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해성사의 물방울 – 사드의 여인

한번은, 하고 여자의 고백이, 짙고 퀴퀴한 악취를 풍기는 목소리가 갑작스럽게 시작되었다. 관악기의 차가운 내장에서 줄줄 흘러내리는 음률처럼. 마리가 내게 말을 건 적이 있었어요. 내 이름을 부르면서요. 아니요. 내게 죽여달라고 이야기하기 훨씬 전의 일이에요. 그즈음 우리는 가혹하긴 해도 이후에 치러야 했던 끔찍스러운 모욕에 비하면 견줄 수도 없는 악행에 몸을 적시고 있었죠. 우리에게는 아직 바깥에서의 기억이, 신이 창조한 언어의 이해 가능한 빛무리 안에서 지내던 나날의 습관이 아직 남아 있었어요.

마리는 내 바로 왼쪽 자리에 누워 있었어요. 만약 그 애가 오른손잡이가 아니었다면, 그래서 오른쪽에 얼굴을 마주대고 누워 있던 내 귀 가까이에 입술을 붙이지 않았더라면 그 애는 나 대신 이 자리에 살아남아 사람의 삶을, 나 같은 괴물보다는 그 여린 애에게 주어졌어야 마땅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난 그 애의 애처로운 소곤거림에 응해주지 않았어요. 처음 그 고상하고 기이한 공간에서, 선뜩할 만큼 후끈한 공간에서 메스꺼움에 시달리며 눈을 떴을 때부터 난 그들에게, 괴물들에게 함부로 거역하면 안된다는 것을 직감했거든요. 그들이 일러준 규칙들을 노파들이 우리에게 달달 외우도록 강요했고 난 그 기묘한 규칙들에 완전히 사로잡혀 있었어요. 그들은 계집애들끼리의 우정을 강력하게 금하고 있었고 당시 나로서는 구태여 그들의 심기를 거스를 정도로 마리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는 않았어요. 난 그 애의 고독을, 그 애의 불안을 함께 감당해주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마리는 점점 큰 목소리로 불안에 숫제 흐느끼기까지 하며 내 이름을 불러댔죠. 난 단지 그 애의 입술에서 내 이름이 불리는 일만이 견딜 수 없이 불안할 뿐, 그 애를 가엾게 여기지도 않았고 그 애를 달래주어야겠다는 인간적인 마음이 들지도 않았어요. 어쩌면 그때 나 역시 그들의 일부가, 완전한 짐승이, 물질이 되어버렸는지도 몰라요. 그렇지 않았다면 그렇게 달콤하고 가여운 소녀의 흐느낌을 어떻게 그토록 완벽하게 무시할 수 있었겠어요. 결국 우리의 방을 불시점검하기 위해 찾아든 노파가 문 밖까지 새어나오는 소녀의 울음소리를 듣고 나를 불러 세우더군요. 그녀 또한 침묵보다 훨씬 괴롭게 울려퍼지는 이름을 기억하고 만 거예요. 난 곧장 고개를 저었어요. 특별히 마리를 눈짓하여 가리키는 비열한 짓거리까지 하지는 않았지만 노파는 벌벌 떨며 딸꾹질을 하기 시작하는 마리를 보고는 흉한 입을 다 드러내며 껄껄거리기 시작했어요. 난 더 이상 변명할 필요조차 없다는 걸 알았죠.

다음날 정찬에서 노파는 남작의 귀에 대고 수군거렸고 난 그녀의 불길하게 반쯤 내리깔린 눈꺼풀만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던 것이 기억나요. 그녀의 길고 거추장스러운 속눈썹이 마치 다족류의 절지동물처럼 징그럽고, 또 신비로워보였던 것이. 곧 남작은 마리를 첫 번째 처형 대상자로 공표했고 마리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처벌을 받았죠. 더 끔찍했던 일은 그녀가 그 처형 이후에도 살아남았다는 데에 있었어요. 처형은 단지 악마 같은 사디스트들의 흥미와 쾌락을 돋우기 위해 고안된 방식이기에 죄수의 생존 여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어요. 그것은 우리를 영원히 잠재우기 위한 처벌도, 우리를 지상으로부터 쫓아내기 위한 징벌도 아니었으니까요. 그들은 우리를 쫓아낼 필요도 없었어요. 우리는 이미 더 이상 지상이 아닌 곳에 있었으니까. 우리가 갇혀 있던 외딴 성은 더 이상 우리 누구의 지상도 될 수 없었으니까. 마리는 나를 원망하진 않았지만 그녀의 유달리 검은 눈동자에서, 희게 새어버린 앞머리에서 난 시선을 뗄 수가 없었어요. 마리는 다시는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지만 난 잠자리에 들 때마다 내 이름을 속삭이는 마리의 흐느낌을, 점차 커져가는 비명소리에 묻어 있는 내 이름의 흔적에 계속해서 시달려야 했어요. 우리의 잠자리는 살아남은 자들이 성에서 나가는 날까지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었고 난 마리의 잠자리에 남은 인기척을 거의 공포스러운 심정으로 견뎌내어야만 했죠.

그녀는 몸에 들어찬 질긴 얼룩을 벗겨내기 위해, 피부 아래에 있다고 믿고 있었던 그녀의 본질을 구해내기 위해 더럽혀진 껍질을 벗으려 안간힘을 썼으나 성공할 수 없었다. 그 껍질이, 오로지 그녀의 환상을 뒤덮고 있는 음울한 살점만이 그녀의 본질이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그녀는 이전보다 더 흉하게 일그러진 피부를 보며 깨달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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