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물방울

너희는 옮길 수 없는 병만을 앓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입술을 부비고 혀를 섞고 성기를 포개어도 나눌 수 없는 병이 너희의 속에서 잊히지 않은 고독처럼 매섭게 썩어가고 있었다는 생각. 그런 상상을 하면, 당신과 손을 잡았든지 당신 속으로 들어갔든지 당신과 밀어를 속삭였든지 당신과 같은 은어를 나누었든지 모두 상관없이 우리는 이대로였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 어쩐지 위로가 되는 것 같아요. 여자는 어눌한 말투로 종종 말을 더듬으며 중얼거렸다. 너는 그녀의 말 사이에 끼어들지 않았다. 불쌍해요. 너무 가엾어요. 너희는 너희를 비참하게 만드는 어휘들을 뱃속에 숨긴 채 그다지 할 말도 없으면서 부러 진실도 거짓도 아닌 말들을 중얼거렸다. 메슥거리는 말들을 실재로 만들기 위해서, 너희의 속에서 피었다 지는 말들을 그것이 추하게 시들어갔다는 사실을 고백하기 위해서. 너희는 서로의 증인이 되어줄 수 없었다. 너희 모두 유령이었으니까. 죽어서 유령인 그녀와 살아서 유령인 너는 누구에게도 가 닿을 수 없는 유령의 말만을 흐느끼고 있는데 그걸 고요하고 단단한 말로 바꾸어 현실로 만들어 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으니까. 너희는 어디에도 없었으니까. 옷장 앞에서 오래도록 울고 있는 네 눈꺼풀을 쓰다듬어 줄 손은 없었다. 없었는데도, 너는 누군가 손을 잡아주기를 바랐다. 단단하고 뜨끈한 체온을 가진, 흥건하진 않더라도 촉촉한 물기를 가진 생이 너를 증명해주기를. 그러나 아무도 너를 알지 못했고, 너조차 변론할 수 없는 너의 생을 증명해 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너희가 텅 빈 동공과 서글픈 빛으로 병들어가는 동공을 마주한 채 나누고 있는 연약한 허공이, 누군가에게는 찬란하고 관능적인 은하라는 사실을, 지구가 은하에 속해있듯 누군가의 옷장은 반짝거리는 우주의 절망 한복판에 꼿꼿이 서 있다는 사실을 너는 알고 있다. 하지만 이해할 수는 없다. 너희가 예속되어 있는 작은 공간조차 너희는 차지하지 못하였으므로. 너희는 자리 없이 떠도는 유령이었으므로. 문자를 갖지 못한 소리가 속한 우주를 당신들은 잊어버렸으므로. 넌 손가락을 펼쳐 어둠의 표면과 표면을 뭉그러뜨려 본다. 빛을 조각하는 화가의 손짓을 흉내내본다. 여자는 두려운 예감을 응시하듯 너의 손짓을 바라보고 있다. 그늘은 경계를 잃고 빛의 대립항이라는 실체 없는 개념으로 결속한다. 너희는 행복과 행운, 희망과 청춘, 비극과 절정의 대립항이라는 다소 비굴한 집합으로 뭉그러진다. 너희는 텅 빈 공간이다. 무겁고 육중한 어둠의 세계에도 너희의 자리는 없었다. 너희에게는 어떠한 책임도 없었다.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은하에서 흥건히 분비되는 어둠의 황홀한 악취를 들이켜 볼 기회가 너희에겐 없었기에. 여자는 잠을 자고 싶다고 칭얼거렸다. 언제부터 너희가 이토록 가까워진 것인지, 그녀에게 물어볼만한 용기는 없었다. 너는 그녀와의 침묵이 익숙해지고 나서야 네가 그녀를 아끼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녀를 사랑하지는 않더라도. 어느새 너는 현을 대하듯 그녀를 대하고 있었다. 여자가 네게 속삭였다. 잠이 오지 않아요. 이야기를 들려줘요. 내가 모르는 이야기를. 넌 그녀의 속삭임이 은하에서 비어져나오는 백색의 내장과 같다고 생각했다. 그처럼 은밀하고 그처럼 쓸모없는. 잉여의 목소리로 그녀는 중얼거렸다. 어서.

사막에 불시착한 비행사의 이야기를 알아? 비정형의 모래 속에 파묻혀 갈증에 죽어가던 남자를 알아? 사막의 밤은 끔찍할 정도로 길었지. 낮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별들은 빛 속에 뛰어드는 날벌레들처럼 드글대었고 달은 냉혹할 정도로 비만하게 부풀어 있었지. 비명도 절망도 없이 모든 사물들이 냉랭하고 아름답게 빛나는 사막에서 사내만이 굶주려갔어. 빛은 사막의 살결 곳곳에 흥건하게 흘러넘쳤지만 사내의 목은 축일 수 없었지. 사내만이 허기졌고 목말랐고 외로웠어. 그곳에서 결핍을 앓는 건 사내밖에 없었어. 풍요로 희게 젖은 사막의 밤에 메마른 이물질은 사내뿐이었어.

비슷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어요. 그런데 내가 아는 이야기랑은 좀 다른 것 같네요. 내가 알기로, 사막에 불시착한 비행사는 그곳의 유일한 생존자였는데. 혹시 그는 젊은 청년이었나요?

아니. 그는 아주 쇠약한 노인이었어. 아름답고 튼튼한 괴물을 빚어낼 수 있을 만큼 생생한 밤의 꿈을 꾸지도 않고, 의기소침한 이웃을 떠올릴 수 있을 만큼 많은 추억을 가지고 있지도 않은, 그런 하잘 것 없는 노인이었어. 상상도 추억도 없는 남자는 이미 그곳에 존재하는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눌 수밖에 없었지. 그런데 사막은 너무나 아름다웠던 거야. 달과 별과 모래들이 찬란하고 다정하게 서로를 비추고 있었어. 서글플 정도로 정교하게 서로를 잇는 투명한 빛의 연들 사이에 사내가 늙은 머리를 들이밀만한 공간은 없었어. 사내는 차마 모든 것을 망쳐놓을 수 없었어. 그의 커다랗고 낡은 머리, 기름때가 반들거리고 손톱자국들이 살갗을 흉측하게 파 놓은 그 형편없는 머리를, 그 아름다운 결속의 망은 끌어안아주지 않았어. 차마 가 닿을 수도 없었지. 그는 그곳의 유일한 이물이었어. 어둠으로 찬란한 사막은 그를 내쫓거나 비난하지 않았지만, 사내는 내심 모든 풍경이 그를 배제하기 위해 속으로 낙원의 복원을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어. 사내라고 해서 모든 것을 망쳐놓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어. 그렇지만 비행선은 망가졌고 과열된 엔진은 여전히 시꺼먼 연기를 뿜어내면서 지글대고 있는데, 그가 어떻게 할 수 있었겠어. 그는 찬 바람에 갈기갈기 찢겨 피를 흘리는 더러운 몸을 어디로든 숨기고 싶었지만, 싱그러운 밤의 한가운데에 종기처럼 일어나 있는 수치스러운 나신을 당장에라도 내버리고 싶었지만, 어디로도 갈 수 없었어. 그의 주위에는 온통 사막뿐이었으니까. 밤뿐이었으니까. 누구도 그를 쫓아내주지 않았으니까. 그는 단지 살아있다는 모멸을 온몸으로 견뎌내는 수밖에 없었어.

현과 현을 으스러뜨리고 망가진 살 속에 얼굴을 묻을 용기가 없었던 거야.

여자는 네게 입을 맞추며 말했다. 향기 없이 고요한 침묵이 너희의 몸속에 머물렀다.

이상한 냄새가 풍기고 있었다. 여자에게서 스며나올 리 없는 악취가. 왜냐하면 그녀에게는 땀샘도 기름선도 없었으니까. 왜냐하면 그녀에게는 산 몸도 죽은 몸도 없었으니까. 왜냐하면, 그녀에게는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그제야 네가 입맞추고 있는 입술이 그녀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여자가 죽인 남자였다. 검은 비닐봉투는 어느새 코 윗부분까지 밀려올라가있었다. 매듭에 뭉개진 코 아래에서 냉기가 흘러나왔다. 미약하게 흐느끼는 것 같은, 당장이라도 부서져 너를 깨뜨릴 것 같은 침묵이 너를 둘러쌌다. 시체의 혓바닥은 밍밍하고 저린 느낌이 났다. 아무도 너를 보고 있지 않았음에도 너는 돌연 수치에 몸을 떨었다. 검은 비닐봉지 속에서 썩어가는 두 눈이, 성기를 내놓아도 끝내 가린 두 눈 앞에 방만하게 뜨인 네 두 눈이 어색했다. 끌려온 건 너이고 네 나신을 들여다보는 건 사내인 것 같았다.

힘이 빠져 바닥으로 쓰러졌다. 너의 입술 위에 맞붙어 있던 차갑고 단단한 볼도 너와 함께 쓰러졌다. 너의 고개 옆으로 떨어진 검은 비닐봉지. 소란과 부패, 결핍과 표정을 숨긴 채 네 귓가에서 끔찍스러운 침묵을 중얼대고 있는. 어쩌면 비닐봉지 속은 텅 비어있는지도 몰랐다. 사내의 몸 아래 깔려 바라보는 백색의 등이 너를 굽어 마주보고 있었다. 죽은 성기의 형체가 허벅다리에서 느껴졌다.

시신은 너무 무거웠다. 어떻게 어떤 거리낌도 없이 여기까지 끌고올 수 있었을까. 당장이라도 허리를 일으켜 네 목을 조를 것 같았다. 은밀하게 이어지고 있는 푸른 혈류를 감싸쥐고 너를 죽음의 직전에서 뿌리쳐 놓을 것 같았다. 죽음의 문턱에서 추락한 너는 돌이킬 수 없는 병신이 될 것이다. 팔과 다리는 조각조각 부러져 떨어져 나갈 것이고 새의 배에 박힌 척추는 땅을 향해 굽어 너는 아주 작고 징그러운 쥐과의 동물처럼 평생 몸을 옹송그린 채 구석자리에 숨어 살 것이다. 등을 꼿꼿이 펴고 두 다리로 달리며 튼튼한 두 팔로 활을, 혹은 총을 쏘는 인류를 관찰해 온 태초의 식물들은 네가 무엇이 되었는지 알 것이다. 네가 무엇이었는지 알 것이다. 네가 무엇인지, 곧 모두가 알 것이다. 사내의 무겁고 단단한 피부가 메슥거려서 견딜 수가 없었다. 밀어낼 수 없을 정도로 온몸에 힘이 풀렸다.

너는 죽음이 남기고 떠나간 마음의 육중한 무게를 온몸으로 만끽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네 살을 묵직하게 느슨하게 압박하고 있었다. 아주 서서히 네 윤곽선을 지워나가듯이. 경계와 경계를 허물고 불결한 고기로 돌아가라고 종용하듯이. 마치 처음부터 형체가 없던 살덩이처럼. 너는 철이 지난 비유였고 쓸모를 다한 언어였고, 더는 누구도 함께 앓지 못할 병이었는데, 유행이 지나가도 네가 울 수 있는 노래는 오직 이것뿐이라고 단언하는 사내의 죽은 몸. 죽은 몸. 삶과 죽음이 모두 떠나간 텅 빈 몸의 목과 가슴, 유두와 배, 움푹 들어간 배꼽과 장골, 허벅다리와 성기, 종아리가 네 몸에 낙인을 찍듯 제 존재를 호소하고 있었다. 그것들은 모두 존재하는데 어째서 이미 죽은 것일까? 사내의 머리와 목, 가슴과 팔, 손과 배, 두 다리와 성기는 모두 이곳에 있는데 어째서 그는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닌 것일까?

이상스러운, 속이 메슥거릴 정도로 기묘한 기분이 들었다. 영원한 잠에 든 여자의 창백하고 울적한 팔로 뱃속을 뒤적거리는 것처럼, 교수형을 당해 죽은 사형수의 발기한 성기를, 하얀 대리석 조각처럼 핏기도 열기도 없이 일어난 성기를 몸 속에 넣어보는 것처럼 역겹고 야릇한 기분.

죽은 이의 성기는 더 이상 성기가 아니었고, 삶을 잊고 잠든 이의 팔은 더 이상 팔이 아닌 무언가였으므로. 네 안에 들어간 것은 무엇이었을까. 어떤 이름을 붙여도 좋은, 혹은 이름이 없어도 좋은. 하지만 그것에는 이름보다도 분명한 형상이 있었다. 무너지지도 녹아내리지도 않은 견고한 윤곽이 그것의 형태를 고정시켜 주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건 모두 아무것도 아닌가? 단지 더 이상 삶에 속해 있지 않기 때문에? 단지 더 이상 죽을 수 없기 때문에? 죽을 수 없는 모든 것들은 죽어가는 것들과 살을 섞을 자격이 없는 것일까?

너는 사내의 몸이 달갑지 않았다. 여린 신음조차 하지 않는 비닐봉지가, 파랗게 바래 가는 창백한 몸이, 너를 깔아뭉갠 채 영영 홀로 일어나지 않을 가슴이, 다시는 걷지 못할, 기어서 도망치지도 못할 두 다리가, 너를 버려두고 가지 않을 등이, 여기 그의 아래 깔려 늘어져 있는 네게는 보이지 않는 그의 하얀, 소름 끼칠 정도로 하얀 등이 더 이상 이름을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너는 언제나 이름 없는 것들을 쫓아가지 않았는지. 이름없는 것들의 노래만을, 이름없는 것들의 시만을 훔쳐 듣지 않았는지. 이 순간 사내의 몸만큼 시에 가까운 것이 없음을 알고 있었다. 네 품으로 파고드는 사내의 몸은 눅눅하고 찼다. 넌 슬픔보다는 역겨움을 느꼈다. 아픔보다는 경멸을 느꼈다. 죽음이 두고 간 삶에 대한? 버려진 살에 대한? 울지 못하는 입에 대한? 검은 비닐봉지가 감춘 경악에 대한? 넌 사내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을 최대한 늦추고 있는지도 몰랐다.

가장 안쪽의 방까지 질질 끌고 와놓고 여자와 한담에 잠긴 것도, 쓰러진 사내의 아래에서 사내와는 달리 피가 흐르는 팔과 다리를 움직이지 않고 멍청하게 누워 있는 것도, 헐떡거리는 숨소리를 의미도 없이 숨기는 것도, 그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을 미루어두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사내의 늘어진 팔 아래에서 꿈틀거리는 검은 벌레가 놀랄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의 등 위로 올라갔다. 너는 소스라치며 몸을 옆으로 굴려 사내를 밀어내고 일어섰다. 높은 곳으로 머리를 올려 삶의 잔재를 갉아먹는 벌레로부터 쉽게 뭉그러질 정도로 여린 표정을 보호했다. 수천개의 발로 보행하던 벌레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사내의 등은 대리석처럼 창백하고 하얀 그대로였다. 어떤 외상도 이물질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머지않아 그의 매끄러운 나신은 온통 징그러운 벌레들로, 여남은 삶을 도둑질하고 사는-그래, 너와 같은- 작은 생들로 바글거릴 것이다. 너는 집안에 벌레가 꼬이는 것을 견딜 수 없었다. 그런 상상마저 너를 메슥거리게 만들었다. 사내를 묻어야겠다고, 너는 여자에게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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