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제의 물방울

연구기관에서는 보통의 사람과는 다른 방식의 사고와 창조를 하는 특별한 인물들, 특히 지식에 대한 사드적 욕망을 가지고 있는 자들을 몇 명이고 복제해내기를 원했다. 수십 명의 벤야민과 수십 명의 헤겔, 수십 명의 미켈란젤로가 각자의 창작에 몰두할 수 있도록. 쉽게 짐작할 수 있듯 혹성은 포화 상태가 되었고 인구 조절 문제가 가장 시급한 화제로 변하기에 이르렀다. 보건복지부 장관이었던 프란츠 박사가 기민한 방책을 내놓기 전까지 코코펠리에는 모든 시민과 시민 아닌 자들이 굶어 죽고 말 거라는 끔찍한 괴담이 확고한 계시처럼 떠돌았다. 시인들은 죽음과 종말에 대한 글을 썼으며 유독 아름다운 글을 쓴 시인들은 수십 배의 몸으로 불어나 수천 수의 시를 써내려갔다. 산산조각을 낸 영혼으로, 무수히 갈라진 파편들로 글을 써내려가던 작가의 한 몸에 거주하던 수백 개의 이름들이 모두 다른 사유의 체계 속에서 각기 다른 글을 써내려갔듯, 수십 명으로 복제된 시인들, 과학자들, 심리학자들, 철학자들, 언어학자들은 똑같은 천재성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발현하여 피워냈다. 더 아름다운 것, 더 부드러운 것, 더 매혹적인 것, 더 관능적인 것이 살아남아야 한다는 사실에 우생학자들은 물론이거니와 그들의 찬란한 사상과 작품에 이끌린 시민들 역시 동의하였다. 소녀는 바로 그러한 세상에서 태어났다. 특별히 우수한 아이들을 선별해내기 위해 치렀던 지능시험에서 소녀는 우수한 성적을 받긴 했으나 그녀보다 우수한 성적을 받은 아이는 어느 도시에나 있었고 그들이 제 코드를 복사해낼 때 소녀는 어떤 문제를 틀렸는지 어째서 최고점을 받지 못했던 것인지 골몰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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