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소다팝시티의 물방울

안녕, 안녕, 안녕.

안녕.

네온소다팝시티의 주민들이 인사한다. 너희는 반가움에 얼굴을 찡그리며 서로의 주위를 맴돈다. 파랗거나 노랗거나 붉거나 무르거나 질기거나 끈적한 풍선껌들이 너희의 얼굴이다.

변조한 목소리로 레몬캔디가 네게 묻는다. 말을 꺼내는 그의 눈이 붉게 반짝인다. 네온소다팝시티의 시스템 상에서 말이 겹치는 일은 불가능하다. 만질 수 없는 피사체를 서글프게 바라보는 카메라의 붉은 램프처럼 저 홀로 차고 붉게 물드는 눈이 화자를 지시할 수 있는 것도 이러한 시스템 덕분이다.

안녕. 들리나요? 레몬캔디가 묻는다.

분홍캔디가 대답한다. 안녕.

다들 나를 기다리고 있었나요?

아니. 우린 그저 대화를 나누고 있었을 뿐이야. 평소처럼 어떤 약속도 없이. 이 중에서 가장 늦게 도착한 건 너야.

수박캔디가 말한다. 서운해 하지는 마. 그래도 우리는 너를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모래사장에 묻혀 있던 인형 말이야. 그 속에 뭐가 들어 있었다고 했지?

꽃가루요. 붉은 꽃가루.

정말? 확실해?

수박캔디가 펄쩍펄쩍 뛰며 물었다.

우린 다르게 기억하고 있었거든.

그래.

노란 꽃잎이 아니었어? 꽃잎을 빻아 만든 가루가 들어 있다고 하지 않았어?

붉게 변한 이파리를 잘라 뭉쳐 놓은 얼룩이 아니었어? 넌 그 희끄무레한 체액 속에서 붉은 별을 빌었다고 했어.

너희는 서로의 픽셀 조각들을 조금씩 잘라내어 얼굴에 붙였다. 싸구려 야광별 같은 빛깔들이 먼지처럼 빛났다. 어딘가의 모니터 너머에서 가까이 붙인 눈, 눈과 눈, 맞닿지 못하는 눈, 살을 잃은 몸처럼, 몸을 잃은 죽음처럼. 다가가며 멀어지는 미래처럼.

레몬캔디는 너희의 이야기를 잠자코 듣다가 화제를 바꾸었다.

이건 삼촌이 거식증에 걸렸을 때의 이야기야. 오래전부터 요리사 천사의 음식만을 선별적으로 먹으며 몸을 정화해왔던 삼촌은 결국 거식증에 걸리고 말았지. 천사는 음식에 불순물을 섞지 않았고, 불순물이 섞인 음식을 요리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재료를 조달하는 일은 아주 어려운 일이었어. 삼각뿔의 법칙을 믿던 요리사 천사는 저 스스로 몸을 던져 다른 살로 다른 삶으로 변하고 싶다는 동물들로만 요리를 했거든. 너도 알다시피 태와 때를 바꾸어서라도 거듭 살고 싶어 하는 생은 아주 드물지. 하물며 천사는 함부로 식물의 이파리를 떼어내는 일도 없었어. 꽃이 더 살고 싶다고 미련하게 울며 호소할 때에만 그 청을 들어 주었지. 하지만.. 생각해봐. 저 스스로 삶을 선택하는 생이 세상에 얼마나 되겠어. 누군가 너희를 붉고 아늑한 어둠 속에서 몰아내지 않았다면 너희는 죽음을 포기하고 삶으로 스스로를 내던질 수 있었겠니? 우리는 이미 한 번의 자살로 이 먼지소굴에 태어났어. 우리는 단지 깨끗하고 조용한 모지로 돌아가기 위해서 푸른 먼지들을 견뎌내는 거야. 그런데 기껏하여 견뎌온 먼지를 뱉어내고 다시 다른 누군가의 살 속에서 살아가겠다고? 감히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는 것들이 얼마나 될까? 그들은 두 번의 자살로 죽음을 포기하고 삶을 택하는 거야.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지. 여하튼 그런 알 수 없는 짓거리를 선택하는 삶의 자살자들은 나날이 줄어들었어. 결국 요리사 천사는 뼈만 남아 굶주리다가 제 살을 모조리 베어먹고 푸른 피를 흘리며 죽고 말았지. 천사는 아무에게도 제 더러운 살을 먹이지 않았어. 더러운 살에 제 몸을 잇대지 않았어. 삼촌은 죽어가는 천사의 푸른 핏물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천사의 주방을 나섰지. 천사가 그에게 알려준 부드러운 음률은 깨어지고 말았어. 도시는 늙은 비둘기의 잘린 다리 속에서 우글대는 역겨운 생처럼 꺼억꺼억 하고 울고 있었지.

결국 그는 아름다운 음악만을 몸에 품으며 부드럽고 질 좋은 원형질로 살아가는 일을 포기하고 말았어. 그는 무엇이든 먹었어. 늙은 불알처럼 축 늘어진 수퇘지의 유방, 일년 내내 젖을 흘리는 암소의 우유를 늪에 빠진 개미처럼 게걸스레 들이켰지. 그의 몸은 갓 태어난 별의 진폭을 잃고 싸구려 야광별처럼 천박하게 반들거렸어. 주름살 사이사이에는 더러운 불협화음이 징징거렸지. 그래도 그는 살아갔어. 역겨운 살로 달콤한 살을 부풀리며. 눈을 감고 삶의 악취를 일생 동안 만끽하는 도축장의 돼지처럼 무엇도 길러내지 못할 유방을 부풀려가며. 살았어. 그는 무엇도 위하지 않고 무엇에게도 위해지지 않고. 단지 제 몸을 빼앗긴 살점들을 주워 먹으면서 온몸에 별들처럼 돋아난 종기들을 긁적거리면서 살았어. 그가 요리를 시작했을 때, 우리는 그를 요리사 천사라고 부르기 시작했어.

레몬캔디의 빨간 눈이 파랗게 식고 나서야 너희는 그의 말이 모두 거짓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레몬캔디의 삼촌은 요리사가 아닌 음악가였고, 그는 마른 몸으로 평생 동안 불면의 꿈을 허우적거리며 살았다. 레몬캔디에게 몇 번이나 들어온 이야기였다. 너희는 그 애의 거짓말을 지적하는 대신 그 애의 몽상을 같이 앓아 주었다. 너희는 더이상 누구도 배고프지 않을 때까지 허기를 견디며 밤새도록 요리사 천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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