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져나간 깃털을 모아 하늘의 눈을 실어 나르려 했던 포유동물의 물방울

그의 눈은 달처럼 희어서 난 별을 세던 어린 강아지들처럼 UFO를 타고 낯선 사막으로 도망치던 미국애들처럼 그의 눈을 타고 먼 곳으로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요. 먼 곳. 아주 먼 곳. 비행기를 타도, 유람선을 타도, 길거리를 지나다니던 황금빛 사자들이 지프차를 부수고 그 속에서 움틀거리는 고깃덩이의 팔을 찢어내어도 도달할 수 없는 곳. 수만 편의 시를 써도 갈 수 없었던 곳.

나를 돌보던 자원봉사자는 내가 쓴 시를 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다고 했어요. 우리 할머니도 아버지도 내 시를 보고는 그건 시가 아니라고 했죠. 마술 주머니에서 비둘기를 끄집어내며 흐느끼는 사내의 얼굴이 아름답다고 생각한 것은 오로지 나뿐, 비둘기들의 비명을 알아들을 수 있었던 사람도, 실패한 마술을 끝까지 지켜보았던 사람도 오로지 나뿐이었어요. 시인이란 사람을 감동시키는 사람, 사람을 아프게 하는 사람, 사람을 위로하는 사람인데 난 그런 사람이 될 수 없음이 확실했어요. 에이 비 씨 가 나 다 고기 사람 고기 일주일에 한 번씩 우리를 찾아오는 대학생, 다리가 희고 부드러운 여자의 도움을 받아서 에이 비 씨 가 나 다 고기 사람 고기 그릇 아니야 그건 그릇이 아니라 지지야 지지 하고 철자를 익히고 시를 써도 시인이 될 수 없음은 확실했다고요. 적어도 아주 유명한 시인, 비행기를 타고 희고 부드러운 다리가 지네다리처럼 드글거리는 방 안에 들어가 시를 읊는 그런 사람, 어디서든 빠져나갈 수 있고 닦지 않은 창문 너머에서 굶어죽은 비둘기가 머리를 대고 누워 있는 그런 창문 너머에서 사내가 여인의 목을 조르고 어미가 아이의 목을 조르고 아이가 쥐새끼의 목을 조르는 그런 세계는 알지 못하는 사람, 지나가는 고양이의 부드러운 배를 짓밟고서도 고양이의 애탄 위로와 애무를 받는 그런 사람, 에이비씨 가나다를 더 이상 외우지 않아도 유려한 문장을 읊을 수 있는 사람, 후회화 죄가 모두 작품이 되는 사람, 날마다 수천 그루의 나무를 베어내고 수천 마리의 쥐떼들을 호수로 몰아가는 사람, 원한다면 언제든지 수천 명의 사람들 앞에 나가서 원하는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나체의 히피들은 코카콜라 캔을 주렁주렁 매달고 그의 뒤를 따르죠. 눈부신 햇볕 아래에서 달걀처럼 매끈하게 반짝거리는 살갗, 그는 꿈꾸듯 몽롱한 표정으로 누구든지 마음껏 쓰다듬어요.

그 화려하고 애달프며 정교한 어휘들은 에이비씨가나다 고기사람고기고기동물고기로는 도저히 만들어낼 수 없는 세계였어요. 어머, 시를 쓴다고. 얘야, 시를 쓴다고. 내가 쓸 수 있는 시들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시들뿐이었죠. 내게 마술이, 창자가, 비둘기가, 죽음이 어떠한 의미냐고 묻는 엄마에게, 아버지에게, 할머니에게 나는 대답할 말이 없었어요. 내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부드럽고 말캉한 가슴에 손을 들이밀었을 때 자원봉사자 여자는 내 뺨을 때리며 흐느꼈어요. 나는 내 것이 아닌 암탉은 함부로 만져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어요.

이웃집 노인의 마당에서 꼬꼬거리면서 작고 부드러운 머리를 세계를 향해 시계추처럼 움찔거리며 겁 없이 신을 향해 머리를 치대는 암탉을 이웃집 노인이 끌어안고 있었어요. 하얀 깃털 속으로 불쑥 들이밀던 늙은 여자의 쭈글쭈글한 손. 나는 화들짝 놀라서 기절할 지경이었죠. 음산하게 벌어진 잇몸. 생을 그러쥐었던 열매를 모두 잊어버리고 텅 비어버린 검은 동굴 속에서 검은 호흡이 쿡쿡거리며, 아가, 너는 암탉 만지는 법을 배워야겠구나. 나는 늙은 여자의 늙은 품 속에 꼭 끌어안겨 바들바들 떨고 있는 하얀 깃털 속을 헤집어보고 싶어서, 깊은 곳을, 더 깊은 곳을 열어젖히고 싶어서 안달이 났어요. 난 어른이 된다면 꼭 암탉의 창자를 만져보겠다고 마음먹었어요. 동시에 어른이 되려면 암탉의 창자를 주물거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희고 부드러운 다리, 마찬가지로 희고 말캉한 속살에 손을 들이밀었을 때, 암탉은 펄떡거리면서 날아가지도 않고 꼬꼬거리면서 지붕 위로 튀어오르지도 않고 바들바들 떨면서 내 품 속에 얌전히 끌어안겨야 했죠. 암탉은 얌전했지만 난 귀가 찢겨나가듯 아팠고 볼이, 흔들리는 이빨이 당장이라도 파열할 듯이 아팠어요. 내 품에는 깃털 한 개도 없었고 고개를 수그리고 잠이 든 암탉도 공포에 경련하는 암탉도 나를 어른이라고 인정해주는 암탉도 없었어요.

네가 잘못한 거야.

난 그것의 가슴을 움켜쥐고 보드라운 살을 헤집고 더 희고 더 부드러운 창자를 손안에서 젖은 진흙을 바스라뜨리듯 꾹 눌러집고서는 늙은 여자의 텅 빈 입 앞에 자랑스럽게 내밀고 싶었어요. 그러면 그녀는 암탉 만지는 법을 배웠구나, 아가, 하고 자랑스러워할 것이고, 난 정말 시인이, 유치하지도 불가해하지도 않은 시를 쓰는 시인, 나체의 히피들이 코카콜라 캔을 엉덩이 뒤에 주렁주렁 매달고 퍼레이드를 벌이며 뒤따르는 시인, 유서라도 쓰면 제자들이 그의 더럽고 음습한 동굴 속으로 몰려들어 최후의 발언을 한 문장 한 문장 정성스럽게 받아적어줄 시인, 죽어가는 모습을 전시할 수도 있는 시인이 될 거였어요. 만약 그 시인이 죽음의 블랙박스를 개봉한다면 수천 수만 명의 관객들이 기꺼이 표값을 내고 방문할 거예요. 시인의 죽음만큼 매혹적이고 멜랑콜리한 테마는 없으니까.

죽음의 전시장에서 시인은 병아리의 영상을 상영할 거예요. 영상은 시인의 침상 뒤에서 하얗게 빛나죠. 달걀이 깨지고 멀겋고 끈적한 액체 대신 작은 병아리가 튀어나와요. 지나치게 작은 병아리는 노란 털을 벗어내고 희고 질긴 깃털을 하나하나 피워내며 갈수록 길어지는 목으로 꼭꼬대며 돌아다니죠. 양계장의 한구석에서 몽상을 하던 늙은 병아리가 하얀 알을 낳고 달걀이 깨지고 나면 멀겋고 끈적한 액체 대신 작은 병아리가 튀어나와요. 지나치게 작은 병아리가 노란 털을 벗어내고 희고 질긴 깃털을 하나하나 피워낸 뒤 영상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죠. 그러나 사실 그의 침상에는 적외선을 쐬고 있는 희고 부드러운 달걀 외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나체의 여자들과 함께 산과 해변을 누비던 시인의 몸도, 산산조각난 거울을 이리저리 살피며 빛의 실험을 해내던 눈도, 군중의 한가운데에서 햇빛으로 만든 칼을 들고 헤매던 손도 없어요.

죽어가는 시인은 유정란인지 무정란인지도 알 수 없는 하얀 달걀, 침상의 뒤편에서 태어나고 죽고 태어나고 태어나고 또 태어나고 있는 닭들의 가족인지, 모조품인지도 알 수 없는 달걀만이 휑덩그러니 놓여 있는 환자용 침대 위에 누에고치처럼 매달려 있겠죠. 두꺼운 붕대와도 같은 이불에 칭칭 감겨 천장에 못박혀 있는 그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하루종일 그곳에 묶여 전시되어 있는 그가 어떻게 밥을 먹는지 배설을 하는지 알 수 있는 자도 없죠.

그가 죽었기 때문에 물도 커피도 오줌도 마시지 않고 담배도 피우지 않고 비스킷 한 조각 먹지 않고 오줌도 똥도 누지 않고 그 자리에 가만히 심지어는 신음조차 흘리지 않고 숨소리조차 없이 가만히 매달려 있다고는 아무도 생각할 수 없어요. 왜냐하면 그들이 아는 동안 그는 내내 살아 있었으니까. 아무도 그의 죽음을 경험하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내가 죽는다면, 고양이가 구토해놓은 생산 뼈도 감자 스프도 심지어는 갓 잡은 달걀도 먹지 않고 오줌도 지리지 않고 똥도 누지 않고 하늘에서 눈처럼 떨어져내린 참새처럼 가만히 누워 있는다면, 누구라도 내가 죽었음을 알아차릴 거예요. 왜냐하면 셔터 너머의 개들이 침을 뱉고 비웃어도 고발할 수 없는 더러운 골목, 귀신들이 막 닦아 놓은 유리창에 얼굴을 대고 잠들어도 쫓아낼 수 없는 시골, 돌풍에 다리가 잘려나간 비둘기들이 우물처럼 둥근 눈을 껌뻑거리면서 아양을 부려도 비명을 지를 수 없는 쓰레기 산에서 죽음은 머리가 떨어져나간 바비인형만큼이나 흔했으니까. 합성수지 끝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하얀 먼지는 눈물처럼 아름다웠고 도톰하게 튀어나온 입술은 선뜩할 만큼 애처로웠죠. 내가 그녀의 차고 검은 입술에 입을 맞춰도 그녀는 신음조차 흘리지 않았어요. 부랑자가 집시에게 그러하듯 혀를 넣고 침을 뱉지도 않았죠. 그저 끔찍할 정도로 차고 건조할 뿐이었어요. 나는 내 손에서 빠져나가던 암탉의 부드러운 살을 떠올렸고 귀와 뺨, 턱 안쪽에서 무참하게 번져가던 붉은 반점들을 떠올렸고 그제서야 그녀가 아직도 부릅뜬 커다란 눈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음을 깨달았어요.

수줍음도 부끄러움도 없는 서글픈 눈, 그 눈은 영락없는 암탉의 눈이었어요. 나는 확신할 수 있었죠. 늙은 여자의 앙상한 품 속에서 온순하게 바르작거리던 그 암탉, 내 볼과 귀와 턱을 찢어발겼던 그 암탉, 언제나 나를 바깥으로 내쫓기만 했던 그 암탉, 한 번도 내게 안을 허락해 준 적이 없었던 그 암탉이 분명하다고요. 나는 늙은 여자의 품에 끌어안겨 경련하는 가련한 몸을 보고 놀라움에 소스라쳤고 귀와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붉은 피에 놀라 흐느꼈어요. 엄마 어째서 나를 낳은 거예요? 팔지도 먹지도 않을 걸 왜 낳은 거예요, 하고 물어보았을 때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던 암탉의 희고 부드러운 눈동자. 시인의 누에고치 아래에서 샌드위치를 먹는 관광객들.

바비인형의 목이 떨어졌고 찢겨나간 가슴 속에는 별처럼 많은 벌레들, 이름 모를 벌레들이 바르작거렸어요. 나는 무참하게 붉은 겹눈과 눈이 마주쳤어요. 이해할 수 없이 많은 다리들, 다리들, 그리고 다리들이 나를 향해 기어들기 시작했어요. 나는 두 개뿐인 다리를 숨길 여력도 없이 주저앉아 구역질을 해댔죠. 시인의 누에고치 속에도 달걀이 들어있을지 갑자기 궁금해졌으나 나로서는 알 수 없었어요. 닭들은 벌써 엷은 피막을 다 쪼아먹고, 작고 검었던 눈도, 부리도, 실처럼 가느다란 다리도 전부 쪼아먹고 구더기처럼 많은 늙은 여자의 품속으로 기어들어 갔으니까.

내 품에는 한 마리의 암탉도 남지 않았어요. 나는 꺽꺽거리며 시를 썼으나 마술이 무엇인지 모자가 무엇인지 절망이 무엇인지 설명할 어휘는 가나다 에이비씨 고기사람고기중에 어디에도 없었어요. 그래도 나는 UFO를, 얼음사막을 믿었어요. 그의 눈은 달처럼 희었고 나는 낯선 인력에 기대어 어디로든 갈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처음에는 몰랐어요. 그가 그렇게 유명한 철학자인지도 몰랐고 철학이란 게 무엇인지도 몰랐어요. 당신도 알겠지만 우리는 처음부터 이곳, 셔터 너머의 개들이 침을 뱉고 비웃어도 고발할 수 없는 더러운 골목, 귀신들이 막 닦아 놓은 유리창에 얼굴을 대고 잠들어도 쫓아낼 수 없는 시골, 돌풍에 다리가 잘려나간 비둘기들이 우물처럼 둥근 눈을 껌뻑거리면서 아양을 부려도 비명을 지를 수 없는 쓰레기 산에서 살았으니까요. 우리 엄마의 엄마의 엄마들은 아이들을 팔아서 돈을 벌었다고 하지만 매번 목숨을 걸고 수확해내기에는 비루한 수확물이었던 거죠, 생은 어디에나 넘쳐나고 살아 있는 여자들은 계속해서 아이를 낳아대니까. 세계의 심부에서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불어나는 도마뱀들처럼, 밤이 되면 어딘가에서 튀어나와 검고 푸른 천장을 누비는 작은 발자국들처럼, 수의사들은 탯줄을 자르자마자 우리 부모의 작고 부드러운 배에 귀를 갖다대고 심장과 호흡기관, 소화기관들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았어요.

풀과 나무 뿌리만 빌어먹다 보면, 햇빛 아래에서 검게 그을러가는 플라스틱 용기 속에서 드글거리며 끓어넘치는 국물을 들이키다 보면 장기 없이 태어나는 피와 살과 조우하기 마련이에요. 두개골이 접합되지 않은 아이, 개구리처럼 커다란 눈 위로 소녀의 음부처럼 고스란히 노출된 선홍빛의 뇌를 마주한 날, 엄마의 엄마의 엄마들은 더 이상 아이를 팔아넘기지 않겠다고 다짐했죠. 살아서 꿈틀거리는 자궁을 떼어내고 반짝거리는 유리 자궁을 아랫배에 삽입한 여인들은 더 이상 아이를 낳지 않았고 신체 없는 기관들을 팔아넘기지도 않았죠. 하지만 우리 엄마는 나를 낳았고 엄마의 엄마도 엄마를 낳았고 엄마의 엄마의 엄마도 엄마의 엄마를 낳았으니 이 친숙하고 기이한 전통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나도 잘 모르겠군요,

내 주변에서 아이를 낳거나 낳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쓰레기와 함께 살았어요. 우리는 쓰레기를 만들어낸다기보다는 채집하는 쪽이었죠 그렇게 반짝거리고 향기로운 쓰레기를 만들어낼 만큼 우리는 부유하지 못했어요 새벽이 되면 거세당한 수탉이 혼곤한 눈을 뜨고 비명을 지르는 시간이면 어른들은 등에 커다란 나무바구니를 둘러메고 쓰레기산으로 향했죠. 거인과도 같은 덤프트럭들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파편들을 와르르 쏟아놓는 곳. 바다 속의 소금처럼 아무리 덜어내도 마르지 않는 곳. 어른들은 그곳에서 색색의 유리조각들을 주워내곤 했어요. 간혹 예민한 파편은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고 검고 축축한 손바닥을 물어뜯기도 했지만 엄마도 엄마의 엄마도 엄마의 엄마의 엄마도 크게 개의치 않았어요. 달에 한 번씩 유리자궁에서 쏟아져나오는 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요.

나는 언제쯤 피를 흘리게 되냐고 물었을 때, 늙은 여자는 암탉을 제대로 안을 줄 알게 될 때까지 기다리라고 이야기했지만 사실 그렇게 오래 기다릴 필요는 없었어요. 검은 털에 엉겨붙은 피에서 얼마나 고약한 냄새가 나는지, 다리 사이로 달겨드는 파리떼들이 얼마나 성가신지 암캐들은 내게 알려주지 않았지만, 엄마도 내게 알려주지 않았지만, 달처럼 흰 눈을 가진 그 남자는 내 맨등을 어루만지면서, 다리 사이에서 흘러내린 붉은 피로 내게 보이지 않는 곳, 허벅지 뒤쪽이나 엉덩이, 날갯죽지에 무어라 알 수 없는 기호들을 적어내리면서 피를 잘 씻어내라고 속삭였죠. 피를 잘 닦아내지 않으면 파리떼들이 내 성기를 뜯어먹을 수도 있다고. 다시는 오줌을 누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고. 평생 다리를 절게 될 수도 있고 누에고치처럼 희고 두터운 이불에 꽁꽁 감겨 잠만 자야 할 수도 있다고요. 악몽처럼 새까만 거미들이 내 사타구니와 입, 귓속으로 밀려들어와 집을 지어도 거미줄에 꽁꽁 막힌 입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빠져나갈 수 없을 거라고 했어요.

아니에요. 난 그를 사랑하지 않았어요. 내 귀와 턱을 찢어발기는 암탉을 사랑하듯이, 그녀의 희고 둥근 가슴을 사랑하듯이 내 입맞춤을 얌전히 받으며 나를 올려다보는 죽은 인형의 아름다운 눈을 사랑하듯이 그렇게 사랑한 건 아니에요. 하지만 그가 나를 데려갈 수 있었던 곳, 그가 나를 데려가리라고 상상했던 곳, 쓰레기장과 수천 가지 색깔로 반짝이는 유리파편과 어머니의 벌어진 허벅다리 사이에서 언뜻 보이는 녹슨 유리자궁과 허벅다리를 적시는 선혈과 고양이들이 토해놓은 생선뼈와 지붕 위에서 펄떡거리면서 죽어가는 고등어와 구름에서 돌연 떨어진 참새의 깨진 머리통과 두개골 안쪽에서 심장처럼 팔딱거리면서 뛰고 있는 작은 살점을 잊고 나면 마법처럼 드러나던 세계, 비단처럼 싸놓은 하얀 미라 아래에서 다섯 가지 재료를 넣은 샌드위치를 우물대고 있는 관람객들과 비좁고 따뜻한 동굴 속으로 들어와 깃털을 달아 놓은 만년필로 유언을 받아적는 제자들과 길고 윤기나는 머리칼을 풀어헤치고 나신으로 달려나가는 히피들과 깃털처럼 부드러운 부리를 내 입속에 밀어넣는 하얗고 풍만한 암탉들, 난 그녀들의 흰빛을 상상하며 그의 앙상한 가슴, 늙은 여자보다도 더 앙상하던 가슴을 견뎠어요. 늙은이 냄새, 생선가게의 소년이 처음으로 말려놓은 오징어처럼 지독한 비린내, 바닷물과 종양, 썩은 피와 내장, 오물을 제거하지 않고 방치한 것처럼 역한 냄새를 견뎠고 죽은 자들이 말도 없이 나를 굽어보면서 흐느끼는 소리를 견뎠고 어둠 속에서 읽을 수 없는 이름이 새겨진 묘비가 내 등을 짓뭉개는 것을 견뎠고, 벌거벗은 다리 사이를, 피가 흘러내리는 깊은 곳을 따라 기어올라가는 개미들을 견뎠고 내 것이 아닌 길고 긴 시를 견뎠어요. 젖은 휴지 조각처럼 매캐한 혀가 내 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견딜 수 있었던 건, 그것도 웃으면서 견딜 수 있었던 건 구름처럼 부풀어오르는 암탉들, 더는 설명할 필요도 없는 마술사와 비둘기 날개, 내 누에고치 아래에서 입을 벌리고 명상하는 관람객들의 부드러운 눈꺼풀들을 떠올렸기 때문이에요. 나는 지네보다도 길고 아득한 망자들의 눈을 견뎠고, 미끈한 돌이끼가 내 어깨의 상처를 헤집는 것을 견뎠고, 내장 채로 말려놓은 오징어의 쉰내를 견뎠고 여든 개의 유정란을 배설한 암탉보다도 마른 가슴이 내 목을 찔러오는 것을 견뎠어요.

아직까지도 시장 바닥에 주저앉아 유리조각들을 팔고 있는 여자애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썩어가는 유리자궁을 수리할 돈이 없어 암탉의 싱싱한 자궁으로 보양을 하는 엄마와 엄마의 엄마와 엄마의 엄마의 엄마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곧 수천 마리 암탉들의 부드러운 날개를 합쳐놓은 것보다도 거대한 비행기를 타고 구름보다도 파도보다도 새하얀 비행기를 타고 창문의 얼룩에 머리를 박고 영면에 든 귀신들도 비둘기의 내장에서 기어나오는 투명한 촌충도 이끼에 찌든 비석들도 없는 곳으로 갈 거였죠. 고양이들은 썩은 생선 대신 최고급 연어회를 먹고 암탉들은 자궁을 떼어낸 자리에 황금으로 만든 성배를 삽입하고 수탉보다도 우렁차게 울며, 에이비씨가나다고기사람고기를 대학생 자원봉사자 수십 명을 합친 것보다도 더욱 유려하게 말할 수 있는 제자들이 고개를 숙이고 기다리고 있는 따뜻한 동굴의 내부, 누구도 허락한 적 없는 내부로 날아갈 거였다고요. 그래서 난 내 찢어진 귀를 깨무는 오징어의 날카로운 이빨을 견뎠고 내장에서 밀려나오는 배설물을 견뎠고 피와 섞인 배설물, 벌거벗은 살갗을 절망적으로 적시는 냄새를 견뎠어요.

나는 그가 나를 데리고 파리로 뉴욕으로 암탉들의 희고 축축한 깃털들로 장식해놓은 미술관으로 날아갈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어요. 그는 내 시를 듣고 고개를 끄덕이기까지 했으니까요. 마술, 주머니, 그리고 마술 말이에요. 나는 수천 마리 암탉의 풍만한 깃털 속에서 환희를 견디지 못하고 흐느꼈어요. 나는 천식에 걸린 고양이들과 다리를 저는 비둘기, 괴혈병에 걸린 아이들과 개처럼 헐벗고 허리를 숙인 채 쓰레기를 줍는 여자들과 이별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어요. 그는 내 시를 듣고 눈물까지 흘렸으니까. 나는 그가 내 등에 무언가 알 수 없는 그림을 그리는 동안에도 그가 철학자라는 것을 몰랐고 철학이 무엇인지도 몰랐죠. 나는 그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몰랐어요. 만약 그때 당신이 내게 그의 이름을 말해주었더라도, 그가 누구인지 말해주었더라도 나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겠죠. 내가 알았던 건 오직 그가 어디든 자유롭게 누빌 수 있는 시인이라는 것, 그것도 아주 유명한, 수십 명의 제자들이 동굴 앞에서 유언을 받아적고 샌드위치를 입에 문 관람객들이 그의 죽음 앞에서 눈을 감고 명상할 정도로 유명한 시인이라는 것뿐이었어요. 그는 원한다면 언제든지 암탉들을 끌어안을 수 있고 가장 통통하고 아름다운 암탉들의 날개만으로 만든 거대한 비행기를 타고 어디로든 사라질 수 있었겠죠. 나는 그와 함께 사라지고픈 마음뿐이었어요. 그가 건네준 종이쪼가리, 잔뜩 구겨진 지폐 몇 장, 어둠 속에서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숫자 따위는 내 알 바가 아니었어요.

그는 언제나 내 시를 듣고 울었어요. 그건 한참 전에 죽은 감상적인 망자들의 눈물도, 고양이의 눈물도, 오징어의 눈물도 아니고 내 시를 들은 자의 눈물이었어요. 내 시의 눈물이었다고요. 나는 조명 없이도 반짝거리는 물기를 내 손으로 훔쳐내었고 그것이 내 눈물임을, 내 시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어요. 그가 당장이라도 나를 데리고 암탉들의 궁전에 데려갈 것이라고, 얼굴이 희고 반질반질한 달걀 같은 그의 제자들을 소개시켜주고 에이비씨가나다고기사람고기가 아닌 어휘를, 쓰레기장에서 망가진 유리자궁을 채집하는 여인들 누구도 알지 못하는 어휘, 우리에게 말을 가르치러 시가 아닌 말을, 시가 될 수 없는 말을 가르치러 오는 대학생 자원봉사자 누구도 알지 못하는 어휘, 비밀스럽고 아름다운 어휘, 나를 시인으로, 그것도 아주 유명한, 적외선이 방사되는 모조 달걀 위에서 죽어가는 하얀 누에고치로 만들어줄 그런 어휘를 가르쳐줄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어요. 그래서 나는 나지막한 돌풍에 소스라치는 낙엽처럼 벌벌 떨리는 몸을 견뎠고 오물과 뒤섞인 붉은 피를 견뎠고 내 목을 조르는 마른 손, 마디가 굵고 단단한 손을 견뎠어요. 남자아이는, 피로 만든 자궁도 유리자궁도 없는 남자아이는 하혈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배울 때까지, 그를 쫓아다니며 받아든 종이 뭉치로는 암탉 한 마리도 살 수 없다는 사실을 배울 때까지.

인형의 터진 배에서 수천 마리의 이름 모를 벌레들이 기어나왔지만 그 더러운 생들로는 비행기 좌석 하나 살 수 없었어요. 엄마의 엄마의 엄마의 엄마의 엄마들이 팔아넘겨 죽어간 조상들은 텅 빈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았고 쉿쉿거리는 불길한 음성으로 내게 조언했어요. 그들의 나지막한 음성. 돌풍에 놀라 비척거리는 나뭇가지. 그의 눈물이 귓속으로 떨어지는 소리에 뒤섞여 분간할 수 없는 신음소리. 나는 하염없이 흘러나오는 긴 울음을 분절할만한 자리를 찾지 못한 채 내 속으로 파고드는 울음과 피, 역류하는 오물과 흙과 시구를 견뎌내고 있었어요. 이 밤이 끝나면 턱이 떨어져나간 살쾡이도 인가보다도 빽빽이 들어찬 공동묘지도 읽지 못할 이름들도 이름 없는 몸들도 모두 없을 테니까. 나는 제자들에게 소개할 이름을, 우아하고 멋들어지며 동시에 절망적으로 아름다운 필명을 생각하고 있었으며, 내 품에서 기쁘게 꼬꼬거릴 암탉들을 생각했어요. 달팽이처럼 척척한 더듬이가 내 귓속을 파고들어도 새까만 가슴을 깨물어도 망자의 살이 녹아내린 젖은 흙이 맨살을 더럽혀도 난 울지 않았어요. 생선가게의 소년처럼 과일가게의 소년처럼 작년부터 쓰레기장에 나무바구니를 메고 꿈속을 헤엄치는 고래의 눈동자처럼 반짝거리는 유리파편들을 줍고다니는 소년처럼 시끄럽게 울어젖히지 않고 의젓하게 침묵했죠. 만약 그가 단 한 명의 소년만을 데리고 수도로, 뉴욕으로, 이집트로 간다면 그건 나일 수밖에 없다는 것, 그가 눈물을 흘린 시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도 알고 있었을 테니까. 그러니 추위에 파랗게 변했을 것이 분명한, 이끼에 쓸려서 울퉁불퉁한 돌에 부딪혀서 멍이 들고 까졌을 것이 분명한 등도 아프지 않았고, 그가 내 목 안쪽에 길고 냄새나는 혀를 밀어넣어도 역겹지 않았고, 쓰레기 산 꼭대기에서 열 마리의 쥐새끼들을 그 가늘고 연약한 다리 사이로 밀어내는 쥐새끼처럼 헐떡거려도 나는 그를 비웃지 않았어요. 그는 수천 마리의 암탉들을 타고 얼음사막으로 가는 길을 내게 알려줄 은인이었기에. 그를 배웅하며 그에게 성배처럼 반짝이는 술병을 건네주는 열두 명의 제자들을 물려줄 스승이었기에. 여름이면 믿을 수 없을 만큼 검고 거대한 딱정벌레의 내장 속에서 문을 열고 나와 그를 따라다니는 열두 명의 제자들. 이마 위에서, 희고 반들반들한 머리 위에서, 목 위에서, 딱정벌레만큼이나 검고 반들거리는 가죽 바깥으로 말간 침을 질질 흘리면서 난 생각했어요. 난 엄마가 내게, 엄마의 엄마가 엄마에게, 엄마의 엄마의 엄마가 엄마의 엄마에게 그러하였듯 그들에게, 그들의 하얗고 통통한 머리에, 손과 목과 발목에 기저귀를 채우는 대신 그들을 감싸안고 어르고 달래줄 준비가 되어 있다고. 난 희고 부드러운 달걀과도 같은 머리를 끌어안고 그 속에서 풍만하고 말캉한 암탉이 튀어나오기를 기다릴 준비가 되어 있었어요. 생선가게 소년처럼, 과일가게 소년처럼, 시장바닥에 주저앉아 붉고 반들거리는 유리파편을 이리저리 만져보다가 입속에 집어넣고 축축하고 부드러운 입속에서 과즙처럼 달콤한 피를 줄줄 흘리며 흐느끼는 소녀처럼 호들갑을 떨지 않고, 마치 수백 번이고 수천 번이고 딱정벌레의 내장을 열어본 사람처럼, 주저함도 없이 흰 쥐들의 배를 갈라내는 과학자처럼 그렇게, 우아한 태도로 구름 위에 올라타는 천사들처럼 그렇게 그들을 따라나설 거였죠.

그때가 되면 나는 설탕물이 턱에 묻은 소년들과 함께 그의 뒤를 쫓아다니며 쓸모도 없는 종이 쪼가리를 받아들 필요도 없을 거고, 무명의 시인들이 잠 없는 악몽 속에서 이제는 썩어문드러져 존재조차 하지 않는 다리를 허우적거리는 무덤 위에서 헐벗은 등을 달팽이처럼 움츠릴 필요도 없을 거고, 헐거워진 유리자궁을 갈 돈이 없어서 절망하는 여자의 녹슨 얼굴을 마주할 필요도 없을 거였어요. 나는 수천 마리 암탉들을 끌어안고 비누거품보다 부드러운 비밀의 어휘들을 속살거렸겠죠. 열두 명의 제자들은 더러운 비석 위에서 신음을 울음을 참으며 바즈락거리는 내 침묵을 듣지 못했을 거예요. 도축용 칼에 찢겨진 배에서 미로처럼 길고 구불거리는 내장을 줄줄 흘리며 지붕 위로 도망치는 암탉도 볼 수 없었겠죠. 먹지도 않을 피륙을 생산해내는 자궁들, 살도 피도 없는 자궁들, 뼈도 구조도 없이 맥박하는 자궁들, 유리로 만든 자궁, 루비로 만든 자궁, 고양이의 털로 만든 자궁, 천사의 날개로 만든 자궁, 녹슬거나 녹슬지 않은 자궁 수천 개를 주렁주렁 매달고 허공 위를 떠다니는 성자들의 발자국이나 셈하는 엄마는 먹지도 팔지도 않을 나를 낳은 일을 자랑스러워했을 거예요. 쓰레기 산보다도 더 포동포동하게 살이 오른 뱃속에 수천 개의 자궁들을 품고 만족스럽게 웃으며 누워 있는 여인에게 망자들과 산 자들 누구나 찾아가 경의를 표하기 위해 그들이 가진 가장 순결한 것, 갓 피어난 수선화의 꽃잎과 첫날밤에 깨진 그릇의 파편, 황금으로 만든 동전과 기름 얼룩에 절은 귀부인의 초상화를 들고 찾아갔겠죠. 그녀는 내가 선물한 자궁들에게, 영원히 태어나지도 죽지도 않을 불멸의 기관들에게 하나하나 이름을 지어주며 내 이름을, 내 허벅지 사이에서 흘러내리던 붉은 피와 등에 묻은 이끼와 보랏빛의 멍자국과 울음소리를 잊었겠죠. 그녀는 오직 박물관의 높은 천장에 구름처럼 매달려 관람객들의 경악스러운 입속을 굽어보는 시인의 영령만을 기억했을 거예요.

뱃속으로 밀려드는 검은 흙과 들쥐들의 울음소리. 나는 그 비극적인 찍찍거림을 잊었고 역류하는 휴지뭉치를 잊었고 자궁 없이 하혈하는 구멍을, 마술 모자와 죽은 비둘기를 잊었어요. 훗날 나를 추모하기 위해, 철학자도 달걀처럼 희고 매끈한 사내들도 아닌 나를 만나기 위해 찾아올 수만 마리의 암탉들을, 내 아래에서 사라져갈 수만 개의 샌드위치들을 생각했어요. 그 순간 나는 정말이지 내가 위대한 시인이 되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어요. 수천 개의 유리자궁을 주렁주렁 매단 나체의 암탉들이 내 뒤를 쫓아 달려오는 가운데 순결한 피거품을 밀어젖히며 얼음사막과 이집트, 폼페이의 허공을 횡단하는 대리석 황소들, 나는 쓰레기산의 꼭대기에서 막 아홉 번째 새끼를 출산하는 쥐 여인을 잊었고 낄낄거리는 바람소리가 역류하는 뱃속을 잊었고 내 목을 졸라오는 축축한 손가락을 잊었어요.

당신에게 고백하건데, 그의 눈은 달처럼 희었고 난 별을 세던 어린 강아지들처럼 UFO를 타고 낯선 사막으로 도망치던 미국애들처럼 그의 눈을 타고 먼 곳으로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요. 먼 곳, 아주 먼 곳, 비행기를 타도 유람선을 타도 길거리를 지나다니던 황금빛 사자들이 지프차를 부수고 그 속에서 움틀거리는 고깃덩이의 팔을 찢어내어도 도달할 수 없는 곳, 수만 편의 시를 써도 갈 수 없었던 곳으로 당장이라도 도달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으니 나는 행복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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