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대화는 어떠한 논문도, 학적인 연구도 될 수 없을 거예요. 우리에게는 구체적인 실명도 신원도 존재하지 않으니까. 우리의 세부는 모두 허구의 투명한 거미줄 위에 짜 내려간 환상의 직조물에 불과하니까. 회피와 응시를 얽어놓은 복잡한 거미줄 바깥의 어떠한 삶도, 역사도 우리는 가지고 있지 않아요. 우리 자신의 삶조차도. 우리의 의지도, 목소리도, 우수도 전부 허구일뿐이죠. 실재하는 것은 고독뿐이에요.
그래도 글을 쓰고 싶어요. 쓰고 싶어요. 당신의 이야기를 쓸 수 있게 해주세요. 당신의 이야기가 모두 허구에 불과해도, 엉터리라도 좋아요. 난 써야만 해요. 무엇이라도.
무엇이라도?
거미줄에 걸려 죽어가는 빈대들이 서로의 몸에 찔러넣은 성기에서 흘러내리는 핏물, 성기에 꿰뚫린 두 마리 빈대를 마치 하나의 생물을 다루듯 조금씩 갉아먹는 거미와 그 거미줄 위로 쌓이는 하얀 눈송이. 거미의 눈처럼 투명하고 매혹적인, 마치 살아 있지 않은 것처럼 완벽한 결정의 형태. 눈은 살아있지 않아요, 하고 여자가 중얼거리는 소리. 눈이 아파요, 너무 아파요, 흐느끼는 소녀의 울음소리. 도저한 소음들. 도저한 언어들. 아파요, 아파요,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도저한 소음들. 그래도 나는 쓸 수밖에 없어요. 숙명이 없다면 우리는 살아갈 수 없으니까. 숙명을 믿지 않고는, 착각하지 않고는, 난 아무것도 쓸 수 없으니까. 난 살아갈 수 없으니까. 죽어갈 수도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