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들의 물방울

여자는 숨을 들이쉰다. 눈꺼풀 속에서 붉은 얼룩들이 흩어진다. 피부를 잃고 질주하는 말의 혈류처럼. 기억들의 마을에서 무엇을 찾으려고 했는지, 그녀로서는 알 길이 없다. 그곳은 그녀의 고향도 아니었고, 한 잔의 홍차와 마들렌에서 피어오르는 장미 정원을 돌보던 사내가 찾아나선 진리는 그녀가 속해 있지 않은 세상의 것이었으므로. 날짜와 시간이 표시되지 않은 필름사진과 같은 기억들, 죽은 자도 산 자도 모두 한없이 검게만 보이는 네거티브 필름의 영상들처럼.

너희에게는 언제나 두 번째 하늘이 있다는 걸, 하나의 하늘 아래, 초록빛 대기 속에 잠겨 있는 너희는 언제나 잊어버리곤 했다. 하나의 하늘을 살면서 다른 하늘을 떠올리거나, 다른 하늘에 살면서 고향의 하늘을 잊거나 할 수밖에 없는 거야, 하고 혁명가 여자가 말했을 때, 네가 어떻게 대답했었더라. 그래요. 당신이 말할 때, 당신은 당신을 듣지 않고 내 침묵을 바라보는 것처럼, 내가 침묵할 때, 난 나의 침묵 대신 당신의 언어로 채워지는 것처럼. 우리는 동시에 두 개의 하늘에 속할 수는 없는 거죠.

하지만 우리는 하나의 하늘에도 속하지 않을지 몰라. 불투명한 유령들의 잿빛 몸은 대기의 축축한 물감과 조금도 섞이지 않을지도 몰라. 그들의 몸에는 수채화 같은 하늘의 색채가 배어들지 않을 거야.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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