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쓴 글을 읽어 봤어요. 내가 자기혐오에 못 이겨 언니를 죽였다고요. 내가 나를 죽이듯이, 종려나무에 목을 매고 검은 호수에 뛰어들고, 축축한 전선을 맨손으로 움켜쥐고, 처량하게 흐느끼는 사자 우리에 맨몸으로 들어간 것처럼 그렇게 자살을 한 거라고요. 소년이 알을 깨고 나오듯이, 소녀가 배설해낸 알을 무참히 깨뜨리며 세계로 진입하듯이 그렇게 내 경계를 부수고 삶으로 나온 거라고요. 지하실에 갇혀 있던 소녀가 십여 년 만에 그녀를 감금하였던 유사가족을 살해하고 바깥으로 탈출했듯, 거울 속에서 살아가던 유령이 거울을 깨부수고 깊이도 심연도 없는 세계의 표면으로 튀어올랐듯 그렇게 삶으로 나온 거라고요. 누구나 유년의 알을 깨야 한다고 말했죠. 당신은 정말 미려한 문장들을 쓰더군요. 난 당신이 한 말을 모두 이해하지는 못했어요. 당신의 문장은 거울 속에만 존재하는 그림과도 같아요. 거울의 규칙을, 좌우반전의 메커니즘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거죠. 나도 당신처럼 글을 쓰고 싶어요. 하지만 내게는 고백할 것이 없어요. 쓰레기 더미 위에서 까욱거리는 새들이 하는 일은 부리로 거울을 쪼아 깨뜨리는 일뿐이죠. 난 당신이 상상도 못할 정도로 멍청해요 바르트도 푸코도 들뢰즈도 읽지 못했으니까. 게다가 내 삶에는 아무런 내용도 없는 걸 알잖아요 깨진 거울은 하나의 사물도 온전하게 비추지 못하는 법이니까. 깊이도 심연도 없이 표면만이 남은 파편들.
우리 언니를 죽인 건 그녀를 미워했기 때문도 사랑했기 때문도 아니에요. 난 한 번도 그녀를 나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우리는 같은 몸을 공유했지만 머리의 생김새는 절망적으로 달랐죠. 그녀는 홍학처럼 작고 부드러운 머리를 가지고 있었어요. 눈은 개구리처럼 크고 축축했으며 입술은 여느 포유동물의 속살처럼 발긋하고 말캉했죠. 그녀는 무척이나 아름다웠어요. 나는 그녀의 아름다움을 특별히 질시하거나 증오하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아름다움이 나와 그녀 사이의 관계에 있어서 어떠한 결정적인 작용을 한 것은 사실이에요. 누구나 그녀를 원했고 그녀를 바라보았죠. 유리처럼 둥글고 매끄러운 눈동자와 레몬처럼 시큼한 향이 나는 피부, 나는 내 사유가 그토록 작은 머리 속에서 비등할 수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난 한 번도 그녀와 나를 동일시 해 본 적이 없어요. 당신은 나와 그녀가 같은 사람이었다고, 적어도 악몽과 현실을 오고가는 의식이 하나인 것과 같은 방식으로 하나였다고 설명했죠. 내가 오독한 것이 아니라면 당신은 나와 그녀가 하나의 몸에 깃든 몇 개의 인격만큼이나 같은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거예요. 그렇죠? 하지만 언니는 아름다웠어요. 아시겠나요. 정말 아름다웠다고요. 표피가 벗겨진 채 태어난 태아처럼. 아니, 차라리 피부도 조직도 없이 뭉글거리면서 분열하는 배아처럼. 불완전한 절망도 초극할 수 없는 결핍도 깃들 자리 없이 작은 머리통처럼. 개구리처럼 커다란 눈동자.
우리가 함께 사용하고 있는 사지나 장기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어요. 같은 땅에 뿌리를 박고 있는 식물들이 서로를 증오하듯이 같은 신체 위에서 자라난 두 머리라고 해서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죠. 나는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어요. 끔찍하게 작은 머리는 너무도 불가해했으니까. 언젠가 우리는 고양이를 한 마리 길렀는데 그녀는 언니만 바라보고 언니를 향해서만 울고 언니에게만 애교를 부리고는 했죠. 고양이뿐만이 아니에요. 마주치는 모든 사물들, 모든 짐승과 모든 사람과 모든 식물 전부 그녀만 바라봤어요. 내게는 아무도 없었어요. 그녀는 내 벽도 알도 아니었어요. 내 세계는 순수한 자폐었어요. 내게는 자아도 타자도 없었어요. 아니에요. 잊어요. 나는 오직 떠나기 위해서 거짓말을 하니까. 내가 하는 말은 거짓뿐이니까. 핍진하지도 않고 휴머니즘도 없는 내 거짓말에 누군가 베어서 거울파편 위를 데굴데굴 구르든 말든 내 알 바 아니니까.
우리 언니, 선물을 묶는 리본처럼 부드러운 푸른 리본으로 홍학처럼 작은 머리를 장식한 우리 언니. 나는 언니를 사랑하지도 증오하지도 않았어요. 그러니까 내 살해를 자기살해라고 지칭하던 당신의 이론은 모두 헛소리예요. 지금 내가 하는 말에는 일말의 진실도 선의도 없느니 내 말 역시 헛소리고요. 나는 유리조각을 이어붙여 망가진 배를, 지중해는커녕 조그마한 강물 위에만 올려놓아도 순식간에 추락해버릴 쓰레기배를 만들던 스페인의 농부보다도 더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도 우리는 배를 타고 먼 곳으로,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 모두가 나를 들여다보며 거울 뒤편의 세상을 황홀에 겨운 맹목적인 눈으로 상상하는 그런 세계, 천박한 반짝이 종이조각이 파도처럼 널실거리면서 황무지를 쏘아보는 참매의 눈빛처럼 번들거리는 그런 세계로 넘어가고 있었어요.
사형을 앞두고 화성으로 도주한 살인마가 추위 속에서 굽어보는 세계는 너무도 검었고 별보다도 새까만 언니의 눈동자. 개구리의 입속에 성기를 밀어넣고 수음하는 원숭이 사내들. 언니의 눈은 당장이라도 터져버릴 것처럼 부풀어올랐어요. 나는 그녀의 아름다움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어요. 나는 당장이라도 더 먼곳으로 도망치고 싶었어요. 도망쳐서 거울에 코를 가져다대고 입술을 갖다붙이고 깊이 들어가고 싶었어요. 거울 속에 그림자를 살을 형상을 담그며 기도하는 사람들. 나는 그 거울이 되고 싶었어요. 누구라도 제 따뜻한 내용을 가져다바치는 거울. 누군가 함부로 나를 읽으려 하다가 눈 속으로 들어간 거울. 파편들이 당신들을 장님으로 만든다고 해도 내 알 바 아니죠. 왜냐하면 당신은 영원히 나를 읽지 않을 테니까.
투명하게 부풀어오르는 꽃처럼 희고 매끄러운 언니의 얼굴. 누구나 달걀처럼 반들한 그녀의 얼굴을 넋을 잃고 쳐다봤죠. 나는 결코 그녀를 증오한 것이 아니고 질투한 것도 아니에요. 어째서 사람들은 더 이상 거울을 믿지 않죠? 당신들은 언제부터 그렇게 현명해진 거예요? 아직도 거울을 믿고 깨진 거울 위에서 춤을 추며 저물어가는 소녀의 발을 흥건히 적신 붉은 피. 부슬부슬 떨어져내리는 음표들. 나는 바르톡의 음악을 듣듯이 언니를 바라봤어요. 그녀의 머리는 불가해할 정도로 작았고 목은 홍학처럼 길었죠. 나는 귀신을 쳐다보듯이 그녀를 바라봤고 그녀는 결코 나를 돌아보지 않았어요. 나는 그녀가 끔찍할 정도로 무서웠어요. 마치 거울 너머에서 텅 빈 입을 귀까지 밀어올리며 활짝 웃는 텅 빈 얼굴처럼. 양서류처럼 축축한 눈동자. 그녀는 갑자기 그 아름다운 입에서, 귀밑까지 찢겨진 피투성이의 구멍처럼 아름다운 틈에서 행복하다고 말했어요. 나는 그녀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어요. 그녀의 아름다움을, 그녀의 행복을, 그녀의 사유를, 그녀의 절망적으로 작은 머리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고요.
나는 그녀의 팔을 들어 그녀의 목을 졸랐어요. 그래도 그녀는 계속해서 웃고 있었어요. 나는 결코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어요. 나는 그녀의 작고 아름다운 머리로 그녀의 행복으로 그녀에게로 건너갈 수 없었어요. 복숭아 농장을 관리하던 사내. 어린아이의 엉덩이처럼 희고 통통한 복숭아를 한 바구니 싣고 길거리에 앉아서 구균이 덕지덕지 붙은 지폐를 받아들던 사내. 그는 바르톡의 바이올린 선율을 흥얼거리면서 유리배를 만들었죠. 깨진 소주병, 깨진 거울조각, 깨진 하늘과 깨진 우물, 깨진 머리통과 깨진 손가락들을 이어붙여서 어항처럼 매끄러운 유리배를. 그는 그런 배 수십 척을 팔아넘겼고 유리배를 팔아넘긴 돈으로 강물을 전부 부어넣어도 깨지지 않을 불을 피워올렸어요. 일말의 푸른빛도 섞여들지 않은 초월적인 잿빛. 완전하고 보편적이며 절대적인 잿빛의 유리. 나는 어느 도시에서나 잘 팔리는 그의 유리배를 타고 고층빌딩 꼭대기까지 올라갈 거예요. 푸른빛으로 부패해가는 언니, 아직까지도 끔찍하게 작은 그 머리가 쫓아올 수 없는 곳까지. 그러면 나는 재처럼 부드러운 날개를 상상하면서 날아오를 수 있을 텐데. 하지만 내 말은 모두 거짓이고 일말의 선의도 없으니 신경쓰지 말아요. 내 말에는 쥐꼬리만 한 진실도 없으니까.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아요. 내게는 추억조차 없어요. 나는 어떠한 세상도, 둥글게 퍼져나가는 부드러운 울림으로 반영해낼 생각이 없어요. 내게는 사상도 철학도 없죠. 내 모서리는 날카롭지도 않아요. 나는 한 번도 내 악몽의 모서리를 본적이 없어요. 불가해한 어둠으로 일렁거리는 소용돌이. 끝없이 떨어지며 솟아오르는 경계. 그것이 내 몸의 상상인지, 내 영혼의 상상인지, 아니면 악몽 자체의 상상인지 나는 이해할 수 없어요. 이제 난 체념할 수밖에 없어요. 나는 아무것도 바꿀 생각이 없고 나 자신조차도 바꿀 수가 없고 바꾸고 싶은 마음도 없으니까. 내 거짓 증언이 나를 사형대 위, 사형대의 올가미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은 곳, 차라리 끔찍한 어둠과도 같은 하늘로 데려갈 거라고 정말로 믿는 건 아니에요.
언니는 복숭아처럼 생긋한 입술을 벌렸어요. 그 속에는 잘려나간 개구리의 발이 있었어요. 그녀처럼 축축하고 매끄럽지는 않은 발. 불 속에서 새까맣게 익어서 물기조차 없이 마른 발. 난 그 발의 맛을 느낄 수 없었어요. 그녀는 갑작스레 입을 벌려서 행복하다고 말했어요. 나는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어요. 행복한 것이 개구리인지 죽음인지 삶인지 그녀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고요. 금발의 소년, 도자기 인형처럼 섬세한 이목구비를 가진 소년, 개구리처럼 눈이 커다란 소년은 수줍게 흐느끼며 그녀에게 장미꽃을 내밀었죠. 그녀는 개구리 다리를 채 삼키기도 전에 장미 꽃잎을 입에 물었고 설탕 과자를 입에 물었고 새의 부리를 입에 물었고 거울 조각을 입에 물었고 찢어진 편지를 입에 물었고 부드러운 활자들을 입에 물었어요.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요.
그녀는 아무것도 삼키지 않았고 그녀의 입은 끔찍하게 벌어졌어요. 귀밑까지 찢어진 입술. 그래도 그녀는 여전히 아름다웠어요. 그녀는 백색 왜성을 삼켜버린 블랙홀처럼, 신기루를 삼켜버린 모래바람처럼 아름다웠고,
나는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어요.
그녀의 머리칼이 자라나는 소리. 그녀의 눈 속에서 눈물이 생성되는 소리. 그녀의 귓속에서 병균들이 죽어가는 소리. 봄처럼 샛노란 고름이 흘러나오고 그녀의 눈꺼풀이 바스락대며 깜빡거리는 소리. 그녀의 동공이 조여드는 소리. 그녀는 돌연 귀밑까지 길게 찢어진 틈새로 행복하다고 말했어요. 그녀의 푸른 혀 밑에서 녹아가던 개구리의 앞다리가 그녀의 혓바닥을 할퀴는 소리. 그녀가 출혈하는 소리. 금발의 흑발의 적발의 소년들이 소녀들이 그녀에게 병아리의 목을, 꽃의 목을, 사탕의 목을, 인형의 목을 수줍게 건네었고 그녀는 행복하게 웃으며 그것들을 모두 작은 머리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들어찬 입 속에 우겨넣었어요. 그녀는 아무것도 씹지 않았고 아무것도 삼키지 않았죠. 나는 그녀의 입속에서 눈처럼 녹아가는 병아리와 꽃과 설탕과자와 인형의 맛을 느낄 수 없었으니까 행복하다는 말을, 그녀의 행복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어요. 그녀는 지네처럼 드글드글한 다리들을 수줍게 깜빡거렸고 나는 참을 수 없이 서글퍼졌어요.
느티나무 아래에서 서성거리던 들개도, 광장 한복판에서 카르멘 연기를 하던 오페라 가수도, 오렌지 주스를 따라주던 노점 카페의 종업원도, 공원 벤치에 드러누워 새끼들에게 젖을 먹이던 고양이도 모두 그녀의 이름을 불렀죠. 내 이름이 아니라 그녀의 이름을. 그들은 당연하다고 말할 거예요. 왜냐하면 내게는 이름이 없었으니까. 우리의 팔과 다리, 하나뿐인 심장과 방광, 자궁과 폐를 전부 지칭할 수 있는 이름은 그녀의 이름뿐이었으니까. 어쩌면 그들은 그녀가 아닌 나를 불렀던 것이라고 변명할 수도 있을 테죠. 하지만 그건 터무니 없는 거짓이에요. 그들은 그녀의 눈, 알사탕처럼 커다란 눈을 몽롱하게 바라보면서 악몽처럼 섬세한 목소리로 아냐, 하고 불렀으니까. 나는 그녀일 수 없었고 그녀는 나일 수 없다는 사실을 그들도 알고 있었을 테니까. 대답을 하는 것은 언제나 그녀였고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도, 온갖 잡동사니를 우물우물 물고는 귀밑까지 찢어진 틈으로 히죽거리는 것도 그녀였어요. 그녀를 호명하고 그녀를 포옹하고 그녀를 겁간하고 그녀를 어루만지는 사물은 모두 그녀에게 속한 세계였어요.
내 자폐적인 세계에는 한 조각의 이물질도 스며든 적이 없었어요. 내게는 고백할 것도 호소할 것도 고발할 것도 없었죠. 나는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미워하지 않았으니가.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거짓뿐이었어요. 사람들이 내 글이 아닌 그녀의 글을, 그녀의 회고록, 그녀의 고백록, 그녀의 유서를 읽은 건 당연한 일이었죠. 우리는 두 개의 다리로 서글프게 걸어서 집까지, 늙어빠진 고양이가 그녀의 얼굴만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풍만한 배를 바닥에 질질 끌면서 기어오는 집까지 기듯이 걸어갔어요. 악몽이 우리를 방문하기 전까지 우리에게는 할 일이 없었죠. 그녀는 결코 내게 말을 거는 법이 없었으니까. 그녀가 내게 행복하다고 말했던 그 불가해한 순간을 제외하면 우리는 결코 서로에게 말을 걸지 않았으니까.
우리는 간혹 방광이 두둑하게 차오를 때를 제외하면 책상 앞에 우두커니 앉아 각자의 페이지의 각자에게 할당된 손으로-나는 왼손, 그녀는 오른손으로- 글을 썼어요. 나는 한 번도 그녀의 글을 훔쳐보지 않았고 그건 아마 그녀도 마찬가지였을 거예요. 우리는 서로의 세계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으니까. 우리는 지긋지긋할 정도로 서로에게 인접해 있어서 더는 서로가 궁금하지 않았으니까. 나는 거북할 정도로 불가해한 그녀를 더 이상 알고 싶지 않았고 그건 아마 그녀도 마찬가지였을 테죠. 한 손으로는 글을 쓰고 다른 손으로는 낯선 작가의 책을 읽어내리는 일은 우리에게 불가능했어요. 우리에게 할당된 손, 그 시간을 이어갈 수 있는 손은 각자 하나씩밖에 없었으니까. 우리는 결코 서로의 작업에, 서로의 세계에, 서로의 비밀에 협조하지 않았으니까. 난 그녀가 산문을 쓰는지 시를 쓰는지 소설을 쓰는지 그때까지는 전혀 알지 못했어요. 그래도 그녀가 쓰는 글은 내 글과 전혀 성격이 다르리라는 건 확신할 수 있었어요. 그녀에게는 아픔이 있었고 행복이 있었고 추억이 있었고 미래가 있었으므로. 그녀는 달처럼 샛노란 오줌이 머리 끝까지 찰랑거리는 요강과도 같았으니 그녀의 진실한 고백에 누구라도 고개를 끄덕이고 누구라도 눈물 흘리고 누구라도 얼굴을 담그겠죠.
반면 내 고통에는 내용이 없었고 경험도, 후회도 회한도 추억도 기대도 없었어요. 언젠가 내가 왼쪽 손만으로 출판사 수십 군데에 투고하였던 원고, 수백 페이지 수천 페이지는 되는 조각글들을 받아든 출판사들은 대부분 한결같은 침묵으로 부재했죠. 누군가는 내게 당신의 글은 거짓이라고 했는데 난 그 말을 전한 사람은 기억할 수 없었지만 거짓이라는 말만은 명확하게 재현해낼 수 있어요. 왜냐하면 거짓이라는 말은 분명한 진실이었으니까. 사실 나는 아무도 애도하지 않고 아무도 슬퍼하지 않고 어떠한 트라우마도 없어요. 만약 내가 구체적인 누군가를 추모하고 사랑했다고 생각했다면 그건 터무니없는 오해예요. 나는 비참할 정도로 냉담하니까. 난 그녀의 입술이 찢어지며 새파란 피를 흘리는 모습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묵묵히 지켜봤고 그녀를 사랑하는 사내들이 그녀를 갈기갈기 부술 때도, 그녀의 입속에 개구리의 썩은 발과 꽃의 머리를 쑤셔넣을 때에도 그녀를 가여워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나는 그녀가 불쌍하지 않았으니까. 나는 누군가 내 입술 속에 혀와 살과 설탕과자를 밀어넣고 사랑과 절망을 구걸하는 모습을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으니까.
신음하는 사람들, 망망대해에서도 기적을 믿었던 아이들은, 흐느끼며 찾았던 사람은 내가 아니었어요. 내 입 속으로 기어들어오는 작은 모기를 짓눌러 죽이는 내가 그들을 계속해서 떠올리고 떠올리고 떠올리는 이유를, 계속해서 허공으로 떠오르는 내가 심해를 갈망하는 이유를 이제 나도 모르겠어요. 그녀의 머리가 여름밤의 꽃처럼 푸르게 부패해가는 동안 내가 무엇을 울고 있는지는 나도 몰라요. 어째서 누군가를 구하고 누군가를 기억하고 누군가를 추억하고 누군가를 애걸하는 건지 나도 모른다고요. 우주에서 추락한 유리배. 산산조각난 거울 속에서 부러진 날개를 활짝 펼치고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비둘기의 새하얀 눈동자를 흥미롭게 들여다보는 검은 눈들. 누군가는 무고하게 죽고 누군가는 정당하게 죽죠. 검은 바다에서 가라앉는 부랑자들의 죽음을 기억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어요. 나는 정의의 논리에 따라 판관들처럼 누군가를 더 누군가를 덜 추모하고 애도할 수는 없었어요. 내가 눈물을 닦다가 눌러죽인 작은 날벌레를 그녀보다 더 선명하게 기억한다고 해서, 그녀보다 더 슬퍼한다고 해서,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 검은 바다로 떠나간 뒤 아마도 익사한 것이 분명한 예술가의 죽음을 더 애도한다고 해서 당신이 내 입속에 혀와 살을 밀어넣을 리는 없잖아요. 그러니까 죽음의 거리와 죽음의 나이, 죽음의 결백과 죽음의 피부색 따위는 이제 아무래도 좋아요. 파도 위에서 바스러지는 하얀 거품들이 모두 같은 유골이라고 말하는 건 아니에요.
단지 나는 그녀의 죽음이 그다지 슬프지 않다는 거예요. 나는 그녀를 끝내 이해할 수 없었고 그녀를 부르는 사람들은 나를 부르는 일이 없었으니까. 그녀를 애도하고 그녀를 슬퍼하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이들의 절망은 내 것이 아니었어요. 당신의 말을 철석같이 믿은 사람들은 나를 비난하는 일도 없었죠. 당신은 아직도 내가 나를 살해하듯 그렇게 그녀를 목 졸라 죽였다고 믿어요? 그래요. 솔직히 고백하건데 나는 끔찍이도 찢겨 있고 그래서 망망대해에서 추락하며 울부짖은 그 애들이 슬펐어요. 그래서 많이 울었어요. 차라리 중력을 뒤집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그래서 떠내려간 자들 대신 사라지고 싶을 정도로. 불을 낳는 아이들에 대해 떠올릴 때면 내 배가 타들어가는 것 같았고 그래서 언어를 잃고 꺽꺽거리는 서커스 고아들을 대신해서 울어주고 싶었지만 언젠가는 내 죽음이 아무렇지 않듯 그들의 죽음 역시 아무렇지 않았어요. 내 입속에서 갈가리 찢겨 무의미하게 사라지는 생선의 발가벗은 살이 아무렇지 않았고, 고양이의 이빨에 찢겨나가는 사마귀의 앞발이 아무렇지 않았고, 마트 수조에서 집게가 결박당한 채 서로의 등 위에 배 위에 다닥다닥 엉겨붙은 채로 누군가 저를 꺼내기를 누군가 저를 바다로 데려가 주기를 허망하게 기다리는 랍스터들도 아무렇지 않았죠. 나는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그들의 껍질을 벗겼고 그들의 뼈를 발랐고 그들을 씹어삼켰고 심지어는 그들을 구토하기까지 했어요. 나는 더 이상 먹고 싶지 않았어요. 하지만 더 먹고 싶었어요. 더는 살고 싶지 않았고 그러나 더 먹고 싶었어요. 어째서 누군가의 죽음은 신성한 것이고 누군가의 죽음은 당연한 것인지 이해하지 못한 채로, 나는 나를 믿지 못하는 채로 나를 적어내렸고 이어붙일 수 없는 피를 흘렸죠. 나는 식물의 사지를 꺾으면서 나무의 텅 빈 배를, 이미 오래전에 죽어버린 살을 긁어내리면서, 음악을 하면서 그렇게 살아갈 수는 없는데도 계속 살아가고 있어요.
나는 그녀를 진정으로 애도하지 않았어요. 이미 죽은 이들을 애도하자는 말은 기억하자는 말은 결국 산 자들을 위한 정치라고, 앞으로 갈아갈 아이들을 죽지 않도록 보호하자는 말이라고, 벌써 죽어버린 아이들 만약 적절한 때에 중력이 뒤집어졌더라면 하늘 높은 곳으로 통통한 천사들이 춤을 추며 구구거리는 구름 위로 올라갈 수도 있었을 텐데 이미 죽은 이들에게는 기억도 애도도 눈물도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기억과 애도와 트라우마에 대하여 논하는 것은 그들 이후의 그들이 아닌 누군가에게 바치는 헌사라고 생각했어요. 나는 더 이상 내가 누구를 울고 있는 것인지, 내가 무엇을 울고 있는 것인지 모르면서 울었어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 아무것도 바꾸지 않으면서. 나아가지 않으면서 살아가는 미래를, 미래와는 무관한 미래를 쓰지 않으면 나는 살아갈 수 없었기 때문에. 아니, 살아갈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죽어갈 수 없었기 때문에. 누군가 태양을 뒤집어버리지 않으면, 땅을 뒤집고 인력을 뒤집고 그러한 세계를 꿈꾸지 않으면 나는 더 이상 악몽조차 죽어갈 수 없을 것 같았기에.
지금도 그녀의 오른손은 머리 끝까지 차올라 찰랑거리는 추억에 대해, 목이 졸려 죽은 창백하고도 신비로운 죽음에 대해 쓰고 있어요. 나의 죽음을 초극하고 당신들의 죽음을 초극하고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곳은 어디인지. 달처럼 자그마한 그녀의 머리에서는 물에 젖은 풀냄새가 났고 한밤의 천사들은 그녀에게 입을 맞췄어요. 나는 웅웅거리는 파리떼 속에서 왼손만을 허우적거리며 글을 쓰고 있었죠. 당신이 그녀를 찾아오기 전까지도 계속해서 글을 쓰고 있었어요. 당신은 완전히 착각하고 있어요. 나는 한 번도 자살을 한 적이 없는데도요. 나는 한 번도 죽은 적이 없어요. 이제와서 고백하건데 그녀의 목을 조른 손은 오른손이었어요. 당신이 그녀의 벌거벗은 입술에 입을 맞추든 맞추지 않든, 당신이 그녀의 죽음에 대해 글을 쓰든 쓰지 않든 나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어요. 그러니 나는 아무런 허락도 해줄 수 없다고요. 나는 그녀가 아니니까. 그녀가 내가 아니었듯, 그녀의 행복하다는 말, 사과처럼 작은 머리와 홍학처럼 긴 목을 끝내 이해할 수 없었듯.
하지만 감히 충고하자면-당신은 지금 내게 용서를 빌고 있으니 나는 불가해한 용서를, 불가해성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으니- 이미 죽은 자를 애도할 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도 없어요. 아직 죽지 않은 자를 살릴 수는 있어도, 살게 하는 자비를 구하거나 살게 하는 폭력을 구할 수는 있어도 벌써 죽어버린 자를 추모할 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도 없다고요. 애도는 처음부터 불가능해요. 애도는 죽은 자가 아니라 산 자를 위한 의식이라니까요. 윤리는 울음으로 시작하더라도 울음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고 당신도 말하지 않았던가요? 아니라고요? 그래요. 나는 끝없이 횡설수설하고 끝없이 모호하죠. 나는 모든 것을 경멸하고 모든 것을 경멸하지 않으니, 당신이 언니의 죽음을 작고 어여쁜 머리를 비극을 팔아넘기든, 홀로 고요히 간직하기만 하든 그것은 나와는 아무런 상관 없는 일이에요.
그녀의 푸른 입술 바깥으로 비져나온 썩은 장미의 잎사귀 아래에서 파릇하게 피어오르는 푸른 이파리를 나는 견디지 못하고 찢어버렸어요. 나는 눈부시게 희고 축축한 생명을 도저히 잊지 못했어요. 곰팡이가 엉망으로 피어나 짓무른 가슴 위에 내가 죽인 이파리를 옮겨 심을 수 있다면 당장이라도 그렇게 했을 거예요. 하지만 찢겨나간 이파리는 다시는 자라나지 않았고 장미는 보란 듯이 검기만 했죠. 나는 이름도 없는 울음을 울었고 그럼에도 내 옆에서 부패해가는 언니의 죽음은 조금도 슬프지 않았어요. 아마 당신은 내가 작은 이파리에 대해서 슬퍼할 필요는 없다고 말하겠죠. 그것은 애도할 만한 삶의 형식이 아니었으니까. 썩어버린 장미에서 기적적으로 돋아난 작은 새싹은 한 번도 산 적이 없는 것에 속하니까. 고래의 뱃속처럼 아득한 우주에서 표류하는 배아와도 같이. 삶을, 출현을, 발발을 선택한 적도 동의한 적도 없는 생명에 대한 암묵적인 맹목이 누군가를 죽게 내버려두고 누군가만 살려야 한다고 믿는 이들은 나를 기소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이름이 하나뿐이었으니까. 당신의 말대로 내가 한 겹의 피막을, 하나의 알을 깨고 나왔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허물을 벗어낸 뱀의 책임을, 번데기를 파먹은 나비의 죄를 묻지 않듯 내게 아무런 잘못도 묻지 않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