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과 장미 17

Act. 25.

하얀 에나멜 색 이빨들을 드러낸 채로 돼지들은 씩 웃고 있었다. 김현경은 실패하고 말 것을 예측했다. 그녀는 바보가 아니었으니까. 그녀가 내기를 해야 했다면 그녀는 실패하는 쪽에 걸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투자할 수밖에 없었다. 돼지들은 웃고 있었다. 유혹하듯이, 그녀를 초대하듯이.

김현경은 오디션 지원 서류들을 수백 군데 제출했다. 기업에 자소서를 뿌리는 취업준비생, 혹은 절망적으로 원고들을 출판사에 보내는 글 쓰는 사람처럼 그녀는 계속해서 썼고 보냈다. 그녀가 직접 작성한 자기소개서는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그녀는 떨어질 수가 없을 것이라고, 반드시 그녀에게 연락이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비밀스러운 오디션장의 문을 열고 들어가 심사위원들의 얼굴과 방송국 채널의 실체를 대면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녀는 기대하고 쓰고 기대하고 낙심하고 기대하고 쓰고 희망하느라 소진되었고 마침내는 완전히 지쳐버렸다.

김희경의 오디션 지원서 일부 발췌.

지원동기 :

TV에 나오고 싶습니다. TV를 보면서 저는 언제나 TV가 제 고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태어났고 그곳에서 죽을 겁니다. 저는 반드시 TV로 돌아가야 합니다. TV로 가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연어처럼 확고하게, 저는 제가 가야 할 곳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여배우가 될 거고 TV에 나올 겁니다. TV에서 숨쉬거나 숨을 멈추거나 빵을 먹거나 토하거나 웃거나 비명을 지르거나 침묵하는 저는 낮의 태양만큼이나 자연스러울 겁니다. 저는 TV로 돌아가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TV로 갈 수 없다면 태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저는 꼭 TV에서 죽고 싶습니다. TV로 가면 다시는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집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됩니다. 엄마 아빠는 슬퍼하겠지만 TV 속에서 행복해하는 저를 보면 부모님도 행복할 겁니다. 그렇지만 부모님은 TV로 가지 못하겠죠. 아시겠지만 TV는 오직 선택받은 것들만 들어갈 수 있는, 가장 비밀스러운 통로니까요. 학교의 그 누구도 저처럼 TV로 갈 수는 없을 겁니다. 우연하게 TV에 출연하게 된다고 해도 결코 저처럼 오랫동안 TV에서 살 수는 없을 겁니다. 저는 그곳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그곳에 있는 게 당연합니다. 저는 당신들이 저를 초대하기 위해 이 오디션을 열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저는 기꺼이, 기꺼이, 기꺼이! 초대에 응하겠습니다.

본인의 성장배경 및 본인의 연극작업에 대한 철학 등에 간략히 적어주십시오. :

저는 TV 앞에서 태어났고 TV를 보면서 자랐습니다. 저는 TV가 저를 초대하기를 기다리면서 살았습니다. 29번 채널을 가장 좋아했습니다. 돼지들이 기다리는 동안 저도 기다렸습니다. 어렸을 때는 돼지들이 기다리는 늑대가 누구인지 몰랐지만 이제는 압니다. 그 늑대는 바로 접니다.

저는 배우라면 TV에서 죽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반드시 자살할 필요는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자살하고 싶습니다. 어쨌든 배우라면 반드시 TV 안에서 죽어야 합니다. TV 바깥에서 죽는 것은 치명적인 배신입니다. TV를 위해 죽을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오디션장에서 목을 매거나 스테이크 칼로 손목을 썰어서 자살하는 배우도 있죠. 그들이 여러 번의 죽음을 가졌다면 그런 작업들은 매우 효과적인 어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몇 번 죽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왜냐하면 전 아직까지 한 번도 죽어본 적이 없으니까요. 전 처녀입니다.) 원하신다면 데뷔 무대에서 자살하겠습니다. 돼지들에게 잡아먹히는 것도 좋고 돼지들을 잡아먹다가 기도가 막혀서 죽는 것도 좋습니다. 얼마 전 꿈에서 돼지들이 저에게 제발 자기들을 잡아먹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으니까요. 불에 타서 죽는 것도 좋고 고전적이지만 목을 매서 죽는 것도 좋고 난도질당해 죽는 것도 좋고 우울해서 죽어버리는 것도 좋고 개에게 물어뜯기는 것도 좋고 감전되어서 죽는 것도 좋고 오필리어처럼 익사해서 죽는 것도, 로미오처럼 독약을 먹고 죽는 것도, 크리스마스에 벌거벗고 골목을 산책하다가 얼어 죽는 것도, 가스오븐에 머리를 처박고 죽는 것도, 웨딩드레스를 입고 남미의 가장 위험한 마을들을 히치하이킹해서 횡단하다가 강간총살당해서 죽는 것도, 우편함 앞에서 납치당해 교살되어 죽는 것도, 따뜻한 물이 가득 담긴 욕조 속에서, 절개된 손목으로부터 붉고 화려하게 번져가는 붉은 피의 꽃을 바라보면서 과다출혈로 죽는 것도 좋습니다. 그건 차차 고민해보도록 하죠.

어린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친구는? 친구에 대한 소개 및 함께 경험한 이야기 등을 자유롭게 써주시면 됩니다. :

저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정말 많습니다. 너무 많아서 압사당할 수 있을 정도로 많습니다. 물론 TV 속에도 친구가 많지만 그 밖에도 많습니다. 너무 많아서 다 열거할 수가 없네요. 은지 희준 서윤 알렉스 레이몬드 앨리스 강희 지민 등등 정말 많습니다. 전부 살아 있고 한 번도 죽지 않았거나 기껏해야 한 번 정도만 죽어봤습니다. 아무도 TV 배우가 되지는 못했습니다. 걔들 중 아무도 저처럼 유명한 배우가 되지는 못할 겁니다. 아무도 저처럼 오래 TV에 머무르게 되지는 못할 겁니다. 걔들은 저처럼 TV를 원하지 않으니까요! 다들 TV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사실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애들입니다.

* 오디션 서류는 당락의 요인이 될 수 있으니, 상세하고 성의 있는 작성 부탁드립니다.

Delusion level 10.0.

앨리스는 그녀가 나와야 했을 영화를 보고 보고 보고 다시 보면서 그에 대한 평론을 썼다. 그녀는 영화 전문 평론 잡지에서 그 영화에 대한 평론 계약까지 했다. 편집 검토를 위해 평론을 다시 읽으면서 그녀는 죽고싶었다. 달콤하게 죽고 다시 태어나고 다시 죽어버리고 싶었다. 그녀는 조회수가 나오지도 않는 블로그에 울면서 썼다.

1. 슬프다. 그냥 너무 슬프다.

2. 평론가 C는 영화 속 분절된 장면들과 챕터들 사이에 어떤 유사성도 찾을 수 없다고 했지만 사실 그들은 너무 닮았다. 물방울처럼. 나보코프의 『절망』처럼. 『절망』의 주인공은 자신과 놀랍도록 닮은 남자를 살해하지만 주인공과 그 남자 사이의 유사성을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다. (발견되지 않은) 유사성들 :

– <낚시꾼>의 낚시꾼(항해사)이 발견했던 인어들과 <인어>의 인어들.

– <유원지>의 나비가 언급하는 29번 채널의 늑대와 <늑대와 소년, 그리고 소녀의 물방울>의 늑대 (29번 채널에 관한 독립적인 챕터는 감독판에만 포함되어 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29번 채널에는 늑대를 기다리는 돼지들이 있다. 돼지들은 늑대가 약속대로 그들의 집을 무너뜨리고 그들을 잡아먹으러 오기를 기다린다. 그러나 늑대는 오지 않는다.)

– <낚시꾼>의 경찰 쥐가 언급하는 교실의 틈, 틈 속에서 죽어 있는 여자아이와 <사진>의 주인공.

– <사진>의 사진 속 여자아이들.

– <돼지재판>, <돼지 시위>의 돼지 목장.

– <뱀술>의 끓는 아이와 끓는 여자, <늑대와 소년, 그리고 소녀의 물방울>의 끓는 분만.

– <곡예사> 서커스의 샴쌍둥이 소녀와 샴쌍둥이 개 샴, <람세스 호텔>의 배우 (지망생) 샴쌍둥이 소녀, <늑대와 소년, 그리고 소녀의 물방울>의 샴쌍둥이 소년-소녀.

– 모든 쥐들 사이의 유사성. 특히 요제피네에 대한 그들의 강박적인 집착.

– <유원지>의 언니-동생.

– <재림 예수>의 람세스 호텔과 <람세스 호텔>의 람세스 호텔.

– <사냥꾼 그라쿠스>의 그라쿠스들. 슈바르츠발트의 사냥꾼 그라쿠스와 리바의 사냥꾼 그라쿠스와 그냥 그라쿠스들.

– <돼지재판>의 돼지 한스와 <사냥꾼 그라쿠스>에서 언급되는, 사형 선고를 받은 돼지.

– <교실>의 교사와 소녀.

3. 배우들은 꺽꺽거리면서 말한다. 말이 되지 않는, 말이 될 수 없는 말들을 구토한다. 그들을 듣던 사람이 포기하고 돌아간 뒤에도 그들은 창자까지 토해놓을 듯 말한다. <바이올린 연주회> 소녀의 미친 연주처럼. 의미화 될 수도, 말이 될 수도, 결말을 가질 수도 없는 히스테릭한 비명들. 늑대를 기다리는 29번 채널의 돼지들처럼, 그들은 누군가 그들을 들으러 오기를 기다린다. 무리 지어 놀던 아이들이 그들을 무시하고 등을 돌려 떠나간 뒤에도 그들은 토하는 것을 멈출 수 없다. 그들은 끔찍한 굴욕과 슬픔 속에 웅크린 채로 말을 구토한다.

4. 왜냐하면 그들은 너무나 원하므로. 원하는 것을 멈출 수가 없으므로. 있지도 않은 말을, 말이 되지 않는 말을, 원하므로, 원하므로, 너무나 원하므로. 미치지 않은 사람들은 그들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려 한다고 생각한다. 미친 사람들은 그들이 아무것도 아닌 말을 하고 싶어서 미쳐버렸다는 걸 안다.

앨리스는 무엇을 쓰고 있는 걸까? 그녀는 어째서 영화 속이 아닌 영화 밖에서 그녀에 관한 것도 아닌 글을 쓰고 있는 걸까? 그녀는 여배우여야 하는데, 그러므로 평론가들이 그녀에 대해 써야 하는데, 어째서 그녀가 쓰고 있는 걸까? 그녀는 그런 영화를 다시는 찍을 수 없을 거라고, 찢어진 가슴으로 생각했다. 그런 연기를 두 번 다시는 할 수 없을 거야. 그녀는 미쳤다. 그녀는 영화를 찍지 않았는데도 그녀는 그런 영화를 다시는 찍을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망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고 망상의 가장 깊은 현실 속에서만 삶을 꿈꾼다. 미치지 않은 사람들은 그들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려 한다고 생각한다. 미친 사람들은 그들이 아무것도 아닌 말을 하고 싶어서 미쳐버렸다는 걸 안다. 그녀는 자기가 나오지 않는 영화의 전문가가 되어버렸다. 그녀는 자기 것도 아닌 영화에 대해 쓰고 있다. 그녀가 정말 기대하는 것은 공백으로 남겨둔 채.

엄지손가락을 잘근잘근 씹고 애무하듯 핥으면서 그녀는 영화에 관한 평론 영상들을 유튜브에서 재생한다. 늙은 쥐를 닮은 남자가 낮고 진중한 목소리로 말한다. 그건 너무 갈급하고 너무 많은 의미를 담고 있어서 말하지 않는 것과 같았습니다. 마치 아무것도 말하지 않기 위해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번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건 오직 감독의 장래성이 기대되기 때문일 겁니다. 사실 영화 자체는 별 볼 일 없습니다. 의미도 없고 구성도 결말도 없어요. 뭘 말하고 싶은지 모르겠습니다. 배우들도 고래고래 악을 쓰거나 울부짖거나 흐느끼기만 할 뿐 제대로 말을 할 줄을 모르더군요. 마치, 하고 남자 평론가는 비밀스럽게 속삭인다. 방언 같았어요. 사실 난 평론을 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아니, 평론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것도 알아듣지 못했으니까요. 감독은 많이 배워서 정제된 영상 언어를 익혀야만 할 겁니다.

두 번째 영상의 평론가는 중년의 퉁퉁한 남자다. 그가 말한다. 아주 음탕한 영화입니다. 왜 19금 딱지가 붙지 않았는지도 모를 정도로요.

인터뷰어가 웃으며 말한다. 아마, 아무도 영화를 끝까지 보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르죠.

평론가가 킬킬거리며 웃는다. 침에 번들거리는 입술이 음탕하게 벌어진다. 그래요. 그래도 감독은 많이 벌었을 겁니다. 그 상을 탔다고 하면 무조건 결제하는 날파리들이 많으니까요.

날파리라고요? 인터뷰어가 정색하며 되묻는다.

아니요. 평론가는 당황한 듯 고개를 젓는다. 아무튼, 그 영화엔 보지들이 아주 많이 나오는데.

보지요?

보지요. 여자 성기 말이에요. 사실 자지도 많이 나오긴 하지만. 그런데 제가 너무 작게 말하고 있나요? 제 말이 잘 안들려요? 평론가는 애교를 부리는 아이처럼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는다.

세 번째 평론가는 중학생 혹은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소녀다. 교복 위에 츄리닝을 걸친 소녀는 영화가 씨발, 너무 흥분되었다고 말한다.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아, 징징이들아? 그래도 좋아. 아니, 그래서 더 좋아. 꼭 내 꿈 같단 말이지. 꿈에서 본 걸 다시 볼 때 죽을 것처럼 흥분되잖아. 그건 몇 달 동안 내 딸감이었어. 거기 나오는 히키들이 비명을 지를 때마다 흥분돼서 미칠 것 같았어. 비명 소리 너무 예쁘지 않았어? 우는 소리도 좋았어. 그래, 징징이들아, 너희처럼 나도 변태새끼야. 거기 나오는 히키들이 나 같아서 꼴렸어. 꼴려서 죽어버리고 싶었어.

평론가는 하얀 손목 안쪽을 화면에 가져다대며 묻는다. 보여? 이번주-삶의-흔적! 살아-있음의-흔적! 평론가는 스스로 오글거린다고 생각하는지 킬킬거리며 수줍게 손목을 다시 내린다. 이번주-웃음! 이번주-보지! 이번주-섹스! 평론가는 불현듯 음울한 표정으로 중얼거린다. 가끔은 나도 내가 미친 것 같아. 영상 저장하지 마. 너희가 저장하면 난 죽어버릴 거야. 어차피 죽을 테지만 너희를 저주하면서 죽을 거라고.

자동재생으로 이어지는 영상은 <앤젤 스테이크>의 예고편이다. 메스꺼울 정도로 감동적이고 웅장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여자가 빛 속에서 춤을 춘다. 춤을 추다가 배가 고팠는지 자기 목구멍 속에 손을 손목까지 집어넣고 구역질을 해가며 시뻘건 고기를 꺼낸다. 그녀는 그것을 조명에 비추어본다. 선홍색 고기의 클로즈업. 여자의 하얀 송곳니가 선홍색 고기 속을 파고들어가는 장면이 슬로우 모션으로 영원처럼 늘어지며 예고편이 끝난다.

그녀는 유튜브 영상들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블로그 글을 그대로 복사해서 영화 평론 잡지의 편집자에게 보냈다. 한 시간이 지나서 답장이 왔다. 편집자는 그녀의 글이 지나치게 무례하다고, 권위 있는 평론가들에 반하여 시시콜콜하게 설명하는 글이 부적절하다고 말한다.

그녀는 메일을 몇 차례나 정독하며 흥분으로 차갑게 변해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웃는다. 아, 그녀는 웃는다. 그녀는 블로그에 이렇게 적는다.

시시콜콜하게 까발리는 건 비밀이 없기 때문이고 내가 미쳤기 때문이다. 너는 너무 떠벌리고 있어, 네가 떠벌리는 건 너무 무례해, 하고 누군가 내게 말했다. 그리고 나는 웃는다! 당혹스러운 기쁨으로 웃는다. 나는 벌거벗었고 무례하다. 평론가-고양이-아버지의 입에 정성스럽게 똥을 싼다. 나는 관람객과 평론가를 배신하고 내 작업의 가장 시시콜콜한 부분까지도 집요하게 지껄여댄다. 배우는 자기 작업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고? 오, 그러나 말하고 말하고 말하고 말하고 말하는 사람들. 말하고 말하고 말하고 말하다가 뒈져버리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배우다. 비밀은 없다. 다들 보라지. 그리고 비웃으라지. 자기 자신의 닮음에 대해 추잡하고 꼴사납게 지껄여대는 꼴을 봐! 비웃으라고. 나는 배신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연기니까. 배신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배신할 수 있어서 나는 기쁘다.

앨리스는 블로그 글을 활공하듯 스크롤로 오가다가 비공개로 설정을 돌린다. 혹시 그 글이 문제가 되어서 영화 평론이 출간되지 않을까 봐. 그녀는 비열하고 겁쟁이다. 그녀는 평론이 출간되고 난 뒤에 그 글을 공개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허공을, 망상을 배신하는 꼴이 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녀는 또, 아무것도 배신할 수 없을 것이다.

앨리스는 망설이다가 비공개로 썼던 글을 전부 지운다. 그녀는 자기자신이 여배우가 되기에는 지나치게 착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너무 착한 나머지 그녀는 누가 네 존재가 너무 무례해서 죽는 편이 좋겠어, 라고 하면 네, 하고 죽을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그녀는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을 무례함을 홀로 검열하고 홀로 좌절하며 홀로 다시 쓴다.

배신하기.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적합한 말과 적합한 순간을. 그래서 아주 무례해져 버리기. 목표의 은밀하고 하잘것없는 달성을 위해 그녀는 블로그의 비밀일기장에 쓴다.

나는 개다. 아주 무례한. 그녀는 오직 개처럼 짖어서만 말한다.

나는 개처럼 무례하다. 나는 나를 읽으려는 사람들 앞에서 개처럼 짖는다. 주님 앞에서 똥을 싸고 법 앞에서 시시콜콜 반론을 편다.

자기 죽음에 대해서 주절주절 털어놓기. 추잡하게 느껴질 정도로 유사성들에 대해서 떠벌리기. 유일하게 다정한 사람들 앞에서 오줌을 지리기. 시시콜콜하게 까발리는 건 비밀이 없기 때문이고 내가 미쳤기 때문이다. 너는 너무 떠벌리고 있어, 네가 떠벌리는 건 너무 무례해, 하고 신이 천국의 문턱에서 내게 말했다.

선생님, 저는 말하고 싶어요. 말하고 싶어서 죽어버리고 싶어요.

주님이 깔깔거리며 웃는다. 너는 이미 죽었어!

제가 죽었나요? 나는 너무 행복해서 되묻는다.

아니, 너는 죽지 않았어. 단 한 번도 죽지 않았잖아.

주님이 미친 듯이 웃는다.

나는 너무 당혹스러워서 울음을 터뜨린다. 나는 주님에게 내 죽음의 가장 사소한 부분을 시시콜콜 말한다. 나는 시체안치소에서 깨어났어요. 29번 채널이 틀어져 있었고 돼지들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어요. 나는 너무, 너무 슬펐어요.

주님이 웃는다. 너는 너무 무례해. 자기 죽음에 대해 떠벌리는 건 무례한 거야. 너는, 하고 주님이 묻는다. 배신하려고 하는 거니?

그리고 나는 웃는다! 당혹스러운 기쁨으로 웃는다. 나는 벌거벗었고 무례하다. 주님, 나는 무례합니다. 죽음처럼요. 나는 천국을 배신하고 내 죽음의 가장 시시콜콜한 부분까지도 집요하게 지껄여댄다. 나는 배신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살아있음이니까. 배신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배신할 수 있어서 나는 기쁘다.

좆으로 만들어서 그런지 좆을 닮은, 좆 같은 세상! 앨리스는 혼자서 자기 글을 보며 키득거리고 흐느낀다. 착하고 착한 그녀, 앨리스는 언젠가 그녀 자신의 가장 중요한 죽음을 그들의 요구에 호응하기 위해 소모해버릴 것임을 예감한다. 그녀 자신의 욕망이 아니라 그들의 욕망을 위해서. 그들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서 자기 목을 몇 바퀴 빙빙 돌려 꺾어가며. (그러나 좆을 닮기 위해 노력해도 그녀는 좆이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녀는 그냥 개다. 주인도 없으면서 주인을 닮은 사람을 보면 배를 까고 음부를 보여주는 개.)

너무 기쁠 때 그녀는 너무 슬프다. 너무 살고 싶을 때 그녀는 너무 죽고 싶다. 초인종 소리. 강도가 들어온다.

– 안녕.

– 안녕하세요.

– 가엾게도, 멍청하게도, 너는 네 죽음을 털어놓을 사람도 없구나. 너는 언젠가 말로 꽉 차서 죽어버릴 거야.

강도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한다. 눈물이 네 안에서 방울방울 폭발할 거야. 너는 너덜너덜해져서 죽겠지. 택시 기사가 너를 은밀한 쓰레기장으로 데려갈 때 너는 불안하고 무섭다고 문자를 보낼 사람도 없으니까.

– 죽고 싶어요.

– 나는 너를 죽이지 않을 거야. 넌 아무런 커리어도 되지 못할 테니까.

– 그럼, 안녕히 계세요.

– 계세요가 아니라 가세요야.

– 가지 마요. 내가 예쁘다고 해 줘요. 날 사랑한다고 해 줘요. 난 내가 제일 아끼는 것에 대해서 한 번도 좋은 말을 들어본 적이 없어요.

– 네가 제일 아끼는 거라면 네 죽음 말이야?

– 그것 말고도 있어요.

– 그래. 어쨌든 난 갈 거야. 거짓말을 할 정도로 네가 소중하진 않으니까 네 부탁을 들어주지는 않을 거야. 거짓말은 아주 피곤한 일이란다.

바이바이, 바이바이.

바이바이.

오직 슬픔 때문에, 그녀는 죽어버릴 것 같다. 그러나 사실 그녀는 오직 슬픔 때문에 살아 있는 것이다. 슬픔은 달콤하고 기쁘다. 슬픔은 거의 유일하게 맛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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