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과 장미 10

Act. 16.

앨리스는 악몽을 유달리 좋아했다. 악몽에는 그녀만을 위해 준비된 카메라들과 그녀를 위해 안배된 배역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목을 서서히 조여오는 서늘한 질식감이 그녀를 집요하게 추적했고 귀신의 응시들이 그녀와 동반했다.

독이 든 사과와 함께 주어지는 죽음은 부드럽고 절박하고 달콤했다. 악몽 이후에도 악몽처럼 존재할 수 있다면 그녀는 황홀로 멎어버렸으리라. 악몽 속에는 그녀를 원하고 그녀를 죽이고 싶어하는 하얀 손들이 있었다. 그곳에서 그녀는 그 손과 시선들이 그녀 자신의 것임을 알지 못했고 그래서 행복했다.

행복했다. 처음으로 불행을 발견한 아이처럼 그녀는 행복했다.

악몽에서처럼 누군가가 그녀를 집요하게 추적한다면, 무엇인가 그녀를 집요하게 원한다면, 그녀는 그녀 스스로가 죽을 만한 존재임을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가장 완벽한 사각 프레임을 찾아 화려한 자살신(scene)을 연출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악몽이 아니었고 그녀는 자살하지 않았다.

태어난 모든 것이 존재할 수는 없다. 자살이 존재한다고 믿기에 그녀는 너무 절망적이었다. 그녀는 아주 조용한, 거의 존재하지 않는 노래였다.

무엇인가 되겠다는 생각, 아무것도 아닌 것 이외의 것이 되겠다는 생각을 하기에 그녀는 너무 영리했다.

앨리스는 언니의 품에서 깨어났다. (물론 악몽 속으로.) (꿈 속에서 대개 그러하듯) 앨리스는 언니의 상상적인 존재를 구성하는 내력들을 한눈에 기억해냈다. 유리로 만들어진 높은 탑 꼭대기에 앉은 채로 (그녀에게는 다리가 없었다) 언니는 왕자들이 자신을 구하러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언니는 왕자와 보낼 하룻밤들을 전부 수집하고 싶어 했다. 첫날밤이 지나면 왕자를 박제해 놓을 것이라고 언니는 비밀스럽게 속삭였다.

– 첫날 밤이 지나면 다음 날 밤이 오고 그 다음 날 밤들도 올 거야. 그 밤들을 전부 보관할 거야. 그의 입 속에 손을 집어넣어서 내가 아닌 것들을 삼켰던 내장을 전부 빼낼 거야. 그리고 우리가 사랑을 나누었던 침대 시트로 그의 속을 가득 채울 거야.

정액과 질액으로 흥건해질 침대 시트를 가득 삼킨 왕자들을 일렬로 세워둘 거대한 장식장도 있었다. 앨리스와 언니는 마주앉아 카드놀이를 하고 더 이상 기억나지 않는 언어로 잡담을 나누면서 왕자를 기다렸다. 앨리스는 왕자가 오는 순간 이 꿈이 깨져버릴 것임을 직감했다. 오직 왕자가 오지 않는 동안만 그들은 함께 놀 수 있었다. 그가 굵은 털들로 뒤덮인 여자의 음문과 겨드랑이를 발견하기 전까지만.

그녀들은 아이의 놀이를 했다. 어른들의 행위를 서툴고 오만하게 따라하는, 그리하여 아무것도 생산해내지 않는 아이들의 놀이를. 놀이의 흔적들은 어디에도 각인되지 않고 순식간에 흩어져버린다. 유희가 어설프게 지칭하는 대상들과의 어떠한 포옹도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녀들은 놀이의 언어와 제스처를 통해 현상의 굵은 핏줄들을, 유리로 만들어진 탑 바깥의 내장을 허무맹랑하게 상상하고 아무것도 움켜쥘 수 없는 손으로 그 위를 부드럽게 더듬는다.

앨리스는 언니의 자그마한 자궁을 덮고 있는 잠옷 원피스의 얇고 부드러운 흰 천 위에 한 손을 얹었다. 조심스럽게. 아이가 케이크를 짓눌러 뭉그러뜨리기 직전, 가녀린 병아리를 돌이킬 수 없이 훼손하기 전에 그러하듯 아주 조심스럽게. 천 아래에 시퍼런 정맥이 그녀의 연약한 피부 위로 불거져나온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너무 가벼워서 만질 때마다 베이는 놀이다.

Act. 17.

존재는 그것의 불가능성만큼이나 오랜 유전이다.

앨리스는 학교에서 가장 못생긴 아이였다. 그녀는 매일 다른 아이들의 얼굴을 유심히 살피며 그것을 확인했다. 그녀가 제일 못생겼기 때문에 그녀는 홀로였고 그녀가 제일 못생겼기 때문에 그녀의 홀로임은 정당화되었다. B가 오기 전까지는 그랬다.

B는 지나치게 작았다. 눈도 코도 턱도 이마도 입도 목도 어깨도 손도 발도 지나칠 정도로 작았다. 괴기스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B는 전학을 오던 순간부터 완벽하게 혼자가 되었고 그 홀로는 당당하였다. B가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못생겼기 때문이었다.

앨리스는 더 이상 가장 못생긴 아이가 아니었다.

앨리스는 더 이상 가장 못생긴 아이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혼자였다. 이제 그녀의 고독은 완벽하게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이었다.

B는 특출날 정도로 못생겼기에 모두의 관심을 받았다. 아이들은 B의 친구가 되기를 원하지는 않았지만 흥미로운 생물을 관찰하듯 B의 불행을 집요하게 응시하였다. B는 태연하였다. 그의 끔찍하게 작은 눈은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쉬는 시간에는 B를 구경하기 위해 창문 밖으로 다른 반 아이들이 빼곡이 몰려들었다. B의 얼굴을 우스꽝스럽게 그린 낙서들이 교실 곳곳을 오갔다. 누구나 B를 조롱할 수 있었다. 누구나 B를 미워할 수 있었다. 누구나 B를 사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B를 질투하는 것은 오직 앨리스뿐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B를 살해하는 꿈을 꿀 정도로 B를 질투하였다. 그녀의 질투를 받는 B가 견딜 수 없이 부러워서 그녀는 다시 B를 질투하였다. 질투하는 것을 그만둘 수 없었다. 미워하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B가 아무것도 받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그녀는 계속해서 그에게 어떤 집요한 감정을 투사하였다.

아, 그녀가 스스로를 질투하거나 사랑하거나 미워할 수 있다면, 모두가 스스로에게 그러한 슬픔을 투자할 수 있다면,

모든 빛을 반사시키는 투명한 허공 같은 것은 없었을 것이다.

앨리스는 투명했다. 더는 투명해질 수 없을 정도로 모든 시선과 감정과 에너지를 B에게 쏟았다. B의 흉측함으로부터 눈을 돌릴 수 없었다.

그녀는 가장 절망적인 방식으로 B를 사랑하고 있었다.

조금만 더 못생겨진다면 B처럼 조롱받을 수 있을지도 몰라. 조금만 더 못생겨진다면 B처럼 사랑받고 B처럼 동정받고 B처럼 미움받을 수 있을지도 몰라. 그녀는 생각했다. 꿈 속에서 앨리스는 하얀 빵칼로 그녀의 연약한 미소를 깊게 베어냈다. 하얀 반죽이 벌어진 살에서 꾸역꾸역 흘러나왔다. 그녀는 거울에 비친 불구가 죽고 싶을 정도로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꿈 바깥에서는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스스로를 해칠 수 있을 정도로 스스로를 미워하지 않았으므로.

그녀는 스스로를 해칠 수 있을 정도로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으므로.

결국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B를 모욕하고 B를 저주하고 B를 사랑하는 일뿐이었다. 모든 아이들이 그렇듯 B를 더욱 절망하게 만들고 B를 더욱 불행하게 만드는 일뿐이었다. B는 모욕과 증오를 받고 더욱 짙고 깊은 흉측함으로 베일 것이다. 그것은 못 견디게 아름다울 것이다. B는 고요한 환희를 닮은 비극 속에서 살 것이다. 시선을 끄는, 용서받을 수 없는 아름다움 속에서(너무나 흉측한 것은 너무나 아름다우니까). 그녀는 B의 불행에 그녀의 모든 떨림을, 슬픔을, 응시를 바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녀가 그토록 원했던 그 응시를! 그녀가 그토록 원했던 저주와 그녀가 그토록 원했던 질투와 그녀가 그토록 원했던 불온한 열기를.

쟤는 언젠가 강간도 당하겠지. 쟤를 너무 미워하는 누군가 쟤를 강간할 거야. 그게 아마 나일지도 모르지. 쟤는 결국 살해당할 거야. 자살이든 타살이든, 저 애 자신이 쟤를 죽이든 다른 누군가 쟤를 죽이든, 쟤는 피를 흘리면서 화려하게 죽겠지. 저 애 피는 붉겠지. 저 애 피는 SNS에 퍼지겠지. 쟤가 죽으면 모두가 쟤를 기억할 거야. 쟤를 불쌍해할 거야. 쟤를 미워할 거야. 쟤를 사랑할 거야.

쟤가 유튜브를 시작하면 구독자가 수천 명은 될 거야. 쟤 얼굴만 찍어서 올려도 모두가 쟤를 보고 비웃고 싶어하겠지. 저렇게 못생긴 얼굴을 누가 원하지 않을 수 있겠어. 쟤를 미워하거나 모욕하거나 비웃거나 사랑하는 사람들이 어디에나 있을 거야. 여기에 있는 것처럼 다른 모든 곳에도 있을 거야. 쟤는 누군가의 시선 속에서 죽을 거고 누군가의 시선 속에서 불행할 거고 누군가의 시선 속에서 위로받을지도 모르지. 저 애의 일거수일투족이 관심받을 거야. 지금도 선생님은 쟤 눈치만 살피잖아. 씨발, 너 섹스 해본 적 없지? 하고 물으면서 여자애들 수십 명이 쟤랑 해보고 싶어 할 거야. 쟤를 모욕하고 쟤를 죽이고 쟤로 더럽혀지고 쟤로 구원받고 싶어 할 거야. 내가 그런 것처럼. 쟤를 망쳐버리고 싶어. 쟤가 이렇게 화려하게 불행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쟤가 두루뭉술해지고 행복해지고 흐릿해져서 거의 없는 것처럼 사라지는 걸 보고 싶어. 그런데 한 번 존재하기 시작한 인간을 한 번도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지워버릴 수는 없단 말이야. 쟤가 미워. 어쩌면 쟤는 친구도 사귀게 될지 몰라. 씨발, 적어도 쟤한테 친구가 없다는 건 전교생이 알고 있어. 나한테 친구가 없다는 건 아무도 모르지. 아무도 나를 미워하지 않고 아무도 나를 연민하지 않고 아무도 나를 비웃지 않으니까. 아무도 나를 죽이러 오지 않을 거야. 아무도 나를 조롱하러 오지 않을 거야. 아무도 내 얼굴을 그리지는 않아. 쟤가 오기 전엔 내가 여기서 제일 못생긴 애였는데 아무도 그걸 알려고 하지 않았어. 오직 나만 알고 있었어.

앨리스는 미움받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있었다. 사랑받고 그 뒤에 배신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랑받지 못한다면 어떻게 배신할 수 있겠는가? 그녀는 아무도 배신할 수 없었다. 그녀 자신조차도 배신할 수 없었다.

원하고 포기하고 원하고 포기하고 원하고 포기하고 원하고 포기하고 죽을 때까지.

씨발, 쟤는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씨발 쟤는 그냥 못생겼을 뿐인데. 씨발 쟤들은 그냥 태어났을 뿐인데. 나는 혼자도 함께도 아니야. 내 혼자는 완벽하지 않고 내 함께는 존재하지 않아.

헨타이 만화 속에서 왜소한 체격에 자지가 자기 무릎뼈까지 내려오는 소년이 울면서 소녀의 음부를 찌른다. 소녀의 두 눈이 하얀 하트 모양으로 변한다. 소녀가 비명을 지르면서 깔깔거린다. 소년은 죽고 싶어 하는 얼굴이다. 앨리스는 의자에 음부를 마찰시키면서 스크롤을 내린다. 소년이 지쳐서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자 소녀가 소년을 침대 밑으로 떨어뜨린다. 보지에 연결된 자지의 클로즈업. 부풀어오르며 찔꺽대는 거품. 소녀가 소년의 머리를 씹어먹는다. 소년이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소녀가 소년의 어깨를 씹어먹는다. 소년이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소녀가 소년의 발까지 집어삼키고 이제 보지에 연결된 거대한 자지만 남는다. 앨리스는 과장되게 솟아오른 자지의 혈관을 바라보며 책상 앞에 엎드린다. 약간 흐느낀다.

헨타이의 세계에서 그녀는 철저한 관음증자다. 헨타이 바깥에서도 그렇듯. 아니다. 헨타이 바깥이 뭔가? 헨타이 바깥이 어디 있는가? 그녀는 헨타이다. 헨타이가 되지 못하는 헨타이 지망생이다. 앨리스는 생각했다. 그녀는 오직 상상하거나 먹는 것을 통해서만 세계와 관계 맺을 수 있다고. 그러나 그녀는 먹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고 상상은 아무것도 변화시킬 수 없었다.

타인과의 접촉 이외에 그녀가 무엇을 원했겠는가. 빌어먹게 깊은.

교실에서 남자아이들이 자위 이야기를 하는 걸 훔쳐 들었다. 그들은 앨리스가 듣는 것을 개의치 않고 말했다.

– 넌 몇 번이나 하냐

– 하루에 한 번

– 매일 한다고

– 난 하루에 두 번씩 하는데

너도 하냐고 머리칼이 유달리 검은 남자아이가 그들 근처에 있던 여자아이에게 묻는다. 여자아이는 질색을 하며 아니라고 말한다. 여자는 그런 거 안 해. 여자가 그걸 어떻게 해? 어느새 여자아이의 주위로 몰려든 친구들과 함께 여자아이가 키득거리며 말한다.

– 그런데 B도 할까?

아이들이 폭소한다. 남자아이 하나가 당연히 할 거라고, B도 남자니까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 그만해. B가 불쌍하잖아.

여자아이가 말한다.(앨리스는 그들의 이름을 알지 못한다.) 키득거림이 점차 수그러든다.

수업이 시작된다.

앨리스는 수업시간에 뺏기기를 바라며 여성 자위에 대한 시를 교과서 한쪽에 끄적거린다. 그러나 아무도 그녀에게 관심이 없다. 선생님은 그녀의 교과서를 빼앗아 과장된 엄숙함으로 읽어내리지 않는다. 아이들이 그녀를 조롱하지도 않는다. 만약 그녀가 충분히 용감했다면 수업 도중에 자리에서 일어나 그 시를 읽었을 것이다. 그녀는 읽지 않았고 누군가 그녀를 훔쳐내어 호명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그녀는 기다렸다.

다만 희망하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면서 그녀는 기다리고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이 교실 밖으로 나간다. 앨리스는 B의 유달리 평평한 옆얼굴을 훔쳐본다. 저렇게 작은 머리로도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저렇게 작은 머리로도 아플 수 있을까? 저렇게 작은 머리로도 절망할 수 있을까? 저렇게 작은 머리로도 슬플 수 있을까? 저렇게 작은 머리는 희망밖에는 담아낼 수 없을 거야. 앨리스는 자신의 머리를 잘라내고 피를 울컥울컥 뽑아내는 목 위에 B의 작고 흉측한 머리를 붙이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녀가 B를 훔쳐보고 있을 때 B가 불현듯 고개를 돌렸다. 비참할 정도로 작은 두 눈이 앨리스를 똑바로 응시했다. 앨리스는 사로잡힌 새처럼 꼼짝도 할 수 없었다. B가 앨리스의 자리로 걸어왔다.

– 앨리스.

그 애가 앨리스의 이름을 불렀다. 그 애는 앨리스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그녀가 가르쳐준 적도 없었는데. 앨리스는 일부로 그 애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그녀는 분명히 B의 이름을 알고 있었지만 기억하지 못하는 척했다.

– 우리 친구 할래?

B는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와 있는 지문을 읊듯이 무척 다정하고 어설프게 말했다. 세상에, 그 애는 끔찍하게 순진했다. 앨리스는 B가 서툰 것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아마 얜 아무하고도 사귀어본 적이 없을 거야. 그러니까 이렇게 이상하게 말하겠지. 얜 아무하고도 대화해본 적이 없는 거야! 불쌍해. 병신 새끼. 병신. 불쌍해. 그러니까 아무도 얘랑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눌 만큼 얘를 좋아하지는 않았던 거야. 얘는 친구랑 싸워본 적도 없을 거야. 얜 친구랑 비밀 얘기를 나눠본 적도 없을 거야. 얜 친구랑 카톡해본 적도 없겠지. 얜 생일파티에 초대받아본 적도 없겠지. 얘는 자기 생일파티를 열 수도 없었을 거야. 얜 죽을 때까지 친구를 사귈 수 없을 거야. 얘가 가진 희망은 철저하게 배반당할 거야. 얘는 아무것도 가질 수 없을 거야. 얘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을 거야. 아무것도 얘를 데리고 떠나지 않을 거야. 나처럼, 나처럼, 나처럼, 나처럼, 나처럼, 나처럼, 나처럼.

앨리스는 너무 행복해서 씩 웃으면서 격렬하게 고개를 저었다.

앨리스가 B보다 못생겼다면 그들은 친구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앨리스는 B를 증오하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B가 앨리스를 지켜본 것보다 훨씬 많은 시선을 B에게 쏟아부었다는 것을 절대로 들키고 싶지 않았다. 앨리스는 B가 혼자이기를 바랐다. 앨리스는 B가 외롭기를 바랐다. 앨리스는 B가 절망하기를 바랐다. 앨리스는 B가 아무에게도 절망과 고독에 대해 털어놓을 수 없기를 바랐다. 앨리스는 B가 아무에게도 위로받지 않기를 바랐다. 앨리스는 누군가와 손을 잡고 걷고 싶은 만큼이나 B가 혼자 걷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날 이후로 B는 앨리스의 옆에서 어린 새처럼 그녀를 졸졸 따라다녔다. 앨리스는 B의 옆에서 그녀가 덜 못생겨보이리라는 것을 알았다. B의 옆에 서 있으면 그녀는 아주 평범한 여자아이인 것 같았다. 그녀는 B와 함께 다니는 것이 절망적으로 싫었기에 B가 그녀의 옆에서 교과서를 읽는 어린아이의 말투로 계속해서 재잘거리는 것에 대꾸하지 않았다. 완고한 침묵에도 불구하고 B는 앨리스를 계속해서 쫓아다녔다. 앨리스가 여자 화장실에 들어갈 때도 그녀를 따라 들어갈 정도였다. 여자 화장실에 있던 아이들은 B를 보고 경악했지만 그 애를 쫓아내지는 않았다. 아이들은 B가 백치처럼 구는 것을 아주 즐거워했다.

아이들은 B가 백치처럼 구는 것을 아주 즐거워했다.

그러나 그녀는 즐겁지 않았다. 세면대에서 액체에 짓눌려 죽어버린 날파리처럼 그녀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존나게 존재하고 싶어도 그녀는 거의 없었다. 씨발, 그녀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여배우도 아니었고 여배우라고 믿는 미친 여자도 그때까지는 아니었다. 그녀는 존나,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 애는 끈질기게 그녀를 쫓아왔다. 그녀를 사랑하지도 않을 거면서, 그녀가 그 애를 미워하는 만큼 그녀를 미워해주지도 않을 거면서 계속해서 그녀를 쫓아왔다.)

그해 겨울에 B는 교통사고로 죽었다. 신호를 보지 못하고 질주하던 파란색 트럭이 그 애를 짓뭉개고 지나갔다.

혹은 그해 겨울에 돌던 전염병으로 죽었다. 옆 마을의 양들에게 돌았던 불치병에 걸려서 죽었다. 정확히 말하면 B가 그 병에 걸렸던 것은 아니었는데, 양들을 도살 처분하던 직원들이 B를 양으로 착각하고 양들하고 같이 생매장했다. 아마 B는 살려달라고, 사람의 소리로 비명을 질렀을 텐데, 양들의 울음소리가 사람의 비명과 너무 비슷했기 때문에 직원들은 B의 울음소리를 알아듣지 못했다.

혹은 그해 겨울 죽지 않았다. B는 대개의 인간이 사는 만큼 살았다. 놀랍게도 B는 점점 덜 못생겨졌고 아이들은 B를 잊었다.

혹은 B는 처음부터 없었다. 눈꺼풀 안쪽에 서식하는 초록색 괴물처럼 B는 상상적인 친구에 불과했다.

여하튼 가엾고 멍청한 앨리스, 그녀는 B가 사라지기 전까지 B를 대신할 친구와 사귈 수 있으리라 믿었다. B가 아닌 누군가가 그녀를 원하고 그녀의 말을 듣고 싶어할 것이라고 믿었다. 아마 십 년 후의 앨리스라면 B를 기꺼이 사랑했으리라. 하고 싶었던 모든 말, 인간에게 전하고 인간으로부터 듣고 싶었던 모든 말들을 B에게 미친년처럼 쏟아냈을 것이다. (그러면 B도 도망쳤을지 모르지.) 그런데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녀는 미래를 이해하기에는 멍청했다. 다른 아이들보다는 조금 더 슬펐지만 그래도 멍청했다.

B가 교통사고로 죽지 않았어도 그 애가 여전히 앨리스를 쫓아다녔을까?

아, 그녀는 단언할 수 있었다. B에게 친구가 있었다면 그 애는 절대 앨리스를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B가 사람들의 시선을 완전히 이해했다면 결코 그녀를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애가 앨리스를 경멸하거나 사랑하는 것에 어떠한 의미도 없음을 이해했다면.

그녀를 싫어하지 않는 사람을 싫어하는 일은 그녀를 손상시켰다.

B는 앨리스가 앉아 있는 책상 옆 비좁은 복도에 자기 의자를 붙이고 앉았다. 교실 끝에는 B의 버려진 빈 책상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앨리스는 B의 작은 숨소리가 그녀의 어깨 옆에서 들려오는 것이 소름 끼치게 싫었지만 B를 쫓아낼 방법은 없었다. 선생님도 B가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B가 너무 못생겼으니까! 그건 거의 병과 다름없었으니까.)

(어째서 그녀는 아무것도 될 수 없는데 무엇인가 되기를 원하는지 그토록 간절히 원하는지 미치게 원하는지 미쳐서 원하는지. 중풍에 걸린 남자는 두 번 다시 일어날 수 없는데. 자폐에 걸린 여자는 결코 자연스러워질 수 없는데. 7세 이전에 선택적 함구증을 치료하지 않은 아이는 친구들을 사귈 수 없는데. 그녀의 절망과 그녀의 죽음과 그녀의 파멸을 원하는 팬들도 그녀에겐 없는데.)

SMALL BEARS ARE SMALLER BEARS

B가 앨리스의 어깨를 건드리며 말했다.

– 어제 병아리를 죽였어. 학교 앞에서 파는 거 있잖아. 분홍색이었는데 이상한 냄새가 났어.

– (침묵)

– 더 일찍 죽이려고 했는데 너무 늦게 죽였어.

– (침묵)

– 왜 죽였냐고 안 물어봐?

B가 동그란 눈을 그녀에게 들이대며 물었다.

– 너무 귀여워서 죽였어. 너무 사랑해버리기 전에 죽였어.

B는 병아리를 믹서기에 넣고 갈던 과정에 대해 상세하게 묘사했다. 어린아이의 서툰 표현력으로. 우리 친구 할래? 하고 묻던 그 다정한 목소리로.

앨리스는 깨달았다. 그녀가 없어도 B는 B일 테지만, 그녀는 아니었다. B에 대한 질투 없이, B에 대한 경멸과 B에 대한 증오와 B에 대한 갈망 없이 그녀는 그녀가 아니었다. 세계에 대한 갈망 없이 그녀는 그녀가 아니었다.

그러나 세계는 그녀 없이도 세계였다.

그녀는 열등감과 갈망과 희망과 체념과 절망과 슬픔의 달콤쌉싸름한 혼합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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