히 있다가 케이크용 포크를 그의 가슴에 찔러넣고 빵칼로 그의 가슴께를 썰기 시작한다. 그는 간지럼을 느끼는 듯 몸을 바들바들 떨며 킬킬거리다가 곧 물고기의 눈깔을 감고 새근거리는 숨을 쉰다. 아이처럼 얕고 따뜻한 숨소리다. 여자는 오래도록 그의 가슴을 부드럽게 썰어대다가 곧 칼날의 방향을 바꿔 회를 뜨듯 그의 옷을 얇게 저미기 시작한다. 옷이 잘려나간 뒤에는 그 밑의 부드럽고 미끈거리는 살을. (그의 피부는 얼굴처럼 은색의 비늘로 덮여 있다) 여자는 붉고 싱싱한 회를 한 점씩 입 속에 넣고 오물거리며 씹어 삼킨다. 메슥거리는 비린내에도 불구하고 여자는 기어코 그것을 목구멍까지 넘긴다. 부드러운 턱에서 붉은 포도주를 뚝뚝 흘리면서 계속해서 그를 저며 먹는다. 그녀의 몸을 적신 포도주와 물고기의 살이 그녀의 입 속에서 혐오스럽게 엉겨든다. 그녀는 썰고 먹는다. 계속, 계속, 계속, 계속. 그녀에게 억지로 먹어야만 한다고 명령하는 목소리는 없는데도.
물고기의 미소까지 썰어먹고 난 뒤, 그녀는 식탁 위에 펼쳐져 있는 물고기의 거대한 유골을 끌어안고 흐느낀다. 그녀가 그의 골반 뼈를 벌리고 그 속에 들어가 누운 채로 눈을 감았을 때,
그녀의 몸을 썰어내 먹어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얼마간 그렇게 그의 안에 누워 있다가 다시 일어났고 그의 뼈를 마디마디 부러뜨려 음식물 쓰레기 봉투에 넣어 정리했다. 식탁에서는 물고기 비린내가 진동했다. 어쩌면 그녀의 몸 속에서 진동하는 냄새였는지도 모른다. 그녀의 내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 물고기의 육체로부터, 물고기의 기억과 물고기의 깊은 벌어짐, 미소로부터.
Act. 14.
앨리스는 종종 자기 자신이 파충류와 같다고 느낀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 그녀는 친구(가 되기 직전의 아이)와 함께 같은 화장실 칸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그 애가 좌변기에 앉아 오줌을 누고 있을 때 그녀는 화장실 문을 열었고 그 애는 비명을 질렀다. 그 애가 오줌을 다 누고 화장실 칸을 나가기까지의 시간 이외에 그들은 한순간도 그토록 가까이 있지 않았다.
나가고 싶어.
나가고 싶어. 아니야. 그보다는 누군가 들어오는 게 좋겠어. 누군가, 아주 폭력적인 방식으로. 빌어먹게 깊은 곳까지 들어오면 좋겠어. 내가 인간의 내부를 원하는 것처럼 인간이 내 내부를 원하면 좋겠어. 그의 내장에 침을 뱉고 싶어. 그가 내 내장에 침을 뱉으면 좋겠어.
앨리스는 조용히, 고통스럽게 원한다.
그녀가 영원한 파충류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녀는 악어도 물고기도 사자도 인간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녀는 용서받을 수 없이 섞여 있는 무언가이고 그녀는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는 언어를 가지고 있지 않다.
앨리스는 쉬는 시간마다 화장실 오른쪽 열 끝 칸에 들어가 앉아 있었다. 뜨거운 오줌을 전부 뱉어낸 뒤에도. 화장실 칸막이 위쪽 천장에는 어린 아이의 주먹만 한 태양이 떠있었는데 그것을 오래 보는 동안 그녀의 눈은 전부 타 버렸다.
누군가 태양을 정면으로 오래 보면 눈이 망가진다고 말해주었던 것도 같은데. 어쨌든 그녀는 그것을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너무나 아름다웠으니까. 유일하게 아름다웠으니까. 카메라의 렌즈마다 들어 있던 태양도 그것과 같은 별이었다. 인간들의 눈꺼풀 아래서 발화하는 불들도. 그것을 너무 오래 들여다보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음에도 그녀는 집요하게 그것을 바라보았다. 모든 태양들이 그녀를 피해 가버린 뒤에도 그녀는 태양이 있던 자리를 끈질기게 응시했다.
태양들이 파괴한 눈으로 보이는 검은 점들만이 그녀에게 남은 태양의 유일한 흔적이었다. 그녀는 원했다. 내부를 격렬하게 태우는 폭력을, 다른 내부와 그녀 자신의 내부를, 내부로 향하는 절규를, 세계의 모든 내부를, 세계의 모든 여성기와 세계의 모든 내장을, 그녀는 절망적으로 깊이 파헤쳐지고 싶었고 돌이킬 수 없는 깊은 곳을 파헤치고 싶었다. 끔찍한 갈망으로 그녀는 나날이 깎여나갔는데 그곳에도 태양과 유사한 불이 있는지, 그녀 자신은 들여다볼 수 없었다. 타들어가면서도.
유혹자 이브가 그녀에게 선물한 붉은 사과를 그녀는 돼지처럼 먹어 치웠다. 창자가 터질 때까지 몸 속에 우겨 넣었다. 사과즙이 묻은 이브의 손가락을 잘라 먹고 이브의 불그스름한 유륜을 깨물고 부드러운 지방으로 부풀어오른 배와 흙이 묻은 발까지 전부 먹어치웠다. 그녀는 끔찍하게 배가 고팠다. 이브까지 먹어 치운 뒤에도. 그녀는 이브가 그녀에게 건넨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원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그녀는 이브를 모방한다. 텅 빈 카메라 렌즈 앞에서, 투명한 불에 모든 지각을 훼손해가며 했던 것처럼. 그녀는 자기 자신을 유혹하고 자기 자신에게 유혹당한다. 남는 것은 상실감과 슬픔이다.
물질적인 환상을 느낄 정도로 미치기 전에는 자기 자신의 흐릿한 타자들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깨진 달걀에서 노랗고 흰 점액질이 흘러넘친다. 닭들이 그것을 쪼아 먹는다.
그것은 이미 죽은 닭, 존재하지 않는 닭이기 때문이다.
앨리스, 그녀는 기다린다. 아마 처형인이나 연인, 남성기나 타인의 내장, 입맞춤, 그녀의 관객들은 오지 않겠지만 적어도 죽음은 올 것이다. 태어난 모든 것들은 죽음을 가질 수 있으니까. 태양이 뜨는 동안은, 적어도. 태양이 지는 동안은.
자살할 용기가 없는 자에게도, 자살에 실패한 자들에게도 죽음은 반드시 온다. 죽음을 살 만한 돈이 없는 자들에게도. 누구에게나 자기 자신의 얼굴이-설령 망가지거나 텅 빈 얼굴이라도, 설령 평생 그것을 확인할 수 없더라도-허락된 것처럼, 생물은 죽음을 가질 수 있다. 기다림은 응답받을 것이다. 수천 수만 번을 배신당하더라도, 결국 올 것이다. 죽음을 바라는 언어들이 얼마나 그것을 빨리 불러들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앨리스는 어제의 침대에 누운 채 죽음을 생각하며 잠들었다. 죽음은 그녀에게 따뜻한 우유와도 같은 편안함을 주었으므로.
그러나 외도하는 연인처럼, 그녀는 죽음을 기다리며 다른 불가능들을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니의 아이를 임신하려 하는 소녀처럼.
달걀을 쪼아먹는 암탉의 부리는 흥건하다. 그날 저녁에 암탉은 다른 달걀을 낳는다. 여자아이가 배설물이 묻은 달걀을 통째로 입 속에 집어넣고 씹는다. 시간이 흐른다. 여자아이는 인형처럼 얌전히 앉아 있다.
갑작스럽게 허물어져 흐느끼기까지.
사물들의 틈틈이, 음문의 갈라진 틈들마다 슬픔이 축축하게 스며들어 있다. 아무도 음부의 주변을 애무해주지 않아도 사물의 틈들은 종종 홀로 울부짖으며 더 깊게 갈라진다. 삽입하는 살, 침입하는 타인의 내부 없이도. 왜냐하면 그것은 끔찍하게 갈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자는 허공과 그녀의 육체를 가로지르는 수백 개의 음부들을 뻐끔거리며 말한다. 아버지는 그녀를 임신하지 않았고 어머니는 그녀를 임신시켜주지 않았다. 그녀는 어머니가 그녀를 임신하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그래서 빌어먹을 최초를 반복하고 싶었지만 어머니는 두 번 다시 그녀를 임신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결코 탄생을 말소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용서받을 수 없이 아름다운 접촉, 상호마찰, 음문에 대한 음문의 삽입 같은 것들을 기다리면서, 그녀는 결코
삶을 파기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녀는 지나친 것들을, 지나치게 불가능한 모든 것들을, 불가능 자체를 바란다. 어째서 갈망은 항상 불가능을 향하는 것일까. 불가능한 삽입을 기다리는 구멍들이 혐오스럽게 뻐끔거린다. 어린아이일 때부터, 앨리스는 음부를 문지르며 참을 수 없는 슬픔을 느꼈다. 그녀에게 고통은 차라리 쾌락이지만 삶은 고통스럽기보다는 슬펐다. 카메라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그녀가 기대했던 것들, 그녀가 바라보았던 것들, 그녀가 바라보지 못했던 모든 것들이 견딜 수 없게 슬펐다.
독약을 먹고 죽어가는 암쥐가 보랏빛으로 늘어진 젖을, 독으로 가득 차 있는 젖을 새끼 쥐들에게 먹인다. 죽음을 빨리면서도, 암쥐는 새끼들을 삶으로 불러들이기 위해 젖을 내어주는 것이다.
어째서 갈망은 항상 불가능을 향할까.
어째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원하는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 것일까.
앨리스는 차가운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영원히 반복재생되고 있는 영화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그녀에게 그토록 잔인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그들로서는, 그녀에게 그토록 잔인하지 않을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사람의 언어를 배우지 않았다면 사람을 원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물고기에게 사람의 언어를 가르친 이는 대체 누구였나. 그녀에게 사람을 가르친 이는. 그녀에게 불가능을 가르친 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