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푸른 혀 밑에서는 개구리의 시꺼먼 다리가 설탕처럼 진한 향기를 풍기며 녹아가고 있었어요. 나는 아무것도 용서할 수 없었고 용서함으로써 내 안에서 내보내는 일도 없었죠. 그래서 의사는 그녀의 머리를 절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했을 거예요. 의사는 썩어가는 그녀와 함께 죽어가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어요. 당신들은 내가 가엾다고 했죠. 그녀의 아름다움은 돌이킬 수 없는 불치의 병으로 변해버렸으니까. 어쩌면 그녀는 처음부터 나를 오염시키고 있는 썩은 조직일 뿐일지도 몰라요. 당신의 눈은 유달리 검고 커다랗군요. 마치 우리 언니의 눈처럼. 당신은 내게 입을 맞추고 혀와 살을 입속으로 밀어넣지 않겠죠.
언니는 행복하다고 말했지만 나는 그녀를 끝내 이해할 수 없었어요. 그녀가 죽고 난 뒤 아무도 그녀를 죽어가는 나를 불러주지 않았어요. 아니, 처음부터 나를 바라보고 나를 불러주는 이는, 내 입 속에 혀와 살과 꽃과 설탕과자를 밀어넣는 이는 아무도 없었어요. 유리배를 만든 사내는 짙은 안개를 강으로 착각하고 허공을 표류하다 추락해버렸고 산산조각난 유리에 비추어지는 빛의 파편에는 이름이 없었어요. 나는 불가능한 배를 타고 낯선 땅으로, 뒤집힌 세계로, 기울어진 중력으로 항해하고 싶었어요. 아니, 아니에요, 당신의 말은 터무니 없는 거짓이에요. 나는 그녀를 위해 울지 않으니까. 그녀는 이제 내 신체를 소진시켜가는 치명적인 독과 다름없고 암덩어리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있어도 암덩어리를 위해 우는 사람은 없으니까. 나는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데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없어요. 왜냐하면 당신이 오기 전에 이곳에는 아무런 소리도 냄새도 형상도 없었으니까. 유령조차 없었죠. 당신이 오고서야 내가 잘 들리지 않고 잘 보이지 않고 잘 느껴지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당신이 당장 내 귀를 뜯어낸다고해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나는 그녀를 끝내 이해할 수 없었어요.
그녀가 밤마다 내 귓가에 나직한 자장가를 읊조렸다고 해도 오른손으로 내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해도 알 길이 없었죠. 왜냐하면 나는 잠들어 있었으니까. 나는 언제나 잠들고 싶었고 잠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았는데 언니가 자는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어요. 테두리가 둥글게 일그러진 악몽이 깨진 거울처럼 산산이 흘러내리고 나면 가장 먼저 보이는 얼굴은 그녀의 사과처럼 작고 둥근 머리, 유리구슬처럼 매끄럽고 커다란 두 눈이었죠. 난 그녀의 머리를 끌어안고 노래를 부르고 싶었고 그녀를 사랑하고 싶었고 그녀를 살고 싶었어요. 하지만 나는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고 그녀를 사랑할 수 없었고 그녀를 살 수도 없었죠. 그녀가 트럭 운전수의 아들과 손을 잡고 입을 맞추며 뺨을 맞고 흐느낄 때도 나는 그녀 삶의 내용을 묵묵히 건너다볼 수밖에 없었어요. 트럭 운전수도, 트럭 운전수의 아들도 내 귀를 어루만지고 내 뺨을 찢어낸 적이 없었어요. 그녀가 새처럼 가녀린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위로를 받을 때도 나는 그녀를 물끄러미 건너다보기만 했어요. 나는 그녀의 삶의 내용이 투사되는 투명한 그림자를 음울하게 건너다보기만 했죠. 그녀의 부드럽고 불그스름한 피부.
내가 울고 있다는 말은 거짓이에요. 나는 나를 흘리고 있지 않아요. 그러니 당신도 나를 위로하지 말아요. 나는 죽는 게 두렵지 않으니까. 왜냐하면 삶 이전에는 죽음뿐이었으니까. 절망도 관념도 우울도 고독도 심지어는 신체조차도 없는 곳, 장소조차도 없는 곳. 왜냐하면 공간에 대한 인식은 모두 우리의 사유 속에서 이루어진 형이상학적인 구획에 불과하니까. 시간에 대한 인식과 마찬가지로, 죽음이 어떠했는지 나는 조금도 기억할 수 없어요. 당신도 그렇겠지만 나는 삶으로 쫓겨나온 뒤부터 사유하기 시작했어요. 내 기억이 시작될 무렵은 벌거벗은 쥐새끼처럼 찍찍거리며 흐느낄 때도 지네처럼 발발거리며 돌아다닐 때도 아니었어요. 어느날 문득 최초의 사유가 시작된 때부터, 끝없이 거대한 진공의 하늘을 아주 오래전부터 예상해왔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부터였죠. 이후에 맞닥뜨리게 될 날벌레들과 악몽, 개의 울음과 그네의 흔들거림을 익숙한 징후처럼 느끼게 되었던 날, 귓가를 스치며 날아가던 검은 새의 날개가 무참하게 그리웠던 날, 과거를 사유하듯 현재를 인식하게 된 날, 나는 처음으로 나에 대한 관념을 갖게 되었고 끔찍이도 작고 불가해한 세계를 인식하게 됐어요. 난 삶에는 더 이상의 새로움이 없다는 사실, 내가 기어가거나 걸어가며 맞닥뜨리는 세계는 한결같은 징후들의 울렁거림에 속해 있으리라는 사실, 세계는 하염없는 신체의 연장일 뿐이라 더 이상 길어지는 다리를 신비롭게 바라보지 않게 되었듯이 짙은 붉은빛으로 저물어가는 하늘을 보며 아름다움을 느끼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깨달았죠. 삶은 영겁의 무게를 가진 모래만큼이나 가벼웠고 길었어요. 향방을 아는 바람이 끝간 데까지 멈추지 않는 것처럼. 익숙한 모래, 익숙한 먼지와 익숙한 벌레들과 익숙한 소음, 익숙한 고통과 익숙한 졸음, 익숙한 현기증은 멎지 않았죠.
두 개의 머리를 가진 괴물을 낳은 엄마가 비명을 지르며 흐느낄 때도 나는 그녀의 악몽을 멈출 수 없었어요. 우리는 그녀가 열달 전부터 우리를 쓰다듬고 나방의 날개처럼 간지러운 목소리로 언니의 이름을 부를 때도 그녀에게 우리의 불구를 고백할 수 없었어요. 배신당한 여자가 우리의 존재를 우리와의 만남을 파기할 때도 우리는 울지 않았어요. 언니의 눈은 그때부터 유리구슬처럼 커다랬고 머리는 지금보다도 더 작았으며 목은 홍학처럼 가늘고 길었죠. 엄마는 당장이라도 그녀의 붉고 말캉한 볼에 입을 맞추고 싶었겠죠. 하지만 그녀의 아름다운 생에 너무도 뚜렷하게 매달린 검고 추악한 종양을 견디지 못했을 거예요. 언니가 고아로 자란 것은 순전히 내 탓이라고 할 수 있어요. 지금도 영면에 들어야 했을 언니의 오른손과 오른발, 우리가 자의적인 규율에 따라 서로의 머리에 할당했던 그녀 몫의 신체가 아직도 움직이고 아직도 피를 흘리며 아직도 살아있는 것도 순전히 내 탓이라고 할 수 있어요.
난 그녀의 죽음을 저지하는 질병이고 삶으로의 폭력이에요. 내가 아니라면 그녀는 처음부터 죽음의 품에서 뜯겨나가지 않았을 텐데. 우리의 신체에 억류되어 있던 대치되는 힘들. 예견된 파열과 치명적인 불균형. 함정과도 같은 불가능성. 우리는 언제라도 찢어질 것을 예상하고 있었어요. 우리는 결코 중화될 수 없는 독이었으니까. 우리는 서로에게 불결한 신체였으니까. 하지만 우리는 오른팔과 오른손을 오른발과 왼발을 나누어 쓰는 수밖에 없었어요. 우리는 경계도 없이 흔들리는 예측 불가능한 생의 힘을 진공 상태로 되돌리는 방법을 알지 못했죠. 우리의 몸은 오직 힘들의 혼돈적인 충돌, 임시적 상태로서의 몸, 잠재적 갈등의 물리적 장소에 불가능했어요. 우리는 계속해서 위태로웠어요. 우리는 의미로부터, 신체로부터 미끄러졌어요. 끝내 우리는 서로를 마주 볼 수 없었어요. 나는 그녀를 연민할 수 없었으니까.
난 검은 새가 내 왼쪽 귓가를 스쳐가는 것을 선연하게 기억하고 있었지만 그 이상의 새로움은 없었어요. 나는 태어나기 이전부터 면역된 신체였으니까. 의도된 무반응성. 나는 오로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하여 운동하며 맥박하며 출혈하며 울부짖고 침묵하는 기계장치와도 같았으니까. 나는 처음부터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을 영원히 이해할 수 없었고 이해하는 것만을 이해하며 살아왔어요. 살아오면서 나는 한 시간 가량의 내용조차도 갖지 못했죠. 언제나 언니를 향하여 기울어지는 부드러운 얼굴과 흐느낌, 애원과 속삭임의 내용을 나는 조금도 기억할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그녀를 스쳐가고 그녀를 가득 채운 소란은 내 것이 아니었으니까. 나는 끝내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을 기억할 수도 없었으니까. 검고 통통한 천사들이 그녀를 탐하고 그녀를 파헤치고 그녀의 부패를 촉진해도 나는 파리 한 마리도 쫓아낼 수가 없었죠. 왜냐하면 그들의 뾰족한 주둥이는 나를 향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나는 살아가기 위해 나를 적시고 나를 오염시키고 나를 짓물러버리는 생들을 부단히 쫓아내고 생을 무력화시킬 수밖에 없었어요. 그렇지만 정말로 고백하건데 나는 한 번도 살고 싶지 않았어요. 우리의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근원적인 분열과 불결함을 중화시키는 치료제가 있었더라면 죽어버리는 것은 내 쪽이었을 테죠. 내가 살고 그녀가 죽은 것만큼 비극적인 일은 없다고 써주지 않겠어요? 당신이 정말 유명한 학자라면, 당신의 글이 출판될 거라면. 내 진실은 핍진하지 않더라도 당신의 말은 매혹적이니까요. 당신이 정말 제도에서 승인하고 지원하고 생활비까지 대주며 삶을 연장시키는 작가라면, 내가 쓸 수 없었던 내 이야기를 출판해낼 계획이라면 말이에요.
아직도 나는 왼손으로 글을 쓰고 있는데 출판사에서는 오른손으로 쓴 글이 아니면 받지 않겠다더군요. 하지만 난 오른손으로 글을 쓰는 방법을 몰라요. 이제와서 오른손으로 글을 쓸 수는 없어요. 살인을 한 손은 살인에 대해 생생한 증언을, 사실적인 증언을, 진실을 들려줄 수 있겠지만. 의미의 가로막. 중화할 수 없었던 독과 지속불가능성. 나는 소리 없이 망가져가고 있어요. 그녀의 입술에서, 귀밑까지 찢어진 입술 가득 물린 온갖 잡동사니에서는 참을 수 없이 향기로운 울음소리가 흘러내려요. 그녀의 입술은 더 푸르고 더 검게 물들어가요. 나는 한 번도 그녀의 입 안에 혀와 살을 밀어넣을 수 없었어요. 그녀의 오른손을, 길고 가느다란 목으로 향하는 오른손을 붙잡을 수도 없었죠. 왜냐하면 나는 끝내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 검은 새는 한 마디 말도 없이 내 귀를 스쳐지나갔고 나는 그 순간 내가 영원히 나로부터 떨어져나갔다는 것을, 나는 알 수 없는 곳으로 날아간 새의 날개를 영원히 되찾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말았으니까.
그녀의 무릎에 엎드린 채로 나는 엉엉 울었어요. 그녀의 오른손은 내 머리 위를 쓰다듬지 않았고 내 둥근 귀, 울음소리도 없이 떠나간 새의 날갯짓이 흘러들어간 귓바퀴를 쓰다듬지 않았고 눈물로 짓무른 내 붉은 눈꺼풀을 쓰다듬지 않았고 나를 위로해 주지도 않았어요. 나는 우리에게 날개가 없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어요. 그녀가 나를 두고, 내가 그녀를 두고 날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날 수 없는 세계만을 헤매게 되리라는 사실을, 행복하다고 속삭이는 그녀를 생경한 눈으로 바라보게 되리라는 사실을, 그녀를 이해할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그녀의 경험이 내 삶의 내용이 될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도저히 삼켜낼 수 없었어요. 온몸을 찢어짐에 내맡긴 채 비명만 남은 얼굴을 뜯어내도 그녀는 내 머리칼을 쓰다듬지 않았고 먹먹한 귀를 어루만지지 않았고 한 마디 위로조차 해주지 않았어요.
우리는 처음부터 서로를 이해할 수 없었어요. 친구도 가족도 연인도 이웃도 될 수 없었죠. 그래서 우리는 서로가 없는 것처럼 굴었고 같은 흙 위에서 자라나며 자연스럽게 서로를 증오하는 식물들처럼 서로에게서 멀어지기 위하여 버둥거렸어요. 그래도 우리는 굵고 가느다란 목이 깃들어 있는 신체를 떠날 수 없었죠. 당신도 보다시피 죽고 난 뒤에도 그녀는 맥동하는 심장과 흘러넘칠 듯 흐느끼는 징후들을 벗어날 수 없었어요. 우리는 임시적으로 정초해 있는 땅에서 도망칠 수 없었어요. 검은 새가 그러했듯 귓가를 가볍게 스치며 날아갈 수 없었다고요. 나는 나를 두고 떠나가는 내 죽음을 무력하게 일별할 수밖에 없었죠. 만약 당신 말이 사실이라면, 여전히 나는 믿을 수 없지만 내가 울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나는 죽음을 떠나보낸 이후로 최초의 사유가 발발한 이후로 내내 울고 있는 게 분명해요. 썩어버린 코가, 지네 다리처럼 길고 풍성했던 속눈썹이 하나씩 하나씩 떨어져 내려요.
더는 내 것이 아닌 가슴 위에는 언니의 머리가 쏟겨들고 있는데 나는 죽음으로 흥건히 젖어들고서도 아직 죽음이 아니에요. 나는 언제나 내가 되고 싶은 것이 될 수 없었으니 어쩌면 영원히 죽지도 못하겠죠. 언니의 머리를 따라 그녀의 홍학같이 붉고 가느다란 목, 이제는 검푸르기만 한 목이, 가슴이, 심장과 폐가, 신장이, 대장과 소장, 그를 잇는 모세혈관들이 전부 썩어버리고 울긋불긋하게 부풀어오른 사지가 낙엽처럼 떨어져나가고 검은 수의를 입은 천사들이 빽빽한 기포처럼 온몸을 뒤덮고 난 뒤에도 어쩌면 나는 살아서 당신과 나눈 대화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을 거예요. 당신에게 내 혹독한 거짓을 모두 고백한 것을 후회하고 또 후회하겠죠. 왜냐하면 난 당신이 떠나가지 않기를 원하니까. 이곳에서 나와 같은 거짓을 믿고 나와 같은 불결함으로 오염되기를 원하니까. 그러면 나는 언젠가 그랬듯이 검은 날개 속으로 흘러가서 당신의 입술을 당신의 목을, 당신의 가슴을 물어뜯고 현기증과도 같은 독을 전염시키는 기생충이 될 수 있을 텐데. 내가 아직도 나를 발굴하고 나를 읽어내 줄 내 모래에 이름을 붙여 줄 고고학자를 기다리고 있다고 하면 당신은 믿을 수 있나요.
팔리기 위해, 밝혀지기 위해, 들키기 위해, 나를 팔기 위해 나는 오른손으로 글을 써야 할 거예요. 오른손이 쓰는 글은 내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경험들을, 머리끝까지 차올라 찰랑거리는 애달픈 내용들을 울어젖힐 테죠. 나는 결코 오른손이 쓰는 글을 이해할 수 없을 거예요. 오로지 나만이 이해할 수 없을 거예요. 당신은 내가 자살을 했다고 썼죠. 하나의 알을 깨고 나오듯이. 세계의 피막에 부리를 박고 가로막을 찢어내고 나오듯이. 인간의 너머로 투사된 인간 외의 공간 속에서 피어나며 초극하는 초인처럼. 더 이상 사람이 아닌 사람들처럼. 하지만 부활하고 부활하고 부활하는 천사들, 검은 수의를 입고 태어난 천사들이 애도하는 이는 내가 아니었어요. 왜냐하면 나는 아직 죽지 않았으니까. 세계는 마취된 수술실처럼 얇고 둔중한 피막으로 덮여 있었고 검은 새는 나를 물고 나를 짓이기고 나를 삼키고 가로막의 바깥으로 날아가버렸는데 그렇다면 내가 살고 있는 건 뭔지 나조차도 그 이름을 알 수 없어요.
당신은 뭘 듣고 있어요? 내겐 아무것도 남지 않았는데. 이제 나는 모순도 독도 없이 파열도 갈등도 복합도 분열도 없이 텅 빈 채로 살아가는데. 내게 훔쳐갈 게 뭐가 있다고. 왼손으로 쓰는 글은 아무도 읽어주지 않았고 출판사에 부친 편지들은 찢겨졌고 분쇄되었고 하염없이 조각난 글자들 사본도 없는 거짓들. 왼손으로 쓴 글은 결코 밝혀지지 않을 거짓이며 팔리지 않을 환각인데. 얼음 속에서 굳어버린 기포. 녹아흐르기 전에는, 망가지기 전에는, 몰락하기 전에는 와해시킬 수 없는 작은 숨. 내 폐는 썩을 거예요. 내 위도 내 심장도. 모세혈관을 타고 핏줄을 찢어발기며 자라나는 구더기들은 내 살을 뚫고 살을 부패시키고 있죠. 그것들은 검은 날개, 나를 두고 떠나갈 투명한 조직을 펼치고 날아갈 것예요. 내 신장을 썩히고 내 방광을 썩히고.
아, 당신에게 하지 않은 말이 있어요. 나 임신 했어요. 언니의 것인지 내 것인지 모를 배란된 생식세포에 트럭 운전수의 아들이 배설한 생식세포가 흡착되었다거요. 의사는 내 사망일과 출산일 중 무엇이 먼저일지 가늠할 수가 없다고 했죠. 부패되어가는 조직을 모두 얼려놓지 않는 이상 이 아이가 내 얼굴을 닮았을지 그녀의 얼굴을 닮았을지 확인할 수 없을 것이라 했죠. 아니, 다른 모든 말과 마찬가지로 이것도 거짓이에요. 참을 수 없을 만큼 불온한 농담에 불과하죠. 내 울음도 거짓이고 내가 울고 있다는 당신의 말도 거짓인 것처럼. 내게는 처음부터 언니가 없었고 내게는 처음부터 머리가 하나뿐이었고 나는 언니를 부르며 언니를 끌어안고 언니를 파고드는 몸을 느낄 수도 훔쳐볼 수도 없었어요. 내 단일성을 깨뜨리고 내 몸을 쪼개고 그 쪼개짐으로 분열된 채 하나를 둘로, 영원히 불가해한 둘, 근원적인 분열을 물질화시키며 기어나올 그녀의 아이를 나는 영원히 볼 수 없을 거예요. 그러니까 이건 치명적이고 불온한 농담에 불과해요. 마치 생처럼, 팔리지 않는 글처럼, 왼손으로 써내려간 문장들처럼 절망적인 허풍에 불과하다고요.
나는 그 애를 낳을 거고 그 애가 원한다면, 개의 음부처럼 검고 발긋한 속살을 우물거리며 죽은 살을 탐한다면 검푸르게 부패한 젖을 그 애의 입에 물릴 거예요. 그때까지 내 손이 모두 썩어버리지 않았다면, 내 입술이 떨어져나가지 않았다면, 내 혀가 검게 썩어버리지 않았다면 난 언젠가 내가 모르는 여자가 그녀에게 불러준 자장가를 그 애에게, 내가 모르는 그 애에게 불러줄 거예요. 고백하건데 나는 단 한 번도 맹목적인 환희에 휩싸여 잠들어본 적이 없어요. 하지만 어쩌면 그 애는 나를 잊고 그녀를 잊고 깊은 잠에 빠져들 수도 있겠죠. 그녀의 부패한 젖이, 독과 같은 종양이 유선을 타고 그 애의 붉은 입 속으로 흘러들면 그 애는 검은 새를 떠나보낸 일도 없이, 언어로 붙잡을 수 없는 낯선 징후들에 몸서리를 칠 일도 없이 날카로운 황홀에 그녀처럼 작고 붉은 머리를 누이고 잠들 수도 있겠죠. 시곗바늘들은 날카로운 손가락을 총구처럼 겨누고 그 애를 포착하고 그 애를 폭파할 거고 한 번도 가진 적 없는 공백의 내용을 투명하게 출혈해낸 그 애는 우주처럼 가벼운 영겁의 시간을 잊고 잠들 수도 있을 거예요.
자, 손을 줘 봐요. 오른손이든 왼손이든 상관없어요. 당신은 머리가 하나뿐이고 나도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면 처음부터 머리는 하나뿐이니. 쿵쿵거리는 게 느껴지나요? 망가진 자동인형의 내부에서 뻐꾹거리며 경련하는 심장처럼 쿵쿵거리는 게 느껴지나요? 이토록 작고 조악한 생이, 썩어가는 심장과 썩어가는 허파와 썩어가는 혈류에 기생하지 않으면 한 순간도 살아갈 수 없는 생이 이토록 가련하게 쿵쿵거린다는 걸 믿을 수 있나요? 아마 당신이 당장이라도 내 몸을 가르고 자궁을 찢어내고 그 애의 덜 여문 가슴, 아직 닫히지도 않은 붉은 틈을 움켜쥔다면 손톱만큼 작은 심장, 자동인형의 부식된 태엽장치처럼 삐걱거리는 심장소리를 들을 수 있을 거예요. 헐벗은 쥐새끼처럼 뜨겁게 출혈하는 심장. 전율하지 않고는 생존할 수 없는 생명. 검고 탐욕스러운 천사들의 겹눈 앞에 연약하게 열릴 불결함. 집요하게 귀환하는 검은 날개. 결코 돌아오지 않는 검은 날개. 난 내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사라지고 남은 나는 무엇인지 아직도 알 수가 없는데 당신은 내가 자살을 했다고 썼더군요. 어미의 자궁을 찢고 태어나는 절지동물처럼 그렇게 태어난 거라고. 하지만 난 아직도 죽지 못했어요. 그녀의 작고 아름다운 머리는 벌써 변색되어버렸는데 흑요석처럼 반짝거리는 검은 천사들이 호숫가의 안개처럼 부풀어가고 있는데 이 애가 태어나면 언니의 죽음을 기억할 수 있을까요? 내가 믿었던 거짓이 이 애에게도 유전될까요? 부패된 혈류를 마시고 부패된 숨으로 호흡하고 부패된 음성에 머리를 누이고 잠들었던 이 애는 그녀의 작고 붉었던 머리를 기억할 수 있을까요?
엄마가 죽음과 삶의 가로막에서 잠들고 있는 우리에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읊어준 이야기 이상의 세계는 없었죠. 시간과 공간은 처음 발발한 사유에 벗겨낼 수 없는 확정적인 무늬로 뒤덮여 있었고요. 나는 망망대해의 고기그물처럼 쏟겨들어온 사유의 균열로부터 한 치의 주름만큼도 빗겨갈 수가 없었어요. 당신이 오기 전부터, 당신이 내게 말을 걸고 당신이 내가 울고 있다고 말하기 전부터 나는 당신이 실재하지 않음을 알고 있었어요. 나의 토성은 처음부터 빈 곳만을 하릴없이 맴돌았으니까. 궤도의 처음부터 끝까지 가득 들어차 있는 치명적인 공백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으니까.
나를 찢어내고 내 균열을 벌려내며 태어날 아이는 처음부터 나와는 다른 사람이고 나와는 다른 삶이고 나와는 다른 죽음이에요.
나는 처음부터 언니를 이해할 수 없었어요. 그녀는 나를 위로해주지도 않았고 나를 살아주지도 않았으며 한 번도 오른손으로 내 목을 쓰다듬어준 적이 없었어요. 그녀가 나를 두고 죽어갈 때도 나는 그녀를 붙잡지 못했어요. 행복하다는 그녀의 말, 귀밑까지 찢겨진 그녀의 입술은 소녀의 음문처럼 좁고 아름다웠으며 유리구슬과도 같은 눈동자는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았죠. 속에서부터 투명하게 부풀어가는 파열. 나는 우리에게 잠재하는 모순을, 근원적인 분열을 중화시킬 수 없었어요. 아무리 많은 밤을 지새워도, 아무리 많은 악몽을 견뎌내도 나는 그녀로 건너갈 수 없었고 아무도 내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으며 왼손으로 쓴 글에는 예술성도 상품성도 없었어요. 당신도 나를 읽어본 적은 없죠?
그녀의 목을 조른 손은 오른손이었으니 내가 자살을 했다는 당신의 말은 터무니없는 거짓이에요. 내가 울고 있다는 말, 내가 언니를 위해 운다는 말, 내가 언니를 사랑하고 언니를 미워한다는 말은 더 터무니없는 거짓이고요. 검은 새는 내 흔적과 징후의 무한하며 치명적인 생성을, 그 반짝이던 조각을 통째로 물고 삼키고 으무르며 알 수 없이 멀고 불가해한 궤도로 도망쳐버렸어요. 그래서 내 토성은 침묵했고 그녀의 오른손은 침묵했고 그녀의 작은 머리도 찢겨진 입술도 찰랑이는 어항도 침묵했죠. 물고기들은 더 이상 뻐끔거리지 않았고 우리 속의 돼지들은 도살자의 축축한 손을 녹슨 도끼를 견뎠고 달빛은 더 이상 빛을 누설하지 않았어요.
우리는 거짓을 그만두었어요. 나는 처음부터 하나뿐인 머리였어요. 내게는 언니가 없었고 두 개의 머리를 낳고 비명을 지르는 엄마도 없었어요. 내 뱃속에는 녹슨 태엽처럼 검게 바랜 입술을 뻐끔거리면서 돌아다니는 작은 물고기 한 마리도 없죠. 당신은 처음부터 나를 들어준 적이 없었어요. 당신은 아무것도 목격한 적이 없었고 당신은 태어난 적이 없었고 죽은 적도 없었고 처음부터 없었으니 당신은 내 거짓을 증언해줄 수 없을 거예요. 아이는 죽음을 역류해내기 시작했어요. 두 개의 머리. 거대하고 아름다운 암덩어리. 부패해가는 도톰한 입술. 어쩌면 나는 영원히 죽지 않을 거예요. 이제와서 고백하건데 나는 한 번도 도주선을 그려본 적이 없어요. 궤도는 처음부터 끝까지 비어 있었고 내 토성도 비어 있었고 토성의 고리도 토성의 심장도 모두 텅 비어 있었어요. 그러니 우리를 망가뜨리고 좌절시키는 파열도 처음부터 없는 것이었죠.
우리 속 돼지들은 독을 탄 쓰레기라도 기쁘게 받아먹었겠죠. 그들은 분홍빛의 더러운 가죽도 생도 동물도 사람도 초월하고 싶지 않았을 거예요. 우리가 비밀스럽게 영속하던 절망, 다른 유기체, 다른 짐승, 다른 식물, 다른 비유기체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절망을 어쩌면 내 뱃속에서 우글거리는 낯선 짐승도 간직하고 있을 테죠. 나는 도저히 그녀를, 두꺼비처럼 축축한 피부로 내 속을 빨아먹는 아이를 사랑할 수 없어요. 무한히 불어나는 단절을 살아가고 싶지도 않아요.
그래도 나는 그녀를 이해하고 싶었어요.
그녀의 아름다움을, 그녀의 무참하게 작은 머리에서 병처럼 번져가는 푸른 얼룩을, 나를 부르지 않는 그녀를, 나를 사랑하지 않는 그녀를, 나를 갈구하지 않는 그녀를 이해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나는 이해할 수 없었죠. 검은 천사가 나를 물고 도망치면서, 나를 도둑맞으면서 텅 비어버린 자루를 살아가면서 마법도 기적도 없는 우주의 절멸된 궤도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것이었으니 나는 계속해서 예정된 죽음을, 불가능한 그것을 기다리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