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소녀의 물방울 2

쓸모있는 사물은 아무것도 생산해낼 수 없는 당신들, 제 목을 맬 올가미조차도, 자신의 죽음조차도 매듭짓지 못하는 당신들, 내가 하얗고 질긴 탯줄을 내려뜨리기 전에는 자살조차 할 수 없을 당신들, 당신들은, 너무도 못생기고 무용한, 그래서 예술조차 될 수 없는 당신들은 내 아름다움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엄마는 허둥거리면서 끝맺지 못한 협박문을 움켜쥐고 울부짖기 시작했다. 딱정벌레처럼 은밀하게 밀어닥치기 시작한 경찰들이 상황을 물을 때도 엄마는 어쩔 줄을 몰라 흐느끼면서 아직 끝맺지 못한 협박문을 가리켰다. 아빠는 구석자리에 숨어 흰 피부를 뒤집어쓴 베트남 인민군에게 총을 난사해댔다. 기분이 상한 경찰들은 겁에 질려 더 이상 엄마 뭘 봤어요? 뭘 찾았어요? 하고 개새끼처럼 낑낑거리지 않는 오빠의 작고 앙상한 어깨를 공장의 레버를 당기듯이 움켜쥐며 뭘 봤니? 뭘 본 거야? 하고 추궁해댔다. 오빠는 차마 수천 마리의 쥐떼들과 함께 하늘로 올라가는 내 나신을 보았다고 말할 수 없었다. 무고한 베트남 청년들을 마구잡이로 쏘아대며 엉엉거리는 아빠를 보았다고, 시도 편지도 아닌 협박문을 말도 안 되는 협박문을 써내려가는 엄마를 보았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오빠는 거짓말이 아니고서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그래서 오빠는 작은 곤충처럼 입을 다물었다. 비쩍 마른 얼굴과 쭈글쭈글한 입술, 그 기묘한 낯은 경찰들이 보기에는 결코 무고한 아이의 낯이 아니었다. 그들은 계속해서 이 못생긴 짐승을 몰아붙였다. 오빠는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할 말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무고하지 않았으니까. 경찰들은 이 난장의 바깥에는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반쯤 확신했다. 말도 안 되는 협박문을 꼼꼼히 읽어보고 나서는 더 확신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부인, 대체 이게 무슨 말입니까? 협박문에는 범인이 요구하는 금품에 대한 설명도 없었고 접촉 장소에 대한 설명도 접촉 시간에 대한 설명도 없었다. 경찰들이 보기에 협박문에서는 건질만 한 정보가 하나도 없었다. 한 장 두 장 세 장 열 장의 협박문. 도저히 의미를 이해할 수 없는 협박문. 실패한 시인들이 쓸법한 문장. 납치범보다는 자살자들이 쓸법한 문장.

나는 그들의 난장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지만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녹빛의 잉크가 새어 먹먹하게 젖어든 천장. 수십 년 동안 갈 곳을 잃고 한 곳으로 고여들던 문장들의 비린내. 거울 속에서는 두 명의 경찰이 숙덕거리고 있었으나 나는 오빠의 죽음을 고발할 수 없었다. 그는, 내 가여운 오빠는 자기가 죽은 줄도 모르고 유령처럼 이리저리 비틀거리며 쏘다니고 있었으므로. 오빠가 당장이라도 무언가 산 자는 말할 수 없는 말을, 죽음의 비밀을 노출할까 봐 두려웠던 엄마는 오빠의 턱을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마치 고양이를 어르듯이 쓰다듬으며, 이제 들어가서 자야지, 하고 말했다. 경찰들도 그래, 그러렴, 하고 말을 맞췄다. 오빠는 반항도 하지 못하고 내 검붉은 시신이, 잉크보다 엄마가 수십 년 동안 쓰고 쓰고 또 쓰며 강과 같은 잉크 속에 녹여 왔던 문장들보다도 더 진한 오줌이 흘러드는 지하실의 바닥 바로 위층에 웅크리며 내 오줌 냄새를 맡으며 악몽 속에서 불면할 수밖에 없었다.

오빠가 발견한 여자, 거울 너머에서 머리를 쓸어넘기는 여자, 부드러운 허벅다리를 벌리고 오줌 대신 붉은 피를 쏟아내는 여자는 사실 어디에도 없었다. 손톱만 한 머리를 바닥에 부딪히며 흙알갱이를 주워먹는 비둘기들, 허공과 물질을 구분할 수 없는 그 멍청한 머리들이 창문에 부딪히는 소리만으로 오빠는 화들짝 놀라며 눈물을 흘렸다. 나는 그가 무참하게 자라난 여자를, 존재하지도 않는 여자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녀의 길고 검푸른 머리칼이 오빠의 앙상한 얼굴을 감쌀 때 오빠의 눈 앞에는 하얗고 매끈한 달걀과도 같은 얼굴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가 끔찍한 악몽 속에서 서성이고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러나 그를 도와줄 수는 없었다. 나는 지하실에서 손을 위로 치켜든 채로 누워 있었으므로. 깨지도 잠들지도 않은 상태로, 하얗고 부드러운 담요, 내가 가장 좋아하던 담요 속에서 새 옷을 입고 누워 있었으므로.

나는 모든 것을 볼 수 있었으나, 경찰들이 내려놓은 협박문을 간절하게 바라보고 있는 엄마와 베트남군을 다 무찌르고는 거실을 서성이며 경찰들에게 제 공적을 어떻게 자랑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아빠와 터무니없이 성숙한 여인의 텅 빈 시선을 마주하면서 공포에 떨고 있는 오빠 모두를 지켜볼 수 있었으나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광학적인 감각작용의 측면에서 차게 굳어버린 내 뇌에는 아무런 영상도 비추어지지 않았다. 모든 사물은 마치 거울 속에서 흔들거리는 빛의 그림자와도 같았고 나는 눈을 뜨지도 않은 채 모든 움직임과 침묵을 볼 수 있었다. 더는 울지 못하는 엄마와 더는 두려워하지 못하는 오빠와 더는 흥분하지 못하는 아빠도. 흙 밑의 지하수 속에 잠겨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 익사자들이 세월의 지층 너머로 속살거리는 소리. 나는 망설였다. 하늘로 올라가지 않으면, 수천 마리의 쥐떼들과 함께 천국으로 가지 않으면 이 가련한 인물들, 비쩍 말라서 죽어가는 이들에게 동앗줄을 내려줄 수도 없을 테니까.

나는 양발과 소매가 피처럼 축축하게 젖은 상태로, 검붉은 흙에 젖은 상태로 허우적거리는 땅 밑의 익사자들을 가만히 내려다 보았다. 그들은 절망적으로 따뜻했고 절망적으로 아름다웠으며 절망적으로 포근했다. 나는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쥐들의 작고 뜨거운 자궁과도 같이 아늑한 곳. 온몸이 타들어갈 정도로, 온몸이 녹아버릴 정도로 애틋한 곳. 나는 그곳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건물 꼭대기에서 활짝 열린 창문을 향해 휠체어 바퀴를, 오래도록 휠체어를 굴리기 위해 단련해온 굳은살로 밀어젖히며 돌진한 노인, 창문의 문턱에 걸려 대롱거리다가 혹여 누군가 비명을 듣고 저를 구해줄까 두려워 혀를 깨물고 창 밑으로 떨어져버린 노인 역시 그 비좁고 불가능한 틈을 갈망했을 것이 틀림없다. 나는 삼백여든 마리의 쥐들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수천 마리의 쥐들이 나를 끌어안고 하늘로 사라지기 전에 서둘러야 했다. 이제 내게는 비쩍 곯은 가족들, 내가 선택한 적도 나를 선택한 적도 없는 이들보다 중요한 일이 있었으니까. 세이렌의 아름다운 침묵을 듣고 죽음을 상기했던 선원들처럼, 오로지 죽음으로 돌아가기 위해 알을 헤치고 나오는 하루살이들처럼, 내가 시간의 심부에 켜켜이 쌓인 부드러운 자궁을 꿰뚫고 들어가는 것을 아무도 저지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거울과도 같은 수면 너머에서 실을 잣는 노인들을 잊었고, 발목까지 피처럼 검붉은 흙에 젖어든 경찰들이 나를 찾아 돌아다니는 것을 잊었고, 아무도 감동시키지 못한 협박문 한 장 두 장 세 장 열 장을 찢어버리고 싶어서 안달하는 엄마를 잊었고, 도자기 같은 변기 뚜껑 아래에서 흘러가지 않고 역류한 베트남 인민들의 둥그런 얼굴을 보고 토악질을 해대는 아빠를 잊었고, 내 머리칼을 빗겨주고 풀반지를 만들어주던 오빠를 잊었고, 내 울음에 대답하지 않던 나무들의 은밀한 속살거림을 잊었고, 하릴없이 전율하던 꽃잎들을 잊었고 거품 속에 얼굴을 묻고 기도하던 아기 고래들을 잊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수백 년 수천 년의 지층 아래에서 침묵으로 속삭이는 익사자들은 아직 살아있다는 것, 몸으로부터 떨어져나간 손톱이 그러하듯이, 소나무의 날카로운 바늘잎 위에 내려앉은 먼지가 그러하듯이, 돌부리에 찍혀 떨어져나간 뱀의 머리가 그러하듯이 봄에 떨어진 낙엽이 그러하듯이 진통하고 신음하고 죽어간다는 것, 다만 이전과는 다른 형태로, 광학적 작용을 통해서 뇌에 영사되지는 않는 영상을 보고 귓바퀴 속으로 빨려드는 소용돌이와 같은 소란을 흡착하지 않는 형태로, 한때 다른 이의 유기적인 신체로 살아왔던 낯선 눈 위에서 썩어가는 치아 위에서 음부 위에서 이전에는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는 방식으로 살아간다는 것, 백인의 입술에서 떨어져나간 피부조직이 황인의 각막에, 생을 찬미하는 이의 혓바닥은 죽음을 찬미하던 이의 내장에 늘러붙어서 찢겨진 신체들이 덕지덕지 엉겨붙어 살아간다는 것, 기관도 서사도 없는 신체의 파편들이 이름도 추억도 회한도 미래도 잊고 지층 깊은 곳에서 호흡도 신경체도 없이 살아간다는 것. 모체로부터 떨어져나간 배아가 그러하듯, 민들레의 홀씨가 그러하듯, 촌충의 더듬이가 그러하듯, 애완견의 절제된 자궁이 그러하듯, 자궁의 내벽과 함께 흘러나온 피가 그러하듯 살아있다는 것을. 호흡도 심박도 총체성도 없는 방식으로, 하나의 이야기에 영합하지 않는 방식으로. 수천 갈래로 어긋난 목소리들.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방식으로 소녀를 유혹하는 생들.

나는 잠들지 못한 오빠의 기억으로부터 떨어져나온 여인의 하얗고 맨들한 얼굴을 어루만졌다. 그녀는 거울처럼 반들거리는 피부를 내게 문지르며 속삭였다. 장미들이 나무에게 말을 거는 방식으로, 눈송이가 빗물에게 자장가를 불러 주는 방식으로, 오래전부터 너를 기다려왔어, 하고. 나는 그녀가 아직 깨지지 않은 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무언가 끔찍한 것, 수천 마리의 쥐들보다도 더 다리가 많은 촌충보다도 더 흉측한 것이 꿈틀거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녀의 매혹적인 껍질을 어루만질 수밖에 없었다. 맥박하는 둥근 머리가 너무도 뜨겁고 애틋했기 때문에. 태어나지 않은 생처럼, 죽음을 향해 작고 가냘픈 손을 뻗는 선홍빛의 아기처럼. 그녀를 끌어안고 소리 없이 출혈하는 내 입술을 그녀는 조심스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나는 불면조차 망각하고, 잠이 든 오빠도, 퇴색한 얼룩을 들여다보며 좌절하는 엄마도, 아직 한 명의 베트남 청년도 죽이지 못한 아빠도 잊고, 아이의 부드러운 손에 잡혀 찢겨나간 나뭇잎이 자연에 대해 사유하는 방식으로 죽음을 그리워했다. 모든 죽어가는 것들이 죽고 죽고 다시 죽고 또 죽어도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죽음. 나는 깨닫고 말았다. 백골이 되어도, 싯누런 미라의 입속에서 천사의 날개와도 같은 파리떼가 말갛고 붉은 보석과도 같은 겹눈을 반짝거리며 침을 뱉어도 부패하고 녹아내린 세포에서 더 이상 어떠한 하찮은 관념도 번져흐르지 않더라도 조각조각 분절된 살결은 흩어진 별빛이 그러하듯, 쥐덫에 걸려 잘려나간 작은 발목이 그러하듯, 과다 채취된 난자들이 배양액 속에서 그러하듯 사랑도 흉함도 없이, 역사도 자아도 없이, 자기연민도 혐오도 없이 살아있다는 것, 불연속적인 사건들을 길고 압축적인 서사로 통합시킬만한 신체조차 없이, 사유와 정념을 동일시할만한 신경다발도, 뇌도 없이, 원망할 대상도 갈구할 대상도 없이, 이제 나는 지하실 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 아무도 없는 곳을 바라보는 검붉은 나신이 아니라는 것, 시계장치처럼 정밀하게 쇠약해져가는 몸들은 나와 닮지 않았다는 것, 잘려나가고 잘려나가고 또 잘려나가서 끝없는 미시영역에 도달한 작은 입자들에게도 죽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하염없이 흐르며 엉겨붙는 파동들. 오빠가 내게 알려주었던 길고 긴 방정식과 화학식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 방정식을 적용할 수 있는 힘의 대상은 어디에도 없으니까. 우리는 살아간다는 망상으로부터 영원히 벗어날 수 없을 테니까.

쥐의 오줌과도 같은 잉크가 번져 흐르고 있었다. 땅밑에서는 익사자들이 나를 부르는 소리. 나는 간신히 하나의 생에 영합하고 있던 눈과 귀와 입술, 피부와 허파와 심장, 위와 미로처럼 구불구불하게 얽혀 있는 장이 아니었다. 죽어가는 것들 뿐이라는 가설, 허공 따위는 없다는 가설, 어떠한 실험도 검증도 필요 없는 내 확고부동한 가설을 나는 평생 확인할 수 없을 터였다. 이제 나는 북실북실한 암거미가 잽싸게 들어앉아 거미줄을 짜고 있는 벌어진 입이 아니었고 거미줄이 거웃처럼 이어붙은 허벅다리도 음부도 겨드랑이도 아직까지는 수분이 가시지 않고 찰랑거리는 머리칼도 아니었다. 오빠가 돌이킬 수 없이 훼손된 제 머리칼 대신 지성으로 어루만지던 그 머리카락. 나는 거울과도 같은 더러운 수면에 입을 맞췄다.

경찰들은 총을 들고 허공을 겨누며 귀신들을 쫓았고 아무런 죄도 없는 귀신들, 단지 죽음을 열망했던 어리석음밖에는 잘못이 없는 귀신들은 화들짝 놀라 흐느끼며 죽음을 애걸했다. 그들을 죽여줄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비물질적인 세계에 속한 이들은 물질적인 것의 영향도 비물질적인 것의 물리적인 영향도 받을 수가 없었으니 그들을 죽여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하릴없이 날카로운 이빨을 돌부리에 갈고 있는 미친 들쥐들도, 더 이상은 사람을 죽이지 않고 그저 죽도록 방치해두기만 하는 텅 빈 소총도, 빵 속에 드글거리는 기포방울 속에서 호흡하고 있는 죽은 성령의 살도 아니었다. 이미 수천 년 전에 부활했던 신, 언제나 현현하고 있는 신성한 살, 바퀴벌레의 희멀건 내장 속에서, 검고 잔혹한 햇빛 속에서 검은 비를 하혈하는 먹구름 속에서 눈도 입도 귀도 내장도 없이 살아있는 신의 조각들. 세계를 둥글게 둘러싸고 있던 맑은 거울은 소리도 없이 깨지고 산산조각난 파편들이 눈 속에 끼어드는데도 우리는 얼음여왕의 창백한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차고 냉혹한 겨울을 느낄 수도 없었다. 세계가 악몽이라면 어째서 우리는 우리의 꿈조차 마음대로 현상할 수 없는 것인지.

아무런 죄도 없는 귀신들은 죽음을 애걸하면서 경찰들의 앞에 무릎을 꿇었지만, 팔꿈치를 바닥에 대고 무릎을 흙 속에 담그고 개처럼 네 발로 기어갔지만 경찰들은 아무도 낄낄거리지 않았고 아무도 만족하지 않았고 귀신들을 알아차리지조차 못했다. 죽음으로 무장한 이들이 찾는 소녀는 이미 오래전에 신원도 없이 죽은 원혼도 먼지도 아니었기 때문에. 입도 없이 성대도 없이 혀도 없이 이빨도 없이 흐느끼면서 가족도 연인도 아닌 자의 이름을 부르는 귀신들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사라지는지 알고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고, 어느덧 떠오르는 말간 새벽 아래에서 부드럽게 출렁거리는 거미줄 두 가닥에 걸려든 작은 날벌레가 누군가의 손톱이었는지 피부조직이었는지 머리칼이었는지 아는 자는 아무도 없었고, 그 미세하고 저열한 몸뚱이 속에서 어떠한 사유가 기적처럼 떠올라 저물어가는지 이해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주인을 잃은 거미줄, 자동인형처럼 바닥을 쪼아대는 비둘기에게 잡아먹힌 거미는 더 이상 거미줄을 짜내려갈 수 없었다. 그래서 방사형의 아름다운 무늬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허공 위에 드러누워 하늘거리는 두 가닥의 가늘고 기다란 연. 아무도 사냥할 수 없고 아무도 찢어발길 수 없는 암거미는 비둘기의 뜨거운 위장 속에서 녹아가고 있었다. 그녀가 남긴 두 가닥의 유품은 가만히 놓아두면 평생이라도 그러할 것처럼 여리게 전율하였다.

이제와서 내가 후회하는 것은, 흙탕물처럼 얼룩덜룩한 거울들을 전부 깨부수지 못했다는 것. 폭포처럼 흘러내리는 파편들을 별을 세듯 세어보면서 잠들 수도 있었을 텐데. 붉고 따뜻한 피로 젖은 거울조각을 오빠의 눈 속에 흘려넣고서 뭐가 보이는지 물어볼 수도 있었을 텐데. 이제와서 내가 후회하는 것은, 창문으로 돌진하여 머리를 박고 죽어버린 새의 날개를 잘라내지 못했던 것. 검고 복슬복슬한 깃털 속에서는 하얀 짐승들이 꾸물거리고 있었고 나는 그 매혹적인 움틀거림을 향해 손을 뻗었는데 돌틈에서 새의 죽음을 지켜보고 있던 길고양이 하나가, 마찬가지로 희고 미세한 짐승들이 검고 복슬복슬한 털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날랜 짐승이 바스라진 두개골을 향해 달겨들었다. 유리처럼 맑고 반들반들한 눈, 난 거울 속에 잠겨드는 사물들처럼 그 눈 속에 손을 집어넣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지만 눈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고 반들거리는 거울도, 꿈틀거리던 하얀 짐승들도 모두 사라졌다. 하얗고 통통한 사백 번째 쥐는 촉촉하고 부드러운 눈을 대신할 수 없었다. 난 여자의 음문처럼 부드러운 눈 속에 손을 집어넣고 싶었다. 보석보다도 반짝이고 신비로운 눈 속에서 나는 아직도 파도처럼 너울대고 있는 두 가닥의 거미줄을 잊고, 잘려나간 손톱이 사유하는 방식으로 제 허공 속에 잠들어 있는 음악을 몽상하는 바이올린도 잊고, 삼백 마리의 나방들을 도살한 몽유병자의 이야기에도 감동하지 않는 괘씸한 아이들을 잊고, 더 이상 노래하지 않는 내 입술을 잊고, 유령조차 보지 않는 감긴 눈을 잊고, 황금빛 모래로 가득찬 내 부드러운 귀를 잊고, 길을 잃은 거미들이 여덟 개의 다리들을 길게 펼치며 헤엄치는 음부도 잊고, 부패해가는 살을 허겁지겁 삼키다가 목이 막혀 죽어버린 개미도 잊고, 이제는 한 줄만 남은 거미줄, 외발자전거가 아슬아슬하게 굴러가다가 아무런 전조도 없이 끊어져버리면 난쟁이 배우의 사과처럼 작고 단단한 머리, 배신당한 뼛조각에서 붉은 과즙이 넘쳐흐르는 모습을 묵묵히 내려다볼 거미줄, 당장에라도 찢어버릴 수 있을 것 같은 한 가닥의 거미줄도 잊어버리고 싶었다.

이제와서 하는 말이지만 난 당신에게 한 번도 기도를 드려본 적이 없다. 그것은 당신이 개미의 창자와 내 목구멍 사이에 놓인 가느다란 거미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도, 기도하는 방법을 한 번도 배우지 않아서도, 당신에게 바칠만한 돼지의 분홍빛 머리가 없어서도 아니었다. 나는 그저 당신의 존재를 믿을 수 없었다. 귓속에서 삑삑거리면서 불어나는 모기들의 날갯짓보다도 덜 실존하는 당신을. 갈수록 쇠락해져가는 몸, 마모되어가는 유리자궁과 세균을 배양하듯 죽음을 생산해내던 군주들은 모두 무덤 속으로 깊은 잿빛의 지층 속으로 파묻혀 이제는 위엄도 권위도 없는 연약한 목소리, 식물의 줄기 속으로 파묻혀들어간 실과 같은 뿌리처럼 무력한 목소리, 잔혹하지도 두렵지도 않은 속살거림. 나는 무서워할 필요가 없었다. 당신들이 애타게 부르는 이름은 내것이 아니었으니까. 창가에 주렁주렁 매달린 그림자도, 가증스럽게도 입을 다물고 나를 잊어가는 내 가여운 오빠도 아니었으니까. 아무것도 부르지 않으면서 애타게 속살거리고 있는 유령들의 울음소리는 치매환자의 망령된 흐느낌과 다를 것이 없었다. 거꾸로 뒤집힌 채 지상도 허공도 아닌 곳으로 떠다니고 있는 익사한 발레리나들의 푸르른 살갗도 부르지 못하는 텅 빈 목소리. 난 당신을, 당신의 끝없는 부름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째서 개들은 짖는 것인지, 토사물에서는 악취가 나는 것인지, 밤은 하염없는 백색인 것인지.

마치 한 조각의 사유도 깃들지 않은 떡갈나무의 매끄러운 잎사귀처럼, 쥐들은 아직도 찍찍거리며 울부짖고 있었다. 내가 산 채로 잡아먹었던 쥐. 목도 조르지 않고 여린 배를 짓밟지도 않고 찍찍거리면서 작고 가녀린 주둥이를 미친 듯이 움찔거리는 그대로 목구멍 안쪽으로 밀어넣었던 쥐. 신경의 내부에서 진동하는 붉은 점들과 더는 붉지 않은 무수한 구멍들. 나는 아름다움을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아름다움을 살 수 있었다. 공포와 폭력으로 직조된 관능도 아닌 아름다움. 순수한 아름다움. 나는 그다지 많이 먹지 않아도 통통했고 누구보다도, 심지어 밤과 악몽보다도 검고 매끄러웠다. 경찰들은 내 아름다움에 미치지 못하는 단순한 이름을 애타게 부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들이 곁눈질로 엄마와 아빠, 오빠가 잠들어 있는 방을 차례로 흘겨보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참극의 범인은 대개 외부가 아닌 내부에 있는 법이었으므로 그들은 아이의 목을 졸라 죽이는 이가 아이의 삼촌도 유모도 계모도 아닌 친모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이와 함께 자살한 어미의 피에 젖어들었던 바지자락에는 아직도 희미한 얼룩이 남아 있었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이 나라에는 아이가 너무나 많았다. 여인들은 어물쩍거리다가 아이들이 사유하며 절망하며 흐느끼며 자라나기 전에 뜨거운 핏덩어리를 손으로 눌러 죽여야 했다. 출산 예정일이 오기 전에 질 속에 손을 밀어넣고 꺼내어 탯줄을 끊어버려야 했다. 최초의 사유가 발발하기 전에는 모든 일이 간단할 테니까 죽음에 대한 공포 없이 죽음의 내부에서 곧장 죽는 아이에게는 어쩌면 공포조차도 없을 테니까. 게다가 출산 예정일 이전까지 그것은 그녀의 몸이니까. 그녀의 장기를 그녀 마음대로 절제해냈다고 해서 그녀를 비난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으니까. 아직 적합한 삶의 형태를 갖추지 못한 아이는 누군가를 고소할 권리도 없으니까. 오히려 원치 않는 삶을 선고받고 태어나버린 아이, 누구도 죄를 짓지 않고 죽음을 생산하기에는 너무 늦어버린 아이, 그런 아이가 태어나지 않을 권리를 호소하며 낙태를 거부한 의사를 고소한 사례를 그들은 본 적이 있다. 그들이 생각하건데 이 나라에는 아이들이 너무 많고 여자들은 너무 많이 희생당하며 너무 여리고 우물쭈물하여 일을 망쳐놓고 만다. 아이를 죽이려면 머리칼이 나기 전에, 아이의 머릿속에서 나병과 같은 관념이, 인류를 속박시키는 사유가 자라나기 전에, 옷을 갖춰입은 아이가 그의 절망을, 그의 인격을, 그의 사유를 선언하기 전에 모든 것을 끝냈어야 마땅하다. 만약 여인들이 낳기 전에 숙고한다면 낳기 전에 절망한다면 낳기 전에 살해하고 낳기 전에 자수한다면 그들은 할 일도 없이 가족들과 남쪽 나라로 바캉스를 떠날 수도 있을 텐데. 왜냐하면 그들의 자수를 기록할 필요도 없으니까. 이 나라에서 낙태는 죄가 아니니까. 그러나 너무 많이 자라버린 아이, 가엾게도 사유를 하고 기대를 하고 후회까지 하는, 상실되지 않는 시간을, 상실만을 살아가는 어린 철학자들을 죽이는 일은 끔찍한 죄이기에 그들은 꼭두새벽부터 아침도 커피도 없이 살인범의 침실을 서성거리며 일을 해야 했다.

그들은 곧 시체를 찾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지가 말끔하게 절단되어 이웃의 굴뚝 아래로 떨어진 시체, 강물로 떠내려보내려 했으나 밀물에 역류하여 둥둥 떠오른 시체, 검은 쓰레기봉투에 말끔하게 포장된 시체. 아무래도 좋았으니 그들은 한시라도 빨리 그녀를 찾고 사진을 찍고 부검의에게 연락한 뒤 집으로 가고 싶었다. 인스턴트 커피라도 한 잔 아니, 냉장고를 열고 주먹만 한 달걀 두 개를 깨뜨려 스크램블 에그를 해 먹으리라. 새벽부터 시체를 찾아 헤매고 다닌 그들에게 따끈한 스크램블 에그, 두 알의 미결된 생명 정도의 가치쯤은 있을 테니까. 냉장된 알이 부화하는 일은 없을 것이므로 그들은 아무도 죽이지 않으면서 영양도 채울 수 있겠지. 저 년은 너무 울어. 끔찍하게 오래 우는군. 아무래도 의심스러웠다. 그녀가 미친 듯이 울기 때문은 아니었다. 아이를 잃어버린 어미는 누구라도 저렇게 울기 마련이니까, 그녀가 갑자기 울음을 멈췄기 때문도 아니었다. 아이를 잃어버린 어미라고 해도 누구나 우는 건 아니니까. 그들이 그녀를 의심했던 것은 그녀의 오른손날에 검푸른 얼룩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어미의 뱃속에서부터 가지고 태어난 점인지, 아니면 잉크가 젖어든 흔적인지 그들은 확인해 볼 필요가 있었다. 부인, 손을 내밀어 보시겠어요, 했을 때 그녀가 아무런 의심 없이 순순히 손을 내밀었으므로 그들은 그녀의 오른손날에 묻은 것이 그녀의 어미가 전해준 얼룩도, 그녀의 아비가 전해준 반점도 아닌 잉크자국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저년은 더욱 의심스러운 것이, 한 장도 아니고 두 장도 아니고 열 장 남짓 되는 협박문을 써내려가는 정신 나간 납치범은 듣도보도 못했으니까. 자세히 읽어볼 필요도 없이 그 협박문은 여자의 글이었고 여자의 문장이었고 여자의 말투였으니까. 게다가 세상에 명확한 액수도 밝히지 않고 장소도 시간도 밝히지 않는 협박문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러므로 저 기묘한 편지는 협박문이 아니었고 위장에 불과했다. 그녀의 오른손날에 묻어 있는 검푸른 잉크자국. 그들은 살아 있는 소녀를 찾아나설 필요가 없음을, 인근 범죄자들의 신원을 조회해볼 필요도 없음을 알았다. 그들은 머지않아 물에 불어 떠오른, 재로 변한 그녀를, 굴뚝에서 선물처럼 쏟아져내린 그녀를, 벌써 흰빛의 반점이 피어오르기 시작한 그녀를 발견하게 되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들에겐 어서 그 애의 죽음을 발견하고 집에 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신발도 벗지 않고 양말도 벗지 않고 곧바로 소파 위에 누워 끈적하게 굳어버린 오물을 잊고 피해자의 이름을 잊고 검푸른 잉크얼룩을 잊고 잠들고 싶은 마음뿐. 그들은 사흘 내내 제대로 잠들지 못했으므로. 도대체 이 마을에는 왜 이토록 범죄가 많은 것인지, 마치 죽이기 위해 불려놓은 것처럼 턱없이 많은 인구는 매일같이 죽어나갔고 햇빛에 부푼 시신이 강물에서 떠오를 때면, 창틀에 허리가 꺾인 채 뒤집혀 있는 시신을 볼 때면, 개집에서 튀어나온 무릎뼈를 볼 때면 그들은 더 많이 죽이기 위해 더 많이 살려놓은 도축용 돼지들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타들어가는 시신에서는 바비큐처럼 쿱쿱한 향이 피어올랐으니까. 이렇게 사흘만 더 사람들이 죽어나가면 그들은 더 이상 시신을 보지 않아도 될 것이 분명했다. 오직 죽기 위해 태어나는 아이들보다도 그들이 먼저 뒈질 것이 틀림없었으니까. 피로에 지쳐버린 심장이 멎고 입술이 보랏빛으로 변하고 안구의 실핏줄이 붉게 터지고 나면 그들은 더 이상 한 구의 시체도 더 보지 않아도 되리라. 그러나 그들이 발견한 수만 건의 죽음들 중 아직 그들의 죽음은 한 번도 도래하지 않았다. 그들은 너무도 피곤했고 이제는 차라리 저 자신의 죽음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그들은 빌어먹을 여자애들, 쥐떼처럼 불어나는 여자애들이, 이미 뒈져버린 것이 분명한 여자애들이, 가만히 놔두면 또 쥐떼처럼 죽어갈 여자애들을 낳을 여자애들이 어디에서 어떤 꼴로 뒈져 있든 상관할 필요도 없을 것인데, 끔찍하게도 그들은 아직 죽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들이 아닌 다른 이의, 그들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여자애들의-언제나 여자들, 여자애들 아니면 아주 간혹은 남자애들, 남자는 없었다- 죽음을 찾아나설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좋은 죽음, 언제나 방치되는 죽음, 이제는 너무 늦은 죽음, 어미의 뱃속에서 갈기갈기 뭉개졌더라면, 자궁을 절제하듯, 맹장을 제거하듯 그렇게 삭제되었더라면 누구에게도 죄를 지우지 않았을 죽음. 그녀가 십 년 정도 더 빨리 결단을 내렸더라면 그들도 눈꺼풀을 억지로 밀어올리며 젖은 풀 냄새가 진동하는 침실을 서성일 필요는 없었을 것이고 신발도 소파도 벗지 않고 며칠 동안 감지 않은 머리를 그보다 더러운 쿠션에 짓뭉개며 잠들 수 있었을 텐데. 그러면 몇 명의 계집애가 죽었든 죽지 않았든 그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다섯 마리의 들개들이 그들의 벌거벗은 몸을 마구 물어뜯는 악몽도 없이 허기도 절망도 잊고 잠들 수 있었을 텐데. 한 순간의 망설임이 그들에게 가져온 지독한 피로와 불운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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