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몬캔디의 물방울 – 죄의 소외

죄를 고백하러 오는 사람 중에 진정한 살인자는 없었다고 했죠, 하고 레몬캔디가 말했다. 죄에서 어떠한 회한도, 절망도, 고독도 찾지 못한 학살자들은 한 번도 고해성사실에 찾아오지 않았다고 해요. 어느날 삼촌은 수도원 기숙사 구석에서 개들을 장난삼아 죽이던 소년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 소년은 한 번도 고해성사실에 찾아오지 않았대요. 소년이 비닐봉지, 검은 수의 속에 새끼 강아지들을 밀어넣고 매듭을 단단히 조인 뒤 그 안에 가득 담긴 최후의 공기가 사그라들며 불어나는 모습, 들숨이 날숨과 치환되며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죽음으로 변해가는 모습, 오직 죽음의 한숨만이 비등해가며 부푸는 모습을 지켜보던 반짝거리는 눈이 불빛 하나 없이 어스름한 기숙사 방 속에서도 선명하게 보였다고 했죠. 아직 짖는 법도 제대로 모르는 새끼 강아지들이 낑낑거리며 죽음의 망령과 맞서 싸우는 동안에도 그 어린 도축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보았다고 했어요.

물론 삼촌도 참살의 현장을 방관하고 있었던 거겠죠. 삼촌에게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아마 언젠가 소년이 그에게 죄를 고백하러 오기를, 그래서 소년의 죄를 훔쳐낼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었던 게 아니겠어요. 난 삼촌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아요. 삼촌은 너무 오랫동안 죄를 훔치고 방관하는 일에 매몰되어 있었으니까, 모두가 삼촌을 유령으로 대하는 데에 익숙해져 있었으니까, 스스로를 유령이라고 착각했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겠죠. 어쨌든 삼촌은 소년이 딱딱하게 굳어버린 강아지들을 어떻게 갖고 놀았는지, 정원용 가위로 그 작고 단단한 발을 어떻게 잘랐는지 설명해 주었죠. 이미 굳어버린 몸에서 피는 별로 흐르지 않았다고 이야기할 때, 삼촌이 흘리는 한숨에서 그가 방관한 죽음의 냉기를, 언제든지 개입하여 소년을 쫓아낼 수 있었음에도 방치하였던 살육의 끔찍한 악취를 느낄 수 있었어요.

어쩌면 그러한 방관은 집안의 내력인지도 모르죠. 내가 당신들의 죄 사이에 끼어들어 당신이 회고록을 쓸 수 있도록 돕는 것처럼. 내가 삼촌의 죄를 방관하며 그의 삶에 대해 증언만 하는 것처럼, 오직 이제 사라지고 없는 이의 기억만을 더듬는 것처럼. 다들 대체 내게 뭘 원하고 있는 건가요? 난 당신들이 생각하는 만큼 삼촌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게 아니에요. 그 사람은 작곡을 할 때도, 그 지독한 유전병을 퍼뜨릴 때에도, 내게 언질조차 주지 않았어요. 날 감염시켜 주지도 않았죠. 그 사람은 오직 이모 생각밖에 없었어요. 이모가 없었다면 우리의 골방으로, 광인들이 드나드는 죄의 밀실로 찾아오지도 않았겠죠. 죽어갈 때도, 죽어버릴 때도, 그는 날 찾지 않았어요. 우리 셋 중에, 나름대로의 긴밀한 결속을, 공간을 함께 했다고 믿었던 우리 셋 중에서 그와 마지막까지 숨을 나누어 쉬었던 사람은 나였는데도. 삼촌은 날 찾지 않았어요. 알겠나요? 삼촌은 날 찾지 않았어요. 그러니 그가 죽고 난 뒤에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린 그가 어느 과학자의 해부실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에도, 우리의 비밀이 조심스레 흘러가던 그의 방 안에 잠들어 있던 이모의 시신을 빼앗겼을 때에도, 난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았어요. 삼촌을 용서해달라고 하지도 않았어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지금처럼 변명하지도 않았어요. 난 삼촌이 희대의 살인마라는 걸, 사람들에게 무참한 음악을 강요했고, 그들이 듣기 싫어하던 죽음의 음악을 강제로 쑤셔넣은 장본인이라는 걸, 오직 연약한 사람들, 비참하고 고독한 사람들에게만 퍼지는 죽음의 매혹을 감염시킨 사람이라는 걸, 그 병을 첫 번째로 앓았던 사람이라는 걸 설명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내 침묵 속에서 모든 걸 알아차렸죠.

그리고, 하고 레몬캔디는 아이처럼 흐느끼며 말했다. 시뻘겋게 달아오른 눈에서 투명한 피같은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난 그를 위해 울지 않았어요. 난 삼촌을 위해서 울지 않을 거예요. 날 버리고 간 그 사람들 때문에, 내게 비밀들을 물려주고 사라져버린 그 사람들 때문에 외로워 하지는 않을 거예요. 난 우리의 결속을 지키지 않을 거예요. 난 이모의 시신을, 삼촌의 죄를 팔아넘겼으니까. 병든 할아버지를 잊었고 우리의 비밀이 샘물처럼 흘러가던 고요한 방의 건조한 공기를 모두 잃어버렸으니까. 울지 않을 거예요. 그 사람들을 위해서, 그 사람들 때문에 울지는 않을 거예요.

레몬캔디는 흐느끼며 더듬더듬 말을 이어나갔다. 어미의 자궁처럼 검지만 차가운 비닐봉투 속에 갇혀 제 호흡에 중독되어 죽어가던 어린 강아지들처럼.

난 너희를 그 강아지처럼 갖고 놀려는 게 아니야. 장난감처럼 망가뜨리려는 게 아니야. 난 너희에게 죽음을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지. 매혹적으로 일렁이는 얼굴을 함께 보고 미칠듯한 소곤거림을 같이 듣고 싶었을 뿐이야. 너희의 얼굴이 죽음을 닮아갈 때까지. 내 얼굴이 너희를 닮아갈 때까지. 같이 숨을 참고 싶었을 뿐이야.

하지만 당신은 아무도 죽이지 못했죠.

왜 그렇게 생각해?

당신이 죽인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갔죠? 시체들은 어디로 사라졌죠?

빼앗겼어. 남의 개를 묻으려는 사람들한테.

거짓말. 당신은 아무도 죽인 적 없어요.

네 삼촌은, 하고 너-여자는 말을 멈췄다. 삼촌은 어떻지? 하려는 물음이 갑자기 너무나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레몬캔디는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안다고 해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는 한 번도 사람을 죽여본 적이 없으므로. 그는 오직 사람이 아닌 생물들만 죽여왔고 사람이 아닌 생물들만 먹어왔으므로.

삼촌은 어떨까요? 하고 레몬캔디가 물었다. 네가 멈춘 말을 훔쳐듣기라도 한 듯.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같이 목소리를 엮어가며 글을 쓰는 지금, 너희는 절망의 뿌리를 얽어가며 같은 양분을 취하고 같은 방향을 향해 자라나는 나무들처럼 닮아 있었으니까. 너희는 침묵과 소란의 경계를 잊었고 죄와 욕망의, 관능과 아름다움의 피부를 잃어버린 채 서로가 훔쳐내려 한, 그러나 끝내 훔쳐내지 못한 죄의 관능 속에 파묻힌 채 비정형의 몸을 움츠리고 늘여 펴며 헤엄치고 있으니까.

너희 삼촌은 사람을 죽였어. 그들을 고독에 중독시키고 희고 부드러웠던, 검붉은 핏물이 지나가던 살결에 샛노란 이물의 씨앗을 피워내며 죽게 만들었어. 그들이 서로를 죽이고 자신을 죽이며 마지막 날들을 보냈다는 것, 노란 얼룩들이 돋아난 몸을 견딜 수 없어서 무참한 목을 꺾어가며 비명을 질렀다는 것, 그들은 결국 아무것도 견뎌내지 못했고 아무것도 감내하지 못했다는 것을 전해준 사람이 있어.

그들은 들었나요? 하고 레몬캔디는 놀랍도록 무심한 물음을 던졌다.

그래, 하고 대답하는 너도 그처럼 무심하였다. 너는 어떠한 분노도 수치도 없이 그에게 일러 주었다. 삼촌의 공연은 성공했다고. 병에 감염된 이들 모두 그가 앓던 여인의 목소리를 들으며 죽어갔다고. 긴 손톱으로 귓속을 긁어내어도, 귓바퀴를 뜯어내어도 그 아름다운 음악은 멎지 않았다고. 모두가 그와 함께 절망하였다고. 하지만 우린 끝까지 듣지 못했어, 하고 너는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우린 병에 걸리지 않았어. 우린 그녀의 노래를 듣지 못했어. 우린 E flat이 어떤 소리인지 죽음을 생각하듯 절실하게 고민해 보았지만, 숨을 쉴 때마다, 숨을 참을 때마다, 잠을 잘 때마다, 불면할 때마다 생각했지만 도저히 들을 수 없었지. 그게 현을 날카롭게 긁어내리는 소리인지, 맑은 유리종을 울리는 소리인지, 하얗고 무거운 건반을 두드리닌 소리인지도 우리는 알 수 없어. 듣지 못했으니까.

우리가 그만큼 고독하고 절망하지 않기 때문인가요?

아니, 우리가 그만큼 고독하고 절망하기 때문이겠지. 우린 처음부터 그렇게 태어났으니까. 오랜 고독이, 새로운 병이 스며들 틈조차 없이 그득 들어찬 뿌리들이 우리 내부에서 기생식물처럼 피어나고 있었으니까.

거짓말.

그래. 사실 나도 잘 모르겠어. 어째서 우린 병조차 걸릴 수 없는 건지.

어째서 그와 가장 가까이에서 그의 병을 나누어 마신 나만이 병에 걸리지 않은 건지.

어째서 우린 언제나 유령인 건지.

어째서 우린 죄도 고통도 훔치지 못한 채 타인의 유년만을 이야기하며 텅 빈 어린시절을 짜내려가야 하는 건지. 이야기를 끝내고 나면 그 구멍이 메워질 거라고 생각해요?

아니. 우린 이야기를 끝낼 수 없을 거야. 우린 끝으로부터 태어났고 어쩌면 다시는 끝으로 돌아가지 못할 테니까.

삼촌의 광증을 들을 수 없었듯이.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아프지 않은 건 아니야. 우리의 고독이, 절망이 모두 가짜인 건 아니야. 훔쳐내지 못했다고 해도, 살아내지도 죽어내지도 못했다고 해도. 그러니 계속 이야기를 들려줘. 이야기를 하자. 여자는 레몬캔디의 차가운 손에 가느다란 손가락들을 얽으며 속삭였다. 이건 우리만의 이야기가 될 거야. 아무도 우리를 이해하지 못할 거야. 아무도 우리를 들어주지 않을 거야. 그러니 우린 우리의 노래를 들어야 해.

그렇지만, 하고 레몬캔디가 여자의 목덜미에 입술을 묻으며 말했다. 난 당신의 손가락을 느끼고 있어요. 당신의 부재를, 그 차가운 속삭임이 내 손가락 사이사이로 얽혀드는 걸, 내 손등을 부드럽게 어루만지고 있는 걸 느낄 수 있어요. 난 당신을 듣고 있어요.

응, 나도 널 듣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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