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과 장미 11

(여기, 여자이고 중학생인 A가 있다. 그녀는 인스타 스타를 꿈꾼다. 그녀는 고화질로 촬영한 셀카들을 포토샵으로 편집하여 눈부시게 아름답게 바꾸어놓았다. 그녀가 사진들을 인스타 계정에 올린다.

그녀는 그녀의 본래 얼굴을 알아차린 누군가가 그녀에게 욕설을 퍼붓기를 황홀함에 가까운 긴장 속에서 기다린다. 고발당하기를, 폭로당하기를, 어둠 속에서 벌겋게 만개해서 진물을 질질 흘리는 비밀들을 모조리 들켜버리기를 기다린다.

그러나 아무도 그녀의 인스타를 팔로우하지 않았다.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은 그녀에게만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누군가 그녀의 미래의 시체 속에 가득 차 있는 거품들을 한 글자 한 글자 읽어 준다면, 그것들을 유튜브에 올려서 돈을 번다면 그녀는 그들을 천국에서 축복해줄 것이다.

작가님 죄송하지만 A는 저희 출판사에서 책으로 만들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저희는 A에 관심이 없고 작가님에게는 더욱 관심이 없습니다. B가 죽었는지 죽지 않았는지에도 관심이 없습니다. 계속해서 메일을 보낼 필요가 없다고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저희는 이미 오래전에 작가님의 메일 주소를 스팸 등록했습니다. 저희는 저희가 원하지 않는 원고는 받지 않습니다.

작가님이 저희 출판사에서 책을 출판하고자 하는 심정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러나 저희는 읽히지 않을 책은 만들지 않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그녀는 창녀다. 그리고 처녀다. 그녀의 몸을 산 고객이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누군가의 엄마나 누군가의 딸을 연기할 필요가 없었다. 앨리스, 앨리스, 앨리스, 앨리스. 이해해주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아. 앨리스, 아주 보잘 것 없는 하나의 인생이 어떻게 시작되고 어떻게 끝나는지 너는 완전히 목격하지 못했지.

생물이 살아 있는 것 이외에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너는 알지 못해. 생존할 가치를 가진 생명 같은 것은 어디에도 없어. 모든 것은 그저 살아 있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야. 피부를 훑어내리며 하수구로 빨려들어가는 빗물을 붙잡을 수 없어. 그건 네게 속해 있지 않으니까.

그건 네게 속해 있지 않으니까.

네가 B의 죽음에 속해 있지 않은 것처럼.

앨리스는 생각했다. 앨리스는 생각하고 생각하고 생각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밖에 없었으므로. 강간당한 아빠는 아무것도 낳지 못했고-그에게는 자궁이 없었으니까- 강간당하지 않은 딸은 엄마의 아이를 낳지 못했다. 그러나 누군가는 누군가를 낳았다. 그렇지 않은가? 누가 누구를 낳았는지 반드시 밝혀야만 하나?

그녀는 되고 싶어 되고 싶어 무언가가 되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누군가는 엄마가 된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살인자가 된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희생자가 된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수난자가 된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시체가 된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여배우가 된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쥐새끼가 된 것이다.

(그런데 누가 희생자와 시체와 쥐새끼가 되고 싶단 말인가

그녀 그녀 그녀 그녀 그녀가 그녀가 무엇이라도 되고 싶은 그녀가 되고 싶어서 죽을 것 같은 그녀가. 제발 나한테 배역을 주세요. 감독님. 뭐든지 할게요. 뭐든지. 감독님 자지를 빨까요. 필요 없다고요. 그러면 목을 졸라 드릴까요. 필요 없다고요. 감독님 그런데 전 뭐든지 할 수 있는데요. 필요 없다고요.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요. 전 살아 있는데요. 심장과 슬픔과 절망과 창자와 허파와 눈알을 가지고 있는데요. 뭐든지 뭐든지 드릴 수 있는데요. 심장으로 샌드위치를 만들어 드릴 수도 있는데. 필요 없다고요. 왜 필요 없어요? 왜요. 감독님 나는 연기를 하고 싶어요. 왜 아무도 안 들어줘? 내가 말하고 있는데 말하고 있는데 왜 아무도 못 듣지. 왜 나는 들을 수 있지. 왜 나만 나를 들을 수 있지. 나는 내가 너무 잘 들려요. 너무 잘 들리는데 왜 너무 잘 들리는 거지. 들려요 들려요 들려요 들려요 존나 잘 들려. 자기 자신의 증인이 될 수는 없나요. 제발 나한테도 뭘 좀 써 줘요. 아니요. 감독님 사실 저는 제 대본을 써 왔답니다! 읽을 수 있게만 해 줘요. 아니요. 찍어 달라고요. 그냥 찍어만 주면 돼요. 정말이에요. 저는 평생 제 대본을 쓰고 있었다니까요. 친구랑 홍대에 가거나 공시 준비를 하거나 라이브 콘서트를 보러 가거나 남자친구랑 호텔에 가서 그 애 자지를 내 보지에 집어넣거나 골목에 깡통처럼 굴러다니는 부랑자들의 부러진 다리를 걷어차거나 편의점에서 딸기맛 풍선껌을 훔치거나 무리에서 쫓겨난 여자아이의 가방 속에 헨타이 만화를 집어넣거나 도축당한 돼지들의 제사를 지내는 대신, 내 책상 앞에 앉아서 대본을 썼다고요. 존나 많이 썼어요, 감독님! 미치게 많이 썼어요. 죽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많이 썼어요. 전부 연기하려면 오백 년은 살아야 할걸요. 아 씨발. 오백 년이요. 감독님! 그런데 지금도 계속 쓰고 있어요. 아직 한 장 분량도 연기하지 못했는데 지금도 계속 쓰고 있다고요. 쓰는 걸 멈출 수가 없어요, 감독님. 불판 위에서 춤을 추고 있는 암탉과 매일 달걀을 낳는 인간 여자와 도축장으로 기어들어가는 아이들을 배웅하는 돼지와 늑대에게서 살아남기 위해 자기 여동생을 팔아먹는 남자아이, 죽은 남편과 대화하는 여자의 이야기를 썼는데, 사실 그것보다 더 많이 썼는데요. 너무 많아요, 너무 많이 썼어요. 그래요. 그걸 전부 태워버린다면 연기할 게 없겠죠. 맞아요. 그런데 그럴 수가 없어요. 연기하고 싶으니까요. 연기하고 싶다고요. 연기하고 싶어요. 연기하고 싶어서 이렇게나 많이 썼는데. 감독님. 살고 싶어서 썼어요. 있고 싶어서 썼다고요. 있고 싶어서.

B는 좋은 애였다.

조금 더 오래 살았다면, B는 친구를 더 사귈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그 애는 다정하고 사람을 좋아하는 애였으니까. 시선을 모으는 아이이기도 했으니까.

Act. 18.

꽃은 아름답다. 벌어져서 혼자 썩어가는 꽃은 아름답다.

길거리를 지나가는 남자들을 붙잡고 사랑한다고 해야 할까.

물론 그것은 거짓이 아니다. 앨리스는 정말로 남자들을 사랑했다. 앨리스는 정말로 여자들을 사랑했다. 앨리스는 정말로 살아 있는 사람들을 사랑했다. 앨리스는 정말로 사람들을 사랑했다.

기꺼이 그들의 입 속에 혀를 넣고 그들의 여린입천장을 문지를 수 있을 정도로. 기꺼이 그들의 성기를 목구멍 깊은 곳에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그녀는 사람들을 정말 좋아하니까! 그녀는 사람들을 정말 원하니까.

아침에 일어나서 그녀는 혼자다 늦은 아침을 먹으면서 그녀는 혼자다 유튜브 동영상을 보면서 그녀는 혼자다 일본 노래를 따라부르면서 그녀는 혼자다 테이블에 앉아 아무에게도 읽히지 않을 글을 쓰면서 그녀는 혼자다 암컷 모기처럼 커피를 빨아마시면서 그녀는 혼자다 오늘이 되지 않는 미래 대신 과거만을 회상하면서 그녀는 혼자다 그 애 대신 트럭에 깔아뭉개졌다면 가게 되었을 곳을 생각하면서 그녀는 혼자다 그녀가 아닌 것을 생각하면서 그녀는 혼자다 감독의 무표정한 얼굴을 생각하면서 그녀는 혼자다 인터넷으로 친구를 사귀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면서 그녀는 혼자다 노트북 화면에 비추어지는 자기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그녀는 혼자다 마치지 못한 연기를 시작하지 못한 연기를 생각하면서 그녀는 혼자다

감독의 집에는 이제 찾아가지 않는다. 그가 그녀를 속인 적이 없음을, 아무도 그녀를 속이려 한 적이 없음을 그녀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Act. 19.

아들이 어머니의 엉덩이에 발기한 앞섶을 문지른다. 식당 단골 손님과 여자의 눈이 마주친다. 손님은 당황을 이기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가게 문 밖으로 나가버린다. 여자는 국밥이 올려져 있는 식판을 든 채로 손님이 앉아 있던 빈자리를 멍하니 바라본다.

그녀는 그저 아들이 너무 가여웠다. 그 애는 착했지만 평범하지는 않았다. 아들은 추상적인 관념과 언어를 이해하지 못했다. 제대로 학교를 다니지도 못했고 슬픔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그래도 슬픔을 느끼기는 했다) 어린시절에는 친구들과 놀다가 흥분을 견디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곤 했고 그래서 더 이상 친구들을 사귈 수 없었다.

아들은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종종 바지에 변을 지렸는데 그걸 씻어주는 일은 모두 여자의 몫이었다.

짓무른 대변에서는 역겹고 달콤한 냄새가 났다.

그녀는 그저 아들이 너무 가여웠다. 발기한 성기를 미친 듯이 긁어대며 아이처럼 울부짖는 아들이 여자는 너무 가여웠다. 토하는 아이의 등을 어루만지듯 그 애의 성기를 만져 주면서 여자는 엉엉 울었다. 그 애가 너무 가여웠다.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로 가여워서 여자는 울었다. 그녀는 식당과 연결되어 있는 이 비좁고 더러운 집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었다. 그녀는 미칠 듯이 나가고 싶었지만, 여기서 나가면 어디로? 어디로 간단 말인가. 그녀에게는 갈 곳이 없었다. 그녀는 그녀 자신의 손등을 아프도록 쥐어뜯으면서 울었다. 아들은 유행가를 어설프게 흥얼거리며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들이 너무 가여워서, 여자는 아들의 애인을 찾아주기 위해 아들에게 멀끔한 정장을 입히고 동네 곳곳의 카페들을 돌아다녔다.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가져다주는 어린 여자들의 손을 늙은 여자는 간절하게 붙잡고 애원했다. 제발 그녀의 아들을 만나 달라고. 그녀가 무엇이든 해줄 수 있다고. 아들을 만나만 주면 뭐든지 해줄 수 있다고. 그녀는 아들을 사랑으로 키웠고 아들은 사랑스럽고 착한 아이라고. 아들은 멀쩡한 아이고, 다만 모르는 것들이 남들보다 조금 많을 뿐 그래도 아주 멀쩡한 아이고 건강한 아이라고. 아들을 만나만 준다면 무엇이든 줄 수 있다고. 아들을 만나 주면 아가씨는 천국에 갈 거라고. 여자는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거친 목소리로 애걸했다.

욕실에서 아들은 발기한 성기를 박박 긁으며 울고 있었다. 아들은 죽고 싶다고 했다. 아들은 엄마 때문이라고 했다. 아들은 전부 엄마 때문이라고 엄마가 잘못한 거라고 했다. 아들은 아프다고 소리쳤다. 아파 아파 아파 아파 아파.

그렇지만 그것은 여자의 잘못이 아니었다.

그녀는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작고 연약한 아이였다면 때리고 부숴버렸을 것이다. 망가진 것을 끌어안으면서 사랑해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 컸다. 너무 크고 끔찍했다. 그것은 그녀가 감당할 수 없이 많은 변을 누었고 너무 많이 울었고 너무 아프게 화를 냈다. 그것이 여자의 질에 자기 성기를 집어넣을 때도 그녀는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그것을 죽여버리고 싶었으나 그것이 너무 가여웠다.

섹스라는 말을 배운 뒤부터 아들은 섹스라는 말을 발작적으로 했다. 욕을 하듯이 했다. 식당에서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했다. (그러나 그게 섹스인가 그건 섹스가 아니었다) 여자는 그것이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로 가여웠다.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로 죽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가여웠다. 그것은 그것의 잘못이 아니었다. 그것은 여자의 잘못도 아니었다. 그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그런데 왜 여자만이 이토록 미치게 가여워야하는가 이토록 아프게 가여워야하는가 이토록 죽어버리게 가여워야하는가.

섹스할래 엄마. 밥부터 먹어 아가. 섹스할래 엄마. 엄마 일 좀 하고. 좀만 더 기다려. 섹스할래 엄마. 이제 안 한다고 했잖아. 섹스할래 엄마. 섹스할래 섹스할래

그녀의 잘못이 아니었다.

그녀의 잘못이 아니었다. 밤이면 아이는 여자가 누워 있는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왔고 여자는 어렸을 적 아이에게 해주었던 그대로 아이를 끌어안고 아이가 그녀의 가슴을 잡아뜯도록 내버려둘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이는 바닥에 머리를 짓찧으며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 비명을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눈을 감고 깊은 슬픔을 견디었다.

단골손님이 식당 문 밖으로 나갔을 때, 여자는 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거뭇하게 자란 수염과 구부정한 어깨, 그것은 여자보다도 컸고

그건 여자의 잘못이 아니었다.

그건 여자의 잘못이 아니었다.

그건 여자의 잘못이 아니었다.

그건 여자의 잘못이 아니었다.

Act. 17.

DELUSION LEVEL 10.0

앨리스, 돌아오지 않을 공간을 수만 번 수십만 번 시뮬레이션 하는 앨리스. 가여운 앨리스. 이제 그리 어리지도 않은 앨리스. 앨리스. 그녀가 거울을 바라보면서 연기한다.

모두 감사드립니다. 아, 사실 감사하지 않습니다. 웃으시는군요. 저는 진심입니다. 감사할 일은 없습니다. 저는 오래 견뎠고 마침내 당신들이 왔을 뿐이죠. 저는 오래 기다렸습니다. 정말 오래 기다렸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건 오직 간혹 기다리는 걸 잊어버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살아있는 건 오직 종종 제가 살아 있다는 걸 잊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있는 건 오직 간혹 제가 있지 않다는 걸 잊었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하지 않습니다.

연기는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어느 날 비둘기가 어린 제 어깨를 스치고 지나가는 걸 느꼈고 그 순간부터 모든 것이 어색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많이 울었습니다. 가래침 범벅에 담배꽁초가 굴러다니는 더러운 시장 골목에 주저앉은 채로 엉엉 울었습니다. 아무도 저를 위로해주지 않았으므로 해가 질 때까지 울 수 있었습니다. 울다가 집으로 갔는데 아무도 제가 학교에 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더군요. 심지어 학교에서도 제가 학교에 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선생님은 정말로 몰랐습니다. 반 아이들은 말할 것도 없었고요. 그래서 저는 누군가 제게 왜 학교에 가지 않았느냐고 물었을 때 비둘기에 대해 대답하기 위하여 준비해 놓은 수만 마디의 말들을 잃어버렸습니다. 밤새도록 비둘기에 대해 어떻게 말해야할지 고민하면서 웅얼거렸는데 말이죠. 그때 토하지 못하고 삼켰던 언어가 목구멍 안쪽에 걸려 있었습니다.

그런 언어들이 하나 둘 불어났고 그래서 저는 말해야만 했습니다.

끝.

이것을 먹고 싶다. 이것을 뱉고 싶다.

이것을 뱉고 싶다. 이것을 먹고 싶다.

이것을 먹고 싶다. 이것을 뱉고 싶다.

이것을 먹고 싶다. 이것을 먹고 싶다.

이것을 먹고 싶다. 이것을 먹고 싶다.

Act. a.

어딘가에 아이가 있다.

아이가 있다. 아이가 있다. 어딘가에.

아이가 회전문 안으로 들어간다. 아이가 긴 복도를 따라 걷는다. 아이가 소녀를 발견한다. 샹들리에 아래로 내려뜨려진 긴 줄에 매달려 있는 소녀.

소녀 : 안녕.

아이 : 안녕.

아이가 소녀에게 묻는다. 왜 거기에 있는 거야.

소녀 : 매달려 있어야 하니까.

아이 : (입을 뻐끔거린다. 무언가 말하려 한다.)

소녀 : 뭐라고

아이 : (입을 뻐끔거리며 꺽꺽하는 소리를 낸다.) (긴 사이) 모르겠어.

소녀 : 네 엄마가 어디 있냐고?

아이 : 엄마?

소녀 : 응.

아이 : 뭐?

소녀 : 어?

아이 : 배가 고파

소녀 : 난 안 고파

아이 : 엄마가 보고 싶어

소녀 : 난 안 보고 싶어

아이 : 그래

소녀 : 나 널 본 적이 있어.

아이 :

소녀 : 넌 샴이야. 그렇지?

아이 :

소녀 : 샴. (미소지으며) 네가 죽지 않은 걸 알고 있었어.

아이 : 내가 안 죽었다고?

소녀 : 그래.

아이 : 그걸 어떻게 알아?

소녀 : (긴 사이) 아직은 모르지. 그래도 알 방법이 없는 건 아니야.

아이 : 배가 고파. 엄마가 보고 싶어.

소녀 : 여기 매달려 봐! (한 팔을 뻗어 줄 밑부분을 가리키며)

아이 : 배가 고파 엄마가 보고 싶어

아이가 줄에 매달릴 수 있도록 소녀가 한 팔로 돕는다. 아이가 낑낑거리며 줄에 매달린다.

아이 : 기분이 너무 좋아서 죽고 싶어.

소녀 : 한낮에 우울한 건 아주 평범한 거야.

아이 : 잘 모르겠어.

소녀 : 나도 잘 모르겠지만 몇 가지는 확실히 알아.

아이는 소녀에게 묻지 않는다.

소녀 : 나는 매달린 채로 죽을 거야. 나는 죽기 직전에도 죽은 직후에도 매달려 있을 거야. 너도 알고 싶어?

아이는 소녀에게 묻지 않는다.

소녀 : 네가 죽을 때 너는 익숙한 사물들에 둘러싸여 있을 거야. 너는 익숙한 사물들 사이에서 죽을 거야.

아이 : 내가 죽을 때 엄마가 옆에 있을 거야.

소녀 : 그건 나도 몰라

아이 : 내가 죽을 때 세상도 같이 끝났으면 좋겠어.

소녀 : 너 잘 버티는구나.

아이 : 그래. (사이) 이게 무슨 의미가 있지

소녀 : 내려가고 싶으면 내려가. 난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 없으니까.

아이가 줄에서 뛰어내린다. 소녀가 슬픈 얼굴로 아이를 내려다본다.

소녀 : 씨발 정말 쉽네. 근데 나는 못 하겠어.

아이가 소녀를 올려다본다. 눈이 마주친다.

아이 : 아저씨도 그랬어. 나한테 보고 있으라고 했는데 난 도망갔거든. 근데 아저씨는 내려올 수가 없었어. 나무에 매달려서 얼굴이 이상하게 변해서 나를 노려보고만 있었어. 난 도망쳤어. 아저씨는 영원히 따라올 수 없었어.

소녀 : 가지 마.

아이 : 너도 똑같이 말하는구나.

소녀 : 가지 마.

아이 : 너도 똑같구나.

소녀 : 네 엄마가 되어줄게. 너를 낳아줄게. 그러니까 가지 마.

아이 : 엄마가 보고 싶어.

소녀 : 나도 네가 보고 싶어.

아이 : 엄마가 보고 싶어 엄마 엄마

소녀 : 가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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