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거미가 꺼질 무렵 소년을 만날 채비를 하기 위해 집에 들어온 소녀는 나무문 바로 맞은 편, 통나무 식탁에 앉아 있는 여자를 보고 몸을 굳혔다. 붉은 루즈와 흰 분을 바른 얼굴이 유령의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그녀는 도시에서 사는 소녀의 고모였다. 소녀는 인사도 하기 전에 고모에게 어쩐 일이냐고 물었다. 오랜만에 고모를 만난 기쁨보다 예기치 못한 방문에 소년을 만나러 가지 못할 것이라는 예감에 따른 실망이 더 컸던 것이다. 대답은 그녀의 옆자리에 앉아 있던 남자-고모부로부터 들려왔다. 소녀는 그가 말을 꺼낼 때까지 그의 존재를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특별히 어두운 구석자리에 앉아 있는 것도 아니었건만 이상하게도 그의 존재 자체에 흐릿한 안개가 덧칠된 것처럼 그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도 네 생일이잖니, 하는 사내의 경쾌한 목소리만은 분명하게 알아들을 수 있었다. 모르고 있었니? 하고 이어서 묻는 고모의 목소리에 소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고모는 도시 생활에 완전히 젖어든 것이 틀림없었다. 아니, 어쩌면 소녀와 검은 숲 주민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이제는 날짜 따위를 셈하며 살아가는지도 몰랐다. 검은 숲 주민들은 국가에서 시간과 숫자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해왔고 행정과 정치 시스템을 그에 맞추어 개편하였다는 소문을 들어본 적이 있지만 그 정확한 의미는 알지 못했다. 검은 숲에는 마을을 오고가는 버스조차 없었고 신의 자비를 설파하듯 시간의 유용성을 전도하는 이도 없었으며 시계라는 괴상한 기계장치도 없었기에, 행정으로부터 소외된 지역이라 행정과 정치가 개편된다 해서 아무런 영향을 받을 것이 없었기에, 결정적으로는 시간과 숫자를 알고 가르쳐줄만한 선구자가 아무도 없었기에 검은 숲 주민들은 아직 기본적인 수의 개념조차 익히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니 소녀의 생일을 아는 사람은 이곳에 없었다. 심지어는 신의 생일을 아는 사람도 이곳에는 없을 것이었다.
그나저나 고모는 어떻게 소녀의 생일을 알게 되었을까? 그녀는 시간이 흘러가는 모습을, 수십 개의 숫자들이 매혹적으로 흘러가며 돌아오는 모습을 바라보며 수의 개념에 매혹되어 점술가처럼 그녀의 탄생일과 죽음의 날짜, 그녀의 연인의 탄생일과 죽음의 날짜, 온갖 유명인사들의 특별한 날짜들을 셈하다가 기어이 소녀의 미래와 이미 오래전에 지나가버린 소녀의 탄생일까지 되짚어보았을 것이 틀림없었다. 고모가 도시로 떠난 지도 벌써 오 년이 다 되어간다. 소녀의 탄생은 그보다 십여 년 전에 이루어졌으며 이젠 돌이킬 수 없이 지나가버린 시간이다. 고모는 대체 무엇을 축하하려 하는 것일까? 이토록 뒤늦게. 이토록 갑작스레 소녀와 소녀의 가족들에게 시간을 강요하려 하는 것일까? 너희는 오래도록 탄생의 순간을, 모든 최초의 날짜와 숫자들을 잊고 살아왔다. 생일을 기억하지 않고도 너희는 생을 포기하지 않고 견뎌왔다. 그것으로 된 것이 아닌가? 최초의 순간을, 그녀의 최초를 지금에 와서 무엇하려 떠올려야 한단 말인가?
소녀는 모욕감에 부들부들 떨었지만 방 안으로 들어가버리지는 않았다. 소녀는 유달리 키가 크고 부드러운 검은 머리를 가진, 가족들 어느 누구보다도 소녀를 닮은 이 여성을 좋아했던 것이다. 예전에 그녀는 소녀와 함께 더러운 흙바닥에 주저앉아 붉은 대기 위로 검은 구름들이 자리를 옮겨가는 모양을 검은 베일이 내려뜨려질 때까지 바라보곤 했다. 그때 너희는 시간 같은 건 몰랐다.
소녀는 그녀의 하얗고 단단했던 손목이 금빛의 뼛조각들 같은 금속 파편들로 메워져 있는 모습을 보고 경악했다. 손등 바로 아래 부분에는 둥근 유리판이 있었고 멀어서 잘 보이진 않았지만 그 속에는 분명 숫자들이 적혀 있을 것이었다. 곧고 아름다운 손목은 이제 시간의 지시물로, 끔찍한 냉기를 품은 기계장치로 변해버렸다. 소녀는 인조가죽 외투를 벗지 않고 그대로 자리에 앉았다. 팔뚝 곳곳에 남은 깨문 자국들-소녀와 소녀의 개가 함께 만든 흔적들-을 보이고 싶지 않기도 했거니와 소름끼치는 추위가 소녀의 맨살을 파고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고모는 이전의 몽롱하고 나른한 눈이 아닌, 선명하게 반짝이는 고양이 같은 눈을 하고 있었다. 풀처럼 녹색이며 나무뿌리처럼 기민한 눈이었다. 무엇보다도 소녀를 선뜩하게 만든 것은 그녀의 부드럽고 상냥한 목소리였다. 그녀는 도시생활이 행복하다고 했으며, 그녀의 말에서 소녀는 거짓을 찾아낼 수 없었다. 그녀는 정말 행복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만족하고 있었던 것이다. 행복과 만족, 소녀에게 가장 이질적인 단어들을 고모는 거침없이 내뱉고 있었다.
소녀의 아빠와 엄마가 브로콜리 스프와 버섯 스테이크, 두부찜과 오트밀, 가지구이를 차례차례 내오는 동안에도 고모는 시간과 행복에 도취된 눈으로, 놀랍도록 선명하게 자신의 현실을 응시하는 눈으로, 더 이상 꿈꾸지 않는 눈으로, 꿈 밖의 세계에 만족하는 눈으로 소녀를 부드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소녀는 꼼짝도 하지 않고 자리에 앉아 그녀의 녹색 눈을 마주보고 있었다. 소녀의 엄마와 아빠까지 자리에 앉고 나자 본격적인 수다가 시작되었다. 마리, 케이크가 있으면 좋았을걸. 하고 고모가 운을 떼자 소녀의 엄마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 간단한 동작이 거부를 의미하는지 무지를 의미하는지, 그게 아니라면 둘 모두를 의미하는지 소녀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고모는 알아차린 듯, 아니, 아무래도 상관없는 듯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도시는 어때? 하고 소녀의 아빠가 묻자 고모는 기다렸다는 듯 눈부시게 하얀 치아를 활짝 드러내며 완벽해, 하고 말했다. 이전까지 시골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기억도 안 날 만큼. 여전히 흐릿하게 보이는 사내-고모부가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이이는 정말 도시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어요. 마치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 속에서만 자라난 사람 같아요. 다들 아시겠지만 시골에서 자라난 건 제 아내고 도시의 원주민은 오히려 저라고 할 수 있는데, 이웃들은 항상 반대라고 생각하더군요.
그래요. 이 사람은 화장도 안하고 정장도 입지 않고, 세상에 연극이나 오페라도 보러 다니지 않으니까 그렇게 말할 만도 하죠.
하지만 거긴 자연을 볼 수 없잖아. 가끔은 시골이 그립지 않아? 하고 소녀의 아빠가 조심스럽게, 행복의 그림자를 찾아 무언가 보이지 않는 균형을 맞추고 기울어진 지평의 축을 보상하려는 사람처럼 물었다.
아니. 사실 난 자연이 끔찍하게 싫어. 도시는 다른 어떤 장소보다도 자연과 거리가 먼 곳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살기 어렵다는 말은 아니야. 정반대지. 추악하고 무례한 것들, 가장 기본적인 예의마저 지키지 않는 짐승들과 식물들, 더러운 분뇨의 악취와 전조도 없이 온몸을 적시는 폭우,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해.
지긋지긋하다고? 우리도?
아니야, 아니야, 그럴 리가 없잖아. 마리랑 오빠, 그리고 우리 귀여운 조카는 다르지. 전혀 달라. 고모는 몇 번이나 부정하면서도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그들 가족, 시골에서 태어나 시골에서만 자라난 그들과 다른 자연을 구분하는 차별점인지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식사자리에는 불현듯 거북한 침묵이 감돌았고 차갑고 밀도 높은 비말들을 가라앉힐만한 화제를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소녀의 엄마가 갑작스레 아이 이야기를 꺼냈을 때까지도. 아이 생각은 있어? 하고 묻자마자 고모의 시선은 식탁 아래 부분으로 가라앉았다. 마리, 난 아이가 싫어. 끔찍할 정도로 싫어. 아이만큼 자연에 가까운 것도 없을 거야. 그것들은 나오는 순간부터 짐승이야. 난 내 몸에서 짐승을 기르고 또 한 마리의 짐승을 실존하게 만들고 싶진 않아. 그 어린 것들은 화장조차 할 수 없어. 분과 가면으로 자연의 추악함을 가릴 수조차 없다고. 한동안 그것들은 성기와 항문을 그대로 드러낸 채 엉덩이까지 푹 숙인 머리를 이리저리 들이대며 굴욕적인 자세로 돌아다닐 거야.
그래도 넌 유리를 예뻐하잖아.
유리는, 하고 말을 꺼낸 고모는 갑작스레 널 올려다보더니 입을 다물었다. 어쩌면 그녀는 눈치챘는지도 몰랐다. 소녀가 잔뜩 묻히고 온 개의 냄새에, 소녀의 살 가득 들어찬 붉은 피의 흔적에 서서히 익숙해져간 가족들과는 달리 멸균된 숫자들로만 가득한 도시에서 찾아온 고모는 소녀에게 풍기는 짐승의 냄새를 단번에 알아차렸는지도. 소녀는 짐짓 모른 체하며 시선을 피했고 소녀의 엄마는 연근뿌리를 입 속으로 밀어넣으며 중얼거렸다. 너한테 이런 말을 꺼낸 건 널 비난하려고 한 건 아니야. 그냥 이 근처에서 일어난 기적을 네게도 알려주고 싶었을 뿐이지. 숲 건너편에 작은 산이 있는 건 알지? 네가 이 마을을 떠나고 난 뒤에 거기에 호스피스 병원이 들어섰어. 죽음만을 목전에 둔 사람들이 가는 곳 말이야.
호스피스 병원에 대해서는 소녀 역시 잘 알고 있었다. 그곳 창문에서는 검은 숲과 호수가 빽빽한 감옥처럼 비참하게 비추어보인다는 것도, 허공만을 멍하게 들여다보는 이들의 눈은 끔찍하도록 고요한 잿빛이라는 것도. 언젠가 소녀의 엄마가 소문의 진상을 확인하기 위해 그곳에 봉사활동을 신청했을 때, 소녀 역시 엄마와 함께 그곳까지 차를 몰고 간 적이 있었다. 죽음을 목전에 둔 이들이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끼칠지 모른다며 엄마는 소녀에게 차 안에서 기다리라고 이야기했다. 소녀는 병원이라기보다는 성당처럼 보이는 건물을 멍하니 내다보며 차 안에서 엄마의 외도에 대해, 엄마 자신도 모르게 그녀가 은밀히 욕망하는 아름다운 잠든 여자에 대해, 그녀에게 일어난 비극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소녀는 감옥 같은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허공을 응시하고 있는 노인의 눈부시게 하얀 눈동자와 눈을 마주쳤다. 소녀는 깜짝 놀라 몸을 떨며 고개를 움츠렸지만 그녀를 비난하는 노인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공기를 밀어내는 소리의 언어로 대화를 하기에 그들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소녀는 노인의 눈 속에 끈적하게 고여 있는 침묵의 잿빛을 알아볼 수 있었다. 한때 그녀의 꿈속을 맴돌았던 절망과 같은 빛깔이었다. 소녀는 호스피스의 내부도 이 숲처럼 절망적으로 적요하리라는 것을, 저 위에서 내려다보는 소녀의 눈동자, 숲 속에 파묻혀 있는 작은 조약돌과 같은 그녀의 눈동자도 검은 창살처럼 보이리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오래지 않아 소녀의 엄마가 지친 얼굴로 병원에서 나왔을 때, 그녀에게 묻어 있는 잿빛 음영의 얼룩이 그녀가 상상 속의 연인을 만나지 못했음을 짐작케 했다. 아무것도 보지 못했어, 하며 수척한 잿빛에 물든 여자는 고개를 저었다.
소녀는 그녀가 보지 못한 것이 삶과 병에 질려버린 노인들이 아니라 아름다운 여자의 녹색 눈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여자가 꿈속에서 부드러운 살갗을, 임신 이후 붉게 일어난 배의 여린 튼살을 만지작거린다는 것을, 튼살을 비집고 들어오는 손톱의 날카로운 공격이 황홀하도록 아프기에 그녀는 꿈속의 연인을 사랑할 수밖에 없게 되어버렸다는 것을 소녀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소녀의 엄마는 그런 꿈을 잊어버린 듯, 오로지 무성한 소문과 궁금증 사이를 떠도는 것뿐이라는 듯, 매일같이 여자의 녹색 눈에 대해 떠들면서도 스스로의 외도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본인도 알지 못하는 외도를 캐물을 정도로 야비한 인간은 아니었기에, 실연한 어미가 한껏 내려앉은 얼굴을 차창 밖으로 꺼내고 숨을 들이쉬는 모습을 그저 묵묵히 지켜볼 뿐이었다. 서류를 찾지 못했대, 하고 여자가 갑작스럽게 말을 꺼낼 때까지. 분명히 미셸에게 말했는데, 오늘 이 시간에 자원봉사를 하러 오겠다고. 미셸이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걸 너도 봤을 거야. 소녀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지만 “고개를 끄덕인다”는 말을 들으며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저기 근무하는 사람들 끔찍할 정도로 게으르더군. 미셸이 대체 저곳에서 어떻게 버티는지 모르겠어. 서류를 제대로 확인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그만 가라고 중얼거리는데, 프론트에 앉아 있던 여편네가 얼마나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는지. 그리고 얼마나 오만하던지! 내가 알아듣지 못하고 다시 말해달라고 수십 번은 소리치고 나서야 제발 조용히 하라며 나가라고 그 한마디를 더 해주더군. 난 끝까지 오기로 버티려고 했지만 그곳의 침묵이 갑자기 소름끼치게 무섭게 느껴져서, 내가 유령이 된 것만 같아서 견디지 못하고 뛰쳐나온 거야.
소녀는 어린애처럼 흐느끼는 여자의 어깨를 끌어안고 괜찮다고, 나는 듣고 있다고 속삭였다.
그러나 소녀는 아무것도 듣고 있지 않았다.
지금도 소녀는 제대로 듣고 있지 않았다. 다만 선뜩하리만치 무력한 눈동자들에 대해 생각할 뿐이었다. 호스티스 병원에 사는 이들은 언제나 무른 미음만을 먹는데 그마저도 입 안에 넣는 것을 거부하며 굶주린 채 죽어간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영양 주사를 놓는 일조차 그들은 진저리를 치며 싫어했다. 그들은 텅 빈 몸에 무언가를 삽입하는 일을 완고히 거부했다. 그래서 대부분의 환자들은 비참하게 말랐다고 미셸이 재잘거리는 소리를 소녀 역시 기억하고 있었다. 소녀는 문득 환자들이 육식을 시작하면 그들의 지독한 거식은 폭식으로, 미칠듯한 갈망과 갈증, 식욕으로 변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모든 전율과 동요가 정지한 채 깊숙이 침잠해 있던 회색 눈은 격렬한 붉음과 녹색이 휘몰아치는 역동적인 잿빛으로 뒤바뀔 것이다. 피 한방울, 단 한방울의 붉은 피가 그들의 몸 깊숙이 자리한 결핍을 일깨우고 잠들어 있던 고통을 속속들이 깨어나게 할 것이다. 그들은 몸부림치며 격렬하게 죽음을 갈망하며 살아갈 것이다. 죽음을 노래하며, 죽음을 찬미하며, 죽음을 갈구하며 비명을 지를 것이다. 그 간절한 울음소리를 먼 차창 밖에서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소녀 역시 피에 물든, 피로 짜인 깊은 심연을 훤히 드러내며 비명하리라. 치료제는 고기일 것이었다. 그들이 오래도록 미루어 두었던, 혈육으로 만들어진 붉은 사과가 그들을 깨어나게 할 것이다. 길고 아늑한 꿈으로부터, 고통도 소란도 없이 가라앉은 짙은 재들로부터.
하지만 소녀는 그들에게 소녀의 개를 내어줄 생각이 없었다. 소년의 연기처럼 푸른 몸과 살의 강렬한 악취는 오롯이 소녀만의 것이었다. 소녀의 내부에서 날뛰고 있는 개의 붉은 살점 역시, 오로지 소녀만의 것이었다. 소녀는 텅 비어버린 이들에게 그녀의 황홀한 고통을 나누어줄 마음이 없었다. 그들은 소녀에게 아무런 격동도 전해줄 수 없으므로. 그러기에 그들은 너무 늙었고 너무나 오래 절식하였다.
소녀가 또다시 그녀를 사로잡은 육식에 대한 생각에 몰두해 있을 때, 소년의 핏빛 입술과 오줌의 짭조름한 맛을 떠올리고 있을 때, 소녀의 엄마는 무르고 싱거운 연근을 껌처럼 씹어대며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갔다.
호스티스엔 대부분 암 말기의 환자들이나 끔찍하게 늙은 병자들이 입원하곤 했는데, 작년에 아주 예쁘고 어린 처녀가 들어왔어. 그 여자는 스물쯤 되었고 정말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웠다고 마치 잠자는 숲속의 공주 같았다고 거기에서 근무하는 간호조무사가 이야기하는 걸 직접 들었지. 미셸 알지? 그 천방지축에 수다쟁이 녀석. 그 꼬맹이가 벌써 자라서 호스피스 병동에 간호조무사로 근무하고 있다고. 숲까지 소문을 실어나른 것도 다 그 수다쟁이 녀석이지. 숲속에 갇힌 공주처럼 잠에 들어 있다는 그 아름다운 여자에 대한 이야기는 작년부터 올해까지 부락 사람들에게 있어 가장 흥미로운 얘기였어. 그녀는 가엾게도 어린 나이에 중풍에 걸려 쓰러졌는데 처음에는 여느 중풍 환자들처럼 몸이 마비되어 휠체어 생활을 하고 침대에서 제대로 일어나지도 못했으며 마비된 입술에서 짐승같은 신음만을 어어 거리고 비참하리만치 말간 침을 줄줄 흘리는 바람에 하루종일 달콤한 산딸기 대신 희고 눅눅한 휴지조각을 입속에 물고 있어야 했고, 그녀의 침대 옆에 놓인 휴지통에 하루에도 수십 개의 축축한 침투성이 휴지조각을 뱉어내야 했지만, 그래도 의식만은 명료했었대. 매일 얇고 부드러운 휴지조각에 날카로운 볼펜으로 시를 쓸 정도로. 그 휴지들은 그녀의 부드러운 침을 막기 위해, 그녀의 더듬거리는 비참한 신음과 말을 막기 위해 그 자리에 놓아둔 것인데 그녀는 불구가 되어버린 언어를 밀봉하러 놓아둔 그 휴지에 글을 썼던 거야. 그녀의 언어가 아직 온전히 불구가 되어버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던 건지, 그녀에게 견딜 수 없이 무참한 언어가 넘쳐흐르고 있었기 때문인 건지는 아무도 알 수 없겠지.
그녀는 계속해서 시를 적었어. 난 매일같이 휴지 위에 볼펜으로 언어를 휘갈겨 인박는 여자의 가늘게 떨리는 손을 생생하게 상상할 수 있어. 그녀는 처음엔 휴지 위에 글을 쓰는 법을 익히지 못해 그 엷은 피륙을 다 찢어발기고 말았을 거야. 하지만 연약한 살갗 위에 글을 새기는 일에 익숙해져가면서 그녀는 점점 더 흐릿한 글씨로 휴지를 애무하듯 달래며 글을 쓰는 방법을 터득해갔겠지. 마지막 시기에 쓴 시들에는 찢긴 자국이 하나도 없었을 거야. 가족들은 그녀가 써놓은 글들을 제대로 보지도 않고 구겨서 버렸을 거야. 그녀의 침이 눅눅하게 차오른, 언어를 버리기 위한 휴지조각과 검은 잉크로 축축해진, 언어를 남기기 위한 휴지조각을 구분할 수 없었겠지. 그녀가 뱉어버리는 모든 언어는 이미 버려진 것이었고 다시는 살아날 수 없는 낙엽과 같은 것이었어. 푸른 새잎이 돋아나기 전까지 헐어버린 나뭇잎을, 곧 떨어져버릴 쭈글쭈글한 이파리들을 돌보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는 거지. 그러니 아무도 알지 못했던 거야. 그녀의 글씨가 어땠는지, 그녀가 쓴 글들이 뭐였는지, 글자가 새겨진 휴짓조각은 얼마나 너덜너덜했는지, 미셸 녀석은 이런 중요한 이야기는 하나도 해주지 않았지만 난 확신할 수 있어.
소녀는 엄마와 아빠, 부락 사람들로부터 저마다 다른 어휘와 문장구조로 이루어진 동일한 테마의 이야기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들은 바 있기에 무심한 태도로 가엾은 여자, 스스로 이야기를 쓰고 있음에도 이야기의 주체가 아닌 이야기의 대상으로 전락해버린, 무수히 변질된 이야기들의 희생자가 되어버린 여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하지만 무심한 것은 소녀뿐이었다. 고모와 고모부, 심지어는 이 이야기를 수십 번은 더 듣고 또 말해왔을 아빠까지도 엄마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연근이 형체도 없이 물러져 갈빛으로 변한 그녀의 혓바닥을 바라보고 있었다.
적어도 그 여자가 마지막으로 쓴 시가 죽음에 관한 것이었다는 건 모두에게 알려져 있지. 가족들은 밀랍처럼 하얗게 바랜 얼굴과 단단하게 감긴 눈동자 아래에 그녀의 피부처럼 눈부시게 흰, 마른 휴지 조각을 발견하고 그 속에 있는 죽음과 절망의 언어들을 읽어낼 수 있었어. 그들은 그게 유서라고 생각했지. 아마 그건 여자가 평소처럼 쓰고 버려지기만을 기다리던, 아무에게도 보일 수 없었던, 그럼에도 계속해서 써내려갈 수밖에 없었던 일상의 언어였을 거야. 그녀에게 일상은 이미 죽음과 절망, 고독뿐이었을 테니까. 아마 여자는 그 이전에도 비슷한 시를 몇 번이고 썼을 거야. 난 똑똑히 볼 수 있어. 그녀가 써내려간 긴 유서들, 한결같이 찬란하고 사무치는 절망의 언어들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녀의 침이 묻은 휴지들과 함께 눅눅한 침통으로 변해버린 휴지통에 던져버리는 가족들의 무심한 손을. 그래도 마지막 글만큼은 세상에 공개되었지. 난 그만큼 참혹한 시를 본 적이 없어. 그래. 파울 첼란이나 카프카만큼 잔혹한 언어였지. 감히 지금 그녀의 절망을 입에 올림으로써 식사자리를 망치고 싶진 않아. 그녀가 허공을 떠도는 물고기들의 환각에 시달렸다는 것만 말해둘게. 그 짧은 시에 모든 게 나와 있어. 꿈쩍도 하지 못하는 그녀의 지친 몸을 물어뜯는 물고기들의 포악하고 비정한 비늘, 악몽에 사로잡혀 미물들에게도 조롱당하는 그녀의 허약한 육체가 감내해야만 했던 절망. 그 절망의 언어들을 남겨두고 그녀는 눈을 뜨지 않고 계속해서 잠만 잤어. 분명 죽은 건 아니었고 미세한 숨을 들이쉬고 내쉬긴 했지만 갓 죽은 시체처럼 하얗고 어슴푸레해서 그녀의 가족들은 모두 그녀가 순결한 하늘의 품으로 돌아간 줄 알았다는 거야. 왜 가장 아름다운 아이들은 신의 부름을 받아 일찍 죽어버리곤 하는 법이고, 또 그렇게 믿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는 법이니까.
그녀가 지독히 긴 잠에 빠져든 뒤 가족들은 그녀의 눈을 볼 수 없었다고 해. 아직까지도. 미셸이 그녀의 입원비를 정산하기 위해 온 그녀의 엄마에게 은밀하게 여자의 눈 색깔을 물어보았지만, 그녀의 엄마는 당황한 눈빛으로 허공을 노려보더니 갑자기 미셸을 적개심 가득찬 눈빛으로 쏘아보며 고개를 돌리고는 곧장 호스티스 바깥으로, 죽음에 종사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도 가두어두지 못할 곳으로 빠져나갔다고 해. 아마 그녀의 엄마도 너무 오래도록 그녀의 눈을 마주보지 않아서 잊어버렸던 게 아닐까. 그러니 그녀의 눈이 어떤 색깔인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난 너처럼-엄마는 고모의 신비로운 녹색 눈과 눈을 맞추며 속삭였다.- 숲을 닮은 녹색 빛깔이라고 상상하고 있지. 설탕에 절인 딸기 잼처럼 햇빛에 짙게 절여진 나뭇잎처럼 달콤하고 황홀한 색깔일 거야.
하여간 네게 말해주고 싶은 건 그녀가 이곳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 임신을 했다는 거야. 식물인간이나 다름없던 그 여자가. 병원에서는 난리가 났지. 그래도 그 할머니한테는 잘 된 일이지, 손자를 가지게 되었으니, 손자는 그녀처럼 아름다운 얼굴과 눈빛을 가지고 있을 거야. 그녀처럼 황홀한 목소리로, 그 애의 어미에게 닥친 불운이 모두 걷힌 순결한 상태로, 마비와 절망에 잠식되지 않은 말간 목소리로 지저귀겠지. 하고 소녀의 엄마는 갑작스러운 만족감에 젖어들어 말했다,
소녀는 그녀의 엄마가 언제나 냉소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니 그녀의 말은 무언가를 신랄하게 비꼬기 위해서 내뱉은 역설은 아닐 것이었다. 엄마의 목소리는 평소와 다름없이 포근하고 부드러웠으며 그녀의 표정은 어떠한 냉기도 없이 따스했다. 그렇기에 소녀는 더더욱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신실하고 사람 좋은, 풍만하며 언제나 정상적이고 일상적인, 안온한 소란의 프레임 속에서만 몸을 움직이는, 햇살 내음이 나는 입술이 벌어지면서 한 말을 소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다른 가족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이거나 별 말 없이 식사에 열중했다. 엄마의 말이, 강간을 축복이라 여기는 듯한 말이, 심지어는 어떤 냉소나 역설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그녀의 조심스러운 말투가 소녀를 미칠 듯 긴장하게 만들었다.
다행이야, 하고 속삭이는 부드러운 목소리는 연인의 외도를 비꼬는 이의 질시 섞인 자조도 아니었다. 여자는 지금 연인을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환상 속에서 그녀의 악몽을 애무하던 흰 피부의 여인을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그녀의 녹빛 눈동자를 계승하기 위해, 동화처럼 아름다운 육체와 자손에 대한 갈망을 물려주고 그녀 어미의 대를 이은 혈족에 대한 갈망을 해갈시켜주기 위해 그녀의 존재를 포기하고 새로운 삶을 잉태한 자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었다. 자궁의 일상은 본질에 대한 배반이라는 듯, 절망적인 악몽 속에 드러누워 심연을 헤엄치고 있는 주인의 의지에 반하는 새로운 잉태라는 듯, 의지에 대한 소름 끼치는 배신만이 자궁의 역할이라는 듯. 소녀의 어미는 그녀의 환상 속에서 숨쉬는 연인의 존재를 잊었고 아름다운 녹색 눈동자를 잊었으며 숲을 떠돌며 흐느끼던 실연의 고통을 잊었다. 그녀는 피흘리는 자궁의 일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오로지 빼앗기고 내어주기 위해 존재하는 자궁에 대해 뒤틀린 자궁에 대해 삽입과 오염만을 위해 출혈하는 자궁에 대해. 자궁의 일상에 대해. 소녀는 식물의 뿌리와 이파리 냄새가 짙게 배어든 채식주의자들을 둘러보았다. 경악하는 것은 오직 소녀뿐인 듯 했다. 자궁의 일상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소녀뿐인 듯 했다. 소녀는 어떻게 그들이 채식주의자일 수 있는지, 살아 있는 동물의 살을 찢고 번식을 강요하고 물어뜯으며 희생시키지 않는 그들이 어떻게 여자의 자궁의 희생을, 자궁의 겁탈과 자궁의 갈취와 자궁의 출혈을 당연하게 여길 수 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일상.
그것은 소녀가 이해해야만 하는 부조리한 언어와도 같은 일상이었다. 아무런 연관도 없는 음절과 음절의 배열로 붉은 하늘과 땅, 숲의 검고 포악한 잎사귀들과 가죽이 벗겨진 개를 지칭해야 하듯 그것은 그저 그렇게 정해진 자연이라고 가족들은 은밀히 속삭이고 있었다. 일상을 살아가기 위해 소녀는 그들의 암시를 받아들여야 했다. 소녀 역시 자궁을 밀쳐내고 자궁을 점유하고 자궁을 갈취하고 자궁을 물어뜯으며 나온 아이였으므로. 자궁에 대한 부정은 소녀의 실존에 대한 부정이었으므로. 살아가기 위해, 존재하기 위해 소녀는 그들의 부조리에 침묵해야만 했다. 해갈되지 못한 뒤틀림에. 끝내 납득할 수 없을 부조리에. 소녀는 엄마에게 그녀의 존재를 강요한 적이 없었다. 소녀는 타인의 욕망과 습관에 의하여 실존을 선고받았고 그 무거운 원죄를, 타인의 자궁을 갈취하고 자궁을 점유한 죄를, 타인의 몸을 돌이킬 수 없는 몸으로 변하게 만들어버린 죄를 갚아나가야만 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러한 잉태와 삶, 생존은 소녀의 욕망이 아니었다. 소녀는 한 번도 실존을 원한 적이 없었고 그것은 삶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한번 시작된 실존을, 한번 이루어진 학살의 역사를 돌이킬 수는 없었다. 소녀는 자궁을 출혈시키고 자궁을 버리고 나와 또다시 그녀의 자궁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자연스러워야 할 일상이, 일상적인 식사 자리가 갑작스레 몸서리칠 정도로 낯설었다. 식은땀이 옷속으로 흘러내렸다. 땀이 지나가는 자리에 가려움을 느끼던 소녀는 돌연 자신이 속옷을 입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전까지는 의식하지 못했던 사실이었다. 그녀는 이 자리에서 홀로 나체였다. 그녀의 무방비한 몸이 임신을 하게 되기까지, 의식 없이 누워 악몽만을 들여다보고 있는 여자의 자궁에 기생충처럼 이질적인 생명이 잉태되기까지 어떤 일이 벌어져야 하는지 그들은 잊고 있는 것 같았다. 심지어 엄마는 직접 그 여리고 가느다란 몸 속에 소녀라는 낯선 생물을 받아들여 소녀를 낳았는데도! 그녀 스스로 질 안에, 그녀의 몸 깊숙한 곳으로 타인의 성기를 받아들이고 그녀의 몸 속에서 끔찍이도 낯선 존재들이 그녀의 피와 살, 골수와 영혼을 빨아먹으며 자라나는 무수한 날들을, 일상의 범위 내에서는 벌어질 수 없는 부분까지 확장된 질 속에서 거대한 유충들이 머리를 들이밀고 빠져나가는 것을, 그녀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그녀의 몸-영혼이 준비되었는지 따위는 신경조차 쓰지 않고 저들만의 성장을 마치고 마구잡이로 그녀의 밑을 비집고 빠져나가는 것을, 그 붉은 덩어리들이 빠져나간 자리를 하얀 수술용 라텍스 장갑을-조금 움직일 때마다 쥐새끼의 비명 같은 끔찍한 마찰음이 나는- 들이밀고 마구잡이로 들쑤시며 그 속에 있는 찌꺼기들을 파내는 수모를 모두 경험했음에도! 소녀의 엄마는 모두 알고 있었으면서도 아무것도 모르는 체, 아이를 낳는 과정을, 새로운 실존을 감당하는 과정을 대단한 행운인 양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었다. 심지어는 눈을 감고 깊은 잠 속에 빠져든 숲속에 공주에게 닥친 끔찍한 생의 비극이. 죽음을 목전에 두고 죽음의 몽롱한 꿈 속에서 아름다운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헤엄치고 있는 그녀는 대체 어떻게 아이를 낳아야 한단 말인가? 무엇을 위해 피흘리고 무엇을 위해 배를 열고 무엇을 위해 성기를 훤히 드러내고 무엇을 위해, 대체 무엇을 위해 다시 생 속으로 깨어나야 한단 말인가? 소녀가 잠이 든 사이 낯선 이의 성기를 받고 낯선 숨을 틔워내며 임신을 해도 엄마는 다행이라고, 손자를 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이야기할까? 다시는 눈을 뜨지 못할 너 대신 새로운 눈빛을 새로운 몸 속에 이어진 생의 조리개를 다시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속삭일까? 눈 색깔 따위, 아무래도 좋은 것 아닌가. 꿈 속의 찬란한 세계는 모두 흑백이니.
소녀는 갑자기 일련의 모든 불가해한 사건들이-소녀의 악몽과 소년의 출현, 개의 죽음과 소녀의 육식, 사내의 강간과 식사 자리에서의 괴담과 같은 서늘한 대화- 그녀는 이해하지 못하는 모종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토성의 궤도를 따라 천칭을 맞추어 도는 수레바퀴 은하의 별처럼, 소녀에게는 보이지 않는 별과 미립자들의 운동이 시계장치처럼 정확한 배열을 갖추어 완벽한 결정을 이루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소녀는, 그 신비로운 기적을 직접 확인하기에는 너무나 약하고 어두운 소녀의 눈망울은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고, 단순히 인과관계라는 무성의하고 조악한 법칙에 의거하여 이 모든 일들에 어떤 규칙도 없다고 지레 짐작해버릴 수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행성들의 결속과 조응하는 먹구름 속 물방울의 미립자들, 우주의 광활한 어둠에 상응하는 생물 내부의 빛, 끊임없이 융합하며 깨어지며 발산하는 광대한 빛의 에너지. 어둠이 빛을 예견해야 하듯, 달의 궤도가 지구의 존재를 전제해야 하듯, 소녀는 푸른 유령에게 끌어안기던 악몽으로부터 모든 일들을, 그녀의 최후까지 이어진 행성들의 교향곡 전체를 첫 번째 음표만으로, 아니, 아직 현실의 소리벽을 부수고 나타나지 않은 채 현상의 밑에서 잠복하여 떨고 있는 악보의 침묵만으로, 잠재태로서 현존하는 음률만으로, 다만 침묵만으로 모든 조화를, 필연적인 음률들의 배열과 행성들의 궤도를 예언하는 푸른 얼룩만으로 모든 비극을 깨달아야 했는지도 몰랐다. 사건들은 언제나 보이지 않는 곳에 들리지 않는 침묵의 음표로 현존하고 있었다. 그것을 발견하지 못한 것은 그녀의 잘못인지도 모른다. 죄처럼 무겁고 짙은 그녀의 무지가 그녀를 그토록 고통스럽게 했는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울음이 그득 담긴 첫 번째 병을 깨뜨리는 순간부터 그녀는 끝까지 이어진 생의 화음들을 읽어내야 했는지도 모른다.
신이라면 그랬을 것이다. 제 안에 모든 가능성과 가시성, 지각과 이성을 함축하고 있는 라이프니츠의 신이라면. 그녀 역시 신의 모든 찬란과 음울, 절망을 담고 있는 신의 물방울이었지만, 그녀는 그녀의 내부를 또렷이 들여다보기에는 너무나 작고 메말라 있었다. 자그마한 곡률에 흐려진 빛깔들을 읽어내는 방법을 소녀는 배운 적이 없었다. 그녀의 내부에 존재하는 화성들을 읽어내는 방법을, 모든 감정과 현상, 사건들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방법을 그녀는 배운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어리석게도 자꾸만 아팠고 자꾸만 울었다. 개의 피처럼 황홀하고 뜨거운 눈물이 산성 독처럼 그녀의 속을 할퀴며 지나갔다. 뜨겁고 아프기만 한 눈물이 신과 같은 형질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모든 비밀과 미래, 인연과 법칙을 함축하고 있다는 것을 소녀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어딘가에는 그녀의 미래가, 프리즘 너머 색색으로 분해된 빛의 모든 순간들처럼 넓게 펼쳐진 그녀의 미래를 들여다보고 있는 눈이, 들여다보일 수 있는, 해체될 수 있는 순간들이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이겠지. 그녀는 풀 수 없는 그녀의 비밀이. 그녀는 들여다볼 수 없는 그녀의 순간들이. 그녀는 맛볼 수 없는 그녀의 살이. 그녀는 해갈할 수 없는 그녀의 갈망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