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 25.
김현경은 수십 년 전 서울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삶은 집요함으로 요악될 수 있다. 그녀는 사랑에나 어울리는 집요함으로 불가능을 갈구했다. 그녀는 (자칭) TV 칼럼니스트이자 (자칭) 여배우였다. 7살 무렵부터 그녀는 TV 편성표에 맞추어 하루를 분할하였다. 원하는 프로그램을 보기 위해 새벽부터 일어나 TV 앞에 앉아 있을 정도였다. 그녀의 부모는 다정한 사람들이었으므로 그녀의 방에 작은 사과 박스 같은 브라운관 TV를 놓아 주었다. 돼지들이 춤을 추며 웃는 모습을 보면서 그녀는 작은 소리로 따라 웃었다. 김현경은 돼지들이 언젠가 그녀를 TV 속 세계로 초대하기를 기다렸다.
그녀의 방문은 언제나 조금 열려 있었다. 겨울에도 그녀는 방 창문을 활짝 열고 지냈다. 다정한 부모는 그녀의 환상을 부드럽게 자극했다. 언젠가 돼지들이 너를 데리러 올 거야. 그래. 너는 돼지들과 춤을 추고 입을 맞추고 같이 점심을 먹을 수도 있을 거야. 아빠가 돼지와 식사할 수 있도록 해 줄까? 괜찮겠어? 아, 부끄러운가 봐. 우리 아가. 엄마가 돼지들을 집에 불러줄까? 생일파티에 말이야.
9살이 되던 해 그녀는 성대한 생일파티를 열었다. 그녀에게는 TV 속 친구들밖에 없었고 그들은 그녀를 위해 찾아오기에는 너무 먼 곳에 있었다. 김현경은 29번 채널을 틀어놓은 채로 돼지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지나치게 기름지고 많은 음식들을 꾸역꾸역 집어먹었다. 김현경의 엄마는 김현경이 안쓰러웠는지 아파트 단지 놀이터에서 놀고 있던 동네 어린아이들을 급하게 회유하여 집으로 초대했다. 낯선 아이들은 치킨과 불고기와 갈비와 케이크에 게걸스럽게 달려들었다. 그들은 김현경을 힐긋 바라보며 자기들끼리 속닥거리며 키득거렸다. 김현경은 29번 채널의 돼지들을 집요하게 바라보면서 기름기에 번들거리는 손가락을 목구멍까지 밀어넣었다. 낯선 아이들은 무언가를 모의하듯 번들거리는 입술을 움직이더니 길고양이처럼 순식간에 현관문 밖으로 빠져나갔다. 엄마가 김현경에게 친구들이 와서 좋았느냐고 물었고 김현경은 그렇다고 힘없이 대답했다.
급체하여 하얗게 질린 김현경을 위해 그녀의 엄마는 김현경의 열 손가락을 얇은 침으로 따 주었다. 피가 송글송글 맺힌 손가락이 슬프다고 김현경은 생각했다. 그러나 슬픔은 어딘가 기분좋은 구석이 있었다. 그날 밤에 김현경은 잠들지 못했다. 새벽부터 아침까지 그녀는 29번 돼지들을 저주하고 용서하는 글을 일기장 네 면에 걸쳐 써내려갔다. 그것이 그녀의 첫 번째 TV 칼럼이었다.
그녀는 그것을 보여주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으므로 다음날 아침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눈물을 줄줄 흘리며 엄마에게 일기장을 건네었다. 김현경의 엄마는 김현경에게 글쓰는 재능이 있다고 했다. 김현경의 엄마는 김현경의 칼럼 네 면을 복사하여 부엌 벽에 걸어 놓았다. 김현경의 아빠는 언젠가 돼지들이 집에 찾아오면 그걸 보여줘야겠다고 말했고 김현경도 그렇게 생각했다.
김현경은 29번 채널을 볼 때마다 돼지들의 등을 껴안으며 그들에게 달려드는 상상을 했다. 그들은 그녀를 곧바로 알아볼 것이다.
돼지들이 그녀를 보고 놀란 표정을 짓는다. 김현경은 기쁘게 웃으며 말한다.
안녕, 난 너희들을 계속 기다려왔어.
돼지들은 대답한다. 우리도 마찬가지야. 우리는 정말 오랫동안 너를 기다려왔어.
그들은 통나무로 만든 집에 들어가 함께 오므라이스를 먹는다. 암탉이 그날 아침에 낳은 달걀로 만든 것이라고 막내 돼지가 수줍게 말한다. 그녀는 이 달걀을 너무 사랑해서 절대로 우리에게 넘기지 않으려고 했어. 김현경은 사랑받은 달걀의 달콤하고 축축한 속살을 황홀하게 삼킨다. 그녀는 그곳에서 사랑받는다. 돼지들은 작년 겨울에도 그녀를 기다렸다고 말한다. 그해 겨울에 너를 위해 지었던 이글루는 모두 녹아버렸어. 첫째 돼지가 서글프게 속삭인다.
그래. 김현경은 부드럽게 웃으며 대꾸한다. 행복으로 그녀의 가슴이 찢어질 것 같다. 김현경은 고통스러운 슬픔으로 온몸이 깨지는 것을 느낀다. 그녀는 행복하다. 창자와 뼈가 뒤섞이는 것처럼, 아래턱이 뜯어지는 것처럼, 그녀는 행복하다. 돼지들은 그녀의 생일파티에 가지 못한 것을 사과한다. 둘째 돼지가 애교 있는 백치처럼 콧소리를 내며 말한다.
우린 정말 가고 싶었어. 그렇지만 갈 수 없었어. 우리는 기다리는 동안 어디에도 갈 수가 없으니까.
김현경은 관대하게 용서한다. 왜냐하면 마침내, 그녀는 그들의 세계에 있으니까. 그들은 그녀를 기다려왔던 것이다. 그녀가 그들의 세계로 돌아오기를. 그녀가 그들을 바라보고 그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그들과 함께 잠들기를. 왜냐하면 그들은 그녀를 사랑하니까. 오직 그녀만을 사랑하니까. 그녀는 죽고 싶을 만큼 행복하다.
방문이 열린다. 저녁 먹으라니까. 김현경의 엄마가 약간 신경질적이고 낮은 목소리로 재촉했다. 김현경은 엄마의 하얗고 동그란 얼굴을 올려다보며, 엄마를 두고 갈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엄마를 사랑하니까. 엄마를 두고 갈 수는 없어. 오, 그렇지만 그녀의 엄마는 김현경을 사랑하므로 언제까지라도 김현경을 기다릴 것이었다. 돼지들이 늑대를 기다리듯이. 돼지들이 그녀를 기다리듯이. (돼지들이 기다리는 늑대는 김현경이니까!) 김현경은 김치찌개 국물을 밥그릇에 한 숟가락씩 부어서 먹으며 엄마에게 돼지들과 늑대의 관계에 대해 물으려 했다. 그러나 질문을 고민하는 동안 밥그릇은 비워졌고 척척한 김치찌개 국물밖에는 남지 않았다. 엄마는 김현경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어서 양치질을 하라고 말했다. 치약을 묻힌 칫솔을 입 속에 집어넣는 동안 김현경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는지 잊어버렸다. 그녀는 그날 꿈 속에서야 비로소 그 질문의 어렴풋한 뉘앙스를 기억해냈다.
첫째 돼지는 아양을 떨 듯 김현경의 허벅지에 머리를 비비며 말한다. 언제 우리를 먹을 거야?
김현경은 놀라서 되묻는다. 먹는다니?
셋째 돼지는 김현경의 눈에 비추어진 자기 자신의 어렴풋한 반영을 응시하듯이 김현경의 눈동자를 시선으로 핥으며, 발표하는 유치원생처럼 운율을 맞추어 말한다. 늑대는 돼지를 먹는 거야. 돼지는 늑대에게 먹히는 거야. 늑대는 돼지를 좋아하니까. 돼지는 늑대를 좋아하니까. 너는 늑대고 우리는 돼지니까 너는 우리를 먹는 거야. 우리는 너에게 먹히는 거야.
김현경은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 아니야. 나는 너희를 먹지 않아. 난 너희를 좋아하니까.
둘째 돼지는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너는 우리를 좋아하니까 우리를 먹는 거야.
김현경은 소리를 지른다. 아니야. 나는 너희를 좋아하니까 너희가 사라지는 걸 원하지 않아. 너희가 아픈 걸 원하지도 않고.
셋째 돼지가 새처럼 꽥꽥거리며 소리친다. 하지만 우리는 사라지기를 원해. 우리는 아프기를 원해.
김현경은 흐느끼기 시작한다. 아니야. 나는 원하지 않아.
첫째 돼지도 흐느낀다. 우리는 널 기다려왔는데, 대체 왜 그러는 거야? 우리가 뭔가 잘못했어? 이제 우리를 좋아하지 않게 된 거야? 처음부터 우리를 좋아하지 않았던 거야?
네가 우리를 잡아먹지 않으면, 셋째 돼지가 말을 잇는다. 우리는 너를 미워할 거야.
대체 왜?
그야, 셋째 돼지가 의기양양하게 웃는다. 네가 우리를 배신하니까.
난 너희를 배신하지 않아.
그래?
난 너희를 배신하지 않아. 너희를 좋아하니까. 너희가 나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너희를 계속 기다려왔으니까.
그럼 우리를 먹어.
맞아. 그럼 우리를 먹어.
우리를 먹어.
김현경은 비명을 지르며 동산의 내리막길을 따라 도망친다. 돼지들의 절규 소리. 끔찍하고 절망적인 울음소리가 들린다. 김현경은 창백한 작은 얼굴로 뒤를 돌아본다. 돼지들은 그녀를 쫓아오지 않았다. 동산 너머에서 길고 절망적인 신음만이 들려온다. 그것이 점점 멀어진다.
질료는 진정한 비존재이며, 물체 덩어리의 이미지고 환영이며, 현존에의 열망이다. (…) 질료는 비가시적이며 (…) 그것은 바라보아도 볼 수 없다. (…) 가장 부족하고 가장 과잉이다. (…) 질료는 불안정한 환영임에도 사라질 수 없다. – 플로티노스, 「비육체적인 것의 무감정에 관하여」.
OVER KILL
앨리스는 죽음을 임신한다. 가장 강력한 맹목이 그녀에게 속하는 순간, 그녀는 그녀 자신과 닮는다. 검은 잉크에 흡반을 꽂고 피를 빨아들인다. 수조 속에서 헤엄치는 인간과 짐승의 혼혈 아이들. 앨리스는 죽음을 임신한다. 태어나지 않는 죽음을. 열리지 않는 죽음을. 그녀는 수조에 눈을 가까이 가져다댄다. 투명한 눈동자가 물결의 무늬를 따라 일렁거린다. 그녀의 매끈한 표면에 되비치는 이미지들. 거울에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검은 불. 희생자의 가슴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담은 거울은 붉지만 붉지 않다. 젖지만 젖지 않는다. 그것은 피이지만 피가 아니다.
그것은 죽음이지만 죽음이 아니다. 음탕한 입술을 뻐끔거리면서 아이들이 헤엄친다. 그것들은 아가미와 작은 콧구멍 모두로 호흡한다. 그것들은 과잉의 음탕함으로 흘러넘친다. 여자는 병적인 열정으로 그것들을 지켜본다. 벌어진 아가미가 뻐끔댄다. 상처로 웃는다. 상처가 웃는다. 어렸다는 사실만이 저 아이들에게는 유일한 자랑이 될 거야. 여자는 웃으며 생각한다. 불구라는 사실만이, 특이하다는 사실만이, 두 개의 호흡기관으로 숨을 쉰다는 사실만이, 아주아주 흉측하다는 사실만이, 저 아이들에게는 자랑이 될 거야! 앨리스는 쭈그려 앉았던 무릎을 펴고 일어나 천장에서 내려뜨려진 줄을 잡아당긴다.
부랑자가 들어온다. 그의 뒤로 구부정하고 냄새 나는 늙은 남자들이 다닥다닥 붙어 들어온다. 앨리스는 그들을 향해 기쁘게 손을 흔든다. 그들은 누렇고 검고 텅 빈 이를 드러내보이며 히죽 웃거나 웃지 않는다. 여자는 수조 앞에 서서 그들 한 명 한 명에게 종이백을 나누어준다. 종이백을 받아든 남자가 싯누런 눈으로 여자를 바라본다. 여자는 그에게 눈짓한다. 남자는 두툼하고 지저분한 손으로 바지 지퍼를 내리고는 수조에 사정한다. 수조가 탁한 색으로 물든다. 수조 속 아이들이 뻐끔거린다. 다음 남자, 다음 남자, 다음 남자, 다음 남자. 성급한 남자는 종이백을 받아들기도 전에 바지를 내리고 있다. 수조 속에 침을 뱉고 오줌을 누는 남자도 있다. 몇몇 남자들은 정액과 물비린내, 오래도록 씻지 않은 육체에서 풍기는 악취가 진동하는 방의 한쪽 구석에 쭈그려 앉아 킬킬거리며 음담을 나눈다. 그들은 종이백에서 플라스틱 용기로 된 도시락을 꺼낸다. 용기 안쪽에 투명하게 비추어지는 것은 누르스름한 쌀밥과 용기 속에서 뭉그러져 밥에 눌러붙은 새빨간 꽃잎들이다. 반찬을 담는 작은 공간에는 깨진 달팽이 껍질과 그곳에서 새어나온 달팽이의 역겨운 진액이 있다. 여자는 웃는다. 웃는다. 병적인 집요함으로 웃는다. 폐쇄공포증을 가진 부랑자들은 종이백을 들고 황급히 바깥으로 나가려 한다. 수염이 하얗게 샌 노인이 여자에게 출구가 어디냐고 묻는다. 여자는 웃는다. 바보야. 출구는 어디에나 있어. 출구는 모든 곳에 있어. 모든 곳이 구멍이니까. 노인이 여자를 노려본다. 그러나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여자를 증오했던 이유마저도 잊어버리고 어리둥절하게 출구를 찾아 헤맨다. 불안스럽게 몸을 흔들며 걷는 탓에 도시락통에서 달팽이 진액이 새어나온다. 종이백이 눅눅하고 혐오스러운 얼룩으로 젖어든다. 언젠가 어렸다는 사실만이, 언젠가 젊었다는 사실만이 저들에게는 유일한 자랑일 거야. 여자는 생각한다. 그녀는 기분이 좋아진다. 그녀는 그들을 연민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는 그들을 질투한다. 언젠가 어렸다는 사실조차도 그녀의 자랑이 아니므로. 어린 시절에도 그녀는 아름답지 않았고 그녀가 갈망하는 것의 가장 작은 조각조차도 얻을 수 없었으므로. 그녀는 가장 부족한 것의 과잉이다. 그녀는 가장 부족하고 가장 과잉이다.
Act. 26.
몽상적인 아빠는 종종 굴욕감을 견디지 못하고 격분해서 울었다. 그는 A에게 이름을 붙여준 최초의 아담이었지만 그도 자신의 이름을 짓지는 못했다. (심지어 A도 그의 이름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그는 그저 아빠였다. 그뿐이었다.) 아빠는 실패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실패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는 시인이 되고 싶어 했다. 그것도 성공한 시인이, 1류는 아니더라도 2류는 되는 시인, 서점의 매대에 신작을 진열할 수 있는 시인. 중소 문예지에 인터뷰를 실을 수 있는 시인. 서른에서 쉰 명의 독자들을 갖는 시인. 열 명 내외의 팬을 갖는 시인.
그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아빠는 실패했다. 그는 고은에게 매일 그의 시와 짧은 인사말을 담은 메일을 보냈고 단 한 통의 답장도 받지 못했다. 그는 no-reply 주소로 되어 있는, AI가 작성한, 이름만 바꾼 시스템 메일과 그 자신이 백업을 위해 보낸 메일들만으로 가득찬 메일함을 매일 확인해 보면서 단말마의 고통을 내질렀다. 상처를 도려내는 아픔 속에서. 믿을 수 없게도, 그는 매일 그짓을 하면서도 메일함을 열기 전에 흥분 섞인 두려움을 느꼈다. 그는 눈을 감고 작은 목소리로 짧게 기도를 올렸고 진심으로 기적을 바랐다. 그는 멍한 눈으로 그가 기다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메일함을 뒤적거렸다. 희귀한 영광의 순간들마저도 그에게는 없었으므로 그는 추억에 안착하여 빌어먹게 길고 쓸쓸한 시간들을 때울 수도 없었다.
그는 카프카와 베른하르트의 문학적 스타일을 모방하려 노력했지만 아무도 그의 문체에서 그들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들을 정확하게 훔쳤다면 2류 작가는 얼마든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빠는 집요하게도 자기 자신의 정념을 그들의 문체 속에 뒤섞고 싶어 했고 그래서 완전히 자기 자신 같은 혼란스러운 무엇인가를 만들고 싶어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그 자신의 아류였다.
아빠는 자기 자신의 깊고 천박한 고통에 상응하는 어떠한 깊고 천박한 황홀이 도래할 것이라고 믿고 싶어 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수학을 좋아했다. 그의 시에도 기하학적인 도형과 수식들을 삽입할 정도였으니, 아마 모종의 기하학적 필연성을 믿었을 것이다. 비대칭마저도 합목적적인 수식의 체계처럼 그의 고통에도 원인과 결과가 있으리라고. 그러나 그에게 있어서는 고통 자체가 황홀이었음을, 그가 고통에 음탕할 정도로 중독되어 있었음을 그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시는 그에게 정신적 자해였다. 그는 시를 멈출 수 없었다. 그는 시를 멈추지 않았다. 그가 믿었던 대로 그에게 재능이 있었든 없었든 그러한 것은 중요치 않다. 결구 그가 바라는 것은 이미 있거나 없는 재능 같은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는 변화를 바랐다. 좆같은 침묵으로부터의 변화, 좆같은 공백과 공허로부터의 변화. 상상 속의 달콤한 복수가 실현되기를 바라는 소심한 학생처럼. 꿈을 닮은 연인이 다가오기를 기다리는 중학생 여자애처럼. 먼 곳, 터무니 없이 먼 곳이 늙은 남자의 태아적인 마비상태를 찢어내며 다가오기를 그는 고집스럽게 바랐고, 뻔뻔스럽게도 그는 거리낌없이 그것을 자기 시에 삽입했다(아무도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그는 간혹 침묵이 악의에 차 있는 것 같다고 느꼈다. 침묵에는 악의가 없음을 되뇌면서, 그는 아무런 악의도 갖지 않는 침묵만큼 악의적인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 쓸모없고 소모적인 복잡성들. 아빠는 자기 상처를 읽으면서 엉엉거리며 울었다. 그는 썩어가면서 동시에 태어나는, 점액질에 뒤덮인 개구리 알 같았다. 그는 태어나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낳을 수 없으면서. 비린내가 진동하는, 혐오스러운 태어남들. 집요한 희망에서는 퀴퀴하고 가슴 아픈 악취가 풍겼다.
Act. 24.
그녀가 그녀 자신 안에 머물 수 있을지, 어디에 머물 수 있을지, 무엇을 연기해야 할지에 대한 결정은 타인에 의해 이루어졌다. 반 아이들이 그녀에게 공주 역할을 맡겼고 그녀는 공주가 되었다. 과학 교사가 그녀에게 창녀 역할을 맡겼고 그녀는 창녀가 되었다. 여자아이들이 화장실에서 섹슈얼한 이야기를 하며 웃을 때 그녀는 아무것도 모르는 백치가 되어야 했다. A는 순진하고 바보 같은, 예쁜 여자아이의 배역을 맡고 있었으니까. 만약 그녀가 전혀 다른 것을 연기했다면, 예컨대 남자의 자지가 얼마나 연약한지에 대해 말하며 폭소를 터뜨렸다면 그녀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이들은 그녀를 듣지 않고 그녀를 믿지 않았을 것이다. 어디 아파? 너 마치 다른 애 같았어. 전혀 다른 애 말이야. 하고 아이들은 걱정스럽게 그녀의 머리칼을 쓰다듬었으리라. 그런 일탈이 지나치게 오래 반복되면 그녀는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을 정도로 투명해졌을 것이다.
A는 투명해지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아이들의 다정하고 집요한 손길과 시선을 좋아했다. 기념일마다 사물함과 책상에 가득 쌓이는 선물들도 좋아했다. 러브레터의 단정한 글씨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일도 좋아했다. 누군가가 그녀를 원하는 것이 그녀는 좋았다. 언젠가 그녀도 누군가를 원하게 되기를 바라면서, 그녀는 그들의 사랑을 질투 섞인 애정으로 즐겼다.
그녀는 언제나 그녀 자신의 출산과 생성을 다른 사람들에게 의존했따. 그녀는 그녀 자신을 능가할 수도, 범할 수도, 위반할 수도, 낳을 수도, 훔칠 수도, 중단할 수도, 심지어는 살해할 수도 없었다. 그녀는 예쁘고 착한 아이였다. 그녀를 마시고 싶어하는 모든 사람들, 그녀를 낳고 그녀를 만든 그 많은 사람들이 그녀에게 말해 주었다. 너는 너무 예뻐. 아름다워. 너는 착한 아이야. 너를 사랑해.
그리고 예쁘지 않게 되었을 때,
마침내, 그녀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에게 규정된 모든 것을 상실하면서, 그녀는 살아 있음과의 유사성마저도 잃어버렸다. 그녀는 아빠처럼 자폐적인 인물이 되어갔다. 심지어는 아빠가 하지 않는 비참한 짓까지 했다. 자기 자신의 과거와의 소모적이고 허망한 대화. 그녀는 과거의 애인들의 눈동자에 비추어진 그녀 자신의 아름다운 영상과 대화했다. 나는 너를 마시고 싶어. 너는 정말 아름다워. 나는 너를 원해. 나는 내가 아닌 모든 것을 원해. 나는 너를 사랑하기를 원해. 자기 자신을 향한, 영원히 미결된 왕복운동. 그녀는 그녀 자신을 한없이 닮은, 그러나 그녀가 아닌, 그래서 어디도 아닌 어딘가에 있으면서 영원한 실패, 이름의 불가능성, 위반, 범죄, 끝없고 불가능한 죽음들에 대해 생각했다. 마치 그녀의 유일한 열정이 존재인 것처럼 그녀는 존재하려 했다. 아름다운 여자아이일 때, 그녀는 분명히 아름다운 여자아이로 존재했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그녀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불안감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녀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존재한다고 해도 그것은 아주 미약하고 희미한 신호에 불과하리라. 먼지 속 들끓는 벌레알들이나 가로등 속에서 타들어가는 나방들처럼. 그녀는 과거의 자신과 존재에 대한 조악한 위조나 패러디 같았다. 그녀의 집요한 존속은 어린 시절 그토록 확실했던 그녀의 존재를 일그러뜨리고 어지럽게 만들었다. 예쁜 아이였던 과거의 확고한 존재를 살리기 위해, 그녀는 지금 그녀의 모호하고 희미한 존재를 은폐해야만 했다. 존재했음을 잃지 않기 위해, 그녀는 더욱 확실하게 부재해야 했다. 어른들의 은밀한 갈망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소리 높여 말하는 어린 아이들처럼 “있고 싶다”고 소리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아, 누구라도 그녀에게 다시 역할을 준다면. 못생긴 여자의 역할이라도. 거지의 역할이라도. 창녀의 역할이라도. 그녀는 기꺼이 할 텐데! 존재할 수만 있다면. 아무리 지루하고 역겨운 역할이라도 그녀는 기꺼이 할 것이다. 어린 시절처럼 지루해하면서. 기분 좋은 건 별로 기분 좋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그러면서도 그녀는 결코 도망치지 않을 것이다. 벽에 늘러붙은 핏자국의 히스테릭한 그림처럼 집요하게, 그녀는 그곳을 견딜 것이다.
자기 자신을 쓰는 경멸적이고 아름다운 언어가 될 때까지, 그녀 자신을 낳는 법을 배울 때까지, 그녀는.
무슨 생각 해?
남자아이의 따뜻한 손이 그녀의 볼에 와 닿았다.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를 대하는 투였다. 그녀가 그의 혀와 침을 삼킨 뒤부터 지호는 그녀를 자기 소유물처럼 어루만졌다. A는 끔찍한 백일몽에 대해 구태여 설명하지 않았다. A는 창백한 무표정으로 지호의 얼굴을 되비추었다. 지호는 그가 그녀를 사랑하는 동안, 그가 그녀를 원하는 동안, 그가 그녀를 떠나지 않는 동안 그녀가 그를 결코 떠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처럼 안절부절못했다. A는 너무 아름다웠으니까. A는 마치 깨끗하고 차가운 거울처럼 아름다웠다. 그녀는 어떤 자극적인 색이나 얼룩이라도 창백한 피부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것들은 그녀의 매끈한 살에 어떠한 흉터도 남기지 않았다. 그 때문에 그녀를 붙잡고 소유하고 싶어서 어찌할 줄 모르는 이들은 A의 머리채를 붙잡고 그녀의 살에 잇자국을 남기며 그녀를 사로잡고 싶어 했다. 맹목적인 열정으로, 그들은 A를 갈망하는 것을 숨기지 않았다. A는 그런 그들의 대담함에 경악하고는 했다. 그녀는 그녀의 영혼을 폭력적으로 절개하고 열어젖혀 난도질할 이미지들을, 거울을 부수는 날카로운 이미지들을 은밀하게 기다렸으나 결코 소리내어 말하지는 않았다. 아무도 그녀의 소원을 이해해줄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A가 그런 식으로 그녀의 갈망을 솔직하게 말하면 그녀를 인형처럼 예뻐하던 사람들은 말하는 개를 본 것처럼 끔찍하게 놀라 그녀를 떠날 것이다. 그녀는 매일 그녀가 꾸는 백일몽처럼 혼자가 될 것이다. (하지만 어느 쪽이 진짜 백일몽인지는 알 수 없다고, A는 음울하게 생각했다. 그녀는 습관적으로 절망하였으며 절망적인 쪽이 대부분 더 정확하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