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처럼 희고 통통한 쥐가 한 마리 지나갈 때 소녀는 소년이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쥐가 두 마리 지나갈 때 소녀는 소년이 검게 변하는 것을 보았다. 쥐가 다섯 마리 지나갈 때 소녀는 소년이 눈을 감고 죽어 있는 것을 보았다. 쥐가 열다섯 마리 지나갈 때 엄마아빠의 비명을 들었다.
너 대체 뭘 한 거니?
그리고 오빠의 대답, 여전히 흐느끼면서. 뭘 발견한 거예요?
소녀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두려움도 미움도 없이. 그들이 소녀를 처음으로 발견할 때도 두 번째로 발견할 때도 여전히 그 자리에. 엄마와 아빠는 그날 처음으로 생산적인 행동을 했다. 엄마는 현상론적인 존재 이전의 상태에 파묻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읽히기 위해, 아마 당시에는 그녀도 예측할 수 없었겠지만 단 한 명의 독자도 세 명의 독자도 아닌 삼만 명의 독자들을 위한 글을 썼다. 멍청하게도 그녀는 그러한 글은 길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예측하지 못했다. 그러나 실패한 시인이 그러하듯 그녀는 처음으로 실존을 인정받게 된다는 흥분을 이기지 못하고 한 페이지 세 페이지 다섯 페이지 열 페이지의 길고 유려한 협박문을 작성했다. 그녀가 밝힌 바에 따르면,
우리는 길거리의 부랑자들이오.
터무니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문장들, 한 번도 발표한 적 없는 그녀의 문체와 너무도 잘 맞아떨어지는 문장들. 밤의 심부에서 속살거리는 장미는 언제든지 찢겨나갈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서른 번째 쥐가 지나갔고 소녀는 분홍빛의 통통한 발을 깨물어 삼키고 싶은 충동을 느끼며 죽은 소년이 허둥거리는 것을 보았다.
엄마 뭘 찾은 거예요? 뭘 봤어요?
무명의 시인은 충격적인 데뷔를 위하여 시의 영혼을 지닌 부랑자의 글을 쓰고 있었다. 마치 제 영혼을 수백 갈래로 찢어낸 시인 페르난두 페소아의 자아들이, 그의 상상에 따르면 어떠한 인연도 공통점도 없는 자아들이 비슷한 어휘와 문장을 어쩔 도리 없이 공유하듯이 그렇게 무명 시인의 문장을 공유하는 부랑자들의 글을 써내려갔다.
엄마 뭘 찾은 거예요? 뭘 봤어요?
제발 저리 가렴. 제발 저리 가란 말이야.
믿을 수 없을 만큼 멍청한 우리 오빠, 자기가 죽은 줄도 모르고 꽥꽥 비명을 지르며,
말해줘요, 엄마. 뭘 찾은 거예요, 뭘.
엄마는 협박문이라는 것이 길어봐야 열 문장 남짓한 단순한 선언이라는 것도, 협박문에 환멸을 체현하는 거미줄의 절망에 관한 은유를 끼워넣는 부랑자는 없다는 것도 모르고, 남의 집에 들어가서 한 시간 가까이 그렇게 길고 수려한 문장들을 써내려갈 멍청한 침입자는 없다는 것도 잊고,
아이를 구하고 싶다면 내일 새벽에 당신들이 버릴 수 있는 것을 가지고 오세요. 당신의 아이, 아냐 말이에요. 사랑스러운 아이, 나날이 볼이 붉어지는 아이, 버려진 과수원에 떨어진 석류처럼, 지독히 익어서 제 창백한 아름다움을 견디지 못하고 추락해버린 과일처럼 절망적으로 아름다운 당신의 아이는 당신들이 아닌 우리에게 있어요. 우리는 못 배운 부랑배들이니 얼마든지 그녀의 가녀린 손가락, 통통한 목과 탐스러운 허벅다리를 부러뜨릴 수 있어요. 죄책감도 없이, 욕망도 없이, 그녀를 망가뜨릴 수 있어요. 우린 오래도록 고독했고 자식도 없으므로 자식을 잃은 당신들을 조금도 연민하지 않고 무참한 짓거리들을 저지를 수 있답니다.
그 애는 지금도 흐느끼고 있어요. 놀랄 정도로 멍청하더군요. 아직도 잠자리에서 오줌을 지릴 정도로. 우린 그 애의 동그랗고 부드러운 엉덩이를 닦아 주지도 않았어요. 머지않아 모든 것이 끝날 테니까. 우리는 그 애를 책임질 생각이 없어요. 밤을 넘기고 나면 그 애가 당신들에게 돌아가거나 신에게 돌아가거나 하겠죠. (오, 신이여 가엾은 아이를 돌봐 주시길, 하고 그녀는 무의식중에 적었다가 소스라치며 그 문구를 지우려고 했으나 이미 배어든 잉크는 지워지질 않았고 비쩍 마른 입안에서는 침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으므로 그녀는 혀 밑의 연약한 살점을 손톱으로 꼬집어가면서 말간 침을 모아야 했다. 그러나 잘못 쓰인 문구는 뱀의 허물처럼 부드럽고 조심스러운 방식으로 떨어져나가는 대신 엉망으로 찢겨져나가고 말았다. 그녀는 처음부터 다시 글을 작성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당신들을 동정할 거라고 생각하진 말아요. 밤새도록 신께 기도드려보아도 소용없을 거예요. 이미 벌어진 일인 것을, 신은 그의 손을 떠난 생명들의 발악에는 무심하시답니다. 우리의 잘못된 생을 신이 취소하지 않은 것처럼요. 내 어머니는 내 의사도 묻지 않고 나를 낳았죠. 내 얼굴 가득 시꺼먼 병변이 생길 것을 알았던 것인지 몰랐던 것인지, 그녀가 밤마다 내 덜 여문 덩어리에 입술을 가져다대고 노래를 불러 주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어요. 그녀조차도 믿지 못했지만, 어머니는 내게 그런 노래를 불러준 적이 없다고 하더군요. 어쩌면 그건 그녀가 아닌 다른 어미의 뱃속에서 내가 죽었을 때, 내가 더 이상 살아가지 않도록 결정한 누군가가 내 탄생을 유예하도록 결정하기 직전에 들었던 노래일지도 몰라요. 운이 좋았다면 영원히 유예된 생을 누군가 잊어버리고 처음부터 없던 일로 할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어머니는 나를 낳았고 난 그 끔찍하게 감미로운 목소리와 함께 태어나고 말았어요.
아무도 내게 태어나고 싶으냐고, 평생토록 날 비참하게 만들 병변을 얼굴 가득 달고 살고 싶으냐고 물어보지 않았어요. 당신은요-그녀는 이 문장에서 또 실수를 범했는데, 여느 우울증자가 그렇듯이 지나치게 협소한 시야로 글을 쓰는 본인, 즉 그녀 자신만을 청자로 지칭한 것이었다, 편지를 쓴 자들이 정말로 그녀와 무관한 부랑자였다면 그녀를 청자로 특정짓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애에게 태어나고 싶냐고 물어본 적이 있나요? 살아가지 않을 권리를 존중해 준 적이 있나요? 그녀의 죽음은 순전히 당신의 책임이에요.
내가 오래도록 꾸었던 꿈이 있는데 한밤을 떠돌던 누런 짐승들이 나를 쫓아 달려드는 꿈이었답니다. 난 계속해서 도망치다가 문득 더 이상 도망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그 자리에 멈춰 섰는데 짐승들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내게 달겨들더군요. 끔찍하게 커다란 아가리를 쫙 벌리고, 검붉은 속을 훤히 드러내면서 말이에요. 그러고서는 과도하게 뾰족하고 과도하게 많이 돋아난 이빨로 날 씹어먹었는데 내 손가락을 팔목을 발가락과 발목, 무릎과 어깨, 성기와 골반을 마치 애무하는 것처럼 순차적으로 물어뜯었죠.
난 계속 생각했어요. 어째서 아직도 죽지 않은 것일까. 이게 악몽이라면 짐승에게 물어 뜯기기 직전에 깨어났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 아직 죽지 않았기 때문에 난 깨어날 수 없는 것이다. 난 짐승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곧장 죽어버려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하지만 그 생각을 했을 때 이미 내 목을 조를 손가락은 사라져버린 뒤였고, 틀어막을 코도, 입술도, 심지어는 목까지도 뜯겨나간 뒤였어요. 나는 더 이상 어떻게 살아있는지도 모른 채 살아서 죽음을 목격하고 있었지만 죽음은 도래하지 않았죠.
당신들이 찾아오지 않는다면 아냐를 그런 꼴로 만들어 줄 수도 있어요. 환멸을 체현하는 거미줄의 절망. 그 애는 잠 없이도 악몽을 꿀 거예요, 거미들이 그 애를 옥죄고 그 애의 풍성한 속눈썹과 검붉고 탐스러운 피부와 향기로운 음문을 물어뜯고 그 애가 잃어버렸던 죽음을 되찾아 줄 거예요, 그 멍청한 아이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모든 것을 느끼며 죽어가야 할 테죠, 이건 모두 당신 때문이에요. 언젠가 당신들이 우리를 잡는다고 해도, 판사가 우리에게 어떠한 절망적인 형량을 구형한다고 해도, 그 애의 원한을 풀어주기 위해 우리의 손톱을 물어뜯고 손목과 발목, 목과 가슴을 찢어발긴다고 해도, 그 애의 고통, 그 애의 죽음과 그 애의 삶은 결코 취소되지 않을 거예요. 그 애는 영원히 죽어갈 거예요. 당신이 그 애를 낳았기 때문에. 그 애가 누릴 수 있었던 유일한 권리, 태어나지 않을 권리를 존중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신들은 그 애가 생산해낸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이 생산해내는 자본을, 싸구려 통조림과 낡은 테이블, 속이 드러난 나무바닥과 거미줄이 엉겨붙은 커튼 따위를 만들어낼 능력조차 없으면서 그 애가 벌어온 사물들을 돼지처럼 소비하고만 있죠.
우리의 어머니가 우리를 낳지 않았더라면, 처음부터 실존하지 않을 수 있도록 우리의 미루어진 생을 계속해서 미루어놓았더라면 가련한 아냐가 납치될 일도 없었을 거예요. 당신들이 버릴 수 있는 것, 그것이 무엇인지는 우리도 모르겠어요. 어찌되었든 당신은 아냐가 치러야 할 값을 치러야만 할 거예요. 이제는 쥐들처럼 낳고 낳고 또 낳는 일을 그만둘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실존하지 않았더라면 처음조차 없었더라면 이 지독한 회한도 환멸도 공포도 고통도 절망도 없었겠죠.
아냐는 우리가 데리고 있어요. 그 애는 비명조차 지르지 않고 순순히 우리를 따라왔어요. 눈부시게 순수하고 검은 눈이 우리를 들여다보는 순간, 난 미친 듯이 전율이 일 정도로 놀랐는데 그 애는 조금도 겁을 먹지 않은 것처럼 보이더군요. 아냐는 정말 아름다워요, 사람이 아닌 것처럼, 어떠한 깊이도 침전물도 없는 순수한 생명처럼, 그래요, 마치 쥐나 바퀴벌레, 장미꽃이 그러하듯 절망적으로 아름다워요. 어쩌면 그녀는 신일지도 모르죠. 신도 저를 낳은 성모를, 제 무거운 책임과 과업을 일깨워준 마리아를 증오할지도 모르죠. 애인도 남편도 없이 홀로 배부른 창녀가 스스로 계단 아래에 몸을 던져 뱃속의 신성을 살해했더라면 사탄숭배자였던 산부인과 의사가 으스러진 신의 성체를 다른 낙태아들과 함께 구워 먹으며 개처럼 울부짖었더라면-그렇다면 그들의 악마적인 제의는 성체성사였던 것일까요? 신의 조각난 신체를 뜯어먹는 의식이라면- 대홍수에서 아무도 살아남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아무리 생각해도 값이 맞지 않는 이 부조리한 생을 표류하지 않아도 되었을까요?
삶은 정말이지 손해보는 장사예요. 합리적으로 생각한다면 치밀한 자살계획, 최대한 고통을 덜고 죽어가는 순간에 대한 의식조차 유예할만한 완벽한 자기 살해 계획을 세울 필요도 없이 가장 비참한 방식으로라도 죽는 것이 이롭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난 살면서 한 번도 자살에 대한 강박으로부터 자유로웠던 적이 없어요. 매 순간은 자살에 대한 유예였고 실패였죠. 배가 부를 때에도 배가 고플 때도, 잠을 잘 때도, 잠을 자지 못할 때도 난 천국까지 이어진 동앗줄에 목을 매고 대롱대롱 걸려 있는 내 몸을 생각했어요. 어머니가 나를 낳았을 때, 감각신경도 아직 발달해있지 않았고 사유를 공간화할 만한 시냅스들의 활성화도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하늘을 떠도는 천사들의 투명한 날개처럼 멍청했을 때 모든 것이 끝났더라면 당신의 딸이 납치되는 일도 없었겠죠. 쥐의 내장처럼 미끌거리는 탯줄이 내 목을 감았을 때, 의사는 탯줄을 자르고 내 생을 구해내지 말았어야 했어요.
내가 죽음을 향해 힘찬 발길질을 했을 때, 그들은 지독히 작은 나를 인큐베이터 속에 넣고 내 생을 연장시키며 어머니에게 내 목숨값을 청구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녀도 나도 동의한 적 없는 생에 대한 값을, 만약 네 삶이 그렇게 비쌀 줄 알았다면 절대 병원에 가지 않았을 거야, 하고 어머니는 한탄하곤 했죠. 난 못배우고 비실비실한 데다가 지독하게 불운한 놈이어서 태어나면서 지었던 빚을 아직까지도 갚지 못했어요. 난 당신들 딸처럼 아름답지도 않았으니 미인대회에 나갈 수도 없었고 길거리에서 배를 깔고 기어다니면서 빌어먹을 수밖에 없었죠. 내 다리가 튼튼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또래 애들은 나를 쫓아다니면서 다리에 침을 뱉고 발을 꼬집고 짓밟기까지 했는데, 그 애들이 내 입에 오줌을 쏴갈겨도 일어날 수 없었죠. 아직 내가 동의한 적도 없는 생의 값을 갚을 수 없었으니까. 난 내 건강에 대한, 내 생존에 대한 값을 치러야만 했어요. 온종일 자살에 대한 시만 쓰고 자살에 대한 계획만을 세우고 환영일 뿐인 제게 총을 겨누고 목을 조르고 죽여보았자 이루어지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당신들은 아냐의 아름다움이 생산해내는 가장 천박한 물질 하나도 만들어낼 수 없는데 돼지처럼 소비하고 구토해내는 무수한 사물들을 아냐 없이 이제 어떻게 살아갈 셈인가요. 당신이 치러야 할 값을 치르고 당신의 죄를 되찾아 가시길. 하지만 값을 알 수 없을 거예요. 당신에게만 알려지지 않은 삶의 숱한 비밀들처럼 아냐의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당신들이 끝내 이해하지 못했던 것처럼. 아냐를 처음 마주친 순간 우리는 모든 것을 이해했죠. 그 애의 검붉은 살덩어리는 갓 도축한 돼지처럼 부드럽고 매혹적이었어요.
엄마는 끝나지 않은 협박문을, 그렇게 길 필요도 없고 그렇게 길어서는 안 되는 협박문을 써내려가고 있었다. 그것은 그녀의 참회록이기도 했다. 엄마는 스스로 그 부조리한 문장들의 모순성을 자각조차 하지 못한 상태로 말도 안 되는 말들을 횡설수설하며 써내려갔다. 우리 가엾은 오빠는 죽은 줄도 모르고 엉엉 울면서, 봤어요, 엄마? 찾은 거예요, 뭘 찾았는데요, 하면서 제 시체를 찾아서 울부짖고 있었다. 아빠는 여전히 베트남 인민들의 머리에 바람구멍을 내놓으며 죽어라 뒈져라 이 새끼들 저리 꺼져 저리 가 저리 가란 말이야 하면서 울부짖고 있었다.
엄마는 새벽이 밝아오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 말도 안 되는 협박문을, 못 배운 부랑자라면 결코 쓰지 않을 수사적인 편지를 썼다. 사실은 편지도 협박문도 아니었다. 그 협박문에는 목적이 없었고 원하는 것이 뚜렷한 이라면 누구라도 요구할 물품이나 금품, 접촉 시간과 장소에 대한 확실한 표현도 없었으니까. 사실 진짜 협박문이라면 제 어미나 죄에 대한 쓸데없는 하소연이 아니라 오직 그것, 원하는 물품이나 금품, 접촉 시간과 장소에 대한 확실한 표현만을 하고 말 것이다. 사실 이미 죽은 아이를 되찾을 생각도 없었고 원하는 물품이나 금품, 접촉 시간이나 장소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던 엄마, 오직 하루라도 빨리 난소암에 걸려 죽어버리기를 이 참혹한 고통이 끝나고 죽어버리기만을 바랐던 엄마는 언제나처럼 읽히지 못할 것이라고 반쯤 체념하면서 횡설수설하는 문장들만을 늘어놓고 있었다.
그때 우리 집에 침입해들어 온 적도, 그를 따라온 적도, 심지어 태어난 적도 없는 베트남 이민자들을 막 다 죽인 아빠는, 엄마 뭘 찾은 거예요? 뭘 봤어요? 하고 흐느끼는 죽은 오빠의 울부짖음을 듣고는 화들짝 놀라서, 여보 이제 그만 써요. 어서 경찰에 전화를, 전화를 하란 말이야. 밤이 새기 전에 모든 게 끝나버리기 전에, 부랑자들이 그 애를 죽이기 전에, 하고 소리를 질렀고 엄마는 끝나지 않은 시를 멍하니 들여다보다가 수화기를 들고 경찰에 전화를 걸고는 흐느끼면서, 우리 아냐가 아냐가 납치당했어요, 아냐가, 아냐가, 하고 소리를 질렀고 당황한 경찰관은 울부짖는 여자를 진정시키려 애쓰면서 잠깐만요. 부인, 무슨 상황인데요. 아냐가요? 아냐가 누군데요, 아냐가 뭘 어쨌다고요? 하고 물어보았다. 여자는 아냐가 죽어버렸다는 말을 죽고, 싶은 건 아냐도 아니고 부랑자도 아니고 나라는 말을 꾹 참고는, 아냐가 납치당했다고요, 아냐가, 내 딸이 말이에요, 하고 흐느꼈다. 여자는 흐느끼다가 흐느끼다가 일흔 번째 쥐새끼가 내 앞을 지나갔을 때 퍼뜩 놀라서는 수화기를 내던지고, 엄마 뭘 찾은 거예요? 뭘 봤어요? 하고 소리치는 아들을 밀치고 지하실로 뛰어내려가서 백한 마리의 쥐새끼를 세고 있는 나를 끌어안고는 숨이 넘어갈 듯이 울다가 울다가 더 이상은 울지 못할 지경까지 울다가 침과 오줌에 젖은 내 더러운 옷을 벗기고 처음으로 내 엉덩이와 가슴팍을 깨끗이 씻기고는 새 옷으로 갈아입혀 주었다. 그때 나는 백서른 마리의 쥐들을 세고 있었다.
엄마는 저리 가, 저리 가란 말이야 하면서 통통하고 아름다운, 뭉게구름과도 같은 쥐새끼들을 이리저리 밀쳐내면서 내 붉고 탐스러운 살을 보호했다. 이제 백마흔다섯 마리의 쥐새끼들을 일별하고 있던 나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나는 곧 천국으로 갈 것이었고 수천 마리의 쥐새끼들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천사와도 같은 희고 순결한 털들로 내 몸을 받친 채 하늘로 올라갈 테니까. 그곳에서 난 내킬 때면, 배가 고프든 고프지 않든 내 주위를 둥둥 떠다니는 천사를 한 마리씩 잡아 찍찍거리지 못하게 주둥이를 틀어막고는 폭신하고 말캉한 살을 베어물고 솜사탕보다도 달콤한 피를 맛볼 수 있을 테니까. 엄마가 희고 부드러운 담요를 머리까지 덮어줄 때에도 상관없었다. 왜나하면 나는 눈을 뜨지 않고도 코와 입이 막혀도 전혀 답답하지 않았고 그녀가 흐느끼는 것을, 더는 눈물도 흘리지 못한 채로 꺽꺽거리며 신음하는 것을 또렷하게 볼 수 있었으니까.
경찰차는 비명도 사이렌 소리도 없이 천공을 떠도는 별들처럼 우리 집으로 흘러들고 있었다. 이백다섯 마리의 쥐새끼, 술렁거리는 장미들이 입을 활짝 벌리고 웃는 꼴을 발견한 오빠는 자지러지면서 울부짖었다.
뭘 봤어요, 엄마. 뭘 찾은 거예요?
하얀 베일에 감싸인 안개 속에서 내 아름다운 몸이 천사처럼 떠가는 모습을 본 오빠는 꺽꺽거리면서, 살려줘, 살려줘, 아니야, 죽여줘, 죽여줘, 하고 울부짖었다.
뭘 봤어요, 엄마. 뭘 찾은 거예요.
하지만 난 오빠를 원망하지도 않았고 그를 죽일 생각도 살릴 생각도 없었다. 난 당신을 연민하고 있었기 때문에. 너무도 못생긴 당신, 나와 같은 배에서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났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흉측한 당신, 얼굴에는 검붉은 병변이 피어났고 귀 밑에는 손톱만한 사마귀가 덜렁거렸으며 코는 비뚤어졌고 천사의 손가락이 침묵을 강요한 것처럼 쥐들이 갉아먹은 것처럼 입술 위쪽부터 코 안쪽까지 깊게 팬 언청이었고 눈은 원숭이의 성기를 삼키며 죽어가는 작은 개구리처럼 당장이라도 터질 듯 튀어나와 있었고 무엇보다도 당신이 타고난 흉측함을 배가시켜주는 그 끔찍한 앙상함, 집안의 먼지들만을 주워먹으면서 배를 불리는 쥐새끼들도 지금 내 눈앞을 지나가는 이백서른 마리의 쥐들도 당신만큼 마르지는 않을 것인데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을 구분해놓는 오랜 버릇을 끝내 버리지 못한 당신, 가공되지 않은 생, 불결한 살에는 식욕을 느끼지 못하는 당신, 밤이면 입을 꼭 다물고 잠드는 당신, 그래서 길을 잃은 날벌레들이 당신 입 속으로 기어들어가 당신의 양분이 될 기회조차 차단해버리는 당신, 그래서 한밤중이면 써내려가지 못하는 시를 웅얼웅얼거리는 엄마보다도 지뢰를 밟고 잘린 다리로 기어나가는 베트남 청년들을 쏘아대며 비명을 지르는 아빠보다도 더 마른 당신, 끔찍할 정도로 앙상한, 끔찍할 정도로 못생긴 당신을 나는 도저히 미워할 수 없었다. 아름다운 자들, 더 가진 자들은 자비로운 법이니까, 아직도 죽지 못한 당신을 당신보다 훨씬 먼저 죽은 내가, 당신보다 빨리 죽음을 달성한 내가 원망할 리 없으니까.
그 작고 앙상한 손으로 내 목을 조를 때에도 나는 신음조차 지르지 않고 터무니없이 연약한 압박을 그대로 감내했다. 그건 내가 당신이 늘 말하던 대로 너무나 멍청해서도 아니었고 당신을 두려워해서도 아니었다. 단지 당신이 너무도 못생겼기 때문, 수천 마리의 쥐떼들과 함께 천국에 올라가 당신에게 아름답고 튼튼한 동앗줄을, 당신의 목을 조르고 진작에 이루어져야 했을 당신의 죽음을 매듭지을 천국의 탯줄을 내려주고자 했기 때문이었음을 당신은 알아야 한다. 당신을 구원할 수 있는 이는 성체성사 때마다 신의 살을 찢어먹고 신의 몸으로 단결하는 신의 분신들도 아니었고 수십 년 동안 자살 대신 수열과 방정식에 대해서 골몰한 수학교사도 아니었고 자살 기도자들을 삶으로 되돌려놓는, 어미의 뱃속에서 죽음을 향유하고 있는 태아들을 삶으로 끄집어내는 의사들도 아니었으니 내가 당신에게 현현한다면 그것은 당신을 원망해서도 당신에게 복수하기 위해서도 아니었고 오로지 당신을 구원하기 위해서였으니 그 끔찍한 흉측함과 망설임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서였으니 당신은 수천 마리의 쥐 떼들과 함께 천국으로 올라가는 나를 두려워해서는 안 되었다. 당신은 신이 아닌 내게 기도를 올려야 했다. 왜냐하면 신은 당신처럼 흉측하고 불운한 이들에게는 아무런 관심도 없으니까. 수천 수, 수만 수의 시를 써내려간 여자들이 시비 하나 세우지 못하고 수만 수의 시를 지어냈어도 시인이라 불리지 못하고 시인일 수도 없었던 여자들. 그녀들이 한 번도 읽히지 못한 싯누런 종이 속에서 죽어가는 동안에도 그녀들에게 아주 사소한 기적, 수백 명 수천 명의 시인들에게 자연스럽게 내려졌던 그 헤픈 기적을 내려주지 않았던 무심한 신에게 자비를 구하는 일이 어리석다는 사실을 당신들은 모를 수가 없었다.
실제로 엄마의 시가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진 것도, 그녀의 유일한 글이 알려지게 된 것도 신의 은총이 아닌 나의 죽음 덕분이었다. 수만 번의 기도는 하룻밤의 비극보다도 쓸모가 없었다. 매일같이 감사를 유예하며 기도를 드리고 시를 쓰고 불순한 청년들을 쏘아대는 일, 팔리지도 않을 꽃반지와 꽃팔찌와 꽃목걸이와 꽃발찌를 만드는 일은 아무런 소용도 없었고 존재는 완성되지 못할 작업이라는 말은 완전히 진실인 것도 거짓인 것도 아닌 것이, 오직 당신들에게만 적용되는 진실이었고 내게는 순전히 거짓일 뿐이었으니까. 못생긴 당신들이, 가난한 당신들이, 궁핍하고 쓸모없는 당신들이 생애 내도록 빌어먹은 진리를 나는 단순히 태어나는 것만으로 성취할 수 있었다. 나는 너무도 아름다웠으니까, 하늘을 떠도는 수천, 수만 마리의 통통한 쥐새끼들이 그러하듯, 가련한 새의 붉은 내장 속에서 꿈틀거리며 헤엄치는 회충이 그러하듯, 깊은 어둠을 열어젖히고 입술을 벌린 장미의 속살에서 잠을 자는 투명한 이슬이 그러하듯 나는 아름다웠으니까.
오빠가 학교에서 화장실도 가지 않고 주변의 남자아이들이 그러는 것처럼 낙서를 하며 여자아이의 속옷을 들추며 낄낄거리지도 않고 우물 속에 빠진 커다란 암컷 비둘기에 대해 생각하지도 않고 미동도 하지 않고 앉아 이해하려 애쓰던 방정식은 내 검붉고 향기로운 맨살이 현현하는 진리에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천박하고 흐릿했다. 내가 어떤 방정식이나 화학식보다도, 세계의 기호를 전유하려 노력한 학자들이 갈구하던 어떤 수열보다도 명징한 진리였다는 것은 정말이지 거짓이 아니었는데, 수십년 동안 방정식에 골몰한 수학 교사도 수십 년 동안 삶과 죽음의 문제에 골몰한 의사도 수십 년 동안 성경에 골몰한 주교도 내게 와서 내 아름다움에 무릎을 꿇고 진리를 구하고자 했으니까. 그들이 발견한 진리는 내 검붉고 통통한 발이 드러내는 아름다움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고백하였으니까. 얘야, 너는 정말 아름답구나. 너처럼 아름다운 건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나는 그들이 곧장이라도 장미처럼 끔찍하고 연약한 입, 바짝 마른 침과 늙은이 냄새가 진동하는 아가리를 벌리고 내 발가락을 핥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으나 엄마는 고개를 저었고 아빠도 고개를 저었고 오빠는 고개를 저으면서 그들의 두툼한 등을 밀어내면서,
엄마 뭘 봤어요, 뭘 찾은 거예요?
흐느끼기까지 했으니, 그들은 빈곤한 가족들의 말라빠진 얼굴, 강 너머에 사는 부랑자들처럼 추레하고 말라빠진 낯을 보고 깜짝 놀라서는 나를 두고, 그들이 구가하던 어떠한 방정식보다도 수열보다도 더욱 진리에 가까운 내 아름다움을 이곳에 버려두고 도망가고 말았다. 그러고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날이 갈수록 통통해졌고 더 검어졌고 더 축축해졌다. 이제는 나조차도 내 참혹한 아름다움을 감당해낼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대체 뭘 먹고 이렇게 통통한 거니 아냐는? 하고 묻는 부모의 물음에 대답할 수도 없었다. 나도 내가 어째서 이토록 강렬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태어난 것인지 몰랐으니까. 나는 아름다움을 구걸한 적도 기도한 적도 없는데. 그렇다면 신은 지독한 변태인 것이 틀림없다. 그는 아름다움을 갈구하는 이들에게는 축 늘어난 배와 쿱쿱한 악취, 버림받을 것이 처음부터 예정되어 있던 비뚤어진 이목구비, 감옥과도 같은 골방에 틀어박혀 그들의 추악함을 감지할 눈도 악취를 맡아낼 코도 없이 탄생하고 지워지기를 반복하는 방정식에 대고 수음을 하는 가련한 노인들, 돌이켜볼 만한 추억조차 없이 늙어가는 이들에게는 그들이 영원히 성취할 수 없을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만을 덩그러니 던져주고는 내게, 한 번도 제대로 기도를 한 적도 없고 진리를 갈구한 적도 없으며 가장 기본적인 방정식도 이해하지 못하는 내게 현현했으니까.
천국으로 가면 나는 가장 상석에, 신조차 앉지 못하는 높은 자리에 수천 마리의 하얗고 토실토실한 쥐들을 깔고 앉아서 절망적으로 가난하고 앙상한 당신들을 내려다보며 질기고 부드러운 탯줄을 내려줄 것이다. 그러니 오빠는 두려움에 바들바들 떨면서,
엄마, 뭘 본 거예요, 뭘 찾았어요?
하고 물을 필요도 없었고 아빠는 더 이상 베트남 인민들의 가엾은 머리를 터뜨릴 필요가 없었고 엄마는 협박문을 빙자한 시를 써내려갈 필요도 없었다. 당신들을 구원할 수 있는 건 부도덕한 신도 수학교사도 신부도 의사도 아닌 내 아름다움이었다. 밤의 밀지에서 돌연히 튀어나와 당신들을 뜯어먹는 짐승들도 아니고 악몽의 구석자리에서 시선만 남은 눈을 몽롱하게 깜빡거리면서 당신들의 죽음을 멍하니 응시하고 있는 당신들의 응시도 아니었다. 당신들은 이제 내가 내려줄 아름다운 동앗줄만을 기다리면 되었다. 이제는 고통도 결핍도 그 불가해한 못생김도 모두 끝날 터이니 이제는 내게도 신께도 나를 실어나르기 위해 죽어간 수천 마리의 쥐새끼들에게도-아 이제 삼백 번째 쥐새끼가 막 나를 스쳐지나갔는데- 용서를 구할 필요가 없었으니, 나는 정말이지 당신들을 원망하지 않기에 당신을 증오하고 경멸하기에 나는 너무도 아름다웠고 당신들은 너무도 못생겼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