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의 자살의 물방울 3

그들은 암실에 있다. 쭈글쭈글한 암막 커튼과 투명한 레이스처럼 넘실거리는 검붉은 빛무리. 소녀는 무언가를 보았다고 믿는다. 그녀, 깨진 창문 너머로 떨어져서 파손된 휠체어의 부품이 굴러다녔고 여자 아이의 죽음을 애도하는 자들은 휠체어의 죽음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휠체어를 고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죽은 자가 입던 옷은 죽은 자와 함께 불태워야 하는 것이 맞기에, 아무도 그 휠체어, 산산조각 난 휠체어를 탐내지 않았다. 그들이 그런 절망을 살아갈 일은 없기에. 설령 그런 날이 온다면 그들은 휠체어도 휠체어 바퀴도 휠체어 부품도 없이 죽어버릴 것이기에. 아무도 그들에게 삶을 강제할 수 없기에. 마네킹처럼 단단하고 정교한 여자 아이의 흰 뼈를 들여다보는 소녀를 건너본 사람들은 소녀를 보면서 아직도 그녀가 살아 있는 것을 의아해했다. 왜냐하면 소녀는 너무도 앙상했기에. 불거져 나온 뼈는 시신의 비져나온 뼈마디와 너무도 닮았기에. 어째서 소녀가 아직도 서 있는 것인지 무덤으로 돌아가지 않은 것인지 의아했기에.

하지만 소녀는 오래 그 자리에 머물지 않았다. 오토바이에 밟혀 다리가 부러진 까마귀. 담뱃불에 지져진 외눈으로 사람들의 표정을 관찰하는 비둘기. 그녀의 몸에서 기생하고 있는 작고 연약한 벼룩들. 소녀를 보고 침을 흘리며 그르렁거리다가 비쩍 마른 종아리에 달겨들어 뼈를 잘근잘근 씹어대는 검은 개. 그러나 소녀는 아무것도 미워할 수 없었다. 아무도 그녀를 미워하지 않았으니까. 그녀는 아무도 사랑할 수 없었으니까. 그녀는 거울 속에서만 살아가고 있었으니까. 그들은 모두 거짓이었으니까. 지나가던 사람들의 놀란 눈도 연민하는 눈도 경멸하는 눈도 모두 거짓이었으니까. 소녀를 바라보는 것은 처음부터 없었으니까. 소녀의 거울은 처음부터 망가지고 아무것도 비추지 못하며 어떠한 속임수도 기능할 수 없는 평면뿐인 유리였으니까.

붉은 어둠 속에서 사지를 뒤틀고 누워 있는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을 소녀는 알고 있다고 믿는다. 도자기 인형처럼 매끄러운 코와 이마, 악몽만큼 검은 피부.

그 애는 내 여동생이야, 하고 소년은 작은 병아리를 자랑하듯 말했다.

그래요?

그래. 예쁘지?

소녀는 그녀의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고 대답하는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 애는 정말 예뻤어. 사창가가 아니라 스크린에서 돈을 벌 수 있을 정도로, 치마 속이 아니라 얼굴만으로 돈을 벌 수 있을 정도로 예뻤지. 수도에서 열리는 미인대회에서도 우승할 정도로, 주교가 어머니에게 은밀하게 건네던 돈을 거절할 수 있을 정도로,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밀약도 아쉽지 않을 정도로, 이 애 학교 선생이 특별과외를 해주겠다고 나서는 것도, 심지어는 시장님이 직접 집으로 찾아와 그 애에게 해외 연수를 보내주겠다고 하는 말도 아쉽지 않을 정도로 예뻤어.

미인대회에서 우승한 뒤 아냐는 학교에 가지 않았어. 세계의 진리를 강구하기 위한 화학식이나 물리, 소립자들의 결합 구조 따위는 그 애에게 아무런 소용도 없었으니까. 그 애는 이미 세계의 진리를, 물질의 내장에서 움틀거리는 진리내용의 황홀한 광휘를 체현하고 있었는걸. 아름다움, 어떠한 철학자가 말했듯 진리의 실존을 담보하는 아름다움이 그 애의 작은 코와 부드러운 턱, 봉긋한 가슴과 밤처럼 검은 피부로 현화하고 있었는데, 평생 동안 진리를 찾아 헤매던 주교와 교사들, 심지어는 대학의 교수들까지도 그 애의 아름다움을 질시하여 우리 집에 직접 찾아올 정도였는데, 알겠니? 우리가 그들의 집에 방문해서 그 애의 아름다움을 광고한 게 아니야, 그 애의 아름다움이 진리를 구하던 이들의 기민한 촉수를 자극해서 그들 스스로 진리를 구하기 위해 우리 집에 방문한 거지, 망망대해에서 떠도는 어선의 빛무리를 쫓아 수천킬로미터를 횡단하여 불빛에 몸을 던지는 나방들처럼.

미인대회에 참석했던 영화 관계자가 그 애를 캐스팅하고 싶다고 전화해온 뒤로 우리는 모두에게 그 애를 베풀어주기 위한 황홀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어. 빵을 베풀 듯 진실을 베풀던 예수와 그의 사제들처럼, 무참할 정도로 검고 아름다운 그 애를 적선하면 우리는 모두 천국에 갈 수 있을 테니까. 주교의 안내도 승인도 필요 없이. 그런 늙어빠진 놈의 인도 따위는 아무래도 좋아. 그 늙은이가 어떤 기벽을 가지고 있는지 알게 뭐람. 같잖은 황홀에 취해서 아냐의 완벽한 살을 담뱃불로 지지고 그 애의 다리를 자르고 반병신으로 만들지 누가 아느냐고. 아름다움이라는 것, 진리라는 것은 경악스러울 정도로 순식간에 망가지는 법이니까. 사랑스러움을 견디지 못하고 품에 넣어 만지작거리던 노란 병아리가 공포를 견디지 못하고 죽어버리는 것처럼. 그러니까 우리는 기적적으로 현현한 아름다움을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어. 우리는 아냐를 망가뜨리는 위험을 감수할 생각이 없었어. 아냐는 다리를 벌릴 필요도 몸을 더럽힐 필요도 없이 그저 그 아름다운 얼굴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사물의 단단하고 견고한 베일 속에 가려져 있던 진리의 빛을 드러내는 것만으로, 마치 십자가에 못박힌 모습을 전시하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에게 감동과 경탄을 자아내는 예수의 성상처럼 그렇게 민중들이 이전까지는 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을 자비를 베풀어 줄 수 있을 테니까.

우리는 캐스팅 오디션을 보자는 디렉터의 요구도 거절했지. 오디션장에서 그 작자가 여동생을 어떻게 꺾어서 망가뜨릴지 짐작할 수도 없었으니까. 물론 디렉터는 캐스팅 오디션 없이도 아냐를 주인공으로 캐스팅하겠다고 선언했어.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지. 그 애는 그 정도로 아름다웠으니까. 그 애만큼 아름다운 것은 그전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우린 그 애의 매끄러운 피부에 염증이라도 생길까봐 함부로 그 애의 검붉은 피부를 어루만지지도 못했어. 견고하게 압축되어 있는 침묵의 한가운데에서 작은 신음마저 세계를 깨뜨릴 수 있다고 믿고 소리도 없이 흐느끼는 신자들처럼, 우리는 그 애를, 우리가 생산한, 우리에게 속해 있는 아름다움을 함부로 만지지도 못했다고.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천국에 갔어야 했는데. 하느님이 아주 어린 아이들, 유독 선량하고 해맑은 아이들을 그의 시동으로 부리기 위하여 데려가듯 그 역시 우리의 공로를 치하하며 진작에 아주 오래 전에, 아냐의 가슴이 봉긋해지기 전에, 아냐의 머리칼이 허리까지 자라나기 전에, 아냐의 영구치가 자라나기 전에, 아냐의 앞니가 빠지기 전에, 아냐의 잇몸에 흰빛의 보석들이 영글기도 전에, 그 애가 오빠라는 말을 배우기 전에, 그 애가 아빠라는 말도 엄마라는 말도 배우기 전에, 그 애가 오직 시끄럽고 지독한 비명만을 내지르고 있을 때, 오, 그 애의 아름다운 외모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천박하고 징그러운 소음을 꽥꽥거리며 질러내고 있을 때, 그 애가 어미의 질에 악몽처럼 검고 아름다운 머리를 들이밀며 제 탯줄을 섬세한 손으로 부여잡고 밀려나오기 전에, 그 애가, 우리를 구원하고 우리를 파멸시킬 그 아름다움이 난데없이 나타나기 전에, 아무도 원한 적이 없던 진리, 아무도 기도한 적이 없던 과잉의 아름다움이 검붉은 몸, 오래도록 솥에 넣고 끓인 고깃덩이와 같은 몸으로 엉금엉금 기어나오기 전에, 신은 우리를 진작에 하늘로 데려갔어야 했는데. 무슨 까닭인지, 신도 그 애의 아름다움에 홀려 그 애가 자라나고 그 애가 피어나고 그 애가 망가지는 모습을 직접 바라보고 싶었던 것인지, 아니면 그 애의 아름다움 때문에 우리를 잊었던 것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그가 선량한 사람들에게 종종 그러하듯 우리를 시험하고 우리를 고통받게 만들어 우리를 완전히 구원할 속셈이었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신은 우리를 구원하지 않았어. 우리는 과분하고 갑작스러운 아름다움이 더러운 바닥에서 지네들과 함께 기어다니는 모습을 보았어. 변을 싸대는 모습을, 달콤한 침을 흘리고 어미의 젖을 깨물며 짐승처럼 울부짖는 모습을 보았고 지렁이의 목 없는 목을 자르고 민들레 꽃씨를 갈기갈기 뜯어놓고 먹지도 않을 닭의 가느다란 목을 양 손으로, 꿈틀거리는 지렁이처럼 검붉은 손으로 움켜쥐고 도살하는 모습을 보았고, 또 어미의 젖을 움켜쥐고 그녀가 고통으로 신음할 때까지 그녀의 유륜이 깨문 자국으로 보랏빛이 되어버릴 때까지, 속옷만 닿아도 소스라칠 정도로 짓무르고 멍이 들어서 흐느끼는 모습을 멍하니 들여다보면서 백치처럼 다시 이를 세우며 모유를 갈취해가는 모습을 보았어.

여동생의 잔혹한 모습이 지극히 일반적인 모습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애의 아름다움 때문에 그 애의 잔혹함은 더욱 극적으로 보였어. 그래서 우리는 그 애를 사랑하면서도 그 애를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어. 그 애가 끓는 물에서 불린 소의 생살처럼 아득하게 말간 살을 들이밀 때마다 우리는 넘쳐흐르는, 과잉의 아름다움에 소스라치며 엉엉 울 수밖에 없었는데, 아이처럼 울었던 것은 정말로 아이였던 나뿐만이 아니라 아버지와 어머니, 마흔이 넘은, 천장에 머리가 닿을 듯이 커다란, 직접 도축장에서 개와 소를 도살한 적도 있고 전쟁에서 개와 소처럼 뼈와 근육과 살을 가진 베트남 사내와 여인들을 학살한 적도 있으며 내가 여동생처럼 작고 어릴 때에는 마치 괴물처럼 크고 무참해 보였던 아버지도, 심지어는 그 애의 아름다움을 뱃속에서 직접 잉태해낸 생산자인 어머니도 여동생의 헐벗은 몸, 신비로울 정도로 아름다운 생명의 맨살을 보면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꽥꽥 울어댔어. 그 모습은 마치 어미의 뱃속에서 처음으로 쫓겨나오던 검붉은 살덩이가 울었던 모습과도 같았지. 제발 저리 가, 저리 가란 말이야. 원치 않는 생명을 잉태하던 르완다의 여인들과도 같았고, 생전 처음 보는 사내들이 제 목에 날카로운 면도날을 들이대고 하의를 벗기며 신음하는 모습을, 그 끔찍한 기억을 뱃속에서 도려낼 수도 없었던 여인들, 그녀의 피와 살과 호흡을 훔쳐가면서 뱃속에서 나날이 부풀어가는 끔찍한 악몽을 결국에는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던 여인들과도 같았고, 심지어는 아버지마저도, 베트남의 여인들을 깔아뭉개고 그녀들의 머리를 개머리판으로 찍어누르며 갓난아이처럼 벅찬 숨을 헉헉거리며 내뱉었던 아버지마저도 여동생이 그 검고 부드러운 살, 비참할 정도로 아름다운 얼굴을 들이밀 때면 공포에 질려 헉헉거리며, 제발 저리 가, 저리 가란 말이야, 하고 흐느꼈는데 그나마 우리 중에서 여동생을, 그녀의 무참한 아름다움을 덜 두려워하는 사람은 나였어.

그래서 나는 그녀의 유모처럼, 어미와도 같은 유모처럼 그녀의 흑단같이 검고 굵은 머리칼을 빗기고 그녀의 귓속을 닦아 주고 오물에 짓무른 그녀의 엉덩이를 씻겨내고 발바닥과 손바닥마저도 새까만 그녀의 몸 구석구석에 묻어 있는 하얀 먼지들을 털어내주고 그녀에게 숫자를 가르쳐주고 그녀의 이름을 가르쳐주고 그녀의 이름을, 아냐, 하고 불러 줬어. 지독하게 멍청했던 그녀, 아이를 낳는 구멍과 배설하는 구멍을 구분하지 못하는 그녀에게 질에서는 오줌이 나오지 않고 요도에서는 아이가 나오지 않는다고 설명해 준 것도 나고, 단풍나무를 베어 바이올린을 만들던 자가 어떻게 미쳐갔는지 이야기해준 것도 나고, 화학과 철학은 세계의 진리를 어떻게 다른 방식으로 설명하는지 이야기해준 것도 나고, 그녀가 아무런 계획도 없이 한 움큼 뽑아 들고 온 꽃들을 엮어서 반지와 목걸이를 만드는 방법을 알려준 것도 나고, 외피로 흘러나온 아름다움에 비례하는 것처럼 멍청한 그녀, 어린 늑대들이 철학에 무지하듯 그렇게 멍청한 그녀에게 먹지도 않을 것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된다고 설명해 준 것도,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그녀, 그러면 가죽소파는? 가죽옷은? 나무테이블은? 나무의자는? 바이올린은? 또다시 지나가던 달팽이의 갈빛 집을 돌로 맞춰 낄낄거리며 작은 조약돌을 모으듯 부서진 생의 파편을 주워와 자랑하던 그녀에게, 잠자리의 잘라낸 날개를 한 겹 한 겹씩 뜯어보던 그녀에게 다시, 먹지도 않을 것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된다고 설명해 준 것도 나고, 어린아이처럼 멍청해진 부모가 겁에 질려서 여동생을 밀어내며 저리 가, 제발 저리 가라고 흐느낄 때 그녀에게 속옷과 옷을 입히고 그녀의 신비로운 야생성을 씻겨내고 그녀의 손톱과 발톱을 깎아준 것도 전부 나야. 그러니까 그녀는 어머니의 아이도 아버지의 아이도 아닌 내 아이나 마찬가지였어. 그녀의 아름다움도 내 것이나 마찬가지였지만 가슴이 봉긋해지고 팔다리가 길어지면서 점차 사람처럼, 검붉고 신비로운 암석과도 같은 살덩어리가 아니라 차라리 매혹적인 짐승처럼 보이게 된 그녀, 엄마, 아빠, 오빠 하는 말을 배우고 먹지 않을 것은 죽이지 않는 법을 배우고 사람처럼 두 발로 걷게 된 그녀를 이전보다 덜 무서워하게 된 부모님은, 이제 한밤중에 거실에서 서성이는 그녀를 아무런 예고도 준비도 없이 맞닥뜨릴 때가 아니면, 저리 가, 제발 저리 가란 말이야, 하고 울부짖지 않게 된 부모님은 갑작스럽게 그녀를 껴안고 그녀를 쓰다듬으며 그녀를 사랑한다고 말하기 시작했어. 그래서 그녀는, 그녀의 경악스러운 멍청함과 아름다움은 더 이상 내 전유물이 아니게 되었는데, 그래도 그때 나는 아직 어렸으니까, 어리고 순진했으니까 내가 차지한 것을 부모님과 공유할 준비가 되어 있었어. 나는 어린 성자들이 기근에 허덕이는 민중들에게 제 살을 베풀 듯이 내 여동생을 베풀었어.

그러는 사이 여동생은 덜렁거리던 앞니가 빠지고 영구치가 자라나고 가슴이 더 봉긋해지고 피부는 끔찍할 정도로 더 검고 아름답게 변해갔고 미인대회에서 우승을 할 정도로 아름다워졌는데 신은 그때까지도 우리를 치하해주지 않았어. 우리가 진작에 받았어야 할 은총과 구원을 내려주지 않았지. 아직까지도 우리는 아냐가 미인대회에서 타온 상금만으로 먹고 살고 있어. 전쟁 트라우마가 남은 아버지는 도시 사람들의 아득한 수다소리만 들어도, 공장 기계들이 드르륵거리며 가동되는 소리만 들어도 제발 저리 가 저리 가란 말이야 하면서 아이처럼 울부짖었기 때문에, 어머니는 팔리지 않을 글을 쓰는 시인이었고 결코 시인이기를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아냐가 그 아름다움을 베풀며 벌어온 상금만으로 하루를 일주일을 한 달을 버틸 수밖에 없었어.

날마다 조금씩 나누어 먹는 통조림 요리만 먹으며 나날이 말라가는 우리와는 달리 아냐는 신비로울 정도로 부드럽고 포동포동하게 자라났어. 우리는 그녀가 무언가를 훔쳐먹는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지. 하지만 통조림 속에 남아 있는 짓무른 누런 빛깔의 망고와 역겨운 청어는 언제나 어머니가 계산하고 꼼꼼히 기록해 놓은 그만큼의 양만큼 남아 있었고 그렇다고 해서 누군가가 그녀에게 달콤한 초콜릿과 과자를 선물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없었어. 미인대회에서 우승한 그녀, 성공의 붉은 융단이 천국까지 깔려있는 그녀는 더 이상 학교에 다닐 필요가 없었고 그녀보다 못한 진리와 그녀보다 못한 방정식을 배울 필요도 없었으니까. 그녀는 언제나 집에서만 그 아름다운 얼굴로 허공을 멍하니 바라보며 몽롱한 시선 속에 갇혀 지냈어. 여동생은 외출조차 하지 않았지.

나는 그녀가 우리집에서 빌어먹고 살고 있는 작은 쥐새끼들과 바퀴벌레, 지네와 먼지 따위를 잡아먹었으리라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어. 왜냐하면 그녀는, 너무나도 멍청한 그녀는 거미와 풀잎, 달팽이와 개미 따위를 희롱하고 죽이던 버릇을 버리지 못했을 것이 틀림없었으니까. 하지만 오직 한가지, 죽이지 않을 것은 먹지 말라는 내 말은 기억하고 있었을 거야. 그녀에게 수백 번 수천 번 가르쳐 주었으니. 그녀가 풀의 녹빛 피를 새까만 손 가득 묻히고 식물살해의 흔적을 온몸에 주렁주렁 달고 들어오던 날, 나는 그녀에게 잘려나간 식물의 사지로 아름다운-그러나 그녀보다는 못한- 꽃팔찌와 꽃반지와 꽃목걸이와 꽃발찌를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고 그녀는 환희에 젖은 아름다운 얼굴로 내 손에서 형식을 갖추는 생의 질료를 뚫어지게 바라보았어. 그러니까 그녀는 집안 곳곳을 돌아다니고 있는 부적합한 생의 형식-형식 없는 형식-들을 잡아채어 오랜 악습에 따라 죽이고 난 뒤, 죽이지 않을 것은 먹지 말라는 내 말을 그 멍청한 머리로 가까스레 기억해 내고 내 손에서 영글어가던 꽃팔지와 꽃반지와 꽃목걸이와 꽃발찌를 기억해내고 나를 흉내내어 쥐의 내장을 이리저리 꼬아서 무언가 살아남기에 적절한 죽음의 형식을 개발해보려 안간힘을 쓰다가, 물컹한 내장이 터무니없이 흉측하게 뭉그러지기만 하는 꼴을 보다가 붉고 더러운 오물의 짙은 향기를 견디지 못하고 그 가여운 쥐새끼를 뼈째로 삼켜버렸을 게 분명해. 피 한방울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핥아 먹었을 거야. 집안에는 죽은 쥐의 피 한 방울도 뼈 한 조각도 남아 있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나는 그녀의 불결한 비밀을 고발하지 않았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어. 왜냐하면 부모는, 정제되어 있는 통조림 속의 버려진 상품만을 음식이라고 생각하는 부모는, 먹을 것과 먹지 못할 것이 명백하게 구분되어 있다고 믿는 부모는 결코 내 말을 이해할 수 없을 테니까. 식물성 기름으로 튀겨낸 감자튀김에도 도살된 생들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식물성 기름이라는 것은 동물의 피와 지방을 녹여낸 애액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을 테니까. 그들의 의문은 끝내 해소되지 못할 것이었지만 나는 더 이상 사라진 쥐들과 벌레들의 비밀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었어. 너무도 배가 고팠기 때문에.

미인대회의 상금은 네 식구를 먹여살리기에는 턱없이 모자랐고 부모님은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일을 했지만, 살아가기 위한 살들을 사기에는 여전히 부족했어. 어머니는 새벽 네시 반에 깨어 여동생의 아름다운 얼굴을 보고서는 악몽에 쫓기던 사람이 꿈의 바깥까지 쫓아나온 검은 짐승을 보고 경악하듯, 저리 가, 저리 가란 말이야, 하며 비명을 질러대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배고픔에 공포와 경악마저도 잊고, 악몽마저도 잊고, 잠의 경계까지 뛰어넘어 그녀를 뒤쫓아온 검은 개의 이빨도 잊고, 오로지 한결같은 고독과 아픔, 그리고 허기만을 간직한 채로 다시 그녀의 낡고 누런 페이지 속으로 뛰어들었지. 새벽 네시 반부터 첫 번째 통조림을, 그녀가 정확하게 계산해 놓은 통조림의 양을 몸집의 크기에 따라 정밀하게 나누어 먹는 성체성사의 시간이 도래하기까지 약 네 시간 정도 그녀의 페이지에 그녀가 아니라면 알아볼 수도 없을 정도로 작고 정교한 글씨로 시를 써내려갔어.

나는 한 번도 그녀의 공책을 펼쳐본 적이 없었으면서도 그녀가 시를 쓴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 언젠가 내가 그녀에게 무얼 하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시를 쓴다고 말했으니까. 숨을 쉬는 것도 아니고 몽상을 하는 것도 아니고 뜬눈으로 잠을 자는 것도 아니고 통조림의 남은 양을 계산하는 것도 아니고 살아있는 것도 아니고 죽어가는 것도 아니고 허기를 참는 것도 고통을 참는 것도 아니고 소설을 쓰는 것도 아니고 여느 여인들이 그러하듯 수필, 아니면 일기나 편지를 쓰는 것도 아니고 가계부를 쓰는 것도 아니고 시를 쓰는 거라고. 시를 쓴단다, 얘야, 하고 말했으니까. 나는 그녀의 비밀스러운 페이지에 조그맣게 번져가는 글씨들, 홍수로 와해된 개미굴에서 울컥울컥 비어져나오는 작은 개미들과도 같은 잉크자국을 멍하게 쳐다보았어. 그녀는 첫 번째 통조림의 시간이 지난 뒤 홀로 식탁에 남아 식사시간 동안 한켠에 치워 놓은 두꺼운 노트를 다시 펼치고 시를 쓰기 시작하였고 그 일은 그녀가 간혹 화장실에 가거나 물을 마실 때 이외에는 계속되었어. 왜냐하면 몇 주 전에 세 번째 통조림 시간이 사라졌고 며칠 전부터는 두 번째 통조림 시간은 사라졌으니까. 그녀는 하룻밤이 지나가기 전까지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우리에게는 빨래를 할 만한 옷도 설거지를 할 만한 접시도 깨끗이 쓸고 닦을만한 바닥도 없었어. 여동생이 이리저리 몸을 뒤집으며 맨살로 훔쳐낸 바닥, 우리가 밤 사이에 악몽을 횡단하면서 허우적거리고 난 바닥은 이미 더 이상 깨끗해질 수 없을 정도로 닦여 있었지. 아직까지 바닥에 늘러붙어 있는 기묘한 얼룩과 흠집들은 골백번을 닦고 문대도 지워지지 않을 것이었으므로 어머니는 잠 속에 독처럼 뒤섞인 악몽이 그녀의 귓속으로 흘러들기 전까지 그녀의 애달픈 시속에서 표류할 수 있었어.

그녀는 그렇게 끈질기게 작업을 이어나갔지만 시는, 여자의 시는, 여자의 편지도 여자의 수필도 여자의 소설도 여자의 자수도 아닌 여자의 시, 여자의 시는 도저히 팔리지 않았어. 여자가 시를 쓴다는 사실을, 소설도 수필도 아닌 시를 쓴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어머니가 쓴 것은 낙서고 편지, 혹은 소설일 뿐 시는 아니었으니까. 그녀의 시가 아닌 시를 사려고 나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그러니 어머니의 작업은 그녀의 생애 내도록 지속된 작업은 통조림 한 캔조차 벌어다주지 못했고 그러는 사이 아버지는 보이지 않는 개머리판으로 베트남 청년들의 머리를 깨뜨리며, 뒈져 뒈지란 말이야, 하고 비명을 지르면서 그가 할당받은 죽음을 생산하고 있었지만 이미 오래전에 베트남 내전은 끝났으니, 사람을 죽이는 일, 특히 베트남의 무고한 청년들, 이미 오래전에 죽어버린 청년들을 죽이는 일은 총알 하나 값도 벌어다주지 못했지.

내가 어머니의 신비로운 시구를, 읽을 수도 없는, 그래서 더 매혹적인 글자들을 훔쳐보며 곱게 짜놓은 꽃반지와 꽃팔찌, 꽃목걸이와 꽃발찌 역시 돈이 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어. 그러므로 우리가 팔아먹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우리가 생산하고 우리가 길러냈으나 이해할 수는 없었던 여동생의 아름다움, 그 황홀한 진리의 외피밖에는 없었지. 우리는 여동생의 미인대회 우승 상금으로 쟁여 놓은 통조림이 떨어지기 전에, 주교와 교사, 시장의 은밀한 요구를 거절한 것을 후회하게 되어버리기 전에 디렉터를 독촉했어-아니요, 그 애 혼자 보낼 수는 없어요-그러면서도 우리에게 주어진 가냘픈 아름다움을 조심스럽게 보호할 정신은 있었어. 그녀가 돌이킬 수 없게 망가져버리고 나면 어머니의 아름다운 시도, 아버지의 내부에서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는 전쟁도 꽃반지와 꽃팔찌, 꽃목걸이와 꽃발찌도 모두 없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디렉터는 무엇을 하는지 계속해서 뜸을 들였고-그럼요, 아냐 말고는 없습니다. 제 영화는 오로지 아냐를, 그녀의 아름다움을 위한 거예요.-유예된 끝에 따라 재계산되고 재계산되고 또 재계산되는 사이 조금씩 조금씩 조금씩 줄어가는 하루치의 통조림 양은 턱없이 모자랐고 여동생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포동포동하게 살이 오르고 그녀의 불가해한 아름다움, 새까맣고 부드러운 피부의 충만한 매혹은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지경이었어. 얘야, 대체 네 여동생은 왜 저렇게 통통한 거냐. 우리는 저 애에게 아무것도 더 준 것이 없는데 우리는 이렇게 끔찍하게 말라가는데 저 애는 왜 끔찍하게 아름다운 거냐, 하고 물어도 나는 대답할 말이 없었지. 왜냐하면 그녀가 밤마다 쥐와 바퀴벌레, 지네와 먼지 뭉치를 뼈째로, 피 한 방울 알 하나도 남기지 않고 삼켜버린다는 말을 그들은 이해할 수 없을 테니까.

하지만 오래 고민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 그들은 시를 쓰고 전쟁을 치르느라 머지않아 모든 것을, 아냐의 아름다움마저도 잊어버리고 말 것이 분명했으니까. 나는 아냐의 새까만 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썩은 이들을 감출 필요가 없었고 그녀의 입속에서 진동하는 짙고 매혹적인 피비린내를 숨길 필요도 없었고 그녀의 매끄러운 얼굴을 조심스럽게 닦아 주고 그녀의 흑단 같은 머리칼을 빗겨주고 그녀의 봉긋한 가슴과 둥근 어깨, 오물이 묻은 엉덩이를 성체를 씻기는 성모처럼 부드러운 손길로 닦아내기만 하면 되었어. 나는 곧 천사들이 우리를 방문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어. 그녀처럼 검고 무참한 아름다움을 생산하고 돌봐온 우리를 데리고 천국으로 갈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고. 그래서 그녀의 지독한 아름다움을 지독한 허기와 지독한 경멸을 지독한 공포를 견디면서 하룻밤을 이틀밤을 사흘밤을 열흘 밤을 스무 밤을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렸지. 그런데 디렉터는, 오직 여동생의 아름다움만을 위한 영화를 찍겠다던 디렉터는 다시는 전화를 걸지 않았고 거절당한 주교와 교사, 시장은 다시는 우리를 방문하지 않았고 진리를 구하듯 그녀의 아름다움을 구하던 신도들은 다시는 우리를 찾아오지 않았고 우리는 그저 어리둥절한 채로 어째서 아직도 우리가 구원받지 못한 것인지 아직도 신이 그들에게 감사와 존경, 경의를 표하기 위해 성모의 푸른 옷을 빌려입고 나타나지 않는 것인지 의아해하며 하염없이 시와 악몽, 전장과 풀잎 속을 헤매었어.

그동안 여동생은 더욱 검고 뚱뚱해졌고 이제는 감히 똑바로 바라볼 수도 없을 정도로 아름다워졌어. 더 이상 그 애의 아름다움을 믿을 수 없을 지경이 되었을 때, 나는 구원에 대해 구원과 원죄의 메카니즘에 대해 생각했지. 풀꽃을 꺾어 쓰지도 않을 장신구를 만들면서, 손가락을 꾸물꾸물 기계적으로 움직이면서 먹지도 않을 풀들을 살해하면서 계속해서 생각했어. 그래서 마침내 우리가 구원받지 못하는 까닭은 죄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나폴레옹 황제조차 수감되지 않은 자를, 죄를 짓지 않은 자, 죄수가 아닌 자를 사면해줄 수는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설령 우리가 지금까지 무의식적으로 죄를 지었다고 하더라도 그 죄는 여동생의 치명적인 아름다움에 비교하면 턱없이 모자라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러니 구원받기 위하여, 아득하고 평안한 하늘로 올라가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도도 진리도 아닌 죄, 여동생의 절망적인 아름다움에 상응하는 죄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어.

나는 내가 손수 씻기고 부드러운 린넨 원피스를 입힌 검은 천사와도 같은 여동생을 데리고 녹슨 농기구와 쥐들의 시신, 할머니의 안락의자와 가공되지 않은 나무들이 토막나 있는, 쓰일 수 없었던 모든 생들이 방치되어 있는, 오랫동안 잊혀졌던 지하 창고로 데리고 갔고 그녀의 가녀린 목을 졸랐어. 그건 그녀의 아름다움을 질투했기 때문도, 그녀를 향한 사람들의 애정어린 시선을 질투해서도, 그녀를 증오해서도 아니었어. 오로지 그녀의 아름다움에 적합한 죄를 차지하기 위해서, 그래서 구원받기 위해서. 아, 그녀를 훼손하기 위해서도 그녀를 망가뜨리기 위해서도 아니었다고. 그녀를 질투해서 그녀를 죽였다는 몇몇 사람들의 주장은 터무니없어. 그녀를 뱃속에서 낳고 몸 밖으로 밀어낸 어미도 그녀를 어미의 몸 속으로 무참하게 밀어넣은 아비도 아닌 내가 그녀의 손과 발과 더러운 항문, 똥이 묻은 질과 엉덩이를 모두 씻겼고 그녀의 흑단같은 머리를 빗기고 그녀에게 죽이지 말아야 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강령을 가르쳐 준 것도 나였고, 멍청한 그녀가 끝내 배우지 못했던 기도법을 알려준 것도 나였고 그녀에게는 필요가 없었던 것으로 밝혀진 방정식과 화학식, 세계의 기호를 읽어내고 세계를 독서하는 방법을 이해시키기 위해 애썼던 것도 나였고 그녀의 더러운 귓속을 그녀의 귓속보다는 덜 더러운 헝겊으로 닦아준 것도 나였고 지혜롭고 영리하여 악한 군주들을 몰아낸 동화 속의 작은 쥐들의 이야기를 들려준 것도 나였고 그들이 강물 속에 뛰어들어 아득한 왕국으로 사라졌다고 말한 것도 나였고 여동생이 아무런 죄책감 없이 잡아먹은 가여운 쥐들이 바로 그 쥐들임을, 영웅적으로 위기를 모면하고 고양이들을 무찔러 온 용감한 주인공들임을 알려준 것도 나였고, 짐승들을 모두 모아 통치하던 사자의 위풍당당한 모습에 대해 알려준 것도 나였고 그들이 비쩍 마른 꼽추의 명령에 따라 빌빌거리면서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들고 그의 비루한 눈을 멀거니 바라보며 눈치를 보는 모습을 마음껏 구경할 수 있는 서커스에 남몰래 데려다 준 것도 나였고 마술사의 모자 속에서 죽은 채로 떨어져내리던 비둘기를 보여준 것도 나였고 밤의 물결 속에서 술렁대는 야수들이 어떠한 전설과 기원을 가지고 있는지 알려준 것도 모두 나였으니, 그녀를 낳은 어미도 아비도 아닌 나였으니까. 그러니까 내가 그녀를 질투해서 죽였다는 소리는 터무니 없는 망언이었지.

지금와서 고백하자면 그녀의 가녀리고 부드러운, 어둠 속에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눈부시게 반짝이던 새까만 목을 있는 힘을 다해 졸랐던 건 오직 그 방법밖에 없었기 때문이야. 오직 그녀의 아름다움으로 구원을 얻기 위해서, 아무리 기다려도, 나날이 줄어가는 통조림, 극한의 극한까지 줄어드는 하루치의 망고 조각과 끝도 없이 불어나는 어머니의 시구들, 그치지 않는 전쟁과 역사를 모두 끝내기 위해서, 진작에 이루어졌어야 할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그 방법밖에는 없었으니까.

Series Navigation<< 공공의 자살의 물방울 2혼자의 물방울 >>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